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헤르만 코헨의 생애는 그의 학문적 발전과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깊이 연결되어 있다. 그는 독실한 유대교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종교 교육을 받았으며, 이후 철학에 몰두하여 칸트 철학의 권위자로 성장했다.
1.1. 출생 및 초기 생애
코헨은 1842년 7월 4일 안할트베른부르크 후국의 코스비히에서 독실한 유대교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코헨이 세 살 반이 되던 해부터 유대교 교육을 시작했다.
1.2. 교육
코헨은 데사우의 김나지움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1859년에는 브레슬라우의 유대교 신학교에 입학하여 랍비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았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점차 신학에서 철학으로 옮겨갔다. 그는 브레슬라우 대학교, 베를린 대학교, 그리고 할레 대학교에서 학문을 계속했으며, 특히 할레 대학교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 연구에 집중하여 학위를 취득했다. 이 시기에 그는 수학과 자연과학 연구에도 전념하며 칸트 철학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3. 학술 경력
코헨은 일찍부터 철학 연구에 매진하여 심오한 칸트 학자로 명성을 얻었다. 1871년, 그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 대한 주석서인 『Kants Theorie der Erfahrung칸트의 경험 이론독일어』을 저술했는데, 이 책은 프리드리히 알베르트 랑게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1873년, 코헨은 이 저작을 바탕으로 마르부르크 대학교 철학부의 Privatdozent프리바트도첸트독일어(강사)로 임용되었다. 그의 하빌리타치온 논문은 『Die systematischen Begriffe in Kants vorkritischen Schriften nach ihrem Verhältniss zum kritischen Idealismus칸트의 비판 이전 저작에 나타난 체계적 개념과 비판적 관념론의 관계독일어』였다. 1875년에는 마르부르크 대학교의 Professor extraordinarius프로페소르 엑스트라오르디나리우스라틴어(특별 교수)로 선출되었고, 이듬해인 1876년에는 랑게의 강좌를 이어받아 Professor ordinarius프로페소르 오르디나리우스라틴어(정교수)가 되었다.
그는 1877년에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에 대한 주석서인 『Kants Begründung der Ethik칸트 윤리학의 기초독일어』를, 1889년에는 『판단력비판』에 대한 주석서인 『Kants Begründung der Ästhetik칸트 미학의 기초독일어』를 출판했다. 1880년에 마르부르크에 온 파울 나토르프와 함께 신칸트주의 마르부르크 학파를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 시기의 제자로는 에른스트 카시러가 있다.
1.4. 후기 활동 및 베를린
1912년, 코헨은 학계 내의 반유대주의 세력으로 인해 마르부르크 대학교 교수직을 사임하고 베를린으로 거처를 옮겼다. 1913년부터 그는 유대교 과학 고등학원에서 강의를 시작했으며, 이 시기 이후 코헨의 관심은 주로 종교 철학으로 향했다. 1915년에는 『Philosophie des Begriffs der Religion im System체계 속 종교 개념의 철학독일어』을, 그리고 1919년에는 유고작인 『Religion der Vernunft aus den Quellen des Judentums유대교의 원천에서 나온 이성의 종교독일어』를 출판했다. 이 시기의 제자로는 프란츠 로젠츠바이크가 있다.
2. 철학
헤르만 코헨의 철학은 칸트의 비판 철학을 계승하고 재해석하여 독자적인 체계를 구축한 것이 특징이다. 그는 순수 인식, 순수 의지, 순수 감정의 영역을 통해 이성 중심의 철학을 전개했으며, 유대교 사상을 보편적 윤리 철학으로 확장하는 데 기여했다.
2.1. 신칸트주의와 마르부르크 학파
코헨은 19세기 후반 독일에서 일어난 신칸트주의 운동의 핵심 인물이며, 특히 마르부르크 학파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마르부르크 학파는 칸트 철학을 과학적 인식론의 기초로 삼아 엄밀한 개념적 분석을 통해 철학을 재정립하려 했다. 코헨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순수 인식의 논리학으로 해석하며, 경험의 가능성을 해명하는 데 있어 선험적 원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칸트의 철학을 단순한 역사적 유물이 아닌, 현대 과학과 윤리적 문제에 적용될 수 있는 살아있는 체계로 보았다.
2.2. 칸트 철학 해석
코헨은 칸트 철학의 핵심 저작들인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에 대한 심층적인 주석서를 집필했다. 그의 『Kants Theorie der Erfahrung칸트의 경험 이론독일어』(1871, 1885년 제2판)은 칸트의 인식론을 과학적 지식의 기초로서 재해석했으며, 『Kants Begründung der Ethik칸트 윤리학의 기초독일어』(1877)는 칸트의 도덕 철학을 순수 의지의 윤리학으로 확장했다. 또한 『Kants Begründung der Ästhetik칸트 미학의 기초독일어』(1889)를 통해 칸트의 미학을 순수 감정의 영역으로 분석했다. 코헨은 칸트의 철학이 단순히 인식론적 문제를 다루는 것을 넘어, 윤리적, 미학적 영역까지 포괄하는 보편적 이성 체계임을 강조했다.
2.3. 체계 철학
코헨은 칸트 철학에 대한 해석을 넘어 자신만의 독자적인 체계 철학을 구축했다. 그의 체계는 세 권의 주요 저작으로 구성된다.
- 『Logik der reinen Erkenntnis순수 인식의 논리학독일어』 (1902): 이 책은 순수 이성의 논리적 구조와 과학적 지식의 토대를 탐구한다. 코헨은 인식이 감각적 경험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선험적인 개념과 판단의 틀을 통해 구성된다고 보았다.
- 『Ethik des reinen Willens순수 의지의 윤리학독일어』 (1904): 이 책은 도덕적 행위의 근거와 윤리적 의지의 본질을 다룬다. 코헨은 도덕적 법칙이 인간의 순수 의지에서 비롯되며, 이는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성격을 지닌다고 주장했다. 그는 윤리를 인간 사회의 이상적인 목표를 향한 끊임없는 노력으로 이해했다.
- 『Ästhetik des reinen Gefühls순수 감정의 미학독일어』 (1912): 이 책은 미적 경험과 예술의 본질을 순수 감정의 영역에서 탐구한다. 코헨은 미적 판단이 주관적인 감정의 표현을 넘어,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지닌다고 보았다.
코헨은 이 세 권의 저작을 통해 인식, 의지, 감정의 영역을 포괄하는 통일된 이성 체계를 구축하려 했다. 원래는 심리학에 관한 네 번째 권을 계획했으나, 이는 완성되지 못했다.
2.4. 유대 철학 및 종교 철학
코헨은 그의 체계 철학을 유대교 사상과 연결하여 독창적인 종교 철학을 전개했다. 그는 유대교를 단순한 민족 종교가 아닌, 보편적인 이성적 윤리의 원천으로 해석했다. 그의 유대 철학 관련 주요 저작들은 다음과 같다.
- 『Die Kulturgeschichtliche Bedeutung des Sabbat안식일의 문화사적 의미독일어』(1881)
- 『Ein Bekenntniss in der Judenfrage유대인 문제에 대한 고백독일어』(1880)
- 「Das Problem der Jüdischen Sittenlehre유대교 도덕 교리의 문제독일어」(1899)
- 「Liebe und Gerechtigkeit in den Begriffen Gott und Mensch신과 인간 개념에 나타난 사랑과 정의독일어」(1900)
- 「Autonomie und Freiheit자율과 자유독일어」(1900)
- 『Religion der Vernunft aus den Quellen des Judentums유대교의 원천에서 나온 이성의 종교독일어』(1919)
- 『Deutschtum und Judentum독일성과 유대성독일어』
- 『Die Nächstenliebe im Talmud탈무드에 나타난 이웃 사랑독일어』: 이 에세이는 마르부르크 왕립 지방법원의 요청으로 작성되었다.
- 『Die Ethik des Maimonides마이모니데스의 윤리학독일어』
코헨은 유대교의 윤리적 일신론을 보편적 도덕성의 기초로 삼았으며, 정의, 사랑, 이웃 사랑과 같은 유대적 가치들이 인류 전체의 윤리적 이상을 구현한다고 보았다. 그는 소수 집단으로서의 유대인의 정체성을 보편적 인류애와 조화시키려 노력했으며, 종교적 가르침이 사회적 통합과 도덕적 진보에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3. 주요 저작
헤르만 코헨은 칸트 철학의 해석과 자신만의 체계 철학, 그리고 유대 철학에 걸쳐 방대한 저작을 남겼다. 그의 주요 저작들은 다음과 같다.
- 「Die Platonische Ideenlehre Psychologisch Entwickelt플라톤의 이데아론의 심리학적 전개독일어」(1866)
- 「Mythologische Vorstellungen von Gott und Seele신과 영혼에 대한 신화적 표상독일어」(1869)
- 「Die dichterische Phantasie und der Mechanismus des Bewusstseins시적 환상과 의식의 메커니즘독일어」(1869)
- 「Zur Kontroverse zwischen Trendelenburg und Kuno Fischer트렌델렌부르크와 쿠노 피셔 논쟁에 대하여독일어」(1871)
- 『Kants Theorie der Erfahrung칸트의 경험 이론독일어』(1871, 1885년 제2판)
- 『Kants Begründung der Ethik칸트 윤리학의 기초독일어』(1877)
- 「Platons Ideenlehre und die Mathematik플라톤의 이데아론과 수학독일어」(1878)
- 『Das Prinzip der Infinitesimalmethode und seine Geschichte: ein Kapitel zur Grundlegung der Erkenntnisskritik무한소 방법의 원리와 그 역사: 인식 비판의 기초에 기여하는 한 장독일어』(1883)
- 「Von Kants Einfluss auf die Deutsche Kultur독일 문화에 대한 칸트의 영향독일어」(1883)
- 『Kants Begründung der Ästhetik칸트 미학의 기초독일어』(1889)
- 「Zur Orientierung in den Losen Blättern aus Kants Nachlass칸트의 유고집에 있는 낱장들에 대한 안내독일어」(1890)
- 「Leopold Schmidt레오폴트 슈미트독일어」(1896)
- 『Logik der reinen Erkenntnis순수 인식의 논리학독일어』(1902)
- 『Ethik des reinen Willens순수 의지의 윤리학독일어』(1904)
- 『Ästhetik des reinen Gefühls순수 감정의 미학독일어』(1912)
- 『Spinoza über Staat und Religion, Judentum und Christentum국가와 종교, 유대교와 기독교에 대한 스피노자독일어』(1915)
- 『Religion der Vernunft aus den Quellen des Judentums유대교의 원천에서 나온 이성의 종교독일어』(1919)
- 『Jüdische Schriften유대적 저작들독일어』(1924): 프란츠 로젠츠바이크가 서문을 쓰고 브루노 슈트라우스가 편집한 코헨의 유대 관련 저작 모음집이다. 이 중 일부는 영어로 번역되어 『Reason and Hope: Selections from the Jewish Writings of Hermann Cohen이성과 희망: 헤르만 코헨의 유대적 저작 선집영어』(1971, 1993년 재출판)으로 출판되었다.
4. 사상 및 비판
헤르만 코헨의 사상은 당시 사회적, 정치적 이슈에 대한 그의 확고한 입장을 통해 드러난다. 특히 그는 시온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며 보편주의적 가치를 옹호했다.
4.1. 시온주의에 대한 비판
코헨은 시온주의에 대해 노골적인 비판자였다. 그는 유대 국가를 건설하려는 시온주의의 열망이 "유대인을 역사로 되돌리는 것"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코헨의 견해에 따르면, 유대교는 본질적으로 비역사적이며, 시온주의의 민족적 목표를 훨씬 뛰어넘는 영적이고 도덕적인 사명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유대교의 보편주의적 메시지가 특정 민족의 국가 건설이라는 민족주의적 열망에 의해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입장은 그의 철학 전반에 걸친 보편주의와 이성 중심의 사고를 반영하며, 소수자의 정체성이 민족주의적 배타성을 넘어 보편적 인류애 속에서 구현되어야 한다는 그의 철학적 함의를 보여준다.
4.2. 기타 활동
코헨은 학술 연구와 전파를 위해 다양한 활동에 참여했다. 그는 1902년 11월 베를린에서 첫 회의를 개최한 「Gesellschaft zur Förderung der Wissenschaft des Judenthums유대교 과학 진흥 협회독일어」의 창시자 중 한 명이다. 또한 그는 프리드리히 알베르트 랑게의 마지막 철학 저작인 『Logische Studien논리 연구독일어』(라이프치히, 1877)를 편집하고 출판했으며, 랑게의 『Geschichte des Materialismus유물론의 역사독일어』에 대한 긴 서론과 비판적 보충 자료의 여러 버전을 편집하고 저술했다.
5. 평가 및 영향
헤르만 코헨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독일 철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신칸트주의와 유대 철학 분야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그의 사상은 후대 학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고, 사회 윤리 및 비판적 사고의 발전에 기여했다.
5.1. 학계의 평가
코헨은 "아마도 19세기의 가장 중요한 유대 철학자"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그의 칸트 해석은 신칸트주의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그의 체계 철학은 인식론, 윤리학, 미학의 영역을 통합하려는 시도로 평가받는다. 특히 그의 유대 철학은 유대교를 단순한 종교가 아닌 보편적 윤리 체계로 재해석함으로써, 유대 사상의 현대적 의의를 탐구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5.2. 후대에 미친 영향
코헨의 철학은 에른스트 카시러와 같은 마르부르크 학파의 후대 철학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의 유대 철학은 프란츠 로젠츠바이크 등 20세기 유대 사상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제공했다. 코헨의 보편주의적 윤리 사상과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은 사회 윤리 및 인권 문제에 대한 비판적 사고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의 사상은 현대 사회에서 소수 집단의 정체성과 보편적 가치의 조화를 모색하는 데 여전히 유효한 통찰을 제공한다.
흥미롭게도, 코헨의 시온주의에 대한 비판적 입장에도 불구하고 텔아비브에는 '헤르만 코헨 거리'가 존재한다. 이는 그의 철학적 업적과 유대 사상에 대한 기여가 특정 정치적 입장과 무관하게 폭넓게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6. 사망
헤르만 코헨은 1918년 4월 4일 베를린에서 7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바이센제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