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arly Life and Pre-Political Career
앤서니 루이스 뱅크스는 정계에 입문하기 전 다양한 경험을 쌓았으며, 그의 교육 배경과 노동조합 활동은 이후 정치적 신념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1.1. Birth and Education
앤서니 루이스 뱅크스는 1942년 4월 8일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 있는 주빌리 산부인과 병원에서 Albert Herbert Banks앨버트 허버트 뱅크스영어와 Olive Irene Rusca올리브 아이린 루스카영어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알버트는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공구 제작자였으며, 전쟁 중에는 영국 육군 수송군(Royal Army Service Corps)의 하사관이었다. 뱅크스 가족은 그의 출생 후 잉글랜드로 돌아와 브릭스턴과 투팅에서 성장했다.
그는 브릭스턴의 세인트 존스 스쿨과 케닝턴의 테니슨 대주교 교구 학교에서 교육받았다. 뱅크스는 O Levels오 레벨영어 시험에 실패하여 학교를 중퇴하고 몇 년간 사무직으로 일했지만, 야간 학교에서 공부하여 대학 입학에 필요한 자격을 취득했다. 1964년부터 1967년까지 요크 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재학 중에는 학생 대표 위원회 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1967년에 상위 2등급 학위를 받고 졸업한 후,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서 추가 연구를 수행했다.
1.2. Trade Union Activities
대학 졸업 후 뱅크스는 노동조합 간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1969년부터 1975년까지는 통합 공학 노조(Amalgamated Union of Engineering Workers)에서, 1976년부터 1983년까지는 방송 종사자 협회(Association of Broadcasting Staff)에서 사무총장 보좌관으로 일했다. 이 협회는 나중에 다른 노조들과 합병하여 방송, 연예, 영화 및 연극 연합(Broadcasting, Entertainment, Cinematograph and Theatre Union, BECTU)을 형성했다. 뱅크스는 수년간 프리랜서 노동자들을 담당하는 책임자였다.
2. Political Career
앤서니 뱅크스는 지방 정부에서 시작하여 영국 의회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정치 경력을 쌓았다.

2.1. Local Government Activities
뱅크스는 1964년 자유당 소속으로 런던 자치구 의회의 첫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노동당에 입당했으며, 1971년부터 1974년까지 램버스 의회의 의원으로 활동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대런던의회(GLC)의 저명한 의원으로 부상하며 해머스미스(1970~1977년)와 투팅(1981~1986년)을 대표했다. 특히 그는 1985년부터 1986년 대런던의회가 폐지될 때까지 일티드 해링턴의 뒤를 이어 대런던의회 의장을 역임했다.
2.2. Member of Parliament
뱅크스는 여러 차례 의회 선거에 출마했으나 처음에는 실패했다. 1970년 이스트 그린스티드, 1974년 10월 뉴캐슬어폰타인 노스, 1979년 왓퍼드에서 낙선했다. 그러나 1983년 총선에서 뉴엄 노스 웨스트 지역구에 노동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시 노동당 후보에서 탈락한 그의 전임자 아서 루이스를 꺾고 당선되었다.
1995년 선거구 개편으로 뉴엄 노스 웨스트는 확장되어 웨스트 햄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뱅크스는 1997년 총선에서 이 지역구의 의석을 유지했다. 그는 2005년 총선에서 불출마를 선언하고 의원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해당 지역구를 대표했으며, 그의 후임으로는 린 브라운이 당선되었다.
의회 선거 출마 기록
일자 | 선거구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순위 | |
---|---|---|---|---|---|---|
1970년 영국 총선 | 이스트 그린스티드 | 노동당 | 12,014 | 19.2 | 3위 (3명 중) | |
1974년 10월 영국 총선 | 뉴캐슬어폰타인 노스 | 노동당 | 10,748 | 41.1 | 2위 (3명 중) | |
1979년 영국 총선 | 왓퍼드 | 노동당 | 18,030 | 40.28 | 2위 (4명 중) | |
1983년 영국 총선 | 뉴엄 노스 웨스트 | 노동당 | 13,042 | 46.6 | 당선 | |
1987년 영국 총선 | 뉴엄 노스 웨스트 | 노동당 | 15,677 | 55.4 | 당선 | |
1992년 영국 총선 | 뉴엄 노스 웨스트 | 노동당 | 15,677 | 55.4 | 당선 | |
1997년 영국 총선 | 웨스트 햄 | 노동당 | 24,531 | 72.9 | 당선 | |
2001년 영국 총선 | 웨스트 햄 | 노동당 | 20,449 | 69.9 | 당선 |
대런던의회 선거 출마 기록
일자 | 선거구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순위 | |
---|---|---|---|---|---|---|
1970년 대런던의회 선거 | 해머스미스 | 노동당 | 30,105 | 당선 | ||
1973년 대런던의회 선거 | 풀럼 | 노동당 | 15,176 | 당선 | ||
1981년 대런던의회 선거 | 투팅 | 노동당 | 12,127 | 당선 |
2.3. Minister for Sport
1997년 노동당의 총선 승리 후 뱅크스는 이언 스프롯의 뒤를 이어 문화·미디어·스포츠부의 스포츠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잉글리시 프리미어십의 외국인 선수들이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캉토나와 긱스가 맨체스터 유니폼의 빨간색을 잉글랜드 유니폼의 흰색으로 바꾸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영국을 구성하는 네 지역의 축구팀들이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합병해야 한다고 제안했으며, 이는 2012년 실제로 실현되었다. 그러나 그의 1997년 영국 단일 축구팀 제안은 지지자들로부터 비웃음을 샀고, 같은 당의 스코틀랜드 의원 샘 갤브레이스는 그러한 팀의 창설은 "그의 죽음을 넘어설 때만" 가능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뱅크스는 또한 스코틀랜드 국가대표팀을 "월드컵에서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웨스트 햄"이라고 묘사하며 스코틀랜드 지지자들을 불쾌하게 했다.
뱅크스의 장관 책임 중에는 문화재 지정 건물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그는 1930년대 버밍엄의 Three Magpies쓰리 매그파이즈영어 펍이나 수많은 폐기된 NHS 건물들을 논란 속에서 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을 승인했다. 그는 또한 세번 교량을 1등급 지정 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을 승인했다. 그는 웸블리 스타디움 재개발의 일환으로 트윈 타워의 철거를 논란 속에 승인하며, 이를 "콘크리트 덩어리"라고 폄하했다.
2년 재임 후 그는 총리의 특사로서 2006년 FIFA 월드컵 잉글랜드 유치단을 이끌기 위해 장관직을 사임했으며, 그의 후임으로는 케이트 호이가 임명되었다. 유치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고, 독일이 개최권을 획득했다. 그 후 2005년 의회에서 은퇴할 때까지 뱅크스는 평의원(백벤처)으로 남았지만, 2004년 런던 시장 선거에서 노동당 후보가 되려는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3. Political Views and Stances
앤서니 뱅크스는 노동당 내에서도 확고한 좌파 성향을 보였으며, 특히 동물권 보호에 대한 열정적인 옹호자로 잘 알려져 있었다.
3.1. Left-wing and Republican Views
뱅크스는 노동당 내 좌파로 평가받았으며, 공화주의를 지지하고 2003년 이라크 전쟁에 반대했으며 사회주의 운동 그룹(Socialist Campaign Group)의 회원이었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관련하여 그의 유일한 발언은 정부 자금 지원과 영국 해군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카불 동물원의 동물들, 특히 류마티즘으로 인해 에어컨이 필요했던 늙은 사자 마르잔을 위한 것이었다.
2004년 5월 21일, 뱅크스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MI5가 비둘기를 공중 폭탄으로 사용하려 했다는 신문 보도에 대응하여 의회에 조기 동의안을 제출했다. 이 동의안은 해당 제안을 비난하며 인간을 "음란하고, 왜곡되었으며, 잔인하고, 미개하며, 치명적"이라고 묘사하고, 의회가 "불가피한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하여 인류를 전멸시키고, 자연이 다시 시작할 기회를 얻는 날을 고대한다"고 제안했다.
뱅크스는 또한 예술의 지지자였으며, 웨스트민스터 궁전의 역사적인 그림과 조각품을 관리하는 영국 의회 하원 미술품 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3.2. Animal Rights Advocacy
뱅크스는 채식주의자이자 동물권 지지자였으며, 잔인한 스포츠 반대 연맹(League Against Cruel Sports)의 부회장이었다. 그는 여우 사냥과 동물 실험에 대해 강력히 반대했다. 그의 동물권 옹호 활동은 단순히 발언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캠페인으로 이어졌다. 그는 카불 동물원의 동물들을 구출하기 위해 정부의 재정 지원과 해군 협력을 요청하는 등 적극적인 행동을 보였다.
4. Outspoken Nature and Public Persona
뱅크스는 하원에서 그의 acid tongue독설영어로 잘 알려져 있었다. 그의 거침없는 발언과 행동은 자주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1990년, 보수당 의원 테리 딕스가 예술에 대한 정부 자금 지원에 반대하는 연설을 하자 뱅크스는 딕스가 "막대기 위의 돼지 방광도 의회에 당선될 수 있다는 살아있는 증거"라고 말했다. 뱅크스는 또 다른 보수당 의원 니컬러스 솜스를 "일인 식량 산맥"이라고 묘사했다. 그는 물범을 도살하는 캐나다인들을 dickheads멍청이영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1994년 배질던의 산부인과 서비스에 대한 질의 중, 뱅크스는 당시 보수당 의원인 데이비드 아메스가 (다섯 자녀의 아버지로서) "배질던의 산부인과 서비스에 너무 많은 부담을 주었으니 두 개의 벽돌을 이용한 '자가 정관수술 키트'를 사용하라"고 제안했다.
1997년 노동당 전당대회에서 뱅크스는 당시 보수당 대표였던 윌리엄 헤이그를 foetus태아영어라고 묘사하며, 보수당 의원들이 낙태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재고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뱅크스는 영국 의회의 새로운 회기에서 여왕 충성 서약을 할 때 손가락을 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스포츠부 장관이라는 새로운 직책에서 행운을 빌고 있었다고 말했다.
5. Retirement and Later Years
2004년 11월 23일, 뱅크스는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사흘 후 BBC 라디오 4의 로빈 오클리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솔직히 말해서, 그것(의원직)이 지적으로 무미건조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선거구 업무가 전혀 그립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야겠다. 22년간 똑같은 사건들이었고, 단지 얼굴과 사람만 바뀌었다. 사람들의 삶과 그들의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것이 다소 경멸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처리했다... 그러나 나는 이로부터 전혀 만족을 얻지 못했다. 정말 그렇지 않았다. 당신은 그저 고위 사회복지사 같은 존재였고, 어쩌면 잘 하지도 못하는 사회복지사였다. 나는 미술품 위원회 위원장 자리는 그리울 것이다... 우리의 컬렉션을 재편하면서 지적으로 즐거움을 얻었고, 순수한 즐거움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나를 역사와 계속 연결시켜 주었다"고 밝혔다.
2005년 3월 24일, 그는 하원에서 마지막 연설을 했다. 총선 일주일 후인 2005년 5월 13일, 그가 종신 귀족으로 서임될 것이라고 발표되었고, 2005년 6월 23일에는 뉴엄 런던 자치구의 스트랫퍼드에 있는 '스트랫퍼드 남작' 작위가 관보에 게재되었다.
5.1. Baron Stratford Title and Coat of Arms
앤서니 뱅크스가 종신 귀족으로 서임되면서 2005년 6월 23일 스트랫퍼드 남작 작위를 받았고, 이에 따라 남작 문장이 제정되었다. 이 문장은 2006년 채택되었다.
- 남작 관(Coronet): 남작의 관을 쓰고 있다.
- 방패(Escutcheon): 황금색 바탕에 세 개의 빨간색 쉐브론이 있으며, 각 쉐브론은 세 개의 둥근 장식으로 끝을 맺고, 각 팔다리 위에는 검은색 비둘기가 날아가는 모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황금색 바탕의 빨간색 쉐브론은 뉴엄 자치구의 문장에서 따온 것이며, 세 개의 둥근 장식은 대런던의회의 문장에 있는 색슨 왕관을 암시한다. 쉐브론은 런던의 지붕선을 연상시키기도 하며, 비둘기는 런던의 비둘기를 나타낸다.
- 문장 위 장식(Crest): 앉아 있는 빨간 여우가 오른발로 황금색 주교 지팡이를 받치고 있다. 여우와 주교 지팡이는 뱅크스가 특히 관심을 가졌던 18세기 정치인 찰스 제임스 폭스를 암시한다.
- 방패 지지 동물(Supporters): 양쪽에 앉아 있는 오소리가 각각 앞발에 황금색 망치를 쥐고 있다.
- 휘장(Badge): 붉은색 둥근 장식이 박힌 고리 안에 오소리 얼굴이 있다.
- 표어(Motto): 'ALL IS DUST' (모든 것은 먼지이다).
6. Personal Life
앤서니 뱅크스는 샐리 존스(Sally Jones)와 결혼했다. 그는 첼시 FC의 열렬한 지지자였으며 정기적으로 경기를 관람했다. 2003년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첼시 FC를 인수했을 때, 뱅크스는 "우리는 그의 돈의 출처와 러시아에서의 그의 행적을 조사하여 그가 이 나라에서 축구 클럽을 인수하기에 적합한 사람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불만을 표명했다. 그는 또한 영국 인본주의 협회의 회원이기도 했다.
7. Death
2006년 1월 7일, 뱅크스는 휴가 중이던 플로리다 새니벨 아일랜드에서 식사 도중 심각한 뇌졸중을 겪은 후 이틀 전 쓰러졌다고 보도되었다. 그는 헬리콥터로 포트마이어스의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2006년 1월 8일 사망했다. 당시 영국 총리인 토니 블레어는 그를 "영국에서 가장 카리스마 있는 정치인 중 한 명이자 진정한 민중의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그의 장례식은 1월 21일 런던시 화장터에서 열렸으며, 존 프레스콧, 테사 조웰, 마거릿 베킷, 앨러스터 캠벨, 토니 벤, 크리스 스미스, 리처드 케이본 등 많은 정치인들이 참석했다. 뱅크스의 친구이자 전 보수당 의원인 데이비드 멜러는 추모 연설을 통해 "무질서의 군주, 건방진 친구, 무엇이든 그를 부를 수 있지만, 그는 정의될 수는 있어도 대체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8. Legacy and Tributes
앤서니 뱅크스의 생애와 경력은 그가 남긴 정치적, 사회적 유산을 통해 다양하게 평가되고 있으며, 그의 사망 후에도 많은 이들의 추모와 활동의 계승이 이어졌다.
8.1. Posthumous Tributes
뱅크스의 사망 후, 많은 정치계 인사들과 대중의 주요 추모와 찬사가 이어졌다. 토니 블레어 총리는 그를 "영국에서 가장 카리스마 있는 정치인 중 한 명이자 진정한 민중의 사람"이라고 언급하며 그의 영향력을 강조했다. 그의 장례식에는 존 프레스콧, 테사 조웰, 마거릿 베킷 등 수많은 정치 동료들이 참석하여 그의 인물됨과 업적을 기렸다. 친구인 전 보수당 의원 데이비드 멜러는 추모 연설에서 뱅크스를 "무질서의 군주, 건방진 친구"라 칭하며 그를 대체할 수 없는 인물로 기억했다.
8.2. Continuation of Activism
남편의 사망 후, 그의 부인인 스트랫퍼드 남작 부인은 뱅크스의 동물권 운동을 계속 이어나가겠다고 다짐하며, 캐나다의 물범 새끼 도살 반대 캠페인을 이끌었다. 그녀는 또한 서커스, 동물원, 그리고 이국적인 애완동물 거래에서 동물을 사용하는 것을 종식시키기 위한 자선단체인 감금 동물 보호 협회(Captive Animals Protection Society)의 후원자이기도 하다.
9. In Popular Culture
앤서니 뱅크스는 대중문화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되거나 묘사되었다.
1998년 이언 데일이 편집한 The Wit and Wisdom of Tony Banks토니 뱅크스의 재치와 지혜영어라는 책이 출판되었다.
그의 사망 소식은 2006년 1월 8일 리키 저베이스 쇼 첫 시리즈에서 칼 필킹턴의 그란 카나리아 휴가 일기 중 언급되었다. 필킹턴은 뱅크스의 죽음에 대해 "모두가 충격받았다는 뉴스가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에이미 만은 1990년대 초 런던에서 뱅크스를 만난 후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녀의 1995년 앨범 I'm with Stupid에 수록된 곡 "You're With Stupid Now"는 영국 정치에 대한 그들의 논의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