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메리 랜드는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운동 재능을 보였으며, 선수 경력 초기부터 국내 기록을 세우며 두각을 나타냈다.
1.1. 어린 시절 및 교육
메리 랜드는 1940년 2월 10일 잉글랜드 서머싯주 웰스에서 에릭 비그널과 힐다 비그널의 딸로 태어나 그곳에서 성장했다. 16세가 되던 해, 그녀는 밀필드 학교로부터 육상 장학금을 제안받았다. 그녀는 모든 스포츠에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며 올잉글랜드 학교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높이뛰기, 멀리뛰기, 허들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1956년 브라이턴의 훈련 캠프에서 올림픽 대표팀의 초청 선수로 참가하여 당시 영국의 최고 높이뛰기 선수들을 꺾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1.2. 초기 경력
17세 때 메리 랜드는 5종 경기에서 4046점의 영국 신기록을 수립하며 주목받았다. 1958년 코먼웰스 게임에서는 멀리뛰기에서 은메달을 획득했고, 높이뛰기에서는 5위를 기록했다. 한 달 후, 그녀는 유럽 5종 경기 선수권 대회에서 7위를 차지했다. 그녀는 런던 올림피아데스 육상 클럽 소속으로 활동했다.
2. 주요 활동 및 업적
메리 랜드의 선수 경력은 여러 주요 국제 대회에서의 뛰어난 성과로 빛난다. 특히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의 활약은 그녀의 업적 중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평가된다.
2.1. 1960년 로마 올림픽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메리 랜드는 멀리뛰기 예선에서 6.33 m의 영국 신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결승에서 반복되었다면 은메달을 획득할 수 있는 기록이었다. 그러나 결승에서는 세 번의 점프 중 두 번이 파울로 처리되어 9위에 그쳤다. 그녀는 또한 80m 허들 종목에 출전하여 4위를 기록했다.
2.2. 1964년 도쿄 올림픽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메리 랜드는 멀리뛰기 예선에서 6.52 m를 뛰어 올림픽 신기록을 세웠다. 결승에서는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소련의 세계 기록 보유자 타티야나 셸카노바와 폴란드의 이레나 키르셴스테인을 꺾고 우승했다. 그녀의 첫 점프인 6.59 m는 영국 신기록이었다. 특히 다섯 번째 시도에서는 비에 젖은 활주로와 초당 1.6 m/s의 역풍에도 불구하고 6.76 m를 뛰어넘어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세계 기록은 4년 뒤 비오리카 비스코폴레아누에 의해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고지대라는 이점과 함께 경신될 때까지 유지되었다.
랜드는 또한 5종 경기에서 5035점을 획득하며 은메달을 추가했다. 이 점수는 당시 역대 랭킹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이 종목에서는 이리나 프레스에게 금메달을 내주었다. 또한 그녀는 영국 대표팀의 일원으로 400m 릴레이에 출전하여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로써 랜드는 단일 올림픽에서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을 모두 획득한 최초의 영국 여성 선수가 되었다. 랜드의 룸메이트였던 앤 패커는 랜드가 금메달을 획득한 지 6일 후 800m에서 우승했으며, 랜드에 대해 "메리는 제가 본 가장 재능 있는 선수였습니다. 그녀는 최고의 선수였고, 그 이후로 그녀와 같은 선수는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평가했다.
2.3. 코먼웰스 게임
메리 랜드는 코먼웰스 게임에서도 인상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1958년 카디프에서 열린 브리티시 엠파이어 코먼웰스 게임에서 멀리뛰기 은메달을 획득했다. 1966년 킹스턴에서 열린 브리티시 엠파이어 코먼웰스 게임에서는 멀리뛰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다시 한번 정상에 올랐다.
2.4. 주요 국제 대회 성과
2.5. 기타 대회 및 기록
랜드는 또한 1959년부터 1981년까지 세단뛰기 비공식 세계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기록은 국제 육상 경기 연맹이 1990년이 되어서야 여자 세단뛰기를 공식 종목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비공식 기록으로 남았다. 랜드는 총 12개의 전국 선수권 대회(WAAA 챔피언십) 타이틀을 획득했는데, 여기에는 6개의 멀리뛰기 우승(1959, 1961, 1963~1966), 2개의 높이뛰기 우승(1958, 1959), 2개의 단거리 허들 우승(1959, 1966), 그리고 2개의 5종 경기 우승(1959, 1960)이 포함된다.
3. 개인사

1960년경, 비그널은 네덜란드 10종 경기 선수인 에프 카메르베이크와 교제했다. 1961년, 그녀는 조정 선수 시드니 랜을 만났고, 만난 지 3일 만에 결혼에 동의했으며 5주 후에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 사이에는 딸 앨리슨이 있었으나, 이 결혼은 5년 만에 끝났다.
1969년 12월, 랜드는 두 번째 남편으로 1968년 올림픽 10종 경기 챔피언인 미국인 빌 투미와 결혼했다. 이 결혼은 22년간 지속되었으며, 두 딸 사만다와 사라를 두었다. 이후 그녀는 존 리스와 결혼하여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주 아타스카데로에 거주하고 있다. 그녀는 영국과 미국의 이중 국적을 가지고 있다.
4. 수상 및 영예
메리 랜드는 그녀의 뛰어난 업적을 인정받아 여러 상과 영예를 얻었다. 1965년 새해 서훈에서 육상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영 제국 훈장 5등급(MBE)을 수여받았다. 또한 1964년에는 BBC 올해의 스포츠인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그녀의 고향인 웰스 서머싯주의 마켓 플레이스에는 1964년 올림픽에서 랜드가 세운 멀리뛰기 세계 기록 6.76 m를 기념하는 명판이 설치되어 있으며, 이 거리는 올림픽 오륜이 새겨진 보도블록으로 표시되어 있다. 2009년에는 잉글랜드 육상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012년 1월 26일, 웰스 주민 토니 윌리엄스가 시작한 캠페인에 따라 웰스 시는 그녀에게 '자유 시민' 자격을 부여했다.
5. 은퇴 및 영향
도쿄 올림픽 이후 그녀의 훈련 강도는 약해졌지만, 1966년 코먼웰스 게임에서 멀리뛰기 금메달을 다시 차지했다. 그러나 부상으로 인해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영국 대표팀 선발에 실패했고, 그 해 9월 경쟁 육상에서 은퇴했다.
메리 랜드는 영국 여성 스포츠의 선구자이자 롤모델로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영국 여성 육상 선수 중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서 여성 스포츠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후대 선수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그녀의 친구이자 런던 올림피아데스 클럽 동료였던 릴리언 보드가 그녀의 뒤를 이어 영국 육상의 '황금 소녀'로 불리게 되었다.
6. 평가
메리 랜드는 영국 육상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획득한 것은 단순한 개인의 영광을 넘어, 영국 여성 스포츠의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그녀의 다재다능함과 여러 종목에서의 뛰어난 성과는 그녀가 진정한 '육상인'이었음을 증명한다. 랜드는 영국 여성 육상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국가적 영웅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했다. 그녀의 업적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