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경력
루시우는 브라질리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축구를 시작했으며, 브라질 국내 클럽에서 프로 경력을 쌓았다.
1.1. 출생 및 유년기
루시우는 1978년 5월 8일 브라질 브라질리아 인근의 플라날티나에서 태어났다. 그는 고향 클럽인 플라날티나에서 처음에는 포워드로 축구를 시작했다. 1997년에는 수비수로 포지션을 변경하고 구아라로 임대되어 당시 캄페오나투 브라질리엔시 챔피언 자격으로 코파 두 브라질에서 인테르나시오나우와 맞붙었다. 이 경기에서 홈 팀 구아라가 0대7로 크게 패했지만, 루시우는 인테르나시오나우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이적하게 되었다.
1.2. 브라질에서의 초기 클럽 경력
인테르나시오나우에서 루시우는 주전 센터백으로 성장했으며, 2000년에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그는 이 해에 처음으로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고, 2000년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에서 두 명의 최고 센터백 중 한 명으로 선정되어 볼라 지 프라타를 수상했다.
2. 유럽 클럽 경력
루시우는 브라질에서의 성공적인 경력을 바탕으로 유럽 무대에 진출하여 바이어 04 레버쿠젠, FC 바이에른 뮌헨, 인테르 밀란, 유벤투스 FC 등 유수의 클럽에서 활약하며 많은 우승을 경험했다.
2.1. 바이어 레버쿠젠
2001년 1월, 루시우는 독일 분데스리가 소속의 바이어 04 레버쿠젠으로 이적했다. 그는 1월 28일 VfB 슈투트가르트와의 분데스리가 경기에서 새 유니폼을 입고 첫 경기를 치렀고, 팀은 4대0으로 승리했다. 그는 레버쿠젠의 핵심 수비수로 자리매김하며 2002년 팀이 바이에른 뮌헨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다음 시즌은 레버쿠젠에게 아쉬움이 많았다. 분데스리가에서는 마지막 세 경기 중 두 경기를 패하며 5점의 선두를 내주었고,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막판 3연승으로 1점 차이로 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DFB-포칼 결승에서는 FC 샬케 04에 2대4로 패했고,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는 레알 마드리드에 패했다. 특히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는 라울의 선제골이 나온 지 5분 만에 헤딩골로 동점을 만들었지만, 지네딘 지단의 환상적인 발리슛으로 팀은 1대2로 패배했다. 이 시즌의 실망스러운 결과에도 불구하고, 루시우의 뛰어난 개인 활약은 유럽 여러 빅 클럽의 관심을 끌었다. 2003년 7월, 로마가 공식적인 영입 제안을 했으나, 이적은 성사되지 않았다.
2.2. 바이에른 뮌헨
2004년, 루시우는 6년 계약으로 바이에른 뮌헨에 입단하여 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 잡았다. 그는 2004년 8월 2일 DFB-리가포칼 결승전에서 베르더 브레멘을 상대로 바이에른 뮌헨 데뷔전을 치렀고, 팀은 3대2로 승리했다. 9월 18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경기에서 첫 골을 기록했다. 2008년 올리버 칸의 은퇴 후, 마르크 판 보멀이 주장이 되었고, 루시우는 부주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바이에른 뮌헨에서 2005년, 2006년, 2008년에 걸쳐 3번의 분데스리가 우승과 3번의 DFB-포칼 우승을 달성했다.

2006-07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전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와 맞붙었다. 2007년 2월 20일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1차전에서는 레알 마드리드에게 2대3으로 패했지만, 루시우는 윌리 사뇰의 프리킥을 받아 헤딩골로 동점을 만들었다. 3월 7일 2차전에서는 다시 사뇰의 코너킥을 헤딩골로 연결하며 팀의 승리와 8강 진출을 이끌었다. 바이에른은 8강에서 이후 우승팀이 된 AC 밀란에 패해 탈락했다. 2008-09 시즌 DFB-포칼 8강에서는 전 소속팀 바이어 04 레버쿠젠을 상대로 골을 넣었다. 당시 바이에른은 이미 3대0으로 뒤지고 있었고, 루시우의 골 이후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한 골 더 넣었지만, 슈테판 키슬링의 추가 골로 레버쿠젠이 4대2로 승리했다. 루시우는 바이에른에서 5시즌 동안 145경기에 출전하며 팀의 주축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2009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도중 루이 판 할 감독 체제에서 갑작스럽게 전력 외 통보를 받았다.
2.3. 인테르 밀란
2009년 7월 16일, 루시우는 세리에 A 챔피언인 인테르 밀란으로 이적하여 3년 계약을 맺고 등번호 6번을 받았다. 그는 9월 23일 나폴리와의 경기에서 코너킥에 이은 헤딩골로 인테르 데뷔골을 기록했다.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는 디나모 키이우를 상대로 자책골을 기록하여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다. 시즌 내내 루시우와 수비 파트너 왈테르 사무엘은 뛰어난 활약으로 찬사를 받았다. 5월 22일, 루시우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전 소속팀 바이에른 뮌헨을 2대0으로 꺾고 인테르의 역사적인 트레블을 달성하며 45년 만에 유럽 정상에 오르는 데 기여했다. 그는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2010년 FIFA FIFPro 월드 XI에 선정되었다. 2011년 9월 24일, 루시우는 볼로냐와의 세리에 A 경기에서 3대1 승리 중 세 번째 골을 넣으며 인테르 소속으로 100번째 출장 기록을 세웠다. 2012년 6월 29일, 루시우는 인테르와의 2년 계약이 상호 합의로 종료되어 팀을 떠나게 되었다고 발표되었다.
2.4. 유벤투스

2012년 7월 4일, 루시우는 세리에 A 우승팀 유벤투스와 2년 계약을 맺으며, 인테르와 유벤투스 양 팀에서 모두 뛰었던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8월 11일 나폴리와의 2012년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에서 4대2로 승리한 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하며 유벤투스 데뷔전을 치렀다. 그러나 부상과 기복 있는 경기력으로 인해 곧 주전에서 밀려났고, 조르조 키엘리니, 레오나르도 보누치, 안드레아 바르찰리의 수비 트리오에 밀려났다. 유벤투스에서 6개월 동안 그는 총 4경기(세리에 A 1경기, 챔피언스리그 2경기,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1경기) 출전에 그쳤다. 이러한 출전 시간 부족으로 인해 루시우는 2012년 12월 17일 상호 합의로 계약이 해지되며 유벤투스를 떠났다.
3. 말년 클럽 경력
유럽에서의 경력 이후, 루시우는 브라질로 돌아와 여러 클럽에서 선수 생활 후반기를 보냈으며, 인도 슈퍼리그에서도 잠시 활약했다.
3.1. 브라질 복귀
2012년 12월 18일, 유벤투스를 떠난 다음 날, 루시우는 브라질의 상파울루와 2년 계약을 맺었다. 12년간의 유럽 생활을 마치고 브라질로 돌아온 그는 다시 브라질 축구에 적응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밝혔다. 2013년 4월 7일 보타포구와의 경기에서 상파울루 이적 후 첫 골을 기록했다.
2013년 7월, 네이 프랑코 감독이 파울루 아우투오리로 교체되면서 루시우는 팀에서 제외되었다. 이는 인테르나시오나우에 0대1로 패한 브라질 리그 경기 이후 불거진 일이었다. 아우투오리 감독은 레안드루 다미앙의 결승골이 브라질 국가대표팀의 전직 주장이었던 루시우의 실수에서 비롯되었다고 비판했고, 루시우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아우투오리 감독은 루시우를 자신의 선수단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팀에서 제외된 루시우는 2013년 아우디 컵 참가를 위해 독일로 떠나는 클럽과 동행하지 않았다. 전 소속팀 바이에른 뮌헨은 루시우의 토너먼트 참가를 요청했지만, 그의 불참으로 인해 상파울루는 당초 합의된 금액보다 4.00 만 EUR 적은 수입을 얻게 되었다. 바이에른 뮌헨은 상파울루 측의 불복종 문제 설명을 이해했지만, 계약 이행을 주장했다.
주전 선수단과 별도로 훈련하던 루시우는 클럽에게 "문제"로 떠올랐다. 그는 중동과 일본 클럽의 이적 제안을 거절하고 브라질에 남기를 선호했으며, 다른 브라질 팀으로부터의 제안도 받지 못했다. 상파울루 구단은 계약 해지 비용이 높다는 이유로 그의 계약 해지를 원치 않았지만, 루시우는 뛰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고액의 연봉을 받고 있었다. 안토니오 카를로스와 호제르 카르발류 같은 수비수들이 영입되면서 루시우는 사실상 다시 뛸 기회를 잃었고, 상파울루는 이적 시장이 닫히기 전에 그를 유럽 클럽으로 이적시키려 했으나 실패했다. 2013년 12월, 거의 6개월 만에 침묵을 깬 루시우는 클럽과의 불화에 대해 "굴욕감을 느꼈다. '오, 하느님, 제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나요?'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14년 1월 1일, 루시우는 상파울루와의 계약(원래 2014년 12월까지)을 해지하고 상파울루의 라이벌인 파우메이라스와 계약했다. 전 주장인 센터백 엔히키가 떠난 후, 루시우는 골키퍼이자 현 주장인 페르난두 프라스와 함께 팀의 수비 라인에서 중요한 리더 역할을 맡게 되었다. 계약 시 루시우는 상파울루에서 받던 연봉의 3분의 1만 받기로 합의했으며, 경기력에 따른 성과급으로 추가 보상을 받았다.
2017년 12월 7일, 루시우는 브라질의 고향 지역으로 돌아와 가마에 입단하여 2018년 캄페오나투 브라질리엔시 기간 동안 팀의 주장을 맡았다. 2018년 4월 16일, 루시우는 라이벌 팀인 브라질리엔시에 합류했다.
3.2. FC 고아 (인도)
2015년 6월 7일, 루시우는 인도 슈퍼리그의 고아와 마르키 플레이어(marquee player)로 계약한 것이 확인되었다. 그는 첫 시즌에 14경기에 출전했으며, FC 고아는 리그 준우승을 차지했다. 다음 시즌은 루시우가 5경기에만 출전했고 FC 고아가 리그 최하위로 마감하면서 훨씬 덜 성공적이었다.
4. 국가대표팀 경력
루시우는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핵심 수비수로 오랫동안 활약하며 여러 국제 대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4.1. 청소년 및 초기 성인 대표팀 출전
루시우는 청소년 대표팀 시절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축구 토너먼트에서 브라질 대표로 출전했다. 2000년에는 성인 대표팀에 첫 발탁되어 A매치에 데뷔했다.
4.2. FIFA 월드컵

루시우는 세 번의 FIFA 월드컵에 출전하며 브라질의 수비 핵심으로 활약했다.
- 2002년 FIFA 월드컵**: 2002년 월드컵 8강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루시우는 실수로 마이클 오언에게 선제골을 허용했다. 그러나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은 그를 옹호했고, 이후 대회에서 더 이상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 결승전 독일과의 경기에서 루시우는 프리킥을 정면으로 맞아 힘들어했지만, 끝까지 경기를 뛰며 대회 630분 전체를 소화했다. 그는 골키퍼 마르코스, 주장 카푸, 미드필더 지우베르투 시우바와 함께 이 대회 모든 경기를 풀타임으로 뛴 4명 중 한 명이었다. 브라질은 독일을 2대0으로 꺾고 통산 5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 2006년 FIFA 월드컵**: 2006년 월드컵에서 루시우는 386분 연속 파울을 범하지 않는 FIFA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프랑스와의 8강전에서 0대1로 패하며 깨졌다. 2006년 8월, 루시우는 둥가 감독에 의해 브라질의 주장으로 임명되었다.
- 2010년 FIFA 월드컵**: 2010년 월드컵은 루시우에게 세 번째 월드컵이었다. 그는 2010년 6월 15일 북한과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 출전하여 팀의 2대1 승리를 이끌었다. 이 대회에서 그는 주안과 함께 수비 라인을 형성했다. 브라질은 코트디부아르를 꺾고 포르투갈과 0대0 무승부를 기록하며 E조 선두로 토너먼트 단계에 진출했다. 16강에서 칠레를 3대0으로 꺾고 8강에 진출했지만, 네덜란드에 1대2로 패해 탈락했다.
4.3. 컨페더레이션스컵

루시우는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도 브라질의 우승에 기여했다.
- 2005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2005년 대회에서 브라질은 우승을 차지했다.
- 2009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2009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도 루시우는 브라질의 우승에 일조했다. 2009년 6월 28일, 결승전 미국과의 경기에서 브라질의 주장인 루시우는 84분 엘라노의 코너킥을 헤딩으로 연결하며 결승골을 넣어 팀의 3대2 승리를 이끌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알려진 루시우는 이 대회를 위해 사비를 들여 신부를 동반하기도 했다.
4.4. 말년 국가대표팀 경력 및 주장
2010년 월드컵 이후 둥가 감독이 경질되고 마누 메네제스가 새 감독으로 부임한 후에도 루시우는 브라질 대표팀의 주전 센터백 자리를 유지했다. 다만, 기존의 수비 파트너였던 주안이 대표팀에서 제외되고 치아구 시우바가 새로운 파트너가 되었다.
2011년 6월 4일, 루시우는 스페인 클럽 세비야 FC와의 2005년 친선 경기와 스위스 클럽 FC 루체른과의 2006년 친선 경기를 포함하여 98번의 공식 경기와 2번의 비공식 경기를 합쳐 브라질 대표팀으로 100번째 경기를 치렀다.
루시우는 2011년 코파 아메리카 브라질 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었다. 브라질은 조별 리그를 간신히 통과했지만, 8강에서 파라과이에 승부차기 끝에 패해 탈락했다.
2011년 말, 메네제스 감독은 루시우를 대표팀에서 제외했고, 호비뉴가 새로운 주장이 되었다. 루시우는 2011년 9월을 끝으로 브라질 대표팀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5. 플레이 스타일
그의 세대에서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루시우는 키가 크고 끈기 있으며 신체적으로 강한 수비수였다. 그는 공중볼 장악에 탁월했으며, 상대 선수에 대한 강한 맨마킹과 거친 태클 플레이, 그리고 리더십으로 유명했다. 그는 또한 위치 선정, 경기 이해 능력, 그리고 1대1 상황에서 공을 되찾는 능력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훌륭한 기술적 능력과 뛰어난 볼 배급 능력을 갖췄으며, 주로 센터백으로 기용되었지만, 때로는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출전하여 자신감 있는 볼 소유 능력과 수비에서 공격으로 볼을 연결하는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주로 수비 능력과 꾸준함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그의 속도, 체력, 그리고 드리블 능력 덕분에 자주 공격적인 위치로 전진할 수 있었다. 특히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길고 폭발적인 드리블 질주는 그에게 "오 카발루"(O Cavalo오 카발루포르투갈어, "말"이라는 뜻)라는 별명을 안겨주었다. 이러한 능력들은 오른발을 이용한 먼 거리 슈팅과 세트피스에서의 강력한 슈팅 능력과 결합하여 그를 추가적인 공격 위협으로 만들었다.
6. 개인 생활
루시우는 디오네와 결혼하여 빅토리아, 주앙 비토르, 발렌티나 세 자녀를 두었다. 그는 복음주의 기독교인이며, 종종 프로 축구 생활에서 그의 신앙이 어떻게 그의 삶을 지탱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7. 은퇴
루시우는 2020년 1월 29일, 41세의 나이로 프로 축구 선수로서의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8. 수상
루시우는 선수 생활 동안 수많은 클럽 및 국제 대회 우승을 경험했으며, 여러 개인상도 수상했다.
8.1. 클럽 수상
-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2001-02
- 바이에른 뮌헨**
- 분데스리가: 2004-05, 2005-06, 2007-08
- DFB-포칼: 2004-05, 2005-06, 2007-08
- DFB-리가포칼: 2004, 2007
- 인테르 밀란**
- 세리에 A: 2009-10
- 코파 이탈리아: 2009-10, 2010-11
- UEFA 챔피언스리그: 2009-10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010
- FIFA 클럽 월드컵: 2010
- 유벤투스**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012
8.2. 국가대표팀 수상
- 브라질**
- FIFA 월드컵: 2002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2005, 2009
8.3. 개인 수상
- 볼라 지 프라타: 2000
- 키커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 2000-01, 2001-02, 2002-03, 2003-04, 2004-05, 2005-06
- ESM 올해의 팀: 2001-02, 2005-06, 2009-10
- 2009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페어 플레이상
- 2009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FIFA.com 사용자 선정 베스트 11
- FIFA FIFPro 월드 XI: 2010
- 피라타 도르(인테르나치오날레 올해의 선수): 2012
9. 경력 통계
9.1. 클럽 통계
| 클럽 | 시즌 | 리그 | 국내 컵 | 대륙 대회 | 기타 | 합계 | ||||||||
|---|---|---|---|---|---|---|---|---|---|---|---|---|---|---|
| 디비전 | 출전 | 골 | 출전 | 골 | 출전 | 골 | 출전 | 골 | 출전 | 골 | ||||
| 구아라 | 1997 | |||||||||||||
| 인테르나시오나우 | 1998 | 세리이 A | 10 | 0 | 0 | 0 | - | 10 | 0 | |||||
| 1999 | 19 | 2 | 2 | 0 | - | 21 | 2 | |||||||
| 2000 | 16 | 3 | 4 | 0 | - | 4 (토너먼트 단계 출전) | 24 | 3 | ||||||
| 합계 | 45 | 5 | 6 | 0 | 0 | 0 | 4 | 0 | 55 | 5 | ||||
| 바이어 레버쿠젠 | 2000-01 | 분데스리가 | 15 | 5 | 0 | 0 | 0 | 0 | 0 | 0 | 15 | 5 | ||
| 2001-02 | 29 | 4 | 4 | 1 | 18 | 3 | 0 | 0 | 51 | 8 | ||||
| 2002-03 | 21 | 3 | 1 | 1 | 6 | 0 | 0 | 0 | 28 | 4 | ||||
| 2003-04 | 27 | 3 | 1 | 1 | - | - | 28 | 4 | ||||||
| 합계 | 92 | 15 | 6 | 3 | 24 | 3 | 0 | 0 | 122 | 21 | ||||
| 바이어 레버쿠젠 II | 2002-03 | 레기오날리가 | 1 | 0 | 0 | 0 | - | - | 1 | 0 | ||||
| 바이에른 뮌헨 | 2004-05 | 분데스리가 | 32 | 3 | 6 | 0 | 9 | 0 | 1 (DFB-리가포칼 출전) | 0 | 48 | 3 | ||
| 2005-06 | 30 | 2 | 5 | 0 | 7 | 0 | 1 (DFB-리가포칼 출전) | 0 | 43 | 2 | ||||
| 2006-07 | 26 | 0 | 2 | 0 | 8 | 2 | 1 (DFB-리가포칼 출전) | 0 | 37 | 2 | ||||
| 2007-08 | 24 | 1 | 6 | 0 | 13 | 2 | 3 (DFB-리가포칼 출전) | 0 | 46 | 3 | ||||
| 2008-09 | 32 | 1 | 4 | 1 | 8 | 0 | - | 44 | 2 | |||||
| 합계 | 144 | 7 | 23 | 1 | 45 | 4 | 6 | 0 | 218 | 12 | ||||
| 인테르 밀란 | 2009-10 | 세리에 A | 31 | 1 | 4 | 1 | 12 | 0 | 1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출전) | 0 | 48 | 2 | ||
| 2010-11 | 31 | 1 | 4 | 0 | 8 | 0 | 4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1회, UEFA 슈퍼컵 1회, FIFA 클럽 월드컵 2회 출전) | 0 | 47 | 1 | ||||
| 2011-12 | 34 | 1 | 0 | 0 | 7 | 1 | 0 | 0 | 41 | 2 | ||||
| 합계 | 96 | 3 | 8 | 1 | 30 | 1 | 2 | 0 | 136 | 5 | ||||
| 유벤투스 | 2012-13 | 세리에 A | 1 | 0 | 0 | 0 | 2 | 0 | 1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출전) | 0 | 4 | 0 | ||
| 상파울루 | 2013 | 세리이 A | 10 | 1 | 0 | 0 | 8 | 0 | 13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11회 출전 (1골), 레코파 수다메리카나 2회 출전) | 1 | 31 | 2 | ||
| 파우메이라스 | 2014 | 세리이 A | 25 | 2 | 7 | 0 | - | 15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출전) | 0 | 47 | 2 | |||
| 고아 | 2015 | 인도 슈퍼리그 | 11 | 0 | - | - | 3 (슈퍼리그 토너먼트 단계 출전) | 0 | 14 | 0 | ||||
| 2016 | 5 | 0 | - | - | - | 5 | 0 | |||||||
| 합계 | 16 | 0 | - | - | 3 | 0 | 19 | 0 | ||||||
| 가마 | 2018 | |||||||||||||
| 브라질리엔시 | 2018 | 세리이 D | 9 | 1 | - | - | - | 9 | 1 | |||||
| 2019 | 8 | 0 | 1 | 0 | - | 13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10회 출전 (1골), 코파 베르데 3회 출전) | 1 | 22 | 1 | |||||
| 합계 | 17 | 1 | 1 | 0 | 0 | 0 | 13 | 1 | 31 | 2 | ||||
| 경력 총계 | 447 | 34 | 52 | 5 | 109 | 8 | 64 | 2 | 672 | 49 | ||||
9.2. 국가대표팀 통계
| 국가대표팀 | 연도 | 출전 | 골 |
|---|---|---|---|
| 브라질 | 2000 | 1 | 0 |
| 2001 | 12 | 0 | |
| 2002 | 11 | 0 | |
| 2003 | 9 | 0 | |
| 2004 | 2 | 0 | |
| 2005 | 13 | 2 | |
| 2006 | 10 | 0 | |
| 2007 | 8 | 1 | |
| 2008 | 8 | 0 | |
| 2009 | 14 | 1 | |
| 2010 | 8 | 0 | |
| 2011 | 9 | 0 | |
| 합계 | 105 | 4 | |
루시우의 국제 경기 득점 목록
10. 평가와 영향
루시우는 브라질 축구 역사상 가장 중요한 수비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으며, 그의 독특한 플레이 스타일과 리더십은 많은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선수 경력 중 일부 논란도 존재했다.
10.1. 종합적인 평가 및 영향
루시우는 그의 세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꼽히며, 특히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브라질의 우승에 기여한 핵심 멤버로서 역사에 남았다. 그는 뛰어난 신체 능력과 수비력을 바탕으로 공중볼 장악과 1대1 수비에서 강점을 보였으며, 동시에 공격 가담 능력까지 겸비하여 센터백의 역할을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강력한 리더십과 헌신적인 태도는 소속팀과 국가대표팀 모두에서 중요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게 했다. 인테르 밀란에서 트레블을 달성한 것은 그의 클럽 경력에서 정점을 찍은 순간으로 기록되며, 이로 인해 그는 FIFA FIFPro 월드 XI에 선정되는 등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다.
10.2. 논란
루시우의 선수 경력 중 가장 큰 논란은 2013년 상파울루 시절 발생한 감독과의 불화 사건이다. 당시 그는 파울루 아우투오리 감독의 공개적인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에 반발하여 팀에서 제외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는 주전에서 밀려나 별도로 훈련해야 했으며, 구단과 팬들 사이에서 "문제아"로 인식되기도 했다. 루시우 자신은 이 상황에 대해 "굴욕감을 느꼈다"고 표현하며 심리적인 고통을 호소했다. 이 불화는 상파울루 구단에 재정적인 손실을 입히기도 했으며, 결국 그는 계약 해지 후 라이벌 팀인 파우메이라스로 이적하는 등 선수 생활에 큰 영향을 미 미쳤다. 이 사건은 그의 강한 자존심과 리더십이 때로는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언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