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교육
폴라 래드클리프의 초기 생애와 교육은 그녀의 육상 경력의 토대가 되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가족의 영향을 받아 달리기를 시작했으며, 학업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1.1. 어린 시절과 학업
폴라 래드클리프는 1973년 12월 17일 잉글랜드 체셔주 다벤햄에서 피터와 팻 래드클리프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가족은 곧 바턴 근처로 이사했고, 그녀는 리틀 레이 초등학교에 다녔다. 비록 어린 시절부터 천식과 빈혈증을 앓았지만, 가족은 나중에 킹즐리로 이사했다.
래드클리프가 12세 되던 해, 가족은 베드퍼드셔주 오클리로 이사했다. 래드클리프는 10세 때 런던 마라톤에서 잉그리드 크리스티안센이 달리는 모습을 보며 운동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래드클리프는 섄브룩 어퍼 스쿨 & 커뮤니티 칼리지를 졸업했다. 이후 러프버러 대학교에 진학하여 프랑스어, 독일어, 경제학을 공부했으며, 현대 유럽 연구 분야에서 우등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1.2. 초기 육상 경력 형성
폴라 래드클리프는 7세 때 달리기를 시작하며 프로드샴 육상 클럽에 가입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열정적인 아마추어 마라톤 선수였으며, 어머니 또한 여자 크로스 컨트리 팀을 관리하며 그녀를 지원했다. 래드클리프는 12세 때 베드퍼드 & 카운티 육상 클럽으로 옮겨 코치 알렉스 스탠턴의 지도를 받았다. 이 클럽은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스탠턴 코치 덕분에 여성 및 소녀 선수 부문에서 전국적으로 강력한 팀 중 하나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녀의 첫 전국 대회는 1986년 12세 때 참가한 잉글랜드 학교 크로스 컨트리 선수권 대회로, 약 600명 중 299위를 기록했다. 이듬해 같은 대회에서는 4위를 차지하며 잠재력을 보였다. 1991년에는 잉글랜드 학교 1500m 타이틀을 획득했다.
1992년 세계 크로스 컨트리 선수권 대회 주니어 부문에서 왕준샤와 게테 와미를 제치고 우승했으며, 몇 주 전 겪었던 심한 천식 발작에서 회복한 후의 성과였다. 이후 1992년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 3000m에서는 4위를 차지했다. 1993년 초 더럼에서 열린 첫 성인 경기에서 데랄투 툴루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1993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는 7위에 올랐다. 1994년에는 더럼과 말러스크에서 열린 국제 육상 경기 연맹 월드 크로스 챌린지에서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시즌을 시작했다. 그러나 발 부상으로 1994년 세계 크로스 컨트리 선수권 대회에 불참했으며, 처음에는 오진을 받아 육상을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
1995년 패니 블랑커스-코엔 대회 5000m에서는 영국 여자 선수 중 세 번째로 빠른 기록을 세웠다. 같은 해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5000m 결승에 진출하여 5위를 기록했다. 1996년 시큐리코어 대회 5000m에서는 2위를 차지했으며,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5000m에서는 5위를 기록했다. 1996년 말에는 더럼에서 열린 크로스 컨트리 대회에서 3위를 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2. 육상 경력 주요 활동
폴라 래드클리프는 트랙, 크로스 컨트리, 마라톤 등 다양한 종목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며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그녀는 특히 2000년대 초반 마라톤으로 전향한 후 세계 기록을 연이어 수립하며 역대 최고의 여성 마라토너 중 한 명으로 평가받게 된다.
2.1. 트랙 및 필드 성과
1997년 세계 크로스 컨트리 선수권 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게테 와미와 데랄투 툴루 사이에서 선전했다. 1997년 피프스 애비뉴 마일 타이틀을 방어한 최초의 여성 선수가 되었다. 1997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5000m에서는 4위를 기록했다. 1998년 세계 크로스 컨트리 선수권 대회에서도 은메달을 차지했다. 발모럴 성 주변 도로에서 열린 5마일 경기에서는 새로운 세계 최고 기록을 세웠다. 유럽컵에서는 팀의 주장을 맡아 5000m에서 우승하고 1500m에서 2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같은 해 유럽 육상 선수권 대회 10000m에서는 5위에 그쳤다. 1999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10000m에서는 와미에 이어 은메달을 획득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10000m 예선에서 6위를 기록하며 결승에 진출했고, 결승에서는 영국 신기록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4위에 그쳐 메달을 놓친 것에 대해 크게 실망했다. 같은 해 5마일 경주에서 우승했고, 그레이트 노스 런 하프 마라톤에서는 67분 7초로 유럽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멕시코에서 열린 세계 하프 마라톤 선수권 대회에서는 경기 중 코 테이프가 떨어져 공황 상태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첫 세계 타이틀을 획득했다. 2001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10000m에서는 다시 한번 4위에 머물렀다. 2002년 맨체스터에서 열린 영연방 경기 대회 5000m에서는 14분 31초 42를 기록하며 세계 기록에 근접한 시간으로 우승했다. 같은 해 뮌헨에서 열린 유럽 선수권 대회 10000m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2.2. 크로스 컨트리 성공
래드클리프는 크로스 컨트리 종목에서 독보적인 기량을 선보였다.
- 1992년 세계 크로스 컨트리 선수권 대회 (보스턴, 미국): 주니어 우승
- 1997년 세계 크로스 컨트리 선수권 대회 (토리노, 이탈리아): 은메달
- 1998년 세계 크로스 컨트리 선수권 대회 (마라케시, 모로코): 은메달
- 1998년 유럽 크로스 컨트리 선수권 대회 (페라라, 이탈리아): 개인전 우승 (첫 성인 타이틀)
- 1999년 세계 크로스 컨트리 선수권 대회 (벨파스트, 북아일랜드): 동메달
- 2001년 세계 크로스 컨트리 선수권 대회 (오스텐더, 벨기에): 롱 레이스 우승, 쇼트 레이스 은메달
- 2002년 세계 크로스 컨트리 선수권 대회 (더블린, 아일랜드): 롱 레이스 우승 (2연패)
- 2003년 유럽 크로스 컨트리 선수권 대회 (에든버러, 스코틀랜드): 개인전 및 단체전 우승 (대회 10년 역사상 최초로 2회 우승을 달성한 여성 선수)
2.3. 마라톤 경력

2002년 래드클리프는 마라톤으로 전향했다.
- 2002년 런던 마라톤 데뷔**: 2002년 4월 14일, 그녀는 데뷔전인 런던 마라톤에서 2시간 18분 55초를 기록하며 우승했다. 이 기록은 당시 여자 단독 레이스에서 세계 최고 기록이었으며, 캐서린 은데레바의 세계 기록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빠른 기록이었다.
- 2002년 시카고 마라톤 세계 기록 수립**: 같은 해 10월 13일 시카고 마라톤에서 2시간 17분 18초의 기록으로 우승하며 기존 세계 기록을 1분 30초 이상 단축했다. 이 기록은 그녀의 마라톤 2연승을 의미했다.
- 2003년 런던 마라톤 세계 기록 경신**: 이듬해 2003년 4월 13일 런던 마라톤에서 남자 페이스메이커의 도움을 받아 2시간 15분 25초라는 놀라운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이는 그녀의 마라톤 첫 3연승을 의미했다.
- 2004년 뉴욕 시티 마라톤 우승**: 2004년 11월 7일 아테네 올림픽에서의 아쉬움을 씻고 뉴욕 시티 마라톤에서 2시간 23분 10초로 우승하며 수잔 체프케메이를 제쳤다.
- 2005년 런던 마라톤 우승 및 해프닝**: 2005년 4월, 런던 마라톤에서 2시간 17분 42초로 3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이 레이스는 그녀가 복통으로 인해 잠시 멈춰 도로변에서 용변을 보는 해프닝으로도 기억된다. 그녀는 경기 후 사과하며 복통으로 인한 불가피한 상황이었음을 설명했다. 이 사건은 2006년 영국에서 '역사상 가장 잊을 수 없는 달리기 순간'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 2005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우승**: 2005년 8월 14일 헬싱키에서 열린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2시간 20분 57초의 대회 신기록으로 우승하며 영국에 유일한 금메달을 안겨주었다. 이는 그녀의 첫 세계 챔피언 타이틀이었다.
- 2007년 뉴욕 시티 마라톤 복귀 우승**: 2006년 부상과 출산으로 공백기를 가진 후, 2007년 11월 4일 뉴욕 시티 마라톤에 복귀하여 2시간 23분 9초로 우승했다.
- 2008년 뉴욕 시티 마라톤 우승**: 2008년 11월 2일 뉴욕 시티 마라톤에서 2시간 23분 56초로 우승하며 이 대회 3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 2009년 뉴욕 시티 마라톤 4위**: 2009년 11월 1일 뉴욕 시티 마라톤에 3년 연속 출전했으나, 무릎 문제로 인해 2시간 29분 27초로 4위에 머물러 3연패에는 실패했다.
- 2011년 베를린 마라톤 3위**: 두 번째 자녀 출산 후 19개월 만인 2011년 9월 25일 베를린 마라톤에 출전하여 2시간 23분 46초로 3위를 기록했다. 비록 우승은 아니었지만 런던 올림픽 출전 자격을 획득하며 성공적인 복귀를 알렸다.
- 2015년 런던 마라톤 은퇴**: 2015년 4월 26일, 3년 반 만의 풀 마라톤 출전인 런던 마라톤에 일반 참가 자격으로 출전하여 2시간 36분 55초로 완주하며 현역에서 은퇴했다.
2.4. 세계 기록 및 주요 우승
폴라 래드클리프는 마라톤과 10km 로드 레이스에서 세계 기록을 수립하며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였다.
- 마라톤 세계 기록**:
- 2시간 17분 18초**: 2002년 10월 13일 시카고 마라톤에서 수립. 당시 세계 최고 기록.
- 2시간 15분 25초**: 2003년 4월 13일 런던 마라톤에서 수립. 이 기록은 브리짓 코스게이가 2019년에 경신하기 전까지 16년간 깨지지 않았다.
- 10km 로드 세계 기록**: 30분 21초 (2003년 2월 23일, 푸에르토리코 산후안에서 열린 세계 베스트 10K)
- 주요 마라톤 대회 우승 기록**:
- 런던 마라톤: 2002년, 2003년, 2005년
- 시카고 마라톤: 2002년
- 뉴욕 시티 마라톤: 2004년, 2007년, 2008년
-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마라톤: 2005년 헬싱키
2.5. 올림픽 참가
폴라 래드클리프는 선수 경력 동안 네 번의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아쉽게도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다.
-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5000m에 출전하여 5위를 기록했다.
- 2000년 시드니 올림픽**: 10000m에 출전하여 영국 신기록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4위에 머물러 메달 획득에 실패한 것에 대해 큰 실망감을 표했다.
-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마라톤과 10000m 두 종목에서 금메달 후보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올림픽을 2주 앞두고 다리 부상을 입었고, 과도한 소염제 복용이 위장에 악영향을 미쳐 음식 흡수를 방해했다. 여자 마라톤에서는 25km 지점에서 노구치 미즈키의 스퍼트를 따라가지 못하며 선두권에서 밀려났고, 36km 지점에서 결국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며 중도 포기했다. 5일 후 강행한 10000m 경기에서도 마라톤의 여파로 부진했고, 8바퀴를 남기고 또다시 기권했다. 래드클리프는 "마라톤에서 힘든 구간을 지나지만, 그 정도로 나빴던 적은 없었다"며 "경기를 끝내지 못한 것은 처음이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유를 필사적으로 찾고 있다"고 당시의 심정을 밝혔다. 당시 아테네의 최고 38 °C에 달하는 매우 높은 기온도 선수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영국의 언론은 그녀의 기권에 대해 지지와 비판이 엇갈렸으며, 일부는 완주하지 않고 '포기했다'며 비난하기도 했다.
-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했으나, 경기 도중 다리에 경련이 발생해 멈춰 서서 스트레칭을 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스를 재개하여 2시간 32분 38초의 기록으로 23위를 차지하며 완주했다.
2.6. 후기 경력 및 부상
2006년 시즌 동안 부상으로 인해 공백기를 가졌고, 7월에는 첫 아이를 임신했다고 발표했다. 2007년에는 허리 스트레스 골절로 인해 복귀가 더욱 지연되었다. 그녀는 재활을 위해 2007년 세계 마라톤 타이틀 방어를 포기했으나, 이후 두 번의 올림픽에 참가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2007년 9월 30일 그레이트 노스 런에 참가하며 약 2년 만에 복귀전을 치렀고, 미국의 카라 가우처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2008년 런던 마라톤에는 발 부상으로 인해 출전하지 못했다. 런던 마라톤 직후, 그녀는 엉덩이 부상에 시달리고 있음이 밝혀졌고, 초기에는 근육 문제로 여겨졌으나 검사 결과 대퇴골의 피로 골절이 확인되었다. 5월에는 왼쪽 다리가 부러지기도 했다.
이러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래드클리프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출전을 위한 체력 수준을 회복했으나, 마라톤 경기 중 경련으로 인해 잠시 멈춰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주하여 23위를 기록했다. 2008년 그레이트 사우스 런에서는 51분 11초로 우승했으며, 소니아 오설리번의 코스 기록에 11초 뒤졌다.
2009년 런던 마라톤에도 발가락 골절로 인해 출전하지 못했다. 같은 해 3월, 의사들이 그녀의 다른 부상들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했던 무지외반증 수술을 받았다. 그녀는 약 10개월 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했지만, 2009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영국 대표팀에 합류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뉴욕 시티 하프 마라톤을 자신의 컨디션 점검 경기로 삼았고, 1시간 9분 45초로 우승하며 코스 기록에 2초 뒤졌다. 그러나 이후 그녀는 컨디션 불량을 이유로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기권했고, 편도선염으로 인해 2009년 세계 하프 마라톤 선수권 대회에도 불참했다. 2009년 뉴욕 시티 마라톤에 다시 출전했으나, 무릎 문제로 인해 4위에 그쳤다.
두 번째 자녀 출산으로 인한 19개월간의 공백기 이후, 그녀는 부파 런던 10K에 출전하여 우승자 조 페이비에 55초 뒤진 3위를 기록했다. 래드클리프는 이 성과를 "재앙"이라고 표현하며 허리 디스크 파열로 고통받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녀는 2011년 베를린 마라톤을 올림픽 출전 자격 획득을 위한 복귀 무대로 삼았다. 그녀는 2시간 23분 46초로 3위를 기록하며 올림픽 기준 기록을 충족했지만, "시간이나 순위 모두 만족스럽지 않다. 우승을 목표로 여기에 왔다"며 불만을 표했다. 2012년 빈 시티 하프 마라톤을 통해 자신의 컨디션을 가늠하려 했고, 이 레이스는 그녀와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의 대결로 설정되었다(래드클리프는 두 선수의 개인 최고 기록 차이인 7분 52초의 헤드 스타트를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고, 에티오피아 선수에게 쉽게 패배하며 72분 3초를 기록했다. 래드클리프는 발 부상으로 인해 2012년 런던 올림픽 출전을 포기했다.2.7. 은퇴
2015년 1월, 래드클리프는 2015년 4월 26일에 열리는 런던 마라톤에 참가하는 것을 끝으로 마라톤 선수 경력을 마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녀는 이 대회에서 2시간 36분 55초를 기록하며 완주했고, 이를 마지막 공식 경기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3. 주요 수상 및 명예
폴라 래드클리프는 선수 경력 동안 수많은 중요한 상과 명예를 얻으며 영국 육상계의 상징적인 인물로 인정받았다.
3.1. 수상 경력
- BBC 올해의 스포츠인상: 2002년 (10년여 만에 이 상을 받은 첫 여성 선수)
- 로레우스 세계 스포츠 어워드 '올해의 복귀상': 2008년 초 (2007년 성과에 대한 인정)
- 국제 육상 경기 연맹 '올해의 선수': 2002년
- AIMS '올해의 선수': 3회
- BBC 런던 스포츠 어워드 '올해의 스포츠 순간': 2003년
- '올해의 세계 스포츠 우먼' 후보에 여러 차례 지명
- 잉글랜드 육상 명예의 전당 헌액: 2010년
- 러프버러 대학교 명예의 전당 헌액: 2015년
- '올해의 런던 시민상': 2016년 (본래 베드퍼드 출신임에도 수상)
3.2. 학술 및 명예 학위
- 학위**: 러프버러 대학교 현대 유럽 연구 학사 학위 (1996년, 우등 졸업)
- 명예 학위**:
- 드 몽포르 대학교 명예 박사 학위 수여: 2001년 10월 25일
- 러프버러 대학교 명예 기술 박사 학위 (Hon DTech) 수여: 2002년 12월 16일
- 도시 명예 시민권**:
- 차른우드 자치구: 2004년 6월 28일
4. 신념 및 옹호 활동
폴라 래드클리프는 스포츠계의 도핑 문제에 대해 매우 확고한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깨끗한 스포츠 환경을 만들기 위한 옹호 활동과 공적 발언을 적극적으로 펼쳐왔다.
4.1. 도핑 방지 옹호
래드클리프는 경기력 향상 약물 사용에 대해 자주 고강도 비난을 해왔다. 2001년 에드먼턴에서 열린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5000m 예선에서는 동료 헤일리 털렛과 함께 금지 약물 EPO 양성 반응 후 복귀한 러시아 선수 올가 예고로바의 복귀에 항의하는 'EPO 사기꾼은 나가라'(EPO Cheats Out)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피켓은 래드클리프의 남편이 만들었고, 경기장 관계자들에 의해 제거되었지만 이미 전 세계로 송출되었다. 래드클리프와 털렛의 초기 시위 이후, 결승 진출에 실패했던 동료 선수 캐시 버틀러와 헤일리 옐링은 코치 마크 롤랜드와 앨런 스토리와 함께 래드클리프 마스크를 쓰고 '자유 폴라'(Free Paula)와 같은 조롱 섞인 슬로건이 적힌 현수막을 들고 시위에 동참했다. 래드클리프는 에드먼턴에서의 그녀의 행동 이후에도 스포츠 내 약물과의 싸움을 계속하겠다고 맹세했다. 1999년 유럽컵 이후부터 그녀는 약물 사기꾼들을 잡는 방법으로 혈액 검사를 지지한다는 의미로 경기 시 붉은 리본을 착용하고 있다.
래드클리프는 첫 위반자에게는 4년, 재범에게는 영구 추방이라는 시스템을 옹호했다. 그러나 세 번의 경기 외 약물 검사를 놓친 크리스틴 오후루오구와 같은 경우에는 영국 올림픽 협회(BOA)가 도핑 징계를 받은 선수의 올림픽 출전을 허용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도록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 오후루오구가 검사에 협조하지 않았음을 인정하자 래드클리프는 실망감을 표하며 이것이 교훈이 되기를 바랐다. 매리언 존스가 스테로이드 사용을 인정했을 때, 래드클리프는 존스가 적발된 것이 스포츠에 좋은 일이며, 계속 검사를 실시하고 사람들이 적발되는 것이 잠재적인 사기꾼들에게 큰 억제책이 된다고 말했다.5. 도핑 의혹 및 논란
도핑 사건들로 인해 생겨난 회의적인 시각에 대해 래드클리프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 도핑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100% 신뢰할 수 있는 검사를 가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나의 선수 경력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그녀는 과거 런던 마라톤에서 실시한 혈액 검사 결과를 공개해달라고 요청하며 "내 검사 공개에 대해 전혀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2015년, 육상계에 만연한 도핑 폭로가 터져 나오자 래드클리프는 일부 다른 저명한 영국 선수들과는 달리 자신의 혈액 검사 이력을 공개하지 않을 것이며 다른 선수들에게도 그렇게 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이후 그녀는 의원 제시 노먼에 의해 의회에서 혈액 도핑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간접적으로 도핑 의심 선수로 지목되었다. 이에 래드클리프는 "어떤 형태의 부정행위도 단호히 부인한다"며 "숨길 것이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의심스러운 세 가지 검사 결과가 유출되었음에도 래드클리프는 여전히 전체 혈액 검사 이력 공개를 거부했다. 그러나 2015년 11월 말, 국제 육상 경기 연맹(IAAF)은 해당 혐의가 "불완전한 데이터에 대한 심각한 오해석에 기반한 것"이라고 발표하며 래드클리프를 혐의에서 벗어나게 했다. 영국 반도핑 기구(UKAD) 또한 국제 육상 경기 연맹을 통해 래드클리프의 혈액 검사 이력을 검토한 후 "UKAD는 국제 육상 경기 연맹의 검토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으며, 답변할 만한 사안이 없다"고 밝혔다. 첫 번째 의심스러운 이상치는 장비 결함으로 인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았으며, 세 번째 의심스러운 이상치는 모 파라 및 다른 영국 선수들과 함께 케냐에서 실시한 고지대 훈련의 직접적인 결과였다.6. 개인 생활
폴라 래드클리프는 1920년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수영 선수 샬럿 래드클리프의 조카손녀이다. 그녀는 러프버러 대학교에서 학위 과정 중 그녀의 하숙생이었던 전 북아일랜드 1500m 선수 게리 러프를 만났다. 두 사람은 2001년에 결혼했다. 2007년에 첫째 딸 이슬라를 낳았고, 2010년에는 둘째 아들 라파엘을 낳았다. 가족은 현재 모나코 몬테카를로에 거주하고 있다.
7. 영향력 및 유산
폴라 래드클리프는 여성 장거리 달리기 분야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으며, 깨끗한 스포츠 문화 확립에 크게 기여했다. 그녀의 세계 기록 수립은 여성 마라톤의 한계를 재정의하고 수많은 여성 선수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특히 2003년 런던 마라톤에서 세운 2시간 15분 25초의 기록은 16년 동안 깨지지 않는 경이로운 기록으로 남아 그녀의 지배적인 기량을 입증했다.
기술적으로 그녀는 적극적인 선두 유지와 공격적인 레이스 운영으로 여성 장거리 레이스 전략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정신적으로는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강인한 의지와 복귀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으로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또한, 래드클리프는 스포츠계의 도핑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며 강력한 도핑 반대 운동을 펼쳤다. 공개적인 시위와 발언, 그리고 혈액 검사를 지지하는 상징적인 행동을 통해 깨끗한 스포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옹호 활동은 스포츠 윤리 확립에 기여하며 대중의 인식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녀가 겪었던 도핑 의혹과 이에 대한 단호한 해명 과정은 그녀의 결백을 더욱 확고히 하고, 공정한 경쟁 환경에 대한 그녀의 신념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래드클리프는 BBC 올해의 스포츠인상 수상과 영국 육상 명예의 전당 헌액 등 수많은 상과 영예를 통해 대중적 인식을 확고히 했으며, 여성 스포츠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한 긍정적인 유산을 남겼다. 그녀는 단순히 뛰어난 선수였을 뿐만 아니라, 스포츠의 가치를 수호하고 다음 세대에게 모범이 되는 챔피언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