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배경
리카르도 리코는 1983년 9월 1일 이탈리아 포르미지네에서 태어났다.
1.1. 유년 시절 및 교육
리코는 13세에 자전거 경기를 시작했으며,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2001년 이탈리아 국내 주니어 사이클로크로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했으며, 2004년에는 U-23 이탈리아 국내 개인 도로 경기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1.2. 초기 경력 형성
리코는 아마추어 선수로서 두 시즌 동안 성공적인 활약을 펼쳤으며, 이 기간 동안 세티마나 베르가마스카에서 우승했다. 2005년에는 프로 선수로 전향하려 했으나, 여러 혈액 검사에서 그의 헤마토크리트 수치가 허용치를 초과하여 문제가 되었다. 당시 UCI 프로팀 사우니에르 두발의 스포츠 디렉터인 마우로 지아네티는 그의 혈액 수치가 자연적인 것임을 증명하기 위해 로잔에 있는 UCI 연구소에서 일주일간 머물 것을 제안했다. UCI의 추가적인 정밀 검사를 통해 리코의 헤마토크리트 수치가 자연적으로 50%를 넘는다는 것이 확인되었고, 그는 프로 전향을 승인받았다.
그러나 2008년 7월 17일, 투르 드 프랑스 4단계 개인 타임 트라이얼 이후 EPO 계열 도핑 약물인 CERA 양성 반응이 나오면서 그의 높은 헤마토크리트 수치에 대한 의문이 다시 제기되었다. 동료 선수 제롬 피노는 리코가 주니어 시절부터 공공연하게 도핑을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2. 프로 경력
리카르도 리코의 프로 경력은 2006년 UCI 프로팀 사우니에르 두발에 합류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뛰어난 등반 능력으로 주목받았으나, 도핑 스캔들로 인해 경력이 단절되는 아픔을 겪었다.
2.1. 사우니에르 두발-스코트 시절 (2006-2008)
리코는 2006년 사우니에르 두발-프로디르와 프로 계약을 맺고 데뷔했다. 이 해 그는 빠르게 투르 드 프랑스에 출전하여 종합 98위를 기록했으며, 재팬 컵에서 우승하며 프로 첫 승을 거두었다.
2.1.1. 초기 성공과 주목받기 시작
2007년 시즌 초반부터 리코는 두각을 나타냈다. 티레노-아드리아티코에서 두 개의 연속 스테이지 우승과 포인트 부문 우승을 차지하며 종합 12위에 올랐다. 코피 에 바르탈리 국제 주간에서도 한 스테이지를 우승하고 종합 2위를 기록했다. 그는 또한 첫 아르덴 클래식 출전에서 암스텔 골드 레이스 9위, 라 플레슈 왈론 6위를 기록하며 좋은 컨디션을 보여주었다.
2007년 지로 디탈리아에는 팀 리더 질베르토 시모니의 도메스티크(보조 선수)로 출전했다. 그는 가장 어려운 구간 중 하나였던 15단계 트레 치메 디 라바레도에서 팀 동료 레오나르도 피에폴리를 제치고 우승하며 그랜드 투어에서 첫 승을 거두었다. 그는 종합 6위, 신인상 2위를 기록하며 큰 활약을 펼쳤다. 시즌 마지막 대회인 지로 디 롬바르디아에서는 다미아노 쿠네고와의 2인 스프린트에서 패해 2위를 차지했다. 이 해 그는 2007년 UCI 프로투어 개인 종합 16위에 올랐다.
2.1.2. 2008 지로 디탈리아
2008년, 리코는 지로 디탈리아에 팀 리더로 출전하여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낙차로 인한 검지손가락 부상과 감기에도 불구하고 산악 구간에서 강한 모습을 보이며 두 개의 스테이지 우승과 신인상 부문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최종 우승자 알베르토 콘타도르에 1분 57초 뒤진 종합 2위를 기록하며 우승 경쟁을 펼쳤다. 당시 도핑 전문가 미셸 오드랑은 2008년 지로에서 일부 선수들이 CERA를 사용하고 있었다고 언급했으며, 리코의 뛰어난 성적 또한 의심을 받았다.

2.1.3. 2008 투르 드 프랑스 및 도핑 적발
같은 해 2008년 투르 드 프랑스에서 리코는 6단계에서 슈페르-베스 언덕 정상 피니시를 통해 첫 투르 드 프랑스 스테이지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그의 혈액 수치에 이상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팀과 선수 본인은 도핑 문제가 없으며 리코가 선천적으로 높은 헤마토크리트 수치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1997년부터 허용 상한선으로 간주되는 50%를 넘어 51%의 헤마토크리트 수치에 대한 UCI 인증서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졌다. 사흘 뒤 그는 9단계 콜 다스팽 오르막에서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2008년 7월 17일, 프랑스 도핑 방지 기구는 4단계 이후 채취된 리코의 소변 샘플에서 금지된 혈액 증강제인 CERA(지속성 에리트로포이에틴 수용체 활성제) 양성 반응이 검출되었다고 발표했다. 이로 인해 그는 즉시 투르 드 프랑스에서 제명되었고, 그의 소속팀 사우니에르 두발은 자발적으로 대회에서 철수했다. 사우니에르 두발은 다음 날 리코를 팀에서 해고한다고 발표했다. 리코는 경찰서에서 밤을 보냈으며 "독성 물질 사용"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는 혐의를 부인하며 "매우 쓰라리다. 경찰서에서 밤을 보냈는데 감옥에 있는 것 같았다. 판사는 내 말을 들었다. 그들은 내 가방을 수색했지만 우리 모두가 사용하는 비타민만 발견했고, 그래서 나를 집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그의 호텔 방에서 주사기 및 정맥 주사 장비 등 의료 용품이 발견되었으나 사용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증언했다.
이후 리코가 투르 4단계 이후 도핑 관리관들을 피하려 했으나 교통 체증에 갇혀 적발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로 인해 관계자들은 그를 매 단계마다 검사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CERA 제조사인 호프만-라 로슈가 WADA와 비밀리에 협력하여 약물 검사법을 개발했고, 이것이 리코가 적발된 이유였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대회 직후 일주일 만에 리코는 CONI에 팀과 무관하게 2008년 투르 드 프랑스를 준비하며 EPO를 복용했음을 시인했으며,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팀 동료들과 팬들에게 사과했다. 리코는 이탈리아 신문 라 레푸블리카에 금지된 도핑 의사 카를로 산투치오네가 새로운 형태의 EPO를 공급했다고 말했다.
2.2. 복귀 시도와 이후 사건
도핑 징계 이후 리코는 프로 무대로 복귀하려 했으나, 연이은 사건들로 인해 결국 선수 생활을 마감하게 되었다.
2.2.1. 재활 및 복귀 (2010-2011)
리코의 유죄 인정 후, 그의 변호인들은 20개월의 징계를 희망했다. 2008년 10월 2일, 이탈리아 올림픽 위원회(CONI)는 그에게 2년의 출장 정지 처분을 내렸다. 리코는 "매우 실망스럽고 쓰라리다. 더 나은 이해를 기대했다. 하지만 내가 실수를 했고, 대가를 치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2009년 3월 17일, CAS는 그의 협력을 인정하여 징계 기간을 20개월로 단축했다. 이에 따라 그는 2008년 7월 18일부터 2010년 3월 18일까지 징계를 받았다.
2010년 3월 징계가 해제된 후, 리코는 아일랜드의 프로페셔널 콘티넨탈 팀인 체라미카 플라미니아와 2년 계약을 맺고 프로 무대에 복귀했다. 4월에 출전한 지로 델 트렌티노 2단계에서 우승하며 종합 2위를 기록했다. 7월에는 오스트리아 일주에서 두 개의 산악 스테이지를 제패하며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같은 해 8월, 팀이 지로 디탈리아에 초대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플라미니아와의 계약을 파기하고, 당시 프로 콘티넨탈 팀이었던 네덜란드의 바칸솔레일-DCM과 2011년까지 계약을 맺고 이적했다. 10월에 출전한 코파 사바티니에서 이적 후 첫 승을 거두었다.
2.2.2. 2011년 혈액 수혈 사건
2010년 1월, 리코의 파트너였던 바니아 로시(전 이탈리아 사이클로크로스 챔피언)에게서 CERA 양성 반응이 나오면서 리코가 로시와의 관계를 중단했다고 발표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로시의 B샘플이 음성으로 나와 이후 처분은 철회되었다.)
또한 바칸솔레일 이적 후인 2010년 9월, 이탈리아 당국의 대규모 도핑 수사가 진행되었고, 플라미니아 시절 동료이자 로시의 친오빠인 엔리코 로시가 체포되었으며, 리코 자신도 가택 수색을 받았다.
이처럼 계속해서 의혹의 시선을 받던 2011년 2월 6일, 리코는 급성 신부전과 패혈증으로 위독한 상태로 병원에 입원했다. 그는 담당 의사에게 25일 된 혈액으로 자가 수혈을 했다고 고백했다. 이 정보는 당국에 보고되어 경찰과 이탈리아 올림픽 위원회(CONI)의 조사가 시작되었다. 리코는 2주 이내에 퇴원했으나, 그의 소속팀 바칸솔레일은 그를 해고했다. 리코는 이후 혈액 도핑 혐의를 부인했지만, 스포츠를 그만두고 바리스타가 되기 위한 훈련을 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마음을 바꾸어 다시 경기에 출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2011년 10월, 리코가 CONI에 혈액 수혈을 고백했다는 보도가 나왔으나, 그의 변호사는 이 보도를 부인했다. 2011년 6월, 그는 크로아티아의 UCI 콘티넨탈 팀인 메리디아나-카멘과 계약했으나, 같은 달 이탈리아 자전거 연맹과 이탈리아 올림픽 위원회로부터 잇따라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
3. 도핑 및 징계
리카르도 리코의 경력은 여러 차례의 도핑 사건과 그에 따른 엄중한 징계로 점철되었다.
3.1. 2008 투르 드 프랑스 도핑 사건
2008년 7월 17일, 리코는 2008년 투르 드 프랑스 4단계 이후 채취된 샘플에서 CERA 양성 반응이 검출되었다. 이는 모이세스 두에냐스와 마누엘 벨트란에 이어 2008년 투르 드 프랑스에서 CERA 양성 반응을 보인 세 번째 선수였다. 그는 즉시 투르에서 제명되었고, 그의 팀 사우니에르 두발은 자발적으로 대회에서 철수했다. 사우니에르 두발은 다음 날 리코를 팀에서 해고했다.
이탈리아 올림픽 위원회(CONI)는 리코에게 2년의 출장 정지 처분을 내렸으나, 2009년 3월 17일 CAS는 그의 협력을 인정하여 징계 기간을 20개월로 단축했다. 리코는 또한 도핑 사건으로 인해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형사 기소되었다. 이탈리아 파도바의 형사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3040 EUR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2010년 6월, 툴루즈 법원에서 2년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고, 이는 2011년 11월 항소심에서도 유지되었다.
3.2. 2011년 혈액 수혈 사건 관련 징계
2011년 2월, 리코는 자가 수혈로 인한 건강 악화로 병원에 입원했으며, 담당 의사에게 이를 고백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는 소속팀 바칸솔레일에서 해고되었다. 이탈리아 경찰과 CONI의 조사가 시작되었고, 2011년 6월 이탈리아 자전거 연맹과 CONI로부터 잇따라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
2012년 4월 19일, 이탈리아 국가 반도핑 재판소(TNA)는 리코에게 12년의 출장 정지 처분을 내리며 사실상 그의 선수 경력을 종결시켰다. 리코의 항소는 2013년 3월 1일 스포츠 중재 재판소(CAS)에 의해 기각되었다.
3.3. 후속 징계 및 영구 제명
2014년 5월 1일, 리코는 리보르노의 맥도날드 주차장에서 이탈리아 경찰에 의해 EPO와 테스토스테론을 구매하려 한 혐의로 체포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리코는 나중에 "잘못된 장소에 잘못된 시간에 있었다"고 주장했으며, 그의 변호사는 그가 EPO를 구매하러 주차장에 있던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결국 2020년 12월, 이탈리아 반도핑 기관은 리카르도 리코에게 영구 제명 처분을 선고하며 그의 선수 경력을 완전히 마감시켰다.
4. 주요 성과 및 결과
리카르도 리코는 도핑 사건으로 얼룩진 경력에도 불구하고 여러 주요 대회에서 인상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4.1. 그랜드 투어 성적
그랜드 투어 | 2006 | 2007 | 2008 | 2009 | 2010 | 2011 | 2012 |
---|---|---|---|---|---|---|---|
지로 디탈리아 | - | 6 | 2 | - | - | - | - |
투르 드 프랑스 | 95 | - | DNF | - | - | - | - |
부엘타 아 에스파냐 | 경력 기간 중 참가하지 않음 | ||||||
- | 미참가 |
---|---|
DNF | 완주 실패 |
No. | 무효 처리된 결과 |
- 2007년 지로 디탈리아 종합 6위, 구간 1승
- 2008년 지로 디탈리아 종합 2위, 신인상, 구간 2승
- 2008년 투르 드 프랑스 구간 2승 (이후 도핑으로 무효 처리)
4.2. 스테이지 레이스 우승
- 2005년 세티마나 치클리스타 롬바르다 종합 우승
포인트 부문 우승
신인상 부문 우승
- 2, 3단계 우승
- 2006년 세티마나 국제 디 코피 에 바르탈리
포인트 부문 우승
- 5단계 우승
- 2007년 티레노-아드리아티코
포인트 부문 우승
- 3, 4단계 우승
- 2007년 세티마나 국제 디 코피 에 바르탈리 종합 2위
- 5단계 우승
- 2007년 투르 드 산 루이스 종합 9위
- 4단계 우승
- 2010년 오스트리아 일주 종합 우승
- 2, 4단계 우승
- 2010년 지로 델 트렌티노 종합 2위
- 2단계 우승
- 2010년 세티마나 치클리스타 롬바르다 종합 2위
포인트 부문 우승
- 4, 6단계 우승
4.3. 원데이 레이스 우승
- 2001년 이탈리아 국내 사이클로크로스 챔피언십 (주니어)
- 2003년 코파 델라 파체
- 2004년
이탈리아 국내 도로 경기 챔피언십 (U-23)
- 2006년 재팬 컵
- 2010년 코파 사바티니
5. 개인사 및 성격
리카르도 리코는 '코브라'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으며, 자신감 넘치는 성격으로도 유명했다.
5.1. 별명 및 비교
그의 산악 스테이지에서의 활약은 종종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클라이머 마르코 판타니의 재림으로 비유되곤 했다. 리코 자신도 판타니를 자신의 우상이라고 발언하며, 산악에서 핸들바 아래를 잡고 댄싱하는 등 판타니를 의식한 발언이나 행동을 많이 보였다. 이로 인해 그는 '코브라'라는 별명을 얻었다.
5.2. 개인적 성향
리코는 레이스 전후에 자신감 넘치는 발언을 하거나 다른 선수들에게 날카로운 평가를 내리는 등 강한 성격을 드러냈다. 그러나 2008년 지로 디탈리아 최종 스테이지 후 인터뷰에서는 "하고 싶은 말은 상당히 참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자전거 경기를 시작하기 전에는 가라테를 배웠으며, 갈색 띠 보유자였다.
5.3. 가족 관계
그는 파트너인 바니아 로시와 사이에 아들 알베르토를 두었다.
6. 평가 및 영향
리카르도 리코의 경력은 뛰어난 재능과 성과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도핑 사건으로 인해 심각한 비판과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6.1. 비판과 논란
리코는 2008년 투르 드 프랑스에서 CERA 도핑이 적발된 이후, 2011년 자가 수혈 사건, 그리고 2014년 EPO 및 테스토스테론 구매 혐의 등 여러 차례 도핑에 연루되었다. 이러한 반복적인 도핑은 그의 선수 경력을 영구 제명으로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스포츠맨십과 윤리적 문제에 대한 심각한 논란을 야기했다. 그의 사례는 자전거 경기계의 도핑 문제 심각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로 남아있으며, 그의 재능이 도핑으로 인해 빛을 바랬다는 비판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