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Overview
콜로 아비브 투레(Kolo Abib Touré콜로 아비브 투레프랑스어)는 코트디부아르의 전 축구 선수이자 현 축구 감독이다. 1981년 3월 19일 코트디부아르 부아케에서 태어난 그는 중앙 수비수로 주로 활약했지만, 라이트백과 다양한 미드필드 포지션도 소화할 수 있는 다재다능한 선수였다. 그는 총 353경기에 출전하여 아프리카 선수 중 프리미어리그 최다 출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투레는 2002년 모국의 ASEC 미모사를 떠나 아스널에 입단하며 유럽 무대에 진출했다. 그는 2003-04 시즌 아르센 벵거 감독 아래에서 솔 캠벨과 함께 무패 우승을 달성한 '인빈시블스'의 핵심 수비수로 활약했으며, UEFA 챔피언스리그 2005-06 시즌에는 팀의 첫 결승 진출에 기여했다. 2009년에는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하여 동생 야야 투레와 재회했고, 팀의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이끌며 두 개의 다른 클럽에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경험한 몇 안 되는 선수 중 한 명이 되었다. 이후 리버풀과 셀틱에서 뛰었으며, 셀틱에서는 브랜든 로저스 감독과 재회하여 국내 3관왕 달성에 기여한 후 2017년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축 선수로서 2000년부터 2015년까지 120경기에 출전하여 역대 코트디부아르 선수 중 두 번째로 많은 출장 기록을 세웠다. 그는 2006 FIFA 월드컵, 2010 FIFA 월드컵, 2014 FIFA 월드컵에 출전했으며,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는 7차례 참가하여 2006년과 2012년에 준우승을 차지했고, 2015년에는 마침내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국가대표팀에서 화려하게 은퇴했다.
선수 은퇴 후에는 코트디부아르 축구 협회, 셀틱, 레스터 시티에서 보조 코치로 경험을 쌓았고, 2022년 위건 애슬레틱의 1군 감독으로 부임하며 첫 감독직을 수행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짧은 기간 동안 팀을 이끈 후 해임되었다. 그의 삶에는 형제인 이브라힘 투레의 비극적인 죽음과 같은 개인적인 시련도 있었으나, 이슬람교 신자로서의 강한 신념을 통해 이를 극복해 나갔다.
2. 선수 경력
콜로 투레는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며 여러 클럽에서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보냈다. 특히 수비형 미드필더와 라이트백은 물론, 중앙 수비수로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2.1. 초기 경력
콜로 투레는 1981년 3월 19일 코트디부아르 부아케에서 태어났다. 다른 많은 아프리카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으며, 15세의 나이에 맨발로 축구를 시작했다. 그의 재능은 일찍이 장마르크 기루의 눈에 띄어 아비장에 위치한 축구 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할 기회를 얻었다.
투레는 1999년부터 2002년까지 모국의 ASEC 미모사에서 활동했다. 그는 이 시기에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수비수, 라이트백뿐만 아니라 공격형 미드필더, 좌우 윙 등 거의 모든 포지션을 소화하는 다재다능함을 보였다. 특히 그의 빠른 속도는 당시 아스널 팀 내에서도 가엘 클리시와 시오 월컷 다음으로 빠르다고 평가될 정도였다. 그는 프로 계약을 맺기 전인 2000년부터 이미 코트디부아르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어 풀 경기를 소화할 만큼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았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2002년 2월 14일, 그는 짧은 입단 테스트를 거쳐 프리미어리그 팀인 아스널에 약 15.00 만 GBP의 이적료로 합류하게 된다. 국제적인 활동 경력 덕분에 그는 영국 워크 퍼밋을 쉽게 발급받을 수 있었다.
2.2. 아스널
투레는 2002년 8월 11일 FA 커뮤니티 실드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데니스 베르캄프의 교체 선수로 출전하며 아스널 1군 데뷔전을 치렀다. 초반에는 다재다능한 선수로 평가받으며 수비형 미드필더와 라이트백 등 다양한 포지션에서 활약했다. 그는 9월 1일 스탬퍼드 브리지에서 열린 첼시와의 경기에서 아스널 데뷔골을 기록했다. 이 경기에서 그는 전반 30분 만에 부상당한 에두를 대신해 투입되었다. 아스널은 그 시즌 FA컵에서 우승했지만, 투레는 2003 FA컵 결승전 사우샘프턴과의 경기에서 교체 선수로 출전하지 못했다.
2003-04 아스널 FC 시즌이 시작되면서 아르센 벵거 감독은 투레를 솔 캠벨과 함께 중앙 수비수로 기용하기 시작했다. 투레는 베테랑 마틴 키언으로부터 이 포지션을 물려받았고, 키언을 자신의 멘토로 높이 평가했다. 이 시즌에 아스널은 단 한 번도 패하지 않고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무패 우승'의 대기록을 세웠으며, 투레는 37번의 리그 경기를 포함해 총 55경기에 출전하며 팀의 핵심 수비수로 자리매김했다.
2004-05 아스널 FC 시즌 동안 투레는 필리페 센데로스와 파스칼 시강 등과 주전 경쟁을 펼치며 팀을 오갔다. 그는 이 시즌에 50경기에 출전하여 한 골을 기록했으며, FA컵 우승 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의 유일한 득점은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전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에서 나왔지만, 팀은 3-1로 패했다.
2005-06 아스널 FC 시즌에는 센데로스와 막강한 수비 파트너십을 구축하며 아스널의 주전 선수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이들은 UEFA 챔피언스리그 2005-06 결승전에 진출하는 데 큰 기여를 했으며, 챔피언스리그 10경기 연속 무실점이라는 유럽 대회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006년 4월 19일, 투레는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1차전 비야레알과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터뜨렸다. 이 골은 하이버리에서 기록된 마지막 유럽 대회 골이었고, 아스널을 파리에서 열리는 구단 역사상 첫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으로 이끄는 결정적인 골이었다.

2006년 10월, 투레는 새로운 장기 계약을 체결했다. 2007년 1월 9일, 그는 질베르투 실바와 티에리 앙리가 없는 상황에서 풋볼 리그 컵 8강 리버풀 원정 경기에서 처음으로 주장 완장을 찼으며, 이 경기에서 아스널은 6-3으로 승리했다. 2월 25일에는 2007 풋볼 리그 컵 결승전 첼시와의 경기에서 팀의 주장으로 나섰으나, 팀은 2-1로 패했다. 이 경기에서 존 오비 미켈에게 태클을 걸어 두 선수 모두 퇴장당했고, 이로 인해 대규모 몸싸움이 발생하여 아스널의 에마뉘엘 아데바요르까지 퇴장당했으며, 두 구단 모두 10.00 만 GBP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2006-07 시즌에는 3골 3도움을 기록하며 공격에도 기여했다.
2008-09 시즌을 끝으로 아스널은 딕슨-키언-아담스-윈터번으로 이어지는 '철의 포백'이 해체되었고, 벵거 감독은 투레를 애슐리 콜과 로렌의 사이에 넣을 새로운 포백의 핵심으로 간주했다. 그는 윌리엄 갈라스, 요한 주루, 필리페 센데로스 등과 번갈아 가며 출전했지만, 2009년 4월 13일 수비 파트너인 갈라스와의 불화가 보도된 후 아스널을 떠나겠다고 요청했다. 그는 이적 요청서를 제출했으나 피터 힐-우드 구단주에 의해 거절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레는 일시적으로 이적 결정을 철회하고 여름까지 아스널에 잔류하겠다고 밝혔다. 투레는 아스널에서 총 326경기에 출전하여 14골을 기록했다.
2.3. 맨체스터 시티

많은 이적설이 오간 끝에 2009년 7월 28일, 맨체스터 시티가 투레 영입에 합의했다고 발표되었다. 7월 29일 맨체스터에서 메디컬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투레는 4년 계약을 체결했으며 1년 연장 옵션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맨체스터 시티는 지난 시즌 10위에 그쳤지만, 2009-10 맨체스터 시티 FC 시즌을 앞두고 여러 유명 선수들을 영입하고 있었고, 투레는 맨시티를 4위권 팀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마크 휴즈 감독에 의해 주장으로 임명되었다. 2009년 9월 23일, 그는 풋볼 리그 컵 풀럼과의 2-1 승리 경기에서 맨체스터 시티 이적 후 첫 골을 기록했다. 11월 7일 번리와의 경기에서는 맨시티에서의 첫 리그 골을 넣었다. 맨체스터 시티는 그 시즌을 5위로 마쳤으며, 토트넘 홋스퍼에 불과 3점 차이로 4위 진입에 실패했다. 2010년 7월 2일, 콜로 투레의 동생인 야야 투레도 약 2400.00 만 GBP의 이적료로 맨체스터 시티에 합류하며 형제가 재회했다.
2010-11 맨체스터 시티 FC 시즌이 시작될 무렵,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은 투레에게서 주장 완장을 회수하고 카를로스 테베스에게 넘겼다. 그러나 투레는 여전히 만치니의 계획에 포함되었고, 수비의 주전 선수로 활약했다. 그는 2010년 12월 20일 에버턴과의 2-1 패배 경기에서 퇴장당했으며, 이는 맨시티가 크리스마스에 프리미어리그 선두를 차지할 기회를 놓치는 데 일조했다. 2011년 1월 15일, 투레는 울버햄프턴 원더러스와의 4-3 승리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어 팀을 리그 선두로 이끌었다.
2011년 3월 3일, 투레가 도핑 테스트에서 양성 반응을 보여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세계 반도핑 기구(WADA)는 2011년 3월 2일부터 6개월간의 축구 출전 정지를 부과했다. 투레는 이와 관련하여 "아내의 다이어트 약을 복용했다"고 해명했지만, 징계는 피할 수 없었다.
2011-12 맨체스터 시티 FC 시즌에 투레는 스쿼드 선수로 활용되었으며, 리그 14경기에 출전하여 맨체스터 시티가 44년 만에 첫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이로써 그는 아스널과 맨시티 두 클럽에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경험한 몇 안 되는 선수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러나 2012-13 시즌에는 뱅상 콤파니, 마티야 나스타시치, 졸리언 레스콧 등과의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 리그 15경기 출전에 그쳤고, 2012-13 시즌을 끝으로 계약이 만료되어 팀을 떠났다. 맨체스터 시티에서 그는 총 102경기에 출전하여 3골을 기록했다.
2.4. 리버풀

2013년 5월 28일, 리버풀은 맨체스터 시티를 떠난 투레를 자유 계약으로 영입하는 원칙적 합의에 도달했다고 발표했다. 7월 2일 그는 리버풀의 첫 영입 선수로 공개되었고 등번호 4번을 배정받았다. 그는 2년 계약을 체결했다. 2013년 8월 17일 안필드에서 열린 스토크 시티와의 1-0 승리 경기에서 리버풀 소속으로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2014년 2월 2일, 웨스트 브로미치 앨비언과의 경기에서 상대팀 빅터 아니체베에게 실수를 저질러 동점골의 빌미를 제공했다. 12일 후, 풀럼과의 경기에서는 자책골을 기록했지만, 다행히 스티븐 제라드의 막판 페널티킥으로 리버풀이 승리했다. 2013-14 프리미어리그 시즌에 리버풀은 리그 우승 경쟁을 펼쳤지만, 최종 우승은 맨체스터 시티에게 돌아갔다. 만약 리버풀이 우승했다면 투레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처음으로 세 개의 클럽에서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선수가 될 뻔했다.
2015년 3월 1일, 그는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 후반 83분에 교체 투입되며, 동생 야야 투레와 경쟁 경기에서 처음으로 맞붙었다. 이 경기에서 리버풀은 2-1로 승리했다.
2016년 2월 14일, 투레는 애스턴 빌라와의 원정 경기에서 조던 헨더슨의 코너킥을 헤딩으로 연결하며 리버풀에서의 첫 골을 기록했다. 이는 2011년 1월 이후 첫 득점이었고, 그는 격렬하게 기뻐했다. 그는 2015-16 시즌 종료 후 리버풀에서 방출되었다. 리버풀에서 그는 총 71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다.
2.5. 셀틱
2016년 7월 24일, 투레는 셀틱에 1년 계약으로 합류하며 옛 스승인 브랜든 로저스 감독과 재회했다. 그는 2016년 8월 3일 UEFA 챔피언스리그 예선 경기 FC 아스타나와의 2-1 승리 경기에서 교체 선수로 출전하며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셀틱에서 총 20경기에 출전하여 팀이 무패 국내 시즌을 달성하고 스코티시 프리미어십, 스코티시 컵, 스코티시 리그 컵을 모두 우승하는 '국내 3관왕'에 기여했다. 시즌 종료 후 그는 새로운 계약을 제안받지 못했다.
2017년 9월, 투레는 선수 은퇴를 공식 발표하고 셀틱의 코치직을 수락하며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셀틱에서 그는 총 17경기에 출전했으며 득점은 기록하지 못했다.
2.6. 플레이 스타일
콜로 투레는 기본적으로 중앙 수비수였지만, 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매우 공격적이었다. 아스널 시절에는 파트너인 윌리엄 갈라스 역시 공격적인 성향이 강해 때때로 위험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라이트백으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쳐 주전이었던 로렌의 자리를 위협할 정도였다.
투레는 강력한 제공권과 일류급 속도를 자랑했다. 또한 공격수에게 직접 연결하는 크로스 능력도 크게 개선되었다. 수비 시에는 클리어링 능력도 준수했지만, 오프사이드 트랩을 활용하는 데는 능숙하지 못하여 때때로 필리페 센데로스와 같은 파트너의 도움이 필요했다.
2006년 UEFA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유벤투스를 탈락시킬 때, 이탈리아 언론은 투레에게 '아프리카의 파비오 칸나바로'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이는 그 당시 투레의 활약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이다.
3. 국가대표 경력
콜로 투레는 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대표팀의 핵심 수비수로 오랜 기간 활약하며 수많은 국제 대회에 참가했다.
3.1. 국가대표팀 활동
투레는 2000년 4월 르완다와의 경기에서 코트디부아르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2000년부터 2015년까지 총 120경기에 출전하여 코트디부아르 역대 출전 선수 중 두 번째로 많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투레는 2006년 1월 이집트에서 열린 2006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코트디부아르가 개최국에게 준우승을 차지할 때 5경기 모두 출전했다.
그는 2006 FIFA 월드컵에 앙리 미셸 감독이 이끄는 23인 스쿼드에 포함되었으며, 2006년 6월 11일 아르헨티나에 2-1로 패한 경기에서 월드컵 데뷔전을 치렀다. 2010 FIFA 월드컵에도 소집되었으며, 디디에 드로그바의 부상으로 인해 포르투갈과의 첫 경기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출전했다. 2010년 8월 10일, 그는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의 불린 그라운드에서 열린 이탈리아와의 친선 경기에서 유일한 골을 헤딩으로 넣으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3.2. 주요 국제 대회
투레는 세 차례의 FIFA 월드컵(2006 FIFA 월드컵, 2010 FIFA 월드컵, 2014 FIFA 월드컵)에 참가했다. 특히 2014년 월드컵에서는 동생 이브라힘 투레의 사망 소식으로 인해 그리스와의 경기에 결장하기도 했다.
그는 2002년부터 2015년 사이에 총 7차례의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토너먼트에 코트디부아르 대표로 참가했다. 팀은 2006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과 2012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으며, 마침내 2015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015년 2월 8일 2015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결승전에서 가나를 상대로 0-0 무승부 후 승부차기에서 9-8로 승리하는 데 기여했으며, 코트디부아르의 7번째 키커로 나서 페널티킥을 성공시켰다.
3.3. 국가대표 은퇴
2014년 12월, 투레는 2015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이후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는 이 대회 결승전이 자신의 마지막 국가대표 경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 2월 15일, 그는 국가대표 은퇴를 공식적으로 확인하며, "네이션스컵 우승이 나의 목표였다. 이제 미래를 내다볼 시간이 왔다. 매우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끝은 언젠가 찾아오는 법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우승으로 화려하게 국가대표 생활의 막을 내렸다.
4. 감독 경력
콜로 투레는 선수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코치와 감독으로서 경험을 쌓았다.
4.1. 보조 코치 활동
선수 생활을 마감한 2017년 8월 9일, 코트디부아르 축구 협회는 투레를 아프리카 네이션스 챔피언십 및 U-23 국가대표팀 코칭 스태프의 새로운 멤버로 임명했다. 같은 해 9월, 그는 셀틱의 기술 코치로 합류했다. 2019년 2월, 브랜든 로저스 감독이 셀틱을 떠나 레스터 시티로 옮기면서 투레도 로저스 감독을 따라 레스터 시티의 1군 코치로 합류했다. 그는 2022년 11월까지 레스터 시티에서 보조 코치로 경험을 쌓았다.
4.2. 위건 애슬레틱 감독
2022년 11월 29일, 위건 애슬레틱은 콜로 투레를 3년 반 계약으로 1군 감독에 선임했다. 당시 위건은 챔피언십 리그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었으며, 투레에게 팀을 재건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그러나 2023년 1월 2일, 투레의 팀은 4-1로 세 번째 연속 패배를 기록하며 챔피언십 리그 최하위로 떨어졌다. 결국 2023년 1월 26일, 위건은 투레를 해임했다. 그는 부임 후 9경기 동안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으며 (3무 6패), 감독 재임 기간은 불과 58일에 불과했다. 이는 그의 첫 1군 감독 도전이었으며, 아쉽게도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5. 개인사
콜로 투레의 개인적인 삶은 그의 가족 관계와 강한 종교적 신념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5.1. 가족 관계
콜로 투레는 이브라힘 투레와 야야 투레의 형이다. 이브라힘은 2014년에 28세의 나이로 암으로 사망했다. 그에게는 벨린다라는 여동생도 있다. 투레는 아워(Awo)와 결혼했으며, 2011년 기준으로 아들 야신(Yassine)과 딸 사니아(Sania)를 두었다. 그의 아들 야신도 축구 선수 경력을 추구하고 있으며, 2021년 12월 레스터 시티와 2년간의 장학금 계약을 체결했다. 투레 가족은 북런던에 거주 중이다.
5.2. 종교적 신념
투레는 이슬람교 신자이며, 이슬람 금식 기간인 라마단 동안 금식을 지킨다. 그는 금식이 자신에게 신체적으로 영향을 주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든다고 언급했다. 그는 "무언가를 강하게 믿을 때 할 수 있다. 보통 사람은 하루 이상 물 없이 지낼 수 있다"고 말했다.
6. 수상 및 업적
6.1. 클럽 수상
- ASEC 미모사
- 코트디부아르 프리미어 디비전: 2001, 2002
- CAF 슈퍼컵: 1999
- 아스널
- 프리미어리그: 2003-04
- FA컵: 2002-03, 2004-05
- FA 커뮤니티 실드: 2002, 2004
- 풋볼 리그 컵 준우승: 2006-07
-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2005-06
- 맨체스터 시티
- 프리미어리그: 2011-12
- FA컵: 2010-11
- FA 커뮤니티 실드: 2012
- 리버풀
- 풋볼 리그 컵 준우승: 2015-16
- UEFA 유로파리그 준우승: 2015-16
- 셀틱
- 스코티시 프리미어십: 2016-17
- 스코티시 리그 컵: 2016-17
- 스코티시 컵: 2016-17
6.2. 국가대표팀 수상
- 코트디부아르
-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2015 (우승), 2006, 2012 (준우승)
6.3. 개인 수상
-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토너먼트 팀: 2015
- 스탠다드 차타드 리버풀 이달의 선수: 2014년 11월
7. 통계
7.1. 클럽 통계
클럽 | 시즌 | 리그 | 내셔널 컵 | 리그 컵 | 유럽 대항전 | 기타 | 합계 | |||||||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
아스널 | 2002-03 | 26 | 2 | 5 | 0 | 1 | 0 | 7 | 0 | 1 | 0 | 40 | 2 | |
2003-04 | 37 | 1 | 5 | 2 | 2 | 0 | 10 | 0 | 1 | 0 | 55 | 3 | ||
2004-05 | 35 | 0 | 6 | 0 | 0 | 0 | 8 | 1 | 1 | 0 | 50 | 1 | ||
2005-06 | 33 | 0 | 0 | 0 | 0 | 0 | 12 | 1 | 1 | 0 | 46 | 1 | ||
2006-07 | 35 | 3 | 4 | 1 | 4 | 0 | 10 | 0 | - | 53 | 4 | |||
2007-08 | 30 | 2 | 2 | 0 | 0 | 0 | 9 | 0 | - | 41 | 2 | |||
2008-09 | 29 | 1 | 3 | 0 | 0 | 0 | 9 | 0 | - | 41 | 1 | |||
합계 | 225 | 9 | 25 | 3 | 7 | 0 | 65 | 2 | 4 | 0 | 326 | 14 | ||
맨체스터 시티 | 2009-10 | 31 | 1 | 1 | 0 | 3 | 1 | - | - | 35 | 2 | |||
2010-11 | 22 | 1 | 2 | 0 | 0 | 0 | 5 | 0 | - | 29 | 1 | |||
2011-12 | 14 | 0 | 0 | 0 | 3 | 0 | 3 | 0 | - | 20 | 0 | |||
2012-13 | 15 | 0 | 2 | 0 | 1 | 0 | - | 0 | 0 | 18 | 0 | |||
합계 | 82 | 2 | 5 | 0 | 7 | 1 | 8 | 0 | 0 | 0 | 102 | 3 | ||
리버풀 | 2013-14 | 20 | 0 | 2 | 0 | 2 | 0 | - | - | 24 | 0 | |||
2014-15 | 12 | 0 | 3 | 0 | 3 | 0 | 3 | 0 | - | 21 | 0 | |||
2015-16 | 14 | 1 | 0 | 0 | 4 | 0 | 8 | 0 | - | 26 | 1 | |||
합계 | 46 | 1 | 5 | 0 | 9 | 0 | 11 | 0 | 0 | 0 | 71 | 1 | ||
셀틱 | 2016-17 | 9 | 0 | 1 | 0 | 1 | 0 | 6 | 0 | - | 17 | 0 | ||
커리어 합계 | 362 | 12 | 36 | 3 | 24 | 1 | 90 | 2 | 4 | 0 | 516 | 18 |
7.2. 국가대표팀 통계
국가대표팀 | 연도 | 출전 | 득점 |
---|---|---|---|
코트디부아르 | 2000 | 1 | 0 |
2001 | 10 | 0 | |
2002 | 5 | 0 | |
2003 | 4 | 0 | |
2004 | 7 | 1 | |
2005 | 9 | 0 | |
2006 | 12 | 1 | |
2007 | 8 | 0 | |
2008 | 11 | 0 | |
2009 | 7 | 0 | |
2010 | 13 | 2 | |
2011 | 3 | 1 | |
2012 | 15 | 1 | |
2013 | 5 | 0 | |
2014 | 5 | 1 | |
2015 | 8 | 0 | |
합계 | 123 | 7 |
# | 날짜 | 장소 | 출전 | 상대팀 | 스코어 | 결과 | 대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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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2004년 4월 28일 | 엑스레뱅 스타드, 엑스레뱅, 프랑스 | 21 | 기니 | 2-1 | 4-2 | 친선 경기 |
2 | 2006년 10월 8일 | 펠릭스 우푸에-부아니 경기장, 아비장, 코트디부아르 | 47 | 가봉 | 3-0 | 5-0 | 2008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예선 |
3 | 2010년 6월 4일 | 투르비용 경기장, 시옹, 스위스 | 80 | 일본 | 2-0 | 2-0 | 친선 경기 |
4 | 2010년 8월 10일 | 불린 그라운드, 런던, 잉글랜드 | 84 | 이탈리아 | 1-0 | 1-0 | 친선 경기 |
5 | 2011년 10월 9일 | 펠릭스 우푸에-부아니 경기장, 아비장, 코트디부아르 | 88 | 부룬디 | 1-0 | 2-1 | 2012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예선 |
6 | 2012년 6월 9일 | 마라케시 경기장, 마라케시, 모로코 | 99 | 모로코 | 2-1 | 2-2 | 2014 FIFA 월드컵 아프리카 지역 예선 |
7 | 2014년 11월 14일 | 펠릭스 우푸에-부아니 경기장, 아비장, 코트디부아르 | 112 | 시에라리온 | 1-0 | 5-1 | 2015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예선 |
7.3. 감독 통계
팀 | 부터 | 까지 | 기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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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수 | 승 | 무 | 패 | 승률 | |||
위건 애슬레틱 | 2022년 11월 29일 | 2023년 1월 26일 | 9 | 0 | 3 | 6 | 0.0% |
총계 | 9 | 0 | 3 | 6 | 0.0% |
8. 일화 및 기타
- 콜로 투레가 아스널 입단 테스트를 받을 당시, 그는 너무 열정적으로 볼을 쫓아가다가 아르센 벵거 감독과 부딪혔다. 또한, 그 시험 경기에서는 데니스 베르캄프에게 거친 태클을 가하기도 했다.
- 2006년 8월, 투레는 아스널과 2010년까지의 재계약을 맺었으며 주급은 약 7.00 만 GBP를 받게 되었다. 그는 재계약 당시 "나는 나의 미래가 아스널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남은 선수 경력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왜 제가 떠나야 하나요? 저는 여기서 축구를 사랑하고, 가족들은 런던 생활에 익숙해졌습니다. 클럽은 야망을 갖추었고요. 환상적입니다"라고 말했다.
- 투레는 예전에 "아스널의 주장"이 되고 싶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는 실제로 2007년 1월 9일,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처음으로 아스널의 주장 완장을 찼으며, 이 경기에서 아스널은 안필드에서 6-3으로 승리했다.
- 투레는 2014년에 말라리아에 감염되었다고 공개했다.
- 조나단 바넷이 투레의 에이전트였다.
- 2015년 여름 프리시즌 투어에서 오스트레일리아를 방문했을 때, 투레는 코알라를 안는 것을 어려워하며 자신이 동물을 무서워한다는 것을 밝혔다.
- 투레는 국제 대회 은퇴를 선언하며 "끝은 언젠가 찾아오는 법"이라는 말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