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초기 및 항일 활동
한익수는 가난한 농민 가정에서 태어나 항일 투쟁에 투신하게 되었고, 조선인민혁명군의 일원으로서 주요 전투에 참여하며 이름을 알렸다.
1.1. 출생 및 성장 배경
한익수는 1912년 10월 15일, 중국 지린성 룽징시의 가난한 농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1.2. 조선인민혁명군 입대 및 주요 전투
그는 1931년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여 나팔수로 활동했으며, 1937년에는 김일성 등과 함께 보천보 전투에 참전하여 항일 무장 활동에 기여했다.
2. 광복 이후 군사 및 정치 활동
광복 이후 한익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수립에 적극적으로 기여했으며, 초기 조선인민군의 주요 직책을 맡아 군사적 기반을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한국 전쟁에도 참전하여 군 요직을 역임했다.
2.1. 정부 수립 기여 및 초기 군 직책
1945년 일본의 항복과 제2차 세계 대전의 종전으로 조선이 해방되자, 한익수는 귀국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수립에 기여했다. 그는 초기 조선인민군에서 중대장을 지냈으며, 이후 강건종합군관학교 교장으로 임명되었다. 한국 전쟁 발발 전에는 장군으로 진급했다.
2.2. 한국 전쟁 참전 및 군 요직
한익수는 한국 전쟁에 참전했으며, 전쟁 중 조선인민군 부총참모장, 민족보위성 부상 등 주요 군 요직을 역임했다. 또한 1968년에는 오진우의 후임으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에 취임했다.
3. 주요 당 및 국가 직책
한익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건국 이후에도 조선로동당과 국가의 핵심 요직을 두루 거치며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했다.
3.1. 최고인민회의 활동 및 외교 활동
한익수는 1962년에 최고인민회의 제3기 대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같은 해부터 1964년까지 주중국 대사로 베이징에 파견되어 외교 활동을 펼쳤다.
3.2. 조선로동당 및 군의 핵심 직책
그는 1961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고, 1969년에는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1970년에는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으로 승격되었다. 또한 1973년에는 당 중앙위원회 부장을, 1977년에는 당 중앙위원회 검열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당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4. 저서
한익수는 자신의 항일 투쟁 경험을 담은 회상기를 저술하여 후세에 남겼다.
4.1. 항일 빨치산 회상기
1968년, 한익수는 '항일 빨치산 회상기'를 출판했다. 이 저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외국문출판사에서 간행되었으며, 책에 수록된 글 중에는 "혁명가에게는 학습이 첫째가는 임무이다"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5. 사망 및 사후 평가
한익수는 1978년 사망했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로부터 높은 명예와 추모를 받았다.
5.1. 사망
한익수는 1978년 9월 5일에 사망했다.
5.2. 사후 명예 및 추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는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1972년에 김일성 훈장을 수여했으며, 1급 국기훈장도 수여했다. 사망 후에는 대성산혁명렬사릉에 안장되었고, 그의 흉상이 건립되는 등 높은 명예와 추모를 받았다.
6. 정치적 계파
한익수는 조선로동당 내 주요 정치적 계파 중 하나에 속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6.1. 만주파 소속
한익수는 조선로동당의 주류 계파 중 하나인 만주파에 속했던 인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