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하니 벤첼(Hanni Wenzel)은 리히텐슈타인의 전설적인 알파인 스키 선수로, 리히텐슈타인 스포츠 역사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 그녀는 1976년 인스브루크 동계 올림픽에서 회전 동메달을 획득하며 리히텐슈타인 최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되었다. 4년 후인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동계 올림픽에서는 회전과 대회전에서 금메달을, 활강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리히텐슈타인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영예를 안았다. 벤첼은 또한 FIS 알파인 스키 월드컵에서 두 차례 종합 우승을 차지했고, 세계 알파인 스키 선수권 대회에서도 네 차례 금메달을 포함한 총 아홉 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그녀는 리히텐슈타인 알파인 스키의 황금기를 이끌었으며, 그녀의 가족들 또한 스키 선수로서 뛰어난 업적을 남기며 리히텐슈타인 스포츠 유산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어린 시절 및 배경
하니 벤첼은 1956년 12월 14일 서독 바이에른주 슈트라우빙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어린 시절에 가족과 함께 리히텐슈타인으로 이주했다. 하니와 그녀의 남동생 안드레아스 벤첼이 스키 선수로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기 시작한 후, 벤첼 가족은 리히텐슈타인 시민권을 부여받았다. 이는 그들의 스포츠적 재능과 리히텐슈타인을 대표하는 선수로서의 기여가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3. 알파인 스키 경력
하니 벤첼은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알파인 스키계의 정상에서 활약하며 리히텐슈타인의 스포츠 역사를 새로 썼다.
3.1. 초기 성공 및 세계 선수권 대회 데뷔
하니 벤첼은 1972년 3월 15세의 나이로 월드컵에 데뷔하며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녀는 1974년 세계 알파인 스키 선수권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 대회에서 그녀는 회전 부문에서 금메달을, 복합 부문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1974년 2월 8일 회전에서 우승하면서 그녀는 17세 1개월 25일의 나이로 회전 종목 최연소 여자 알파인 스키 세계 챔피언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는 1931년 첫 여자 알파인 스키 챔피언이었던 에스메 매키넌의 기록(17세 2개월 17일)을 경신한 것이다.
3.2. 올림픽 성공
하니 벤첼은 올림픽에서 리히텐슈타인에 역사적인 순간들을 선사했다. 1976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서 열린 1976년 동계 올림픽에서 그녀는 회전 동메달을 획득하며 리히텐슈타인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되었다. 이 메달은 악자머 리춤에서 열린 회전 경기에서 나왔다. 또한 이 대회는 세계 선수권 대회를 겸하여 복합 종목에서도 또 다른 세계 선수권 대회 메달을 추가했다.
4년 후 미국 레이크플래시드에서 열린 1980년 동계 올림픽에서 벤첼은 선수 경력의 정점을 찍었다. 그녀는 회전과 대회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두 종목 챔피언에 올랐다. 이 금메달은 리히텐슈타인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화이트페이스 산에서 열린 활강에서도 은메달을 획득하며 전 종목 메달 획득이라는 대기록에 아쉽게도 실패했지만,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었다. 또한 이 올림픽에서 복합 경기는 세계 선수권 대회 금메달로 별도로 주어지는 '기록 경기'의 마지막 대회가 되었는데, 그녀는 이 종목에서 금메달을 추가하여 개인 통산 네 번째 세계 선수권 대회 복합 메달을 획득했다. 같은 대회에서 그녀의 남동생 안드레아스 벤첼도 은메달을 획득하며 리히텐슈타인이 이 대회 메달 순위에서 높은 위치에 오르는 데 기여했다. 벤첼 자매는 리히텐슈타인이 동계 올림픽에서 획득한 총 10개의 메달 중 6개를 차지하며 국가의 스포츠 위상을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3.3. FIS 월드컵 업적
하니 벤첼은 FIS 알파인 스키 월드컵에서도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였다. 그녀는 1978년과 1980년에 두 차례 월드컵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1980년에는 월드컵 종합 우승 외에도 대회전과 복합 종목에서 시즌 우승을 차지했으며, 총 9번의 월드컵 레이스에서 우승했다. 같은 해 그녀의 남동생 안드레아스 벤첼도 남자부 종합 우승을 차지하며 벤첼 남매가 월드컵 종합 우승을 휩쓸었다.
벤첼은 선수 경력 동안 총 7개의 월드컵 시즌 타이틀을 획득했는데, 이는 종합 2회, 대회전 2회, 회전 1회, 복합 2회이다. 그녀는 월드컵 경기에서 총 33승을 거두었고, 89차례 시상대에 올랐다.
시즌 | 종목 |
---|---|
1974 | 대회전 |
1978 | 종합 |
회전 | |
1980 | 종합 |
대회전 | |
복합 | |
1983 | 복합 |
시즌 | 나이 | 종합 | 회전 | 대회전 | 슈퍼대회전 | 활강 | 복합 |
---|---|---|---|---|---|---|---|
1972 | 15 | 40 | - | 27 | 미시행 | - | 미시상 |
1973 | 16 | 5 | 6 | 3 | 18 | ||
1974 | 17 | 3 | 4 | 1 | 16 | ||
1975 | 18 | 2 | 2 | 5 | 12 | ||
1976 | 19 | 9 | 9 | 13 | 16 | 6 | |
1977 | 20 | 5 | 5 | 8 | 11 | 미시상 | |
1978 | 21 | 1 | 1 | 2 | 15 | ||
1979 | 22 | 2 | 5 | 2 | 10 | ||
1980 | 23 | 1 | 2 | 1 | 3 | 1 | |
1981 | 24 | 3 | 6 | 3 | 9 | 2 | |
1982 | 25 | 19 | 9 | 14 | - | - | |
1983 | 26 | 2 | 4 | 5 | 미시상 | - | 1 |
1984 | 27 | 2 | 7 | 5 | 3 | 4 |
시즌 | 날짜 | 장소 | 종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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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 | 1973년 12월 19일 | 오스트리아 첼암제 | 대회전 |
1975 | 1975년 2월 21일 | 일본 나에바 | 회전 |
1975년 3월 14일 | 미국 선밸리 | 회전 | |
1977 | 1977년 1월 19일 | 오스트리아 슈룬스 | 복합 |
1978 | 1977년 12월 15일 | 이탈리아 마돈나 디 캄필리오 | 대회전 |
1978년 1월 10일 | 스위스 레 모세 | 대회전 | |
1978년 1월 22일 | 유고슬라비아 마리보르 | 회전 | |
1978년 1월 24일 | 서독 베르히테스가덴 | 회전 | |
1978년 1월 25일 | 회전 | ||
1978년 3월 2일 | 미국 스트래튼 마운틴 | 대회전 | |
1979 | 1978년 12월 12일 | 이탈리아 피안카발로 | 대회전 |
1979년 2월 3일 | 서독 프론텐 | 회전 | |
1979년 2월 4일 | 복합 | ||
1979년 2월 8일 | 유고슬라비아 마리보르 | 회전 | |
1980 | 1979년 12월 8일 | 이탈리아 리모네 피에몬테 | 대회전 |
1979년 12월 14일 | 복합 | ||
1980년 1월 10일 | 서독 베르히테스가덴 | 대회전 | |
1980년 1월 16일 | 스위스 아로사 | 대회전 | |
1980년 1월 21일 | 오스트리아 바트 가슈타인 | 회전 | |
복합 | |||
1980년 1월 23일 | 유고슬라비아 마리보르 | 회전 | |
1980년 1월 26일 | 프랑스 생제르베레뱅 | 대회전 | |
1980년 동계 올림픽 | |||
1980년 2월 25일 | 미국 워터빌밸리 | 대회전 | |
1981 | 1981년 1월 27일 | 프랑스 레 제 | 복합 |
1981년 2월 8일 | 서독 츠비젤 | 복합 | |
1982 | 1981년 12월 12일 | 이탈리아 피안카발로 | 복합 |
1982년 3월 18일 | 일본 후라노 | 대회전 | |
1983 | 1983년 1월 30일 | 스위스 레 디아블르레 | 복합 |
1984 | 1983년 12월 21일 | 오스트리아 하우스 임 엔슈탈 | 활강 |
1983년 12월 22일 | 대회전 | ||
1984년 1월 14일 | 오스트리아 바트 가슈타인 | 활강 | |
1984년 1월 15일 | 복합 | ||
1984년 3월 20일 | 서독 츠비젤 | 회전 |
3.4. 논란 및 은퇴
1984년 사라예보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하니 벤첼은 국제 스키 연맹(FIS)으로부터 출전 금지 조치를 받았다. 이는 그녀가 국가 스키 연맹을 통하지 않고 직접 후원금을 받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1980년 동계 올림픽에서 두 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던 스웨덴의 잉에마르 스텐마르크 또한 같은 이유로 출전이 금지되었다. 이 사건은 당시 스포츠계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벤첼은 이듬해인 1984년 월드컵 시즌을 끝으로 27세의 나이에 선수 생활에서 은퇴했다. 그녀는 은퇴할 때까지 올림픽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포함한 총 4개의 올림픽 메달과 세계 선수권 대회 금메달 4개를 포함한 총 9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또한 월드컵에서는 종합 우승 2회, 종목별 우승 3회, 그리고 복합 종목 우승 3회(세계 선수권 대회를 겸한 기록 포함)를 포함하여 총 33승이라는 뛰어난 기록을 남겼다. (1980년까지는 동계 올림픽이 알파인 스키 세계 선수권 대회를 겸했다.)
연도 | 나이 | 회전 | 대회전 | 슈퍼대회전 | 활강 | 복합 |
---|---|---|---|---|---|---|
1974 | 17 | 1 | 7 | 미시행 | 13 | 2 |
1976 | 19 | 3 | 20 | 11 | 3 | |
1978 | 21 | 6 | 5 | 29 | 2 | |
1980 | 23 | 1 | 1 | 2 | 1 | |
1982 | 25 | 완주 못함 | 완주 못함 | - | - |
1948년부터 1980년까지 동계 올림픽은 알파인 스키 세계 선수권 대회를 겸했다.
1954년부터 1980년까지 세계 선수권 대회 복합 종목은 세 종목(활강, 대회전, 회전)의 결과를 합산하는 "기록 경기"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연도 | 나이 | 회전 | 대회전 | 슈퍼대회전 | 활강 | 복합 |
---|---|---|---|---|---|---|
1976 | 19 | 3 | 20 | 미시행 | 11 | 미시행 |
1980 | 23 | 1 | 1 | 2 | ||
1984 | 27 | - | - | - |
벤첼과 잉에마르 스텐마르크는 후원금 논란으로 1984년 올림픽 출전이 금지되었다.
4. 개인 생활 및 가족
하니 벤첼은 스포츠 가족의 일원이다. 그녀의 여동생 페트라 벤첼과 남동생 안드레아스 벤첼 또한 월드컵 스키 선수로 활약했다. 그녀는 1982년 세계 선수권 대회 활강 챔피언인 오스트리아의 스키 선수 하르티 바이라터와 결혼했다. 하니 벤첼과 하르티 바이라터는 공동으로 스포츠 마케팅 에이전시인 [http://www.wwp-group.com wwp-group]을 운영하고 있다.
그들의 딸 티나 바이라터 역시 월드컵 스키 선수로 활동하며 어머니의 뒤를 이었다. 티나 바이라터는 2017년 세계 선수권 대회 슈퍼대회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했고,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는 슈퍼대회전 동메달을 획득하며 리히텐슈타인에 또 하나의 올림픽 메달을 안겼다.
5. 영예 및 유산
하니 벤첼은 리히텐슈타인 스포츠계에 지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다양한 영예를 얻었으며, 그녀의 유산은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5.1. 영예
벤첼은 2017년 9월 6일 리히텐슈타인 공국 공로훈장 사령관십자장을 수훈했다.
5.2. 유산 및 영향력
하니 벤첼은 리히텐슈타인 스포츠 역사에 지울 수 없는 발자취를 남겼다. 그녀는 리히텐슈타인에 최초의 올림픽 메달과 올림픽 금메달을 안겨준 영웅으로 기억된다. 그녀의 남매인 안드레아스 벤첼과 함께 벤첼 가족은 리히텐슈타인이 동계 올림픽에서 획득한 총 10개의 메달 중 6개를 차지했다. 또한 빌리 프롬멜트와 파울 프롬멜트 형제가 2개의 메달을 추가하며, 두 가족이 리히텐슈타인 올림픽 메달의 대부분을 책임졌다. 이는 리히텐슈타인 스키 스포츠의 강점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이다. 벤첼과 바이라터 부부는 스포츠 마케팅 에이전시를 운영하며 스포츠 산업에 기여하고 있으며, 딸 티나 바이라터가 스키 선수로서 성공을 이어가며 가족의 스포츠 유산을 계승하고 있다.

6. 함께 보기
- FIS 알파인 스키 월드컵 여자 우승자 목록
- 올림픽 메달리스트 가족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