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arly Life and Background
과르디올라는 1971년 1월 18일, 스페인 카탈루냐의 산트페도르에서 돌로르스와 발렌티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두 명의 누나와 한 명의 남동생을 두고 있는데, 남동생 페레 과르디올라는 축구 에이전트로 활동하고 있다. 과르디올라는 무신론자임을 밝힌 바 있다.
1.1. Childhood and Youth Career
과르디올라는 13세에 짐나스틱 데 만레사를 떠나 라 마시아에 입단하며 FC 바르셀로나 유소년 아카데미에 합류했다. 6년간 바르셀로나 유소년팀에서 성장한 그는 1990년 카디스와의 경기에서 1군 데뷔전을 치렀다.
필 볼은 저서 '모르보(Morbo)'에서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입단 첫 주, 요한 크라위프는 예고 없이 캄 노우 근처에 위치한 바르셀로나 B의 홈 경기장인 미니 에스타디에 나타났다. 전반전이 끝나기 직전, 그는 벤치로 걸어와 당시 유스팀 감독이었던 카를레스 레샤크에게 오른쪽 미드필드에서 뛰고 있는 어린 선수의 이름을 물었다. '과르디올라요, 좋은 선수입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크라위프는 그 대답을 무시하고 레샤크에게 후반전에는 그 선수를 중앙 미드필더, 즉 피봇으로 뛰게 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스페인에서 많은 팀들이 사용하지 않던 적응하기 어려운 포지션이었지만, 과르디올라는 크라위프가 예상했던 대로 즉시 적응했고, 1990년 1군 팀으로 올라온 후 '꿈의 팀'의 피봇이 되었다."
2. Playing Career
과르디올라는 선수로서의 프로 경력 대부분을 FC 바르셀로나에서 보냈으며, 이후 이탈리아, 카타르, 멕시코 리그에서도 활약했다. 또한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과 카탈루냐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도 뛰었다.
2.1. FC Barcelona (1988-2001)

과르디올라는 1991-92 시즌부터 1군 팀의 주전 선수가 되었으며, 불과 20세의 나이로 라리가와 유러피언컵 우승을 차지한 팀의 핵심 멤버였다. 이탈리아 잡지 'Guerin Sportivo게린 스포르티보이탈리아어'는 과르디올라를 21세 미만 세계 최고의 선수로 극찬했다. 크라위프의 "꿈의 팀"은 1992-93, 1993-94 시즌에도 라리가 우승을 차지했다. 1994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도 진출했으나, 아테네에서 파비오 카펠로의 AC 밀란에 0-4로 패했다. 크라위프가 1996년 팀을 떠나고 바르셀로나가 1994-95 시즌 4위, 1995-96 시즌 3위에 머물렀음에도, 과르디올라는 바르셀로나 미드필드의 중심 자리를 지켰다.
1996-97 시즌에는 보비 롭슨이 이끄는 바르셀로나가 코파 델 레이, 스페인 슈퍼컵, UEFA 컵 위너스컵에서 우승하며 3개의 컵을 차지했다. 1997년, 과르디올라는 신임 감독 루이 판 할 아래 바르셀로나의 주장으로 임명되었으나, 종아리 근육 부상으로 인해 1997-98 시즌 대부분을 결장했다. 이 시즌에 바르셀로나는 리그와 컵 더블을 달성했다. 시즌 종료 후 바르셀로나는 AS 로마와 파르마 FC로부터 약 3억 페세타에 달하는 과르디올라 영입 제안을 거절했다. 길고 복잡한 계약 협상 끝에 그는 2001년까지 바르셀로나와의 계약을 연장했다.
과르디올라는 다음 시즌에 복귀하여 바르셀로나가 다시 라리가 우승을 차지했다. 1998년 6월 8일, 과르디올라는 스페인의 1998년 FIFA 월드컵 불참의 원인이 되었던 고질적인 종아리 부상을 해결하기 위해 수술을 받았다. 1999-2000 시즌은 대부분 실망스러운 결과로 끝났고, 과르디올라는 심각한 발목 염좌로 시즌 마지막 3개월을 결장하며 또다시 수술대에 올랐다.
2001년 4월 11일, 바르셀로나의 주장이었던 그는 17년간의 봉사를 마감하고 클럽을 떠날 의사를 밝혔다. 그는 이것이 개인적인 결정이며, 축구가 새로운, 더욱 신체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인식에 대한 반응이라고 설명했다. 2001년 6월 24일, 과르디올라는 셀타 비고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바르셀로나 선수로서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과르디올라는 12시즌 동안 1군 팀에서 479경기에 출전하여 16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셀타전 이후 기자회견에서 그는 "오랜 여정이었다. 사람들의 대우에 만족하고 자랑스러우며,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더 바랄 나위가 없다. 나는 엘리트 선수로서 많은 세월을 보냈다. 역사를 만들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나만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 왔다."라고 말했다. 차비,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세스크 파브레가스를 포함한 다수의 미래 바르셀로나 미드필더들은 과르디올라를 자신의 롤모델이자 영웅으로 꼽았다.
2.2. Later Club Career (2001-2006)
2001년 30세의 나이로 바르셀로나를 떠난 과르디올라는 안드레아 피를로의 대체자로 수비형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위해 세리에 A의 브레시아 칼초에 합류하여 카를로 마초네 감독 아래 로베르토 바조와 함께 뛰었다. 브레시아에서의 활동 후, 과르디올라는 AS 로마로 이적했다. 그러나 그의 이탈리아 생활은 성공적이지 못했으며, 난드롤론 양성 반응으로 인한 4개월 출전 정지 징계를 포함했다 (그는 2009년 모든 혐의에서 벗어났다).
브레시아와 로마에서의 경력 후, 과르디올라는 2003년 카타르 도하의 카타르 스타스 리그 소속 알아흘리에서 뛰었다. 2005-06 시즌에는 여러 유럽 클럽들의 제안을 거절했는데, 이는 그의 선수 경력이 막바지에 다다랐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2006년, 후안 마누엘 리요가 멕시코 클럽 도라도스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리요는 과르디올라가 푸에블라주 아틀릭스코의 아소코판에서 감독 학교에 다니는 동안 그를 영입하여 클럽에서 뛰게 했다. 과르디올라는 도라도스에서 6개월 동안 뛰었지만, 부상으로 인해 10경기 출전에 그쳤고, 이후 은퇴했다. 그는 이 클럽에서 1골을 기록했다.
2.3. International Career
과르디올라는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과 카탈루냐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뛰며 국제적인 경험을 쌓았다.
1992년 10월 14일, 과르디올라는 북아일랜드와의 친선 경기에서 스페인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같은 해, 그는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스페인 U-23 대표팀 주장을 맡아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기여했다. 그 해 그는 21세 이하 세계 최고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브라보상을 수상했다.
과르디올라는 1994년 FIFA 월드컵 스페인 대표팀의 일원이었으며, 이탈리아에 1-2로 패하며 8강에 진출했다. 하비에르 클레멘테 스페인 감독과의 불화로 인해 그는 UEFA 유로 1996에 출전하지 못했다. 1998년 그는 선수 경력을 위협하는 부상을 입어 1998년 FIFA 월드컵에 불참했지만, 이후 UEFA 유로 2000에 출전하여 스페인이 다시 8강에 진출했으나 이번에는 프랑스에 1-2로 패했다. 그는 2001년 11월 14일 멕시코와의 친선 경기에서 1-0 승리를 거두며 마지막 국가대표 경기를 치를 때까지 스페인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과르디올라는 45번째 A매치 경기였던 스웨덴과의 1-1 친선 무승부에서 마지막 국제 골을 기록했다. 그는 스페인 국가대표팀에서 총 47경기에 출전하여 5골을 기록했다.
과르디올라는 카탈루냐 축구 국가대표팀을 위해 뛰었으며, 그 팀의 활동을 지지하기도 했다. 1995년부터 2005년 사이에 그는 카탈루냐를 위해 7번의 친선 경기에 출전했다.
3. Player Profile
과르디올라는 선수로서의 특징과 함께 동료, 감독, 전문가들로부터 다양한 평가를 받았다.
3.1. Style of Play
과르디올라는 매우 창의적이고 부지런하며 민첩하고 우아한 선수였다. 그는 뛰어난 예측 능력, 전술적 인식, 그리고 경기를 읽는 능력을 지녔다. 그의 경력 내내 그는 주로 팀의 수비 라인 앞에 위치한 중앙 미드필더나 수비형 미드필더로 배치되었지만, 때로는 보다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는 수비적으로 유능했으며, 팀워크와 수비적 위치 선정을 통해 플레이를 방해하고 효과적으로 공을 빼앗아 상대를 압박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파울을 많이 범하는 경향도 있었다. 따라서,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그의 마른 체격 때문에, 그는 주로 수비수 앞의 수비형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하며 기술적 능력과 지능적이고 효율적이며 정확한 패스 플레이를 바탕으로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그는 때때로 요한 크라위프의 유동적인 3-4-3 포메이션에서 추가적인 센터백 역할로 더 깊이 내려가기도 했다.
눈에 띄는 스피드, 드리블 능력, 공중볼 경합 능력, 또는 강력한 신체적, 운동 능력은 부족했지만, 과르디올라는 그의 비전, 정교한 볼 컨트롤, 넓은 패스 범위, 위치 선정 능력, 침착한 볼 처리, 그리고 빠른 사고로 인해 그의 경력 내내 높이 평가받았다. 이러한 능력들은 그가 압박 속에서도 소유권을 유지하고, 빠르고 복잡한 짧은 원터치 패스를 통해 팀 플레이의 템포를 조절하거나, 긴 패스를 통해 플레이 방향을 전환하거나 기회를 창출할 수 있게 했다. 그의 역할은 이탈리아 축구 용어인 'metodista메토디스타이탈리아어'(중앙 미드필더)와도 비견되는데, 이는 그가 미드필드에서 플레이를 지시하고 팀의 수비에 기여하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르디올라는 공격적인 움직임을 가져가거나 먼 거리에서 정확한 슈팅을 날리는 능력 덕분에 공격적인 위협이 될 수 있었다. 또한 세트피스에서 기회를 만들거나 득점하는 데도 효과적이었다. 바르셀로나와 스페인 국가대표팀의 주장을 역임하면서, 그는 그의 경력 내내 리더십으로도 두각을 나타냈다. 비록 뛰어난 경기력을 보였지만, 그는 경력 내내 부상에 취약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었다.
3.2. Reception as a Player
과르디올라의 플레이 스타일은 신체 능력과 스피드보다는 창의성, 기술, 그리고 볼 움직임에 의존했는데, 이는 훗날 차비,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세스크 파브레가스와 같은 여러 스페인 미드필더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파브레가스는 그를 자신의 "우상"이라고 묘사했다. 안드레아 피를로는 과르디올라를 자신이 미드필드 깊은 곳에서 뛰는 포지션의 "모델"로 묘사했다.
전 바르셀로나 회장 주안 라포르타는 한때 과르디올라를 "우리 역사상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라고 묘사했다. 요한 크라위프는 그를 그의 세대에서 가장 훌륭한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간주했으며, '포포투'의 리처드 졸리(Richard Jolly)와 마르코 프라티노(Marco Frattino)도 이 의견에 동의했다. 프라티노는 2018년에 "20년 전, [...] 펩 과르디올라는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이었다"고 언급했다. 2001년 그의 에이전트 조제 마리아 오로비트그(Josè Maria Orobitg)는 그가 팀 플레이의 템포와 리듬을 조절하는 데 세계 최고라고 묘사했다.
'마르카'의 미겔 발(Miguel Val)은 과르디올라를 역대 스페인 선수 중 한 명으로 간주하며, 2020년 그를 "요한 크라위프 휘하 바르셀로나 '꿈의 팀'의 두뇌"라고 묘사했다. 페데리코 아케(Federico Aquè)는 그를 전성기 유럽 축구 최고의 수비형 플레이메이커 중 한 명으로 묘사했으며, '90min.com'의 리 부셰(Lee Bushe)는 2020년 그를 "역대 최고의 수비형 플레이메이커" 목록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4. Managerial Career
선수 생활을 마친 펩 과르디올라는 FC 바르셀로나 B팀에서 지도자 경력을 시작하여 FC 바르셀로나, FC 바이에른 뮌헨, 그리고 현재의 맨체스터 시티에 이르기까지 전무후무한 성공을 거두었다.
4.1. FC Barcelona B
과르디올라는 2007년 6월 21일 티토 빌라노바를 수석 코치로 하여 바르셀로나 B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그의 지휘 아래, 팀은 테르세라 디비시온에서 우승하며 2008년 세군다 디비시온 B 승격 플레이오프 진출 자격을 얻었고,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하며 승격을 달성했다. FC 바르셀로나 회장 주안 라포르타는 2008년 5월, 과르디올라가 프랑크 레이카르트를 대신하여 2007-08 시즌 종료 후 바르셀로나 1군팀 감독으로 임명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4.2. FC Barcelona (2008-2012)

감독으로 부임한 과르디올라는 호나우지뉴, 데쿠, 사무엘 에투와 같은 스타 선수들이 다가오는 시즌 계획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발표하여 화제가 되었다. 비록 에투는 결국 잔류가 허용되었지만, 이는 그의 과감한 팀 개편 의지를 보여주었다.
바르셀로나의 스포츠 디렉터 치키 베히리스타인과 함께 과르디올라는 몇몇 새로운 선수들을 영입했다. 세비야에서 다니 아우베스와 세이두 케이타가 합류했고, 레크레아티보를 거쳐 비야레알에서 마르틴 카세레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제라르 피케가 돌아왔으며, 아스널에서 알렉산드르 흘렙이 영입되었다. 새로운 영입 선수들과 함께, 과르디올라는 카나테라 출신인 세르히오 부스케츠, 페드로, 헤프렌 수아레스를 1군 팀으로 승격시켰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과르디올라는 이전보다 더 강한 직업 윤리를 강조했지만, 훈련 중에는 더 개인적인 접근 방식과 선수들과의 더 긴밀한 관계를 강조했다.
과르디올라의 감독으로서 첫 공식 경기는 챔피언스리그 3차 예선이었다. 바르셀로나는 홈에서 폴란드 클럽 비스와 크라쿠프를 4-0으로 편안하게 이겼지만, 2차전에서는 0-1로 패했다. 그러나 합계 4-1 승리로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다. 2008-09 라리가 개막전에서는 승격팀 누만시아에 패했지만, 이후 20경기 이상 무패 행진을 기록하며 리그 선두로 올라섰다. 바르셀로나는 리그 선두 자리를 유지하며 2006년 이후 첫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2009년 5월 16일, 숙적 레알 마드리드가 비야레알에 패하면서 바르셀로나의 우승이 확정되었다. 가장 중요한 경기는 5월 2일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스타디움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6-2 대승을 거둔 경기였다. 리그 우승은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 부임 첫 시즌에 거둔 두 번째 트로피였다. 앞서 5월 13일, 바르셀로나는 2009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 아틀레틱 빌바오를 4-1로 꺾고 우승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바르셀로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2-0으로 꺾었다. 이로써 그들은 스페인 클럽 역사상 처음으로 국내 컵, 리그, 유럽 클럽 대회 타이틀 (the treble트레블영어)을 같은 시즌에 모두 우승했다. 과르디올라는 37세의 나이로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을 이끈 최연소 감독이 되었다. 트레블을 달성한 이 시즌은 구단 역사상 가장 훌륭한 시즌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과르디올라의 감독으로서 두 번째 시즌은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에서 아틀레틱 빌바오를, UEFA 슈퍼컵에서 샤흐타르 도네츠크를 꺾으며 시작되었다. 2009년 9월 25일, 바르셀로나는 말라가 원정 경기에서 그의 50번째 프로 승리를 안겨주었고, 12월 19일에는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FIFA 클럽 월드컵 챔피언에 등극했다.
과르디올라는 이로써 한 해 동안 6개의 트로피를 모두 차지하며 (라리가, 코파 델 레이, UEFA 챔피언스리그,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UEFA 슈퍼컵, FIFA 클럽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이러한 기록을 달성한 감독이 되었다. 2010년 1월, 그는 주제프 사미티에르가 보유했던 기록을 넘어서며 바르셀로나 역사상 가장 오래 재임한 스페인 감독이 되었다. 그는 2010-11 시즌 종료 시점까지 바르셀로나와 함께 하기로 1년 계약 연장에 동의했다.
2010년 2월, 과르디올라는 바르셀로나 1군 팀 감독으로서 100번째 경기를 지휘했다. 그의 기록은 71승 19무 10패였으며, 242득점 76실점을 기록했다. 2010년 4월 10일, 그는 엘 클라시코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4연속으로 꺾은 바르셀로나 역사상 최초의 감독이 되었다. 바르셀로나는 2009-10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 진출했지만, 조제 모리뉴의 인테르 밀란에게 합계 2-3으로 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홈에서 레알 바야돌리드를 4-0으로 꺾고 승점 99점으로 20번째 라리가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이는 유럽 주요 리그 중 가장 높은 승점 기록이었다. 이 라리가 우승은 과르디올라의 구단 감독으로서 7번째 트로피였으며, 페르디난드 다우치크와 동률을 이루며 요한 크라위프의 11개 트로피에 이어 2위에 올랐다.
2011년 8월 21일, 바르셀로나는 세비야를 합계 5-3으로 꺾고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에서 우승하며 2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2010년 11월 29일, 바르셀로나는 레알 마드리드를 5-0으로 꺾으며 과르디올라의 엘 클라시코 5연승을 기록했다. 2011년 2월 8일, 과르디올라는 구단의 1년 계약 연장 제안을 수락하며 2012년 6월까지 계약을 맺었다.
2011년 5월 11일, 바르셀로나는 레반테와의 1-1 무승부로 라리가 우승을 차지하며 3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5월 28일, 바르셀로나는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1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3-1로 꺾고 우승했다.
2011-12 시즌은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에서 레알 마드리드에 합계 5-4로 승리하며 시작되었다. 바르셀로나는 8월 26일 포르투를 2-0으로 꺾고 UEFA 슈퍼컵에서 우승하며 시즌 두 번째 트로피를 획득했다. 포르투를 상대로 거둔 이 우승으로 그는 불과 3년 만에 12개의 트로피를 획득하며 바르셀로나 감독으로서 역대 최다 우승 기록을 달성했다. 같은 해 11월, 과르디올라는 바르셀로나 1군 팀 감독으로서 200번째 경기를 지휘했다. 그의 기록은 144승 39무 17패였으며, 500득점 143실점을 기록했다.
바르셀로나는 2011년 한 해를 클럽 월드컵 우승으로 마쳤는데, 산투스를 결승전에서 4-0으로 꺾으며 단일 경기 형식으로 변경된 이후 인터콘티넨털컵/클럽 월드컵 결승전에서 가장 큰 점수 차로 승리했다. 이는 과르디올라가 치른 16개 대회 중 13번째 우승 타이틀이었다. 2012년 1월 9일, 그는 FIFA 올해의 월드 코치에 선정되었다. 그의 41번째 생일에는 숙적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2-1 승리를 이끌며 감독으로서 정규 시간 내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무패 기록을 이어갔다. 4월 21일, 레알 마드리드가 바르셀로나를 2-1로 꺾고 남은 4경기에서 승점 차이를 7점으로 벌리면서, 과르디올라는 레알 마드리드에 리그 우승을 내주었다.
4월 24일,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2차전에서 첼시와의 홈 경기에서 2-2 무승부를 기록하며 합계 2-3으로 바르셀로나는 대회에서 탈락했다. 이로써 팀은 코파 델 레이만을 남겨두게 되었다. 과르디올라는 최근의 전술과 선수 선발에 대해 비판에 직면했다. 2012년 4월 27일, 그는 2011-12 시즌 종료 후 바르셀로나 감독직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감독 재임 기간 동안 매년 갱신되는 순환 계약을 맺고 있었다. 그는 결정의 주된 이유로 피로를 들면서, 바르셀로나 같은 클럽에서 4년은 영원처럼 느껴진다고 언급했다.
과르디올라는 해당 시즌 남은 라리가 경기에서 바르셀로나를 승리로 이끌었으며, 이어서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 3-0 승리를 거두었다. 4시즌 동안 14개의 트로피를 획득한 그의 기록은 그를 바르셀로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감독으로 만들었다. 바르셀로나는 그를 티토 빌라노바가 계승할 것이며, 그는 2012-13 시즌 시작과 함께 1군 팀을 이끌 것이라고 발표했다.
바르셀로나에서의 시간이 끝난 후, 과르디올라는 뉴욕 맨해튼에서 1년간의 안식년을 가졌다. 2013년 1월 7일, 그는 2012년 FIFA 올해의 월드 코치에서 우승자 비센테 델 보스케와 준우승자 조제 모리뉴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취리히에서 열린 2012년 FIFA 발롱도르 갈라 기자회견에서 과르디올라는 "감독직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지만, 그 외에는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 갈 팀은 없지만, 감독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4.3. FC Bayern Munich (2013-2016)

2013년 1월 16일, 과르디올라가 2012-13 시즌 이후 J.V. 하인케스를 대신하여 다음 시즌부터 분데스리가 클럽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직을 맡을 것이라고 발표되었다. 그는 2013년 6월 24일 바이에른에서의 첫 기자회견에서 독일어로 연설했으며, 이틀 뒤 첫 훈련을 진행했다. 그의 첫 공식 경기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독일 슈퍼컵이었는데, 바이에른은 2-4로 패했다. 바이에른에서의 첫 우승 트로피는 2013 UEFA 슈퍼컵으로, 첼시로 돌아온 오랜 숙적 조제 모리뉴를 꺾었다. 바이에른은 마누엘 노이어가 로멜루 루카쿠의 킥을 막아낸 후 승부차기에서 10명으로 줄어든 첼시를 꺾었다.
2013년 12월, 과르디올라는 모로코에서 라자 카사블랑카를 꺾고 세 번째 클럽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2014년 3월 25일, 그는 베를린의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헤르타 베를린을 3-1로 꺾고 바이에른을 23번째 분데스리가 우승으로 이끌었다. 시즌 7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이는 분데스리가 역사상 가장 이른 우승이었으며, 하인케스의 바이에른이 지난 시즌에 세웠던 기록을 경신했다. 과르디올라는 분데스리가 클럽에서 취임 후 최장 연승 기록인 카를-하인츠 펠트캄프의 기록을 깼다. 이 연승은 29라운드에서 아우크스부르크가 바이에른을 1-0으로 꺾으면서 28경기에서 멈췄다. 이 연승 종료는 또한 바이에른의 53경기 무패 행진도 끝냈다.
바이에른은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맞붙었다. 바이에른은 1차전에서 0-1로 패했고, 2차전에서는 0-4로 완패했다. 1차전 패배는 또한 과르디올라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의 첫 패배였다. 그는 DFB-포칼 연장전 2-0 승리로 2013-14 시즌을 마쳤다.

2014-15 시즌, 바이에른은 독일 슈퍼컵에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 0-2로 패했다. 2015년 3월 11일, 바이에른은 샤흐타르 도네츠크를 7-0으로 꺾으며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가장 큰 승리 중 하나를 기록했다. 과르디올라의 감독 100번째 경기에서 바이에른은 포르투를 6-1로 꺾었다. 이 승리로 바이에른은 4년 연속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 진출했다. 2015년 4월 28일, 바이에른은 승부차기에서 패하며 독일 컵에서 탈락했다. 바이에른은 4개의 킥을 모두 실축했다. 그의 경력에서 처음으로 그는 4연패를 기록했다 (승부차기 패배 포함). 바르셀로나와의 첫 경쟁 경기에서 바이에른은 0-3으로 패했다. 바이에른은 이 경기에서 유효 슈팅을 하나도 기록하지 못했다.

2015-16 시즌은 2015년 8월 1일 볼프스부르크에 승부차기로 패하며 독일 슈퍼컵에서 시작되었다. 리그에서는 바이에른이 처음 10경기를 모두 승리했다. 그들이 리그에서 처음으로 승점을 잃은 것은 2015년 10월 30일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와의 0-0 무승부였고, 리그 첫 패배는 2015년 12월 5일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 1-3으로 패한 경기였다.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바이에른은 6경기 중 5승을 거두며 F조 1위를 차지했다.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바이에른의 유일한 패배는 10월 20일 아스널과의 경기였다. 이는 바이에른의 2015-16 시즌 전 대회 첫 패배였다.
2015년 12월 20일, 바이에른은 과르디올라가 시즌 종료 후 계약 만료로 클럽을 떠날 것이며, 카를로 안첼로티가 2016-17 시즌부터 그의 후임이 될 것이라고 확인했다. 2016년 5월 3일, 과르디올라의 바이에른 뮌헨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서 패하며, 바이에른에서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할 마지막 기회를 놓쳤다. 과르디올라의 마지막 경기는 2016년 5월 21일이었으며, 바이에른은 승부차기에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꺾었다. 그는 분데스리가에서 82승 11무 9패, DFB-포칼에서 14승 3무 무패,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23승 5무 8패를 기록했다. 또한 FIFA 클럽 월드컵, UEFA 슈퍼컵, DFL-슈퍼컵에서는 합계 2승 2무 2패를 기록했다. 비공식 대회에서는 합계 6승 1무 1패를 기록했다.
4.4. Manchester City (2016-present)
맨체스터 시티 감독으로서 과르디올라는 팀의 전술적 변화를 주도하며 프리미어리그의 강자로 자리매김했고, 구단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들을 달성했다.
4.4.1. Early Seasons and First Premier League Titles (2016-2020)
2016년 2월 1일, 맨체스터 시티는 과르디올라와 2016-17 시즌 시작을 위한 3년 계약을 맺었다. 과르디올라는 여름 이적시장에서 여러 중요한 선수들을 영입했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미드필더 일카이 귄도안, 셀타 비고에서 놀리토, 샬케 04에서 윙어 르로이 자네, 에버턴에서 수비수 존 스톤스를 영입했다. 그는 또한 오랫동안 팀의 주전 골키퍼였던 조 하트를 논란 속에 자신의 전 소속팀 바르셀로나의 클라우디오 브라보로 교체했으며, 하트는 이후 맨체스터 시티에서 다시는 출전하지 못했다.
2016년 8월 13일, 과르디올라는 프리미어리그 시즌 첫 경기에서 선덜랜드를 2-1로 꺾고 승리를 거두었다. 9월 11일, 과르디올라는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첫 맨체스터 더비에서 2-1로 승리했으며, 이는 그의 "라이벌" 조제 모리뉴 감독을 상대로 거둔 6번째 승리이기도 했다.
시티는 국제 휴식기까지 선두를 달렸으나, 이후 경기력이 하락했다. 2017년 1월 15일 맨체스터 시티는 에버턴에 0-4로 패했는데, 이는 과르디올라의 국내 대회 감독 경력 중 가장 큰 패배였다. 유럽 무대에서는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모나코에 합계 6-6 동점 후 원정 다득점 원칙으로 탈락했다. 이 경기의 2차전은 과르디올라의 유럽 대회 감독 100번째 경기였으며, 그는 61승 23무로 어떤 감독보다도 좋은 기록으로 이 이정표에 도달했다 (이전 기록 보유자는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 시절 스승이었던 루이 판 할이었다). 아스널과의 FA컵 준결승전 패배 이후, 과르디올라는 그의 감독 경력 처음으로 무관으로 시즌을 마쳤다.

2017년 여름 이적 시장에서 과르디올라는 리그 우승에 도전하기 위해 맨체스터 시티의 수비 지역, 특히 골키퍼와 풀백 포지션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지난 시즌 브라보의 부진으로 인해 에데르송이 새로운 주전 골키퍼로 영입되었다. 윙백으로는 뱅자맹 멘디와 카일 워커가 영입되었으며, 기존의 모든 주전 풀백들이었던 알렉산다르 콜라로프, 가엘 클리시, 바카리 사냐, 파블로 사발레타는 팀을 떠났다. 또한, 모나코에서 베르나르두 실바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다닐루가 각각 영입되었다.
2018년 2월 25일, 시티는 EFL컵 결승전에서 아스널을 3-0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과르디올라의 맨체스터 시티에서의 첫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4월 15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웨스트 브롬위치 앨비언에 홈에서 0-1로 패배하면서 시티는 2017-18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확정했다. 리그 시즌을 기록적인 100점으로 마친 후, 과르디올라는 2021년까지 시티와 새로운 계약을 체결했다.
과르디올라의 감독으로서 세 번째 시즌 동안, 맨체스터 시티는 레스터 시티에서 리야드 마레즈를 6000.00 만 GBP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로드리를 클럽 최고 이적료인 6280.00 만 GBP에 영입하며 두 명의 주요 선수들을 영입했다. 이 영입들로 인해 시티 선수단의 가치는 10억 유로를 초과하게 되었고, 이 가치를 가진 스쿼드를 구성한 세계 최초의 축구 클럽이 되었다. 2019년 8월 4일, 시티는 FA컵 우승팀 첼시를 상대로 커뮤니티 실드를 2-0으로 이기며 시즌을 시작했고, 이로써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2019년 8월 4일, 시티는 리버풀과의 커뮤니티 실드에서 승부차기 승리를 거두며 시즌을 시작했고, 2년 연속 트로피를 차지했다. 이 경기에서 과르디올라는 프리미어리그 감독 중 최초로 심판으로부터 옐로카드를 받은 감독이 되었다. 3월 1일, 맨체스터 시티는 아스톤 빌라를 EFL컵 결승전에서 2-1로 꺾고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봄 휴식기 이후 시티는 2019-20 프리미어리그에서 2위를 기록했다. 레알 마드리드를 2019-20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꺾은 후, 과르디올라의 팀은 2020년 8월 15일 단판 토너먼트 형식으로 진행된 8강전에서 리옹과 맞붙었다. 시티는 이 경기에서 1-3으로 패하며 3시즌 연속 8강에서 탈락했다.
4.4.2. Premier League Dominance and Champions League Breakthrough (2020-2024)
2020-21 시즌에는 지난 시즌에 비해 시티의 수비력이 크게 향상되어 12경기에서 단 1골만을 내주었다. 2020년 11월 19일, 과르디올라는 2023년 여름까지 맨체스터 시티와 새로운 2년 계약을 체결했다. 2021년 1월 31일 셰필드 유나이티드를 홈에서 1-0으로 꺾고 프리미어리그에서 감독으로서 500번째 승리를 거두었으며, 1888년 풋볼 리그가 시작된 이래 잉글랜드 축구 4대 리그에서 한 달 최다 승리 (1월에 9승)를 기록한 팀이 되었다. 2월 10일 스완지 시티를 FA컵에서 3-1로 꺾은 후, 과르디올라의 팀은 잉글랜드 1부 리그 역사상 가장 긴 연승 기록 (모든 대회에서 15연승)을 경신했다.

과르디올라는 5월 11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레스터 시티에 홈에서 패배하면서 세 번째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2021 EFL컵 결승전에서 토트넘 홋스퍼를 1-0으로 꺾고 네 번째 연속 우승을 차지한 지 2주 만이었다. 5월 29일, 맨체스터 시티는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치렀으나 첼시에 0-1로 패했다. 경기 후 과르디올라는 수비형 미드필더를 선발 라인업에 포함시키지 않은 팀 선택에 대해 비판을 받았다. 첼시 감독 토마스 투헬도 페르난지뉴가 시티의 선발 라인업에 없는 것에 놀랐다고 인정했다.
2021년 여름 이적 시장 동안, 맨체스터 시티는 아스톤 빌라의 미드필더 잭 그릴리시를 1.00 억 GBP에 영입하며 영국 이적료 기록을 경신했다. 9월 25일, 그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첼시를 상대로 1-0 원정 승리를 거두며 레즈 맥도월을 제치고 맨체스터 시티 역사상 최다 승리를 기록한 감독이 되었다. 2022년 5월 22일, 맨체스터 시티는 아스톤 빌라에 3-2로 승리하며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과르디올라의 클럽에서의 네 번째 우승으로, 프리미어리그 최다 우승 감독 목록에서 2위에 올랐다.
2022-23 시즌 동안, 맨체스터 시티는 과르디올라 휘하에서 다섯 번째인 세 번째 연속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2022년 11월 23일, 과르디올라는 2025년 여름까지 맨체스터 시티와 새로운 2년 계약을 체결했다. 2023년 6월 3일, 클럽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FA컵 결승전에서 2-1로 승리하며 과르디올라 휘하에서 두 번째 FA컵 우승을 차지하고 국내 더블을 달성했다. 2023년 6월 10일, 그는 인테르 밀란과의 결승전에서 1-0으로 승리하며 구단 역사상 첫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개인적으로는 세 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콘티넨털 트레블을 완성했다.
2023년 8월 16일, 과르디올라는 세비야를 상대로 1-1 무승부 후 승부차기에서 5-4로 승리하며 역대 최다 기록과 동률인 네 번째 UEFA 슈퍼컵 우승을 차지했고, 세 개의 다른 클럽에서 이 트로피를 우승한 최초의 감독이 되었다. 12월 22일, 과르디올라는 플루미넨시를 결승전에서 4-0으로 꺾고 시티를 구단 역사상 첫 FIFA 클럽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한 해 동안 5개의 타이틀을 획득한 최초의 잉글랜드 클럽이 되었다. 이 업적으로 과르디올라는 FIFA 클럽 월드컵 타이틀을 4번 우승한 역사상 최초의 감독이 되었다. 경기 후 과르디올라는 "마지막 장을 닫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모든 타이틀을 우승했고, 더 이상 우승할 것이 없다. 일이 끝났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맨체스터 시티의 챔피언스리그 수비는 2024년 4월 17일 레알 마드리드에 합계 4-4 무승부 후 승부차기에서 3-4로 패하며 8강에서 끝났고, 이로써 맨체스터 시티의 연속 콘티넨털 트레블의 희망은 좌절되었다.
2024년 5월 19일, 맨체스터 시티는 시즌 마지막 날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를 3-1로 꺾고 승점 91점으로 아스널에 2점 앞서며 네 번째 연속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잉글랜드 클럽 중 최초로 4회 연속 1부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일주일 뒤, 맨체스터 시티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FA컵 결승전에서 1-2로 패하며 연속 국내 더블 달성 기회를 놓쳤다.
4.4.3. Recent Form and Contract Extension (2024-present)
펩 과르디올라가 이끄는 맨체스터 시티는 2024-25 시즌 초반 리그 9경기 무패 행진을 기록하며 지난 시즌의 성공을 이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EFL컵 4라운드에서 토트넘 홋스퍼에 1-2로 패배한 것을 시작으로 팀의 운세는 하락세를 탔고, 이후 모든 대회를 통틀어 13경기 중 단 1승만을 거두는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2024년 11월 9일, 맨체스터 시티는 브라이턴 & 호브 앨비언에 1-2로 패했는데, 이는 과르디올라의 감독 경력에서 처음으로 정규 시간 내 4연패를 당한 기록이었다. 2024년 11월 22일, 그는 2024-25 프리미어리그 시즌 종료 후 클럽을 떠날 것이라는 광범위한 추측에도 불구하고 2027년까지 맨체스터 시티와 2년 계약 연장에 서명했다. 그러나 하루 뒤인 11월 23일, 과르디올라는 토트넘 홋스퍼에 0-4로 완패하며 맨체스터 시티 감독으로서 역대 최악의 홈 경기 패배를 기록했다.
2025년 2월 19일, 맨체스터 시티는 레알 마드리드에 합계 3-6으로 패하며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탈락했는데, 이는 2012-13 시즌 이후 처음으로 16강에 진출하지 못한 결과였다. 과르디올라는 팀의 부진에 대해 스스로의 경기력을 비판하며, 자신이 문제의 원인이라면 클럽에 남지 않을 것이라고 시사하기도 했다.
5. Managerial Profile
감독으로서의 펩 과르디올라는 그의 전술적 깊이와 현대 축구에 미친 영향력으로 인해 광범위한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5.1. Tactics and Philosophy
과르디올라의 팀은 볼 점유율을 유지하고 경기를 지배하는 데 많은 중점을 두지만, 동시에 볼 소유권이 없을 때는 강한 압박을 펼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선수들은 상대 팀의 수비 지역에서 조직적으로 압박하여 공 소유권을 되찾으려 한다. 이러한 집단 압박은 상대 골키퍼나 수비수들이 미드필더만큼 드리블이나 패스에 능숙하지 않아 공간이 적은 상대 진영에서만 이루어진다.
하이 프레싱이 중요해지면서, 과르디올라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볼 컨트롤에 능숙하고 롱 패스와 숏 패스를 모두 잘 구사하는 골키퍼와 수비수를 기용했다. 빅토르 발데스와 마누엘 노이어와 같은 골키퍼들은 바르셀로나와 바이에른 뮌헨에서 스위퍼 키퍼 역할을 수행하며 역습을 방지하기 위해 라인을 벗어나 달려나오고, 후방에서부터 공격을 전개했다. 맨체스터 시티에서는 에데르송이 시티가 높은 압박을 받을 때 정확한 롱 패스를 전방으로 보내 상대 수비 전체를 무력화시키고 시티의 공격수들에게 1대1 상황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시티의 수비 지역에서 나오는 롱 패스에 걸리지 않기 위해 상대 수비는 공격진이 높이 압박함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럽게 깊이 내려섰고, 이로 인해 미드필드 중앙에 공간이 생겼다.
과르디올라는 자신의 전술을 끊임없이 진화시키려 노력한다고 밝혔다. 요한 크라위프의 토털 풋볼 스타일을 배운 후, 과르디올라는 멕시코 도라도스에서 친구이자 감독이었던 후안 마누엘 리요 휘하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특히 많은 영향을 받았다. 과르디올라는 또한 마르셀로 비엘사의 도움을 구하며 그에게서 배우려 했다. 그가 2006년 FIFA 월드컵 당시 '엘 파이스(El Pais)'에 기고했던 루이스 아라고네스의 스페인 팀과 리카르도 라 볼페의 멕시코 팀을 칭찬하는 글들은 그가 볼 점유율 기반의 공격적인 축구, 그리고 골키퍼와 수비수들이 후방에서부터 볼을 전개하는 방식에 대한 존경심을 보여주며, 과르디올라는 이후 여러 차례 이를 중요한 영감의 원천으로 언급했다. 그의 글 중 하나에서 그는 지네딘 지단을 프랑스 최고의 수비수라고 칭하며, 볼 점유율 자체가 핵심적인 수비 전술임을 지적했는데, 이는 과르디올라 팀의 대명사가 되었다. 필리프 람은 바이에른 뮌헨에서 과르디올라 밑에서 뛰면서 과르디올라의 전술이 주로 "공격적인 사키"였다고 지적했다. 이는 1980년대 후반 아리고 사키의 AC 밀란 팀을 본떠 유동적인 움직임, 빠른 회복, 그리고 볼 소유권 유지를 강조했으며, 이는 조제 모리뉴와 훗날 디에고 시메오네가 효과적으로 사용한 엄격한 수비 지향적인 '카테나치오' 스타일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람은 과르디올라가 이 두 스타일을 혼합한 방식으로 접근 방식을 발전시켰다고 언급했다.
과르디올라의 전술은 랄프 랑니크가 고안하고 위르겐 클로프가 큰 효과를 본 'Gegenpressing게겐프레싱독일어'과도 비견되기도 했다. 그의 전술은 마우리치오 사리, 토마스 투헬, 그레이엄 포터, 루이스 엔리케와 같은 감독들뿐만 아니라 럭비와 같은 다른 스포츠에도 영향을 미쳤다. 과르디올라는 독일 및 잉글랜드 리그에 자신의 스타일을 맞춰야 했음을 인정했지만, 그의 "축구 교육은 [카탈루냐]에서 왔고" 이는 볼 점유율 기반이며 'Gegenpressing게겐프레싱독일어'과는 다르다고 밝혔다. 여러 전문가들은 과르디올라 휘하 바르셀로나의 공격 지향적 전술(빠른 패스, 볼 점유율, 움직임, 높은 수비 라인, 강한 압박)을 UEFA 유로 2008에서 아라고네스 감독의 스페인 국가대표팀이 사용했던 '티키타카' 스타일과 자주 연결시켰지만, 과르디올라 자신은 이러한 주장을 반박했으며, 심지어 이 시스템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2014년에 "나는 그저 패스를 위한 패스, 그 모든 티키타카를 혐오한다. 그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고 아무런 목적도 없다.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상대 골문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볼을 패스해야 한다. 그저 패스를 위한 패스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과르디올라는 감독으로서의 유연성을 인정받았으며, 그의 경력 내내 여러 포메이션을 사용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주로 4-3-3 포메이션을 사용했는데, 인버티드 윙어와 오버랩하여 팀에 폭을 제공하는 공격적인 풀백을 활용했으며, 때로는 3-4-3 포메이션도 사용했다. 그는 바이에른 뮌헨과 맨체스터 시티에서도 이러한 포메이션들을 사용했다. 3-4-3 포메이션에서는 바르셀로나의 세르히오 부스케츠와 바이에른 뮌헨의 사비 알론소와 같은 수비형 미드필더들이 때때로 수비 라인으로 내려가 추가적인 수비수 역할을 수행했다. 이 역할은 과르디올라 자신이 크라위프 휘하 바르셀로나에서 뛰었던 역할과 유사했다.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풀백인 필리프 람과 요주아 키미히를 미드필더로 활용하기도 했다. 과르디올라는 바르셀로나 재임 시절 리오넬 메시를 팀 공격 라인의 중앙에 배치하여 가짜 9번을 활용하기 시작했는데, 메시는 미드필드 깊숙이 내려와 팀에 미드필드에서 수적 우위를 제공했다. 맨체스터 시티에서는 여러 포메이션을 실험한 후, 2022-23 트레블 달성 시즌 동안 3-2-2-3 포메이션의 현대 버전을 사용했으며, 이는 과거 'W-M' 포메이션과 비견되었다. 그는 존 스톤스를 수비와 창의적인 미드필드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하이브리드 역할로 배치했는데, '더 가디언'의 조너선 윌슨은 2023년에 이를 '리베로'와 '윙 하프' 역할 모두에 비유했다. 과르디올라는 또한 역발 풀백을 사용하여 중앙 지역으로 움직이게 했으며, 엘링 홀란을 전통적인 스트라이커로 활용하는 등 이전 시즌보다 더 신체적이고 직접적인 스타일로 플레이했다.
5.2. Reception and Influence
전문가들은 과르디올라를 역대 가장 위대한 감독 중 한 명으로 꼽는다. 그는 2010년대 스페인과 독일 국가대표팀의 성공과 자주 연관되는데, 이 두 팀에는 그가 지도했던 많은 1군 선수들이 있었다.
위르겐 클로프는 과르디올라가 자신이 상대했던 가장 강한 팀들을 만들었다고 평가하며 "나는 시티가 내가 만났던 가장 힘든 상대라고 말할 수 있지만, 펩의 바이에른을 상대했을 때도 그리 쉽지 않았다. [...] 우리는 서로를 미친 수준으로 밀어붙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2017년 이탈리아 수비수 조르조 키엘리니는 과르디올라의 철학에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그는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와 관련된 점유율 기반의 플레이 스타일이 대중화되고, 어릴 때부터 볼을 잘 다루는 수비수를 육성하는 데 이탈리아에서 점점 더 집중하는 것이 실제로는 전체적인 수비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 미쳤다고 주장했다. 그는 "'Guardiolismo과르디올리스모이탈리아어'[그가 '과르디올라 방식'을 위해 만든 용어]는 이탈리아 수비수들의 한 세대를 망쳤다. 이제 모두가 전진하려고 하고, 수비수들은 플레이의 템포를 설정하고 볼을 분배하는 방법을 알지만, 마크하는 법은 모른다"고 언급했다.
사비 알론소, 차비, 루이스 엔리케, 에릭 텐 하흐, 미켈 아르테타 등 과르디올라의 여러 전 선수, 팀 동료, 코칭 스태프들은 감독 경력을 추구했으며, 과르디올라를 영감의 원천으로 꼽았다.
6. Personal Life and Views
펩 과르디올라는 사생활과 개인적인 신념, 그리고 정치적 견해에 대해 여러 차례 공개적인 입장을 표명해왔다.
6.1. Family and Personal Details
과르디올라는 18세에 그의 아내 크리스티나 세라를 만났다. 그들은 2014년 5월 29일에 결혼했으며, 마리아, 마리우스, 발렌티나 세 자녀를 두었다. 2025년 크리스티나 세라와 이혼했다.
바르셀로나 감독직을 마친 후, 그는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때까지 1년 동안 미국 뉴욕 맨해튼에 거주할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에른 뮌헨 감독직을 준비하기 위해 과르디올라는 매일 4~5시간 동안 독일어를 공부했다.
6.2. Political Views and Social Engagement
과르디올라는 카탈루냐의 정치적 독립을 지지한다. 2015년 그는 그 해의 지역 의회 선거에서 친독립 연합인 'Junts pel Sí준츠 펠 시카탈루냐어'에 참여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6.3. Public Scrutiny and Controversies
과르디올라는 ICIJ (International Consortium of Investigative Journalists)가 발표한 판도라 페이퍼스에 이름이 오르내린 13명의 스포츠계 인사 중 한 명이었다. 그는 2012년까지 안도라에 계좌를 개설하고 있었으며, 당시 마리아노 라호이의 보수 정권이 스페인에서 시행한 세금 사면을 이용하여 자신의 재정 상황을 합법화했다. 그 전까지 그는 해당 계좌에 보유한 자금을 스페인 국세청에 신고하지 않았다.
2023년 5월 24일, 과르디올라는 테드 래소에 카메오로 출연하여 제이슨 서데이키스가 연기하는 테드 래소의 팀 AFC 리치먼드가 맨체스터 시티와 경기하여 승리하는 장면에 등장했다. 과르디올라는 시티의 패배 후 래소와 악수를 하고 래소에게 조언을 건넸고, 래소는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과르디올라는 이 쇼의 팬으로 알려져 있으며 아내와 딸과 함께 시청하는 것을 즐긴다고 한다.
7. Legacy and Overall Evaluation
펩 과르디올라는 선수와 감독으로서 축구 역사에 지대한 유산을 남겼으며, 그의 업적과 함께 다양한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7.1. Positive Evaluations
선수로서 과르디올라는 요한 크라위프의 "꿈의 팀"의 핵심 미드필더로 FC 바르셀로나의 유러피언컵 우승과 라리가 4연패를 이끌며 전성기를 보냈다. 그의 창의적이고 지능적인 플레이 스타일은 후대의 많은 미드필더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감독으로서 그는 FC 바르셀로나, FC 바이에른 뮌헨, 맨체스터 시티를 이끌며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바르셀로나와 맨체스터 시티에서 두 차례의 콘티넨털 트레블을 달성한 유일한 감독이며, 이는 그의 전술적 역량과 혁신적인 리더십을 증명한다. 그는 프리미어리그 최초의 승점 100점 팀을 만들고 여러 리그에서 최다 연승 기록을 세우는 등 끊임없이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스위퍼 키퍼를 포함한 그의 전술적 진화와 포지션 플레이 철학은 현대 축구의 흐름을 바꾸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위르겐 클로프와 같은 정상급 감독들도 그를 "가장 힘든 상대"로 꼽으며 그의 업적을 높이 평가한다. 그의 전술적 통찰력과 팀 관리 능력은 많은 젊은 감독들에게 롤모델이 되고 있으며, 그의 '코칭 트리'는 축구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7.2. Criticism and Debates
과르디올라는 그의 혁신적인 전술과 뛰어난 업적에도 불구하고 여러 비판과 논쟁에 직면해왔다. 특히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준결승전에서 여러 차례 탈락하며 '유럽 대회에서 지나치게 전술적인 변화를 시도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첼시와 리옹, 레알 마드리드에게 챔피언스리그에서 탈락했을 때 그의 전술적 선택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특히 2021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를 선발 라인업에 포함시키지 않은 결정은 큰 비판을 받았다.
또한, 조르조 키엘리니의 비판처럼, 그의 포지션 플레이와 볼 점유율 중심의 축구가 이탈리아와 같은 일부 국가에서 수비수들의 전통적인 '마크 능력'을 저해했다는 지적도 있다. 이는 그의 전술이 특정 지역의 축구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 미쳤을 수 있다는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최근 맨체스터 시티의 부진과 UEFA 챔피언스리그 조기 탈락은 그의 리더십과 전술적 유효성에 대한 의문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특히 2024년 11월 브라이턴과 토트넘에 연패하며 감독 경력 최초로 4연패를 당하고, 홈에서 0-4 대패를 기록하는 등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 또한, 판도라 페이퍼스에 연루되어 안도라에 역외 계좌를 보유하고 세금 사면을 이용해 재정 상황을 합법화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대중의 비판적 시선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논란들은 그의 화려한 업적과 더불어 그의 경력에 대한 다각적인 평가를 가능하게 한다.
8. Career Statistics
8.1. Player Statistics
클럽 | 시즌 | 리그 | 내셔널컵 | 대륙 대회 | 기타 | 총합 | ||||||
---|---|---|---|---|---|---|---|---|---|---|---|---|
디비전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
바르셀로나 C | 1988-89 | 세군다 디비시온 B | 8 | 1 | 0 | 0 | - | - | 8 | 1 | ||
바르셀로나 B | 1989-90 | 세군다 디비시온 B | 11 | 0 | 0 | 0 | - | - | 11 | 0 | ||
1990-91 | 세군다 디비시온 B | 33 | 3 | - | - | 6 | 0 | 39 | 3 | |||
1991-92 | 세군다 디비시온 | 9 | 2 | - | - | - | 9 | 2 | ||||
합계 | 53 | 5 | 0 | 0 | - | 6 | 0 | 59 | 5 | |||
바르셀로나 | 1990-91 | 라리가 | 4 | 0 | 0 | 0 | - | - | 4 | 0 | ||
1991-92 | 라리가 | 26 | 0 | 0 | 0 | 11 | 0 | 2 | 0 | 39 | 0 | |
1992-93 | 라리가 | 28 | 0 | 3 | 1 | 5 | 0 | 3 | 0 | 39 | 1 | |
1993-94 | 라리가 | 34 | 0 | 3 | 0 | 9 | 0 | 2 | 0 | 48 | 0 | |
1994-95 | 라리가 | 24 | 2 | 2 | 0 | 6 | 0 | 2 | 0 | 34 | 2 | |
1995-96 | 라리가 | 32 | 1 | 7 | 0 | 8 | 1 | - | 47 | 2 | ||
1996-97 | 라리가 | 38 | 0 | 6 | 0 | 7 | 1 | 2 | 0 | 53 | 1 | |
1997-98 | 라리가 | 6 | 0 | 1 | 0 | 5 | 0 | 2 | 0 | 14 | 0 | |
1998-99 | 라리가 | 22 | 1 | 3 | 0 | 1 | 0 | 0 | 0 | 26 | 1 | |
1999-2000 | 라리가 | 25 | 0 | 2 | 0 | 12 | 1 | 2 | 0 | 41 | 1 | |
2000-01 | 라리가 | 24 | 2 | 6 | 1 | 7 | 0 | - | 37 | 3 | ||
합계 | 263 | 6 | 33 | 2 | 71 | 3 | 15 | 0 | 382 | 11 | ||
브레시아 | 2001-02 | 세리에 A | 11 | 2 | 0 | 0 | - | - | 11 | 2 | ||
로마 | 2002-03 | 세리에 A | 4 | 0 | 0 | 0 | 1 | 0 | - | 5 | 0 | |
브레시아 | 2002-03 | 세리에 A | 13 | 1 | 0 | 0 | - | - | 13 | 1 | ||
알아흘리 | 2003-04 | 카타르 스타스 리그 | 18 | 2 | ? | 0 | - | ? | ? | 18+ | 2 | |
2004-05 | 카타르 스타스 리그 | 18 | 3 | ? | 1 | ? | 1 | ? | ? | 18+ | 5 | |
합계 | 36 | 5 | ? | 1 | ? | 1 | ? | ? | 36+ | 7 | ||
도라도스 | 2005-06 | 멕시코 프리메라 디비시온 | 10 | 1 | ? | ? | - | - | 10+ | 1+ | ||
커리어 총합 | 398 | 21 | 33+ | 3+ | 72+ | 4 | 21+ | 0 | 524+ | 28+ |
국가대표팀 | 연도 | 경기 | 득점 |
---|---|---|---|
스페인 | 1992 | 2 | 1 |
1993 | 5 | 0 | |
1994 | 7 | 1 | |
1995 | 0 | 0 | |
1996 | 5 | 1 | |
1997 | 4 | 1 | |
1998 | 0 | 0 | |
1999 | 9 | 0 | |
2000 | 8 | 1 | |
2001 | 7 | 0 | |
합계 | 47 | 5 |
:점수와 결과는 스페인의 득점을 먼저 표기하며, 점수 열은 과르디올라의 각 득점 후 점수를 나타낸다
순번 | 날짜 | 장소 | 출전 | 상대팀 | 점수 | 결과 | 대회 |
---|---|---|---|---|---|---|---|
1 | 1992년 12월 16일 | 라몬 산체스 피스후안, 세비야, 스페인 | 2 | 라트비아 | 2-0 | 5-0 | 1994년 FIFA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 |
2 | 1994년 6월 27일 | 솔저 필드, 시카고, 미국 | 12 | 볼리비아 | 1-0 | 3-1 | 1994년 FIFA 월드컵 |
3 | 1996년 12월 14일 | 메스타야, 발렌시아, 스페인 | 18 | FR 유고슬라비아 | 1-0 | 2-0 | 1998년 FIFA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 |
4 | 1997년 2월 12일 | 호세 리코 페레스, 알리칸테, 스페인 | 20 | 몰타 | 1-0 | 4-0 | 1998년 FIFA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 |
5 | 2000년 6월 3일 | 울레비, 예테보리, 스웨덴 | 35 | 스웨덴 | 1-0 | 1-1 | 친선 경기 |
8.2. Managerial Statistics
팀 | 시작일 | 종료일 | 기록 | 참조 | ||||
---|---|---|---|---|---|---|---|---|
경기수 | 승 | 무 | 패 | 승률(%) | ||||
바르셀로나 B | 2007년 6월 21일 | 2008년 6월 30일 | 28|9|5|78.57 | |||||
바르셀로나 | 2008년 7월 1일 | 2012년 6월 30일 | 179|47|21|72.47 | |||||
바이에른 뮌헨 | 2013년 6월 26일 | 2016년 6월 30일 | 121|21|19|75.16 | |||||
맨체스터 시티 | 2016년 7월 1일 | 현재 | 363|74|77|70.62 | |||||
총합 | 691|151|122|71.68 |
9. Honours
9.1. Player Honours
바르셀로나 B
- 세군다 디비시온 B: 1990-91
바르셀로나
- 라리가: 1990-91, 1991-92, 1992-93, 1993-94, 1997-98, 1998-99
- 코파 델 레이: 1996-97, 1997-98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1991, 1992, 1994, 1996
- 유러피언컵: 1991-92
- UEFA 컵 위너스컵: 1996-97
- UEFA 슈퍼컵: 1992
스페인 U23
- 하계 올림픽 금메달: 1992
9.2. Managerial Honours
바르셀로나 B
- 테르세라 디비시온: 2007-08
바르셀로나
- 라리가: 2008-09, 2009-10, 2010-11
- 코파 델 레이: 2008-09, 2011-12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2009, 2010, 2011
- UEFA 챔피언스리그: 2008-09, 2010-11
- UEFA 슈퍼컵: 2009, 2011
- FIFA 클럽 월드컵: 2009, 2011
바이에른 뮌헨
- 분데스리가: 2013-14, 2014-15, 2015-16
- DFB-포칼: 2013-14, 2015-16
- UEFA 슈퍼컵: 2013
- FIFA 클럽 월드컵: 2013
맨체스터 시티
- 프리미어리그: 2017-18, 2018-19, 2020-21, 2021-22, 2022-23, 2023-24
- FA컵: 2018-19, 2022-23
- EFL컵: 2017-18, 2018-19, 2019-20, 2020-21
- FA 커뮤니티 실드: 2018, 2019, 2024
- UEFA 챔피언스리그: 2022-23
- UEFA 슈퍼컵: 2023
- FIFA 클럽 월드컵: 2023
9.3. Individual Awards and Decorations
- 브라보상: 1992
- UEFA 유로 2000 팀 오브 더 토너먼트: 2000
- 돈 발론 올해의 감독상: 2009, 2010
- 미겔 무뇨스 트로피: 2008-09, 2009-10
- 옹즈도르 올해의 감독상: 2009, 2011, 2012
- 월드 사커 올해의 감독상: 2009, 2011
- IFFHS 세계 최고의 클럽 감독: 2009, 2011, 2023
- UEFA 올해의 팀 최고 감독: 2008-09, 2010-11
- 라리가 올해의 감독상: 2009, 2010, 2011, 2012
- FIFA 올해의 남자 축구 감독: 2011
- 글로브 사커 어워드 감독 커리어상: 2013
- 글로브 사커 어워드 21세기 감독상: 2020
-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감독: 2017년 2월, 2017년 9월, 2017년 10월, 2017년 11월, 2017년 12월, 2019년 2월, 2019년 4월, 2021년 1월, 2021년 2월, 2021년 11월, 2021년 12월
-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감독: 2017-18, 2018-19, 2020-21, 2022-23, 2023-24
- LMA 올해의 감독: 2017-18, 2020-21, 2022-23
- LMA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감독: 2017-18, 2020-21, 2022-23, 2023-24
- LMA 명예의 전당
- UEFA 올해의 남자 감독상: 2022-23
- FIFA 최우수 축구 감독: 2022-23
- 왕립 스포츠 훈장 금메달: 2010
- 카탈루냐 올해의 인물상: 2009
10. See Also
- 라리가 우승 감독 목록
-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감독 목록
11. External Links
- [https://www.uefa.com/uefachampionsleague/history/clubs/coach=15008/ UEFA 프로필]
- [https://players.fcbarcelona.com/en/player/372-guardiola-josep-pep-guardiola-sala FC 바르셀로나 프로필]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Category:Josep_Guardiola Wikimedia Commons의 펩 과르디올라 관련 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