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루이스 레게이로 파골라의 생애는 축구 선수로서의 뛰어난 재능과 함께 스페인 내전이라는 격동기를 겪으며 변화를 맞이한 개인적인 삶을 모두 포함한다.
1.1. 어린 시절과 배경
루이스 레게이로 파골라는 1908년 7월 1일, 스페인 바스크 지방 기푸스코아주 이룬에서 태어났다.
1.2. 사생활
그는 1943년 4월 11일 코요아칸에서 이사벨 우르키올라와 결혼했다. 부부는 여섯 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루이스(아들 루이스 레게이로 우르키올라 또한 축구 선수가 됨), 호세 마누엘, 후안 마리아, 마이테, 마리아 이사벨, 그리고 로우르데스이다. 그의 아들 루이스 레게이로 우르키올라는 1943년 멕시코에서 태어났으며, 미드필더로 활동한 창의적인 선수로 평가받았고, 1966년 잉글랜드에서 열린 1966 FIFA 월드컵에 멕시코 국가대표팀으로 출전했다. 루이스 레게이로 파골라는 축구 선수 경력을 마친 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재목 사업을 운영하며 사업가로 활동했다.
1.3. 죽음
루이스 레게이로 파골라는 1995년 12월 6일, 87세의 나이로 멕시코시티에서 사망했다.
2. 선수 경력
루이스 레게이로 파골라는 스페인과 멕시코에서 활약하며 인상적인 클럽 및 국가대표 경력을 쌓았다.
2.1. 클럽 경력
레게이로는 1924년에 바스크 지방의 레알 우니온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이 팀에서 53경기에 출전하여 37골을 기록했다. 레알 우니온 소속으로 1927년 코파 데 수 마헤스타드 엘 레이 알폰소 13세에서 우승했으며, 1926년, 1928년, 1930년, 1931년, 1932년에 걸쳐 기푸스코아주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1931년에는 당시 '마드리드 CF'로 불리던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여 1936년까지 활약했다. 이 기간 동안 92경기에 출전하여 53골을 기록하는 뛰어난 득점력을 선보였다. 1932년부터는 그의 동생 페드로 레게이로도 마드리드 CF에 합류하여 함께 뛰었다. 그는 마드리드 CF에서 1932년과 1933년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을 경험했으며, 1934년과 1936년에는 트로페오 델 헤네랄리시모에서 우승했다. 또한, 1933년과 1934년의 센트로-수르 선수권, 그리고 1935년과 1936년의 카스티야-아라곤 선수권에서도 우승하며 팀의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
2.2. 스페인 내전과 멕시코 망명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스페인의 프로 축구 리그인 라리가는 중단되었다. 이 시기에 루이스 레게이로는 바스크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으로 선발되어 유럽 투어에 참여했다. 이 바스크 국가대표팀은 내전 기간 동안 바스크 지방의 자치와 정체성을 알리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후 1938-39 시즌, 레게이로는 대부분의 바스크 팀 동료들과 함께 멕시코로 망명했다. 멕시코에서는 CD 에우스카디라는 이름으로 프리메라 푸에르사 (당시 멕시코의 아마추어 최상위 리그)에서 활동했다. 이 팀은 사실상 바스크 지방 선발팀으로, 아틀레틱 빌바오와 레알 마드리드 등 스페인 주요 클럽의 전직 선수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30세로 팀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던 루이스 레게이로는 팀의 주장으로 활약하며 10경기에 출전하여 7골을 기록했다.
CD 에우스카디에서 활동한 후, 레게이로는 1939년부터 1942년까지 아스투리아스 FC로 이적하여 프리메라 푸에르사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아스투리아스 FC는 주로 외국인 선수들로 구성된 팀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1940년과 1941년에 코파 멕시코 우승을 차지했다. 1942년부터 1944년까지는 클루브 아메리카에서 활약했으며, 1943년 멕시코 프로 축구 리그인 프리메라 디비시온의 출범을 목격했다. 클루브 아메리카에서 그는 선수 겸 감독으로 활동하며 그의 선수 경력을 마쳤다.
2.3. 국가대표팀 경력
루이스 레게이로는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총 25경기에 출전하여 16골을 기록했다. 그는 국제 무대에서 스페인을 대표하여 주요 대회에 참가했다.
192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1회전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2골을 기록했다. 스페인 대표팀은 이 대회 8강전에서 이탈리아에 패하며 탈락했지만, 레게이로는 팀 내 득점 2위(4골을 기록한 호세 마리아 이예르모)를 차지하며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1934년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1934 FIFA 월드컵에도 출전했다. 그는 조별 리그 첫 경기인 브라질전에는 교체 출전했다. 8강전에서 이탈리아를 상대로 선발 출전하여 전반 30분에 선제골을 기록했고, 경기는 1대1 무승부로 끝났다. 다음날 열린 재경기에도 출전했지만, 스페인 대표팀은 0대1로 패하며 대회를 마쳤다.
또한, 그는 스페인 내전 발발 이후 유럽과 아메리카를 순회한 바스크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도 40경기에 출전하며 팀의 주장을 역임했다.
2.4. 경력 통계
다음은 루이스 레게이로 파골라가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기록한 득점 기록이다. 스페인의 점수가 왼쪽에 표기되어 있다.
# | 날짜 | 경기장 | 상대 | 점수 | 최종결과 | 대회 |
---|---|---|---|---|---|---|
1. | 1928년 5월 30일 | 올림피스흐 스타디온,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 멕시코 | 1-0 | 7-1 | 1928년 하계 올림픽 |
2. | 3-0 | |||||
3. | 1930년 6월 22일 | 볼로냐, 이탈리아 | 이탈리아 | 1-0 | 3-2 | 친선경기 |
4. | 3-1 | |||||
5. | 1931년 12월 13일 | 더블린, 아일랜드 | 아일랜드 | 3-0 | 5-0 | 친선경기 |
6. | 5-0 | |||||
7. | 1932년 4월 24일 | 오비에도, 스페인 | 유고슬라비아 | 1-0 | 2-1 | 친선경기 |
8. | 1933년 6월 21일 | 마드리드, 스페인 | 불가리아 | 8-0 | 13-0 | 친선경기 |
9. | 12-0 | |||||
10. | 1934년 3월 11일 | 마드리드, 스페인 | 포르투갈 | 4-0 | 9-0 | 1934년 FIFA 월드컵 예선전 |
11. | 6-0 | |||||
12. | 1934년 6월 21일 | 피렌체, 이탈리아 | 이탈리아 | 1-0 | 1-1 | 1934 FIFA 월드컵 |
13. | 1935년 1월 24일 | 마드리드, 스페인 | 불가리아 | 1-0 | 2-0 | 친선경기 |
14. | 1936년 1월 19일 | 마드리드, 스페인 | 오스트리아 | 2-4 | 4-5 | 친선경기 |
15. | 4-4 | |||||
16. | 1936년 2월 23일 | 바르셀로나, 스페인 | 독일 | 1-2 | 1-2 | 친선경기 |
3. 감독 경력
루이스 레게이로 파골라는 그의 선수 경력 막바지인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멕시코의 클루브 아메리카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활동했다.
4. 수상 경력
루이스 레게이로 파골라가 선수 경력 동안 획득한 주요 클럽 타이틀은 다음과 같다.
- 레알 우니온
- 코파 데 수 마헤스타드 엘 레이 알폰소 13세: 1927
- 기푸스코아 선수권: 1926, 1928, 1930, 1931, 1932
- 마드리드 CF
- 프리메라 디비시온: 1932, 1933
- 트로페오 델 헤네랄리시모: 1934, 1936
- 센트로-수르 선수권: 1933, 1934
- 카스티야-아라곤 선수권: 1935, 1936
- 아스투리아스 FC
- 코파 멕시코: 1940, 1941
5. 유산
루이스 레게이로 파골라의 가장 직접적인 유산은 그의 아들 루이스 레게이로 우르키올라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축구 선수가 되었다는 점이다. 아들 루이스 레게이로 우르키올라는 1943년 멕시코에서 태어나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며, 1966년 잉글랜드에서 열린 1966 FIFA 월드컵에 멕시코 국가대표팀으로 출전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는 루이스 레게이로 파골라가 가족에게 남긴 축구에 대한 열정과 재능의 계승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