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년 시절 및 아마추어 경력
프로 야구에 입문하기 전 모리 시게카즈는 유년 시절부터 뛰어난 야구 실력을 선보였으며, 대학 및 사회인 야구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1.1. 유년기 및 학창 시절
모리 시게카즈는 지바현 조세이군 이치노미야정에서 태어났다. 이치하라시의 과학기술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하여 2학년 때인 1971년부터 에이스 투수로 활약하며 여름 현 대회에서 8강에 올랐다. 3학년이던 1972년 봄 지바현 대회 2일차에는 야치요 고등학교를 상대로 16탈삼진을 기록했다. 같은 날 나루토 고등학교의 스즈키 타카마사도 이치카와 공업고등학교전에서 16탈삼진을 기록하는 등 당대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그해 학교가 폐교를 결정하면서 여름 지바 대회에서 사쿠라 고등학교에 패배한 후, 심판 판정에 불복하며 항의하는 모습이 고마자와 대학의 학감 후지타 토시노리의 눈에 띄어 고마자와 대학 고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이미 고교 야구는 은퇴한 상태였기 때문에 대학 야구부 연습에 참여했다고 전해진다.
1.2. 아마추어 야구 선수 경력
고마자와 대학과 사회인 야구팀 스미토모 금속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다.
1.2.1. 대학 시절
1973년 고마자와 대학에 진학하여 도토 대학 야구 리그에서 재학 중 5번의 우승을 경험했다. 3학년이던 1975년에는 춘계와 추계 리그에서 연속 우승을 차지했으며, 같은 해 대학 선수권 대회 결승에서는 에이스 사이토 아키오가 이끄는 오사카 상업대학을 꺾고 우승을 거머쥐었다. 같은 해 가을 메이지 신궁 대회 결승에서는 6회부터 등판하여 무실점으로 막았으나 팀은 메이지 대학에 패하여 준우승에 머물렀다.
4학년이던 1976년 춘계 리그에서는 동기인 오미야 타츠오와 배터리를 이루어 8승을 올리는 활약으로 최고 수훈 선수, 최우수 투수, 베스트 나인을 수상했다. 같은 해 대학 선수권 대회 1회전에서 긴키 대학 공학부를 상대로 완전 경기를 달성했으나, 준결승에서 오사카 상업대학에 패했고, 패자 부활전에서도 도카이 대학에 패했다. 한편, 같은 해 제5회 일미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 일본 대표로 선발되기도 했다. 가을 메이지 신궁 대회에서는 첫 경기에서 호세이 대학의 에가와 스구루와 선발 맞대결을 펼쳤으나 패했다. 리그 통산 41경기에 등판하여 18승 9패, 평균 자책점 2.11, 191탈삼진을 기록했다. 고마자와 대학 시절에는 합숙소 근처 아파트에서 선배의 방을 맡아주며 요리를 잘하게 되었고, 특히 중화요리를 잘하여 선배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연습이 없는 날에는 구주쿠리하마에 위치한 가족의 휴양용 국민숙사로 동료들을 초대하여 맛있는 해산물을 즐겼다고 한다. 오미야 외에 고마자와 대학 동기로는 야마카와 타케시, 타케치 유지가 있었으며, 3년 선배로는 쿠리하시 시게루와 키노시타 토미오가, 1년 선배로는 나카하타 키요시, 니노미야 이타루, 히라타 카오루가, 2년 후배로는 이시게 히로노리가 있다.
1.2.2. 사회인 야구단 시절
1976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롯데 오리온스로부터 1위 지명을 받았으나,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서쪽 야구를 보고 오겠다"는 이유로 입단을 거부했다. 당시 부모님이나 감독을 동반하지 않고 홀로 가네다 마사이치 감독을 찾아가 거절 의사를 밝히며 스미토모 금속에 입사했다.
1977년 도시 대항에 출전했으나, 1회전에서 타카시로 노부히로와 대학 동기 타케치 유지가 소속된 도시바에 연장 14회 완투패를 당했다. 같은 해 일본 선수권 대회에서는 나카무라 유지와 배터리를 이루어 4연승을 거두었고, 결승에서 덴덴 시코쿠를 꺾고 첫 우승을 차지하며 이 대회에서 최고 수훈 선수상을 수상했다. 국제 경기에서는 같은 해 제3회 인터컨티넨탈컵 일본 대표로 선발되었다. 1978년에는 훗날 주니치에서 감독과 코치로 인연을 맺게 되는 오치아이 히로미쓰 등과 함께 제25회 아마추어 야구 세계 선수권 일본 대표로도 선발되었다. 하지만 같은 해 도시 대항 1회전 일본 악기전에서 머리에 사구를 맞아 골절되는 사고를 겪었다. 팀은 승리하여 8강까지 진출했지만, 이후 경기에는 등판하지 못했다. 이 대회에서는 듀플로의 좌완 투수 가와구치 카즈히사가 스미토모 금속에 보강 선수로 합류했으며, 이 기간 동안 모리는 가와구치와 친분을 쌓았다.
2. 프로 선수 경력
모리 시게카즈는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에서 10년간 활약하며 팀의 중심 투수로 성장했고, 특히 마무리 투수로 전환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2.1. 드래프트 및 초기 활동
1978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세이부 라이온스, 주니치 드래곤스, 야쿠르트 스왈로스, 닛폰햄 파이터스 등 4개 구단의 1위 지명을 받았고, 추첨 결과 세이부 라이온스에 입단했다. 담당 스카우트는 도쿠지마 쇼이치였다. 당시 모리는 관동 지역 구단이나 관서 지역의 인기 구단인 한신에 입단할 의향이 있었다고 알려졌지만, 한신은 에가와를 지명했다.
1979년 루키 시즌부터 개막 2차전부터 선발 투수로 기용되었다. 여름에는 피로로 인해 선발 로테이션에서 제외되었으나, 8월 중순에 복귀했다. 규정 이닝 (리그 20위, 평균 자책점 4.52)을 채웠지만, 팀이 최하위에 머무른 탓에 5승 16패를 기록했다.
2.2. 전성기 및 주요 업적
1980년에는 10승 14패, 평균 자책점 4.70을 기록했고, 1981년에는 14승 11패, 평균 자책점 3.78을 기록하며 히가시오 오사무와 마츠누마 히로히사, 마츠누마 마사유키 형제와 함께 세이부 투수진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히로오카 타츠로가 감독으로 취임한 1982년 시즌에는 개막전 선발 투수로 기용되었으나, 이후 4경기에서 부진한 성적을 보이자 히로오카 감독은 그에게 구원 투수로 전환할 것을 지시했다. 시즌 중반부터 구원 투수로 활약하며 세이부의 도코로자와 이전 후 첫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주니치 드래곤스와의 1982년 일본 시리즈에서도 3경기에 등판했다.
1983년 시즌에는 5승 5패 34세이브(34세이브는 당시 일본 신기록)의 성적으로 최우수 구원 투수를 수상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1983년 일본 시리즈에서는 3차전에서 나카하타 키요시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아 패전 투수가 되었고, 4차전에서는 세이브를 기록했다.
2.3. 부상 및 은퇴
1983년 이후에는 부상에 시달리며 점차 성적이 하락했다. 1986년 시즌에는 어깨 수술로 인해 현역 선수 등록에서 제외되었고, 가을에는 젊은 선수들과 함께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애리조나 교육 리그 팀인 애리조나 애스트로스에 참가하며 야구 유학을 떠났다. 1988년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오치아이 히로미쓰의 저서에 따르면, 네모토 리쿠오가 그의 코치로서의 자질을 간파하여 조기에 은퇴시켰다고 한다.
3. 코치 경력
모리 시게카즈는 은퇴 후 다양한 팀에서 폭넓은 코치 경력을 쌓으며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했다.
3.1. 세이부 라이온스
1989년부터 1991년까지 세이부 라이온스 2군 투수 코치를 역임했다. 1992년부터는 야기사와 쇼로쿠가 롯데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그를 대신해 1군 투수 코치로 승격했다. 1995년부터는 전년도에 스기시타 시게루가 퇴단하면서 모리가 단독으로 1군 투수 코치를 맡았다. 1997년에는 팀 평균 자책점 2위를 기록하며 팀의 3년 만의 우승에 기여했다. 1998년부터는 히가시오 오사무 감독이 모리와 스기모토 타다시 2명으로 1군 투수 코치 체제를 만들었으나, 6월 15일 기준으로 팀 평균 자책점이 4.26으로 부진하자 시즌 도중 투수진 부진의 책임을 지고 2군으로 재배치되었다(2군에서 카토 하지메가 1군으로 이동). 1999년 시즌 종료 후 해고되었다.
3.2. 닛폰햄 파이터스 및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2000년 시즌부터는 오시마 야스노리의 초청으로 닛폰햄 파이터스 1군 투수 코치에 취임했다. 시모야나기 츠요시는 "매년 60경기 가까이 던졌다면 더 일찍 은퇴했을 것이다. 2000년에 선발 전환을 권유해준 모리 시게카즈 투수 코치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말하며 모리의 지도를 칭찬했다. 2001년 시즌까지 재직했으나 2년 연속 팀 평균 자책점 5위를 기록하며 부진했다.
2002년 시즌부터는 모리 마사아키의 요청으로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1군 투수 코치에 취임했다. 2003년 시즌까지 재직했으나, 팀 평균 자책점은 4.09(리그 5위)와 4.80(리그 최하위)으로 부진했다. 닛폰햄과 요코하마 두 구단에서 투수진이 부진에 빠지며 팀이 최하위에 머물렀다.
3.3. 주니치 드래건스 (투수/배터리/수석 코치)
2004년 시즌부터는 주니치 드래건스의 감독으로 취임한 오치아이 히로미쓰의 요청을 받아 주니치의 1군 투수 코치에 취임했다. 2005년 시즌에는 주니치의 1군 투수 수석 코치를 맡았고, 2006년 시즌부터 2009년 시즌까지는 주니치의 1군 배터리 수석 코치를 역임했다. 2010년 시즌에는 1군 수석 코치로 승격했고, 2011년 시즌 종료 후 오치아이 감독과 함께 퇴단했다. 주니치 코치로서 8년간 모두 A클래스(리그 3위 이상)에 진입했으며, 리그 우승 4회, 일본 시리즈 우승 1회를 달성했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는 문화방송·J SPORTS 등에서 야구 해설가, 스포츠닛폰에서 야구 평론가로 활동했다.
2013년 10월 22일, 이듬해 2014년 시즌부터 주니치의 1군 수석 코치로 취임한다고 발표되었다. 11월 1일에는 등번호 '80'이 결정되었다고 발표되었다. 2014년 시즌부터 2015년 시즌까지는 다니시게 모토노부 감독이 선수 겸임이었기 때문에, 다니시게가 선수로 출장할 경우 모리가 감독 대행을 맡았다.
4. 감독 경력
모리 시게카즈는 주니치 드래건스의 감독으로 팀의 변화를 이끌었으나, 기대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하고 사임했다.
4.1. 감독 대행 및 정식 감독 취임
2016년 시즌부터 다니시게가 감독직에 전념하게 되면서 모리는 1군 수석 코치에 전념했으나, 팀의 성적 부진이 개선되지 않고 우승 경쟁에서도 멀어지자, 다니시게가 휴양(사실상 감독 해임) 조치된 8월 9일부터 다시 감독 대행을 맡았다.
2016년 9월 29일, 주니치 구단은 이듬해 1군 감독 취임을 발표했다. 62세의 나이로 첫 감독직에 취임하며, 감독 첫 취임 당시 연령으로는 1997년 오프 시즌의 곤도 히로시(당시 59세)를 넘어 NPB 사상 최고령 기록을 세웠다. 또한 주니치에서는 야마다 히사시 이후 투수 출신이자 외부 인사로서의 감독이 되었다. 1군 코치진으로는 1군 타격 코치에 도이 마사히로, 1군 내야 수비 주루 코치에 모리 와키 코지(모리 와키는 수석 코치급), 나라하라 히로시, 1군 배터리 코치에 타무라 후지오 등을 영입했다.
4.2. 감독 철학 및 성과
취임 당시부터 팀 방침으로 수비 중심의 야구를 내세웠다. 또한, 기동력 향상을 목표로 발을 활용하여 점수를 뽑아내는 야구를 팀에 뿌리내리게 했다. 그리고 오치아이 히로미쓰나 다니시게 모토노부가 감독 시절 거의 하지 않았던 팬 서비스를 늘렸다.
취임 기자회견에서 자신을 징검다리 감독이라 칭하며, 팀의 토대를 만드는 역할을 담당하겠다고 발언했다. 쿄다 요타의 주전 유격수 고정, 오가사와라 신노스케의 개막전 선발 투수 기용, 부진했던 타카하시 슈헤이의 2루수 전환 등 적극적으로 젊은 선수들을 기용하여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재임 기간 동안 세이부 후배인 마츠자카 다이스케를 영입했다. 아라키 마사히로에 따르면 공격적인 측면은 모리 와키에게 전적으로 맡겨져 있었다고 한다.
2017년 8월 7일, 그의 장녀가 유방암으로 35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8월 13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경기는 빈소 참석을 위해 2회 종료까지 지휘한 뒤 경기장을 떠났으며, 3회부터는 1군 내야 수비 주루 코치인 모리 와키가 감독 대행을 맡았다. 다음 날 영결식에는 시라이 분고 구단주와 오치아이 전 GM을 비롯해 수뇌진, 선수 등 구단 관계자들도 참석했으며, 8월 15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와의 경기는 우천으로 취소되었고, 이때부터 감독으로 복귀했다.
4.3. 사임
2017년 시즌과 2018년 시즌 모두 5위에 머물렀고, 2018년 시즌을 끝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5. 시니어 디렉터 및 해외 선수 스카우트 활동
모리 시게카즈는 주니치 드래건스 시니어 디렉터로서 해외 선수, 특히 중남미 및 쿠바 선수들의 스카우트와 영입에 지대한 노력을 기울였다.
감독 퇴임 후에는 젊은 선수 육성 및 외국인 선수 영입 수완이 높이 평가되어 2019년부터 구단 시니어 디렉터(SD)로 취임한다고 발표되었다. 주로 외국인 선수 획득 조사, 트레이드, 자유 계약 선수 획득 등 편성 면을 담당했다. 또한 고교 야구, 대학 야구 등 아마추어 야구계와 해외 시찰도 수행했다.
드래곤스 투수 코치로 취임했던 2003년 오프 시즌부터 전력 보강의 일환으로 수석 코치, 감독, SD 기간을 포함하여 매 시즌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건너가 현지 윈터 리그를 시찰했다. 전 세이부·거인 선수였던 도밍고 마르티네스를 현지 스카우트로 고용하고, 카프 아카데미 출신으로 전년까지 히로시마에서 불펜 포수를 지냈던 프란시스 루이스를 통역으로 고용하는 등 독자적인 루트를 형성했다. 그는 현지에 "다이아몬드 원석들이 널려 있다"고 말했으며, 외국인 선수 보강 예산이 적은 구단 사정상, 모리가 구단에 있었을 때 영입된 외국인 선수들은 대부분 도미니카 공화국이나 베네수엘라와 같은 중남미 국적의 선수들이었다. 현지 팀과 연계하여 요시미 카즈키나 야마이 다이스케, 마타요시 카츠키 등을 윈터 리그에 파견하여 이들의 비약적인 성장에 기여하기도 했다.
2016년 시즌 오프에 감독 대행에서 정식 감독으로 취임이 결정되면서, 쿠바와의 관계 형성에도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오마르 리나레스 순회 코치를 창구로 삼아 2017년에 라이델 마르티네스와 레오나르도 우르헬레스를, 2018년에 아리엘 마르티네스를 영입했다. 시즌 오프에는 직접 쿠바 스포츠청을 방문하여 협상에 나서는 등 정력적으로 활동했다. 2019년 10월 1일 시니어 디렉터(SD)직에서 사임하고 구단을 떠났다.
6. 은퇴 후 활동
프로 야구 코치 및 감독직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했다.
6.1. 야구 해설가 및 평론가
2012년부터 2013년까지 문화방송과 J SPORTS 등에서 야구 해설가로, 스포츠닛폰에서 야구 평론가로 활동했다. 2020년부터는 다시 J SPORTS 야구 해설가와 스포츠닛폰 야구 평론가로 복귀했다. 그의 주요 출연 프로그램으로는 슈퍼 베이스볼 (BS 아사히, 메~테레), TV 아사히 채널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주최 경기 중계, 모에 요 드래곤스! (CBC TV), 도카이 TV 프로 야구 중계 (도카이 TV), J SPORTS STADIUM, 문화방송 라이온스 나이터, 문화방송 홈런 나이터, CBC 드래곤스 나이터, 메이저 리그 중계 (J SPORTS) 등이 있다.
6.2. 저서
그는 선수 및 지도자 경력을 바탕으로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다.
- 『참모』(고단샤: 2012년 4월, ISBN 4062175983)
- 『계속 이기는 힘』(비즈니스사: 2012년 10월, ISBN 4828416811)
- 『군사의 역습』(요시모토북스: 2014년 3월)
7. 인물 특성 및 철학
모리 시게카즈는 선수 시절 독특한 투구 스타일을 가졌으며, 코치와 감독으로서 선수들을 엄격하면서도 인간적으로 이끄는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7.1. 선수 시절 스타일
날카로운 직구와 슈트로 타자를 압박하고 포크볼로 승부를 결정짓는 우완 투수였다. 세이부 입단 초기에는 선발 투수였으나, 1982년에 부진에 빠지자 구원으로 전환하여 뛰어난 안정감으로 마무리 투수로 정착했다. 1982년부터 이듬해 1983년까지 2년 연속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7.2. 코칭 및 감독 스타일
선수들에 대한 지도가 엄격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세이부 투수 코치 시절 고마자와 대학 후배인 타케시타 준이 부진한 투구로 강판되자 당시 배터리 코치였던 오미야 타츠오(대학 시절 배터리를 이뤘던)와 함께 타케시타에게 크게 호통을 친 적도 있다. 그러나 형님 같은 존재로 선수들에게 존경받았고 인망이 두터웠다. 요시미 카즈키는 토크쇼에서 "모리 코치는 무서웠나요?"라는 질문에 대해 "그 사람은 무섭지 않아요. 정말 좋은 아버지 같은 느낌이에요. TV에서 보는 모습과 실제 모리 씨는 달라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라고 답했으나, "딱 한 번 엄청나게 화를 내신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드래곤스 코치 시절에는 오치아이 히로미쓰 감독의 신뢰가 두터워, 오치아이 감독으로부터 투수 문제에 대해서는 일절 간섭받지 않고 투수 기용의 전권을 위임받았다. 세이부와 요코하마 코치 시절부터 토모리 유키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으며, 주니치에서는 오치아이 감독에게 그의 영입을 진언하기도 했다. 또한 2014년부터는 수석 코치와 투수 코치, 2017년에는 감독과 투수 코치라는 관계를 유지했다.
스기시타 시게루와는 지도자로서 사제 관계를 맺었다. 스기시타는 세이부 라이온스에서 함께 1군 투수 코치를 맡았을 때를 회상하며, "선수를 가르치기보다 모리 시게카즈 투수 코치를 1인분으로 만드는 것이 일이었다. 궈 타이위안, 와타나베 히사노부, 쿠도 키미야스, 시오자키 테츠야, 카토리 요시타카 등이 주력이었으니 코치가 필요 없었다. 여러 구단을 거쳤지만 가장 편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주니치 드래건스의 OB인 스기시타는 매년 주니치의 춘계 캠프를 방문하여 임시 코치로 활동한다.
7.3. 개인적 특성
입이 무거워 투수들의 컨디션 등을 절대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애칭은 '모리시게'이다. 현재 요시모토 흥업 그룹의 연예 기획사인 요시모토 흥업 주식회사와 매니지먼트 계약을 맺고 있다.
8. 수상 및 기록
모리 시게카즈는 선수와 지도자 경력 전반에 걸쳐 다양한 타이틀과 기록을 달성했다.
8.1. 타이틀 및 수상
- 최우수 구원 투수: 1회 (1983년)
- 파이어맨상: 1회 (1983년)
8.2. 주요 기록
- 첫 기록**
- 첫 등판·첫 선발 등판: 1979년 4월 9일, 대 긴테쓰 버펄로스 전기 2차전(닛폰 생명 구장), 3과 2/3이닝 5실점에서 패전 투수
- 첫 탈삼진: 상동, 2회말에 크리스 아놀드로부터
- 첫 완투: 1979년 4월 22일, 대 롯데 오리온스 전기 2차전(가와사키 구장), 8이닝 1실점에서 패전 투수
- 첫 승리·첫 선발 승리·첫 완투 승리: 1979년 5월 9일, 대 난카이 호크스 전기 3차전(오사카 구장), 9이닝 3실점
- 첫 세이브: 1979년 5월 16일, 대 닛폰햄 파이터스 전기 9차전(세이부 라이온스 구장), 7회초에 2번째 투수로서 구원 등판·완료, 3이닝 2실점
- 첫 완봉 승리: 1980년 5월 2일, 대 닛폰햄 파이터스 전기 4차전(세이부 라이온스 구장)
- 기타 기록**
- 올스타전 출장: 2회 (1981년, 1983년)
- 등번호**
- 11 (1979년 ~ 1988년)
- 86 (1989년 ~ 1999년, 2002년)
- 81 (2000년 ~ 2001년, 2003년)
- 80 (2004년 ~ 2011년, 2014년 ~ 2018년)
9. 상세 통계
모리 시게카즈의 선수 및 감독으로서의 연도별 성적은 다음과 같다.
9.1. 투수 성적
연도 | 소속 | 등판 | 선발 | 완투 | 완봉 | 무4구 | 승리 | 패전 | 세이브 | 홀드 | 승률 | 타자 | 이닝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고의4구 | 몸에 맞는 볼 | 탈삼진 | 폭투 | 보크 | 실점 | 자책점 | 평균자책점 | WHIP |
---|---|---|---|---|---|---|---|---|---|---|---|---|---|---|---|---|---|---|---|---|---|---|---|---|---|
1979년 | 세이부 | 43 | 25 | 7 | 0 | 0 | 5 | 16 | 7 | -- | .238 | 893 | 203.1 | 207 | 27 | 78 | 9 | 9 | 130 | 3 | 0 | 120 | 102 | 4.51 | 1.40 |
1980년 | 40 | 18 | 4 | 1 | 1 | 10 | 14 | 7 | -- | .417 | 676 | 156.2 | 160 | 31 | 53 | 6 | 2 | 73 | 0 | 1 | 97 | 82 | 4.71 | 1.36 | |
1981년 | 31 | 30 | 10 | 3 | 2 | 14 | 11 | 0 | -- | .560 | 834 | 200.1 | 188 | 26 | 51 | 1 | 4 | 83 | 1 | 0 | 94 | 84 | 3.77 | 1.07 | |
1982년 | 51 | 6 | 1 | 0 | 1 | 10 | 2 | 10 | -- | .833 | 396 | 101.2 | 81 | 12 | 23 | 5 | 0 | 46 | 0 | 1 | 37 | 36 | 3.19 | 1.02 | |
1983년 | 59 | 0 | 0 | 0 | 0 | 5 | 5 | 34 | -- | .500 | 322 | 85.0 | 53 | 6 | 22 | 1 | 3 | 46 | 1 | 0 | 17 | 14 | 1.48 | 0.88 | |
1984년 | 38 | 0 | 0 | 0 | 0 | 6 | 7 | 13 | -- | .462 | 267 | 64.0 | 66 | 7 | 15 | 1 | 2 | 36 | 0 | 0 | 24 | 20 | 2.81 | 1.27 | |
1985년 | 39 | 2 | 0 | 0 | 0 | 6 | 6 | 8 | -- | .500 | 324 | 73.1 | 85 | 14 | 26 | 3 | 2 | 22 | 3 | 1 | 41 | 35 | 4.30 | 1.51 | |
1987년 | 22 | 0 | 0 | 0 | 0 | 1 | 0 | 1 | -- | 1.000 | 119 | 28.2 | 24 | 0 | 12 | 4 | 0 | 10 | 0 | 0 | 6 | 5 | 1.57 | 1.26 | |
1988년 | 21 | 0 | 0 | 0 | 0 | 0 | 1 | 2 | -- | .000 | 109 | 26.0 | 25 | 4 | 7 | 2 | 1 | 9 | 0 | 0 | 13 | 11 | 3.81 | 1.23 | |
통산 : 9년 | 344 | 81 | 22 | 4 | 4 | 57 | 62 | 82 | -- | .479 | 3940 | 939.0 | 889 | 127 | 287 | 32 | 23 | 455 | 8 | 3 | 449 | 389 | 3.73 | 1.25 |
- 굵은 글씨는 시즌 최고 성적
9.2. 감독 성적
연도 | 소속 | 순위 | 경기 | 승리 | 패전 | 무승부 | 승률 | 승차 | 팀 홈런 | 팀 타율 | 팀 평균자책점 | 연령 | ||
---|---|---|---|---|---|---|---|---|---|---|---|---|---|---|
2016년 | 주니치 | 6위 | 39 | 15 | 24 | 0 | .385 | 14 | 11 | .245 | 3.65 | 61세 | ||
2017년 | 5위 | 143 | 59 | 79 | 5 | .428 | 28.5 | 111 | .247 | 4.05 | 62세 | |||
2018년 | 5위 | 143 | 63 | 78 | 2 | .447 | 18 | 97 | .263 | 4.36 | 63세 | |||
통산 : 3년 | 325 | 137 | 181 | 7 | .431 | B클래스: 3회 |
※2016년에는 다니시게 모토노부 감독이 인플루엔자 증세로 결장하면서 감독 대행을 맡은 4월 22일에 1경기(승리)를 포함한다.
10. 같이 보기
- 지바현 출신 인물 목록
- 고마자와 대학의 인물 목록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의 선수 목록
11. 외부 링크
- [http://dragons.jp/teamdata/coach/mori_s.html 주니치 드래건스 공식 프로필]
- [https://profile.yoshimoto.co.jp/talent/detail?id=5749 요시모토 흥업 공식 프로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