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교육
닐 다이아몬드의 초기 생애는 뉴욕 브루클린에서의 성장과 음악적 재능을 키운 학창 시절, 그리고 작곡가로서의 첫 발걸음으로 특징지어진다.
1.1. 출생 및 가족 배경
닐 다이아몬드는 1941년 1월 24일 뉴욕시 브루클린에서 유대인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네 명의 조부모 모두 폴란드 (아버지 쪽)와 러시아 (어머니 쪽)에서 온 이민자들이었다. 그의 부모는 로즈 라파포트(Rose Rapoport영어; 1918-2019)와 아키바 "키브" 다이아몬드(Akeeba "Kieve" Diamond영어; 1917-1985)였으며, 아버지는 잡화상이었다. 그는 브루클린의 여러 집에서 성장했으며, 아버지가 군대에 주둔했던 와이오밍주 샤이엔에서 4년을 보내기도 했다.
1.2. 학창 시절과 음악적 영감
브루클린에서 그는 에라스무스 홀 고등학교(Erasmus Hall High School영어)에 다녔고, 동급생인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함께 신입생 합창단 및 합창 클럽의 일원이었다. 당시 그들은 "브루클린의 가난한 두 아이였고, 에라스무스 고등학교 앞에서 어울리며 담배를 피웠을 뿐"이라며 친한 친구는 아니었다고 다이아몬드는 회상했다. 체스 그랜드마스터 바비 피셔도 그들의 동급생이었다. 그의 가족이 브라이튼 비치로 이사한 후, 그는 에이브러햄 링컨 고등학교(Abraham Lincoln High School영어)에 다녔고, 미래의 올림픽 펜싱 선수이자 가장 친한 친구인 허브 코헨(Herb Cohen영어)과 함께 펜싱 팀의 일원이었다.
16번째 생일에 그는 첫 기타를 선물 받았다. 16세에 고등학생이던 다이아몬드는 뉴욕 북부의 유대인 어린이 캠프인 서프라이즈 레이크 캠프(Surprise Lake Camp영어)에서 몇 주를 보냈는데, 그곳에서 포크 가수 피트 시거가 작은 콘서트를 열었다. 널리 알려진 가수의 공연을 보고, 다른 아이들이 직접 쓴 노래를 시거에게 부르는 것을 보면서 다이아몬드는 즉각적인 영향을 받았다. 그는 그때 자신의 노래를 쓸 수 있다는 가능성을 깨달았다. 그는 "그다음으로 브루클린으로 돌아와 기타를 얻었고, 레슨을 받기 시작했으며 거의 즉시 노래를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작곡에 대한 매력이 성장하면서 가졌던 "첫 번째 진정한 관심"이었으며, 동시에 어린 시절의 "좌절감"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덧붙였다. 다이아몬드는 새로 개발한 작사 기술을 시를 쓰는 데도 활용했다. 학교에서 마음에 드는 여자아이들을 위해 시를 쓰면서, 그는 곧 그것이 종종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남자 동급생들도 이를 알아채고 자신들을 위해 시를 써달라고 요청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그 시를 노래하며 똑같이 성공적으로 활용했다. 졸업 후 여름에는 캣츠킬 산맥 리조트 지역에서 웨이터로 일했으며, 그곳에서 몇 년 후 그의 아내가 될 제이 포스너(Jaye Posner영어)를 처음 만났다.
1.3. 초기 음악 활동 및 작곡
다이아몬드는 뉴욕 대학교에 펜싱 장학금을 받아 의예과로 입학했으며, 다시 허브 코헨과 함께 펜싱 팀에 소속되었다. 그는 1960년 NCAA 남자 펜싱 챔피언십 팀의 일원이었다. 수업 시간에 자주 지루함을 느꼈던 그는 작사를 더 좋아했다. 그는 수업을 빼먹고 틴 팬 앨리로 가는 기차를 타고 가서 자신의 노래를 지역 음악 출판사들에게 들려주려 애썼다. 졸업을 10학점 남겨둔 마지막 학년에, 선빔 뮤직 퍼블리싱(Sunbeam Music Publishing영어)에서 주당 50 USD를 받고 16주 동안 노래를 쓰는 일을 제안했고, 그는 이를 수락하기 위해 대학을 중퇴했다. 35년 후인 1995년, 뉴욕 대학교는 그에게 명예 학위를 수여했다. 그는 나중에 "이 빌어먹을 작곡 일이 생기지 않았다면, 지금쯤 의사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빔에서 16주간의 계약이 끝난 후 재고용되지 않자, 그는 직접 데모곡을 쓰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나는 작곡을 선택한 적이 없다. 그것이 나를 사로잡았고 내 삶에서 점점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그의 첫 녹음 계약은 고등학교 친구 잭 패커(Jack Packer영어)와 함께 에벌리 브라더스 스타일의 듀오 "닐 앤 잭"으로 체결되었다. 그들은 1962년에 "You Are My Love at Last"와 "What Will I Do", 그리고 "I'm Afraid"와 "Till You've Tried Love"라는 두 개의 실패한 싱글을 녹음했다. 캐시박스와 빌보드 잡지는 네 곡 모두에 긍정적인 평가를 주었지만, 차트에는 오르지 못했다. 콜럼비아 레코드는 그를 레이블에서 해고했고, 그는 이후 7년 동안 출판사를 드나들며 다시 노래를 쓰는 일에 몰두했다.
다이아몬드는 버스 안을 포함해 가능한 모든 곳에서 작곡을 했고, 뉴욕시 버드랜드 클럽(Birdland Club영어) 위층에 있는 업라이트 피아노를 사용했다. 작곡가로서의 초기 유랑 생활의 한 가지 원인은 그의 노래가 너무 장황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가사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지만, 그들은 후크를 찾고 있었고, 나는 그것의 본질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 시절 일주일에 한 곡 정도만 팔 수 있었고, 겨우 생계를 유지할 정도였다. 그는 하루에 식비로 0.35 USD 정도만 벌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버드랜드 클럽 위층의 사적인 공간은 그가 방해받지 않고 작곡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다. "뭔가 새로운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압박감이 없었고, 갑자기 흥미로운 노래들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다른 곡들에는 없던 것들이 담겨 있었다." 그중에는 "Cherry, Cherry"와 "Solitary Man"이 있었다. "Solitary Man"은 다이아몬드 자신의 이름으로 녹음되어 처음으로 차트에 진입한 곡이다. 그는 이 곡이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작곡가로서의 초기 시절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로 남아 있다. 그는 이 노래를 "나의 절망의 결과물"이라고 묘사했다.
2. 경력
닐 다이아몬드의 음악 경력은 1960년대 작곡가로서의 시작부터 2020년대 건강 문제로 인한 활동 조절까지, 수십 년에 걸친 성공과 변화의 과정을 담고 있다.
2.1. 1960년대: 작곡가에서 솔로 가수로
다이아몬드는 경력 초기에 브릴 빌딩(Brill Building영어)에서 활동했다. 작곡가로서의 첫 성공은 1965년 11월 제이 앤 더 아메리칸즈(Jay and the Americans영어)의 톱 20 히트곡 "Sunday and Me"였다. 이어서 몽키스가 부른 "I'm a Believer", "A Little Bit Me, a Little Bit You", "Look Out (Here Comes Tomorrow)", "Love to Love" 등으로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이 곡들을 자신을 위해 쓰고 녹음했지만, 몽키스의 버전이 그의 버전보다 먼저 발매되었다. 의도치 않게 다이아몬드는 작곡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I'm a Believer"는 발매 이틀 만에 골드 레코드를 기록했고 7주 동안 차트 1위를 유지하며 1966년 올해의 인기 음악곡으로 선정되었다.
"And the Grass Won't Pay No Mind"는 엘비스 프레슬리 (그는 "Sweet Caroline"도 불렀다)와 폴 리비어 앤 더 레이더스(Paul Revere & the Raiders영어)의 전 리드 싱어인 마크 린제이(Mark Lindsay영어)에 의해 커버되었다. 그의 초기 곡들을 녹음한 다른 주목할 만한 아티스트로는 룰루, 클리프 리처드 (그는 "I'll Come Running", "Solitary Man", "Girl, You'll Be a Woman Soon", "I Got the Feelin' (Oh No No)", "Just Another Guy" 버전을 발매했다), 그리고 영국의 하드 록 밴드 딥 퍼플이 있었다.
1966년, 다이아몬드는 버트 번즈(Bert Berns영어)의 뱅 레코드(Bang Records영어)와 계약했는데, 당시 뱅 레코드는 애틀랜틱 레코드(Atlantic Records영어)의 자회사였다. 이 레이블에서의 첫 발매곡은 "Solitary Man"으로, 솔로 아티스트로서 그의 첫 진정한 히트곡이 되었다. "Solitary Man" 발매 전, 그는 예명 사용을 고려했으며 "노아 카민스키"(Noah Kaminsky영어)와 "아이스 체리"(Eice Charry영어)를 떠올렸다. 뱅 레코드가 어떤 이름을 사용할지 묻자, 그는 "닐 다이아몬드로 가고 나중에 생각하겠다"고 답했다. 이어서 "Cherry, Cherry"와 "Kentucky Woman"이 히트했다. 뱅 레코드 시대의 프로듀싱은 유명한 베테랑 제작자인 제프 배리(Jeff Barry영어)와 엘리 그리니치(Ellie Greenwich영어)가 맡았으며, 두 사람은 많은 곡에서 백 보컬로도 참여했다.
그의 초기 콘서트에서는 허먼스 허미츠(Herman's Hermits영어)와 더 후(the Who영어) 같은 밴드의 오프닝 공연을 맡았다. 더 후의 게스트 연주자로서 그는 피트 타운젠드가 기타를 곤봉처럼 휘두르다가 벽에 던지고 무대 밖으로 던져 악기의 목이 부러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다이아몬드는 1968년부터 "Brooklyn Roads"와 같은 더 야심적이고 내성적인 음악을 녹음하고 싶었기 때문에 뱅 레코드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번즈는 "Kentucky Woman"을 싱글로 발매하고 싶어 했지만, 다이아몬드는 더 이상 단순한 팝송을 쓰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고, 그래서 상상의 어린 시절 친구에 대한 "Shilo"를 제안했다. 뱅 레코드는 이 곡이 상업성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Just for You 앨범의 LP 트랙으로만 수록되었다. 다이아몬드는 또한 자신의 로열티에 불만을 품었고, 자신의 계약에 독점적으로 WEB IV나 탤리랜드에 묶이지 않는 허점을 발견한 후 다른 음반사와 계약하려 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일련의 소송으로 이어졌고, 이는 그의 음반 판매 및 직업적 성공의 침체와 동시에 발생했다. 치안 판사는 다이아몬드의 계약 분쟁이 법정에서 계속되는 동안 그가 다른 음반사에 합류하는 것을 막으려는 WEB IV의 임시 금지 명령 요청을 거부했지만, 소송은 1977년 2월까지 계속되었고, 그는 법정에서 승리하여 뱅 레코드 시대의 마스터 테이프에 대한 권리를 구매했다.
1968년 3월, 다이아몬드는 유니 레코드(Uni Records영어)와 계약을 맺었다. 이 레이블은 유니버설 픽처스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는데, 유니버설 픽처스의 소유주인 MCA Inc.는 나중에 자사 레이블들을 MCA 레코드 (현재 1999년 폴리그램과 합병 후 유니버설 뮤직으로 불림)로 통합했다. 유니/MCA에서의 그의 데뷔 앨범은 1968년 후반에 발매된 톰 카탈라노(Tom Catalano영어)가 프로듀싱한 Velvet Gloves and Spit이었는데, 이 앨범은 차트에 오르지 못했다. 그는 1969년 초에 후속작인 Brother Love's Traveling Salvation Show를 테네시주 멤피스의 아메리칸 사운드 스튜디오(American Sound Studios영어)에서 토미 코그빌(Tommy Cogbill영어)과 칩스 모먼(Chips Moman영어)이 프로듀싱하여 녹음했다.
2.2. 1970년대: 스타덤에 오르다
1969년 중반, 다이아몬드는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다. 그의 음악은 "Sweet Caroline" (1969), "Holly Holy" (1969), "Cracklin' Rosie" (1970), "Song Sung Blue" (1972)와 같은 곡들로 부드러워졌고, 이 중 마지막 두 곡은 핫 100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Sweet Caroline"은 그의 침체기 이후 다이아몬드의 첫 번째 주요 히트곡이었다. 2007년에 다이아몬드는 승마복을 입은 캐롤라인 케네디(Caroline Kennedy영어)를 라이프 잡지 표지에서 보고 "Sweet Caroline"을 썼다고 말했지만, 2014년 투데이 쇼 인터뷰에서는 당시 아내였던 마샤(Marcia영어)를 위해 썼다고 밝혔다. 그는 "마샤"라는 이름과 잘 맞는 라임을 찾을 수 없어서 캐롤라인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이 곡을 쓰고 작곡하는 데 멤피스 호텔에서 단 한 시간이 걸렸다. 1971년 발매된 "I Am...I Said"는 미국과 영국 모두에서 톱 5 히트곡이었으며, 완성하는 데 4개월 이상이 걸린 그의 가장 강렬하고 개인적인 작품이었다.
1971년, 다이아몬드는 로스앤젤레스의 그리스 극장(Greek Theater영어)에서 7번의 매진 콘서트를 열었다. 당시 최고의 엔터테이너들을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했던 이 야외 극장은 처음으로 스테레오 사운드 시스템을 추가했다. 다이아몬드는 또한 35인조 현악 오케스트라와 6명의 백 보컬의 지원을 받았다. 첫날 밤 공연 후, 한 유력 신문은 이를 "그리스 극장 역사상 최고의 콘서트"라고 평했다.
1972년 8월, 그는 다시 그리스 극장에서 공연했는데, 이번에는 10번의 쇼를 열었다. 공연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5,000석 규모의 극장 티켓은 빠르게 매진되었다. 그는 공연을 위해 쿼드러포닉 사운드 시스템을 추가하여 완벽한 서라운드 사운드를 구현했다. 1972년 8월 24일의 공연은 녹음되어 라이브 더블 앨범 핫 오거스트 나이트(Hot August Night영어)로 발매되었다. 다이아몬드는 "Hot August Night는 나에게 매우 특별한 쇼를 담고 있다. 우리는 LA에서 정말로 그들을 감동시키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고 회상했다. 많은 이들이 이 앨범을 그의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하며, 비평가 스티븐 토마스 얼와인(Stephen Thomas Erlewine영어)은 Hot August Night를 "궁극적인 닐 다이아몬드 음반... [다이아몬드] 아이콘의 완전한 영광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불렀다. 이 앨범은 고전이 되었고, 2000년에 추가 곡들과 함께 리마스터링되었다. 당시 어떤 나라보다 닐 다이아몬드 팬이 많다고 알려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이 앨범은 29주 동안 1위를 차지했으며, 2년 동안 베스트셀러 톱 20에 머물렀다. 2006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실시된 가장 좋아하는 앨범 여론조사에서는 16위에 올랐다.
1972년 가을, 다이아몬드는 뉴욕시 윈터 가든 극장(Winter Garden Theater영어)에서 20일 연속 공연을 펼쳤다. 이 극장은 1930년대 앨 졸슨(Al Jolson영어) 이후 한 사람의 쇼를 무대에 올린 적이 없었다. 약 1,600석 규모의 브로드웨이 공연장은 당시 흔치 않던 친밀한 콘서트 환경을 제공했으며, 모든 공연이 매진되었다고 보고되었다. 이는 또한 다이아몬드를 록 시대 스타 중 브로드웨이에서 단독 공연을 한 최초의 인물로 만들었다. 뉴욕 타임스의 평론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닐 다이아몬드의 원맨쇼는 언뜻 보기에 뻔뻔한 아이디어처럼 보였다. 원맨쇼는 전통적으로 주디 갈런드와 대니 케이 같은 재능 있는 인물들과 연관되어 왔다. 그러나 다이아몬드 씨는 분명히 뻔뻔한 젊은이이며, 음악적 실적과 공연에서의 남성적 매력을 모두 갖추고 있어 이를 성공시켰다... 그는 갈런드나 케이 같은 인물들과의 비교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윈터 가든 쇼 이후, 다이아몬드는 휴식이 필요하다고 발표했고, 1976년까지 라이브 공연을 하지 않았다. 그는 이 4년 동안 홀 바틀렛(Hall Bartlett영어) 감독의 리처드 바흐(Richard Bach영어)의 갈매기의 꿈(Jonathan Livingston Seagull영어) 영화 버전을 위한 음악 작업에 몰두했으며, Serenade와 Beautiful Noise 두 장의 앨범을 녹음했다. 그는 몇 년 후 "나는 돌아올 것을 알았지만, 언제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앨범들 각각에 1년을 보냈다... 나는 6년 동안 투어를 다녔고, 2년 반 된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관객보다 나를 더 필요로 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4년 동안 아들 제시(Jesse영어)에게 전념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익명으로 지낼 수 있는 사적인 삶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1973년, 다이아몬드는 다시 콜럼비아 레코드로 레이블을 옮겼고, 앨범당 100.00 만 USD의 선급금을 받는 계약을 체결했다. 솔로 앨범으로 발매된 그의 첫 프로젝트는 갈매기의 꿈(Jonathan Livingston Seagull영어) 사운드트랙이었다. 이 영화는 혹평을 받았고 흥행에 실패했지만, 앨범은 영화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렸다. 베스트셀러 원작 소설의 작가 리처드 바흐는 영화를 부인했고, 그와 다이아몬드는 서로 다른 이유로 바틀렛을 고소했다. 바흐의 경우 영화가 원작 소설에서 너무 많은 부분을 생략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고, 다이아몬드의 경우 영화가 자신의 음악을 훼손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다이아몬드는 "갈매기 이후, 나는 완전한 통제권을 갖지 않는 한 다시는 영화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고 선언했다. 바틀렛은 다이아몬드의 소송에 분노하며 그의 음악이 "너무 매끄러워졌고... 예전처럼 그의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바틀렛은 또한 "닐은 비범한 재능을 가졌다. 종종 그의 오만함은 외롭고 불안정한 내면을 가리기 위한 것일 뿐이다"라고 덧붙였다.
영화와 관련된 논란에도 불구하고, 사운드트랙은 성공을 거두어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2위를 기록했다. 다이아몬드는 또한 골든 글로브상 최우수 오리지널 스코어상과 그래미상 최우수 영화, TV 또는 기타 시각 매체 사운드트랙 앨범상을 수상했다. 이후 다이아몬드는 1976년 Love at the Greek 콘서트와 같은 해 라스베이거스 쇼에서처럼 자신의 라이브 공연에 갈매기의 꿈 모음곡을 자주 포함시켰다.
다이아몬드는 1976년 호주 투어인 "The 'Thank You Australia' Concert"로 라이브 쇼에 복귀했으며, 이 콘서트는 전국 36개 TV 방송국에 방영되었다. 그는 또한 1976년 콘서트 Love at the Greek에서 다시 그리스 극장에 출연했다. 이 쇼의 앨범과 비디오/DVD에는 헬렌 레디(Helen Reddy영어)와 해피 데이즈(Happy Days영어)의 아서 "더 폰즈" 폰자렐리(Arthur "The Fonz" Fonzarelli영어)로 알려진 헨리 윙클러(Henry Winkler영어)와의 듀엣곡 "Song Sung Blue" 버전이 포함되어 있다.
그는 콘서트에서 화려한 구슬 장식 셔츠를 입기 시작했는데, 원래는 관객 모두가 망원경 없이도 자신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빌 휘튼(Bill Whitten영어)은 1970년대부터 약 2007년까지 다이아몬드를 위해 이 셔츠들을 디자인하고 제작했다.
1974년, 다이아몬드는 앨범 Serenade를 발매했으며, 이 앨범에서 "Longfellow Serenade"와 "I've Been This Way Before"가 싱글로 발매되었다. 후자는 갈매기의 꿈 사운드트랙을 위해 의도되었으나, 다이아몬드가 너무 늦게 완성하여 포함되지 못했다. 같은 해 그는 셜리 배시(Shirley Bassey영어)의 TV 스페셜에 출연하여 그녀와 듀엣곡을 불렀다.

1976년, 그는 더 밴드(The Band영어)의 로비 로버트슨(Robbie Robertson영어)이 프로듀싱한 Beautiful Noise를 발매했다. 1976년 추수감사절에 다이아몬드는 더 밴드의 고별 콘서트인 라스트 왈츠(The Last Waltz영어)에 출연하여 로버트슨과 공동 작곡하고 Beautiful Noise에 수록된 "Dry Your Eyes"를 불렀다. 그는 또한 공연 말미에 다른 연주자들과 함께 밥 딜런의 "I Shall Be Released"를 연주했다. 그러나 다이아몬드의 참여는 로버트슨과 다른 밴드 멤버들 간의 불화를 결정적으로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1976년 7월 2일,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알라딘 호텔은 새로운 1000.00 만 USD 규모의 공연 예술 극장 개장을 위해 다이아몬드에게 65.00 만 USD를 지불했다. 이 공연은 7월 5일까지 이어졌고, 7,500석 규모의 극장은 매진되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부터 체비 체이스까지 할리우드의 유명 인사들이 개막 밤에 참석했으며, 다이아몬드가 무대에 등장하자 기립 박수가 쏟아졌다. 그는 성공하기 전에 자신을 버린 옛 여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로 쇼를 시작하며, 첫 곡에 앞서 "날 너무 일찍 버렸을 수도 있어, 자기야, 오늘 밤 누가 여기 서 있는지 봐"라고 말했다.
1977년 7월 2일, 그는 워번 수도원(Woburn Abbey영어)에서 55,000명의 영국 팬들 앞에서 공연했다. 이 콘서트와 인터뷰는 영화감독 윌리엄 프리드킨(William Friedkin영어)이 6대의 카메라를 사용하여 촬영했다.
1977년, 다이아몬드는 "You Don't Bring Me Flowers"가 수록된 I'm Glad You're Here with Me Tonight를 발매했는데, 이 곡은 그가 음악을 작곡하고 앨런 버그먼(Alan Bergman영어)과 마릴린 버그먼(Marilyn Bergman영어)이 가사 작업에 참여했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자신의 앨범 Songbird에서 이 곡을 커버했으며, 이후 라디오 매시업의 성공에 힘입어 다이아몬드와 스트라이샌드의 듀엣 버전이 녹음되었다. 이 버전은 1978년에 1위를 차지하며 그의 세 번째 핫 100 차트 1위곡이 되었다. 그들은 1980년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에 예고 없이 등장하여 놀라움과 환호에 찬 관객들 앞에서 이 곡을 공연했다.
그의 1970년대 마지막 앨범은 "I'm a Believer"의 새로운 버전이 포함된 September Morn이었다. "Red Red Wine"과 함께 이 곡들은 다른 아티스트들에 의해 더 유명해진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원곡들이다. 1979년 2월, 전년도 다이아몬드의 앨범 You Don't Bring Me Flowers에서 기타리스트 리처드 베넷(Richard Bennett영어)과 공동 작곡한 업템포 곡 "Forever in Blue Jeans"가 싱글로 발매되었다.
1979년, 다이아몬드는 샌프란시스코 공연 도중 무대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척추 종양 제거를 위한 12시간 수술을 받았다. 그는 몇 년 동안 오른쪽 다리에 감각이 없었지만 무시했다고 말했다. 쓰러졌을 때는 양쪽 다리에 힘이 전혀 없었다. 그는 영화 재즈 싱어 (1980)의 주요 촬영을 시작하기 직전에 긴 재활 과정을 거쳤다. 그는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확신하여 친구들에게 작별 편지를 쓰기도 했다.
2.3. 1980년대: 영화와 계속되는 성공
다이아몬드와 스트라이샌드가 주연을 맡을 예정이었던 영화 You Don't Bring Me Flowers는 무산되었고, 대신 다이아몬드는 1980년 앨 졸슨의 고전 재즈 싱어의 리메이크작에 로런스 올리비에와 루시 아나즈(Lucie Arnaz영어)와 함께 주연으로 출연했다. 영화는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지만, 사운드트랙은 "Love on the Rocks", "Hello Again", 그리고 "America"라는 세 개의 톱 10 싱글을 탄생시켰다. 이 중 "America"는 다이아몬드에게 감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는 인터뷰에서 "'America'는 우리 조부모님의 이야기였다"며 "그것은 그들에게 주는 나의 선물이며, 나에게 매우 현실적인 곡이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 모두의 이민자적인 면모를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이 곡은 영화의 피날레에서 다이아몬드에 의해 완곡으로 불렸고, 영화의 오프닝 타이틀에는 축약된 버전이 흘러나왔다.
이 곡은 그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곡이기도 했는데, 부분적으로는 나중에 사용된 상황 때문이었다. 이란 인질 위기가 끝난 후 인질들이 귀국하는 모습이 전국 뉴스에서 이 곡과 함께 방영되었고, 자유의 여신상 100주년 기념 행사에서도 연주되었다. 또한 순직한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추모 행사와 베트남 참전 용사 환영 콘서트에서도 라이브로 공연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당시 전국 여론조사에서 이 곡은 "God Bless America"보다 더 많이 알려진 미국에 대한 노래 1위로 선정되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테러 공격 2주 후 그의 월드 투어의 주제곡이 되었을 때, 그는 마지막 가사를 "그들이 미국으로 오고 있다"에서 "미국을 위해 일어서라!"로 바꾸었다. 그해 초 그는 전 헤비급 챔피언 무함마드 알리의 요청으로 이 곡을 공연하기도 했다.
영화의 실패는 부분적으로 다이아몬드가 이전에 전문적으로 연기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나중에 자신이 "물 만난 물고기" 같았다고 말하며 "내가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영화에서의 연기로 다이아몬드는 골든 라즈베리상 최악의 배우 부문에서 최초로 수상자가 되었는데, 같은 역할로 골든 글로브상에 후보로 지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비평가 데이비드 와일드(David Wild영어)는 이 영화가 다이아몬드가 자신의 종교에 대해 개방적이었음을 보여주었다고 언급했다. "이 유대인 엘비스가 '콜 니드레'(Kol Nidre영어) 버전을 담은 앨범으로 멀티 플래티넘을 기록할 수 있었을까?" 다이아몬드는 나중에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나에게 이것은 궁극적인 바르 미츠바였다"고 말했다.
또 다른 톱 10 히트곡인 "Heartlight"는 1982년 블록버스터 영화 E.T.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가사에는 영화의 주인공이 언급되지 않았지만, E.T.를 배급하고 다이아몬드가 수년간 음반을 녹음했던 유니 레코드 레이블(당시 MCA 레코드)의 모회사였던 유니버설 픽처스는 다이아몬드와 콜럼비아 레코드 양측에 대해 잠시 법적 조치를 위협했다.
다이아몬드의 음반 판매량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다소 침체되어, 마지막 싱글이 빌보드 팝 싱글 차트에 진입한 것은 1986년이었다. 그러나 그의 콘서트 투어는 계속해서 큰 인기를 끌었다. 빌보드 잡지는 1986년 다이아몬드를 가장 수익성 높은 솔로 공연자로 선정했다. 그는 1986년에 17번째 스튜디오 앨범 Headed for the Future를 발매했으며, 이 앨범은 빌보드 200 차트에서 20위에 올랐다. 3주 후 그는 9년 만의 첫 TV 스페셜인 Hello Again에 출연하여 코미디 스케치와 캐럴 버넷(Carol Burnett영어)과의 듀엣 메들리를 선보였다.
1987년 1월, 다이아몬드는 슈퍼볼 XXI에서 미국 국가를 불렀다. 그의 "America"는 마이클 듀카키스(Michael Dukakis영어)의 1988년 대통령 선거 캠페인 주제곡이 되었다. 같은 해, 영국 밴드 UB40의 다이아몬드 발라드 "Red Red Wine"의 레게 해석 버전이 빌보드 팝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했으며, 몽키스의 "I'm a Believer" 버전처럼 다이아몬드의 원곡보다 더 잘 알려지게 되었다.
2.4. 1990년대: 인기 재점화와 문화적 영향
1990년대 동안 다이아몬드는 6장의 스튜디오 앨범을 발표했다. 그는 영화와 유명한 브릴 빌딩 시대 작곡가들의 많은 고전 곡들을 커버했다. 또한 두 장의 크리스마스 앨범을 발매했는데, 첫 번째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8위를 기록했다. 다이아몬드는 이 시기에 주로 새로운 곡들로 구성된 두 장의 앨범도 녹음했다. 1992년, 그는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의 마지막 Christmas in Washington NBC 스페셜에서 공연했다. 1993년, 다이아몬드는 5월 27일과 28일에 두 번의 쇼로 마크 오브 더 쿼드 시티즈(Mark of the Quad Cities영어; 현재 아이와이어리스 센터(iWireless Center영어))를 개장했으며, 27,000명 이상의 관객을 모았다.
1990년대는 다이아몬드의 인기가 다시 살아나는 시기였다. "Sweet Caroline"은 스포츠 행사에서 인기 있는 싱어롱 곡이 되었다. 이 곡은 보스턴 칼리지 이글스 축구(Boston College Eagles football영어) 및 보스턴 칼리지 이글스 남자 농구(Boston College Eagles men's basketball영어) 경기에서 사용되었다. 다른 주의 대학 스포츠 행사에서도 이 곡이 연주되었고, 홍콩 세븐스(Hong Kong Sevens영어) 럭비 토너먼트나 북아일랜드의 축구 경기와 같은 다른 나라의 스포츠 행사에서도 연주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안 풋볼 리그의 시드니 스완스(Sydney Swans영어)의 모든 홈 경기에서 연주되는 주제곡이 되었다. 이는 보스턴 레드삭스 팬들의 레드삭스 네이션(Red Sox Nation영어)의 주제곡이 되었다. (다이아몬드는 평생 브루클린 다저스/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팬이었다고 언급했다.)
뉴욕 레인저스(New York Rangers영어) 또한 이 곡을 자신들의 곡으로 채택하여 경기 3피리어드 종료 시 승리하고 있을 때마다 연주했다. 피츠버그 팬서스 축구(Pittsburgh Panthers football영어) 팀도 모든 홈 경기 3쿼터 후에 이 곡을 연주하며 관중들은 "Let's go Pitt"을 외쳤다. 캐롤라이나 팬서스(Carolina Panthers영어)는 홈 경기에서 승리할 때마다 이 곡을 연주했다. 데이비드슨 칼리지(Davidson College영어)의 응원 밴드도 데이비드슨 와일드캣츠 남자 농구(Davidson Wildcats men's basketball영어) 홈 경기 후반에 이 곡을 연주했다.

1994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펄프 픽션에서는 어지 오버킬(Urge Overkill영어)에 의해 "Girl, You'll Be a Woman Soon"이 커버되었다. 1991년 프랭크 오즈 감독의 영화 굿모닝 에브리원(What About Bob?영어)에서는 극 중 대사에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닐 다이아몬드를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다(There are two types of people in the world: those who like Neil Diamond and those who don't.영어)"라는 대사가 사용되기도 했다.
2.5. 2000년대: 새로운 방향과 비평적 성공
릭 루빈(Rick Rubin영어)이 프로듀싱한 더욱 간소화된 앨범 12 Songs는 2005년 11월 8일에 발매되었는데, 표준 12곡 발매판과 브라이언 윌슨(Brian Wilson영어)의 백 보컬이 포함된 보너스 트랙 2곡이 있는 특별판으로 나왔다. 이 앨범은 빌보드 차트 4위로 데뷔했으며,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얼와인은 이 앨범을 "논란의 여지 없이 닐 다이아몬드의 오랜만에 최고의 곡 모음"이라고 평했다. 12 Songs는 또한 소니 BMG가 디스크에 확장 복사 방지(Extended Copy Protection영어) 소프트웨어를 내장하여 프레스 및 발매한 마지막 앨범 중 하나로 주목받았다.
2007년, 다이아몬드는 롱 아일랜드 음악 명예의 전당(Long Island Music Hall of Fame영어)에 헌액되었다.
2008년 3월 19일, TV 쇼 아메리칸 아이돌에서 다이아몬드가 남은 아이돌 참가자들의 멘토로 출연할 것이며, 이들이 2008년 4월 29일과 30일 방송에서 다이아몬드의 노래를 부를 것이라고 발표되었다. 4월 30일 방송에서 다이아몬드는 당시 막 발매된 앨범 Home Before Dark의 신곡 "Pretty Amazing Grace"를 처음 선보였다. 2008년 5월 2일, 시리우스 새틀라이트 라디오(Sirius Satellite Radio영어)는 닐 다이아몬드 라디오를 시작했다. 2008년 4월 8일, 다이아몬드는 펜웨이 파크(Fenway Park영어)의 대형 스크린 방송을 통해 2008년 8월 23일에 월드 투어의 일환으로 그곳에서 "라이브 콘서트"를 열 것이라고 깜짝 발표했다. 이 발표는 미국에서 2008년 콘서트 날짜를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첫 번째 발표였으며, 당시 보스턴 팬들의 찬가가 된 "Sweet Caroline"의 전통적인 8회 싱어롱 도중에 이루어졌다.
2008년 4월 28일, 다이아몬드는 지미 키멜(Jimmy Kimmel영어) 건물 옥상에 출연하여 "Sweet Caroline"을 불렀다.

Home Before Dark는 2008년 5월 6일에 발매되었고, 뉴질랜드, 영국, 미국 앨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는 그의 오랜 경력에서 처음으로 빌보드 종합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한 쾌거였다. 5월 18일에는 영국 차트에서도 1위를 달성하며, 영국에서는 1992년 컴필레이션 앨범에 이어 두 번째 1위 앨범이 되었다. 그 결과, 1966년 데뷔 이래 오리지널 앨범으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1위를 기록한 아티스트가 되었다.
2008년 6월 29일, 다이아몬드는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Glastonbury Festival영어)에서 약 108,000명의 팬들 앞에서 공연했지만, 음향 문제 등 기술적인 문제로 인해 콘서트가 손상되었다. 8월에는 카메라가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의 4일 밤 공연 전체를 녹화하도록 허용했으며, 그 결과물인 DVD Hot August Night/NYC는 첫 콘서트로부터 정확히 1년 후인 2009년 미국에서 발매되어 차트 2위로 데뷔했다. 같은 날 CBS는 편집된 버전을 방영했으며, 13,000,000명의 시청자를 기록하며 시청률 시간대에서 1위를 차지했다. 다음 날, DVD 판매량이 급증하여 소니는 높은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더 많은 복사본을 주문했다.
2008년 8월 25일, 다이아몬드는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에서 후두염을 앓으면서 공연했다. 그 결과는 그 자신과 팬들 모두를 실망시켰고, 8월 26일 그는 9월 5일까지 신청하는 모든 사람에게 환불을 제안했다.
2009년 2월 6일, 다이아몬드는 제51회 그래미 어워드 이틀 전 뮤직케어스 올해의 인물(MusiCares Person of the Year영어)로 선정되었다. 보스턴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았던 다이아몬드는 2009년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 축하 행사에 초대되어 노래를 불렀다. 2009년 10월 13일, 그는 세 번째 홀리데이 음악 앨범인 A Cherry Cherry Christmas를 발매했다.
2.6. 2010년대: 기념비적인 성과와 마지막 투어

2010년 11월 2일, 다이아몬드는 록 시대 아티스트들이 부른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 14곡을 재해석한 앨범 Dreams를 발매했다. 이 앨범에는 그의 "I'm a Believer"의 새로운 슬로우 템포 편곡도 포함되어 있었다. 12월에는 NBC의 더 싱-오프(The Sing-Off영어)에서 두 아카펠라 그룹 커미티드(Committed영어)와 스트리트 코너 심포니(Street Corner Symphony영어)와 함께 앨범 수록곡 "Ain't No Sunshine"을 공연했다. 뱅, 유니/MCA, 콜럼비아 카탈로그의 다이아몬드 스튜디오 녹음 23곡을 모은 컴필레이션 CD The Very Best of Neil Diamond는 2011년 12월 6일 소니 레거시(Sony Legacy영어) 레이블로 발매되었다.
2011년과 2012년은 다이아몬드 경력의 여러 중요한 이정표가 되는 해였다. 2011년 3월 14일, 그는 뉴욕시 월도프-아스토리아 호텔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2월에는 2011년 케네디 센터 공로상에서 평생 공로상을 받았다. 2012년 8월 10일, 다이아몬드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별을 새겼다. 2012년 11월, 그는 영국에서 열린 로열 버라이어티 퍼포먼스(Royal Variety Performance영어) 100주년 기념 공연의 헤드라이너로 출연했으며, 이 공연은 12월 3일에 방영되었다. 그는 또한 메이시스 추수감사절 퍼레이드(Macy's Thanksgiving Day Parade영어)에도 출연했다.
2013년 4월 20일, 다이아몬드는 펜웨이 파크에 예고 없이 등장하여 8회 말에 "Sweet Caroline"을 불렀다. 이는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 이후 펜웨이에서 열린 첫 경기였다. 7월 2일, 그는 싱글 "Freedom Song (They'll Never Take Us Down)"을 발매했으며, 판매 수익의 100%는 원 펀드 보스턴(One Fund Boston영어)과 워운디드 워리어 프로젝트(Wounded Warrior Project영어)에 기부되었다. 2013년 7월 4일, 다이아몬드는 미국 국회의사당 서쪽 잔디밭에서 A Capitol Fourth의 일환으로 라이브 공연을 펼쳤으며, 이 공연은 PBS를 통해 전국에 방영되었다.
2014년 1월, 다이아몬드가 유니버설 뮤직 그룹의 캐피톨 뮤직 그룹(Capitol Music Group영어) 유닛과 계약했음이 확인되었다. 유니버설 뮤직 그룹은 다이아몬드의 유니/MCA 카탈로그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이 계약으로 유니버설 뮤직 그룹은 다이아몬드의 콜럼비아 및 뱅 카탈로그까지 인수하여 그의 모든 녹음된 작품이 처음으로 통합되었다.
2014년 7월 8일, 캐피톨 레코드는 다이아몬드의 최신 히트곡 컴필레이션 All-Time Greatest Hits (빌보드 200 차트 15위)에 포함된 전단지를 통해, 돈 워스(Don Was영어)와 잭나이프 리(Jacknife Lee영어)가 프로듀싱할 그의 다음 앨범 Melody Road가 2014년 9월 30일에 발매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8월에 발매일은 10월 21일로 변경되었다。
2014년 9월, 다이아몬드는 자신의 모교인 브루클린의 에라스무스 고등학교에서 깜짝 콘서트를 열었다. 이 쇼는 그날 오후 트위터를 통해 발표되었다. 같은 날, 그는 2015년 "멜로디 로드" 월드 투어를 발표했다。2015년 월드 투어의 북미 구간은 2월 27일 펜실베이니아주 앨런타운의 PPL 센터(PPL Center영어) 콘서트로 시작하여 2015년 5월 31일 콜로라도주 덴버의 펩시 센터(Pepsi Center영어)에서 마무리되었다. 다이아몬드는 투어 내내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과 소셜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여러 쇼를 페리스코프(Periscope영어)로 생중계하고 #tweetcaroline 해시태그를 사용한 팬들의 트윗을 두 개의 대형 스크린에 보여주었다. 샌디에이고 유니언-트리뷴(The San Diego Union-Tribune영어)은 "이것은 친구들이여, 할아버지의 닐 다이아몬드 콘서트가 아니었다. 그것은 멀티미디어 대향연이었다. 트위터. 페리스코프... 소셜 미디어 전격전이었고, 모든 면에서 팬층을 넓히는 혁신적인 방법임이 입증되었다"고 평했다.
2016년 10월, 다이아몬드는 오리지널 곡과 홀리데이 고전 곡들의 어쿠스틱 버전을 담은 포크풍의 크리스마스 앨범 Acoustic Christmas를 발매했다. Melody Road를 프로듀싱했던 워스와 리가 프로듀싱한 이 앨범의 아이디어는 Melody Road 세션이 끝날 무렵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60년대 포크의 친밀한 분위기를 담기 위해, 다이아몬드는 소수의 음악가들과 함께 마이크, 전선, 그리고 물론 크리스마스 조명으로 둘러싸여 앉아 Acoustic Christmas를 녹음했다."
2017년 3월, 그의 경력을 총망라한 앤솔로지 Neil Diamond 50 - 50th Anniversary Collection이 발매되었다. 그는 4월에 캘리포니아주 프레즈노에서 마지막 콘서트 투어인 50 Year Anniversary World Tour를 시작했다.
2019년, 그의 1969년 대표곡 "Sweet Caroline"은 "문화적, 역사적, 또는 미학적으로 중요"하다고 평가되어 미국 의회도서관에 의해 국가 기록 등재 목록(National Recording Registry영어)에 보존될 작품으로 선정되었다.
2.7. 2020년대: 건강 문제와 활동 재개
2020년 3월 7일, 파킨슨병 진단으로 투어 활동을 은퇴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이아몬드는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기억을 지켜라 사랑의 힘 갈라'(Keep Memory Alive Power of Love Gala영어)에서 드물게 공연을 펼쳤다. 그는 이 행사에서 공로를 인정받았다.
2020년 3월 22일, 다이아몬드는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에 대응하여 가사를 약간 수정한 ("...손을 씻고, 날 만지지 마, 나도 널 만지지 않을 거야...") "Sweet Caroline"을 연주하는 영상을 유튜브에 게시했다.
2021년 4월, 뉴욕 타임스는 다이아몬드의 삶을 바탕으로 그의 노래를 특징으로 하는 뮤지컬 A Beautiful Noise가 2022년 여름 보스턴의 에머슨 콜로니얼 극장(Emerson Colonial Theater영어)에서 개막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뮤지컬은 보스턴에서의 한 달간의 공연 이후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할 예정이었다.

유니버설 뮤직 그룹은 2022년 2월 다이아몬드의 작곡 카탈로그와 뱅 레코드, 콜럼비아 레코드, 캐피톨 레코드 녹음 권리를 인수했다. 이 인수에는 미발매 트랙 110곡, 미발매 앨범 1장, 아카이브 영상 등이 포함되었다.
2022년 6월 18일, 다이아몬드는 펜웨이 파크에서 열린 레드삭스 경기 8회 말에 "Sweet Caroline"을 불렀다. 깜짝 출연한 그는 뮤지컬 A Beautiful Noise에서 다이아몬드를 연기하는 윌 스웬슨(Will Swenson영어)과 함께 무대에 섰다.
3. 음악 스타일 및 문화적 영향
닐 다이아몬드는 록, 팝, 포크, 컨트리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음악 스타일을 선보였다. 그는 자신의 초기 작곡 시절을 "절망의 결과물"이라고 묘사한 "Solitary Man"이나 완성하는 데 4개월 이상이 걸린 가장 개인적인 작품 "I Am...I Said"와 같이 깊이 있는 가사와 멜로디를 결합하는 데 능숙했다. 그는 또한 "유대인 엘비스"(The Jewish Elvis영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의 곡들은 수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엘비스 프레슬리("Sweet Caroline", "And The Grass Won't Pay No Mind"), 딥 퍼플("Kentucky Woman"), 룰루("Boat That I Row"), 클리프 리처드("I'll Come Running", "Solitary Man", "Girl, You'll Be a Woman Soon", "I Got the Feelin' (Oh No, No)"), UB40("Red Red Wine"), 조니 캐시("Solitary Man"), HIM("Solitary Man") 등이 그의 곡을 커버했다.
다이아몬드의 음악은 특히 대중문화와 사회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곡 "America"는 그의 조부모의 이민 이야기를 담은 "그들에게 주는 선물"이자 "우리 모두의 이민자적인 면모를 이야기하는" 곡으로 그에게 깊은 의미를 지녔다. 이 곡은 이란 인질 위기 이후 인질들이 귀국하는 모습, 자유의 여신상 100주년 기념 행사,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추모 행사, 베트남 참전 용사 환영 콘서트 등 여러 중요한 국가적 행사에서 사용되었다. 2001년 9월 11일 테러 공격 이후 그의 월드 투어에서는 가사가 "미국을 위해 일어서라!"로 변경되어 불리기도 했다. 1988년 마이클 듀카키스의 미국 대통령 선거 캠페인 주제곡으로 사용되었고,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 올림픽 홍보에도 쓰였다. 한 전국 여론조사에서는 "God Bless America"보다 더 많이 알려진 미국에 대한 노래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Sweet Caroline"은 스포츠 행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싱어롱 곡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팬들인 레드삭스 네이션의 주제곡이 되었으며, 보스턴 칼리지의 미식축구 및 농구 경기, 워싱턴 내셔널스, 뉴욕 메츠의 홈 경기 8회 말, 뉴욕 레인저스가 승리하고 있을 때의 경기 3피리어드, 피츠버그 팬서스 축구 팀의 홈 경기 3쿼터 후, 캐롤라이나 팬서스가 홈 경기에서 승리할 때, 데이비드슨 칼리지의 남자 농구 홈 경기 후반 등 수많은 스포츠 경기에서 연주된다. 관중들은 "Sweet Caroline"이라는 후렴구에 "Wow wow wow"라는 추임새를 넣고, "Good times never seen so good"에는 "So Good, So Good, So Good"이라고 화답하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에는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팬들도 UEFA 유로 2020에서 독일을 꺾은 후 웸블리 스타디움(Wembley Stadium영어)의 DJ 토니 패리(Tony Parry영어)가 이 곡을 틀면서 승리 시 부르는 곡이 되었다.
4. 개인 생활
다이아몬드는 세 번 결혼했다. 1963년, 그는 고등학교 시절 연인이었던 학교 교사 제이 포스너(Jaye Posner영어)와 결혼했다. 그들은 두 딸을 두었으나, 1967년에 별거하고 1969년에 이혼했다.
1969년 12월 5일, 다이아몬드는 프로덕션 어시스턴트인 마샤 머피(Marcia Murphey영어)와 재혼했다. 그들은 두 아들 제시(Jesse영어)와 미카(Mika영어)를 두었으나, 1994년 또는 1995년에 결혼 생활이 끝났다. 이혼 시 마샤에게는 1.50 억 USD에 달하는 위자료가 지급되었는데, 이는 당시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위자료 액수였다. 닐은 이 위자료에 대해 "그녀는 한 푼도 아깝지 않게 벌었다"고 말했다.
1996년, 다이아몬드는 오스트레일리아 브리즈번에서 만난 호주인 레이 팔리(Rae Farley영어)와 관계를 시작했다. 앨범 Home Before Dark의 곡들은 그가 만성적인 허리 통증으로 고생하던 시기에 쓰여지고 작곡되었다.
2011년 9월 7일, 70세의 다이아몬드는 트위터를 통해 41세의 케이티 맥닐(Katie McNeil영어)과의 약혼을 발표했다. 두 사람은 2012년 로스앤젤레스에서 가족과 친한 친구들 앞에서 결혼했다. 맥닐은 다이아몬드의 매니저 역할 외에도 다큐멘터리 Neil Diamond: Hot August Nights NYC를 제작했다. 다이아몬드는 2014년 앨범 Melody Road가 그들의 관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하며, "사랑에 빠지는 것보다 더 좋은 영감이나 동기 부여는 없다. 창의적인 사람으로서 꿈꾸는 것이다. 나는 사랑의 마법 아래에서 이 앨범을 시작하고 쓰고 완성할 수 있었고,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드러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다이아몬드는 브리즈번 라이온스(Brisbane Lions영어)라는 호주식 축구팀의 팬이다. 또한 그는 폴 사이먼, 빌리 조엘, 핑크 플로이드, 퀸, 브루스 스프링스틴, 제네시스, 조니 리버스(Johnny Rivers영어) 등과 같이 자신의 저작권을 소유한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5. 디스코그래피
닐 다이아몬드는 수많은 스튜디오 앨범, 라이브 앨범,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표하며 폭넓은 디스코그래피를 구축했다.

; 스튜디오 앨범
연도 | 제목 |
---|---|
1966 | The Feel Of Neil Diamond |
1967 | Just For You |
1968 | Velvet Gloves And Spit |
1969 | Brother Love's Travelling Salvation Show |
1969 | Touching You, Touching Me |
1970 | Tap Root Manuscript |
1971 | Stones |
1972 | Moods |
1973 | Jonathan Livingston Seagull (사운드트랙) |
1974 | Serenade |
1976 | Beautiful Noise |
1977 | I'm Glad You're Here With Me Tonight |
1978 | You Don't Bring Me Flowers |
1980 | September Morn |
1980 | The Jazz Singer Soundtrack To The Film |
1981 | On The Way To The Sky |
1982 | Heartlight |
1984 | Primitive |
1986 | Headed To The Future |
1989 | The Best Years of Our Lives |
1992 | Lovescape |
1992 | The Christmas Album |
1993 | Up On The Roof: Songs From The Brill Building |
1994 | The Christmas Album 2 |
1996 | Tennessee Moon |
1998 | The Movie Album: As Time Goes By |
2001 | Three Chord Opera |
2005 | 12 Songs |
2006 | 12 Songs (재발매) |
2008 | Home Before Dark (US: No.1, UK: No.1) |
2010 | Dreams |
2014 | Melody Road |
2016 | Acoustic Christmas |
; 라이브 앨범
연도 | 제목 |
---|---|
1970 | Gold: Live at the Troubadour |
1973 | Hot August Night |
1977 | Love At The Greek |
1987 | Hot August Night 2 |
1994 | Live in America |
1997 | Live in Concert |
2003 | Stages (5 CD + 1 DVD) |
2009 | Hot August Night/NYC: Live from Madison Square Garden |
; 컴필레이션 앨범
연도 | 제목 |
---|---|
1968 | Neil Diamond's Greatest Hits |
1970 | It's Happening |
1970 | Shilo |
1971 | Do It |
1973 | Double Gold |
1973 | Rainbow |
1974 | His Twelve Greatest Hits |
1976 | And The Singer Sings His Songs |
1978 | Early Classics Released on Neil's own record label, Frog King |
1981 | Love Songs |
1982 | His Twelve Greatest Hits Vol. 2 |
1983 | Classics: The Early Years |
1992 | Greatest Hits: 1966-1992 |
1992 | Glory Road: 1968-1972 |
1996 | In My Lifetime |
1999 | The Best Of The Movie Album |
1999 | Neil Diamond Collection |
1999 | 20th Century Masters - The Best of Neil Diamond |
2001 | Essential Neil Diamond |
2002 | Love Songs |
2002 | Play Me: The Complete Uni/MCA Studio Recordings...Plus! |
2005 | Gold |
2011 | The Very Best of Neil Diamond |
2014 | All-Time Greatest Hits |
2017 | Neil Diamond 50 - 50th Anniversary Collection |
6. 필모그래피
닐 다이아몬드는 음악 활동 외에도 여러 영화와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연기 경력을 쌓았다.
- 1967년: 맨닉스(Mannix영어), "The Many Deaths of Saint Christopher" 에 본인 역으로 출연
- 1976년: 라스트 왈츠(The Last Waltz영어)에 게스트로 출연
- 1976년: Love At The Greek (영상물)
- 1980년: 재즈 싱어(The Jazz Singer영어)에서 제스 로빈(Jess Robin영어) 역으로 주연
- 1986년: Greatest Hits Live (영상물)
- 2001년: 세이빙 실버맨(Saving Silverman영어)에 본인 역으로 출연
- 2003년: Stages (5CD+1DVD 세트에 포함된 DVD)
- 2006년: 키핑 업 위드 더 스타인즈(Keeping Up With The Steins영어)에 본인 역으로 출연
- 2023년: Trevor Noah: Where Was I에 본인 역으로 출연
7. 수상 및 영예
닐 다이아몬드는 그의 음악 경력 동안 수많은 권위 있는 상과 영예를 받았다.
연도 | 시상식 | 부문 | 작품/공로 |
---|---|---|---|
1973 | 골든 글로브상 | 최우수 오리지널 스코어 | Jonathan Livingston Seagull |
1974 | 그래미상 | 최우수 영화, TV 또는 기타 시각 매체 사운드트랙 앨범 | Jonathan Livingston Seagull |
1980 | 골든 라즈베리상 | 최악의 배우 | 재즈 싱어 |
1980 | ASCAP 영화 및 TV 음악상 | 최다 공연 장편 영화 스탠더드 | 재즈 싱어 |
1984 | 송라이터 명예의 전당 | 헌액 | |
1990 |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 공로상 | |
2000 | 송라이터 명예의 전당 | 새미 칸 평생 공로상 | |
2007 | 롱 아일랜드 음악 명예의 전당 | 헌액 | |
2011 | 로큰롤 명예의 전당 | 헌액 | |
2011 | 케네디 센터 공로상 | 공로자 | |
2012 |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 스타 헌액 | |
2018 | 그래미상 | 평생 공로상 | |
2018 | 송라이터 명예의 전당 | 조니 머서상 (최고 특별상) |
8. 투어 은퇴
2018년 1월, 닐 다이아몬드는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후 콘서트 투어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그의 "50주년 기념 월드 투어"의 호주 및 뉴질랜드 구간은 취소되었다. 그의 공식 웹사이트 발표에 따르면, 그는 음악 활동에서 완전히 은퇴하는 것이 아니며, 라이브 공연 취소는 그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계속 쓰고, 녹음하고, 개발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고 밝혔다.
2018년 7월 28일, 다이아몬드와 그의 아내 케이티는 다이아몬드의 집 근처 콜로라도주 바솔트(Basalt영어)에 있는 사건 지휘소에 깜짝 방문하여, 7월 3일에 시작되어 1.20 만 acre를 태운 레이크 크리스틴 화재(Lake Christine Fire영어)를 진압하기 위한 소방관들과 그 가족들의 노력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다이아몬드는 그들을 위해 솔로 어쿠스틱 기타 콘서트를 열었다.
9. 대중문화 속에서의 닐 다이아몬드
닐 다이아몬드는 그의 음악과 함께 다양한 대중문화 매체에서 인용되거나 재해석되며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 1967년, 다이아몬드는 형사 드라마 맨닉스(Mannix영어)의 네 번째 에피소드에 '더 배드 신'(The Bad Scene영어)이라는 작은 언더그라운드 클럽의 '초대 아티스트'로 출연했으며, 그의 노래 도중 쇼에서 매주 벌어지던 많은 싸움 중 하나로 인해 중단되었다.
- 2000년, 닐 다이아몬드는 로스앤젤레스 하우스 오브 블루스(House of Blues영어)에서 열린 트리뷰트 밴드 슈퍼 다이아몬드(Super Diamond영어)의 공연에 깜짝 등장하여 그들을 놀라게 했다.
- 2001년 코미디 영화 세이빙 실버맨(Saving Silverman영어)에서는 주인공들이 다이아몬드 커버 밴드에서 연주하며, 다이아몬드 자신이 카메오로 출연했다. 다이아몬드는 심지어 이 영화를 위해 신곡 "I Believe in Happy Endings"를 쓰고 작곡했다. 그는 영화 시사회 파티에서 트리뷰트 밴드 슈퍼 다이아몬드와 함께 연주했다.
- 코미디언 윌 페럴(Will Ferrell영어)은 다이아몬드 성대모사를 주특기로 삼았는데, 2002년 5월 그의 마지막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출연에는 다이아몬드가 함께 출연하여 무대를 뜨겁게 달구었다.
- 최근에는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팬들이 UEFA 유로 2020에서 독일을 꺾은 후 웸블리 스타디움(Wembley Stadium영어)의 DJ 토니 패리(Tony Parry영어)가 "Sweet Caroline"을 틀면서 이 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경기 후 싱어롱에서 'Three Lions'보다 'Sweet Caroline'이 더 잘 어울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