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린 시절과 교육
조수미의 어린 시절은 음악적 재능의 조기 발현과 어머니의 엄격한 교육으로 특징지어지며, 이는 한국과 이탈리아에서의 체계적인 음악 교육으로 이어졌다.
1.1. 어린 시절과 음악적 재능
조수미는 1962년 경상남도 창원에서 조수경으로 태어나 서울특별시에서 성장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1950년대 한국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전문적인 음악 공부를 할 수 없었던 아마추어 가수이자 피아니스트였다. 어머니는 자신이 누리지 못한 기회를 딸에게 제공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조수미에게 4세부터 피아노 레슨을, 6세부터 성악 레슨을 받게 했다. 셋방살이를 하면서도 조수미의 부모는 그녀를 위해 고가의 피아노를 구입했다.
어머니는 조수미를 엄격하게 훈련시켰는데, 조수미는 어머니가 외출할 때면 자신이 딴짓을 할까 봐 문을 밖에서 잠그고 나갔던 것을 기억한다. 어린 시절 조수미는 하루에 최대 8시간까지 음악을 공부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8세 무렵에는 긴 연습에 지쳐 두 남동생에게 집을 나가겠다고 말하고 가출했다가 6시간 만에 돌아오기도 했다. 어머니는 조수미에게 "너는 나처럼 한 사람의 아내로 살기보다는 만인에게 사랑받는 성악가가 되어라"고 가르쳤다. 조수미의 어머니는 조수미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24시간 마리아 칼라스의 음악을 틀어놓았을 정도로 그녀의 음악적 재능을 키우는 데 지극정성이었다.
조수미는 글을 배우기 전에 피아노를 쳤을 정도로 음악 신동이었다. 한 점쟁이가 그녀가 너무 영악하면 단명할 것이라고 말하며 '무엇이든 두드리면 나쁜 기운이 빠져나갈 것'이라고 조언했고, 이에 부모는 피아노를 두드리면 되겠다고 생각하여 어렵게 피아노를 마련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비지스의 음악을 즐겨 듣는 등 팝이나 R&B를 좋아하기도 했다.
1.2. 학업 및 스승
1976년 조수미는 선화예술중·고등학교에 입학하여 1980년 성악과 피아노 두 분야에서 졸업장을 받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KBS 전국 어린이 노래자랑에 나가 준우승을 차지했는데, 이때 선화예술중학교의 교사였던 유병무를 만나게 되었다.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성악과 피아노 중 전공을 고민하던 조수미와 어머니에게 유병무는 조수미의 목소리가 만 명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한 독특한 목소리라며 성악을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조수미는 유병무의 지도 덕분에 변성기에도 목소리를 잘 관리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1981년부터 1983년까지 서울대학교 성악과에서 공부했으며, 학과 개설 이래 최고 실기 점수로 수석 입학했다. 서울대학교 재학 중 전문 독창회 데뷔를 가졌고, KBS와 여러 콘서트에 출연했으며, 서울 오페라단과 함께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서 수잔나 역으로 전문 오페라 데뷔를 했다. 여고 시절에는 당시 한국의 유명한 소프라노이자 서울대학교 교수였던 이경숙에게 레슨을 받았는데, 첫 만남에서 이경숙 교수는 조수미의 노래를 듣고 그녀를 끌어안으며 "너는 틀림없이 세계적인 성악가가 될 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대학 시절 조수미는 남자친구(K군)와의 연애에 몰두하여 학업 성적이 급격히 떨어졌고, 결국 학교에서 낙제점을 받아 제적되었다. 이에 충격을 받은 부모는 일방적으로 그녀의 이탈리아 유학을 결정했다. 유학 초기 남자친구의 이별 통보에 귀국하려 했으나, 어머니의 만류로 공부를 계속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조수미는 독하게 마음먹고 5년 동안 한국에 돌아오지 않고 학업에 전념했다.
1983년 조수미는 서울대학교를 떠나 로마의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 입학했다. 그녀의 스승 중에는 카를로 베르곤치와 지아넬라 보렐리가 있었다. 입학 실기 시험에서는 반주자가 오지 않아 교수들의 의심에도 불구하고 60명의 학생 곡을 모두 반주하고 자신의 노래를 불러 역대 최고 점수로 수석 입학했다. 유학 중에는 이탈리아 도시들에서 자주 콘서트에 출연하고 국영 라디오 및 텔레비전 방송에 나왔다.
유학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유학길에 오를 때 어머니가 준 돈은 단돈 300 USD뿐이었고,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초청받은 곳에서 음식을 싸와 다음 날 아침을 해결하기도 했다. 빈혈로 쓰러져 병원에 갔을 때는 의사로부터 건강을 챙기는 것이 노래보다 중요하다는 조언을 듣기도 했다. 집 문제도 어려웠는데, 노래 소리를 이해해주는 집주인을 찾기 어려웠고 이웃들의 불만으로 1년에 몇 차례씩 이사를 다녀야 했다. 소리를 죽여가며 노래를 부르고 이사한 지 몇 달도 안 돼 짐을 싸는 신세에 서러워 울기도 했다. 교통 문제도 고충이었는데, 버스로 학교까지 1시간이 걸리고 이탈리아의 불규칙한 버스 시간과 교통 체증으로 인해 한 번 외출하면 녹초가 되곤 했다. 결국 스페인 비냐스 국제 성악 콩쿠르에서 우승한 상금으로 가장 먼저 차를 구입했다.
유학 시절 조수미는 평생 성악가로 살아갈 확신은 없었지만, 자신이 재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른 학생들은 3시간씩 연습해야 했지만, 조수미는 레슨 직전에 5분만 봐도 악보를 외울 정도였고, 교수들의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날 교수가 그녀의 불성실함을 꾸짖으며 "네 자신이 떳떳하지 못한데 그런 모습으로 어떻게 관중을 만날 수 있나"라고 말했다. 조수미는 눈물을 흘리며 반성했고, 이때부터 부모의 강요가 아닌 가슴으로 음악을 느끼며 공부에 전념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보렐리, 발렌티니, 베르곤치 교수에게 사사하여 5년 과정을 2년 만에 조기 졸업했다. 1985년 졸업 후에는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에게 사사했다.
이탈리아 유학 중 조수경은 자신의 이름이 유럽 언어 사용자들에게 발음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어 '수미'를 예명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졸업 후 그녀는 서울, 나폴리, 엔나, 바르셀로나, 프리토리아 등 여러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1986년 8월, 그녀는 베로나에서 열린 카를로 알베르토 카펠리 국제 콩쿠르에서 만장일치로 1위를 차지했는데, 이 콩쿠르는 다른 주요 콩쿠르의 1위 수상자들만 참가할 수 있는 세계적인 대회였다.
2. 음악 활동
조수미의 전문적인 음악 경력은 유럽 데뷔부터 시작하여 세계적인 오페라 무대와 주요 지휘자들과의 협연, 그리고 다양한 음반 활동으로 이어지며 국제적인 명성을 쌓았다.
2.1. 유럽 데뷔 및 초기 경력
1986년 조수미는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의 베르디 극장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에서 질다 역으로 유럽 오페라 무대에 데뷔했다. 이 공연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주목을 받았고, 카라얀은 그녀를 1989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가면무도회에서 오스카 역으로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캐스팅했다. 페스티벌 리허설 중 카라얀이 사망하여 그녀는 그의 지휘 아래 무대에서 노래하지 못했지만(게오르그 솔티가 공연을 지휘했다), 1989년 초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제작된 가면무도회 스튜디오 녹음에서는 카라얀의 지휘로 노래했다.
1988년 조수미는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니콜로 좀멜리의 페톤테에서 테티스 역으로 데뷔했다. 같은 해 그녀는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와 데뷔했으며,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피가로의 결혼의 바르바리나 역을 노래했다.
1989년 조수미는 빈 국립 오페라와 데뷔했으며, 베르디의 가면무도회에서 오스카 역으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다시 출연했다. 같은 해 그녀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데뷔하여 다시 리골레토의 질다 역을 맡았다. 조수미는 이후 15년 동안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이 역할을 여러 차례 재연했다.
1990년 조수미는 시카고 리릭 오페라에서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 역으로 데뷔했다. 이듬해 그녀는 가면무도회의 오스카 역으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다시 출연했으며, 코벤트 가든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 데뷔하여 호프만의 이야기의 올림피아 역을 맡았다. 그녀는 이듬해 코벤트 가든으로 돌아와 사랑의 묘약의 아디나 역과 청교도의 엘비라 역을 노래했다.
1993년 조수미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도니체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타이틀 롤로 출연했으며, 잘츠부르크 페스티벌과 코벤트 가든에서 밤의 여왕 역을 노래했다. 이듬해 그녀는 로스앤젤레스 오페라에 데뷔하여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에서 소피 역을 맡았다. 1995년 그녀는 엑상 프로방스 페스티벌에서 오리 백작의 아델 백작부인 역을 노래했다.
2.2. 주요 오페라 배역
조수미는 주요 오페라 극장에서 다음과 같은 대표적인 배역들을 맡으며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 베르디의 리골레토의 질다
- 베르디의 가면무도회의 오스카
- 니콜로 좀멜리의 페톤테의 테티스
-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의 바르바리나
-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
-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의 올림피아
- 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의 아디나
- 벨리니의 청교도의 엘비라
- 도니체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루치아
-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의 소피
- 로시니의 오리 백작의 아델 백작부인
- 벨리니의 몽유병 여인의 아미나
- 벨리니의 카풀레티가와 몬테키가의 줄리에타
- 로시니의 이탈리아의 터키인의 피오릴라
- 라벨의 어린이와 마법의 아이
- 마이어베어의 디노라의 디노라
-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2007년 툴롱 오페라에서 첫 공연)
- 오베르의 프라 디아볼로의 제를린 (2008/2009 시즌 오페라 코미크에서 공연 예정)
특히 슈트라우스가 1912년에 작곡한 낙소스섬의 아리아드네 중 '체르비네타의 아리아'는 20분이 넘는 길이와 수많은 최고음으로 인해 매우 어려운 곡으로 알려져 있다. 슈트라우스는 이 곡을 부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여 악보의 일부를 수정했지만, 1994년 조수미는 세계 최초로 수정되지 않은 원본 버전으로 이 곡을 녹음하는 기록을 남겼다. 그녀는 이 녹음이 자신의 음악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작업이었다고 회고했다.
2.3. 협연 및 주요 공연
조수미는 수많은 교향악단과 협연하며 콘서트 무대에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그녀가 함께한 오케스트라로는 밴쿠버 심포니 오케스트라, 신시내티 팝스 오케스트라, 세인트 루크 오케스트라,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할리우드 볼 오케스트라 등이 있다.
그녀는 게오르그 솔티 경, 주빈 메타, 로린 마젤, 제임스 레바인, 켄트 나가노, 리처드 보닝과 같은 세계적인 지휘자들과 함께 작업했다. 또한 유럽, 미국, 캐나다, 호주 전역에서 독창회를 가졌다.
2002년에는 KBS의 2002 FIFA 월드컵 중계방송 테마곡인 "더 챔피언스(The Champions)"를 불렀다. 2008년에는 르네 플레밍, 안젤라 게오르기우와 함께 베이징 올림픽에 참여하여 세계 3대 소프라노의 자격으로 특별 무대에 올랐다.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시 성모대축일 미사 전 환영 행사에서 "넬라 판타지아" 등 총 3곡을, 교황 집전 미사 중 가톨릭 성가 '생명의 양식'을 부르는 영예를 안았다. 2018년 3월 9일, 조수미는 2018 평창 동계 패럴림픽 개막식에서 동료 가수 소향과 함께 특별 녹음된 듀엣곡 "히어 애즈 원(Here As One)"을 불렀다.
2.4. 국제적 명성 및 활동
조수미는 세계적인 음악계에서 독보적인 존재감과 영향력을 발휘했다. 20세기 최고의 지휘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그녀의 목소리를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 "하늘에서 내려온 목소리"라고 극찬했다. 카라얀은 또한 "한국에서 배웠다니 놀랍다. 한국에도 그렇게 뛰어난 선생들이 있단 말인가? 한국은 대단한 나라이다"라고 감탄하기도 했다. 주빈 메타는 조수미를 "100년에 한두 사람 나올까 말까 한 목소리의 주인공"이라고 극찬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뉴스는 "그녀의 노래는 이미 비평을 넘어섰다"고 평했으며, 프랑스의 르 몽드지는 "요정도 그녀의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고 극찬했다.
조수미는 동양인 최초로 국제 콩쿠르 6개를 석권했으며, 세계 5대 오페라 극장(라 스칼라 극장,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코벤트 가든, 빈 국립 오페라,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주연으로 공연한 동양인 최초의 프리마돈나로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 1993년에는 이탈리아 최고 소프라노에게만 수여하는 황금기러기상을 동양인 최초로 수상했다. 2008년에는 이탈리아인이 아닌 사람으로서는 처음으로 국제 푸치니상을 수상했다.
2002년 조수미는 유네스코에서 '세계의 평화 음악인'으로 지정되어 세계 평화 및 문화유산 보존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2011년에는 미국 HBO 미니시리즈 밀드레드 피어스에서 베다 피어스 역의 노래 목소리를 제공했다. 2021년에는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의 초빙교수로 임명되었다. 2021년 국제 무대 데뷔 35주년을 맞이하여 한국인 최초로 '아시아 명예의 전당'에 선정되었다. 2023년 10월에는 한국 문화 진흥에 기여한 공로로 1등급 금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2015년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영화 유스에 출연하여 데이비드 랭이 작곡한 "Simple Song Number 3"를 불렀는데, 이 곡은 2016년 제88회 아카데미상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다. 조수미는 시상식에 초청되어 참석했지만, 이 곡을 부르도록 초청받지는 못했다. 이는 당시 아카데미 시상식의 인종 다양성 부족 논란과 간접적으로 연결되며 아쉬움을 낳았다. 시상식 전 레드카펫에서 조수미와 데이비드 랭은 제작진의 결정에 대한 실망감을 표명했다.

3. 음반 및 디스코그래피
조수미는 1986년 유럽 오페라 데뷔 이후 40개 이상의 앨범을 발표했으며, 솔로 앨범, 오페라 녹음, 크로스오버 앨범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폭넓은 디스코그래피를 구축했다.
3.1. 솔로 및 정규 앨범
조수미는 클래식과 크로스오버를 넘나들며 다양한 솔로 및 정규 앨범을 발표했다.
- 카르나발! 프렌치 콜로라투라 아리아 (Decca Records, 1994년 1월)
- 새야 새야 (Nices, 1994년 6월) - 한국 가곡집으로 40만 장 이상 판매되었다.
- 비르투오소 아리아스 (Erato Records, 1994년 8월)
- 피터와 늑대 (한국어 버전) (Erato Records, 1995년 3월)
- 아리 아리랑 (Nices, 1995년 9월)
- 조수미 싱스 모차르트 (Erato Records, 1995년)
- 벨 칸토 (Erato Records, 1996년)
- 라이브 앳 카네기 홀 (Erato Records, 1997년)
- 라 프로메사 (Erato Records, 1998년 9월)
- 레 비주 (Erato Records, 1998년 12월)
- 에코스 프롬 비엔나: 트리뷰트 투 요한 슈트라우스 (Erato Records, 1999년 4월)
- 온리 러브 (Erato Records, 2000년 3월) - 첫 크로스오버 앨범으로, 대한민국에서 105.50 만 KRW 이상 판매되어 클래식 음악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 오페라 러브 (Decca Records, 2000년 12월)
- 프레이어스 (Erato Records, 2001년 1월)
- 더 크리스마스 앨범 (Erato Records, 2001년 9월)
- 향수 (ENE Media, 2002년 9월) - 첫 순수 한국 가곡집이다.
- 비 해피: 폴링 인 러브 위드 무비 (Warner Classics, 2004년 7월)
- 바로크 저니 (Warner Classics, 2006년 1월) - 한국 성악가 최초의 바로크 음반이다.
- 조수미 101 (Warner Music, 2007년 12월)
- 미싱 유 (Deutsche Grammophon, 2008년 10월)
- 더 조수미 컬렉션 (Warner Classics, 2009년 8월)
- 이히 리베 디히 (Deutsche Grammophon, 2010년 1월 1일) - 독일 가곡 앨범이다.
- 리베라 (Deutsche Grammophon, 2011년 1월 1일)
- 라 루체: 조수미 싱스 이고르 크루토이 (Universal Music, 2012년 12월 27일)
- 온리 바흐: 칸타타스 포 소프라노, 바이올린 & 기타 (Deutsche Grammophon, 2014년 1월 1일) - 첫 바흐 아리아 앨범이다.
- 그.리.다. (Universal Music, 2015년 8월 27일) - 첫 가요 앨범이다.
- 라 프리마 돈나: 30주년 데뷔 기념 (Universal Music, 2016년 8월 23일)
- 마더 (Universal Music, 2019년 4월 18일)
- LUX3570, 이 무지치와의 협업 (Decca Records, 2021년 12월 10일)
- 사랑할 때 (Warner Music, 2022년 12월 6일)
조수미는 국내 클래식 연주자 중 단연 독보적인 앨범 판매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팝페라 테너 임형주와 더불어 누적 앨범 판매량 100만 장 이상을 기록한 단 두 명의 클래식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3.2. 오페라 녹음
조수미가 참여한 주요 오페라 녹음 목록은 다음과 같다.
- 로시니: 오리 백작 (Philips Classics Records, 1988) - 그녀의 첫 앨범이다.
- 슈트라우스: 그림자 없는 여인 (Decca Records, 1989) - 이 앨범으로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 베르디: 가면무도회 (Deutsche Grammophon, 1989) -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마지막 녹음이다.
- 모차르트: 마술피리 (Decca Records, 1990)
- 로시니: 이탈리아의 터키인 (Philips Classics Records, 1991)
- 모차르트: 마술피리 (Decca Records, 1992) - 게오르그 솔티의 강력한 요청으로 에라토 레코드사와 데카 레코드사 간의 협의를 통해 3년 동안 3개의 마술피리 음반에 참여했다. 솔티는 조수미를 "내가 만난 최고의 밤의 여왕"이라고 극찬했다.
- 오베르: 검은 도미노 (Decca Records, 1993)
- 슈트라우스: 낙소스섬의 아리아드네 (Virgin Classics, 1994)
- 로시니: 탄크레디 (Naxos Records, 1994)
- 오펜바흐: 호프만의 이야기 (Erato Records, 1996)
- 아당: 투우사 (Decca Records, 1997)
- 벨리니: 노르마 (Decca Records, 2013)
3.3. 기타 참여 음반 및 싱글
조수미는 다양한 컴필레이션 앨범, 사운드트랙, 싱글에도 참여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다.
- 기타 앨범 참여**:
- 베를린 필하모니: 갈라 오페라 콘서트 (Capriccio, 1988)
- 말러: 교향곡 8번 마장조 '천인 교향곡' (Deutsche Grammophon, 1990)
- 로시니: 영광의 미사곡 (Philips Classics Records, 1992)
- 오르프: 카르미나 부라나 (Warner Classics, 1992)
- 바흐 이후의 레퀴엠 (Black Box Classics, 1995)
- 아베 마리아: 마리아의 신화 (Teldec, 1999)
- 케니 지의 리듬 앤 로맨스 한국어 버전 중 "미라메 바일라르" (Concord Records, 2008)
- 싱글**:
제목 연도 비고 "Hijo de la Luna" (달의 아들) 2011 리베라 앨범 수록곡 "드림 오브 평창" (평창의 꿈) 2013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공식 주제가 "문 플라워" (with 시크릿 가든) 2014 "위 아 원" (우리는 하나야) (with YB) 2015 2015 DMC 페스티벌 주제곡 "아임 어 코리안" (with 윤일상) 2019 3·1 운동 100주년 기념 발매 "라이프 이즈 어 미라클" (with 지오반니 알레비 and 페데리코 파치오티) 2020 자선 싱글 "가디언스" (수호신) (with 비) 2021 유니버스 홍보 싱글 "쿠오레 인디고" (with 이루마) 2021 "위 윌 비 원" (함께) 2022 2030 부산 세계 박람회 유치 응원가 "러브 러브" 2023 - 사운드트랙 참여**:
제목 연도 앨범/작품 "보칼리제" 1999 나인스 게이트 (오리지널 모션 픽처 사운드트랙) "송인" (送人) 2000 허준 OST "나 가거든" 2001 명성황후 OST "이젠 잊기로 해요" 2006 소문난 칠공주 OST "사랑의 기억" 2006 주몽 OST "지옥의 복수심이 내 마음에 끓어오른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중) (with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2010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오리지널 모션 픽처 사운드트랙) "러브 네버 다이즈" (한국어 버전) 2010 러브 네버 다이즈: 아시아 에디션 "퀴 라 보체" (벨리니의 청교도 중) 2011 밀드레드 피어스 (HBO 미니시리즈 음악) "아임 올웨이즈 체이싱 레인보우스" 2011 밀드레드 피어스 (HBO 미니시리즈 음악) "Simple Song Number 3" 2015 유스 (모션 픽처 음악) "그대 없는 날" 2015 히말라야 OST "오리엔탈 퍼포먼스" 2018 로로 (오리지널 모션 픽처 사운드트랙) "파이트 포 러브 (아리아 포 미스)" 2021 시지프스: the myth OST "민들레야" 2022 커튼콜 OST "내겐 오늘" 2023 마에스트라: 스트링스 오브 트루스 OST - DVD**:
- 조수미 인 파리 - 포 마이 파더 (2006)
4. 영화 및 방송 출연
조수미는 음악 활동 외에도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등 다양한 미디어에 출연하며 대중과의 접점을 넓혔다.
4.1. 영화 및 드라마 출연
연도 | 제목 | 역할 |
---|---|---|
2015년 | 영화 유스 | 본인 역 |
2011년 | KBS2 드라마 드림하이 시즌1 | 특별 출연 |
4.2. 예능 및 기타 방송 출연
연도 | 방송사 | 프로그램 | 비고 |
---|---|---|---|
1997년/2002년 | KBS1, KBS2 | TV는 사랑을 싣고 | 게스트 |
2007년 | KBS2 | 불후의 명곡 | 게스트 |
2019년 | KBS2 | 대화의 희열 | 10회, 11회 출연 |
2021년 | tvN | 유 퀴즈 온 더 블럭 | 108회 출연 |
2022년 | 넷플릭스 | 테이크 원 | 참가자 |
2024년 10월 9일 | SBS | 골 때리는 그녀들 | 국가대항전 한일전 축하 공연 |
5. 조수미 국제 성악 콩쿠르
2024년 7월 7일부터 13일까지 프랑스 중부 루아르 지방의 샤토 드 라 페르테 엥보(Chateau de La Ferte-Imbault)에서 '제1회 조수미 국제 성악 콩쿠르'가 개최되었다. 이는 국제 무대에서 한국 음악가의 이름을 딴 최초의 국제 콩쿠르이다.
이 콩쿠르는 18세부터 32세까지의 오페라 스타를 꿈꾸는 전 세계 성악도를 대상으로 하며, 전 세계 47개국에서 500여 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심사위원으로는 조수미 외에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예술 고문 조나단 프렌드,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의 캐스팅 디렉터 알렉산더 갈로피니, 세계적인 클래식 음반사인 워너 클래식과 에라토의 사장 알랭 랜서로 등 클래식 분야의 대가들이 참여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제1회 조수미 국제 성악 콩쿠르'를 공식 후원하며 대회 기간 동안 오디션 외 현장에서 진행되는 리사이틀 및 갈라 콘서트 등을 지원했다.
6. 수상 및 영예
조수미는 뛰어난 음악적 재능과 문화적 기여를 인정받아 국내외에서 수많은 권위 있는 상과 영예를 받았다.
6.1. 주요 음악 관련 수상
연도 | 수상명 | 비고 |
---|---|---|
1985년 | 이탈리아 비오티 국제 음악 콩쿠르 | 성악 부문 1등 |
1985년 | 이탈리아 존타 국제 콩쿠르 | 1등 |
1985년 | 이탈리아 시칠리안느 국제 콩쿠르 | 1등 |
1985년 | 이탈리아 나폴리 존타 국제 콩쿠르 | 1등 |
1985년 | 스페인 비냐스 국제 성악 콩쿠르 | 여성 성악 부문 |
1986년 | 남아프리카 공화국 유니사 국제 음악 콩쿠르 | 성악 부문 |
1986년 | 이탈리아 카를로 알베르토 카펠리 국제 콩쿠르 | 1등 (베로나) |
1992년 | 홍난파 기념상 | 난파상 |
1993년 | 그래미상 | 클래식 오페라 부문 최고 음반 (그림자 없는 여인) |
1993년 | 이탈리아 황금기러기상 | |
1994년 | 칠레 최고의 소프라노상 | |
1994년 | 김수근 공연예술상 | |
1996년 | 영국 클래식CD 선정 | 96 베스트셀러 음반상 |
1996년 | 제1회 한중청년학술상 | 음악 부문 |
1997년 | 프랑스 문화계 비평가 선정 | 성악 부문 음반상 |
1997년 | 제5회 KBS 해외동포상 | |
2008년 | 국제 푸치니상 | |
2012년 | PETA 공로상 | |
2013년 | 제7회 대원음악상 | 대상 |
2015년 | 제24회 티베리니 금상 | |
2022년 |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 CICI Korea 2022 | 주춧돌상 |
6.2. 국가 및 문화 훈장
국가/기관 | 연도 | 훈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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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 2018년 | 이탈리아의 별 훈장 |
대한민국 | 1995년 | 대한민국 문화훈장 |
대한민국 | 2006년 | 자랑스런 한국인 문화예술 부문 대상 |
대한민국 | 2006년 |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
대한민국 | 2023년 | 금관문화훈장 (1등급) |
7. 개인사
조수미의 개인적인 삶은 예술에 대한 깊은 헌신과 가족에 대한 사랑, 그리고 동물 권리 옹호 등 사회 활동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를 보여준다.
7.1. 가족 및 개인적 신념
조수미는 배우 유건의 5촌 고모(그의 아버지의 사촌 누이)이다. 2006년 파리에서 중요한 독창회가 있던 날 아버지 조언호가 별세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공연을 취소하고 귀국하려 했으나, 어머니는 "많은 사람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너의 본분이고, 노래를 해서 그 음악회를 아버지께 바치는 것이 너의 본분이다"라고 말했다. 조수미는 어렵게 파리 공연을 마친 후 눈물을 흘리며 앙코르 곡으로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Oh Mio Babbino Caro)"와 한국 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불렀다. 관객들의 박수가 그치지 않자 "고국에서 아버지 장례식이 열리고 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노래를 바친다"며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를 슬픔을 삼키며 마지막 곡으로 불렀다. 그녀의 노래가 끝나자 파리 샤틀레 극장을 메운 청중들은 모두 기립박수를 보냈고, 눈물을 흘리는 관객들도 적지 않았다.
2021년에는 어머니 김말순이 10년간의 알츠하이머병 투병 끝에 85세로 별세했다. 당시 이탈리아에 있던 조수미는 코로나19 격리 규정으로 인해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조수미는 2016년 기준으로 미혼이며, 요크셔 테리어와 셰퍼드 두 마리의 개와 함께 살고 있다. 1990년대에는 결혼을 약속했던 프랑스인 남자친구도 있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그녀는 "내 인생에서 나의 목소리와 음악은 많은 사람들에게 속해 있으며, 또한 현실적으로도 늘 여행을 다니기 때문에, 한 남자에게 진정으로 소속될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신 SNS를 통해 사람들과 사랑을 나눈다고 한다.
그녀는 페스카테리언으로, 동물권리 옹호와 동물 보호(특히 개)를 위해 힘쓰고 있으며, 관련 기관에 수차례 기부를 하기도 했다. 또한 아동 관련 기관과 그 외 여러 방면에도 꾸준히 기부하고 있다. 조수미는 성대 보호를 위해 매운 음식을 피하며, 드레스를 입어야 하는 체형 유지를 위해 감자튀김과 같은 음식도 피한다. 좋아하는 음식은 피자, 파스타, 쌀밥, 리소토 등이다.
조수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시 성모대축일 미사 전 환영 행사에서 공연하는 영예를 안았다. 그녀는 아이들이 아이답게 많이 놀고 독서하며 자연과 함께 지내면서 아름답고 순수하게 자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적 충분히 놀지 못했던 그녀는 아직도 곰인형 같은 장난감을 좋아한다. 그녀는 예술이란 아름다운 혼이나 생각이 음악을 통해 나타나 사람들의 귀만 즐거운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수미는 목젖이 없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녀의 주치의는 조수미가 노래를 잘하는 이유가 목젖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녀는 평소 외모에 별로 신경 쓰지 않으며 화장기 없이 편하게 다닌다. 그래서 옆집 사람이 조수미인 줄도 모르고 연습하는 소리가 크다고 항의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수많은 공연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떨린다고 말하며, 이러한 긴장을 풀기 위해 빨래를 한다고 한다. 빨래를 하면서 노래에 대한 생각을 한다고 한다.
조수미는 음악인으로서, 한국인으로서 많은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고 싶으며 그런 기회가 감사하다고 말했다. 또한 "예술가로서 깨끗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는 "선하지 않고 지저분한 사람의 노래는 아무리 잘해도 감동이 오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세상을 순수하게 살고 그런 마음이 노래에 나타날 것이라 생각한다. 조수미는 한국의 노래를 앙코르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그녀는 "예술가는 결국 영감의 원천을 준 고국의 품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라고 생각한다. 성악가로 성공한 조수미는 그러나 "다시 태어난다면 그냥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오순도순 여자로서 완벽한 행복을 맛보고 싶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녀는 "한 달 동안 노래하지 못하는 것과 일 년 내내 노래만 하는 것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면 단연코 일 년 내내 노래하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노래 부르는 것이 즐겁다고 한다.
그녀는 숫자 개념이 없는 것이 고민이라고 말한다. 한때는 호텔에 묵는데 커피 두 잔을 시킨 것이 호텔 측의 착오로 2,222잔을 시킨 것으로 계산되어 고액의 이용료를 지불할 뻔했으나 매니저가 알아차리고 항의한 적도 있었다.
7.2. 사회 활동 및 옹호
조수미는 PETA 아시아 태평양 지부의 2008년 첫 베스트 드레서 목록에 오른 5명의 아시아 유명인사 중 한 명으로, 동물권리 옹호자이다.
그녀는 다양한 국제 행사의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사회적 기여를 이어갔다.
연도 | 활동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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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 PETA 홍보대사 |
2012년 5월 |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홍보대사 |
2011년 5월 |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홍보대사 |
2010년 7월 |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위원회 홍보대사 |
2010년 | 대한적십자사 친선대사 |
2007년 8월 | 여수 엑스포 홍보대사 |
2006년 12월 | 평창 동계 올림픽 명예 홍보대사 |
2002년 | 세계박람회유치위원회 홍보대사 |
2002년 | 외교통상부 홍보대사 |
조수미는 축구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져 있으며, 2002년 FIFA 월드컵 때 "챔피언스(Champions)"라는 월드컵 응원가를 발표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8. 평가 및 영향력
조수미는 독보적인 음악적 기량과 깊이 있는 해석으로 클래식 음악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8.1. 음악적 영향력 및 비평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1912년에 작곡한 낙소스섬의 아리아드네 중 '체르비네타의 아리아'는 최고음으로 20분이 넘도록 쉬지 않고 불러야 하는 고난도 곡이어서 슈트라우스는 이 곡을 부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여 악보의 일부를 수정했었다. 그러나 1994년 조수미는 세계 최초로 수정되지 않은 원본 버전으로 이 곡을 녹음하는 기록을 남겼다. 그녀는 프랑스 리옹에서 일본계 미국 지휘자 켄트 나가노와 녹음했는데, 이 녹음이 젖 먹던 힘까지 다 써버릴 정도로 가장 힘든 녹음이었다고 저서에서 적고 있다.
조수미는 동양인 최초로 국제 콩쿠르 6개를 석권했으며, 세계 5대 오페라 극장에서 주연으로 공연한 동양인 최초의 프리마돈나로,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1993년에는 동양인 최초로 이탈리아 황금기러기상을 수상했다.
20세기 최고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그녀의 목소리는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라고 극찬하며 "하늘에서 내려온 목소리"라고 표현했다. 카라얀은 또한 "한국에서 배웠다니 놀랍다. 한국에도 그렇게 뛰어난 선생들이 있단 말인가? 한국은 대단한 나라이다"라고 감탄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뉴스는 "그녀의 노래는 이미 비평을 넘어섰다"고 평했으며, 프랑스의 르 몽드지는 "요정도 그녀의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고 평가했다.
2008년에는 르네 플레밍, 안젤라 게오르기우와 함께 세계 3대 소프라노로 선정되어 베이징 올림픽 행사에 참여했다. 조수미는 평범한 성악가로 남기보다는 스스로를 '엔터테이너'(노래뿐 아니라 의상, 세팅 등 아티스트가 가진 모든 것을 보여주는, 늘 새로운 음악으로 음악적 재능을 마음껏 펼치는 만능 음악인)이고 싶다고 한다. 그녀는 "정통 성악에서 벗어난 '외도'에 대해 보수적인 분들은 이런저런 말씀을 하시지만 20년간 정말 자신감을 갖고 했지,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결과는 어떨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다"고 하며,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아티스트로 남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라고 한다.
조수미는 국내 클래식 연주자들 중 단연 독보적인 앨범 판매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녀가 2000년 발매한 첫 크로스오버 앨범 온리 러브는 105.50 만 KRW 이상 판매되어 클래식 음악 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또한 1994년 발매한 한국 가곡집 새야 새야가 40만 장 이상 판매되는 등 수많은 앨범을 메가히트시킨 연주자이다. 데뷔 25년 차가 지난 근래에 이르러서는 오페라 출연보다는 음반 작업과 더불어 주로 독창회나 콘서트를 통한 전 세계 연주 여행을 다니며 관중과 일대일로 만나는 무대에 서는 것을 선호한다고 한다.
유튜브에도 있는 조수미가 카라얀 앞에서 노래를 하는 유명한 영상은 '짤츠부르크의 카라얀'이라는 제목으로 카라얀 사망 이후 출반된 비디오이다. 1987년에 다큐멘터리로 촬영되었으며, 영상에서 조수미와 듀엣을 부르는 여자는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메조 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이며, 조수미가 밤의 여왕 "O zittre nicht"를 부를 때 옆에 앉아 있는 남자는 이탈리아의 바리톤 루치오 갈로이다. 다 같이 신인급인데 카라얀은 다른 두 사람은 제쳐두고 조수미와만 계속 대화를 하는데, 이는 카라얀이 조수미를 얼마나 총애했었는지 알 수 있다. 이 영상으로 조수미는 국제 무대에서 인지도가 단박에 뛰게 된다.
8.2. 문화적 기여
조수미는 해외에서 활동하며 한국이라는 나라의 인지도가 낮아 공항에서 여권을 제시하면 한국을 몰라 설명하느라 비행기가 제때 못 뜨는 경우가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에 조수미는 "한국이 빨리 커야 되겠다. 한국에 좋은 일이 있도록 나도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래서 조수미는 한국에서 국제적인 행사가 있으면 다른 스케줄을 뒤로하고 우선적으로 오길 원했으며, 이를 이해하지 못한 외국인 매니저와 싸우는 일도 잦았다. 조수미는 "자기 나라의 색깔을 풍기는 사람이 진정한 예술가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수미와 앙드레 김과의 인연도 유명하다. 가난한 예술가였던 조수미는 한 벌에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드레스 대신 시장에서 원단을 끊어 연주회용 의상을 만들어 입어야 했다. 1988년 첫 귀국 독창회에서, 공연장에 온 앙드레 김은 아름다운 목소리에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드레스를 입은 조수미를 보고 직접 연락하여 앞으로 드레스를 만들어주겠다고 제안했다. 그 약속은 20년이 넘게 이어졌고, 세계 무대에서 조수미는 앙드레 김의 의상을 입고 노래했으며, 그간 입은 드레스가 200벌이 넘는다고 한다. 조수미의 한국 공연이 있을 날이면 무대 중앙 제일 앞자리에는 앙드레 김을 위한 자리가 항상 준비되었고, 공연이 끝나 커튼콜을 할 때면 조수미는 오래전부터 자신을 후원해 준 앙드레 김을 소개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도록 했다. 2010년 앙드레 김이 세상을 떠나자, 조수미는 앙드레 김을 애도하는 마음을 담아 헌정 공연을 열고 카치니의 "아베마리아"를 불렀다. 앙드레 김이 세상을 떠났을 당시 조수미는 해외에 머물고 있었는데, 한걸음에 한국으로 들어와 고인의 빈소를 찾았고 오랜 시간 머물며 슬픔에 잠겨 있었다. 조수미는 한국 디자이너의 한국미가 넘치는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공연하는 것이 늘 자랑스러웠으며, 공연이 끝나면 드레스가 너무 예쁘다고 어느 디자이너의 작품이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았다고 저서에 적고 있다.
1997년 한국의 외환 위기 발생 직후 당시 주불 한국대사는 프랑스 대기업 총수들을 한자리에 모으려 했지만 쉽지 않자 로마의 조수미에게 협조를 요청했다. 평소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초대를 거절하던 대기업 회장들이 조수미의 독창회가 곁들여진 저녁 식사에는 부부 동반으로 참석했다고 하는 일화가 있다. 또한 그녀의 열렬한 팬인 영국 에드워드 왕자 부부의 포르투갈 공식 방문에 특별 초청되어 포르투갈 대통령과 주요 각료, 영국 왕실 가족 등이 참석한 독창회에서 양국 민요와 한국 가곡을 부른 적도 있을 정도로 유럽 내 조수미의 인기는 대단했다. 포르투갈에서는 그녀의 앨범 온리 러브가 히트하며 2000년 포르투갈 최고 인기 아티스트로 선정되기도 했다.
조수미는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유럽에서 통용될 수 있는 언어는 대부분 소통이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고, 러시아어까지 구사 가능하다고 한다.
9. 관련 항목
- KAI - 뮤지컬 배우로, 어린 시절부터 팬이었던 조수미로부터 예명 KAI를 받았다.
- 유스 -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2015년 영화로, 조수미가 본인 역으로 출연했다.
-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 1997년에 출간된 조수미의 저서.
- 조수미의 아름다운 도전 - 2007년에 출간된 조수미의 저서.
- 꿈꾸는 프리마돈나 조수미 - 2010년에 출간된 조수미의 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