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초반 및 교육
비탈리 레온티예비치 뭇코는 1958년 12월 8일 소련 크라스노다르 지방 압셰론스키 지구 쿠린스카야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빅토르 레온티예비치 뭇코였으나, 대학 졸업 전에 비탈리(Vitaly)로 이름을 변경했다.
그는 1977년 선박 기술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며, 레닌그라드의 강 직업 전문 대학에 입학하여 1987년에 졸업했다. 학업 중 콤소몰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해당 학교의 콤소몰 서기를 맡기도 했다. 1980년에는 소련 공산당에 입당했다. 이후 레닌그라드 수로 교통 대학을 거쳐 1999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주립 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하며 법학 학위를 취득했다.
2. 초기 경력 및 정치 입문
1977년 레닌그라드 북서부 강 선박 회사 항만 관리 부서에서 선박 기술자로 일하기 시작한 뭇코는 1983년 레닌그라드 키로프스키 지구 집행위원회에 선출되어 근무를 시작하며 정치에 입문했다. 그는 이후 키로프스키 지구 집행위원회 사회 부서장과 서기를 역임했다. 1990년에는 키로프스키 지구 인민 대표로 선출되어 1991년까지 지구 집행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1992년, 뭇코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청에 입성하여 부시장 겸 시 사회 문제 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었으며, 1996년까지 이 직책을 수행했다. 이 시기에 그는 당시 시 대외 관계 위원회 위원장이던 블라디미르 푸틴과 긴밀히 협력했다. 두 사람은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에서 열린 최초의 대규모 스포츠 행사인 1994년 굿윌 게임을 조직하는 데 기여하며 긴밀한 관계를 구축했다.
3. 스포츠 행정가 경력
뭇코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시 정부에서의 경력을 발판 삼아 스포츠 행정 분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1997년에는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회장으로 취임하여, 재임 기간 동안 클럽의 스포츠적 명성과 경제적 기반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01년, 그는 러시아 프리미어리그를 창설하고 초대 회장에 취임하여 2003년까지 재임했다. 2002년에는 러시아 패럴림픽 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었으며, 지적 장애인을 위한 지원 단체 위원회 의장으로서 장애인 스포츠 발전과 재활 프로그램 개발에도 기여했다. 2005년 4월에는 러시아 축구 협회 회장에 선출되어 2009년 11월까지 직책을 수행했다. 이 기간 중 2006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주립 대학교에서 "체육 및 스포츠 발전에 있어 시장과 공공 규제 기관의 상관관계"라는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발표하고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9년, 그는 FIFA 집행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며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했다. 특히 2018년 FIFA 월드컵 유치전에서 러시아 유치 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유치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15년 9월 2일, 그는 정부 관계자가 스포츠 단체의 최고 직책을 맡을 수 없다는 규정에도 불구하고 2015년 7월 특례 조항이 마련되면서 무투표로 러시아 축구 협회 회장에 재선되었다. 2016년 9월 24일에는 발레리 가자예프를 상대로 266 대 142표를 얻어 4년 임기의 회장으로 다시 선출되었다.
그러나 2017년 3월, FIFA는 그의 장관직이 정치적 중립성 및 정부 개입 방지 규정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FIFA 평의회 재선 출마를 금지했다. 2017년 12월 25일, 그는 올림픽 참가 금지 처분에 항소하기 위해 6개월간 러시아 축구 협회 회장직에서 일시적으로 물러난다고 발표했다. 스포츠 중재 재판소가 2019년 7월 그의 올림픽 참가 금지 처분을 철회한 후에도, 그는 2018년 12월 19일 러시아 축구 협회 회장직에서 최종적으로 사임했다.

4. 정치 및 정부 경력
2003년 10월 29일, 뭇코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정부 대표로 러시아 의회 상원인 연방평의회 의원에 임명되었다. 그는 2008년까지 이 직책을 유지했다.
2008년 5월 12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러시아 대통령에 의해 러시아 스포츠·관광·청소년 정책부 장관으로 임명되며 중앙 정부의 요직을 맡게 되었다. 이후 2012년 5월 21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복귀하면서 러시아 스포츠부 장관으로 재임명되었다.
2016년 10월 19일, 그는 러시아 부총리로 승진했다. 그의 후임 스포츠부 장관으로는 그의 차관이었던 파벨 콜롭코프가 임명되었다. 2018년 5월 18일, 그는 부총리로 재임명되었으나, 이번에는 스포츠 관련 업무 대신 건설 및 지역 개발 분야를 담당하게 되었다.
2020년 1월 15일, 푸틴 대통령이 헌법 개정안을 제안하는 연설을 발표한 후 내각의 일원으로서 사임했다. 그는 1월 21일 마라트 후스눌린으로 대체되었다. 1월 29일, 뭇코는 러시아의 주택담보대출 및 부동산 시장 관련 국영 기업인 도므.르프(DOM.RF)의 최고경영자(CEO)로 임명되며 새로운 경력을 시작했다.

5. 논란 및 주요 사건
뭇코의 경력은 여러 주요 논란과 사건들로 점철되어 있다.
5.1. 월드컵 유치 논란
뭇코는 러시아의 성공적인 2018년 FIFA 월드컵 유치 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으나, 경쟁국인 잉글랜드의 유치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하며 논란을 빚었다. 그는 잉글랜드 축구가 부패했다고 시사하는 발언을 하여 비난을 받았다. 이에 대해 뭇코는 "내 말은 때때로 잉글랜드 언론이 러시아에 부패가 있다고 말하지만, 깊이 파고들면 어느 나라에서나 부패를 찾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고 해명했다.
5.2. 부패 의혹
2010년 밴쿠버 올림픽 기간 동안 뭇코는 러시아 선수단을 이끌고 캐나다를 방문했다. 이후 러시아 의회의 감사원 보고서는 그가 20일간의 체류 기간 동안 총 97회의 아침 식사 비용으로 총 4500 USD를 청구했다고 비판했다. 그의 호텔 숙박비는 1박에 1499 USD가 청구되었다고 알려졌다. 전체적으로 뭇코는 공식 한도의 12배를 초과 지출한 것으로 지적되었다. 이에 대해 뭇코는 베도모스티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나를 비난하려는 사람들은 왜 프랑스 스포츠부 장관이 숙박비로 얼마를 지불했는지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가?"라며 반박했다.
5.3. 도핑 스캔들 및 징계
2015년 11월 9일, 세계 반도핑 기구(WADA) 독립 위원회의 보고서는 뭇코가 러시아 육상계 내에서 광범위한 국가 주도 도핑 계획을 감독했다고 비난했다. 위원회 위원장인 딕 파운드는 "뭇코가 이를 인지하지 못했을 리 없으며, 인지했다면 공모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뭇코의 기관이 러시아 반도핑 기구인 RUSADA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RUSADA는 정부나 선수들의 영향력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7년 12월 5일,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는 도핑 공모에서의 그의 역할로 인해 뭇코를 향후 올림픽 출전에서 영구적으로 제명했다. 그러나 뭇코가 이에 항소한 후, 스포츠 중재 재판소는 2019년 7월 IOC의 결정을 뒤집고 그의 올림픽 참가 금지 처분을 철회했다.
5.4. 국제 제재
뭇코는 러시아 정부에 상당한 수입원을 제공하는 경제 부문에서 상업 활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에서 군사 작전과 민간인 제노사이드를 시작했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 국제 사회의 제재를 받았다. 2023년 2월 19일, 그는 우크라이나의 제재 명단에 추가되었다.
5.5. 영어 연설 논란
2010년 12월, 뭇코는 취리히에서 열린 FIFA 집행위원회 회의에서 2018년 FIFA 월드컵 개최국 선정과 관련하여 환영사를 강한 러시아어 악센트의 영어로 발표했다. 이 연설은 "내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을 하게 해 달라"(Лет ми спик фром май харт렛 미 스피크 프롬 마이 하트러시아어)는 구절로 유명해져 인터넷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뭇코는 연설 후 자신이 2주 동안 가족 앞에서 연습하는 등 이 연설을 외웠으며, 영어 연설문이 키릴 문자로 작성된 것을 읽은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영어 실력은 러시아 정부 내에서도 끊임없는 농담의 대상이 되었다. 2015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는 뭇코의 생일을 어설픈 영어로 축하했으며, 블라디미르 푸틴 또한 뭇코에게 영어 자기 계발 서적을 선물하기도 했다.
6. 개인 생활
뭇코는 타티야나 이바노브나 뭇코와 결혼하여 엘레나와 마리야 두 딸을 두고 있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스키 친구로 알려져 있으며, 이들의 개인적인 친분은 뭇코의 정치적 입지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있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러시아가 금메달 3개로 11위에 그치자, 당시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관계자들의 사임을 요구했다. 이에 러시아 올림픽 위원회 회장이 사임했지만, 뭇코는 "참패는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라며 사임을 거부하여 논란을 빚기도 했다. 그는 트위터 계정을 통해 선수들과 일반 대중이 만든 자신이나 선수들에 대한 유머러스한 합성 사진을 평가하며 소통하는 등 유쾌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7. 수상 및 영예
비탈리 뭇코는 그의 공로를 인정받아 여러 훈장과 표창을 수상했다.
- 조국공헌훈장 3급 (2014년) 및 4급 (2008년)
- 명예훈장 (1994년)
- 우정훈장 (2002년)
- 상트페테르부르크 300주년 기념 메달 (2003년)
- 카잔 1000주년 기념 메달 (2005년)
8. 유산 및 평가
비탈리 뭇코는 러시아 스포츠 및 정치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러시아 축구의 강자로 만들고, 러시아 프리미어리그를 창설하는 등 러시아 축구 인프라와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특히 2018년 FIFA 월드컵 유치에 성공하며 러시아가 세계적인 스포츠 대회를 개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의 리더십 아래 러시아 스포츠는 국제적인 인정을 받으며 발전했다.
그러나 뭇코의 유산은 러시아 도핑 스캔들 연루, 부패 의혹, 그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국제 제재 등으로 인해 복합적으로 평가된다. 국가 주도 도핑 스캔들에서의 그의 역할은 러시아 스포츠의 도덕성에 심각한 손상을 입혔고, 국제 사회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논란은 그의 업적에 그림자를 드리웠으며, 그의 경력이 러시아 스포츠와 정치 시스템의 복잡한 문제들을 반영한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결과적으로 뭇코는 러시아 스포츠 발전의 중요한 동력이었지만, 동시에 그가 연루된 스캔들로 인해 러시아 스포츠의 명예를 실추시킨 논란의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