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배경
1.1. 출생 및 유소년 시절
프란체스코 안토니올리는 1969년 9월 14일,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주 몬차에서 태어났다. 그는 유소년 시절을 밀란의 유소년부에서 보내며 선수로서 성장했다.
2. 클럽 경력
안토니올리는 몬차에서 프로 데뷔를 한 후, 여러 이탈리아 구단에서 활약하며 많은 우승을 경험했다.
2.1. 초기 경력 (몬차, 임대)
안토니올리는 1986년, 16세의 나이에 몬차 소속으로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그의 첫 프로 경기는 코파 이탈리아에서 유벤투스를 상대로 0-1로 패한 경기였다. 몬차에서 그는 카시라기, 코스타쿠르타와 함께 뛰었다.
1990년, 그는 세바스티아노 로시가 밀란으로 이적하면서 체세나로 임대되었으나, 당시 감독이었던 마르첼로 리피의 구상에서 벗어나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후 모데나로 다시 임대되어 1990-91 시즌 동안 좋은 활약을 펼쳤다. 1993-94 시즌에는 피사로 임대되었고, 1994-95 시즌에는 레지아나에서 활동했다.
2.2. AC 밀란
1988-89 시즌, 19세가 되기 직전인 안토니올리는 밀란으로 이적했다. 그는 당시 다비데 피나토가 제2 골키퍼였고, 자신은 제3 골키퍼로 분류되었다. 1988년 9월 3일, 1988-89 시즌 코파 이탈리아에서 라치오와의 홈 경기에서 2-1로 승리하며 밀란 데뷔전을 치렀다.
1992년 4월 18일, 그는 인테르나치오날레와의 세리에 A 경기에서 1-0 승리를 거두며 세리에 A 데뷔를 했다. 몇 차례 인상적인 활약을 보이면서 1992-93 시즌 초반에는 밀란의 주전으로 발탁되었다. 이 시즌에 파르마를 2-1로 꺾고 1992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밀라노 더비에서 루이지 데 아고스티니에게 쉬운 골을 내주는 등 잦은 실수를 범하며 주전 자리를 잃었고, 세바스티아노 로시가 다시 주전 수문장으로 복귀했다. 1992년 11월 29일, 유벤투스와의 세리에 A 원정 경기에서 1-0으로 승리한 경기가 그의 밀란 마지막 출전 경기였으며, 이 경기 전반전에 부상으로 로시와 교체되었고, 로시가 잔루카 비알리의 페널티 킥을 막아내며 팀 승리에 기여하면서 주전 입지를 굳혔다. 밀란은 그 시즌 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며,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도 진출했다. 안토니올리는 밀란 소속으로 총 27경기에 출전했다.
2.3. 볼로냐 FC 1909 (첫 번째 임기)
1995년, 안토니올리는 볼로냐로 이적하며 팀의 부동의 주전 골키퍼로 자리매김했다. (다만 1997-98 시즌에는 조르조 스테르켈레의 백업이었다.) 그는 즉시 볼로냐가 1995-96 세리에 B에서 우승하고 세리에 A로 승격하는 데 기여했다. 이후 볼로냐는 1998 UEFA 인터토토컵에서 우승했으며, 1998-99 UEFA컵과 같은 시즌 코파 이탈리아에서 나란히 준결승에 진출했다.
2.4. AS 로마
1999년, 안토니올리는 로마로 이적했으며, 이적료는 100.00 억 ITL에 달했다. 로마에서 그는 파비오 카펠로 감독과 재회했으며, 주전 골키퍼로서 2000-01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끌며 팀에 "스쿠데토"를 안겨주었다. 또한 2001년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에서도 우승을 차지했으며, 2003년에는 코파 이탈리아 결승에 진출했다.
2.5. UC 삼프도리아
2003년 여름, 안토니올리는 자유이적으로 삼프도리아에 합류했다. 그러나 2006-07 시즌에 루카 카스텔라치가 골키퍼로 부상하면서, 안토니올리는 삼프도리아를 떠났다.
2.6. 볼로냐 FC 1909 (두 번째 임기)
2006년, 안토니올리는 자유이적으로 친정 구단 볼로냐로 돌아왔다. 그는 2008년 중반, 볼로냐가 2007-08 시즌에 다시 세리에 A로 승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08-09 시즌이 끝난 후, 그는 방출되었고 에밀리아노 비비아노가 그의 자리를 대체했다.
2.7. AC 체세나
2009년 7월, 안토니올리는 세리에 B의 승격팀인 체세나에 입단했다. 그는 기존의 주전 골키퍼인 니콜라 라발리아를 하부 리그로 보내고, 미켈레 타르디올리를 제치며 체세나의 주전 골키퍼가 되었다. 그는 2010년 체세나의 2년 연속 승격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41세의 나이로 2010-11 시즌에 다시 세리에 A 무대에서 뛰게 되었다. 팀이 리그 15위로 강등 싸움에서 살아남으면서, 그는 1년 연장 계약을 제안받았다. 하지만 2011-12 시즌 이후 체세나가 세리에 B로 강등되자, 그는 현역에서 은퇴했다. 안토니올리는 당시 세리에 A에서 뛸 수 있는 최고령 선수였다.
3. 국가대표팀 경력
안토니올리는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의 연령별 팀과 성인 대표팀에 모두 이름을 올렸다.
3.1. 이탈리아 U-21 및 올림픽 대표팀
안토니올리는 이탈리아 U-21 국가대표팀의 주전 골키퍼로 1992년 UEFA 유럽 U-21 선수권 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또한 그는 이탈리아 선수단 일원으로 1992년 하계 올림픽에도 참가하여 6경기에 출전했다.
3.2. 이탈리아 성인 대표팀
안토니올리는 이탈리아 성인 국가대표팀 경기에 공식적으로 출전한 기록은 없지만, UEFA 유로 2000에 잔루이지 부폰과 프란체스코 톨도에 이어 세 번째 골키퍼로 발탁되어 준우승을 차지한 팀의 일원이었다. 대회 시작 며칠 전, 부폰이 친선 경기에서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안토니올리는 두 번째 골키퍼로 올라섰고, 크리스티안 아비아티가 부폰을 대신하여 추가 소집되었다.
4. 경기 스타일
안토니올리는 경험이 풍부하고 권위 있는 존재감을 가진 골키퍼였다. 젊은 시절에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재능 있고 유망한 골키퍼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으나, 일부 평론가들은 여러 차례의 부상과 그의 성격 문제로 인해 잠재력을 완전히 발휘하지 못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는 우아한 경기 스타일, 뛰어난 선방 능력, 반사 신경, 그리고 훌륭한 골키퍼 기술을 겸비하여 화려하고 결정적이며 스타일리시한 선방을 해낼 수 있었다. 그의 골키핑 스타일은 주로 효율적이었으며, 그의 롤 모델인 조반니 갈리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페널티 킥 선방 능력으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1992년부터 2012년까지 416번의 경기에서 14번의 페널티 킥을 막아냈다. 이는 세리에 A 역사상 스테파노 소렌티노와 함께 공동 7번째로 많은 기록이다.
5. 지도자 경력
2012년 현역 은퇴 후, 프란체스코 안토니올리는 축구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2013-14 시즌부터 체세나의 골키퍼 코치를 맡았으며, 2018-2019 시즌에는 체세나 FC의 보조 코치를 역임했다.
6. 수상 경력
안토니올리는 클럽 경력과 국가대표팀 경력에서 다양한 우승과 개인적인 영예를 얻었다.
; AC 밀란
- 세리에 A: 1991-92, 1992-93
- 유러피언컵: 1988-89, 1989-90
- 인터콘티넨털컵: 1989, 1990
- 유러피언 슈퍼컵: 1989, 1990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1988, 1992, 1993
; 볼로냐 FC 1909
- 세리에 B: 1995-96
- UEFA 인터토토컵: 1998
; AS 로마
- 세리에 A: 2000-01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001
;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 유럽 선수권 대회 준우승: 2000
; 서훈
- 기사장: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장 기사장 (200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