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데이비드 로이드 존스턴(David Lloyd Johnston영어, 1941년 6월 28일 출생)은 2010년부터 2017년까지 캐나다 총독을 지낸 캐나다의 학자, 작가, 그리고 정치가이다. 그는 최근 캐나다 연방 선거에 대한 외국 개입 의혹을 조사하기 위한 특별 보고관으로도 임명되었으나, 2023년 6월 9일 논란 속에 사임했다.
존스턴은 온타리오주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하버드 대학교, 케임브리지 대학교, 퀸스 대학교에서 고등 교육을 받았다. 그는 캐나다의 여러 고등 교육 기관에서 교수로 재직했으며,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교 법학 학장, 맥길 대학교 총장, 워털루 대학교 총장 등 행정직을 역임했다. 학계 외에도 존스턴은 정치 및 공공 서비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정치 토론을 진행하고 연방 및 주 차원의 여러 위원회 의장을 맡았는데, 이 분야에서 가장 잘 알려진 직책은 에어버스 사건 조사 위원회 의장이었다.
총독 재임 기간 동안 그는 교육 증진, 사회 봉사, 그리고 원주민과의 화해에 중점을 두었으며, 캐나다 역사상 가장 많이 해외를 방문한 총독이 되었다. 총독직 퇴임 후에는 딜로이트의 임원 고문, 리도 홀 재단 이사장, 지도자 토론 위원회 위원장 등의 역할을 수행했으며, 외국 개입 특별 보고관으로 논란 속에 임명되었다가 사임했다. 존스턴의 경력은 공공 생활, 교육, 그리고 캐나다 제도 강화에 대한 깊은 헌신을 보여준다.
2. 초기 생애 및 교육
데이비드 로이드 존스턴은 1941년 6월 28일 캐나다 온타리오주 서드버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로이드 존스턴은 철물점을 운영했으며, 어머니는 도로시 스톤하우스였다. 그는 수세인트마리의 수 컬리지에이트 인스티튜트에 다녔는데, 그곳에서 풋볼팀의 쿼터백으로 활동했고, 미래의 NHL 선수인 필 에스포지토와 토니 에스포지토, 그리고 루 난과 함께 17세 이하 하키팀에서 뛰었다. 존스턴은 NHL에서 뛰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스카우트 지미 스키너의 방문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대부분의 드래프트된 소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더 이상의 협상을 거부했다.
1959년 존스턴은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하여 1963년에 마그나 쿰 라우데로 문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하버드 재학 중 그는 쿠니 와일랜드 코치의 지도를 받아 하버드 대표 아이스 하키 팀의 주장을 맡았고, 두 차례 올아메리카 팀에 선정되었다. 그는 에리히 시걸과 친구가 되어 조깅 파트너가 되었다. 1970년, 시걸은 베스트셀러 소설 러브 스토리를 썼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하키팀 주장 '데이비'라는 캐릭터는 존스턴을 모델로 한 것이었다. 풋볼과 하키를 하면서 존스턴은 세 차례 뇌진탕을 겪었고, 의사로부터 헬멧을 착용하거나 (당시에는 인기가 없었음) 하키를 중단하라는 조언을 받았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학위를 마친 후, 존스턴은 다시 NHL 경력을 고려하며 보스턴 브루인스 훈련 캠프에 참석하는 것을 고민했다. 그러나 그는 대신 학업을 계속하기로 결정하여 1965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홀에서 우등 법학 학사 학위를, 1966년 퀸스 대학교에서 최우등 법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 시기에 존스턴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귄 샤론 존스턴과 결혼하여 다섯 명의 딸을 두었다. 그는 오슬러, 호스킨 & 하코트 로펌에 고용되었지만, 현재까지 이어지는 1년간의 휴직을 택하여 그곳에서 일하지 않았다.
3. 학문 및 행정 경력
3.1. 대학 총장 및 학장 시절
데이비드 존스턴은 증권 규제, 회사법, 공공 정책, 정보 기술법을 전문으로 하는 광범위한 학문 경력을 쌓았다. 1966년 이후 그는 2년간 퀸스 대학교 법학부에서 조교수로 재직했으며, 이후 토론토 대학교 법학부에 합류하여 1974년까지 가르쳤고, 결국 정교수 직함을 얻었다.
1974년부터 1979년까지 존스턴은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교 법학 학장을 역임했다. 이후 그는 맥길 대학교의 제14대 총장 겸 부총장으로 승진하여 1979년부터 1994년까지 재직했다. 맥길 대학교 재직 중 그는 피에르 트뤼도와 마거릿 트뤼도와 친분을 맺었는데, 그들의 가족이 로렌시아 산맥의 인접한 별장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또한 존스턴이 맥길 대학교에 재직 중이던 1981년에 그는 대학 총장으로서 중국을 처음 방문했으며, 이후 총 12차례 중국을 방문했다. 2013년 10월 21일 난징 대학교에서 열린 혁신 포럼에서 존스턴은 난징 대학교를 자신의 "제2의 고향"이자 "집과 같은 곳"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1994년 존스턴은 맥길 대학교 총장직에서 물러났지만, 1999년 워털루 대학교의 제5대 총장으로 취임할 때까지 그곳에서 법학 교수로 남았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아내와 함께 하이델베르크, 온타리오에 집을 마련하고 인접한 말 훈련 목장인 채터박스 농장(Chatterbox Farm)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2006년 존스턴은 짐 발실리와 워털루 시장과 함께 워털루 운영 위원회(Waterloo Steering Committee)를 설립했다. 이 위원회는 워털루가 직면한 과제에 대해 기업 지도자, 학계 인사, 시민들을 교육하고, 교육 성취, 서비스 접근, 인프라 투자, 사회적 포용을 위한 목표 설정에 이들을 참여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의 강력한 지원으로 워털루 대학교는 2005년 난징 대학교와 협력하여 공자 학원과 중-캐나다 대학을 설립했으며, 또한 다양한 대학 및 기술 기관과 학술 교류를 구축했다.

데이비드 존스턴은 캐나다의 여러 주요 대학에서 학장 및 총장으로서 중요한 직책을 수행하며 학문과 행정 분야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1974년부터 1979년까지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교 법학 학장을 지냈으며, 이 기간 동안 법학 교육의 발전에 기여했다.
이후 1979년부터 1994년까지 맥길 대학교의 제14대 총장 겸 부총장을 역임하며 대학의 학문적 명성과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맥길 대학교 재임 중 그는 피에르 트뤼도 가족과 친분을 쌓았으며, 특히 1981년부터 총장으로서 중국을 12차례 방문하며 국제 교류를 활성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2013년 10월 21일 난징 대학교에서 열린 혁신 포럼에서 난징 대학교를 자신의 "제2의 고향"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중국과의 관계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1999년에는 워털루 대학교의 제5대 총장으로 취임하여 2010년까지 재직했다. 워털루 대학교 총장으로서 그는 짐 발실리와 워털루 시장과 함께 워털루 운영 위원회를 설립하여 지역 사회의 교육, 서비스, 인프라, 사회적 포용 목표 설정에 기여했다. 또한 그의 강력한 지원으로 워털루 대학교는 2005년 난징 대학교와 협력하여 공자 학원 및 중-캐나다 대학을 설립하는 등 국제 학술 교류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4. 공공 서비스 및 위원회 활동
4.1. 주요 조사 및 위원회 활동
데이비드 존스턴은 캐나다의 공공 정책 및 사회적 이슈에 대한 폭넓은 참여를 통해 학계와 행정 경력 외에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여러 차례 캐나다 지도자 토론의 사회를 맡았는데, 1979년 연방 선거와 1984년 연방 선거를 앞두고 피에르 트뤼도, 조 클라크, 에드 브로드벤트 등 주요 정치인들의 토론을 진행했다. 또한 1987년 온타리오 주 총선을 앞두고 주 지도자 토론의 사회를 맡기도 했다. 1990년대에는 캐나다의 CBC 뉴스월드와 미국의 PBS에서 방영된 시사 토론 프로그램 편집자들(The Editors)과 세계의 재조명(The World in Review)의 사회자로 활동하며 대중에게 시사 문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존스턴은 연방 및 주 정부가 위임한 여러 조사 위원회의 의장을 역임했다. 1980년대 후반 환경경제국가원탁회의를 시작으로, 고속 광대역망 접근 국가 태스크포스, 환경 정보 시스템 위원회, 온라인 학습 자문 위원회,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온타리오 주 불임 및 입양 검토 위원회, 그리고 기타 과학 및 공공 정책 패널을 이끌었다. 또한 온타리오 주 정부의 대규모 정보 및 정보 기술 프로젝트 관리 태스크포스와 온타리오 주 보건부의 "스마트 시스템" 조사 패널에도 참여했다. 그는 페어팩스 파이낸셜 홀딩스, CGI 그룹, 도미니언 텍스타일, 사우샘 주식회사, 스파 에어로스페이스, 시그램, 캐나다 트러스트 등 다양한 기업의 이사회 이사로 활동했으며, 2010년 3월 22일에는 스트랫퍼드 셰익스피어 페스티벌 이사회에 임명되었다. 그는 하버드 감독이사회 의장을 맡은 유일한 비미국 시민으로 알려져 있다.
데이비드 존스턴은 정부 주도의 주요 조사 및 위원회 활동에 깊이 관여했으며, 특히 에어버스 사건 조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07년 11월 14일, 당시 캐나다 총독이었던 미카엘 장은 스티븐 하퍼 총리의 조언에 따라 존스턴을 독립 자문위원으로 임명했다. 그의 임무는 에어버스 사건에 대한 공개 조사, 즉 올리펀트 위원회(Oliphant Commission)의 조사 범위를 내각에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임명은 독립 시민 단체인 민주주의 감시단으로부터 이해 상충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존스턴이 이전에 브라이언 멀로니가 총리였을 때 직접 그에게 보고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존스턴은 2008년 1월 11일 자신의 보고서를 제출하며 추가 조사를 위한 17가지 질문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는 에어버스 계약 체결 자체에 대한 조사를 포함하지 않았는데, 이 부분은 이미 캐나다 왕립 기마 경찰대에서 조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야당 의원들은 존스턴이 총리의 입장에서 행동했다는 비난을 제기했다. 이후 멀로니가 칼하인츠 슈라이버로부터 30.00 만 USD를 현금으로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올리펀트 위원회는 권한의 범위가 좁아 이 지불과 에어버스 간의 연관성을 조사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맥마스터 대학교 총장이었던 피터 조지, 글로브 앤드 메일 편집위원회, 그리고 매클린스의 앤드루 코인과 같은 이들은 존스턴의 청렴성과 독립성을 옹호하며 그를 변호했다. 존스턴의 특별 자문위원 역할은 2008년 1월 11일 방영된 에어 파스 라이브에서 로저 애벗에 의해 풍자되기도 했다.
이러한 기업, 정부, 자선, 학술 분야에서의 공로로 존스턴은 1988년 캐나다 훈장 장교(Officer)로 임명되었고, 1997년에는 동반자(Companion) 등급으로 승격되었다. 그는 또한 비당파적인 인물로 명성을 얻었지만, 퀘벡 분리주의에 반대하는 책인 퀘벡이 떠난다면: 분리의 진정한 대가(If Quebec Goes: The Real Cost of Separation)를 저술하며 캐나다 연방주의에 대한 명확한 지지를 표명했다. 그는 다수의 법률 서적, 다른 서적의 장, 잡지 기사를 출판했으며 법률 제정에도 기여했다. 특히 1995년 퀘벡 독립 국민투표 당시에는 몬트리올 반대 위원회(Montreal No Committee)의 공동 의장을 맡아 퀘벡의 분리 독립에 반대하는 운동을 이끌었다.
5. 캐나다 총독 시절
데이비드 로이드 존스턴은 2010년부터 2017년까지 캐나다의 제28대 총독으로 재임하며 다양한 활동과 이니셔티브를 수행하고 중요한 사회적, 정치적 사건들에 관여했다.
5.1. 임명 및 취임
2010년 7월 8일, 캐나다 총리실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스티븐 하퍼 총리의 추천을 승인하여 존스턴이 미카엘 장의 후임으로 여왕의 대표가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총리실이 소집한 특별 자문 위원회는 존스턴을 총독직에 추천했다. 이 위원회는 총독 비서실장 셰일라-마리 쿡이 이끌었으며, 캐나다 여왕 비서실장이자 캐나다 상원 흑장수위이자 의회의 최고 의전관인 케빈 맥리드, 맥길 대학교 예술학부 학장 크리스토퍼 맨프레디, 캘거리 대학교 정치학자 라이너 크노프, 캐나다 예수회 연구소의 자크 모네 신부, 그리고 노바스코샤 부총독의 개인 비서이자 역사가인 크리스토퍼 맥크리리가 참여했다. 위원회는 학계 인사, 현직 및 은퇴한 모든 정치 성향의 지도자들(주 총리, 현직 및 전직 정당 지도자, 전직 총리 등)을 포함하여 200명 이상의 인사들과 광범위한 전국적인 협의를 거쳐 총독직 후보자 명단을 작성했다. 이 최종 후보 명단에는 존 드 샤스텔랭과 존 프레이저와 같은 저명한 캐나다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존스턴의 임명은 널리 칭찬받았으며, 전 토론토 대학교 총장 로버트 프리처드, 칼럼니스트 앤드루 코인, 그리고 야당 대표 마이클 이그나티에프와 같은 인사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퀘벡 언론은 주로 존스턴의 맥길 대학교와의 연관성과 1995년 퀘벡 국민투표 당시 그의 중요한 역할에 초점을 맞췄다. 퀘벡 주권 위원회(Conseil de la souveraineté)의 제랄드 라로즈 회장은 존스턴을 "퀘벡 독립의 적"이라고 선언했고, 생장바티스트 협회의 마리오 볼리외 회장은 존스턴의 지명을 "당파적"이며 총독 지명자 자신을 "연방주의 극단주의자"라고 불렀다. 그러나 칼럼니스트 리처드 마르티노는 캐나다 총독이라면 당연히 캐나다의 통합을 옹호할 것이므로 이러한 발언이 "가짜 스캔들"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존스턴의 낮은 대중적 인지도는 그의 전임자들에 비해 총독실에 대한 비판을 줄일 것으로 예상되었다.
2010년 9월 3일, 여왕은 왕실 수결과 캐나다 대인장에 따라 존스턴을 차기 캐나다 대표로 지명하는 임명장을 발행했다. 사흘 후인 9월 6일, 존스턴은 밸모럴 성에서 이틀간 머무는 동안 여왕을 알현했다. 이때 그는 여왕으로부터 캐나다 군공훈장과 경찰공로훈장의 사령관(Commander)으로 서훈되었다. 존스턴은 언론에 자신의 취임식 주제가 "봉사 요청"이 될 것이라고 발표하며, "이 봉사라는 주제는 여왕 폐하의 2010년 방문 주제인 '캐나다의 봉사 기록 존중 - 과거, 현재, 미래'를 반영하며, 총독이 지역사회와 국가에 대한 봉사라는 캐나다의 가치를 어떻게 구현하는지를 보여줍니다"라고 설명했다.


5.2. 주요 활동 및 이니셔티브
존스턴의 취임식은 2010년 10월 1일 오타와의 국회의사당 언덕에서 거행되었다. 그의 요청에 따라 취임식에는 존스턴과 그의 아내가 캐나다 연방 창립 이후 매년 한 명씩 총 143명의 캐나다인들, 특히 캐나다 국군 장병들과 젊은이들을 만나는 행사가 포함되었다. 또한 그들은 캐나다의 10개 주와 3개 준주에서 온 13명의 개인으로부터 26송이의 빨간색과 흰색 장미를 받았다. 국회의사당 언덕에서 리도 홀로 돌아오는 마차에서, 총독 부부는 캐나다 무명 용사의 묘에 꽃다발을 바치기 위해 잠시 멈췄다.
존스턴의 첫 총독 업무 중 하나는 2010년 10월 22일, 캐나다 국방참모총장의 지시에 따라 캐나다 국군 장교의 임명장을 취소하는 드문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었다. 이는 최근 유죄 판결을 받은 살인자이자 강간범인 러셀 윌리엄스의 대령 계급을 박탈하고 "근무 태만"으로 그를 해임하는 조치였다. 11월 4일, 총독은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한 캐나다 군대와 그들이 훈련시키던 아프가니스탄 국군을 만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처음 방문했다. 존스턴의 재임 기간 동안 캠프 알라모와 캠프 블랙 호스에 주둔한 캐나다 군인들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등 아프가니스탄을 여러 차례 방문했으며, 해외 다른 지역에서도 군 관계자들과 만남을 가졌다.
존스턴은 2011년 2월과 3월에 쿠웨이트(50주년 독립 기념일 참석 및 에미르 사바 알아흐마드 알자베르 알사바 즉위 5주년 기념 행사 참여)와 카타르를 방문하며 첫 번째 국빈 방문을 수행했다. 같은 해 4월에는 윌리엄 웨일스 공작과 캐서린 미들턴의 결혼식과 이어진 버킹엄 궁전 리셉션에 참석했다. 6월 말에는 캐나다 방문 기간 동안 이 부부를 여러 행사에서 주최했다.
2011년 8월 14일, 노바스코샤주 핼리팩스 지역 자치구에서 열린 캐나다 변호사 협회 연례 회의에서 존스턴이 발표한 연설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캐나다 전역의 불필요하고 고의적인 법적 지연과 2007-2008년 세계 금융 위기의 전개 과정에서 비양심적인 미국 변호사들의 역할을 비판하며, 법조계가 대중의 신뢰를 잃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발언은 총독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었지만, 존스턴의 동료들과 글로브 앤드 메일 편집위원회는 총독의 발언이 놀랍지 않으면서도 환영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존스턴은 교육에 대한 그의 관심에 따라, 취임 초기부터 재임 기간 내내 캐나다 전역의 여러 대학을 방문하여 회의에 참석하고 강연을 하며 학위 수여식에서 연설했다. 그는 또한 해외 국빈 및 공식 방문 중에도 이러한 주제를 이어갔으며, 유아 교육 시설 방문, 대학 및 단과대학 강연, 경제 및 사회 개발 단체 및 교육부 장관과의 만남 등을 일정에 포함했다. 때로는 캐나다 대학 총장 및 학장들과 동행하기도 했다.


교육 및 연구 증진 노력의 일환으로, 존스턴은 2012년부터 매년 킬람상 심포지엄을 리도 홀에서 주최했다. 자선 활동과 관련하여, 총독은 2013년 말 리도 홀 재단(Rideau Hall Foundation)을 설립했다. 이 자선 단체는 총독이 캐나다인들을 연결하고 존중하며, 캐나다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특정 파트너의 도움을 받아 우수성을 위한 잠재력을 높이는 것을 돕기 위한 것이었다. 존스턴은 이 재단을 통해 캐나다인들에게 시간과 돈을 기부하도록 장려하는 "나의 기부 순간(My Giving Moment)"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는 조지 스트롬불로풀로스의 도움을 받아 그의 쇼 조지 스트롬불로풀로 투나잇에서 총독을 인터뷰했다. 존스턴은 재임 기간이 끝날 무렵, 후임자가 취임한 후에도 리도 홀 재단의 이사장직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6년 말, 총독은 뇌진탕 관련 회의를 주최하며 스포츠에서의 머리 부상을 "공중 보건 문제"라고 선언했다. 그는 또한 하키에서의 싸움에 대한 NHL의 입장을 비판했다. 이는 2012년 초 캐나다 방송 협회와의 인터뷰에서 하키를 더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단단한 플라스틱 장비를 재설계하고, 머리 타격과 하이 스틱을 없애고, 싸움을 없애야 한다고 말한 것에 이어진 것이었다. 그는 나중에 한 인터뷰에서 싸움이 "경기를 잠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NHL에 싸움과 뇌진탕에 대한 정상 회담을 개최할 것을 촉구했다. 존스턴은 NHL 커미셔너 게리 베트먼과 부커미셔너들과 함께 이틀간의 회의에 대해 논의했지만, 의료 전문가들과 하키 관련 인사들이 참여하면서 관련 인원 수가 너무 많아 관리하기 어려워졌다. 대신 존스턴은 캐나다 아마추어 하키 협회와 부모들의 인식 제고에 초점을 맞췄다.
2013년 3월 19일, 존스턴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교황 취임식을 위한 캐나다 공식 대표단을 이끌었다. 2013년 11월 1일, 그는 리도 홀에서 열린 에든버러 공작상 왕실 갈라 50주년 기념 행사에서 에드워드 왕자, 웨식스 백작을 주최했다.
2015년 3월, 존스턴은 2017년 9월까지 총독직을 유지하라는 초대를 수락했다. 이는 2015년 캐나다 연방 선거가 소수 정부를 초래하거나 불확실한 결과를 낳을 경우 경험 많은 총독이 자리에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 바람직하다고 여겨졌다. 또한 캐나다 건국 150주년 기념 행사를 위해 존스턴이 재임하는 것이 가치 있다고 생각되었다. 재임 기간이 끝날 무렵, 존스턴은 조르주 바니에 이후 가장 오래 재임한 총독이 되었다.

5.3. 주요 사건 및 사회적 이슈
2012년 2월 6일 즉위 기념일, 존스턴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즉위 60주년을 기념하는 다이아몬드 주빌리 주간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에 참여했다. 그는 그 후 일 년 내내 전국 각지에서 관련 기념 행사, 파티, 기념비 제막식에 참여했으며, 브라질 방문과 트리니다드 토바고 국빈 방문 사이에 바베이도스를 실무 방문하는 동안에도 참여했다. 존스턴은 나중에 찰스 왕세자와 카밀라, 콘월 공작부인이 다이아몬드 희년 기념 캐나다 방문 기간 동안 그들을 주최했으며, 6월에는 런던을 방문하여 희년 기념으로 열린 여러 행사에 참여했다. 그는 7월 25일부터 30일 사이에 다시 런던을 방문하여 2012년 하계 올림픽에 참석했다.
2012년 1월, 총독은 오타와에서 열린 왕실-퍼스트 네이션스 정상 회담을 개회하고 리도 홀에서 퍼스트 네이션스 청년 지도자들과의 회의를 주최했다. 그해 말, 퍼스트 네이션스의 아이들 노 모어 운동이 한창일 때, 아타와피스캣 퍼스트 네이션의 테레사 스펜스 추장이 연방 정부와 의회의 특정 퍼스트 네이션스 관련 조치에 반대하는 시위를 "단식 투쟁"으로 시작하고 하퍼 총독과 총독이 함께 만나기 전까지 시위를 계속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맹세하면서 전국적인 관심이 존스턴에게 쏠렸다. 퍼스트 네이션스 총회도 12월 16일 총독에게 스펜스의 요구 사항을 논의하기 위한 회의를 요청하는 공개 서한을 보냈다. 총리, 다른 내각 장관, 퍼스트 네이션스 추장, 퍼스트 네이션스 총회 대표 간의 회의는 2013년 1월 11일에 열렸지만, 존스턴은 입헌군주제 군주의 대표가 정부 정책 논의에 공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로 참석을 거부했다. 이로 인해 스펜스와 다른 추장들은 총리 회의를 보이콧했지만, 그녀는 같은 날 저녁 존스턴이 리도 홀에서 주최한 퍼스트 네이션스 추장들을 위한 회의와 행사에는 참석했다. 스펜스는 그 모임의 내용에 만족하지 못했다고 선언하고 시위를 계속하겠다고 맹세했으며, 그녀와 총독은 서신으로 직접 소통했다. 스펜스는 2013년 1월 24일 시위를 종료했지만, 퍼스트 네이션스 추장, 내각 장관, 총독이 함께 만나는 요구는 스펜스와 여왕 폐하의 충실한 야당의 두 지도자가 서명한 선언문에 남아 있었다.
1812년 전쟁 개시 200주년 기념 행사에도 총독이 참석한 다양한 공식 행사가 있었다. 왕실 방문 기간 동안 존스턴과 찰스 왕세자는 5월 22일 토론토의 포트 요크에서 열린 군사 행사에 참석했으며, 존스턴은 6월 16일 나이아가라온더레이크 지역에서도 퀸스턴 하이츠, 로라 시코드 생가, 온타리오주 조지 요새에서 "1,000일간의 기념 행사"를 시작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에 참여했다. 1812년 전쟁 국가 인정 기념식도 2012년 10월 25일 리도 홀에서 거행되었는데, 이때 총독은 1812년 전쟁과 역사적 연관이 있는 퍼스트 네이션스 및 메티스 공동체의 지도자들에게 특별 메달과 깃발을 수여했다.
총독은 진실과 화해 위원회의 명예 증인으로 활동했다. 2015년 12월 위원회의 작업이 완료되었을 때, 존스턴은 리도 홀에서 폐막식을 주재했으며, 이는 존스턴의 전임 총독이 주최한 개막식과 함께 위원회의 활동을 마무리하는 의미를 가졌다. 그는 기숙 학교 제도에 대한 교육 확대를 촉구하며 "지금은 국가적 성찰과 자기 반성의 순간입니다... 관용, 존중, 포용에 대한 우리의 약속의 깊이를 생각하고, 더 잘할 수 있는지 자문해야 합니다. 지금은 과거와 현재의 그 사람들, 그 아이들, 그 어머니와 아버지, 그 가족과 그 노인들을 생각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또한 물어봐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고 말했다.
칼럼니스트 존 롭슨은 존스턴이 "원주민 대의에 대한 명백한 공감"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총독은 2017년 6월 17일 캐나다 방송 협회의 라디오 프로그램 더 하우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민에 기반을 둔 국가입니다. 우리의 소위 '원주민'들도 1만, 1만2천, 1만4천 년 전의 이민자들이었습니다"라고 말하며 베링 육교를 통한 인간의 이주를 언급한 결과 소셜 미디어에서 비판을 받았다. 존스턴은 자신이 실언했음을 설명하고 원주민 문제에 대한 리더십을 기리는 리도 홀 행사에서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총독으로서 존스턴은 중국 주석 시진핑을 만나는 두 차례의 중국 국빈 방문을 수행했다. 첫 번째 방문은 2013년 10월에 이루어졌는데, 시진핑이 주석이 된 직후였으며, 내각 장관들의 방문과 겹쳤고, 관계를 원활하게 하고 정부의 경제 의제를 홍보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 방문 동안 존스턴은 리커창 총리를 포함한 여러 중국 관리들과 만나 캐나다와 중국 간의 교육 및 문화적 유대를 심화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두 번째 방문은 2017년 7월에 이루어졌는데, 탐색적 무역 회담에 앞선 친선 사절의 일환이었다. 그의 두 번째 중국 방문은 중국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가 구금 중 사망한 시기와 겹쳐 언론인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존스턴은 2017년 방문 후 CTV 뉴스에 류샤오보와 인권 문제를 시진핑과 논의했다고 밝혔다.
총독으로서 존스턴은 리도 홀 또는 라 시타델에서 600개 이상의 행사를 주최했으며, 총사령관으로서 330개의 군사 행사에 참석했다. 캐나다 내에서는 130개 이상의 지역사회를 방문했으며, 캐나다의 국제 관계의 일환으로 50회 이상의 국제 방문을 이끌어 캐나다 역사상 가장 많이 여행한 총독이 되었다. 반대로, 그는 약 60명의 외국 고위 인사들을 캐나다 국빈 및 실무 방문으로 주최했다. 총독은 1,400회 이상의 연설을 했고 수만 개의 훈장, 메달, 특별 기념품을 수여했으며, 150만 명의 캐나다인들을 리도 홀과 시타델로 맞이했다.
5.4. 총독으로서의 유산
2017년 9월 27일, 퇴임 주에 존스턴은 캐나다 항공우주 박물관에서 캐나다 국군 100명 명예 위병대의 군사 고별식과 군사 퍼레이드를 주재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총독으로 지난 7년간 봉사한 것은 제가 소중히 여겨온 책임입니다. 제가 그토록 사랑하는 이 나라에 봉사할 기회를 주셔서 깊이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존스턴이 임기를 마치기 며칠 전, 쥐스탱 트뤼도는 그를 가족 친구이자 "힘과 지성, 연민을 지닌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캐나다 정부는 존스턴이 설립한 자선 단체인 리도 홀 재단에 300.00 만 CAD를 기부하고, 향후 10년간 최대 700.00 만 CAD의 매칭 펀드를 제공할 예정이다. 존스턴은 재단의 목표가 "캐나다 정신과 우리의 공유된 열망을 발전시키기 위해 아이디어, 사람, 자원을 모으고 조정하며 동원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U 스포츠는 2018년에 U 스포츠 유니버시티 컵을 데이비드 존스턴 유니버시티 컵으로 개명했다.
6. 총독 퇴임 후 경력
6.1. 외국 정부 개입 조사 특별 보고관
데이비드 존스턴은 총독직을 마친 후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이어갔다. 총독직을 마친 직후인 2017년 10월, 그는 컨설팅 회사 딜로이트에 임원 고문으로 합류했다. 또한 그는 2012년에 자신이 설립한 자선 단체인 리도 홀 재단의 자원봉사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존스턴은 2018년부터 피에르 엘리엇 트뤼도 재단의 회원이기도 하다. 2018년 8월 4일, 존스턴은 로열 캐나다 연대의 연대 대령으로 임명되어 소장(예비역) J. 이반 펜턴의 뒤를 이었다.
2018년 10월, 존스턴은 쥐스탱 트뤼도가 이끄는 캐나다 내각에 의해 지도자 토론 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으로 지명되었고, 이후 그 직책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2023년 3월 15일 트뤼도 총리가 존스턴을 2019년 캐나다 연방 선거와 2021년 캐나다 연방 선거에 대한 중국 정부 개입 의혹을 조사할 특별 보고관으로 지명하자, 그는 이 직책에서 사임했다.
데이비드 존스턴의 특별 보고관 임명에 대해 정치인과 언론인들은 다양한 의견을 표명했다. 일부는 존스턴과 트뤼도 가문의 관계, 피에르 엘리엇 트뤼도 재단 회원 자격, 그리고 총독 시절 중국 국빈 방문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며 그의 임명에 반대했다. 반면, 다른 이들은 그가 법학자이자 법학 학장으로서의 경험과 의회 불안정 시기에도 총독으로서 공정한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며 스티븐 하퍼로부터 신뢰를 받았다는 점을 들어 그의 임명을 지지했다. 존스턴은 자신이 임명된 것에 대해 "영광스럽다"고 말했으며, 국가 민주주의를 훼손하려는 시도를 "심각한 문제"라고 묘사했다.
2023년 5월에 발표된 보고서에서 존스턴은 너무 많은 기밀 정보가 관련된 사안에서 공개 조사는 거의 쓸모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고, 이 의견으로 인해 그는 강한 비판을 받았다. 5월 29일, 존스턴의 사임을 요구하는 의회 동의안이 174대 150으로 통과된 후, 그는 2023년 6월 9일 사임서를 제출했다.
7. 이념 및 사회적 관점
데이비드 존스턴은 캐나다 연방주의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표명했으며, 퀘벡 분리주의에 반대하는 책 퀘벡이 떠난다면: 분리의 진정한 대가(If Quebec Goes: The Real Cost of Separation)를 저술했다. 그는 또한 1995년 퀘벡 독립 국민투표 당시 몬트리올 반대 위원회(Montreal No Committee)의 공동 의장을 맡기도 했다.
그의 사회적 관점은 교육 및 사회 정의에 대한 깊은 관심을 반영한다. 그는 캐나다 전역의 대학을 방문하고 국제 교육 협력을 증진하며 킬람상 심포지엄을 주최하는 등 교육 증진에 중점을 두었다. 또한 워털루 운영 위원회를 통해 사회적 포용을 강조했다. 공중 보건 문제, 특히 스포츠에서의 뇌진탕에 대한 그의 비판적인 입장은 사회적 책임감을 보여준다. 캐나다 진실과 화해 위원회의 명예 증인으로서 기숙 학교 제도에 대한 교육 확대를 촉구하고 원주민 문제에 대한 국가적 성찰을 강조한 것은 그의 사회 정의에 대한 헌신을 보여준다. 비록 원주민 관련 발언으로 논란이 있었지만, 그는 즉시 사과하며 자신의 의도를 명확히 했다.
8. 개인 생활
데이비드 로이드 존스턴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귄 샤론 존스턴과 결혼하여 다섯 명의 딸을 두었다. 그는 온타리오주 하이델베르크에 집을 마련하고 인접한 말 훈련 목장인 채터박스 농장(Chatterbox Farm)을 운영했다. 어린 시절에는 풋볼팀의 쿼터백으로 활동하고 하키팀의 주장을 맡아 올아메리카 팀에 두 번 선정되는 등 뛰어난 운동 실력을 보였다. 그는 한때 NHL 선수 경력을 목표로 했으나, 여러 차례 뇌진탕을 겪은 후 의사로부터 헬멧을 착용하거나 하키를 중단하라는 조언을 받았다. 또한 그는 작가 에리히 시걸과 조깅 파트너였으며, 시걸은 자신의 베스트셀러 소설 러브 스토리에 등장하는 하키팀 주장 '데이비' 캐릭터를 존스턴을 모델로 삼아 만들었다.
9. 수상 및 영예
데이비드 로이드 존스턴은 그의 공공 서비스, 학문적 기여, 그리고 군 복무에 대한 다양한 수상과 영예를 받았다.
서훈
- 1988년 7월 11일 - 1997년 10월 23일: 캐나다 훈장 장교(OC)
- 1997년 10월 23일 - 2010년 10월 1일: 캐나다 훈장 동반자(CC)
- 2010년 10월 1일 - 2013년 5월 8일: 캐나다 훈장 총장 및 수석 동반자(CC)
- 2013년 5월 8일 - 2017년 10월 2일: 캐나다 훈장 총장 및 수석, 특별 동반자(CC)
- 2017년 10월 2일 - 현재: 캐나다 훈장 특별 동반자(CC)
- 2010년 9월 5일 - 2010년 10월 1일: 캐나다 군공훈장 사령관(CMM)
- 2010년 10월 1일 - 2013년 5월 8일: 군공훈장 총장 및 사령관(CMM)
- 2013년 5월 8일 - 2017년 10월 2일: 군공훈장 총장 및 특별 사령관(CMM)
- 2017년 10월 2일 - 현재: 군공훈장 특별 사령관(CMM)
- 2010년 9월 5일 - 2010년 10월 1일: 경찰공로훈장 사령관(COM)
- 2010년 10월 1일 - 2017년 10월 2일: 경찰공로훈장 총장 및 사령관(COM)
- 2017년 10월 2일 - 현재: 경찰공로훈장 사령관(COM)
- 2010년 10월 1일 - 2017년 10월 2일: 성 요한 병원 기사단 정의 기사, 수석 및 캐나다 최고 책임자(KStJ)
- 2017년 10월 2일 - 현재: 성 요한 병원 기사단 정의 기사(KStJ)
- 2018년 3월 26일 - 현재: 캐나다 여왕 추밀원 회원 (이로 인해 "디 라이트 아너러블"이라는 경칭과 평생 "PC"라는 칭호를 받음)
메달
- 1992년: 캐나다 연방 125주년 기념 메달
- 2002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골든 주빌리 메달
- 2010년 10월 1일: 캐나다군 훈장 (CD)
- 2012년 2월 6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다이아몬드 주빌리 메달
- 2018년: 빌럼-알렉산더르 국왕 즉위 메달 2013
수상
- 2010년 11월 8일: 연방 예술 센터 사이먼스 메달
- 2013년 5월 28일: 풀브라이트 캐나다 상
- 1988년: 하버드 스포츠 명예의 전당 회원
- 2013년: 하버드 대학교 챕터 파이 베타 카파 명예 회원
명예 군사 임명
- 2010년 10월 1일 - 2017년 10월 2일: 총독 기마 근위대 대령
- 2010년 10월 1일 - 2017년 10월 2일: 총독 보병 근위대 대령
- 2010년 10월 1일 - 2017년 10월 2일: 캐나다 척탄병 근위대 대령
- 2018년 8월 4일 - 현재: 로열 캐나다 연대 연대 대령
명예 학위
- 1980년: 어퍼 캐나다 법학회, 법학 명예 박사 (LLD)
- 1985년 6월: 토론토 대학교, 법학 명예 박사 (LLD)
- 1986년: 비숍스 대학교, 법학 명예 박사 (LLD)
- 1986년 9월 30일: 뉴펀들랜드 메모리얼 대학교, 법학 명예 박사 (LLD)
- 1987년: 몬트리올 교구 신학 대학, 신학 명예 박사 (DD)
- 1989년: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 법학 명예 박사 (LLD)
- 1991년: 퀸스 대학교, 법학 명예 박사 (LLD)
- 1991년 6월 8일: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교, 법학 명예 박사 (LLD)
- 1992년: 몬트리올 대학교, 법학 명예 박사 (LLD)
- 1993년: 알고마 대학교, 법학 명예 박사 (LLD)
- 1994년 8월: 빅토리아 대학교, 법학 명예 박사 (LLD)
- 2000년 11월 9일: 맥길 대학교, 법학 명예 박사 (LLD)
- 2008년 11월: 맥마스터 대학교, 법학 명예 박사 (LLD)
- 2010년 10월 23일: 워털루 대학교, 법학 명예 박사 (LLD)
- 2011년 6월 12일: 오타와 대학교, 법학 명예 박사 (LLD)
- 2011년 9월 1일: 마운트 앨리슨 대학교, 법학 명예 박사 (LLD)
- 2011년 10월 18일: 매니토바 대학교, 법학 명예 박사 (LLD)
- 2012년 4월 11일: 난징 대학교, 박사 학위
- 2012년 6월 18일: 앨곤퀸 칼리지, 학위 (응용학 학사)
- 2012년 11월 13일: 캘거리 대학교, 법학 명예 박사 (LLD)
- 2013년 5월 9일: 휴런 대학교 칼리지, 신학 명예 박사 (DD)
- 2014년 2월 24일: 국립 법률 대학교, 법학 명예 박사 (LLD)
- 2014년 5월 12일: 토론토 대학교의 위클리프 칼리지, 성서학 명예 박사 (DSL)
- 2014년 5월 15일: 킹스 칼리지 대학교, 민법 명예 박사 (DCL)
- 2015년 1월 29일: 밴쿠버 아일랜드 대학교, 법학 명예 박사 (LLD)
- 2015년 5월 14일: 캐나다 왕립 군사 대학, 법학 명예 박사 (LLD)
- 2016년 11월 3일: 테크니온 - 이스라엘 공과대학교, 철학 박사 (PhD)
- 2017년 6월 6일: 앨버타 대학교, 법학 명예 박사 (LLD)
- 2017년 6월 22일: 요크 대학교, 법학 명예 박사 (LLD)
- 2018년 6월 1일: 라이어슨 대학교, 법학 명예 박사 (LLD)
- 2019년 봄: 마운트 로열 대학교, 법학 명예 박사 (LL.D)
- 2021년 6월 23일: 온타리오 공과대학교, 법학 명예 박사 (LL.D)
기타 영예
- 2000년: 레니슨 대학교 칼리지, 명예 선임 연구원
명예 기념
- 데이비드 존스턴 국제 경험상
- 데이비드 존스턴 유니버시티 컵
- 데이비드 존스턴 연구 및 기술 공원, 워털루 대학교, 워털루
문장
총독 취임 직전, 존스턴은 개인 문장을 수여받았다.
- 문장 채택 연도: 2010년 9월 24일
- 문장 상단 문양 (Crest): 은색 촛불이 타오르고 있으며, 금색 스탠드 안에 네 권의 닫힌 책이 세로로 놓여 있다. 이 중 두 권은 붉은색, 두 권은 금색이며, 이 모든 것은 금색으로 제본된 닫힌 책 위에 놓여 있고 책의 옆면은 은색이다.
- 방패 (Escutcheon): 은색 바탕에 검은색 격자무늬가 있으며, 붉은색 상단 부분(chief)에는 두 개의 열린 금색 책 사이에 왕관이 놓여 있다.
- 지지 동물 (Supporters): 두 마리의 붉은색 유니콘으로, 뿔과 갈기, 꼬리 술, 발굽은 금색이며, 각 어깨에는 금색 아스트롤라베가 새겨져 있다.
- 받침대 (Compartment): 금색 잔디 언덕 위에 검은색 날개를 가진 두 개의 붉은색 발이 놓여 있으며, 하단에는 검은색 물결무늬 막대가 있고 그 위에 금색으로 0과 1이 새겨져 있다.
- 좌우명 (Motto): Contemplare Meliora (라틴어: 더 나은 것을 구상하다)
- 상징성:
- 얽힌 격자무늬: 그의 삶에서 가족과 다른 관계의 중심적인 역할, 통신 네트워크에 대한 그의 관심, 지식의 상호 연결성에 대한 그의 믿음을 상징한다. 또한 그가 질서와 조직에 부여하는 중요성을 나타낸다.
- 왕관: 총독의 전통적인 상징이다.
- 책: 지식과 교육, 그리고 법을 의미한다.
- 문장 상단 문양의 다섯 권의 책: 존스턴의 다섯 딸을 상징하며, 촛불은 깨달음과 지식의 전달을 의미한다.
- 방패의 전반적인 디자인과 색상: 다양한 스코틀랜드 존스턴 가문의 문장에서 영감을 받았다.
- 유니콘: 꿈, 상상력, 순수함, 충실함을 상징하며, 그 색상은 캐나다를 나타낸다.
- 아스트롤라베: 지적 탐구와 자크 카르티에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캐나다 탐험가들의 풍부한 배경을 나타낸다.
- 날개 달린 발: 전통적으로 헤르메스에게 부여되는 상징이다. 통신을 암시하는 것 외에도 (특히 이진 코드의 0과 1로도 언급됨), 건강과 스포츠를 연상시킨다.
- 이진 코드: 현대 사회의 정보 흐름을 반영한다.
- 좌우명 의미: 조지 버나드 쇼의 백 투 메투셀라에 나오는 구절("당신은 사물을 보고 '왜?'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꿈꾸며 '왜 안 돼?'라고 말한다.")을 암시한다.
10. 주요 저작
데이비드 로이드 존스턴은 법률 및 관련 분야에서 다수의 중요한 저작을 남겼다.
- 기업 금융 및 증권법 사례 및 자료(Cases and Materials on Corporate Finance and Securities Law) (1967년)
- 컴퓨터와 법률(Computers and Law) (1968년)
- 회사법 사례 및 자료(Cases and Materials on Company Law) (1969년)
- 증권법 사례 및 자료(Cases and Materials on Securities Law) (1971년)
- 사업 협회(Business Associations) (1979년)
- 캐나다 기업과 증권 거래소(Canadian Companies and the Stock Exchange) (1980년)
- 캐나다 증권 규제(Canadian Securities Regulation) (1982년, 2003년, 2006년)
- 파트너십과 캐나다 사업 법인(Partnerships and Canadian Business Corporations), 1권 및 2권 (1983년, 1989년, 1992년)
- 퀘벡이 떠난다면: 분리의 진정한 대가(If Quebec Goes ... The Real Cost of Separation) (1995년)
- 캐나다 온라인화: 정보 고속도로 이해하기(Getting Canada On-line: Understanding the Information Highway) (1995년)
- 사이버 법률(Cyberlaw) (1997년)
- 캐나다 통신법(Communications in Law in Canada) (2000년)
- 핼스버리의 캐나다 법률(Halsbury's Law of Canada) (200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