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고려의 제14대 국왕인 헌종(獻宗, 獻宗Heonjong한국어)은 휘가 욱(昱, 昱Uk한국어)이며, 1084년 8월 7일(율리우스력 8월 1일)에 태어나 1097년 4월 10일(율리우스력 4월 4일)에 14세의 나이로 승하하였다. 그는 선종과 사숙태후 이씨의 맏아들로, 1094년부터 1095년까지 재위하였다.
헌종은 9세 때부터 글쓰기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총명한 아이였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즉위하고 병약하여 어머니인 사숙태후의 수렴청정을 받았다. 재위 중 외척인 이자의가 한산후 윤을 옹립하려는 난을 일으켰으나, 숙부인 계림공 왕희에 의해 진압되었다. 즉위 초부터 앓던 지병과 불안정한 정국으로 인해 헌종은 결국 숙부인 계림공에게 왕위를 선위하고 2년 뒤 사망하였다. 그의 묘호는 헌종이며, 시호는 공상정비회효대왕(恭殤定比懷孝大王)이다.
2. 생애
헌종은 고려의 제14대 국왕으로,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병약함 속에서 짧은 재위 기간을 보냈다. 그의 통치 기간은 모후의 섭정과 외척의 권력 다툼, 그리고 숙부의 부상으로 점철되었다.
2.1. 출생 및 성장
헌종은 1084년(선종 1년) 8월 7일(음력 6월 27일), 율리우스력으로는 8월 1일에 개경의 연화궁에서 선종과 왕비 사숙왕후 이씨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왕욱(王昱)으로, 1088년(선종 5년)에 하사받았다. 어린 시절부터 총명하여, 9세의 나이에 이미 글쓰기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다. 1093년(선종 10년) 3월, 그는 태자로 책봉되어 수춘궁에 거처하게 되었다.
2.2. 즉위와 재위 기간
1094년 6월 23일(음력 5월 2일), 율리우스력으로는 6월 17일에 아버지 선종이 붕어하자, 태자였던 왕욱이 왕위를 계승하여 헌종으로 즉위하였다. 당시 헌종은 나이가 어렸고, 소갈증(消渴症, 당뇨병과 유사한 증상)으로 매우 병약했기 때문에, 어머니인 사숙태후 이씨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그러나 사숙태후의 섭정은 오래가지 못했으며, 외척인 인천 이씨 가문이 권세를 휘둘렀다. 당시 고려의 왕위 계승 관습은 왕에게 아들이 있더라도 나이가 어리면 왕의 동생이 왕위를 잇는 경우가 많았기에, 선종의 뜻으로 어린 왕자가 왕위를 계승한 것에 대해 선종의 동생들은 불만을 품고 있었다. 특히 선종의 동생인 계림공(鷄林公), 즉 훗날의 숙종이 가장 유력한 왕위 계승 후보였다.
헌종 즉위 이듬해인 1095년(헌종 1년), 외척인 이자의가 한산후 윤을 옹립하려는 난을 일으켰다. 이자의는 헌종의 외숙부(어머니 사숙왕후의 친척)이기도 했다. 이자의의 난은 숙부인 계림공 왕희에 의해 신속하게 진압되었다.
2.3. 왕위 양위와 죽음
즉위 후에도 헌종은 어린 시절부터 앓아온 병(당뇨병 또는 소갈증)으로 인해 매우 병약한 상태였다. 또한 모후인 사숙태후의 정권 기반이 취약했기 때문에 헌종의 왕위는 불안정했다. 1095년에는 계림공이 반대 세력을 축출하고 실권을 장악하는 정변이 일어났다. 같은 해 10월, 헌종은 교서를 내려 숙부인 계림공에게 왕위를 선위하였다. 이로써 헌종의 재위 기간은 2년 남짓으로 짧게 막을 내렸다.
왕위를 물려준 헌종은 후궁으로 옮겨 지내다가, 1097년(숙종 2년) 4월 10일(음력 윤2월 19일), 율리우스력으로는 4월 4일에 개경의 흥상궁에서 14세의 어린 나이로 승하하였다. 그는 왕비나 자녀를 두지 않았다. 그의 능은 성동에 위치한 은릉(隱陵)이나, 현재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며 개성 동쪽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3. 가족 관계
헌종의 가족 관계는 다음과 같다.
구분 | 생몰년 | 부모 | 비고 | |
---|---|---|---|---|
부 | 선종 宣宗 | 1049년 ~ 1094년 | 문종 인예태후 이씨 | 제13대 국왕 |
모 | 사숙왕후 이씨 사숙태후 | 미상 ~ 1107년 | 이석 (이자연의 셋째 아들) | 헌종 즉위 후 사숙왕태후로 존봉됨. 시호는 정화광숙사숙왕후. |
배우자 | 회순왕후 소씨 | 미상 | 진산부원군 소계령 | 헌종 사후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음. |
4. 평가 및 사후
헌종은 재위 기간이 짧고 병약하여 직접적인 업적을 남기기 어려웠다. 그의 치세는 모후의 섭정과 외척의 권력 다툼, 그리고 숙부 숙종의 부상이라는 격동의 시기였다.
헌종이 승하한 후, 초기 시호는 회상(懷殤)이었다. 이후 1105년(예종 즉위년)에 묘호로 헌종(獻宗)이 올려졌고, 시호는 공상(恭殤)으로 개정되었다. 최종적으로 그는 공상정비회효대왕(恭殤定比懷孝大王, 恭殤定比懷孝大王Gongsangjeongbihyo Daewang한국어)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그의 능은 은릉(隱陵)으로, 개성 동쪽에 위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5. 관련 항목
- 고려
- 한국사
- 고려 선종
- 사숙왕후
- 고려 숙종
- 이자의
- 회순왕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