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린 시절과 배경
파코 헤메스는 1970년 4월 18일 카나리아 제도의 라스팔마스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스페인 본토인 안달루시아주로 이주하여 성장했다. 그의 아버지는 전문적인 플라멩코 가수인 프란시스코 크레스포 아길라르(Francisco Crespo Aguilar프란시스코 크레스포 아길라르스페인어)로, '루카스 데 에시하'(Lucas de Écija루카스 데 에시하스페인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며 두 장의 음반을 발표하기도 했다.
2. 선수 경력
파코 헤메스는 1989년에 데뷔하여 35세에 은퇴할 때까지 스페인 여러 클럽에서 활약하며 중앙 수비수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2.1. 클럽 경력
파코 헤메스는 코르도바 CF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했으며, 이후 레알 무르시아를 거쳐 1992년 라요 바예카노로 이적하며 라리가에 데뷔했다. 1992-93 시즌에는 리그 38경기 전 경기에 출전하며 팀의 주축 수비수로 활약했다.
1993년에는 데포르티보 라코루냐로 이적하여 1998년까지 뛰었다. 데포르티보가 1993-94 시즌과 1994-95 시즌에 2시즌 연속 리그 준우승을 차지했으나, 그는 이 두 시즌 동안 총 10경기 출전에 그쳤다. 이후에는 점차 더 많은 출전 기회를 얻었다. 그는 데포르티보 소속으로 1995년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우승을 경험했다.
1998년에는 레알 사라고사로 이적하여 2004년까지 활약하며 팀의 핵심 수비수로 자리매김했다. 사라고사에서 6시즌 동안 리그 168경기에 출전했으며, 2000-01 시즌에는 코파 델 레이 우승에 기여했다. 2004년 1월부터 6월까지는 세군다 디비시온 소속의 라요 바예카노로 잠시 복귀하여 17경기에 출전했다.
2004-05 시즌에는 축구 활동을 잠시 쉬었으며, 2005-06 시즌에는 테르세라 디비시온의 CD 루고에서 9경기를 소화한 후 35세의 나이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그의 선수 경력 전체를 통틀어 총 442경기에 출전하여 6골을 기록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파코 헤메스는 약 3년간 스페인 국가대표팀에서 21경기에 출전했다. 1998년 9월 23일 그라나다에서 열린 러시아와의 친선 경기에서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2000년 UEFA 유로 2000에 참가하여 주전으로 3경기에 출전했으나, 스페인은 8강에서 탈락했다. 그의 마지막 국가대표 경기는 2001년 4월 25일 코르도바에서 열린 일본과의 친선 경기였다.
3. 감독 경력
선수 생활을 마친 파코 헤메스는 2007년부터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공격적이고 점유율 지향적인 독특한 축구 철학으로 주목받았다.
3.1. 감독 철학
파코 헤메스는 현역 시절의 긴 머리를 휘날리는 듬직한 수비수 이미지와는 달리, 지도자로서는 삭발한 머리와 함께 점유율을 중시하는 초공격적인 축구를 신봉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라리가에서 흔치 않은 3백 전술을 과감히 사용하는 등 파격적인 전술적 접근을 시도했다.
그의 축구는 '위험을 감수하는 축구'로 평가받으며, 많은 득점을 기록하는 동시에 많은 실점을 허용하는 양면성을 보였다. 이는 관중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경기를 제공했으나, 수비적인 안정성 측면에서는 항상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만의 확고한 축구 원칙을 유지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3.2. 스페인 클럽 감독 재임
파코 헤메스는 스페인 리그 시스템에서 다양한 클럽들을 지휘하며 자신의 전술적 철학을 시험하고 발전시켰다.
3.2.1. 초기 및 중기 경력
2007년 RSD 알칼라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같은 해 세군다 디비시온의 코르도바 CF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으나, 11경기 만에 경질되었다.
2009년 초에는 세군다 디비시온 B 소속의 FC 카르타헤나 감독을 맡아 2008-09 시즌에 클럽 역사상 처음으로 세군다 디비시온 승격을 이끌었으나, 2009년 7월에 팀을 떠났다. 2010년 4월 12일, 세르기예 크레시치 감독의 후임으로 세군다 디비시온의 UD 라스팔마스 감독에 부임했다. 그는 부진에 시달리던 고향 팀을 리그 17위로 끌어올려 강등권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성공했다. 2010-11 시즌에도 팀을 이끌었으나, 2011년 2월 27일에 경질되었다.
2011년 여름, 파코 헤메스는 다시 세군다 디비시온의 코르도바 CF 감독으로 복귀했다. 그는 전 시즌 16위였던 팀을 리그 5위까지 끌어올리며 37년 만에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프리메라 디비시온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준결승에서 레알 바야돌리드에게 패배했다.
2012년 6월 22일, 그는 프리메라 디비시온의 라요 바예카노 감독으로 1년 계약을 맺고 부임했다. 당시 라요 바예카노는 재정 문제로 파산 절차를 밟고 있었고, 주전 선수들의 이탈로 인해 부임 당시 선수단에는 13명의 선수만이 남아있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2012-13 시즌에 팀을 구단 역사상 최고 성적인 리그 8위로 이끌며 '파코 헤메스표' 초공격 축구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이 성과로 인해 그는 2015년 6월까지 계약을 연장했다.
그는 계속해서 공격적인 축구 스타일을 고수하며 팀을 이끌었다. 2013-14 시즌에는 리그 최다 실점(80실점)을 기록했지만 리그 12위로 잔류에 성공했고, 2014-15 시즌에도 리그 최다 실점(68실점, 최하위 코르도바 CF와 동률)을 기록하면서도 11위로 여유 있게 잔류를 확정지었다. 이러한 성과로 그는 한때 차기 스페인 국가대표팀 감독 후보로도 거론될 만큼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15년 5월에 계약을 2016년 6월까지 연장했으나, 2015-16 시즌에는 초공격 축구의 단점인 수비 문제가 개선되지 않았고 주전 선수들의 부상까지 겹치면서 리그 18위로 세군다 디비시온 강등이 확정되었다. 강등에도 불구하고 팬들은 그의 잔류를 원했으나, 그는 팀을 떠났다.
2016년 6월 20일, 그는 중국 자본에 인수된 그라나다 CF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개막 6경기 동안 승리 없이 16실점을 기록하며 구단 역사상 70여 년 만에 최악의 시즌 출발을 보였고, 결국 9월 28일 경질되었다.
3.2.2. 이후 스페인 복귀
2017년 12월 21일, 그는 2017-18 시즌 중 세 번째 정식 감독으로 다시 UD 라스팔마스에 복귀했다.
2019년 3월 20일에는 라요 바예카노로 다시 돌아왔다. 7연패로 강등 위기에 처한 팀에서 이틀 전 경질된 미첼의 후임으로 부임했으며, 2020년 6월까지 계약을 맺었다. 그의 복귀는 라요 바예카노 팬들에게 큰 기대를 안겨주었다.
3.3. 해외 클럽 감독 재임
파코 헤메스는 스페인 외에도 멕시코와 이란에서 감독 경력을 쌓으며 다양한 문화와 리그 환경을 경험했다.
3.3.1. 크루스 아술 (멕시코)
2016년 11월 28일, 파코 헤메스는 멕시코의 리가 MX 소속인 크루스 아술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팀을 3년 만에 처음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2017년 11월 27일, 그는 구단과의 재계약을 거절하고 팀을 떠났다.
3.3.2. 트락토르 S.C. (이란)
2022년 12월, 파코 헤메스는 이란의 페르시안 걸프 프로 리그 소속인 트락토르 S.C.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다시 해외 무대로 나섰다. 그는 2024년 4월 15일까지 이란에서 팀을 지휘했다.
3.4. UD 이비사에서의 최근 활동
2021년 12월 26일, 파코 헤메스는 1년 이상의 공백기를 가진 후 세군다 디비시온으로 승격한 UD 이비사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2021-22 시즌 종료 시점까지 팀을 이끌었다. 그는 강등을 피하는 데 성공했지만, 2022년 5월 31일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났다.
이후 2024년 11월 12일, 그는 현재 프리메라 페데라시온에 소속된 UD 이비사로 다시 복귀하여 현재까지 팀을 지휘하고 있다.
4. 개인 생활
파코 헤메스의 아버지는 플라멩코 가수인 프란시스코 크레스포 아길라르(Francisco Crespo Aguilar프란시스코 크레스포 아길라르스페인어)로, '루카스 데 에시하'(Lucas de Écija루카스 데 에시하스페인어)라는 예명으로 활동했다. 파코 헤메스 자신은 골프에 큰 흥미를 보여 한때 1.4의 핸디캡을 기록할 정도로 프로 골프 선수의 길을 걸을 뻔하기도 했다.
5. 우승 기록
파코 헤메스는 선수와 감독 경력 전반에 걸쳐 다양한 타이틀을 획득했다.
5.1. 선수 시절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1995 (데포르티보)
- 코파 델 레이: 2000-01 (사라고사)
5.2. 감독 시절
- 세군다 디비시온 B: 2008-09 (카르타헤나)
6. 감독 통계
팀 | 부임 | 사임 | 기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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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률 % | |||
알칼라 | 2007년 3월 25일 | 2007년 6월 28일 | 12 | 5 | 4 | 3 | 21 | 11 | 10 | 41.67% |
코르도바 | 2007년 6월 28일 | 2008년 3월 31일 | 32 | 7 | 15 | 10 | 40 | 46 | ||
21.88% | ||||||||||
카르타헤나 | 2009년 2월 3일 | 2009년 7월 1일 | 19 | 9 | 7 | 3 | 33 | 16 | 17 | 47.37% |
라스팔마스 | 2010년 4월 12일 | 2011년 2월 27일 | 37 | 9 | 13 | 15 | 52 | 69 | ||
24.32% | ||||||||||
코르도바 | 2011년 6월 8일 | 2012년 6월 13일 | 50 | 23 | 13 | 14 | 60 | 54 | 6 | 46.00% |
라요 바예카노 | 2012년 6월 22일 | 2016년 5월 26일 | 164 | 55 | 29 | 80 | 206 | 303 | ||
33.54% | ||||||||||
그라나다 | 2016년 6월 20일 | 2016년 9월 28일 | 6 | 0 | 2 | 4 | 7 | 15 | ||
0.00% | ||||||||||
크루스 아술 | 2016년 11월 28일 | 2017년 11월 27일 | 48 | 17 | 18 | 13 | 56 | 52 | 4 | 35.42% |
라스팔마스 | 2017년 12월 21일 | 2018년 5월 25일 | 23 | 2 | 6 | 15 | 12 | 41 | ||
8.70% | ||||||||||
라요 바예카노 | 2019년 3월 20일 | 2020년 7월 31일 | 56 | 17 | 25 | 14 | 76 | 73 | 3 | 30.36% |
이비사 | 2021년 12월 26일 | 2022년 5월 31일 | 21 | 7 | 6 | 8 | 34 | 36 | ||
33.33% | ||||||||||
트락토르 | 2022년 12월 6일 | 2024년 4월 15일 | 45 | 24 | 8 | 13 | 65 | 45 | 20 | 53.33% |
이비사 | 2024년 11월 12일 | 현재 | 13 | 8 | 1 | 4 | 24 | 15 | 9 | 61.54% |
합계 | 526 | 183 | 147 | 196 | 686 | 776 | ||||
34.79% |
7. 유산과 평가
파코 헤메스는 선수 시절의 강렬한 플레이 스타일과 감독으로서의 독특한 전술적 접근으로 스페인 축구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7.1. 축구 스타일의 영향
선수 시절 파코 헤메스는 긴 머리를 휘날리며 견고한 중앙 수비수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감독이 된 후에는 삭발한 모습과 함께 공격적이고 점유율 지향적인 축구 철학으로 유명해졌다. 그는 스페인 리그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3백 전술을 과감히 도입하며 전술적 다양성을 추구했다.

그의 팀들은 때로는 많은 실점을 허용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많은 득점을 기록하며 팬들에게 예측 불가능하고 흥미진진한 경기를 선사했다.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는 축구'는 라요 바예카노와 같은 소규모 클럽을 이끌면서도 리그 중위권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그의 지도력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이끌어냈다. 특히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만의 확고한 스타일을 고수하며 팀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점은 높이 평가받는다. 그의 독특한 축구 스타일은 그를 단순한 감독이 아닌, 스페인 축구의 전술적 흐름에 영향을 미친 인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실제로 그는 한때 스페인 국가대표팀 감독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