1. 초기 생애 및 배경
이 섹션에서는 미겔 데 안드레스의 출생과 유년 시절, 그리고 아틀레틱 빌바오 유소년 시스템 입단 및 임대 생활을 통한 초기 프로 경력 형성에 대해 다룬다.
미겔 데 안드레스 바라세는 1957년 10월 8일, 스페인 나바라 주의 오차가비아에서 태어났다. 그의 유년 시절 및 가족 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는 일찍이 축구에 재능을 보였다.
1.1. 유소년 경력 및 아틀레틱 빌바오 입단
데 안드레스는 축구 선수로서의 초기 훈련 과정을 거쳐, 1974년부터 1975년까지 팜플로나 유소년 팀에서 활약했다. 이후 1975년, 그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관심을 동시에 받으면서도, 아틀레틱 빌바오의 명망 높은 유소년 시스템인 레사마에 입단했다. 당시 아틀레틱 빌바오는 그의 전 소속 구단에 40.00 만 Ptas의 이적료를 지불했으며, 그가 1군 팀에 데뷔할 경우 추가로 500.00 만 Ptas를 지불하기로 계약했다. 그는 레사마에서 엄격한 훈련을 받으며 프로 선수로서의 기틀을 다졌다.
1.2. CD 카스테욘 임대
아틀레틱 빌바오의 2군 팀인 빌바오 아틀레틱 소속으로 하부 리그에서 2년간 59경기에 출전하여 3골을 기록한 후, 데 안드레스는 1978-79 시즌 동안 세군다 디비시온 소속의 카스테욘으로 1년간 임대되었다. 당시 21세였던 그는 카스테욘에서 29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하며 프로 경력을 쌓았다. 이 임대 생활은 그가 1군 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데 중요한 경험이 되었다.
2. 클럽 경력
이 섹션에서는 미겔 데 안드레스의 아틀레틱 빌바오에서의 데뷔와 활약, 주요 대회 우승 경력, 그리고 선수 생활을 마감하게 된 부상과 은퇴 후 활동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미겔 데 안드레스는 선수 경력의 대부분을 아틀레틱 빌바오에서 보냈으며, 팀의 주요 성공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2.1. 데뷔 및 아틀레틱 빌바오에서의 활약
카스테욘 임대에서 복귀한 후, 21세의 데 안드레스는 전 오스트리아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헬무트 제네코비치 감독의 부름을 받아 아틀레틱 빌바오의 1군 스쿼드에 합류했다. 그는 1979년 9월 9일, 살라망카와의 라 리가 원정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으나 팀은 1-2로 패했다.
1980-81 시즌 초반, 레알 마드리드에게 1-7로 대패한 후 제네코비치 감독이 경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데 안드레스는 주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그는 아틀레틱 소속으로 출전한 모든 리그 경기에서 선발로 나섰다. 비록 그가 선호하는 포지션은 최후방 수비수였지만, 팀 전술상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배치되었다. 하비에르 클레멘테 감독 체제에서는 55경기에 출전하여 4골을 기록하며 팀의 2년 연속 리그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양발을 모두 사용하여 강력한 슈팅을 날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1983년 2월 9일, 1982-83 시즌 중 산 마메스 스타디움에서 폭설이 내리는 가운데 에스파뇰을 상대로 5-2 대승을 거둔 경기에서, 그는 장거리 슈팅으로 2골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2.2. 주요 대회 우승
미겔 데 안드레스는 아틀레틱 빌바오 소속으로 다음과 같은 주요 대회 우승을 달성했다.
- 라 리가**: 1982-83 시즌, 1983-84 시즌
- 코파 델 레이**: 1983-84 시즌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1984년
특히 1984년, 그는 마드리드에서 열린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 바르셀로나를 1-0으로 꺾고 팀의 2관왕 달성에 기여했다. 그러나 이 경기 종료 후, 그는 파코 클로스, 디에고 마라도나, 미겔리, 안도니 고이코에체아, 마누엘 사라비아 등 5명의 선수와 함께 경기 후 발생한 패싸움에 연루되어 징계를 받았으나, 이 징계는 후에 철회되었다.
2.3. 부상 및 은퇴
1986-87 시즌은 미겔 데 안드레스에게 매우 불운한 한 해였다. 이 시즌은 전설적인 선수 호세 앙헬 이리바르가 클레멘테의 후임으로 감독에 취임한 시기이기도 하다. 데 안드레스는 시즌 첫 경기인 스포르팅 히혼과의 경기에서 부상을 당한 것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 부상이 재발하며 고통받았다. 또한, 그는 로그로녜스와의 컵 경기 출전을 거부하여 구단으로부터 징계를 받기도 했다.
이후 레알 마드리드와의 31라운드 경기에 복귀했는데, 당시 아틀레틱 빌바오는 강등 그룹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 경기에서 상대 선수 리카르도 가예고가 착지하는 과정에서 그의 무릎 위로 넘어지면서 무릎이 심각하게 손상되는 부상을 입었다. 이 부상으로 인해 그는 더 이상 '사자 군단'(아틀레틱 빌바오의 별칭) 소속으로 경기에 출전할 수 없게 되었다. 1987년 하워드 켄덜이 아틀레틱 빌바오의 감독으로 부임했지만, 데 안드레스는 부상으로 인해 1년 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하다가 31세의 나이에 현역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아틀레틱 빌바오에서 총 267번의 공식 경기에 출전하여 12골을 기록했다.
2.4. 은퇴 후 활동
선수 생활 은퇴 후, 미겔 데 안드레스는 축구계와의 인연을 이어갔다. 그는 자신이 오랜 기간 몸담았던 아틀레틱 빌바오에서 스카우트로 활동하며 구단의 선수 발굴에 기여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이 섹션에서는 미겔 데 안드레스의 스페인 올림픽 대표팀 및 성인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과 국제 대회 참가 경험을 다룬다.
미겔 데 안드레스는 스페인 올림픽 대표팀과 성인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며 국제 무대 경험을 쌓았다.
3.1. 올림픽 대표팀
데 안드레스는 1980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하계 올림픽에 스페인 올림픽 대표팀 일원으로 참가했다. 그는 스페인이 치른 모든 경기에 풀타임으로 출전했으나, 팀은 3무를 기록하며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당시 호세 산타마리아 감독은 그를 레알 소시에다드의 아구스틴 가하테와 함께 수비진에 배치하여 활용했다.
3.2. 성인 국가대표팀
데 안드레스는 자국에서 열린 1982년 FIFA 월드컵에 참가할 예비 40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당시 감독이었던 산타마리아는 그를 최종 명단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후 미겔 무뇨스가 스페인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여 팀이 유로 1984 본선에 진출한 후, 데 안드레스는 1984년 1월 18일 카디스에서 열린 헝가리와의 친선경기에서 성인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으나 팀은 0-1로 패했다. 3개월 뒤, 그는 발렌시아에서 열린 덴마크와의 경기에도 10분간 출전하여 팀의 2-1 승리에 기여했다. 하지만 그는 프랑스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유로 1984 최종 스쿼드에는 또다시 포함되지 못했다. 그는 스페인 성인 국가대표팀에서 총 2경기에 출전하여 득점은 기록하지 못했다.
4. 수상 경력
이 섹션에서는 미겔 데 안드레스가 아틀레틱 빌바오 소속으로 달성한 주요 클럽 대회 우승 기록을 정리한다.
미겔 데 안드레스는 선수 경력 동안 아틀레틱 빌바오 소속으로 다음과 같은 주요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4.1. 클럽
- 라 리가**: 1982-83, 1983-84
- 코파 델 레이**: 1983-84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1984 (아틀레틱 빌바오가 라 리가와 코파 델 레이 우승을 동시에 달성하여 자동으로 우승컵을 수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