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arly life
히틀리는 1981년 1월 21일, 그의 아버지 머레이 히틀리가 프로 하키 선수로 활동하던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머레이가 하키에서 은퇴한 후, 가족은 앨버타주 캘거리에 정착했다.
2. Playing career
대니얼 히틀리는 아마추어 시절부터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며 유망주로 주목받았고, 이후 NHL에서 최고의 득점원 중 한 명으로 성장하며 성공적인 프로 경력을 쌓았다. 그러나 부상과 논란 속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해야 했다.
2.1. Amateur career
히틀리는 앨버타 마이너 하키 리그(AMHL)의 캘거리 버펄로스 소속으로 유소년 하키 경력을 시작했다. 1997-98 시즌에는 36경기에서 91포인트를 기록하며 해리 앨런 기념 트로피를 수상하며 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이어서 그는 1998년 에어 캐나다 컵에서 버펄로스를 동메달로 이끌었으며, 대회 최다 득점과 최우수 선수(MVP)를 모두 석권했다.
미국에서 컬리지 하키를 플레이할 계획이었던 히틀리는 NCAA 출전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1998-99 시즌에 앨버타 주니어 하키 리그(AJHL) 소속의 캘거리 캐넉스에 합류하여 주니어 A 리그에서 활동했다. 그는 60경기에서 70골과 126포인트를 기록하며 AJHL 올해의 선수와 캐나다 주니어 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다음 시즌부터 그는 서부 대학 하키 협회(WCHA) 소속 위스콘신 배저스에서 2년간 활약했다. 신입생 시즌에는 WCHA 퍼스트 올스타팀과 NCAA 웨스트 세컨드 올-아메리칸팀에 이름을 올렸고, WCHA 올해의 신인상도 수상했다. 비시즌에는 2000년 NHL 드래프트에서 골텐더 릭 디피에트로에 이어 전체 2순위로 애틀랜타 스래셔스에 지명되었다. 2학년 시즌에는 2001년 WCHA 세컨드 올스타팀과 NCAA 웨스트 퍼스트 올-아메리칸팀에 선정되었으며, 이후 대학 남은 2년의 출전 자격을 포기하고 스래셔스에서 프로로 전향했다.
2.2. Professional career
히틀리의 프로 아이스하키 경력은 NHL의 여러 팀과 유럽 리그에서 이어졌으며, 특히 오타와 세너터스 시절에 전성기를 누렸다.
2.2.1. Atlanta Thrashers (2001-2005)
히틀리는 2001-02 NHL 시즌에 스래셔스 소속으로 NHL 데뷔를 했다. 그는 전체 신인 선수 중 포인트(67점)와 어시스트(41개)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팀 내 득점은 일리야 코발축에 이어 26골로 2위를 기록했다. 히틀리는 NHL 올해의 신인에게 수여하는 칼더 메모리얼 트로피를 수상했으며, 당시 코발축 또한 이 상의 후보였다.
2002-03 NHL 시즌에는 77경기에서 41골과 89포인트를 기록하며 NHL 스타로 발돋움했고, 리그 전체 득점 9위로 시즌을 마쳤다.
그러나 2003년 9월 발생한 자동차 사고로 히틀리가 심각한 부상을 입고 동료 댄 스나이더가 사망하면서, 2003-04 NHL 시즌은 2004년 1월이 되어서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는 결국 31경기 출전에 그쳤고, 25포인트만을 기록하며 스래셔스가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는 어려운 시즌을 보냈다.
2004-05 NHL 록아웃 기간 동안 히틀리는 스위스 팀 SC 베른에서 뛰었다. 그는 16경기에서 24포인트를 기록했으나, 퍽이 왼쪽 눈을 맞아 안와 골절 부상을 입었다. 이 부상으로 인해 그의 왼쪽 눈동자는 영구적으로 확장된 상태가 되었다. 그는 시즌을 스래셔스 동료 코발축과 함께 RSL의 아크 바르스 카잔에서 마쳤으며, 11경기에서 4포인트를 기록했다.
2.2.2. Ottawa Senators (2005-2009)
록아웃이 끝나기 전, 히틀리는 비극적인 자동차 사고의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틀랜타를 떠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며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특히 스나이더의 아버지 그레이엄이 언급했듯이, 스래셔스 구단이 재판 과정에서 히틀리를 매우 지지해 주었기 때문에 애틀랜타 팬들에게는 이 요청이 큰 불만을 샀다. 2005년 8월 23일, 스래셔스는 그를 마리안 호사와 베테랑 수비수 그레그 드 브리스를 받는 대가로 오타와 세너터스로 트레이드시켰다. 트레이드 당시 제한적 자유계약선수였던 히틀리는 곧바로 세너터스와 3년, 1350.00 만 USD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2005년 10월 5일, 토론토 메이플리프스를 상대로 한 세너터스 데뷔전에서 히틀리는 제이슨 스페차와 브랜던 보첸스키와 함께 출전했다. 하지만 세너터스가 경기 막판에 뒤처지자 보첸스키를 대신해 투입된 대니얼 알프레드손이 동점골을 넣었고, 2005-06 NHL 시즌에 처음 도입된 슛아웃에서 히틀리는 알프레드손에 이어 NHL 역사상 두 번째로 슛아웃 득점에 성공했다. 그들의 스틱은 현재 하키 명예의 전당에 전시되어 있다. 그달 말인 10월 29일, 히틀리는 토론토 메이플리프스를 상대로 한 8대0 승리 경기에서 4연속 골을 기록하며 한 경기 개인 최다 골 기록을 세웠다.
히틀리는 새로운 팀에서 화려하게 시작하며 2005-06 시즌 첫 22경기에서 포인트를 기록, 마리안 호사의 종전 13경기 연속 기록을 넘어섰다. 이는 새로운 팀에 합류한 선수 중 1988-89 NHL 시즌 로스앤젤레스 킹스에 합류한 웨인 그레츠키의 23경기 연속 기록에 이어 두 번째로 긴 기록이었다.

세너터스 선수로서 애틀랜타로 돌아온 첫 경기에서 히틀리는 관중들의 거센 야유를 받았다. 이는 스래셔스 팬들이 히틀리의 이전 트레이드 요청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비록 히틀리가 득점을 기록했지만, 세너터스는 그의 전 팀인 스래셔스에게 8대3으로 패배했다.
히틀리는 2005-06 시즌을 50골 103포인트로 마감하며 리그 득점 4위에 올랐다. 그의 첫 50골 시즌은 세너터스 선수로는 처음으로 이 기록을 달성한 것이었으며, 마리안 호사가 2002-03 시즌에 세운 45골을 넘어선 프랜차이즈 시즌 최다 골 기록이었다. 또한 히틀리의 103포인트는 팀 동료 대니얼 알프레드손과 함께 팀 내 최다 포인트를 기록했으며, 1998-99 NHL 시즌에 알렉세이 야신이 세운 프랜차이즈 시즌 최다 포인트 기록(94포인트)을 경신했다.
공격진의 부활에 힘입어 오타와는 동부 컨퍼런스에서 최고 성적을, 리그 전체에서 2위를 기록하며 시즌을 마쳤다. 플레이오프에 대한 높은 기대를 받았으나, 버펄로 세이버스에 의해 2라운드에서 탈락했다. 히틀리는 10경기에서 12포인트를 기록했다. 시즌이 끝난 후 히틀리는 알프레드손과 함께 세컨드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2006-07 NHL 시즌은 히틀리가 초반에 부진했으나, 이후 50골(리그 2위, 뱅상 르카발리에의 52골에 이어)과 105포인트(리그 4위)를 기록하며 다시 한번 두각을 나타냈다. 두 시즌 연속으로 50골 고지를 밟은 그는 1999-2000 NHL 시즌의 파벨 부레 이후 처음으로 이 기록을 달성한 NHL 선수가 되었다. 히틀리의 105포인트는 그가 알프레드손과 공유했던 종전 프랜차이즈 기록을 갱신했다. 그의 활약으로 그는 퍼스트 올스타 팀에 이름을 올렸다.
히틀리와 세너터스는 또 한 번 강력한 정규 시즌을 보낸 후 2007년 스탠리컵 결승까지 진출했으나, 애너하임 덕스에게 5경기 만에 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알프레드손-스페차-히틀리 라인은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며 플레이오프 포인트에서 모두 22포인트를 기록하며 NHL 전체 1위를 차지했다.
스탠리컵 결승 진출 직후인 2007-08 NHL 시즌을 앞두고 히틀리는 세너터스와 6년, 4500.00 만 USD 규모의 연장 계약을 체결했다. 마리안 호사 트레이드 이후 오타와에 합류한 히틀리는 디트로이트 레드윙스 포워드 댈러스 드레이크와의 충돌로 2008년 1월 12일 어깨 탈골 부상을 입기 전까지 208경기 연속 출전 기록을 세웠고, 이 부상으로 11경기 결장했다. 그는 2007-08 시즌을 71경기에서 41골 41어시스트 82포인트로 마감했다. 오타와는 시즌 내내 스타 선수들의 부상으로 고통받았다. 동부 컨퍼런스 7번 시드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오타와는 공교롭게도 전년도와 동일한 피츠버그 펭귄스와의 1라운드에서 맞붙었지만, 히틀리와 세너터스는 스탠리컵 2차 도전에 실패하며 4경기 만에 스윕당했다. 히틀리는 단 1포인트만을 기록했다.
2008년 10월 3일, 히틀리는 대니얼 알프레드손과 수비수 크리스 필립스와 함께 얼터네이트 캡틴으로 지명되었다. 그러나 2008-09 NHL 시즌에는 히틀리와 주전 라인의 득점력이 감소했으며, 세너터스는 동부 컨퍼런스 11위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2.2.3. San Jose Sharks (2009-2011)
2009년 9월 12일, 히틀리는 2010년 NHL 드래프트 5라운드 지명권과 함께 샌호세 샤크스로 트레이드되었다. 대가로 샤크스에서는 밀란 미할렉, 조너선 치추, 그리고 2010년 2라운드 지명권이 오타와로 이동했다. 히틀리는 그해 800.00 만 USD를 받았다. 샤크스의 시즌 4번째 경기이자 콜럼버스 블루재키츠를 상대로 한 홈 개막전에서, 히틀리는 샌호세 샤크스 팬들 앞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했으며, 3피리어드에 페널티 샷 골을 넣으며 시즌 첫 4경기에서 4골 5어시스트(9포인트)를 기록했다. 11월 20일, 히틀리는 조 손턴의 패스를 받아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를 상대로 6대3 승리 경기에서 세 골을 기록하며 두 달 만에 두 번째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샤크스는 2010년 컨퍼런스 결승에서 히틀리가 페널티 박스에 있던 상황에서 시카고 블랙호크스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스윕당했다. 그러나 헤드 코치 토드 맥렐런은 히틀리가 플레이오프 내내 사타구니 근육이 찢어진 상태로 뛰고 있었다고 밝혔다.
2010년 12월 2일, 오타와로 첫 복귀한 히틀리는 관중들의 거센 야유를 받았다. 비록 그는 오타와 시와 팬들이 자신의 이적 요청과는 관련이 없다고 말했지만, 세너터스 팬들은 용서할 마음이 없었다. 경기에 참석한 일부 팬들은 자신들의 15번 히틀리 유니폼의 특정 글자를 가려 이름표가 "H-A-T-E"로 보이게 들고 있었다. 경기 막판에는 10명의 팬들이 경기장으로 내려와 동시에 히틀리 유니폼을 얼음 위에 던지는 조직적인 시위를 벌였다. 다른 한 팬은 "야신마저도 널 바보라고 생각한다"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있었는데, 이는 2001년 논란 속에 팀을 떠났던 전 세너터스 선수 알렉세이 야신을 언급한 것이었다. 샤크스는 4대0으로 승리했고, 히틀리는 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2010-11 NHL 시즌에 히틀리는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낮은 정규 시즌 포인트(80경기에서 26골 64포인트)를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 히틀리가 시즌 동안, 특히 플레이오프 동안 여러 부상에 시달렸음이 밝혀졌다.
2.2.4. Minnesota Wild (2011-2014)
2011년 7월 3일, 히틀리는 마틴 하블라트를 받는 대가로 미네소타 와일드로 트레이드되었다. 그는 그보다 10일 전인 6월 24일에 샤크스에서 와일드로 트레이드되었던 전 오타와 팀 동료 데빈 세토구치와 다시 합류했다. 53포인트를 기록하며 견고한 시즌을 보냈지만, 와일드는 시즌 초반의 좋은 출발에도 불구하고 결국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2012년 2월 9일, 히틀리는 밴쿠버 캐넉스를 상대로 한 경기에서 13초 만에 득점하며 와일드 역사상 가장 빠른 골을 기록했다.
록아웃으로 단축된 2012-13 NHL 시즌에 히틀리는 미네소타에서 36경기 출전, 11골 10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그러나 4월 샌호세 샤크스와의 경기에서 전 팀 동료 마크-에두아르 블라시크와의 충돌로 왼쪽 어깨가 탈골되는 부상을 입어 수술이 필요했고, 이로 인해 시즌을 조기에 마감해야 했다.
2013-14 NHL 시즌에는 히틀리의 생산성이 급격히 감소하여, 첫 55경기에서 9골 19포인트만을 기록했다. 자유계약선수 신분이 임박하면서 그의 NHL 경력이 끝날 수도 있고, 하키 경력을 이어가기 위해 유럽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는 추측이 돌기 시작했다. 비록 그는 10경기 동안 7포인트를 기록하는 등 전성기 기량의 일부를 잠시 보여주기도 했지만, 시즌 74경기 시점에서는 27포인트만을 기록했다. 2014년 3월 29일, 히틀리는 몇 경기 동안 4라인으로 강등된 후, 그의 경력에서 처음으로 건강상의 이유로 경기에서 제외되었다.
2.2.5. Anaheim Ducks and Florida Panthers (2014-2015)
2014년 7월 9일, 히틀리는 애너하임 덕스와 1년, 100.00 만 USD 규모의 자유계약선수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4경기에서 득점 없이 건강상의 이유로 경기에서 제외되었다. 2014년 12월 11일, 히틀리는 덕스의 AHL 산하 팀인 노퍽 어드미럴스로 배정되었다. 2014년 12월 29일, 그는 웨이버로 공시되었다. 2015년 2월 28일, 히틀리는 토마시 플라이슈만과 2016년 3라운드 드래프트 지명권을 받는 대가로 플로리다 팬서스로 트레이드되었다. 덕스 소속으로는 6경기에서 득점이 없었고, 노퍽에서는 25경기에서 7포인트를 기록했다. 히틀리는 팬서스 소속으로는 단 한 경기도 뛰지 않았고, 팀의 팜팀인 샌안토니오 램페이지로 합류했다. 그는 노퍽에서 25경기 2골 5어시스트 7포인트를 기록했고, 샌안토니오에서 18경기 6골 7어시스트 13포인트를 기록했다.
2.2.6. Europe (2015-2016)
히틀리는 2015년 9월 17일, DEL 소속 토마스 사보 아이스 타이거스와 계약했다. 그는 아이스 타이거스와 함께 DEL 플레이오프 준결승에 진출했으나, 그리즐리스 볼프스부르크에게 패하며 아쉽게 탈락했다. 히틀리는 2015-16 DEL 시즌에 총 59경기를 뛰며 19골 18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이 중 19골은 아이스 타이거스의 시즌 마지막 골이었다.
2.3. All-Star Games
히틀리는 NHL 올스타 게임에 다섯 차례 선정되었고, 이 중 네 차례(가장 최근은 2009년 NHL 올스타전) 출전했다. 그의 첫 올스타전 출전은 2003년 NHL 올스타전이었는데, 그는 이 경기에서 4골을 기록하며 웨인 그레츠키 등 네 명의 다른 선수와 함께 올스타전 한 경기 최다 골 기록과 동률을 이루었다. 이 경기는 슛아웃까지 갔는데, 히틀리는 동부 컨퍼런스의 유일한 골을 넣었지만 팀은 6대5로 패배했다. 슛아웃 골은 그의 정규 시간 4골에는 포함되지 않아 기록은 유지되었다. 히틀리는 또한 1어시스트를 추가하여 경기 최다인 5포인트를 기록했으며, 올스타전 MVP로 선정되었다. 히틀리의 두 번째 NHL 시즌 만에 보여준 인상적인 활약에 대해 동부 컨퍼런스 팀 동료 제레미 로닉은 "22살? 22살에는 그런 움직임을 보이면 안 되는 겁니다. 세상에."라고 말했다.
히틀리의 다음 올스타전 출전은 2007년 NHL 올스타전이었다. 그는 전 SC 베른 팀 동료인 대니얼 브리에르와 마리안 호사와 한 라인에서 뛰며 서부 컨퍼런스와의 12대9 패배 경기에서 1골 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히틀리는 2008년 NHL 올스타전에도 선정되었으나, 디트로이트 레드윙스와의 경기에서 입은 어깨 부상으로 인해 출전을 포기해야 했다. 히틀리는 2009년에 네 번째 올스타전에 선정되었고, 슛아웃에서 동부 컨퍼런스가 12대11로 승리한 경기에서 1골을 기록했다.
3. International play
히틀리는 위스콘신 배저스에서 2년간 활동하는 동안 두 번의 세계 주니어 아이스하키 선수권 대회에 참가했다. 첫 대회인 2000년 세계 주니어 아이스하키 선수권 대회에서는 미국과의 슛아웃에서 4대3으로 승리하며 동메달을 획득했고, 히틀리도 득점을 기록했다。다음 해인 2001년 세계 주니어 아이스하키 선수권 대회에서 히틀리는 3골 5포인트를 기록하며 캐나다가 두 대회 연속 동메달을 획득하는 데 기여했다.
히틀리는 애틀랜타 스래셔스에서의 신인 시즌을 마친 후 2002년 세계 아이스하키 선수권 대회에서 캐나다 대표팀으로 성인 국제 대회에 데뷔했다. 그는 4포인트를 기록했지만, 캐나다는 8강전에서 슬로바키아에 패했다. 다음 해인 2003년 세계 아이스하키 선수권 대회에서는 7골 10포인트를 기록하며 캐나다 대표팀의 득점을 이끌었고,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스래셔스와 함께 또다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히틀리는 2004년 세계 아이스하키 선수권 대회에 참가했다。히틀리는 11포인트를 기록하며 대회 전체 득점 1위에 올랐고, 두 대회 연속 MVP에 선정되었다. 캐나다는 결승에서 스웨덴을 5대3으로 꺾고 두 대회 연속 금메달을 획득했다. 히틀리는 3대1로 뒤진 상황에서 역전극을 시작하는 3피리어드에 대회 8번째 골을 기록했다. 몇 달 후, 히틀리는 2004년 아이스하키 월드컵에 참가하여 2어시스트를 기록했고, 캐나다는 결승에서 핀란드를 꺾고 두 번째 아이스하키 월드컵 챔피언십을 차지했다.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2005년 세계 아이스하키 선수권 대회는 히틀리의 네 번째 연속 세계 선수권 대회였다. 그는 9경기에서 7포인트를 기록했으나, 캐나다는 결승전에서 체코에 셧아웃 패배를 당하며 금메달을 놓쳤다.
2005년 12월 21일, 히틀리는 2006년 동계 올림픽 캐나다 대표팀에 발탁되며 첫 올림픽 출전을 하게 되었다. 히틀리는 6경기에서 3포인트를 기록했으나, 2002년 금메달을 방어하던 캐나다는 8강전에서 러시아에 의해 탈락했다.
2008년 세계 아이스하키 선수권 대회에 3년 만에 복귀한 히틀리는 오타와 세너터스가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 후 팀 동료 제이슨 스페차와 함께 로스터에 추가되었다. 그는 마르셀 디옹을 넘어 팀 캐나다 역대 세계 선수권 최다 골 기록을 경신했고, 이어서 스티브 아이저먼을 넘어 역대 세계 선수권 최다 포인트 기록을 경신했다. 히틀리는 9경기에서 무려 12골 8어시스트를 기록했지만, 캐나다는 금메달 결정전 연장전에서 러시아에 패했다. 히틀리는 MVP, 베스트 포워드, 올스타 팀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2009년 여름, 히틀리는 캘거리에서 열린 캐나다 대표팀 올림픽 선발 캠프에 초청되었으나, 팬들의 야유를 받았다. 2009년 12월 30일, 히틀리는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 캐나다 대표팀에 최종 선발되었다. 히틀리는 2010년 올림픽 대회 첫 경기에서 2골을 기록하며 캐나다가 8대0으로 승리하는 데 기여했다. 2010년 2월 28일, 캐나다 대표팀은 미국을 꺾고 캐나다의 8번째 올림픽 남자 하키 금메달을 획득했다.
4. Post-playing career
히틀리는 2023-24 NHL 시즌을 앞두고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에 프로 스카우트로 고용되었다.
5. Personal life
대니얼 히틀리의 개인적인 삶에는 그의 이중 국적 배경뿐만 아니라, 그의 경력에 큰 영향을 미친 비극적인 자동차 사고와 법적 문제, 그리고 전 에이전트와의 법적 분쟁과 같은 주요 사건들이 포함되어 있다.
5.1. Citizenship
5.2. Car crash and legal issues
2003년 9월 29일, 히틀리는 애틀랜타의 주거 지역 도로에서 페라리 360 모데나를 운전하던 중 통제력을 잃고 사고를 당해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차량은 벽에 부딪혀 반으로 쪼개졌고, 히틀리와 그의 동승자이자 애틀랜타 스래셔스 팀 동료인 댄 스나이더가 튕겨져 나갔다. 히틀리는 턱 골절, 뇌진탕, 폐 및 신장 타박상, 그리고 오른쪽 무릎 인대 세 개 파열 부상을 입었다. 스나이더는 두개골 골절로 위독한 상태였으며, 2003년 10월 5일 패혈증으로 병원에서 사망했다. 히틀리는 2급 과실치사, 조건에 맞지 않는 과속 운전, 차선 유지 불이행, 과속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그는 사고 전에 술을 마셨음을 인정했지만, 그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법적 제한 이하였다. 그는 3년의 보호관찰을 선고받았고, 판사는 히틀리가 운전하는 모든 차량은 6기통을 초과하거나 시속 113 km/h (70 mph)를 넘어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히틀리는 1급 과실치사 혐의를 기각하는 유죄 협상의 일환으로 재판에 회부되는 것을 피했다. 스래셔스와 애틀랜타 지역사회는 대부분 히틀리를 지지했으며, 스나이더의 가족은 판사와 검사에게 그를 투옥해도 얻을 것이 없다고 말했다.
5.3. Lawsuit against agent
2012년 8월, 히틀리가 오랜 에이전트이자 사업 고문인 스테이시 맥칼파인, 그의 부모인 제럴드와 유제니아, 그리고 여러 회사를 상대로 1100.00 만 USD 규모의 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밝혀졌다. 앨버타주 퀸스 벤치 법원 캘거리지부에 제기된 이 소송은 피고인들이 히틀리를 캐나다와 미국 전역의 여러 부동산 사업에 유인하여 막대한 수익을 약속했지만, 수익은 전혀 실현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스테이시 맥칼파인이 히틀리의 은행 계좌에서 400.00 만 USD 이상을 무단으로 인출했다고 주장했다. 법원 문서에 명시된 피고인 회사들은 프리덴셜 스위트(Presidential Suites) Inc., 워터프론트 디벨롭먼트(Waterfront Development) Inc., 맥칼파인 스포츠 매니지먼트(McAlpine Sports Management) Inc., 그리고 NSEM 매니지먼트(NSEM Management) Inc.이다.
한 달 후, 히틀리의 전 세너터스 팀 동료 크리스 필립스 또한 스테이시 맥칼파인을 상대로 나쁜 부동산 거래로 인한 손실액 750.00 만 USD를 회수하기 위한 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밝혀졌다. 오타와 온타리오 법원에 제기된 이 소송은 필립스가 맥칼파인에 의해 오도되었다고 느꼈고, 투자한 돈을 회수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오랜 법정 공방 끝에, 히틀리는 2017년 7월 21일 앨버타주 캘거리의 한 판사로부터 650.00 만 USD를 지급받는 판결을 받았다. 맥칼파인은 이후 2017년 10월 18일 매니토바주 위니펙 당국에 의해 사기, 자금 세탁, 절도 혐의로 체포 및 기소되었다. 맥칼파인은 2018년 3월 5일 54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사기, 절도 및 범죄 수익 세탁 혐의는 이틀 후 기각되었다.
5.4. Endorsements
히틀리는 2003년 EA 스포츠의 NHL 비디오 게임 시리즈인 NHL 2004의 표지 모델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히틀리의 자동차 사고가 발생한 후, EA는 표지 사진을 조 새킥으로 교체했지만, 이미 많은 게임 복사본이 그의 사진이 있는 채로 출하되었다.
6. Public image and controversies
대니얼 히틀리의 선수 경력과 관련된 주요 논란과 대중 및 팬들의 반응은 그의 공공 이미지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자동차 사고와 오타와 트레이드 요청은 그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팬들 사이에서 복잡한 평가를 낳았다.
6.1. Ottawa trade request controversy
2009년 6월 9일, TSN은 히틀리가 2007년에 체결한 6년 연장 계약이 1년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트레이드를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히틀리는 새로운 헤드 코치 코리 클루스턴 체제에서 자신의 역할에 불만을 품고 있었는데, 출전 시간 감소와 파워 플레이 1군에서 2군으로의 강등이 부당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의 요청이 공개된 후, 당시 세너터스의 단장 브라이언 머레이는 "충격받고 실망했다"고 밝혔고, 클루스턴 감독 또한 히틀리의 발언에 상처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이 소식은 세너터스 팬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리그 전반의 전문가들 역시 당혹감과 분노를 표출했다. 캐나다 전역의 스포츠 작가들은 히틀리의 행동을 "망나니", "한심하다",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애틀랜타 스래셔스 단장 돈 와델은 히틀리가 댄 스나이더의 사망 사고 후 애틀랜타를 떠나고 싶어 했던 것은 이해했지만, 오타와에서의 트레이드 요청에 대해서는 "이번 일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그는 "그는 (애틀랜타에서) 나가고 싶어 했고, 분명히 그가 승인한 팀으로 가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들은 (2007년 스탠리컵) 결승에도 진출했다. 무엇보다 그는 오타와에서 많은 지지를 받았다"며 히틀리의 행동이 "좋은 팀 정신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댄 스나이더의 아버지 그레이엄 스나이더 역시 히틀리의 결정에 혼란스러워하며, 클루스턴 감독의 결정에 대해 트레이드를 요구하기보다는 "막후에서 대화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반면, 히틀리 가족의 가까운 친구인 톰 몰로이는 오타와 시티즌에 기고한 편지에서 트레이드 요청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비판하며, 히틀리의 어머니가 매우 상심했다고 전했다. 그는 "아무도 이 선수가 매년 여름 한 달을 포기하고 캐나다 대표팀에서 뛴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다"고 덧붙이며, 히틀리의 결정에 대해 세너터스 구단을 비난하기까지 했다.
히틀리의 높은 계약 규모(다가오는 시즌에 약 760.00 만 USD 예정)와 부분적인 노-트레이드 조항은 트레이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2009년 6월 30일, 에드먼턴 오일러스로 히틀리를 보내는 트레이드 합의가 있었으나, 히틀리가 노-트레이드 조항을 포기하기를 거부하면서 트레이드는 무산되었고, 오타와와 에드먼턴 팬들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이와 관련하여 NHL 부커미셔너 빌 데일리는 세너터스가 히틀리의 계약 조항(7월 1일에 지급될 400.00 만 USD 보너스)을 근거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고 시사하기도 했다. 세너터스 구단주 유진 멜닉은 결국 "트레이드를 요구하는 선수에게 엄청난 로스터 보너스를 지급해서는 안 된다"며 히틀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며, 이 소송은 2013년 가을에 비공개 조건으로 합의되었다.
오타와 단장 머레이는 결국 히틀리의 트레이드 요구를 수용하기로 결정했으나, 히틀리는 팀의 훈련 캠프가 시작된 2009년 9월 12일에도 여전히 세너터스 소속이었다. 그는 훈련 캠프에 보고할 수밖에 없었으며, 팀 동료들과의 분위기는 "어색하고", "긴장되며", "유지할 수 없는" 상태로 묘사되었다. 팀 주장 알프레드손은 히틀리가 불만스러운 태도로 오타와에 나타나는 경우 언론의 큰 관심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히틀리 자신은 카메라와 언론을 피해 몰래 스코샤뱅크 플레이스로 돌아왔다. 머레이 단장은 "나는 (히틀리)의 눈을 보았을 때, 그가 문을 나서는 순간 그를 트레이드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며 트레이드의 불가피성을 언급했다.
2010년 12월 2일, 샌호세 샤크스 소속으로 오타와로 첫 복귀한 히틀리는 경기 내내 관중들의 거센 야유를 받았다. 일부 팬들은 자신의 15번 히틀리 유니폼의 특정 글자를 가려 "H-A-T-E"(증오)로 보이게 만들거나, 경기 막판에 유니폼을 얼음 위에 던지는 시위를 벌였다. 또한 "야신마저도 널 바보라고 생각한다"라는 팻말을 든 팬도 있었다.
6.2. Overall public perception
대니얼 히틀리의 공공 이미지는 그의 선수 경력 중 발생한 주요 사건들, 특히 2003년의 비극적인 자동차 사고와 2009년 오타와 세너터스에서의 트레이드 요청 논란에 의해 크게 형성되었다. 자동차 사고는 그의 명성에 지울 수 없는 얼룩을 남겼고, 그가 아무리 재능 있는 선수였더라도 이 사건은 그의 개인적인 책임과 도덕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비록 법적 처벌이 가볍게 끝났고, 동료의 가족이 그를 지지했지만, 대중의 시선은 복잡했다.
오타와에서의 트레이드 요청은 팬들과 언론으로부터 "이기적이고", "배은망덕하다"는 강한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한때 팀의 상징이자 팬들의 사랑을 받던 선수였지만, 이 요청은 그의 이미지를 급격히 실추시켰다. 이로 인해 그는 '이기적인 선수'라는 오명을 얻게 되었고, 이는 그의 이후 경력과 대중적 평가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사건들은 히틀리가 단순히 뛰어난 실력뿐만 아니라, 그의 행동이 팀과 팬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책임감 측면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도록 만들었다. 그의 경력은 빛나는 성과와 함께 개인적인 비극, 그리고 논란의 그림자가 교차하는 복합적인 이미지로 기억된다.
7. Awards, achievements, and records
히틀리는 그의 아이스하키 경력 동안 수많은 개인 및 팀 상을 수상했으며, 여러 리그와 국제 대회에서 인상적인 기록들을 세웠다.
- NHL
- 칼더 메모리얼 트로피: 2002
- 올-루키 팀: 2002
- 올스타전 선정: 2003, 2007, 2008, 2009
- 올스타전 MVP: 2003
- 올스타전 한 경기 최다 골 기록 (4골, 공동): 2003
- 올스타 스킬스 컴페티션 슈팅 정확도 기록 (4/4, 공동): 2004
- 최초의 NHL 경기 결승 슛아웃 골 기록
- 세컨드 올스타 팀: 2006
- 퍼스트 올스타 팀: 2007
- EA 스포츠 NHL 비디오 게임 표지 선수: 2004
- 팀 기록
- 애틀랜타 스래셔스 신인 최다 포인트 프랜차이즈 기록: 67점
- 오타와 세너터스 시즌 최다 골 프랜차이즈 기록: 50골
- 오타와 세너터스 시즌 최다 포인트 프랜차이즈 기록: 105점
- 오타와 세너터스 최장 포인트 기록 행진 프랜차이즈 기록: 22경기
- 오타와 세너터스 플레이오프 최다 포인트 프랜차이즈 기록 (22점, 제이슨 스페차 및 대니얼 알프레드손과 공동)
- 오타와 세너터스 프랜차이즈 역사상 첫 시즌 50골 달성 선수
- 오타와 세너터스 프랜차이즈 역사상 첫 2시즌 연속 50골 달성 선수
- 국제 대회
- 세계 선수권 올스타 팀: 2004, 2008
- 세계 선수권 베스트 포워드: 2004, 2008
- 세계 선수권 MVP: 2004, 2008
- 캐나다 대표팀 역대 최다 골 기록: 42골 (2010년 동계 올림픽 기준)
- 캐나다 대표팀 역대 최다 포인트 기록: 69점 (2010년 동계 올림픽 기준)
- 아마추어 및 대학
- 에어 캐나다 컵 동메달: 1997, 1998
- 해리 앨런 기념 트로피 (득점왕): 1998
- 에어 캐나다 컵 MVP: 1998
- AJHL 올해의 선수: 1999
- CJHL 올해의 선수: 1999
- 대학
- 올-WCHA 신인 팀: 2000
- 올-WCHA 퍼스트 팀: 2000
- WCHA 올해의 신인: 2000
- AHCA 웨스트 세컨드 팀 올-아메리칸: 2000
- 올-WCHA 세컨드 팀: 2001
- AHCA 웨스트 퍼스트 팀 올-아메리칸: 2001
8. Career statistics
8.1. Regular season and playoffs
정규 시즌 | 플레이오프 | |||||||||||
---|---|---|---|---|---|---|---|---|---|---|---|---|
시즌 | 팀 | 리그 | 출전 | 골 | 어시스트 | 포인트 | 페널티 | 출전 | 골 | 어시스트 | 포인트 | 페널티 |
1997-98 | 캘거리 버펄로스 AAA | AMHL | 36 | 32 | 59 | 91 | 34 | 10 | 10 | 12 | 22 | 30 |
1998-99 | 캘거리 캐넉스 | AJHL | 60 | 70 | 56 | 126 | 91 | 13 | 22 | 13 | 35 | 6 |
1999-2000 | 위스콘신 배저스 | WCHA | 38 | 28 | 28 | 56 | 32 | - | - | - | - | - |
2000-01 | 위스콘신 배저스 | WCHA | 39 | 24 | 33 | 57 | 74 | - | - | - | - | - |
2001-02 | 애틀랜타 스래셔스 | NHL | 82 | 26 | 41 | 67 | 56 | - | - | - | - | - |
2002-03 | 애틀랜타 스래셔스 | NHL | 77 | 41 | 48 | 89 | 58 | - | - | - | - | - |
2003-04 | 애틀랜타 스래셔스 | NHL | 31 | 13 | 12 | 25 | 18 | - | - | - | - | - |
2004-05 | SC 베른 | NLA | 16 | 14 | 10 | 24 | 58 | - | - | - | - | - |
2004-05 | 아크 바르스 카잔 | RSL | 11 | 3 | 1 | 4 | 22 | 4 | 2 | 1 | 3 | 4 |
2005-06 | 오타와 세너터스 | NHL | 82 | 50 | 53 | 103 | 86 | 10 | 3 | 9 | 12 | 11 |
2006-07 | 오타와 세너터스 | NHL | 82 | 50 | 55 | 105 | 74 | 20 | 7 | 15 | 22 | 12 |
2007-08 | 오타와 세너터스 | NHL | 71 | 41 | 41 | 82 | 76 | 4 | 0 | 1 | 1 | 6 |
2008-09 | 오타와 세너터스 | NHL | 82 | 39 | 33 | 72 | 88 | - | - | - | - | - |
2009-10 | 샌호세 샤크스 | NHL | 82 | 39 | 43 | 82 | 54 | 14 | 2 | 11 | 13 | 16 |
2010-11 | 샌호세 샤크스 | NHL | 80 | 26 | 38 | 64 | 56 | 18 | 3 | 6 | 9 | 12 |
2011-12 | 미네소타 와일드 | NHL | 82 | 24 | 29 | 53 | 28 | - | - | - | - | - |
2012-13 | 미네소타 와일드 | NHL | 36 | 11 | 10 | 21 | 8 | - | - | - | - | - |
2013-14 | 미네소타 와일드 | NHL | 76 | 12 | 16 | 28 | 18 | 11 | 1 | 5 | 6 | 4 |
2014-15 | 애너하임 덕스 | NHL | 6 | 0 | 0 | 0 | 0 | - | - | - | - | - |
2014-15 | 노퍽 어드미럴스 | AHL | 25 | 2 | 5 | 7 | 8 | - | - | - | - | - |
2014-15 | 샌안토니오 램페이지 | AHL | 18 | 6 | 7 | 13 | 8 | 3 | 0 | 0 | 0 | 0 |
2015-16 | 토마스 사보 아이스 타이거스 | DEL | 46 | 17 | 15 | 32 | 30 | 12 | 2 | 3 | 5 | 14 |
NHL 합계 | 869 | 372 | 419 | 791 | 620 | 77 | 16 | 47 | 63 | 63 |
8.2. International
연도 | 팀 | 대회 | 결과 | 출전 | 골 | 어시스트 | 포인트 | 페널티 |
---|---|---|---|---|---|---|---|---|
2000 | 캐나다 | WJC | 동메달 | 7 | 2 | 2 | 4 | 4 |
2001 | 캐나다 | WJC | 동메달 | 7 | 3 | 2 | 5 | 10 |
2002 | 캐나다 | WC | 6위 | 7 | 2 | 2 | 4 | 2 |
2003 | 캐나다 | WC | 금메달 | 9 | 7 | 3 | 10 | 10 |
2004 | 캐나다 | WC | 금메달 | 9 | 8 | 3 | 11 | 4 |
2004 | 캐나다 | WCH | 금메달 | 6 | 0 | 2 | 2 | 2 |
2005 | 캐나다 | WC | 은메달 | 9 | 3 | 4 | 7 | 16 |
2006 | 캐나다 | OG | 7위 | 6 | 2 | 1 | 3 | 8 |
2008 | 캐나다 | WC | 은메달 | 9 | 12 | 8 | 20 | 4 |
2009 | 캐나다 | WC | 은메달 | 9 | 6 | 4 | 10 | 8 |
2010 | 캐나다 | OG | 금메달 | 7 | 4 | 3 | 7 | 4 |
주니어 합계 | 14 | 5 | 4 | 9 | 14 | |||
시니어 합계 | 71 | 44 | 30 | 74 | 56 |
8.3. NHL All-Star Games
연도 | 장소 | 골 | 어시스트 | 포인트 | |
---|---|---|---|---|---|
2003 | 선라이즈 | 4 | 1 | 5 | |
2007 | 댈러스 | 1 | 1 | 2 | |
2008 | 애틀랜타 | - | - | - | |
2009 | 몬트리올 | 1 | 0 | 1 | |
올스타전 합계 | 6 | 2 | 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