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페테르 펠레그리니는 1975년 10월 6일 체코슬로바키아의 반스카비스트리차에서 태어났다.
1.1. 어린 시절과 교육
펠레그리니는 마테이 벨 대학교 경제학부와 코시체 공과대학교에서 공부했으며, 특히 코시체 공과대학교에서는 은행업, 투자, 금융 분야를 전공했다.
1.2. 개인사
펠레그리니는 이탈리아인 조상을 두고 있다. 그의 증조부인 레오폴도 펠레그리니(1856~1942)는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일부였던 트렌티노알토아디제주 살테르 출신으로, 레비체와 즈볼렌을 잇는 철도 건설에 참여하기 위해 슬로바키아로 왔다. 그는 지역 여성인 마리아 쿠노프스카와 사랑에 빠진 후 지아르나트흐로놈구의 레호트카포트브레흐미에 정착하기로 결정했다.
펠레그리니는 2019년에 자신을 비실천적인 가톨릭 신자라고 밝혔다. 그는 미혼이며, 2020년 한 타블로이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동성애자인지 묻는 질문에 부인한 바 있다. 이 사건은 펠레그리니가 해당 질문의 출판을 막기 위해 개입했다고 주장하며 잡지 편집장이 사임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그는 또한 더 위쳐의 리비아의 게롤트의 이름을 딴 '게리'라는 이름의 개를 키우고 있다.
2. 초기 경력
펠레그리니는 2002년부터 2006년까지 경제학자로 일했으며, 이후 국민의회의 민영화 및 경제 담당 의원인 류보미르 바즈니의 고문으로 활동했다.
3. 정치 경력
펠레그리니는 슬로바키아 정치 무대에서 다양한 주요 직책을 수행하며 경력을 쌓았다.
3.1. 의회 진출 및 초기 의정 활동
펠레그리니는 2002년 26세의 나이로 총선에 방향-사회민주주의 소속으로 41번 후보로 처음 출마했으나, 1,223표를 얻어 의원직을 얻기에는 부족했다. 같은 해 그는 경제학자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2006년 총선에서는 방향-사회민주주의 소속으로 27번 후보로 출마하여 2,665표를 얻어 국민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그는 보건 의회 위원회, 슬로바키아 국가안보국 결정 검토 위원회, 국민의회 위임 및 면책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2010년 총선에서도 방향-사회민주주의 소속으로 34번 후보로 출마하여 2,745표를 얻어 국민의회 의원으로 재선되었다. 그는 재정 및 예산 위원회 위원과 국가안보국 결정 검토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2012년 총선에서도 35번 후보로 출마하여 5,950표를 얻어 다시 당선되었다. 2012년 4월 4일부터 2014년 7월 3일까지 로베르트 피초 제2내각에서 재무부 국무장관을 역임했다. 2014년 6월 28일 방향-사회민주주의의 임시 총회에서 새로운 부대표로 선출되었다.
3.2. 내각 각료 및 부총리
2014년 7월 3일, 두샨 차플로비치 교육부 장관의 사임 후 안드레이 키스카 대통령은 펠레그리니를 교육과학연구체육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2016년에는 로베르트 피초 총리 아래에서 투자 및 정보 담당 부총리로 임명되었다. 2018년 3월 7일부터 22일까지 문화부 장관 대행을, 2018년 4월 17일부터 26일까지 내무부 장관 대행을 맡았다. 2019년 4월 11일부터 5월 7일까지 페테르 카지미르가 슬로바키아 국립은행 총재로 떠난 후 재무부 장관 대행을 임시로 맡았다. 2019년 12월 17일부터 2020년 3월 21일까지 안드레아 칼라프스카의 사임 후 보건부 장관직을 맡았다.
3.3. 국민의회 의장

2014년 11월 25일, 펠레그리니는 파볼 파슈카의 뒤를 이어 국민의회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2015년에는 포괄적인 디지털 사회의 이점을 홍보하기 위해 유럽 연합이 임명한 슬로바키아 디지털 챔피언으로 지명되었다.
2023년 10월 25일, 그는 131표를 얻어 국민의회 의장으로 재선되었다. 이로써 그는 보리스 콜라르의 뒤를 이어 두 번째로 의장직을 수행하게 되었다.
3.4. 총리 재임

2016년 로베르트 피초 총리 아래에서 투자 담당 부총리로 임명된 펠레그리니는 언론인 얀 쿠치아크 살해 사건 이후 2018년 3월 15일 전임 총리가 사임하면서 정부 수반으로 취임했다. 안드레이 키스카 대통령은 2018년 3월 21일 펠레그리니 내각을 승인했으며, 다음 주에는 국민의회 의원 81명이 내각 승인에 찬성표를 던졌다. 2018년 4월에 내무부 장관 대행을 지낸 후, 2019년 페테르 카지미르가 슬로바키아 국립은행 총재로 떠나자 펠레그리니는 임시로 재무부 장관직을 맡았다.

취임 약 1년 후인 2019년 5월 3일, 펠레그리니는 벨벳 혁명 30주년 및 슬로바키아의 NATO 가입 15주년을 기념하여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초청으로 백악관을 방문했다. 이 회담에서 그들은 에너지 안보, 노르트스트림 2, 불법 이민, 우크라이나 문제 등을 논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NATO 내에서 국방 예산을 2%로 늘리려는 슬로바키아의 노력을 칭찬했다. 이후 2019년 12월에는 안드레아 칼라프스카의 사임 후 보건부 장관직을 맡았다.
그의 당은 2020년 총선에서 이고르 마토비치가 이끄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패배했다. 2020년 코로나19 범유행 기간 중인 3월 16일,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를 도입하여, 슬로바키아 국립 병원에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모든 학교를 폐쇄하며, 시민 이동을 제한하고, 상업 시설을 폐쇄하며, 자가 격리를 도입했다.
2020년 코로나19 범유행 당시 의료용품이 고갈되기 시작하자 각국은 자국 관할 외에서 물품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을 벌였고, 기업에 돈을 지불하여 경로를 변경시키거나 다른 국가로 향하던 장비를 압수하기도 했다. 펠레그리니는 우크라이나로부터 마스크 200만 개를 주문했으나 현금 결제가 필요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독일 요원이 나타나 마스크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하고 구매해갔다. 이에 대해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부 장관은 전 세계에서 의료용 마스크와 인공호흡기를 확보하려 하지 않는 유럽 국가는 없다고 언급했다.
3.5. 정당 활동
펠레그리니는 2000년부터 2020년까지 방향-사회민주주의 소속으로 활동했으며, 2014년에는 당의 부대표로 선출되었다. 2020년 6월, 그는 방향-사회민주주의를 떠나 목소리-사회민주주의를 공동 창당하고 당 대표를 맡았다.
3.6. 대통령 선거 출마 및 당선
2024년 1월 19일, 지지자들의 높은 지지와 그가 이끄는 목소리-사회민주주의 및 연립 파트너인 방향-사회민주주의의 지지를 바탕으로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2024년 3월 23일 치러진 1차 투표에서 펠레그리니는 37.03%를 득표하여 42.52%를 얻은 직업 외교관 이반 코르초크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은퇴한 변호사이자 판사인 슈테판 하라빈은 11.74%로 3위를 기록했다. 1차 투표에서 2위를 차지한 직후, 펠레그리니는 1차 투표에서 철수했던 슬로바키아 국민당의 안드레이 단코 대표, 그리고 낙선한 후보인 크리스티안 포로와 얀 쿠비시의 지지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2024년 4월 6일 치러진 2차 투표에서 펠레그리니는 53.12%를 득표하여 46.88%를 얻은 이반 코르초크를 꺾고 당선되었다. 선거 다음 날, 그는 대통령이 비당파적 직책이라는 불문율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사회민주주의 당 대표직을 사임하고 당원 자격을 포기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3.7. 대통령 재임

펠레그리니의 대통령 취임식은 2024년 6월 15일 브라티슬라바의 국민의회 특별 회의에서 거행되었다. 그는 슬로바키아 역사상 대통령, 총리, 국회의장이라는 세 가지 최고 헌법적 직책을 모두 역임한 최초의 정치인이 되었다. 2024년 7월에는 워싱턴 D.C.에서 열린 2024년 NATO 정상회담에 대통령 자격으로 참석했다.
4. 역대 선거 결과
| 선거명 | 직책명 | 대수 | 정당 | 1차 득표율 | 1차 득표수 | 2차 득표율 | 2차 득표수 | 결과 | 당락 |
|---|---|---|---|---|---|---|---|---|---|
| 2024년 선거 | 슬로바키아의 대통령 | 6대 | 목소리-사회민주주의 | 37.03% | 834,718표 | 53.12% | 1,409,255표 | 1위 |
5. 훈장 및 포상
펠레그리니는 슬로바키아 국내에서 다음과 같은 주요 훈장 및 국가적 포상을 받았다:
- 안드레이 흐린카 훈장
- 류도비트 슈투르 훈장
- 밀란 라스티슬라프 슈테파니크 십자훈장
- 프리비나 십자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