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파올로 베티니(Paolo Bettini파올로 베티니이탈리아어, 1974년 4월 1일 ~ )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체치나 출신의 전직 도로 사이클 선수이자 이탈리아 국가대표 사이클팀의 전 감독이다. 그는 현역 시절 당대 최고의 클래식 레이스 전문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으며, 역대 가장 강력한 선수 중 한 명으로도 꼽힌다. 베티니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남자 개인 도로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2006년과 2007년 UCI 도로 세계 선수권 대회 남자 개인 도로 경기에서 연속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끊임없는 기습적인 어택과 스프린트 스타일 때문에 '귀뚜라미'라는 뜻의 Il Grillo일 그릴로이탈리아어라는 별명을 얻었다. 주요 업적으로는 2000년과 2002년 리에주-바스토뉴-리에주 우승, 2003년 밀라노-산레모, HEW 사이클라식스, 클라시카 데 산 세바스티안 우승을 통해 UCI 로드 월드컵 시즌 최다 우승 기록을 세운 것이 있다. 또한 2005년과 2006년 지로 디 롬바르디아, 2001년과 2005년 취리히 선수권 대회, 2004년 티레노-아드리아티코에서도 우승했다. 그는 그랜드 투어 종합 우승을 제외한 사이클링의 거의 모든 주요 영광을 거머쥐었다.

2. 초기 경력
파올로 베티니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해안에서 가족과 함께 성장했다. 그는 7세 때부터 레이싱을 시작하여 첫 24번의 레이스 중 23번을 우승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의 첫 자전거는 아버지 줄리아노가 오렌지색으로 칠한 중고 프레임에 다른 자전거에서 가져온 부품들을 조립하여 만든 것이었다. 형의 격려를 받아 레이싱을 시작한 그는 1996년 UCI 도로 세계 선수권 대회 23세 이하 도로 경기에서 이탈리아 선수 3명(줄리아노 푸게라스, 로베르티 스감벨루리, 루카 시로니)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이듬해인 1997년, 베티니는 MG-테크노짐 팀에서 프로로 데뷔했다. 당시 그는 '노동 계급 사이클 선수'로 불리던 미켈레 바르톨리의 도메스티크로 활동하며 그를 위해 일했고, 바르톨리는 그 대가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베티니의 도움으로 바르톨리는 1997년과 1998년 UCI 로드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1999년 바르톨리가 무릎에 큰 부상을 입으면서 베티니는 독립적으로 레이스에 참가할 기회를 얻었다. 그는 2000년 리에주-바스토뉴-리에주에서 우승하며 10.00 만 EUR 상당의 포르쉐를 구매했고, 같은 해 투르 드 프랑스의 아쟁에서 닥스까지 이어지는 평지 스테이지에서도 우승했다. 2001년에는 몇 달간 우승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취리히 선수권 대회에서 얀 울리히를 스프린트에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러한 성공은 바르톨리와의 불화를 심화시켰고, 이는 2001년 리스본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절정에 달했다. 당시 바르톨리는 스프린트 피니시에서 베티니를 선두로 이끌기를 거부했고, 결국 스페인 선수 오스카르 프레이레가 우승을 차지했다.
3. 프로 경력
파올로 베티니의 프로 사이클링 경력은 1997년 데뷔 이후 2008년 은퇴까지 다양한 클래식 레이스와 그랜드 투어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며 그의 시대를 대표하는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3.1. UCI 월드컵 챔피언십
파올로 베티니는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 연속으로 UCI 로드 월드컵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하며 이 시리즈에서 압도적인 활약을 펼쳤다.
2002년 시즌은 그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는 밀라노-산레모의 마지막 몇 킬로미터에서 선두 그룹에 잡혔지만, 스테파노 가르첼리와 함께 리에주-바스토뉴-리에주에서 1-2위를 차지하며 강력한 모습을 보였다. 요한 무세우가 파리-루베에서 50 km 독주 우승을 하고 HEW 사이클라식스에서도 우승하며 베티니와 치열한 경쟁을 벌였으나, 베티니는 지로 디 롬바르디아에서 전술적인 라이딩을 통해 월드컵 우승을 확정 지었다. 또한 그는 마리오 치폴리니가 벨기에 졸더에서 열린 UCI 도로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는 데 강력한 지원 역할을 했다.

2003년 월드컵 시리즈는 밀라노-산레모로 시작되었는데, 베티니는 '프리마베라'로 이어지는 마지막 언덕에서 두 차례 어택을 시도했고, 루카 파올리니의 도움을 받아 결승선으로 향하는 까다로운 내리막길에서 어택을 감행했다. 그러나 겐트-벨게헴에서의 부상으로 인해 7월 투르 드 프랑스까지 여러 레이스에 불참해야 했다. 이후 그는 얀 울리히를 제치고 HEW 사이클라식스에서 우승했으며, 클라시카 데 산 세바스티안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우승 후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레이스 막판의 실수로 우승을 놓쳤다. 선두 그룹에 합류했지만 주저하는 바람에 스페인 선수 이고르 아스타를로아가 치고 나가 우승했다. 아스타를로아는 베티니가 자신에게 우승을 포기하는 대가로 돈을 제안했다고 주장했으나, 아스타를로아는 이를 거부했다고 밝혔다. 이후 불화가 이어졌고, 아스타를로아는 자신의 발언이 베티니의 이탈리아어를 오해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2004년 시즌은 밀라노-산레모에서 좋은 시작을 보였지만, 다비데 레벨린이 라 플레슈 왈론, 리에주-바스토뉴-리에주, 암스텔 골드 레이스에서 우승하며 베티니의 경쟁자로 부상했다. 베티니는 이전에 우승했던 HEW 사이클라식스와 전년도 우승했던 클라시카 데 산 세바스티안에서 모두 2위를 차지하며 실망감을 이어갔다. 하지만 파리-투르에서 획득한 포인트로 선두 저지를 입게 되었고, 마지막 레이스인 지로 디 롬바르디아가 레벨린에게 더 유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베티니는 레이스 내내 레벨린을 추격하여 레벨린이 좌절하여 기권하게 만들었다. 이로써 베티니는 3년 연속 UCI 월드컵 챔피언 타이틀을 확보했다.
3.2. 올림픽 금메달 및 세계 선수권 대회 우승


파올로 베티니의 가장 중요한 승리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거둔 개인 도로 경기 금메달이었다. 그는 포르투갈의 세르지우 파울리뉴와 함께 선두 그룹을 형성하여 편안한 승리를 거두었으며, 마지막 순간의 스프린트로 우승을 결정지었다. 그는 레이스 초반 팀 차량에 무릎을 부딪히는 부상으로 인해 다시 한번 세계 선수권 대회 우승에는 실패했다.
무지개 저지를 입은 파올로 베티니는 2006년과 2007년 UCI 도로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남자 개인 도로 경기 2연패를 달성하며 역사적인 업적을 세웠다. 2006년에는 이탈리아 로드 챔피언 타이틀도 획득한 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다. 이 우승 직후 그의 형 사우로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면서 베티니는 사이클링을 포기할 생각까지 했지만, 마음을 바꿔 지로 디 롬바르디아에 출전하여 눈물을 흘리며 우승을 차지했다. 2007년 3월 2일, 프랑스 잡지 '벨로'는 베티니에게 2006년 최고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벨로 도르 상을 수여했다.
2007년 시즌은 무지개 저지를 입고 시작되었으며, 주요 레이스에서 여러 차례 입상했지만 우승은 부엘타 아 에스파냐 3스테이지 한 번뿐이었다. 그러나 부엘타 아 에스파냐 포인트 분류 선두 자리를 포기하면서까지 출전한 슈투트가르트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도핑 의혹과 관련된 출전 정지 논란에도 불구하고, 절묘한 레이스 운영과 강한 정신력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그는 1991년에서 1992년 사이 잔니 부뇨 이후 15년 만에, 그리고 세계 선수권 대회 역사상 5번째로 2연패를 달성하는 위업을 이루었다. 2001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2위를 차지했고, 2003년에는 4위를 기록했다.
3.3. 클래식 레이스 전문가로서의 활약
파올로 베티니는 동시대 최고의 클래식 레이스 전문가 중 한 명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역대 가장 강력한 클래식 선수 중 한 명으로도 평가받는다. 그의 레이스 스타일은 짧은 언덕도 잘 소화하는 펀처에 가까운 스프린터로, 이는 클래식 레이스에서 압도적인 강점을 발휘하게 했다.
클래식 레이스는 전반적으로 평균 속도가 높고, 스테이지 레이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합 순위가 낮은 선수의 도주를 허용하지 않으므로 룰러의 장거리 도주가 성공하기 어렵다. 또한, 표고차가 낮은 언덕을 여러 번 넘는 짧은 업다운이 반복되는 코스 레이아웃이 많은데, 베티니는 이러한 코스에서 스프린터를 언덕에서 먼저 떨쳐내고 즉시 스프린트로 전환하거나, 산악 구간 진입 전에 평지 구간에서 어택을 가해 클라이머들을 따돌릴 수 있었다. 특히 결승선이 오르막 경사로 이루어진 경우, 평지 구간에서 속도를 높여 파워가 약한 클라이머들을 탈락시키고, 무게가 많이 나가는 스프린터들이 어려워하는 오르막에서 결승선 스프린트를 펼쳐 승리할 수 있었기에 베티니에게 유리했다. 그는 특화된 선수들보다 많은 원데이 레이스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3.3.1. 주요 클래식 레이스 우승
파올로 베티니는 그의 경력 동안 수많은 주요 원데이 클래식 레이스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 리에주-바스토뉴-리에주: 2000년과 2002년에 두 차례 우승하며 이 유서 깊은 레이스에서 강력한 면모를 보였다. 2002년에는 스테파노 가르첼리와 함께 1-2위를 차지하며 팀의 위력을 과시했다.
- 밀라노-산레모: 2003년에 우승을 차지했다. 이 레이스는 '프리마베라'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며, 사이클링 5대 기념비 중 하나이다.
- HEW 사이클라식스: 2003년에 우승했다.
- 클라시카 데 산 세바스티안: 2003년에 우승했다.
- 취리히 선수권 대회: 2001년과 2005년에 두 차례 우승을 기록했다.
- 지로 디 롬바르디아: 2005년과 2006년에 연속으로 우승했다. 특히 2006년 우승은 형의 사망 직후 이뤄진 감동적인 승리였다.
이 외에도 2004년 티레노-아드리아티코 종합 우승, 2006년 그란 프레미오 디 루가노 우승, 2006년 트로페오 솔레르 우승 등 다양한 원데이 레이스 및 스테이지 레이스에서 우승을 거두었다.
3.4. 그랜드 투어에서의 성과
파올로 베티니는 그랜드 투어에서 종합 우승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여러 스테이지 우승과 포인트 분류에서의 활약을 통해 그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 투르 드 프랑스: 2000년 아쟁에서 닥스까지 이어지는 9스테이지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 지로 디탈리아: 2005년 지로 디탈리아에서 2개의 스테이지 우승을 차지했으며, 며칠 동안 핑크 저지를 입고 종합 분류 선두를 유지했다. 같은 해 포인트 분류에서 우승하며 보라색 저지를 획득했다. 2006년 지로 디탈리아 15스테이지에서도 우승했고, 2년 연속으로 포인트 분류 우승을 차지했다. 2008년 지로 디탈리아에서는 팀 동료 조반니 비스콘티가 마리아 로사를 입었을 때, 특히 7스테이지에서 비스콘티를 헌신적으로 보조하며 선두 저지 유지를 도왔다.
- 부엘타 아 에스파냐: 2005년 바야돌리드에서 알레산드로 페타키를 오르막 스프린트에서 꺾고 16스테이지에서 우승했다. 2006년 부엘타 아 에스파냐에서도 스테이지 우승을 차지했으며, 2007년 부엘타 아 에스파냐 3스테이지에서도 우승하고 3개 스테이지에서 2위를 기록했다. 2008년 부엘타 아 에스파냐에서는 2개의 스테이지(6스테이지 및 12스테이지)에서 우승했다.
3.5. 이탈리아 챔피언십
파올로 베티니는 이탈리아 내셔널 로드 레이스 선수권 대회에서 두 차례 우승을 차지하며 자국에서도 최고의 선수임을 입증했다. 그는 2003년과 2006년에 이탈리아 도로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다.
3.6. 주요 성적
파올로 베티니의 주요 그랜드 투어, 클래식, 그리고 주요 선수권 대회 성적은 다음과 같다.
그랜드 투어 | 1997 | 1998 | 1999 |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2007 | 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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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로 디탈리아 | 25 | 7 | 44 | - | - | DNF | - | - | 38 | 56 | 41 | 19 |
투르 드 프랑스 | - | - | - | 122 | 74 | - | 114 | 114 | - | - | - | - |
부엘타 아 에스파냐 | - | - | 32 | - | - | - | - | - | DNF | DNF | DNF | DNF |
클래식 | 1997 | 1998 | 1999 |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2007 | 2008 |
---|---|---|---|---|---|---|---|---|---|---|---|---|
밀라노-산레모 | - | 70 | 77 | 40 | 5 | 50 | 1 | 8 | 42 | 75 | 33 | 102 |
투어 오브 플랜더스 | - | - | - | - | 23 | 16 | DNF | 9 | - | 7 | 21 | - |
파리-루베 | 경력 중 미참가 | |||||||||||
리에주-바스토뉴-리에주 | - | 92 | 5 | 1 | 15 | 1 | - | 22 | 4 | 2 | 4 | 9 |
지로 디 롬바르디아 | - | 21 | 9 | 10 | 20 | 30 | DNF | 29 | 1 | 1 | 103 | - |
기타 클래식 | 1997 | 1998 | 1999 |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2007 | 2008 |
옴룹 헷 볼크 | - | - | - | - | - | 5 | 3 | - | DNF | - | - | 90 |
퀴르네-브뤼셀-퀴르네 | - | - | - | - | - | 11 | 25 | 2 | DNF | - | - | DNF |
E3 삭소 뱅크 클래식 | - | - | - | - | - | 4 | DNF | 48 | - | - | 24 | - |
암스텔 골드 레이스 | - | DNF | 32 | 14 | DNF | 8 | - | 3 | 37 | 8 | 7 | - |
라 플레슈 왈론 | - | 50 | - | 19 | 20 | 37 | - | DNF | 41 | 12 | DNF | - |
클라시카 데 산 세바스티안 | - | DNF | 11 | 4 | 13 | 7 | 1 | 2 | DNF | 101 | - | 4 |
함부르크 사이클라식스 | - | 12 | 12 | 18 | 6 | 4 | 1 | 2 | DNF | 48 | 7 | - |
취리히 선수권 대회 | 41 | 8 | 4 | 25 | 1 | 2 | 3 | 2 | 1 | DNF | 개최되지 않음 | |
브르타뉴 클래식 | - | - | 7 | - | - | 28 | - | - | - | - | - | - |
지로 델에밀리아 | - | - | - | - | - | - | 8 | - | DNF | - | DNF | - |
밀라노-토리노 | - | 21 | 2 | NH | - | - | - | - | - | - | 88 | NH |
파리-투르 | - | 47 | 14 | 4 | - | 19 | 11 | 6 | - | - | - | - |
1998 | 1999 |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2007 | 2008 | |
---|---|---|---|---|---|---|---|---|---|---|---|
올림픽 | 개최되지 않음 | 9 | 개최되지 않음 | 1 | 개최되지 않음 | 17 | |||||
UCI 도로 세계 선수권 대회 | 63 | - | 9 | 2 | 26 | 4 | DNF | 13 | 1 | 1 | 28 |
내셔널 챔피언십 | - | - | 7 | 15 | - | 1 | 11 | - | 1 | DNF | 27 |
- | 불참 |
---|---|
DNF | 완주 실패 |
NH | 개최되지 않음 |
4. 레이스 스타일 및 별명
파올로 베티니는 169 cm의 키에 58 kg의 체중으로 다소 작은 체구였지만, 이를 상상하기 어려운 강력한 파워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각질은 '짧은 오르막도 소화할 수 있는 펀처에 가까운 스프린터'로 분류된다. 이러한 특징 덕분에 그는 클래식 레이스 전문가로서 압도적인 강점을 보였다.
그는 레이스 중 반복적이고 기습적인 어택과 스프린트 스타일로 인해 '귀뚜라미'라는 뜻의 Il Grillo일 그릴로이탈리아어라는 별명을 얻었다. 대규모 집단 스프린트에서는 순수 스프린터에게 다소 밀리는 경향이 있었고, 1급 또는 특급 산악 구간이나 산악 정상 골인 지점에서는 일류 클라이머에게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라 플레슈 왈론이나 지로 디 롬바르디아와 같은 클래식 레이스를 포함한 원데이 레이스에서는 특화된 선수들보다 더 많은 승리를 거두었다.
원데이 레이스는 대체로 평균 속도가 높고, 스테이지 레이스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종합 순위가 낮은 선수의 도주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룰러의 장거리 도주가 성공하기 어렵다. 또한, 표고차가 낮은 언덕을 여러 번 넘는 짧은 업다운이 반복되는 코스 레이아웃이 많은데, 베티니는 이러한 코스에서 스프린터를 언덕에서 먼저 떨쳐내고 즉시 스프린트로 전환하거나, 산악 구간 진입 전에 평지 구간에서 어택을 가해 클라이머들을 따돌릴 수 있었다. 혹은 골인 지점이 오르막 경사로 이루어진 경우, 평지 구간에서 속도를 높여 파워가 약한 클라이머들을 탈락시키고, 무게가 많이 나가는 스프린터들이 어려워하는 오르막에서 결승선 스프린트를 펼쳐 승리할 수 있었기에 베티니에게 매우 유리했다.
그는 시즌 내내 거의 큰 부진 없이 꾸준한 모습을 보였으며, 특히 클래식 레이스와 같이 목표로 삼은 레이스에는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맞추는 뛰어난 컨디션 관리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랜드 투어와 같은 스테이지 레이스에서도 클래식 레이스와 유사한 잔잔한 업다운이 포함된 스테이지가 비교적 많고, 코스 난이도에 따른 골인 포인트의 차등이 없기 때문에, 꾸준히 포인트를 쌓아 포인트 분류 우승을 노릴 수 있는 지로 디탈리아나 부엘타 아 에스파냐에서 활약하며 여러 차례 스테이지 우승을 차지했다.
5. 개인 생활 및 에피소드
파올로 베티니는 2000년에 문학 교사인 모니카 올란디니와 결혼했다. 그들은 모니카의 가족이 4대째 올리브 농사를 짓고 있는 농가로 이사했으며, 베티니가 태어난 체치나에서 10 km 떨어진 리파르벨라에 거주하고 있다.
그의 개인 생활에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사건들과 에피소드들이 있었다.
- 형 사우로의 죽음과 감동적인 우승: 2006년 UCI 도로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지 며칠 후, 그의 형 사우로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는 비극을 겪었다. 이 비극으로 인해 베티니는 사이클링을 그만둘 생각까지 했으나, 마음을 바꿔 출전한 2006년 지로 디 롬바르디아에서 눈물을 흘리며 우승을 차지했다. 레이스 후 인터뷰에서 그는 "올림픽이나 세계 선수권 대회보다 이 우승이 더 기쁘다. 오늘은 혼자 페달을 밟은 것이 아니었다"고 말하며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 트랙 레이싱 경험: 베티니는 1970년대 이전의 선수들처럼 겨울철 6일 경주에 참여하며 트랙 레이싱을 경험했다. 그는 2006년 뮌헨과 그르노블에서 레이스를 펼쳤는데, "돈 때문에 한 것이 아니라, 레이싱에 대한 사랑 때문에 트랙 레이싱이 어떤지 알고 싶어서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트랙의 경사는 도로보다 까다로웠고, 그의 데뷔는 '재앙적'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매디슨 경기에서 파트너와 나란히 달리지 못하며 첫날을 '두려움에 찬 얼굴'로 마쳤다. 하지만 샤를리 모테는 "저녁 시작에 그를 봤을 때 걱정했지만, 두 시간 후 그는 다른 선수들의 존경을 얻었다. 그는 제대로 교대했고, 레이스에 참여하며 점점 더 나아졌다. 다른 선수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고 회상했다.
-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의 제스처: 2007년 UCI 도로 세계 선수권 대회 결승선 통과 시, 그는 도핑 문제와 관련하여 주최 측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기 위해 총을 난사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고, 이로 인해 일부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MRHEKzBmGbk&feature=related]
- 자전거 도난 사건: 2007년 10월 6일, 팀 차량에 실려 있던 그의 자전거들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여기에는 그가 일주일 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사용했던 자전거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로써 그는 2년 연속으로 세계 선수권 대회 직후 비극적인 사건을 겪게 되었다.
- 저지 착용 논란: 2007년 부엘타 아 에스파냐에서 중반부터 스프린트 왕 경쟁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선수권 대회 준비를 위해 도중에 기권하고 귀국했다. 이때 마지막으로 달린 17스테이지에서 원래 입어야 할 포인트 분류 선두 저지 대신 무지개 저지를 입고 출전하여 주최 측으로부터 상당한 액수의 벌금을 부과받았다고 보도되었다.
- 황금색 장비: 그의 헬멧과 신발에 새겨진 황금색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한때는 프레임, 바테이프, 휠, 안장까지 모두 황금색으로 염색한 로드바이크를 타기도 했다. 그의 헬멧은 황금색 플레이트에 다이아몬드가 박힌 특주품이었다.
- 2008년 부상: 2008년 시즌은 부상으로 얼룩졌다. 퀴르네-브뤼셀-퀴르네에서의 낙상과 바스크 지방 일주에서 젖은 내리막길에서 넘어져 갈비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6. 은퇴 및 코치 경력

파올로 베티니는 2008년 9월 27일, 세계 선수권 대회를 마지막으로 프로 사이클링에서 은퇴하겠다고 발표했다. 2008년 시즌은 부상으로 시작되었고, 트로페오 마테오티와 투어 오브 오스트리아, 투르 드 왈로니에서 스테이지 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부엘타 아 에스파냐에서 2개의 스테이지 우승을 거두었으나, 10년간 소속되었던 퀵스텝 팀과의 재정적 분쟁으로 인해 팀을 떠날 것이라고 밝혔다. 2008년 11월 4일에는 밀라노 6일 경주 도중 낙상하여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은퇴 후, 2010년 2월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 전임자 프랑코 발레리니의 뒤를 이어 2010년 6월 17일 이탈리아 국가대표 사이클팀의 새로운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2014년에 이 직책을 떠나 페르난도 알론소의 새로운 사이클링 팀 창단을 돕기 위해 2015년 팀 출범을 준비하는 데 참여했다.
7. 평가 및 유산
파올로 베티니는 그의 세대에서 최고의 클래식 레이스 전문가로 널리 인정받았으며, 역대 가장 강력한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올림픽 금메달, 2회 연속 UCI 도로 세계 선수권 대회 우승, 3회 연속 UCI 로드 월드컵 챔피언 타이틀, 그리고 밀라노-산레모, 리에주-바스토뉴-리에주, 지로 디 롬바르디아 등 수많은 주요 원데이 레이스 우승을 포함하여 그랜드 투어 종합 우승을 제외한 사이클링의 거의 모든 주요 영광을 거머쥐었다.
그의 공격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레이스 스타일, 특히 짧은 언덕을 넘나들며 폭발적인 가속력을 보여주는 펀처이자 스프린터로서의 능력은 그를 팬들에게 '귀뚜라미'라는 별명과 함께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뛰어난 컨디션 관리 능력으로 중요한 클래식 레이스에서 항상 최고의 기량을 발휘했으며, 이는 그의 꾸준한 성공의 핵심 요인이었다.
베티니는 단순히 우승을 넘어, 그의 열정적인 레이스와 감동적인 개인적 이야기(특히 형의 죽음 후 지로 디 롬바르디아 우승)를 통해 사이클 팬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은퇴 후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의 역할은 그가 선수로서 쌓은 경험과 지식을 후대에 전달하려는 노력을 보여주며, 사이클링 스포츠에 대한 그의 지속적인 헌신을 입증했다. 파올로 베티니는 사이클링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선수이자, 그의 독특한 스타일과 수많은 업적으로 기억될 유산으로 자리매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