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헬레노스 (Ἕλενος헬레노스고대 그리스어 (1453년 이전), Helenus헬레누스라틴어)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트로이아의 왕자이자 현명한 예언자이다. 트로이아의 왕 프리아모스와 왕비 헤카베의 아들로, 여예언자 카산드라와는 쌍둥이 형제이다. 본래 이름은 스카만드리우스였으나, 후에 트라키아 예언자에 의해 헬레노스로 개명되었다. 그는 아폴론으로부터 예언 능력을 부여받았으며, 그의 예언은 카산드라와 달리 항상 믿음을 얻었다. 헬레노스는 트로이아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트로이아 군의 지휘관이자 전사로서 활약했다. 그는 트로이아의 운명에 대한 결정적인 예언을 그리스군에게 전함으로써 전쟁의 종결에 기여하기도 했다. 전쟁 이후에는 네오프톨레모스와 동행하며 에페이로스 지역에 부트로툼을 건설하고, 나중에는 그곳의 통치자가 되어 안드로마케와 결혼했다. 또한 아이네이아스에게 로마 건국에 대한 예언을 해주기도 하며, 트로이아 영웅들의 이주와 새로운 시작에 연결되는 중요한 인물이다.
2. 초기 생애 및 예언 능력
헬레노스는 트로이아의 왕자로서 그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특별한 예언 능력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여러 신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는 신의 은총을 받아 예언자가 되었으며, 그의 예언은 항상 정확하고 신뢰받았다.
2.1. 예언 능력 획득
헬레노스는 아폴론 신으로부터 예언의 재능을 받았다. 가장 오래된 기록에 따르면, 그와 그의 쌍둥이 누이 카산드라는 뱀이 그들의 귀를 핥은 후에 아폴론으로부터 예언의 능력을 얻었다. 다른 기록에서는 헬레노스가 카산드라에게 예언의 힘을 배웠다고도 한다. 헬레노스는 예언이 항상 정확했지만, 카산드라와 달리 사람들이 그의 예언을 믿었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그는 이러한 선견지명을 얻은 후, 트라키아의 한 예언자에 의해 본래 이름인 스카만드리우스에서 헬레노스로 개명되었다. 서사시 《일리아스》에서는 헬레노스를 가장 위대한 점성술사 중 한 명으로 묘사하고 있다.
2.2. 초기 예언
트로이아 전쟁이 발발하기 전부터 헬레노스는 중요한 예언들을 했다. 그는 만약 파리스가 그리스인 아내(즉, 헬레네)를 트로이아로 데려온다면, 아카이아인들이 그들을 추격하여 트로이아를 장악하고 그의 부모와 형제들을 살해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러한 초기 예언은 트로이아 전쟁의 비극적인 서막을 알리는 중요한 내용이었다.
3. 트로이아 전쟁에서의 역할
헬레노스는 트로이아 전쟁 동안 예언자로서의 능력과 함께 트로이아 군의 중요한 지휘관이자 전사로서 활약했다. 그는 전투에 직접 참여하여 적군과 맞서 싸웠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순간마다 트로이아인들에게 신의 뜻을 전달하며 군사적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3.1. 군사적 참여
헬레노스는 트로이아 군의 주요 지휘관 중 한 명이었다. 그는 그의 형제 데이포보스와 함께 트로이아 군의 세 번째 대대를 이끌었다. 《일리아스》에 따르면, 헬레노스는 헥토르가 이끄는 트로이아 군과 함께 트로이아 서쪽 평원에서 그리스인들을 격퇴하고 그들의 진영을 공격하는 데 참여했다. 그는 헥토르에게 그리스 군 영웅에게 일대일 결투를 신청하라고 조언했고, 이 제안은 텔라몬의 아이아스가 수락했다. 또한 디오메데스의 활약으로 고전하던 트로이아 군을 구하기 위해 헥토르에게 아테나 여신에게 기도를 올리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전투 중 헬레노스는 메넬라오스의 창에 손을 관통당하여 부상을 입고 후퇴했으며, 아게노르의 도움을 받아 치료받았다. 이 전투에서 그는 그리스 영웅 데이피로스를 쓰러뜨리기도 했다.
3.2. 예언 및 포획
트로이아 전쟁의 마지막 해에, 헬레노스는 형제 파리스의 죽음 이후 헬레네를 차지하기 위해 데이포보스와 경쟁했으나, 헬레네는 데이포보스에게 주어졌다. 이 패배에 불만을 품은 헬레노스는 이다산으로 물러났고, 그곳에서 오디세우스에게 포획되었다. 오디세우스에게 포획된 후, 헬레노스는 트로이아를 함락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조건들을 그리스군에게 알려주었다. 이는 고문이나 강압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혹은 헬레네를 얻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 때문일 수도 있다.
3.3. 트로이아 함락 조건
헬레노스가 그리스군에게 밝힌 트로이아 함락 조건은 다음과 같다.
- 트로이아의 팔라디온을 훔칠 것. 팔라디온은 트로이아 성채 내부에 모셔져 있던 아테나 여신상으로, 트로이아의 수호물로 여겨졌다.
- 펠롭스의 뼈를 트로이아로 가져올 것. 펠롭스는 트로이아 전쟁 이전 그리스의 위대한 영웅이자 트로이아 전쟁의 주요 인물인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의 조상이다.
-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와 헤라클레스의 활과 화살을 소유한 필록테테스를 전쟁에 합류시킬 것. 네오프톨레모스는 당시 스키로스섬에 숨어 있었으나, 그리스인들은 그를 설득하여 전쟁에 참여시켰다.
이러한 예언들은 트로이아 전쟁의 종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다른 전승에서는 헬레노스가 트로이아의 또 다른 왕자인 트로일로스가 20세가 되기 전에 죽으면 그리스군이 승리할 것이라고 예언했다고도 한다. 트로일로스는 실제로 네오프톨레모스에게 죽임을 당했다.
4. 트로이아 전쟁 이후의 삶
트로이아 함락 이후 헬레노스의 생애는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고 트로이아 생존자들의 미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4.1. 네오프톨레모스 및 안드로마케와의 동행
트로이아가 함락된 후, 네오프톨레모스는 헥토르의 미망인이자 헬레노스의 형수인 안드로마케를 노예이자 첩으로 삼았으며, 그녀와의 사이에서 몰로소스, 피엘루스, 페르가모스 등 여러 자녀를 두었다. 헬레노스는 트로이아 함락 후 네오프톨레모스를 따라 에페이로스로 향했다. 그는 네오프톨레모스와 안드로마케,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과 함께 에페이로스로 여정을 떠났으며, 그곳에서 네오프톨레모스의 허락을 받아 도시 부트로툼을 건설했다. 네오프톨레모스가 에페이로스를 떠난 후, 그는 안드로마케와 아들들을 헬레노스에게 맡겼다.
4.2. 에피로스 통치
네오프톨레모스는 메넬라오스와 헬레네의 딸 헤르미오네와의 결혼을 놓고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와 다투다가 오레스테스에게 살해당했다. 네오프톨레모스의 왕국이 분할되면서, 헬레노스는 부트로툼의 통치권을 얻어 왕이 되었다. 그는 "프리아모스의 아들 헬레노스는 네오프톨레모스의 왕위와 침대를 계승하여 에페이로스의 이 그리스 도시들을 통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헬레노스는 이후 안드로마케와 결혼하여 아들 케스트리노스를 낳았다. 케스트리노스는 전설적인 트로이아 왕이자 프랑쿠스의 아버지인 겐게르 또는 젠터와 동일시되기도 한다. 일부 신화학자들은 헬레노스가 네오프톨레모스의 왕국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공고히 하기 위해 네오프톨레모스의 어머니인 데이다미아와 안드로마케 모두와 결혼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는 자신의 형제 카온을 기려 자신이 지배하는 지역을 카오니아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4.3. 아이네이아스를 위한 예언
트로이아 전쟁 이후 아이네이아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부트로툼에 들렀을 때, 헬레노스는 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미래에 대한 중요한 예언을 해주었다. 헬레노스는 아이네이아스가 이탈리아에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결국 로마를 건국할 것이라고 예언했으며, 그의 긴 여정의 성공적인 결말에 대한 상세한 조언을 제공했다. 이 내용은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 제3권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5. 기타 신화적 기록
헬레노스에 관한 다른 설화 중 일부는 트로이아 전쟁 이후 그의 어머니 헤카베와의 상호작용이나 다른 지역으로의 이주를 다루고 있다. 한 전승에 따르면, 헬레노스는 트로이아 전쟁 후 그의 어머니 헤카베를 데리고 체르소네소스로 건너갔는데, 그곳에서 헤카베는 암캐로 변모했다. 헬레노스는 헤카베를 오늘날 '암캐의 무덤'이라 불리는 장소에 묻었다.
또 다른 설화에서는 아가멤논이 트로이아를 배신하는 데 도움을 준 모든 배신자들을 소환하고 트로이아 약탈 후 그들과의 약속을 이행했다고 한다. 이들 중 두 명은 헬레노스와 카산드라였는데, 이들은 항상 프리아모스에게 평화를 간청했으며, 헬레노스는 아킬레우스의 시신을 매장하기 위해 돌려보내도록 성공적으로 설득했었다. 이에 아가멤논은 회의의 조언에 따라 헬레노스와 카산드라에게 자유를 주었다. 헬레노스는 헤카베와 안드로마케가 자신을 항상 사랑했음을 기억하고 그들을 위해 아가멤논에게 중재했다. 아가멤논은 회의의 조언에 따라 그들에게도 자유를 주었다. 이 네 명은 1,200명의 추종자들과 함께 트라키아의 체르소네소스에 정착했다고 전해진다.
제프리 오브 몬머스의 《브리타니아 열왕사》 (서기 1136년경)에서는 헬레노스가 다른 많은 트로이아인들과 함께 네오프톨레모스에게 사로잡혀 아킬레우스의 죽음에 대한 복수로 사슬에 묶인 채 그리스로 끌려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네오프톨레모스의 명령에 따라 그들과 그들의 후손들은 몇 세대가 지난 판드라수스 왕 시대까지 노예 상태로 남아있다가, 트로이아의 브루투스에 의해 해방되었다.
6. 유산과 영향
헬레노스는 그리스 신화 속에서 단순히 트로이아의 왕자나 전사로서의 역할에 그치지 않고, 지혜와 예언의 상징으로서 중요한 유산을 남겼다. 그의 예언 능력은 전쟁의 흐름을 바꾸고, 트로이아의 몰락과 그리스의 승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특히, 오디세우스에게 트로이아 함락 조건을 알려준 것은 신화 속에서 그의 비중을 크게 만들었다.
전쟁 이후의 삶에서 그는 네오프톨레모스와 안드로마케와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트로이아 생존자들의 새로운 터전 마련에 기여했으며, 에페이로스의 왕으로서 안정된 공동체를 세웠다. 이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새로운 문명을 시작하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또한, 아이네이아스에게 로마 건국을 예언한 것은 헬레노스를 단순히 그리스 신화의 인물을 넘어, 로마 건국 신화와도 연결시키는 중요한 매개체로 만들었다. 그의 예언은 로마의 정통성과 신성함을 부여하는 데 일조했으며, 이는 후대 문학 작품, 특히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서 강조되었다. 이처럼 헬레노스는 그의 예언 능력, 트로이아 전쟁에서의 역할, 그리고 전쟁 이후 트로이아 생존자들의 미래와 새로운 문명의 시작에 기여함으로써 그리스-로마 신화 전반에 걸쳐 깊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