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남수단 공화국(Republic of South Sudan리퍼블릭 오브 사우스 수단영어), 약칭 남수단은 동아프리카에 위치한 내륙국이다. 수도이자 최대 도시는 주바이며, 남부의 중앙에콰토리아주에 자리 잡고 있다. 북쪽으로는 수단, 동쪽으로는 에티오피아, 남쪽으로는 케냐, 우간다, 콩고 민주 공화국, 서쪽으로는 중앙아프리카 공화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남수단의 국토는 백나일강이 형성하는 광대한 늪 지대인 수드를 포함하며, 현지에서는 이 강을 '바흐르 알자발'이라 부른다. 남수단의 인구는 약 1,270만 명이다. 국토는 광대한 평원과 고원, 건조 및 열대 사바나, 내륙 범람원, 삼림이 우거진 산악 지대 등 다양한 경관을 포함한다. 나일강 수계는 국토 중앙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핵심적인 지리적 특징이며, 중앙부는 수드로 알려진 거대한 늪지대가 차지한다.
2011년 7월 9일, 남수단은 2011년 남수단 독립 국민투표에서 약 98.83%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수단으로부터 독립하여 아프리카 대륙의 54번째 독립 국가가 되었다. 이는 2005년 케냐 나이바샤에서 체결된 포괄적 평화 협정(CPA)에 따른 것으로, 이 협정은 제2차 수단 내전을 종식하고 남수단 자치 정부 수립의 길을 열었다. 남수단은 1956년 수단 독립 이후 대부분의 기간 동안 내전을 겪었으며, 이로 인해 심각한 인명 피해와 피난민 발생, 기반 시설 파괴 등 막대한 고통을 겪었다. 제1차 수단 내전 이후 남수단 자치구가 1972년에 형성되어 1983년까지 지속되었으나, 곧이어 제2차 수단 내전이 발발했다. 독립 이후에도 남수단은 2013년부터 2020년까지 지속된 남수단 내전으로 인해 심각한 인권 유린, 강제 이주, 민족 학살 등을 경험했다. 현재는 과거 내전의 주요 교전 세력 지도자들인 살바 키르 마야르디트 대통령과 리크 마차르 제1부통령이 이끄는 연립 정부에 의해 통치되고 있으나, 민족 간 폭력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남수단 인구는 주로 나일족 계열의 다양한 민족, 부족, 언어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구의 약 절반이 18세 미만으로 세계에서 가장 젊은 국가 중 하나이다. 대다수 주민은 기독교나 다양한 아프리카 토착 신앙을 따르며, 소수의 이슬람교 공동체도 존재한다.
남수단은 유엔(UN), 아프리카 연합(AU), 동아프리카 공동체(EAC), 정부간개발기구(IGAD)의 회원국이다. 세계에서 가장 발전이 더딘 최빈개발도상국 중 하나로, 인간 개발 지수(HDI)는 세계 최하위 수준이며,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GDP) 또한 세계에서 가장 낮은 국가군에 속한다. 국토 면적은 64.43 만 km2로 세계 41위이며, 공용어는 영어이다. 국가 모토는 "정의, 자유, 번영"이다.
2. 국호 유래
'수단'이라는 명칭은 사하라 사막 이남의 서아프리카에서 동부 중앙아프리카에 이르는 지리적 지역에 주어진 이름이다. 이 이름은 아랍어로 '검은 사람들의 땅'을 의미하는 '빌라드 아스수단'(بلاد السودان빌라드 앗수단아랍어)에서 유래했다. 이 용어는 이 지역의 아랍 상인들과 여행자들이 만난 다양한 토착 흑인 아프리카 문화와 사회를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 남수단이 독립하면서 지리적 위치를 반영하여 '남수단 공화국'(Republic of South Sudan리퍼블릭 오브 사우스 수단영어)을 공식 국호로 채택했다. 독립 당시 '아자니아', '나일 공화국', '쿠시 공화국' 등 여러 국호 후보가 거론되었으나, 익숙함과 편의성을 고려하여 '남수단'이 최종 선택되었다. 남수단 독립 후, 이전 종주국이었던 수단 공화국(북수단)과의 차이를 명확히 하기 위해 '남북 수단'이라는 표현이 언론 등에서 자주 사용된다.
3. 역사
남수단 지역의 역사는 고대 나일족의 정착부터 시작되어 외부 세력의 지배와 오랜 내전을 거쳐 2011년 독립 국가로 탄생하기까지 복잡한 과정을 거쳤다. 독립 이후에도 내부 갈등과 분쟁이 지속되며 국가 안정과 발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3.1. 독립 이전

남수단 지역에는 10세기 이전부터 나일족 계열의 딩카족, 누에르족, 실루크족, 아촐리족, 바리족 등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이는 중세 누비아의 몰락과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주로 바르알가잘 지역으로부터 부족 이동이 활발히 이루어져 아누아크족, 딩카족, 누에르족, 실루크족이 현재의 바르알가잘 및 상나일 지역에 자리 잡았고, 아촐리족과 바리족은 에콰토리아 지역에 정착했다. 16세기에 남수단으로 들어온 아잔데족, 문두족, 아부카야족, 바카족 등은 에콰토리아 지역에 가장 큰 규모의 정치체를 형성했다.
19세기 초, 무함마드 알리 왕조 하의 이집트가 수단 지역을 침공하여 지배하기 시작했으며, 남수단 지역도 점차 그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었다. 1870년대 이스마일 파샤는 남부 지역에 에콰토리아주를 설치하고 새뮤얼 베이커, 찰스 조지 고든, 에민 파샤 등을 총독으로 임명하며 통제를 시도했다. 1880년대 마흐디 운동은 이집트의 통치를 약화시켰고, 1899년부터는 영국-이집트 공동 통치가 시작되었다. 영국은 기독교 선교 활동을 장려하는 한편, 1922년 폐쇄 구역 조례 등을 통해 이슬람의 남부 확산을 억제하여 남부 부족들이 고유의 사회·문화적 유산과 정치·종교 제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영국의 식민 정책은 아랍계 북부의 발전에 집중하고 아프리카계 남부는 소외시켜 학교, 병원, 도로 등 기본 기반 시설이 매우 부족한 상태로 남겨졌다.
1947년 주바 회의에서 남부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은 채 남북 수단 통합 정책이 결정되었고, 1956년 수단이 독립한 후에도 하르툼 중앙 정부는 남부 지역을 계속 소외시켰다. 이에 대한 불만으로 1955년 남부에서 봉기가 일어나 제1차 수단 내전 (1955년~1972년)이 발발했다. 이 전쟁은 남부 반군인 아냐냐와 수단 정부군 간의 오랜 교전으로 이어졌으며, 1972년 아디스아바바 협정으로 남부 자치와 장래 분리 독립을 위한 주민투표를 약속하며 일시적으로 종결되었다. 이에 따라 남수단 자치구가 설립되었다.
3.2. 자치와 독립 과정

그러나 1983년 자파르 니메이리 정권은 남부 자치권을 박탈하고 샤리아 이슬람법을 도입하며 석유 자원 독점화를 시도했다. 이에 반발하여 존 가랑을 중심으로 한 수단 인민 해방 운동/군(SPLM/A)이 봉기하면서 제2차 수단 내전 (1983년~2005년)이 발발했다. 이 내전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긴 내전 중 하나로 기록되었으며, 약 250만 명의 사망자와 수백만 명의 난민을 발생시켰다. 오랜 전쟁 끝에 2005년 1월 9일 케냐 나이바샤에서 포괄적 평화 협정(CPA)이 체결되었다. 이 협정으로 남수단은 6년간의 자치권을 부여받았고, 2011년 분리 독립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남수단 자치 정부가 수립되었고, 존 가랑이 자치 정부 초대 대통령이 되었으나 곧이어 사망하여 살바 키르 마야르디트가 그 뒤를 이었다.
2011년 1월 9일부터 1월 15일까지 실시된 독립 국민투표에서 투표율 97.58%, 찬성률 98.83%라는 압도적인 결과로 분리 독립이 결정되었다. 2011년 7월 9일, 남수단 공화국은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언하며 아프리카의 54번째 독립 국가로 탄생했다. 살바 키르 마야르디트가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3.3. 독립 이후 분쟁과 갈등
독립 이후에도 남수단은 여러 도전에 직면했다. 수단과의 국경 문제, 특히 석유 자원이 풍부한 헤글리그 유전 지대와 아비에이 지역의 귀속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지속되었다. 2012년에는 양국 간 국경 분쟁이 발생하여 군사적 충돌로 이어지기도 했다.
내부적으로는 2013년 12월, 살바 키르 마야르디트 대통령과 그가 해임한 리크 마차르 부통령 간의 정치적 갈등이 내전으로 격화되었다. 이 내전은 주로 키르 대통령이 속한 딩카족과 마차르 부통령이 속한 누에르족 간의 민족 갈등 양상을 띠며 확산되었다. 우간다 군대가 남수단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파병되었고, 유엔 남수단 임무단(UNMISS) 평화유지군도 주둔했다. 수많은 정전 협정이 체결되었으나 번번이 깨졌고, 2015년 8월 에티오피아에서 유엔의 제재 위협 하에 평화 협정이 체결되었다. 2016년 마차르가 주바로 복귀하여 부통령직에 다시 올랐으나, 주바에서 또다시 폭력 사태가 발생하면서 그는 다시 국외로 피신했고 내전은 재점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2014년 벤티우 학살과 같은 심각한 인권 침해와 민간인 학살, 강제이주, 소년병 동원, 기근 등이 발생하여 엄청난 인도적 위기를 초래했다. 약 40만 명이 사망하고 400만 명 이상이 난민이 되거나 국내 실향민이 되었다.
2018년 8월 또 다른 권력 분점 협정이 체결되었고, 2020년 2월 22일 키르 대통령과 마차르 부통령은 평화 협정에 최종 합의하여 국민 통합 과도 정부를 구성했다. 마차르는 다시 제1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내전 종식 이후에도 지역 사회 수준에서의 무장 민병대 간 폭력은 계속되고 있으며, 유엔 인권위원회는 이러한 폭력 수준이 내전 기간(2013년~2019년)을 훨씬 능가한다고 평가했다. 2017년에는 구 유니티주 일부 지역에서 기근이 선포되어 10만 명 이상이 영향을 받았으며, 약 490만 명이 긴급 식량 지원을 필요로 했다.
3.4. 최근 정세
내전 종식 이후 남수단은 평화 협정 이행, 과도 정부 운영, 총선 준비 등 국가 재건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16년 동아프리카 공동체(EAC)에 정식 가입하여 역내 경제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당초 2023년으로 예정되었던 첫 민주 총선은 준비 부족 등을 이유로 2024년 말로 연기되었으나, 2024년 9월 키르 대통령실은 선거를 2026년 12월로 다시 2년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현재 남수단은 내전의 상처를 회복하고 지속적인 민족 갈등을 해결하며 안정적인 국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4. 지리
남수단은 북위 3도에서 13도, 동경 24도에서 36도 사이에 위치한 내륙국이다. 국토는 열대림, 늪지, 초원으로 덮여 있으며, 백나일강이 수도 주바를 통과하여 남북으로 흐른다. 남수단의 다양한 지형은 광대한 평원과 고원, 건조 및 열대 사바나, 내륙 범람원, 삼림이 우거진 산악 지대를 포함한다.

4.1. 지형
남수단의 지형은 크게 나일강 유역, 광대한 평원과 고원, 그리고 남부의 산악 지대로 나눌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지형적 특징은 백나일강과 그 지류들이 형성하는 거대한 수드(Sudd) 습지대이다. 수드는 현지에서 '바르 알자발'(بحر الجبل산의 바다아랍어)로 불리며, 세계에서 가장 큰 습지 중 하나로, 독특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국토의 북부와 중부는 대부분 평탄한 평원 지대이며, 남동부에는 이마통 산맥이 솟아 있어 남수단 최고봉인 키녜티산(3187 m)이 위치한다. 서부에는 바르알가잘 고원이 펼쳐져 있다.
4.2. 기후
남수단은 전형적인 열대 기후를 나타내며, 뚜렷한 우기와 건기가 반복된다. 우기는 보통 4월이나 5월에 시작되어 10월이나 11월까지 지속되며, 이 기간 동안 높은 습도와 함께 많은 양의 비가 내린다. 5월이 평균적으로 가장 강수량이 많은 달이다. 건기는 상대적으로 건조하고 더운 날씨가 특징이다.
연평균 기온은 항상 높은 편이며, 7월이 가장 시원한 달로 평균 기온은 20 °C에서 30 °C 사이이고, 3월이 가장 더운 달로 평균 기온은 23 °C에서 37 °C 사이이다. 이러한 기후 패턴은 열대 수렴대(ITCZ)의 연간 이동과 남풍 및 남서풍의 영향으로 형성되며, 이는 약간 낮은 기온, 높은 습도, 그리고 더 많은 구름량을 야기한다.
기후 변화는 남수단의 강우 패턴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며, 한 연구에 따르면 강우 강도는 증가할 가능성이 있으나, 강우 일수의 변화에 대해서는 불확실성이 크다. 2024년 남수단 홍수와 같은 기후 관련 재해도 발생하고 있다.
4.3. 자연환경과 생태계
남수단은 풍부하고 다양한 자연환경과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다. 주요 생태계는 열대림, 사바나, 그리고 광대한 수드 습지대 등이다. 이러한 환경은 다양한 야생 동물들의 서식지가 된다.
반딩길로 국립공원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야생 동물 이동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조사에 따르면, 에티오피아 국경 서쪽의 보마 국립공원, 수드 습지대, 그리고 콩고 민주 공화국과의 국경 근처에 있는 서던 국립공원 등은 하테비스트, 코브, 토피, 물소, 코끼리, 기린, 사자 등의 대규모 개체군에게 중요한 서식지를 제공한다. 남수단의 삼림 보호 구역은 봉고, 큰숲멧돼지, 강멧돼지, 숲코끼리, 침팬지, 그리고 삼림 원숭이들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특히 고유종인 흰귀코브와 나일레체웨를 비롯하여 일런드, 자이언트일런드, 오릭스, 리카온, 케이프물소 등이 서식한다. 내전 이전에는 흰귀코브와 티앙(토피의 일종)의 대규모 이동이 장관을 이루었다고 알려져 있다. 보마-종글레이 지역은 보마 국립공원, 광활한 목초지와 범람원, 반딩길로 국립공원, 그리고 제라프 야생동물 보호구역을 포함하는 수드 습지대를 아우른다.
2006년 키르 대통령은 남수단 정부가 동식물군을 보호하고 번식시키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고, 산불, 폐기물 투기, 수질 오염의 영향을 줄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경제 개발과 기반 시설 확충은 환경에 위협이 되고 있다. 남수단은 2019년 산림경관 완전성 지수(Forest Landscape Integrity Index)에서 10점 만점에 9.45점을 받아 172개국 중 4위를 기록했다.
남수단의 균류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1955년 영연방 균학 연구소에서 수단(당시 경계 기준)의 균류 목록(383종 175속)을 발표했는데, 이 중 다수가 현재 남수단 지역에 해당하며, 대부분 농작물 질병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실제 남수단 내 균류 종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5. 정치
남수단은 대통령 중심제 공화국으로, 권력은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간에 분리되어 있으며, 다당제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독립 이후 지속된 내전과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해 민주주의 제도의 정착과 안정적인 통치 구조 확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5.1. 정부 구조와 헌법


남수단은 2011년 독립 직전에 채택된 과도 헌법에 따라 통치되고 있다. 이 헌법은 2005년 임시 헌법을 대체하는 국가 최고법이다. 헌법은 대통령을 국가원수, 행정수반, 군 총사령관으로 하는 대통령제를 규정하고 있다.
입법부는 양원제로, 직접 선출되는 국민입법의회와 각 주 대표로 구성되는 국가평의회로 이루어진다. 2021년 5월 8일, 살바 키르 마야르디트 대통령은 2018년 평화 협정의 일환으로 의회를 해산하고 550명의 의원으로 구성될 새로운 입법기관 설립을 발표했다.
사법부는 독립적이며, 대법원이 최고 사법기관이다. 초대 자치 정부 대통령은 존 가랑이었으나, 2005년 7월 30일 사망 후 부통령이었던 살바 키르 마야르디트가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리크 마차르는 부통령이 되었다. 2023년 V-Dem 민주주의 지수에 따르면 남수단은 아프리카에서 선거 민주주의 수준이 세 번째로 낮은 국가로 평가되었다.
5.2. 주요 정당 및 선거
남수단의 주요 정당은 수단 인민 해방 운동(SPLM)이다. SPLM은 오랜 내전 기간 동안 남부 수단의 자치와 독립을 위해 투쟁해 온 핵심 정치 세력이다. 독립 이후에도 SPLM이 여당으로서 정국을 주도하고 있으나, 당내 분파 갈등이 남수단 내전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야당으로는 수단 인민 해방 운동 민주변혁파(SPLM-DC) 등이 있으나 정치적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남수단은 독립 이후 2010년 총선을 치렀으며, 이는 수단 전체의 선거의 일부로 진행되었다. 독립 이후 첫 자체적인 총선은 평화 협정에 따라 2023년으로 예정되었으나, 과도 정부와 야권의 합의로 2024년 말로 한 차례 연기되었다. 이후 2024년 9월, 대통령실은 선거를 추가로 2년 연기하여 2026년 12월에 실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지속적인 정정 불안과 선거 준비 미비가 주요 연기 사유로 꼽힌다.
5.3. 행정 구역

남수단의 행정 구역은 여러 차례 변화를 겪었다. 2011년 독립 당시에는 10개 주(state)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이들 주는 역사적으로 바르알가잘, 에콰토리아, 그레이터 어퍼 나일의 3개 지방으로 분류되었다.
- 바르알가잘
- 북바르알가잘주
- 서바르알가잘주
- 레이크스주
- 와랍주
- 에콰토리아
- 서에콰토리아주
- 중앙에콰토리아주 (수도 주바 소재)
- 동에콰토리아주
- 그레이터 어퍼 나일
- 종글레이주
- 유니티주
- 상나일주
2015년 10월, 살바 키르 마야르디트 대통령은 기존 10개 주를 28개 주로 재편하는 대통령령을 발표했다. 이는 주로 민족 경계선을 따라 이루어졌으며, 야당과 시민 사회의 반발을 샀다. 이후 2017년 1월에는 4개 주가 추가되어 총 32개 주가 되었다.
그러나 2020년 2월 22일 체결된 평화 협정의 조건에 따라, 남수단은 다시 10개 주로 환원되었으며, 추가로 2개의 행정구역(Administrative Area)과 1개의 특별행정구(Special Administrative Area)가 설정되었다.- 행정구역
- 피보르 행정구
- 루웽 행정구
- 특별행정구
- 아비에이 특별행정구
아비에이 지역은 2005년 포괄적 평화 협정에 따라 특별 행정 지위를 부여받았으며, 남수단 독립 이후 수단과 남수단 양측 모두에 속하는 콘도미니엄으로 간주된다. 카피아 킹기 지역은 남수단과 수단 간의 분쟁 지역이며, 일레미 삼각지대는 남수단과 케냐 간의 분쟁 지역이다.
5.4. 수도 이전 계획
남수단의 현재 수도는 주바이지만, 열악한 기반 시설, 급격한 도시 성장, 그리고 국토 중앙에 위치하지 않는다는 문제점으로 인해 2011년 2월 남수단 정부는 새로운 계획도시를 건설하여 정부 소재지로 삼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결정했다. 새로운 수도 후보지로는 국토의 지리적 중심에 더 가까운 람시엘(Ramciel)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람시엘은 레이크스주에 위치하며 중앙에콰토리아주 및 종글레이주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독립운동 지도자였던 고(故) 존 가랑 역시 생전에 람시엘로 수도를 이전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9월, 정부 대변인은 정치 지도자들이 람시엘에 새 수도를 건설하는 제안을 수락했다고 밝혔다. 도시 설계, 계획, 건설에는 최대 5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며, 국가기관의 새 수도 이전은 단계적으로 이루어질 예정이라고 정부 각료들은 언급했다. 그러나 이 계획을 위한 자금 조달 방안은 불분명한 상태이며, 이후 내전 등으로 인해 구체적인 진척은 더딘 상황이다.
5.5. 군사
남수단의 정규군은 남수단 인민방위군(South Sudan People's Defence Forces, SSPDF)이다. SSPDF는 과거 수단 인민 해방군(SPLA)을 모태로 하며, 남수단의 주권, 영토 보전, 국민 보호를 주요 임무로 한다. 2007년 당시 SPLA 사무부 장관이었던 도미닉 딤뎅에 의해 국방백서가 발의되었고, 2008년 초안이 작성되었다. 이 문서에는 남수단이 육군, 공군, 하천군을 유지할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독립 이후 SPLA는 SSPDF로 명칭을 변경하고 국가 정규군으로 전환되었다.
SSPDF의 조직은 육군이 주를 이루며, 소규모의 공군과 하천 순찰 부대를 운용하고 있다. 정확한 병력 규모는 유동적이나, 내전과 지속적인 안보 불안으로 인해 상당한 규모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남수단은 2015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군비 지출 비율이 오만,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3위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이는 독립 이후 지속된 내부 분쟁과 주변국과의 긴장 관계 등 불안정한 안보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군은 국가 예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이는 사회 기반 시설 투자나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재원을 제약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또한, 군 내부의 민족 구성 문제, 지휘 통제 체계의 효율성, 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 등이 국방 관련 주요 현안으로 남아 있다.
6. 대외 관계
남수단은 2011년 독립 이후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적극적인 외교 활동을 펼치고 있다. 주요 외교 정책 방향은 주변국과의 안정적인 관계 유지, 국제 분쟁 해결 노력 동참, 그리고 경제 발전과 국가 재건을 위한 국제적 지원 확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6.1. 수단과의 관계
남수단의 독립은 오랜 내전 끝에 이루어졌지만, 독립 이후에도 수단과의 관계는 여러 갈등 요인으로 인해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주요 쟁점은 국경 획정 문제, 특히 석유 자원이 풍부한 아비에이 지역과 헤글리그 유전 지대의 귀속 문제, 그리고 석유 자원 배분 문제이다. 남수단은 석유 매장량의 약 75%를 보유하고 있으나, 송유관 등 수출 기반 시설은 수단에 의존하고 있어 석유 수입 배분 협상이 필수적이다.
2012년에는 헤글리그 유전 지대를 둘러싸고 양국 간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후 아프리카 연합(AU) 등의 중재로 여러 차례 협상이 이루어졌으나, 완전한 해결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양국은 상호 경제적 의존성과 안보 문제로 인해 협력과 갈등을 반복하는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2011년 1월 수단 대통령 오마르 알바시르는 남북 수단 주민의 이중 국적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으나, 남수단 독립 후 이를 철회했다. 그는 또한 EU 방식의 연합을 제안하기도 했다.
6.2. 주변국 및 주요국과의 관계
남수단은 에티오피아, 케냐, 우간다 등 동아프리카 주변국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남수단의 독립 과정과 내전 중재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많은 남수단 난민을 수용하기도 했다. 동아프리카 공동체(EAC) 가입을 통해 경제 협력 및 정치적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국경 지역의 안보 문제나 난민 문제 등으로 인해 때때로 긴장이 발생하기도 한다.
주요 국제 행위자 중에서는 미국이 남수단의 독립을 적극 지원했으며, 독립 이후에도 인도적 지원과 개발 협력을 제공하고 있다. 중국은 남수단의 주요 석유 개발 투자국으로서 경제적 영향력이 크며, 내전 중재에도 관여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는 남수단에 대규모 차관을 제공하는 등 최근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남수단은 2019년 7월, 중국의 신장 지역 위구르족 처우를 옹호하는 공동 서한에 UNHRC에 서명한 37개국 중 하나였다.
6.3. 대한민국과의 관계
대한민국은 2011년 7월 8일 남수단과 수교에 합의했으며, 현재 주 우간다 대한민국 대사관이 남수단 대사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와랍주 톤즈에서는 한국인 로마 가톨릭교회 사제인 고(故) 이태석 신부가 2001년부터 2008년까지 의료 및 교육 봉사활동을 펼쳐 한국과 남수단 간의 특별한 인연을 만들었다.
2013년 3월부터 대한민국 국군은 유엔 남수단 임무단(UNMISS)의 일원으로 한빛부대를 파병하여 남수단의 평화 유지와 재건 지원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한빛부대는 도로 복구, 학교 및 병원 건설, 의료 지원, 직업 훈련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남수단의 안정과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양국은 인도적 지원, 개발 협력, 평화 유지 활동 등을 중심으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6.4. 국제기구 가입 현황
남수단은 독립 이후 국제 사회의 정식 일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주요 국제기구 가입을 적극 추진해왔다.
- 유엔 (UN): 2011년 7월 14일, 남수단은 유엔 총회의 승인을 받아 193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이는 독립 직후 가장 먼저 이루어진 주요 국제기구 가입이다.
- 아프리카 연합 (AU): 2011년 7월 27일, 남수단은 아프리카 연합의 54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하여 아프리카 대륙 국가들과의 연대를 강화했다.
- 동아프리카 공동체 (EAC): 2016년 4월 15일 조약에 서명하고 같은 해 8월 15일 정식 회원국이 되었다. EAC 가입을 통해 역내 경제 통합과 협력 증진을 목표로 하고 있다.
- 정부간개발기구 (IGAD): 2011년 11월 25일 가입했다. IGAD는 동아프리카 지역의 평화, 안보, 개발을 위한 정부 간 협력체로, 남수단 내전 중재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 국제 통화 기금 (IMF) 및 세계은행 (World Bank): 남수단은 이들 국제 금융 기구에 가입하여 경제 개발 및 재정 안정을 위한 지원을 받고 있다.
- 유네스코 (UNESCO): 2011년 11월 3일 가입했다.
- 영국 연방 (Commonwealth of Nations): 남수단은 영국 연방 가입을 신청한 상태이다.
- 아랍 연맹: 남수단 정부가 원할 경우 정회원 가입이 보장되어 있으며, 옵서버 자격을 선택할 수도 있다. 2014년 3월 25일 정회원 가입 신청서를 제출했으나 아직 계류 중이다. 남수단 외무장관은 남수단이 아랍 세계와 가장 가까운 아프리카 국가이며, 주바 아랍어라는 특별한 형태의 아랍어를 사용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7. 경제
남수단의 경제는 세계에서 가장 저개발된 상태이며, 석유 자원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독립 이후 지속된 내전과 정치적 불안정은 경제 발전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으며, 높은 빈곤율과 인플레이션, 취약한 기반 시설 등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7.1. 경제 구조 및 주요 산업

남수단의 경제 구조는 석유 수출이 국가 재정 수입의 90% 이상(2023년 기준)을 차지할 정도로 석유에 극도로 편중되어 있다. 이러한 단일 자원 의존 경제는 국제 유가 변동에 매우 취약하다.
석유 산업 외에는 농업과 목축업이 주요 산업이다. 농업은 대부분 자급자족 형태이며, 주요 작물로는 수수, 옥수수, 카사바, 땅콩, 참깨 등이 있다. 목축업 또한 중요한 생계 수단으로, 소, 양, 염소 등을 사육한다. 남수단은 비옥한 농경지와 풍부한 수자원을 보유하고 있어 농업 발전 잠재력이 크지만, 기술 부족, 기반 시설 미비, 분쟁 등으로 인해 생산성은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 외 임업(특히 티크 목재 수출)과 소규모 어업 등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금, 철광석, 구리 등 다양한 광물 자원도 매장되어 있으나 개발은 미미한 수준이다. 제조업 기반은 매우 취약하다.
7.2. 석유 자원

남수단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세 번째로 큰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석유는 국가 경제의 핵심 동력이다. 독립 이전 수단 전체 석유 매장량의 약 75%가 남수단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2005년 포괄적 평화 협정(CPA)에 따라 자치 기간 동안 석유 수입은 남북 수단이 균등하게 분배했다.
독립 이후 남수단은 석유 생산국이 되었으나, 송유관, 정제 시설, 수출항 등 주요 기반 시설은 수단에 의존하고 있어 수단과의 협상이 필수적이다. 송유관 사용료를 둘러싼 갈등으로 2012년 남수단이 석유 생산을 일시 중단하기도 했으며, 이는 국가 재정에 큰 타격을 주었다. 현재도 양국 간 석유 관련 협상은 중요한 경제 현안이다. 주요 유전 지대는 유니티주와 상나일주에 분포하며,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 등의 국영 석유 회사가 주요 투자자로 참여하고 있다. 2017년에는 남수단 최초의 자국 소유 석유 시추 회사인 나일 드릴링 앤 서비스(Nile Drilling & Services)가 설립되었다. 그러나 내전으로 인해 석유 생산 시설이 파괴되고 생산량이 급감하기도 했으며, 국제 유가 변동과 정치적 불안정성이 석유 산업의 안정적인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
7.3. 교통 및 기반 시설


남수단의 교통 및 기반 시설은 오랜 내전과 투자 부족으로 인해 매우 열악한 상태이다.
- 도로: 도로망은 대부분 비포장 상태이며, 우기에는 통행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주요 도시 간 연결 도로도 부족하여 물류 이동과 경제 활동에 큰 제약이 되고 있다. 2012년 미국 국제개발처(USAID)의 지원으로 수도 주바와 남부 국경 도시 니물레를 잇는 192 km의 포장도로가 개통되었으나, 유지 보수가 미흡한 실정이다.
- 철도: 수단 국경에서 와우까지 이어지는 248 km의 단선 협궤 철도가 있으나, 내전으로 인해 파괴되어 현재 운행이 중단된 상태이다. 와우에서 주바까지 연장하고, 케냐 및 우간다 철도망과 연결하는 계획이 있으나 구체적인 진척은 없다.
- 항공: 주바 국제공항이 가장 중요한 항공 관문으로, 아스마라, 엔테베, 나이로비, 카이로, 아디스아바바, 하르툼 등 주변국 주요 도시와 국제선으로 연결된다. 그 외 말라칼, 와우, 룸베크 등에도 공항이 있으나 시설은 미흡하다. 2012년 국영 항공사 설립 계획이 발표되었으나, 본격적인 운영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 하천 교통: 백나일강은 주요 내륙 수로로 이용되지만, 주바와 우간다 사이 구간 등 일부는 수로 정비가 필요하다. 건기에는 감벨라(에티오피아)와 와우까지 항해가 가능하다.
- 기타 기반 시설: 전력 공급은 매우 불안정하며, 대부분의 지역이 전력 부족을 겪고 있다. 통신 시설 또한 미비하여 인터넷 보급률이 낮고 통신 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 상하수도 시설 부족으로 인한 위생 문제도 심각하다. 내전으로 인해 파괴된 기반 시설의 복구와 신규 건설이 시급한 과제이다.
7.4. 경제 문제와 빈곤
남수단은 독립 이후 극심한 경제 문제와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주요 경제 문제는 다음과 같다.
- 높은 빈곤율: 국민의 대다수가 하루 1 USD 미만으로 생활하는 극심한 빈곤 상태에 놓여 있다. 내전으로 인한 생계 수단 파괴, 농업 생산성 저하, 실업 등이 빈곤을 심화시키고 있다.
- 인플레이션: 정치적 불안정과 생산 기반 부족으로 인해 물가상승률(인플레이션)이 매우 높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국민들의 실질 구매력을 약화시키고 경제 안정을 저해한다. 특히 2012년 석유 생산 중단 시기에는 식료품 가격이 120%나 급등하기도 했다.
- 대외 부채: 국가 재건과 개발을 위해 외국으로부터 많은 차관을 도입했으나, 경제 기반이 취약하여 부채 상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단과 남수단은 과거 수단 시절부터 누적된 약 380.00 억 USD의 공동 부채를 안고 있으며, 이 중 상당 부분이 파리 클럽 및 비(非)파리 클럽 채권국들에 대한 부채이다.
- 개발 부진: 석유 자원에 대한 과도한 의존, 취약한 제조업 기반, 농업 생산성 저하 등으로 인해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부정부패, 미흡한 거버넌스, 기술 및 자본 부족도 개발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 인도적 위기: 내전과 경제난으로 인해 대규모 기근과 식량 부족 사태가 반복되고 있으며, 수백만 명의 난민과 국내 실향민이 발생하여 인도적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국제 통화 기금(IMF)은 새로운 유전이 발견되지 않으면 2020년까지 석유 매장량이 절반으로 줄어들 수 있다고 경고하며 경제 다각화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8. 사회
남수단의 사회는 다양한 민족 구성, 다언어 환경, 종교적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며, 오랜 내전과 빈곤으로 인해 교육, 보건 등 여러 분야에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8.1. 인구와 민족



2024년 추산 남수단의 총인구는 약 1,270만 명이다. 인구 증가율이 높고, 전체 인구의 약 절반이 18세 미만으로 구성된 매우 젊은 인구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오랜 내전과 분쟁으로 인해 정확한 인구 통계 조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2008년 수단 전체의 인구 조사 당시 남수단 인구는 약 826만 명으로 집계되었으나 남수단 자치 정부는 이 결과를 수용하지 않았다.
남수단은 다민족 국가로, 약 60여 개의 다양한 민족 집단이 공존하고 있다. 주요 민족은 딩카족(인구의 약 40% 추정), 누에르족(약 20%), 아잔데족(약 10%)이며, 그 외 실루크족, 바리족, 아뉴악족, 무르레족 등이 있다. 이들 민족 집단은 고유한 언어, 문화,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주로 특정 지역에 집중적으로 거주한다. 민족 간 관계는 역사적으로 복잡하며, 토지, 자원, 정치적 영향력을 둘러싼 갈등이 남수단 내전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오랜 분쟁과 경제난으로 인해 많은 남수단인이 국외로 이주하여 남수단 디아스포라를 형성했다. 이들은 주로 북미, 서유럽, 오세아니아 지역에 거주하며, 일부는 에티오피아, 케냐, 우간다 등 주변국에 난민으로 체류하고 있다. 약 80만 명의 아프리카의 뿔 지역 출신 외국인도 남수단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8.2. 언어
남수단에는 70여 개의 언어가 사용되며, 이 중 60여 개는 토착 언어로 헌법상 "존중, 개발, 증진되어야 할 국민 언어"로 규정되어 있다. 공식 언어는 영어이며, 정부의 공식 업무 언어 및 모든 교육 단계의 수업 언어로 사용된다. 영어는 1972년부터 남수단 지역의 주요 행정 언어였으나, 제1언어로 사용하는 인구는 소수이다.
대부분의 토착 언어는 나일사하라어족, 특히 나일어파와 중앙수단어파에 속하며, 나머지는 니제르콩고어족의 아다마와우방기어파에 속한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토착 언어는 누에르어(약 435만 명), 바리어(약 59만 5천 명), 딩카어(약 94만 명), 아잔데어(약 42만 명) 등이며, 이들 언어는 전체 인구의 약 60%가 사용한다. 그 외 주요 토착 언어로는 무르레어, 루오어군, 마리어, 오투호어 등이 있다. 6개의 토착 언어는 사멸 위기에 처해 있으며, 11개 언어는 사용이 줄어들고 있다.
아랍어는 가장 널리 사용되는 언어 중 하나이다.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남수단 아랍어 또는 주바 아랍어로, 지역 정부, 국내 상거래, 도시 지역에서 링구아 프랑카 역할을 하는 크리올이다. 약 145만 명이 사용하며, 이 중 25만 명만이 모국어로 사용한다. 수단의 주요 방언인 수단 아랍어는 주로 남수단 북부 지역에서 약 46만 명이 사용하며, 사실상의 국가 정체성 언어로 묘사되기도 한다. 아랍어는 2005년 임시 헌법에서 영어와 함께 남수단의 두 번째 공식 언어로 인정받았으나, 2011년 채택된 현행 과도 헌법에서는 법적 지위가 없다.
스와힐리어는 제2 공식 언어로 제안된 바 있다. 2011년 주 케냐 남수단 대사는 스와힐리어가 아랍어를 대체하는 링구아 프랑카로 도입될 것이라고 밝혔으며, 이는 수단 및 아랍 연맹보다는 동아프리카 공동체 지향적인 국가 정책과 관련이 있다. 2019년 동아프리카 공동체 가입 이후, 정부는 스와힐리어를 초등학교 공식 교육 과정에 채택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8.3. 종교


남수단은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국가로, 주요 종교는 기독교, 아프리카 토착 신앙, 그리고 이슬람교이다. 정확한 신자 비율 통계는 내전으로 인한 인구 이동, 유목민의 잦은 이동, 정부 자원 부족 등으로 인해 파악하기 어렵다. 1956년 마지막 공식 종교 관련 인구 조사에서는 대다수가 토착 신앙 또는 기독교 신자로 분류되었고, 이슬람교도는 18%였다.
2020년 비정부기구 자료에 따르면, 인구의 다수(60.5%)가 기독교인이며, 그 뒤를 이어 아프리카 토착 신앙(32.9%), 이슬람교(6.2%) 순이다. 기타 종교(0.4%) 및 무종교 인구도 소수 존재한다. 다른 추정치에 따르면, 인구의 37.2%가 가톨릭 신자(약 620만 명)이며, 그 다음으로 큰 기독교 교파는 남수단 성공회(약 350만 명)와 수단 장로교(2012년 기준 약 100만 명)이다. 지난 20년간 기독교는 빠르게 성장했다.
1990년대 초반에는 남수단 인구의 10% 미만이 기독교인이었으나, 유럽 선교 활동과 내전 과정에서의 종교적 정체성 강화 등으로 신자 수가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기독교는 종종 토착 신앙과 혼합된 형태로 나타난다. 각 민족 집단은 고유한 전통 신앙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대부분 창조주 개념의 최고신을 섬기고, 조상 숭배와 같은 요소도 포함한다.
2011년 살바 키르 마야르디트 초대 대통령(가톨릭 신자)은 남수단이 종교의 자유를 존중하는 국가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과도 헌법은 정교분리, 종교 차별 금지, 종교 단체의 예배, 집회, 선교, 재산 소유, 자선 활동 등의 자유를 보장한다. 종교 간 갈등은 주로 민족 및 공동체 갈등의 맥락에서 발생하며, 종교 지도자들은 평화 구축과 사회 경제 발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8.4. 교육

남수단의 교육 제도는 오랜 내전과 기반 시설 부족으로 인해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과거 수단 공화국의 교육 시스템(1990년 이후)과 달리, 현재 남수단은 케냐와 유사한 8-4-4 시스템(초등 8년, 중등 4년, 대학 4년)을 따르고 있다.
모든 교육 단계에서의 주요 수업 언어는 영어이다. 이는 아랍어를 교육 언어로 사용하는 수단 공화국과 대조된다. 2007년 남수단은 영어를 공식 소통 언어로 채택했으나, 영어 교사, 특히 과학 및 기술 분야의 영어 사용 교사가 심각하게 부족한 실정이다.
문해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며, 특히 여성의 문해율은 매우 낮다. 학교 시설 부족, 교사 부족, 교재 부족, 그리고 분쟁으로 인한 교육 중단 등이 주요 문제점으로 꼽힌다. 많은 어린이가 아동 노동이나 조혼으로 인해 교육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으며, 난민 아동의 교육 문제도 심각하다.
2019년 10월 1일, 남수단 도서관 재단은 남수단 최초의 공공 도서관인 주바 공공 평화 도서관을 개관했다. 이 도서관은 40명 이상의 자원봉사자와 13,000권 이상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으며, 독서 문화 증진에 기여하고 있다.
정부와 국제기구, 비정부기구(NGO)들은 교육 시스템 재건과 교육 접근성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재원 부족과 불안정한 안보 상황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8.5. 보건과 인도적 위기

남수단은 세계에서 가장 열악한 보건 지표를 가진 국가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오랜 내전과 빈곤, 취약한 의료 시스템으로 인해 국민들의 건강 상태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5세 미만 영아 사망률은 1,000명당 135.3명으로 매우 높으며, 모성 사망률은 10만 명당 2,053.9명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04년 기준 남수단에는 단 3명의 외과 의사와 3개의 제대로 된 병원만이 있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의사 1명이 50만 명의 주민을 담당해야 하는 실정이었다.
주요 풍토병으로는 말라리아가 있으며, 남수단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말라리아 부담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로 여겨진다. 또한, 메디나충증(기니벌레병)이 여전히 발생하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이다. HIV/AIDS 유병률은 약 3.1%로 추정되나, 정확한 통계는 부족하다.
2005년 포괄적 평화 협정 체결 당시 남수단의 인도적 필요는 막대했다. 이후 유엔 인도주의 업무 조정국(OCHA)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지원으로 구호 활동이 이루어졌으나, 2013년 발발한 내전으로 인도적 위기는 다시 심화되었다. 2021년 1월 기준, 유엔은 남수단 인구 830만 명이 인도적 지원을 필요로 한다고 밝혔다.
반복되는 기근과 물 부족 문제, 그리고 내전으로 인한 대규모 난민 발생은 인도적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2011년 중반에는 벤티우와 랏조르주에서 기근으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보고가 있었으며, 2017년에는 구 유니티주 일부 지역에 공식적으로 기근이 선포되기도 했다. 2011년 12월과 2012년 1월 종글레이주 피보르 카운티에서는 소 도둑질로 인한 부족 간 무력 충돌이 광범위한 민족 폭력으로 번져 수천 명이 사망하고 수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으며, 국경없는의사회 직원 수백 명이 실종되기도 했다.
국제사회는 지속적으로 남수단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으나, 불안정한 안보 상황과 접근성의 어려움으로 인해 구호 활동에 많은 제약이 따르고 있다.
8.6. 인권
남수단의 인권 상황은 독립 이후 지속된 내전과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해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 인권 단체들은 남수단에서 광범위한 인권 침해가 자행되고 있다고 지속적으로 보고하고 있다.
내전 기간 및 그 이후, 정부군과 반군 양측 모두에 의해 민간인 학살, 강제이주, 성폭력, 고문, 약탈, 소년병 강제 동원 등 심각한 전쟁 범죄와 반인도적 범죄가 발생했다. 특히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공격, 마을 방화, 재산 약탈 등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유엔 인권 사무소는 남수단 상황을 "세계에서 가장 끔찍한 인권 상황 중 하나"라고 묘사했으며, 군대와 연계된 민병대가 전투의 대가로 여성에 대한 강간을 허용하고 소를 약탈하는 "네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네가 가질 수 있는 것을 가져가라"는 식의 합의가 있었다고 비난했다. 국제앰네스티는 군대가 반정부 지원 혐의를 받는 60명 이상을 선박 컨테이너에 가둬 질식사시켰다고 주장했다.
언론의 자유 또한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으며,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인과 언론 매체에 대한 탄압, 체포, 구금, 살해 위협 등이 자행되고 있다. 2015년 살바 키르 마야르디트 대통령은 "국가에 반하는" 보도를 하는 언론인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많은 언론인이 신변의 위협을 느껴 국외로 망명했다.
아동 결혼 문제도 심각하여, 남수단의 아동 결혼율은 52%에 달한다. LGBT 개인에 대한 법적 보호는 전무하며, 동성애 행위는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2017년 12월, 유엔 남수단 인권위원회는 12일간의 현지 방문을 마치고 "남수단 분쟁 발발 4년이 지난 현재, 모든 분쟁 당사자들에 의해 광범위한 심각한 인권 침해가 계속 자행되고 있으며, 민간인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고 있다"고 밝혔다.
야당 지도자인 피터 압둘 라하만 술레는 정부에 대항하는 새로운 반군 단체 결성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2011년 11월 3일부터 구금되어 있다.
정부와 국제 사회는 인권 상황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지속적인 분쟁과 불안정한 정치 상황, 사법 시스템의 미비 등으로 인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9. 문화
남수단의 문화는 오랜 내전과 다양한 민족 구성의 영향으로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특징을 지닌다. 수십 개에 달하는 각 민족은 고유한 전통, 언어, 관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남수단 문화의 다양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오랜 내전 기간 동안 많은 남수단인이 에티오피아, 케냐, 우간다 등 주변국으로 피난하여 해당 국가의 문화와 언어에 영향을 받았다. 또한 독립 이전까지 수단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부분적으로 수단 문화에 동화되어 주바 아랍어나 수단 아랍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남수단인은 국외 거주 중에도 자신의 부족적 정체성, 전통문화, 고유 방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공용어인 영어와 주바 아랍어 외에도, 동아프리카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스와힐리어 도입이 논의되기도 한다.

9.1. 전통과 생활 양식
남수단의 주요 민족들은 전통적으로 목축과 농업에 기반한 생활 양식을 유지해왔다. 소는 부와 사회적 지위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결혼 지참금이나 분쟁 해결 등 다양한 사회적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각 민족은 고유한 사회 구조, 씨족 체계, 연령 집단 시스템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공동체 내의 질서 유지와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전통 의례와 축제는 남수단 문화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출생, 성인식, 결혼, 장례 등 삶의 주요 단계마다 다양한 의식이 거행되며, 이는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고 전통을 계승하는 역할을 한다. 춤과 노래는 이러한 의례에서 빠지지 않는 요소이며, 각 민족 고유의 리듬과 동작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고 이야기를 전달한다.
스카리피케이션(흉터 문신)은 일부 민족에게 여전히 중요한 전통으로, 아름다움, 용맹함, 부족 정체성 등을 상징한다. 전통 의상 또한 민족별로 다양하며, 화려한 색상과 독특한 문양을 특징으로 한다.
9.2. 예술 (음악, 문학 등)
남수단의 예술은 구전 전통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글이 보편화되기 이전부터 이야기, 시, 노래 등을 통해 역사, 신화, 지혜가 세대 간에 전승되어 왔다.
음악은 남수단 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며, 다양한 전통 악기와 리듬이 특징이다. 북, 하프, 현악기 등이 널리 사용되며, 노래는 노동, 축제, 종교 의례 등 삶의 다양한 측면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현대 음악에서는 영어, 스와힐리어, 주바 아랍어, 각 부족어 등을 혼합하여 사용하는 아티스트들이 많다. 아프로비트, R&B, 주크, 레게, 포크 음악, 힙합 음악 등 다양한 장르가 인기를 얻고 있다. 대표적인 아티스트로는 바브즈, 야바 안젤로시, 드 피스 차일드, 다이내믹, 엠마누엘 켐베, 엠마누엘 잘 등이 있으며, 특히 엠마누엘 잘은 전직 소년병 출신 음악가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문학 분야에서는 구전 문학이 풍부하지만, 기록된 현대 문학 작품은 아직 초기 단계이다. 내전의 경험, 정체성 탐구, 평화에 대한 열망 등이 주요 주제로 다뤄지고 있다.
9.3. 스포츠

남수단에서는 다양한 전통 스포츠와 현대 스포츠가 인기를 얻고 있다. 전통적으로 레슬링과 모의 전투는 추수 후 축제 기간에 행해지던 중요한 오락 활동이었다. 참가자들은 몸에 황토를 바르고 경기에 임했으며, 관중들은 노래와 북 연주, 춤으로 선수들을 응원했다.
현대 스포츠 중에서는 축구와 농구가 특히 인기가 높다. 남수단 축구 국가대표팀은 2012년 아프리카 축구 연맹(CAF)과 국제 축구 연맹(FIFA)에 가입했다. 유명 축구 선수로는 마찹 콜, 제임스 모가, 리처드 저스틴 등이 있다.
남수단 농구 국가대표팀은 2021년 FIBA 아프로바스켓에 처음 출전하여 8강에 오르는 성과를 거두었고, 2023년 FIBA 농구 월드컵에도 처음으로 출전했다. 루올 뎅, 마누트 볼과 같은 남수단 출신 선수들이 NBA 등 국제 무대에서 활약한 바 있다.
남수단은 2012년 런던 올림픽에 구오르 마리알 선수가 독립 참가 선수단으로 처음 출전했으며, 2015년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로부터 국가 올림픽 위원회 승인을 받아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부터 정식으로 남수단 선수단을 파견하고 있다.
9.4. 언론
남수단의 언론 환경은 독립 이후에도 여러 도전에 직면해 있다. 정부는 언론의 자유를 존중하고 언론인들의 자유로운 취재 활동을 보장하겠다고 밝혔으나, 실제로는 언론 탄압과 검열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주요 언론 매체로는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방송국, 그리고 최근 성장하고 있는 온라인 미디어가 있다. 수도 주바를 중심으로 여러 신문이 발행되고 있으나, 열악한 기반 시설과 빈곤으로 인해 지방까지의 배급망은 취약한 편이다. 라디오는 문해율이 낮은 남수단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 전달 수단 중 하나이다.
2011년 남수단 국가보안국(NSS)은 대통령을 비판하는 칼럼을 실었다는 이유로 민영 일간지 '데스티니'의 편집장을 체포하고 신문 발행을 무기한 중단시킨 바 있다. 2015년에는 살바 키르 마야르디트 대통령이 정부에 비판적인 보도를 하는 언론인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하는 발언을 하여 국제적인 비난을 받았다. 이러한 위협적인 환경으로 인해 많은 언론인이 국외로 망명하기도 했다. 2017년에는 주요 뉴스 웹사이트와 블로그에 대한 정부의 접속 차단 조치가 있었으며, 2020년에는 현지 뉴스 웹사이트 '수단스 포스트'가 NSS에 의해 명예훼손으로 간주되는 기사를 게재한 후 접속이 차단되기도 했다.
국제 언론 단체들은 남수단의 언론 자유 위축에 대해 지속적으로 우려를 표명하고 있으며, 언론인 보호와 독립적인 언론 환경 조성을 위한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2020년 5월, 남수단 최초의 온라인 뉴스 웹사이트인 '남수단 프렌드십 프레스'가 설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