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및 초기 경력
필립 오도널은 1972년 3월 25일 스코틀랜드 노스래너크셔의 벨스힐에서 태어났다. 그의 고향은 머더웰 FC의 홈구장인 피어 파크에서 불과 몇 마일 떨어진 곳이었다. 그는 지역 팀에서 축구 경력을 시작했다.
1.1. 머더웰 (1차 활동)
오도널은 1990-91 시즌 세인트 미렌과의 경기에서 머더웰 FC 1군 데뷔전을 치렀고, 곧 주전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그해 스코티시컵 결승전에서 던디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4대3 승리를 거둘 때 다이빙 헤딩골을 넣어 팀의 2대1 리드를 이끌며 우승 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해설자 앨리 맥코이스트는 그를 "사자처럼 용감하다"고 묘사했다. 이 우승으로 머더웰은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유럽 대회에 진출하게 되었고, 오도널은 폴란드 팀 GKS 카토비체와의 경기에서 구단 최연소 유럽 대회 출전 선수가 되었다. 그는 1991-92 시즌과 1993-94 시즌에 PFA 스코틀랜드 올해의 영플레이어상을 수상했다. 1993년 9월 8일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데이비드 보먼과 교체되어 15분간 뛰면서 스코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유일한 A매치 출장을 기록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그는 빅클럽들의 관심을 받았고, 1994년 9월 175.00 만 GBP의 이적료로 셀틱으로 이적했다. 이는 2020년 데이비드 턴불이 이적하기 전까지 머더웰이 받은 최고 이적료 기록이었다. 그는 1990년부터 1994년까지 4년간 머더웰에서 공식전 144경기 17골을 기록하며 1993-94 시즌 스코티시 프리미어십 3위에도 공헌했다.
2. 클럽 경력
필립 오도널은 선수 생활 동안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여러 클럽에서 활약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2.1. 셀틱
오도널은 1994년 9월 셀틱으로 이적하여 파틱 시슬과의 데뷔전에서 두 골을 기록했다. 그는 1995년 스코티시컵에서 또 한 번 우승을 차지했고, 1997-98 시즌에는 클럽과 함께 유일한 리그 우승 메달을 획득했다. 그러나 셀틱 시절 부상은 큰 문제로 작용하여 그의 출장 기록은 제한적이었다. 1999년, 오도널은 퍼거스 맥캔 셀틱 회장과의 새 계약 조건에 합의하지 못한 여러 선수 중 한 명이었고, 결국 팀을 떠나게 되었다. 그는 1994-95 시즌부터 1998-99 시즌까지 셀틱에서 공식전 121경기 20골을 기록하며 1998-99 시즌 스코티시컵 준우승에도 기여했다.
2.2. 셰필드 웬즈데이
셀틱을 자유 이적으로 떠난 후, 오도널은 1999년 후반에 셰필드 웬즈데이와 계약했다. 1999년 9월 11일 에버턴과의 경기에서 데뷔했지만, 부상이 계속해서 그의 선수 생활을 방해했다. 그는 프리미어리그에서 강등된 그의 첫 시즌에 단 한 경기에 출장했다. 셰필드 웬즈데이에서 4년간 총 20경기 출장에 그쳤으며, 이 기간 동안 리그컵 8강전 왓포드와의 경기에서 한 골을 기록했다. 2003년, 팀이 2부 디비전으로 강등될 때 자유 이적으로 풀려났다.
2.3. 머더웰 (2차 활동)
오도널은 스코틀랜드로 돌아와 친정팀 머더웰에서 다시 훈련할 기회를 얻었다. 머더웰은 2004년 1월 그와 재계약했고, 이로 인해 그는 조카인 데이비드 클락슨과 함께 뛸 기회를 얻었으며, "필 삼촌"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또한 세인트 미렌의 미드필더 스티븐 오도널과 역시 머더웰에서 뛰었던 브라이언 뎀시의 삼촌이기도 했다. 머더웰에서의 두 번째 활동 기간 중, 그는 2005년 스코티시 리그컵 결승전에 다시 한번 출전했지만, 레인저스에게 5대1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 다음 시즌에는 스코트 리치의 뒤를 이어 팀의 주장이 되었다. 그는 2007-08 시즌 중반까지 89경기 10골을 기록하며 2004-05년 스코티시 리그컵 준우승과 2005-06년 스코티시 리그컵 4강 진출에 기여했다.
3. 사망
필립 오도널은 경기 중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망하여 축구계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3.1. 사망 경위
2007년 12월 29일, 오도널은 머더웰의 홈구장인 피어 파크에서 던디 유나이티드와의 스코티시 프리미어리그 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5대2로 앞서가던 후반 33분, 마크 피츠패트릭과 교체되어 경기장을 나서려던 순간 갑자기 쓰러졌다. 그는 약 5분간 피치 위에서 머더웰과 던디 유나이티드의 팀 닥터들에게 즉각적인 의료 조치를 받았으며, 이후 위쇼 종합병원으로 구급차에 실려 이송되었다. 하지만 그날 17시 18분, 그는 사망 판정을 받았다. 향년 35세였다. 2008년 1월 1일 실시된 부검 결과, 오도널은 좌심실 기능 부전으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3.2. 장례 및 개인 생활
필립 오도널의 장례식은 2008년 1월 4일 사우스래너크셔 해밀턴에 있는 세인트 메리 교회에서 거행되었으며, 이후 그는 해밀턴의 벤트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는 아내 아일린과 네 명의 자녀를 남겼다. 자녀들은 각각 메건(12세), 크리스토퍼(10세), 올리비아(6세), 뤽(4세)이었다.
4. 추모 및 유산
필립 오도널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축구계와 대중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그의 기억을 기리기 위한 광범위한 추모와 지속적인 활동으로 이어졌다.
4.1. 대중 및 클럽의 추모
잭 맥코넬 전 스코틀랜드 행정수반이자 머더웰 및 위쇼 지역 의원도 추모에 동참하며 오도널을 "위대한 프로페셔널"이라고 칭송했다. 머더웰과 다른 팀 팬들은 피어 파크 입구에 꽃과 스카프, 유니폼 등 추모 물품을 바쳤다. 머더웰의 다음 수요일 히버니언과의 스코티시 프리미어리그 경기와 그 다음 일요일 셀틱과의 홈 경기는 추모의 뜻에서 연기되었다. 스코티시 프리미어리그 렉스 골드 회장은 "필의 가족이 2008년 1월 6일로 예정된 머더웰 대 셀틱 경기를 연기해 주기를 바란다는 점을 이해한다. 양 구단 모두 이 요청을 기꺼이 수락했고, 우리는 경기를 취소했다"고 밝혔다. 12월 31일, SPL은 2008년 1월 2일로 예정된 올드 펌 (셀틱 대 레인저스) 경기도 오도널의 전 소속팀 셀틱의 요청으로 연기되었고, 레인저스도 이에 동의했다. 이로 인한 경기 연기는 2007-08 시즌 후반기 경기 일정에 혼잡을 초래하여 2008 UEFA컵 결승전에 진출한 레인저스의 일정 때문에 2007-08 스코티시 프리미어리그 시즌이 연장되기도 했다.
2007년 12월 30일 열린 프리미어리그의 더비 카운티 대 블랙번 로버스, 맨체스터 시티 대 리버풀 경기 선수들은 그의 명예를 기리며 검은 완장을 착용했다. 셰필드 웬즈데이의 헐 시티 원정 경기와 프레스턴 노스 엔드와의 홈 경기 전에는 전 소속 선수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1분간의 박수가 이어졌고, 힐스버러의 깃발은 조기로 게양되었다. 새해 프로그램에 포함된 모든 프리미어리그 경기는 오도널을 추모하며 1분간의 박수 또는 묵념이 선행되었다. 전 머더웰 선수였던 제임스 맥파든은 에버턴 소속으로 미들즈브러와의 경기에서 2대0 승리에 기여한 자신의 골을 오도널에게 바치며, 엄숙하게 자신의 검은 완장을 가리킨 후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하지만 노팅엄 포레스트는 새해 첫날 허더스필드 타운과의 풋볼 리그 1 경기 전 추모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스코틀랜드 국가대표 출신이자 36번의 A매치 출장 경력이 있는 노팅엄 포레스트의 감독 콜린 칼더우드는 "스코틀랜드의 한 선수가 죽은 것이 콜롬비아의 한 선수가 죽은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설명했다. 칼더우드는 이후 2010년 11월 SPL의 히버니언 감독으로 임명된 후 이 발언으로 인해 야기된 모든 불쾌감에 대해 사과했다.
전 세계에서 수천 건의 온라인 추모 글이 올라왔다. 머더웰 구단은 대한민국과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먼 나라의 팬들로부터 수백 통의 추모 편지를 받았으며, 2007년 8월 사망한 자신들의 선수 안토니오 푸에르타와 유사한 비극에 비유하며 세비야 FC로부터도 많은 감동적인 메시지를 받았다. 세비야의 단장 몬치는 "이것은 끔찍한 소식이다. 지금 나의 생각은 필의 가족과 머더웰의 모든 이들에게 향해 있다. 불행히도 필 오도널의 죽음으로 머더웰은 우리와 비슷한 비극을 겪었다. 안토니오 푸에르타는 시즌 초에 사망했고, 나는 그 경험이 얼마나 끔찍한지 안다. 세비야는 이 비극적인 상실의 고통과 슬픔을 치유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어떤 방식으로든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4.2. 기념물 및 지속적인 추모 활동


머더웰 구단은 피어 파크의 메인 스탠드를 "필 오도널 스탠드"로 명명하여 영구적인 추모를 표명했다. 그의 팀 동료들은 2007-08 시즌 남은 기간 동안 그들의 유니폼에 오도널의 사인을 수놓아 개인적인 추모를 표현했다. 2011년 11월에는 그의 이름이 붙은 스탠드 옆에 영구적인 기념물이 세워졌다.
2008년 5월 25일, 오도널을 추모하며 다양한 자선 단체에 수익금을 기부하기 위한 자선 경기가 셀틱 파크에서 개최되었다. 이 경기에는 셀틱의 1998년 리그 우승 스쿼드와 머더웰의 1991년 스코티시컵 우승팀 출신 선수들이 대결했다. 데이비드 클락슨과 제임스 맥파든과 같은 다른 선수들도 경기에 참여했다. 헨릭 라르손은 이 경기를 "슬픈 자리이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위한 일종의 축하"라고 묘사했다. 경기는 6만 명의 관중 앞에서 5대1로 종료되었다.
2008년 12월 29일부터 오도널을 기리기 위한 연례 자선 걷기 대회가 시작되었다. 이 걷기 대회는 오도널이 뛰었던 두 클럽의 홈구장인 피어 파크에서 시작하여 셀틱 파크에서 끝난다. 이 걷기 대회를 통해 모인 기금은 영국심장재단과 메리스 밀스와 같은 자선 단체에 직접 전달된다. 2010년 12월, 필과 함께 뛰었던 여러 스코틀랜드 축구 선수들은 필을 추모하고 영국심장재단을 위해 10.00 만 GBP를 모금하기 위해 에콰도르의 코토팍시산을 오르기로 했다. 오도널이 사망한 2007년 이후, 그의 조카 데이비드 클락슨만이 2009년 팀을 떠나기 전까지 등번호 10번을 착용했다. 이후 이 등번호는 공식적으로 은퇴된 것은 아니지만, 어떤 후속 선수에게도 부여되지 않고 있다.
5. 수상 및 영예
필립 오도널은 선수 생활 동안 클럽 및 개인적으로 여러 중요한 수상과 영예를 얻었다.
5.1. 클럽 수상
클럽 | 대회 | 결과 |
---|---|---|
머더웰 | 스코티시컵 | 우승 (1990-91) |
머더웰 | 스코티시 프리미어십 | 3위 (1993-94) |
머더웰 | 스코티시 리그컵 | 준우승 (2004-05) |
머더웰 | 스코티시 리그컵 | 4강 (2005-06) |
셀틱 | 스코티시 프리미어 디비전 | 우승 (1997-98) |
셀틱 | 스코티시컵 | 우승 (1994-95) |
셀틱 | 스코티시컵 | 준우승 (1998-99) |
5.2. 개인 수상
- PFA 스코틀랜드 올해의 영플레이어상: 1991-92, 1993-94
6. 경력 통계
필립 오도널의 클럽 및 국가대표팀 경기 출장 및 득점에 대한 상세 통계는 다음과 같다.
6.1. 클럽 통계
클럽 | 시즌 | 리그 | 국내컵 (스코티시컵, FA컵 포함) | 리그컵 (스코티시 리그컵, 풋볼 리그컵 포함) | 기타 (UEFA 컵 위너스컵, UEFA컵 포함) | 총계 | ||||||
---|---|---|---|---|---|---|---|---|---|---|---|---|
디비전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
머더웰 | 1990-91 | 프리미어 디비전 | 12 | 0 | 5 | 1 | 0 | 0 | - | 17 | 1 | |
1991-92 | 프리미어 디비전 | 42 | 4 | 3 | 1 | 1 | 0 | 2 | 0 | 48 | 5 | |
1992-93 | 프리미어 디비전 | 32 | 4 | 0 | 0 | 1 | 0 | - | 33 | 4 | ||
1993-94 | 프리미어 디비전 | 35 | 7 | 3 | 0 | 2 | 0 | - | 40 | 7 | ||
1994-95 | 프리미어 디비전 | 3 | 0 | - | 2 | 0 | 1 | 0 | 6 | 0 | ||
합계 | 124 | 15 | 11 | 2 | 6 | 0 | 3 | 0 | 144 | 17 | ||
셀틱 | 1994-95 | 프리미어 디비전 | 27 | 6 | 5 | 1 | - | - | 32 | 7 | ||
1995-96 | 프리미어 디비전 | 15 | 3 | 1 | 0 | 2 | 0 | 2 | 0 | 20 | 3 | |
1996-97 | 프리미어 디비전 | 19 | 2 | 6 | 2 | 0 | 0 | 1 | 0 | 26 | 4 | |
1997-98 | 프리미어 디비전 | 14 | 2 | 1 | 0 | 4 | 0 | 2 | 0 | 21 | 2 | |
1998-99 | 프리미어리그 | 15 | 2 | 3 | 1 | 1 | 0 | 3 | 1 | 22 | 4 | |
합계 | 90 | 15 | 16 | 4 | 7 | 0 | 8 | 1 | 121 | 20 | ||
셰필드 웬즈데이 | 1999-2000 | 프리미어리그 | 1 | 0 | 0 | 0 | 0 | 0 | - | 1 | 0 | |
2000-01 | 1부 디비전 | 11 | 0 | 0 | 0 | 1 | 0 | - | 12 | 0 | ||
2001-02 | 1부 디비전 | 8 | 0 | 0 | 0 | 4 | 1 | - | 12 | 1 | ||
2002-03 | 1부 디비전 | 0 | 0 | 0 | 0 | 0 | 0 | - | 0 | 0 | ||
합계 | 20 | 0 | 0 | 0 | 5 | 1 | 0 | 0 | 25 | 1 | ||
머더웰 | 2003-04 | 프리미어리그 | 9 | 0 | 3 | 0 | - | - | 12 | 0 | ||
2004-05 | 프리미어리그 | 18 | 3 | 0 | 0 | 5 | 2 | - | 23 | 5 | ||
2005-06 | 프리미어리그 | 29 | 2 | 1 | 0 | 2 | 0 | - | 32 | 2 | ||
2006-07 | 프리미어리그 | 3 | 1 | 0 | 0 | 0 | 0 | - | 3 | 1 | ||
2007-08 | 프리미어리그 | 18 | 2 | 0 | 0 | 1 | 0 | - | 19 | 2 | ||
합계 | 77 | 8 | 4 | 0 | 8 | 2 | - | 89 | 10 | |||
커리어 총계 | 311 | 38 | 31 | 6 | 26 | 3 | 11 | 1 | 379 | 48 |
6.2. 국가대표 통계
국가대표팀 | 연도 | 출장 | 득점 |
---|---|---|---|
스코틀랜드 | 1993 | 1 | 0 |
총계 | 1 |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