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클럽 경력
프랑크 오르데네비츠는 분데스리가에서 총 272경기에 출전하여 68골을 기록했다.
1.1. SV 베르더 브레멘
오르데네비츠는 1983년 SV 베르더 브레멘에 입단하며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1987-88 시즌에 리그 30경기에 출전하여 15골을 기록하며 팀의 분데스리가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이 시기에 오쿠데라 야스히코와 한솥밥을 먹기도 했다.
이 시즌 중인 1988년 5월 7일, 1. FC 쾰른과의 리그 경기에서 페널티 구역 내에서 고의적으로 핸드볼 파울을 범했다. 주심이 이를 인지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르데네비츠는 상대 선수들의 항의를 듣고 주심의 질문에 즉시 자신의 핸드볼 파울을 인정했다. 이로 인해 1. FC 쾰른에게 페널티킥이 주어졌고, 경기는 SV 베르더 브레멘의 0-2 패배로 끝났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뛰어난 스포츠맨십으로 평가받아 그 시즌 FIFA 페어플레이상을 수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1.2. 1. FC 쾰른
1989-90 시즌을 앞두고 1. FC 쾰른으로 이적했다. 3시즌이 지난 1991년 5월 6일, DFB-포칼 준결승 MSV 뒤스부르크와의 경기에서 경고를 받았다. 이 경고는 그가 결승전에 출전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에 당시 1. FC 쾰른의 감독이던 Erich Rutemöller에리히 루테묄러독일어는 오르데네비츠에게 고의적으로 퇴장을 당하여 다음 분데스리가 경기에서 출전 정지 징계를 받도록 지시했다. 지시에 따라 오르데네비츠는 고의로 공을 걷어찼고, 퇴장을 당했다.
경기 후 루테묄러 감독은 "오체(Otze)가 나에게 왔고, 나는 그에게 기회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여 '해라!'라고 말했다"며 해당 계획을 시인했다. 이 지시는 이후 "Mach et, Otze!"(Mach et, Otze!마흐 엣, 오체!독일어)라는 유명한 표현으로 회자되었다. 이에 독일 축구 연맹(DFB)은 규정을 변경하여 오르데네비츠가 결승전에 출전하지 못하도록 했으며, 1. FC 쾰른은 결국 승부차기 끝에 결승전에서 패배했다.
1.3.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1993년 여름 이적 시장을 통해 일본 J1리그의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로 이적했다. 그는 1993년 8월 4일 나고야 그램퍼스와의 경기에서 J1리그 데뷔골을 포함하여 두 골을 기록했다. 1994년 7월까지는 '오체'라는 등록명을 사용했으나, 8월부터는 '오르데네비츠'로 변경했다. 등록명 변경 후 첫 경기인 8월 10일 감바 오사카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맹활약했다. 1994 시즌에는 리그 40경기에 출전하여 30골을 기록하며 J1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그는 가족 문제로 인해 팀을 떠났으며,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에서 총 55경기 출전 37골의 기록을 남겼다.
1.4. 이후 클럽 경력
1994-95 시즌 겨울 이적 시장을 통해 함부르거 SV로 이적하여 분데스리가에 복귀했다. 1996년에는 피에르 리트바르스키의 요청으로 일본 재팬 풋볼 리그의 브룸멜 센다이에 입단했다. 그는 이 시즌 28경기에 출전하여 20골을 넣는 활약을 펼쳤으며, 일본덴소와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천황배 1라운드 마쓰야마 대학교와의 경기에서는 4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팀을 J1리그로 승격시키지는 못했고, 1년 만에 팀을 떠났다. 이후 그는 독일의 아마추어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1997-98 시즌에는 VfB 올덴부르크에서 활약하며 28경기 3골을 기록했다. 한때 은퇴를 선언했으나, 2005년 9월 현역으로 복귀했다. 복귀 후에는 로텐부르거 SV, TSV 오터스베르크, VSK 오스터홀츠-샤름베크 등에서 뛰었다.
2. 국가대표 경력
오르데네비츠는 1987년 서독 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A매치 2경기에 출전했다.
3. 경력 통계
3.1. 클럽 통계
클럽 | 시즌 | 리그 | 국내컵 | 리그컵 | 합계 | |||||
---|---|---|---|---|---|---|---|---|---|---|
디비전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
SV 베르더 브레멘 | 1983-84 | 분데스리가 | 5 | 0 | 1 | 0 | 0 | 0 | 6 | 0 |
1984-85 | 9 | 1 | 1 | 0 | 0 | 0 | 9 | 1 | ||
1985-86 | 24 | 7 | 1 | 0 | 0 | 0 | 25 | 7 | ||
1986-87 | 30 | 8 | 3 | 2 | 0 | 0 | 33 | 10 | ||
1987-88 | 30 | 15 | 1 | 6 | 3 | 0 | 36 | 18 | ||
1988-89 | 27 | 6 | 6 | 0 | 0 | 0 | 33 | 6 | ||
합계 | 125 | 37 | 18 | 5 | 0 | 0 | 143 | 42 | ||
1. FC 쾰른 | 1989-90 | 분데스리가 | 30 | 3 | 3 | 1 | 0 | 0 | 33 | 4 |
1990-91 | 31 | 7 | 6 | 3 | 0 | 0 | 37 | 10 | ||
1991-92 | 35 | 11 | 2 | 0 | 0 | 0 | 37 | 11 | ||
1992-93 | 30 | 9 | 2 | 2 | 0 | 0 | 32 | 11 | ||
합계 | 126 | 30 | 13 | 6 | 0 | 0 | 139 | 36 | ||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 1993 | J1리그 | 15 | 7 | 3 | 0 | 6 | 3 | 24 | 10 |
1994 | 40 | 30 | 2 | 0 | 1 | 0 | 43 | 30 | ||
합계 | 55 | 37 | 5 | 0 | 7 | 3 | 67 | 40 | ||
함부르거 SV | 1994-95 | 분데스리가 | 15 | 0 | 0 | 0 | 0 | 0 | 15 | 0 |
1995-96 | 6 | 1 | 0 | 0 | 0 | 0 | 6 | 1 | ||
합계 | 21 | 1 | 0 | 0 | 0 | 0 | 21 | 1 | ||
브룸멜 센다이 | 1996 | 재팬 풋볼 리그 | 28 | 20 | 3 | 5 | 0 | 0 | 31 | 25 |
VfB 올덴부르크 | 1997-98 | 레기오날리가 | 28 | 3 | 0 | 0 | 0 | 0 | 28 | 3 |
통산 | 383 | 128 | 39 | 16 | 7 | 3 | 429 | 147 |
3.2. 국가대표 통계
국가대표팀 | 연도 | 출전 | 득점 |
---|---|---|---|
서독 | 1987 | 2 | 0 |
합계 | 2 | 0 |
4. 수상
4.1. 팀 수상
- 분데스리가 우승: 1987-88 (SV 베르더 브레멘)
- DFL-슈퍼컵 우승: 1988 (SV 베르더 브레멘)
4.2. 개인 수상
- FIFA 페어플레이상 수상: 1988년
- J1리그 득점왕: 1994년 (30골)
5. 유산과 은퇴 후 활동
5.1. 역사적 평가
프랑크 오르데네비츠는 J1리그 득점왕을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J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지 못한 특이한 사례로 남았다. 이는 2016년 시즌 득점왕인 피터 우타카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기 전까지 J리그 역사상 유일한 경우였다. 또한 그의 이름은 1. FC 쾰른 시절 감독의 지시에 따라 고의적인 퇴장을 당한 사건으로 인해 "Mach et, Otze!"(Mach et, Otze!마흐 엣, 오체!독일어)라는 문구로 회자되며 그의 선수 경력에서 독특한 측면을 보여준다.
5.2. 은퇴 후 활동
프랑크 오르데네비츠는 프로 축구 은퇴 후에도 독일 아마추어 리그에서 계속 활동했다. 2011년 5월 17일 도르트문트에서 열린 동일본 대지진 복구 지원을 위한 자선 경기에 J리그 올드보이 자격으로 출전했으며, 이 경기에는 과거 베르더 브레멘에서 함께 뛰었던 오쿠데라 야스히코도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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