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린 시절과 교육
만프레트 아이겐의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은 음악에 대한 깊은 열정과 제2차 세계 대전이라는 역사적 격변기 속에서 형성되었다. 그의 학문적 배경은 괴팅겐 대학교에서 물리학과 지구물리학을 전공하며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와 아르놀트 오이켄 같은 저명한 학자들의 영향을 받아 구축되었다.
1.1.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
만프레트 아이겐은 1927년 5월 9일 독일 보훔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에른스트 아이겐과 어머니 헤드비히(펠트) 아이겐은 실내 음악가였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깊은 열정을 보였으며, 피아노를 공부했다. 그의 정규 교육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중단되었다. 15세의 나이에 그는 독일 대공 방어 부대에 징집되었고, 전쟁 말기에는 미군에 의해 포로로 잡혔다. 그는 대학 입학에 필요한 서류가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시험을 통해 자신의 지식을 증명하여 1945년 괴팅겐 대학교의 전후 첫 신입생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그는 탈출에 성공했으며(나중에 비교적 쉬웠다고 언급), 1945년에는 전쟁에서 패배한 독일 전역을 수백 마일 걸어 괴팅겐에 도착했다.
1.2. 고등 교육 및 박사 과정
만프레트 아이겐은 원래 물리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군인들에게 우선권이 주어졌기 때문에 지구물리학에 등록했다. 그는 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자연과학 분야에서 대학원 과정을 시작했다. 그의 지도 교수 중 한 명은 불확정성 원리로 잘 알려진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였다. 만프레트 아이겐은 1951년 아르놀트 오이켄의 지도 아래 괴팅겐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 과학 경력과 주요 업적
만프레트 아이겐의 과학적 경력은 초고속 화학 반응 연구부터 생명의 기원과 자기 조직화 이론에 이르는 광범위한 분야에서 혁신적인 기여를 남겼다. 그는 연구를 통해 노벨상을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과학 기관에서 리더십 역할을 수행하며 새로운 생명공학 분야의 개척에도 힘썼다.

2.1. 고속 화학 반응 연구 및 노벨상
1953년부터 만프레트 아이겐은 괴팅겐에 위치한 막스 플랑크 물리화학 연구소에서 일했으며, 1964년에는 소장이 되었다. 이후 이 연구소는 막스 플랑크 분광 연구소와 통합되어 막스 플랑크 생물물리화학 연구소가 되었다. 1964년 런던에서 열린 패러데이 학회 회의에서 그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는 처음으로 나노초와 같이 짧은 시간 간격 동안 발생하는 화학 반응의 속도를 측정하는 것이 가능함을 입증했다. 1967년, 만프레트 아이겐은 로널드 조지 레이퍼드 노리시와 조지 포터와 함께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그들은 매우 짧은 에너지 펄스에 의해 유도되는 극히 빠른 화학 반응의 역학 연구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의 연구는 물리화학의 주요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했으며, 살아있는 유기체 내에서 일어나는 화학적 과정에 대한 이해를 돕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2. 자기 조직화 및 생명의 기원 이론
만프레트 아이겐의 이름은 유사종 이론, 오류 임계점, 오류 재앙, 아이겐의 역설, 그리고 화학적 하이퍼사이클 이론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하이퍼사이클 이론은 반응 주기의 순환적 연결이 생명체 발생 이전 시스템의 자기 조직화를 설명하는 원리이며, 특히 단백질과 핵산의 상호작용에 기반한 '자기재생산 촉매적 하이퍼사이클' 모델을 제창했다. 그는 1977년에 페터 슈스터와 함께 이 이론을 설명했으며, 1979년에는 이들과 함께 하이퍼사이클: 자연 자기 조직화의 원리라는 책을 출판했다. 그의 이론적 기여는 생명과 진화의 생화학적 뿌리를 탐구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2.3. 리더십 및 기관 활동
만프레트 아이겐은 1957년 막스 플랑크 생물물리화학 연구소의 교수로 임명되었고, 1964년에는 소장이 되었으며, 브라운슈바이크 공과대학교의 명예 교수로 재직했다. 1982년부터 1993년까지 그는 독일 국립 장학재단의 총장을 역임했다. 아이겐은 원자 과학자회보 이사회 후원자 중 한 명이었다. 1981년에는 세계 문화 위원회의 창립 멤버가 되었다. 그는 무신론자임에도 불구하고 교황청 과학원의 회원으로 활동했다. 1993년에는 스웨덴의 루돌프 리그러와 칼 자이스사와 공동으로 양산 가능한 형광상관분광학 기기를 개발했다.
2.4. 기업가적 활동
만프레트 아이겐은 생명공학 분야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는 이보텍과 다이레보라는 두 개의 생명공학 기업을 설립했다. 그의 이러한 활동은 진화 생명공학이라는 새로운 과학 및 기술 분야를 창조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3. 주요 저작과 출판물
만프레트 아이겐은 다양한 저서와 논문을 통해 그의 심오한 과학적 통찰을 대중과 학계에 전달했다. 그의 주요 저작들은 자기 조직화, 생명의 기원, 그리고 복잡계 과학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물질의 자기 조직화와 생체 고분자의 진화 (Selforganization of matter and the evolution of biological macromolecules), 1971년, 나투어비센샤프텐.
- 하이퍼사이클: 자연 자기 조직화의 원리 (The Hypercycle: A principle of natural self-organization), 페터 슈스터 공저, 1979년.
- 게임의 법칙: 자연의 원리가 우연을 지배하는 방식 (The Laws of the Game: How The Principles of Nature Govern Chance), 루틸트 윙클러 공저, 1983년.
- 이상한 단순함에서 복잡한 친숙함으로: 물질, 정보, 생명, 그리고 사고에 대한 논문 (From Strange Simpliciy to Complex Familiarity: A Treatise on Matter, Information, Life and Thought), 2013년.
- 대학의 이념 (The Idea of the University), 위르겐 하버마스 등과의 공저.
4. 개인 생활
만프레트 아이겐은 두 번 결혼했으며, 그의 개인적인 신념은 그의 과학적 사고와 흥미로운 대조를 이뤘다.
그는 엘프리데 뮐러와 결혼하여 아들과 딸 두 자녀를 두었다. 이후 오랫동안 과학적 파트너였던 루틸트 윙클러-오스와티취와 재혼했다. 그는 무신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교황청 과학원의 회원이었다는 점은 그의 개방적이고 다면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5. 사망
만프레트 아이겐은 2019년 2월 6일 91세의 나이로 독일 괴팅겐에서 사망했다.
6. 수상 및 영예
만프레트 아이겐은 그의 뛰어난 과학적 업적으로 경력 전반에 걸쳐 수많은 상과 명예를 받았다.
6.1. 주요 수상 및 학술 회원
- 오토 한 상 (1962년)
- 미국 예술 과학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 (1964년)
- 미국 국립 과학원 회원으로 선출 (1966년)
- 노벨 화학상 (1967년)
- 라이너스 폴링상 (1967년)
- 파라켈수스 메달 (1967년)
- 미국 철학 학회 회원으로 선출 (1968년)
- 왕립학회 외국인 회원 (ForMemRS)으로 선출 (1973년)
- 푸어 르 메리트 훈장 (1973년)
- 왕립화학회의 패러데이 강연상 (1977년)
- 오스트리아 과학 예술 훈장
- 니더작센 주 과학상 (1980년)
- 소비에트 과학 아카데미 (현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회원 (1976년)
- 파울 에를리히 및 루트비히 다르름슈테터 상 (1992년)
- 헬름홀츠 메달 (베를린-브란덴부르크 과학 인문학 아카데미, 1994년)
- 막스 플랑크 연구상 (1994년), 카롤린스카 연구소의 루돌프 리그러와 공동 수상
- 루르 대학교 보훔 명예 회원 (2001년)
- 볼티모어 인간 바이러스학 연구소 평생 공로상 (2005년)
- 황금 괴테 메달 (2007년)
- 빌헬름 엑스너 메달 (2011년)
6.2. 명예 박사 학위
만프레트 아이겐은 총 15개의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 브라운슈바이크 공과대학교 명예 교수 (1965년)
- 하버드 대학교 명예 박사 (1966년)
- 워싱턴 대학교 세인트루이스 명예 박사 (1966년)
- 시카고 대학교 명예 박사 (1966년)
- 노팅엄 대학교 명예 박사 (1968년)
- 괴팅겐 대학교 명예 교수 (1971년)
-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명예 박사 (1973년)
- 헐 대학교 명예 박사 (1976년)
- 브리스톨 대학교 명예 박사 (1978년)
- 데브레첸 대학교 명예 박사 (1982년)
- 케임브리지 대학교 명예 박사 (1982년)
- 뮌헨 공과대학교 명예 박사 (1983년)
- 빌레펠트 대학교 명예 박사 (1985년)
- 유타 주립 대학교 명예 박사 (1990년)
- 알리칸테 대학교 명예 박사 (1990년)
- 코임브라 대학교, 포르투갈 명예 박사 (2007년)
- 스크립스 연구소 명예 학위 (2011년)
7. 유산과 평가
만프레트 아이겐의 유산은 그의 심오한 과학적 발견과 생명에 대한 철학적 성찰에서 비롯된다. 그의 연구는 단순한 학문적 성과를 넘어, 생명 과학의 방향을 제시하고 새로운 기술 분야를 창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7.1. 과학적 및 사회적 영향
만프레트 아이겐의 연구는 물리화학, 분자생물학, 그리고 생명의 진화 이해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는 복잡한 화학 시스템의 자기 조직화 과정을 설명하는 하이퍼사이클 이론과 준종 이론을 제시하여, 생명 발생 이전 시스템이 어떻게 복잡성과 정보를 획득하며 진화했는지를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데 기여했다. 그의 업적은 단순한 화학 반응 속도론을 넘어 생명 과학의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제시하려는 시도였다. 또한 그는 막스 플랑크 연구소에서 생명 현상을 분자 수준에서 연구하는 다학제적 프로그램을 확립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러한 노력은 진화 생명공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및 기술 분야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그의 사회적 기여는 원자 과학자회보 이사회 후원자 및 세계 문화 위원회 창립 멤버로서 과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그의 작업은 생명이 단순한 물리화학적 현상을 넘어선 복잡한 정보 처리 시스템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