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로널드 찰스 스피어스(Ronald Charles Speirs영어)는 미국 육군 장교로, 제2차 세계 대전 중 미국 101 공수사단 예하 미국 506 낙하산 보병 연대에서 복무했다. 그는 초기에는 506 낙하산 보병 연대 1대대 B 중대 소대장으로 배정되었으나, 노르망디 상륙 작전 이전 2대대 D 중대로 재배치되었다. 이후 벌지 전투 중 바스통 포위전이 풀린 뒤 포이 마을 공격 시 E 중대 지휘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유럽 전선에서 대위로 종전을 맞이했다.
스피어스는 한국 전쟁에도 참전하여 소령으로서 보병 중대장과 참모 장교를 역임했다. 전후에는 베를린 슈판다우 교도소의 미국인 교도소장을 지냈으며, 최종적으로 중령으로 전역했다. 그의 군인으로서의 뛰어난 전투 능력과 리더십은 물론, 전쟁 포로 학살 의혹과 상관 사살 의혹 등 여러 논란에 휩싸인 양면적인 삶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삶은 HBO 미니시리즈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 배우 매슈 세틀에 의해 묘사되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2. 어린 시절 및 배경
로널드 스피어스는 1920년 4월 20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다. 1924년 12월 25일, 그는 가족과 함께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도착하여 미국으로 이민했다. 이후 메인주 포틀랜드에서 성장했으며, 고등학교 시절부터 군사 훈련을 받았다. 이 훈련은 그가 미국 육군 보병 소위로 임관하는 계기가 되었으나, 스피어스는 공수부대에 자원하여 복무를 시작했다.
3. 군 복무
스피어스의 군 복무는 제2차 세계 대전, 한국 전쟁, 그리고 냉전 시대를 아우르며 다양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3.1. 제2차 세계 대전

미국이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후, 스피어스는 공수부대에 자원했다. 그는 조지아주 토코아 기지에서 미국 101 공수사단 예하 506 낙하산 보병 연대 2대대 D 중대의 소대장으로 복무했으며, 1943년 말 잉글랜드로 파견되었다. 잉글랜드에 도착한 부대는 프랑스 침공을 위한 훈련에 돌입했다.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 작전(D-Day) 당시, 스피어스는 노르망디에 강하하여 착륙 직후 전우들과 합류했다. 그는 소수의 병사들을 모아 브레꾸르 마뇨르 전투에서 활약하여 네 번째 105 mm 곡사포를 무력화하는 데 기여했다.
1945년 1월, 독일군이 점령한 벨기에 포이 마을에 대한 E 중대의 초기 공격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대대 작전 장교 리처드 윈터스 대위는 스피어스에게 노먼 다이크 중위를 대신하여 지휘를 맡도록 명령했다. 윈터스는 훗날 스피어스가 단순히 그가 돌아섰을 때 가장 먼저 본 장교였기 때문에 그를 선택했다고 회고했다. 스피어스는 성공적으로 공격 지휘를 인계받아 E 중대를 승리로 이끌었다. 이 전투 중 다이크는 한 소대에게 마을 후방을 우회하는 측면 공격 임무를 명령했으나, 해당 소대에는 무전기가 없었다. 이에 스피어스는 독일군 전선을 뚫고 마을을 가로질러 달려가 I 중대 병사들과 합류한 뒤, 명령을 전달하고 다시 독일군이 점령한 마을을 가로질러 복귀했다. 그는 E 중대의 지휘관으로 재배치되었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 직위를 유지했다. 스피어스는 전쟁 기간 동안 E 중대를 지휘한 장교들 중 가장 오랜 기간 지휘했다.
유럽 전역이 끝난 후, 스피어스는 귀국할 수 있는 충분한 전역 점수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E 중대에 남기로 결정했다. 스피어스와 E 중대가 태평양 전쟁 전선으로 전출되기 전, 일본 제국이 항복하면서 전쟁은 종결되었다.
스피어스는 전쟁 중의 활약, 특히 1944년 10월 마켓 가든 작전 이후의 공로로 은성 무공 훈장을 수훈했다. 훈장 수훈 기록에 따르면, 1944년 10월 10일 네덜란드 렌데이크(Rendijk영어) 인근에서 그는 네더라인강(Neder Rijn River영어) 강변으로 정찰대를 이끌고 강 건너편의 적 활동을 파악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는 새벽 일찍 정찰대와 함께 강변에 도달하여 하루 종일 강 건너편을 관찰했다. 해가 진 후, 그는 자원하여 홀로 강을 건너 미지의 적진으로 침투했다. 그는 바헤닝언 마을 근처에서 적 기관총 진지, 적 본부 및 다른 적 활동을 파악했다. 그는 적이 남긴 고무보트를 확보하여 이 정보를 가지고 아군 진영으로 복귀했다. 자신의 진지로 돌아오던 중, 그는 적 기관총 사격으로 부상을 입었다. 스피어스 중위는 이 지역에서 네더라인강을 처음으로 건넌 인물이었으며, 이를 통해 다른 정찰대들이 유사한 정찰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의 정보는 소속 부대에 큰 가치를 제공했다. 그의 행동은 최고 수준의 군 복무 기준에 부합했다.
3.2. 한국 전쟁
스피어스는 미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육군에 남아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 그는 1950년 10월 20일, 평양 북쪽 약 40 km 떨어진 석촌과 순천 지역에 강하하는 임무로 한국 전쟁에서의 첫 작전을 시작했다. 이 작전의 목표는 약 30,000명의 조선인민군 병력의 철수를 저지하고, 이들이 억류하고 있던 미군 포로들을 구출하는 것이었다. 스피어스가 소속된 미국 187 공수 연대는 강하에 성공하여 철수하려던 북한군의 통로를 막는 데는 성공했으나, 포로 구출에는 실패했다. 이후 부대는 상부의 명령에 따라 평양으로 이동했다.
1951년 1월, 군 기록에 따르면 스피어스는 연대 본부 연락 장교로 근무하다가 187 공수 연대 3대대장으로 임명되었다. 1951년 3월 23일, 그는 토마호크 작전에 참여하여 약 3,500명의 187 공수 연대원들과 함께 문산리에 전투 강하를 감행했다. 소총 중대장으로서 그는 강하 지점을 확보하는 대대 임무의 일환으로, 이 과정에서 40~50명의 적군을 사살하거나 부상시켰다. 이 작전의 공로로 187 공수 연대는 대한민국 대통령 부대표창을 수훈했다.
3.3. 냉전 시대 복무
한국 전쟁 이후, 스피어스는 1956년 러시아어 과정을 수료했으며, 동독 포츠담에 주둔한 소련군의 연락 장교로 배정되었다. 1958년에는 베를린 슈판다우 교도소의 미국인 교도소장이 되었다. 이 교도소에는 루돌프 헤스와 같은 저명한 나치당 전쟁 범죄자들이 수감되어 있었다.
1962년, 스피어스는 라오스 왕국군에 파견된 미국 임무단(U.S. Mission영어)의 일원으로, 당시 라오스 군사원조자문단이 관리하던 오퍼레이션 화이트 스타의 이동 훈련팀(MTT영어)에서 훈련 장교로 복무했다.
그의 마지막 육군 보직은 펜타곤의 계획 장교였다. 그는 1964년에 중령으로 전역했다. 1961년 10월부터 1964년 3월까지의 복무 공로로 그는 공로 훈장을 수훈했다. 훈장 수훈 기록에는 "1961년 10월부터 1964년 3월까지 미국 정부에 대한 탁월한 봉사 수행에 있어 예외적으로 훌륭한 행위를 보인 공로로"라고 명시되어 있다.
4. 논란 및 의혹
로널드 스피어스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전우들 사이에서 여러 논란과 소문의 중심에 섰는데, 특히 전쟁 포로 학살 의혹과 상관 사살 의혹이 대표적이다.
스피어스가 20명에서 30명가량의 독일군 전쟁 포로들을 총살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소문은 스피어스가 포로들에게 담배를 주고 불을 붙여준 뒤,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를 죽였다는 내용으로 퍼졌다. 이 소문에 대해 스피어스는 생전 마지막까지도 긍정하거나 부인하지 않았다. 이 소문은 E 중대 퇴역 군인들 사이에서, 그리고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팬들과 스티븐 앰브로즈의 책에서도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주요 논쟁점은 다음과 같다:
-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가?
- 어디서 그 일이 일어났는가?
- 얼마나 많은 전쟁 포로들이 죽었는가?
- 이 일에 대해 스피어스는 자신의 상급자에게 보고했는가?
리처드 윈터스를 포함한 E 중대의 퇴역 군인들은 그 사건이 일어난 장소를 추측하기도 했으며, 스피어스는 소문이 사실임을 암시했지만 더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다 해도 정확한 위치는 불확실하다. 도널드 멀라키는 D-데이에 포로들이 모여 있던 장소 근처에서 톰슨 기관단총 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했지만, 실제로 사건을 목격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윈터스는 바스통에서 그 사건이 일어났다고 들었다고 했고, 카우드 립튼은 카렝탕에서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윈터스는 자신의 자서전 《밴드 오브 브라더스: 리처드 윈터스 소령의 회상》에서 스피어스가 전투 중 명령에 불복종한 자신의 부대 소속 중사를 총으로 쏜 일이 있었다고 기록했다. 윈터스는 특히 중사를 총으로 쏨으로써 스피어스가 다른 병사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또한 윈터스는 스피어스를 "타고난 병사"라고 반복해서 언급하며, 가끔 있던 전장에서의 잘못된 결정에도 불구하고 스피어스는 윈터스 자신이 큰 기대를 걸었던 매우 뛰어난 전투 지휘관이었다고 진술했다. 윈터스는 또한 스피어스가 사건 직후 자신의 지휘관인 제레 S. 그로스 대위에게 그 사실을 보고했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목격자인 일등병 아트 디마르지오에 따르면, 그로스 대위는 현장에 가서 모든 정보를 들은 후 정당방위로 판단했다. 그러나 그로스 대위는 다음 날 전투에서 전사했기 때문에 사건은 더 이상 추적되지 않았다. 윈터스는 당시 지휘 계통상 더 높은 위치에 있던 장교들이 유능한 야전 장교를 필사적으로 필요로 했기 때문에 스피어스에게 책임을 물을 여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스피어스의 지휘 아래에 있던 병사들은 그를 무한히 존경하면서도 동시에 두려워했다. 이 사건은 공식적으로는 표면에서 사라졌지만, 병사들 사이에서는 전설처럼 전해졌다. 수십 년 후, 윈터스는 당시 펜실베이니아주 의원이었던 존 D. 페인과의 인터뷰에서, 출판사 사이먼 & 슈스터의 법무팀이 스피어스를 둘러싼 의혹으로 인해 소송이 발생할까 우려했다고 밝혔다. 이에 윈터스는 스피어스에게 직접 소문에 대해 물었고, 스피어스는 해당 의혹을 인정하고 그 내용의 편지까지 썼다고 윈터스는 덧붙였다. 윈터스는 오늘날의 군대에서는 스피어스가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잔혹 행위로 기소되었을 것이지만, 당시에는 적과 교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스피어스와 같은 장교들이 너무나 소중했기 때문에 묵인되었다고 결론 내렸다.
5. 개인사
1944년 5월 20일, 스피어스는 잉글랜드 윌트셔주에서 복무 중에 만난 마가렛 그리피스(Margaret Griffiths영어)와 결혼했다. 그리피스는 영국 육군 여성 보조대의 일원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들 로버트(Robert영어)가 있었는데, 그는 성장하여 영국 육군 로열 그린 재킷스에서 중령으로 복무했다.
1992년 스티븐 앰브로즈의 저서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는 스피어스의 영국인 아내가 그를 떠나 전쟁 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던 첫 남편에게 돌아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스피어스는 이 주장을 부인했다. 1992년 윈터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스피어스는 자신의 첫 아내가 단순히 그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하여 잉글랜드에 있는 가족과 떨어지고 싶어 하지 않았을 뿐이며, 그녀는 애초에 미망인이 아니었고 자신은 항상 그녀를 사랑했다고 밝혔다.
6. 사망
로널드 스피어스는 2007년 4월 11일 몬태나주 세인트 마리(St. Marie영어)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그는 사망 당시 세인트 마리에 거주하고 있었다.
7. 평가 및 영향

리처드 윈터스는 스피어스를 대대에서 가장 뛰어난 전투 장교 중 한 명으로 평가했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스피어스가 '살인자'라는 명성을 얻기 위해 노력했으며, 종종 충격 효과를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고 기술했다. 윈터스는 또한 스피어스가 한때 톰슨 기관단총으로 6명의 독일군 전쟁 포로를 살해했다는 의혹이 있었고, 대대 지휘부가 이러한 의혹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능한 전투 지휘관을 유지해야 할 절박한 필요성 때문에 혐의를 무시하기로 선택했다고 언급했다. 윈터스는 오늘날의 군대였다면 스피어스가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잔혹 행위로 기소되었을 것이지만, 당시에는 적과 교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스피어스와 같은 장교들이 너무나 귀중했다고 결론 내렸다.
스피어스의 삶과 행적은 HBO와 BBC가 공동 제작한 미니시리즈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이 시리즈에서 스피어스 역은 미국 배우 매슈 세틀이 연기했다. 비록 스피어스는 매년 E 중대 재회합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몇몇 E 중대원들과는 가끔 만났으며, 2001년 재회합에서는 리처드 윈터스와도 함께 만났다. 그의 군사적 능력과 논란이 된 행동들은 역사적, 사회적으로 다양한 평가를 받으며 그의 복잡한 인물상을 형성하고 있다.
8. 훈장 및 표창
로널드 스피어스가 복무 기간 동안 수훈한 주요 훈장 및 표창은 다음과 같다.
훈장/표창 |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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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투 보병 휘장 (2회 수훈) | 보병으로서 적과의 직접 전투에 참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수여되는 휘장 |
![]() 공수 휘장 (마스터 등급, 4회 전투 강하 장치) | 마스터 등급의 공수 자격을 나타내며, 4회의 전투 강하를 수행했음을 의미 |
은성 무공 훈장 | 적과의 교전 중 탁월한 용맹을 발휘한 공로 |
공로 훈장 | 뛰어난 공적과 공훈을 세운 고위 장교에게 수여되는 훈장 |
동성 무공 훈장 (참나무 잎 클러스터 2개) | 전투 중 영웅적인 행동 또는 뛰어난 공로를 세운 공로 |
퍼플 하트 (참나무 잎 클러스터 1개) | 전투 중 부상을 입거나 사망한 군인에게 수여되는 훈장 |
육군 공로 훈장 | 군 복무 중 뛰어난 공로를 세운 공로 |
대통령 부대 표창 (참나무 잎 클러스터 1개) | 전투에서 탁월한 영웅주의를 발휘한 부대에게 수여되는 표창 |
미국 전역 훈장 | 제2차 세계 대전 중 미국 본토에서 복무한 군인에게 수여되는 훈장 |
유럽-아프리카-중동 전역 훈장 (전투 참여 별 4개, 화살촉 장치) | 유럽, 아프리카, 중동 전역에서 복무한 공로를 나타내며, 4개의 주요 전투 참여와 공수 강하를 의미 |
제2차 세계 대전 승전 메달 | 제2차 세계 대전에 복무한 모든 군인에게 수여되는 메달 |
점령군 메달 | 제2차 세계 대전 후 점령군으로 복무한 공로 |
국방 근무 메달 (전투 참여 별 1개) | 국가 방위에 기여한 공로 |
한국 전쟁 메달 (전투 참여 별 4개, 화살촉 장치) | 한국 전쟁에 복무한 공로를 나타내며, 4개의 주요 전투 참여와 공수 강하를 의미 |
크루아 드 게르 (야자잎) | 프랑스군이 수여하는 무공 훈장 |
![]() 프랑스 해방 메달 | 프랑스 해방에 기여한 공로 |
![]() 대한민국 대통령 부대표창 | 한국 전쟁 중 뛰어난 공훈을 세운 부대에 대한민국 대통령이 수여하는 표창 |
유엔 한국 근무 메달 | 한국 전쟁에 참전한 유엔군에게 수여되는 메달 |
한국 전쟁 참전 메달 | 한국 전쟁에 복무한 공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