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가문
티투스 아우렐리우스 풀부스의 가문은 공화정 및 제국 시대에 걸쳐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의 아버지 역시 같은 이름의 티투스 아우렐리우스 풀부스였는데, 그는 성공적인 공직 생활을 통해 두 차례에 걸쳐 로마의 집정관을 지내는 영예를 얻었다. 또한, 풀부스의 가문은 로마의 전통적인 귀족 계급인 파트리키 계급으로 승격되었다. 이는 그들이 사회적, 정치적으로 특권을 누리는 명문가임을 의미하며, 이러한 가문의 배경은 티투스 아우렐리우스 풀부스가 원로원 의원으로서 공직에 진출하고 활동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2. 결혼 및 후손
티투스 아우렐리우스 풀부스는 아리아 파딜라(Arria Fadilla라틴어)와 혼인했다. 아리아 파딜라는 전직 집정관이자 저명한 역사가인 소 플리니우스의 친구로 알려진 그나이우스 아리우스 안토니누스(Gnaeus Arrius Antoninus라틴어)의 딸이었다.
티투스 아우렐리우스 풀부스와 아리아 파딜라 사이에서 태어난 유일한 자식은 훗날 로마 제국의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가 되는 티투스 아우렐리우스 풀부스 보이오니우스 아리우스 안토니누스(Titus Aurelius Fulvus Boionius Arrius Antoninus라틴어)였다. 이 아들은 서기 86년 9월 19일 이탈리아의 라누비움 (오늘날 라누비오)에서 태어났다. 티투스 아우렐리우스 풀부스가 일찍 사망하면서, 그의 아들은 외조부인 그나이우스 아리우스 안토니누스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했다.
3. 공직
티투스 아우렐리우스 풀부스는 원로원 의원으로서 로마 제국의 중요한 공직을 수행했다. 특히 그는 서기 89년에 직권 집정관으로 재임하며, 마르쿠스 아시니우스 아트라티누스(Marcus Asinius Atratinus라틴어)와 함께 집정관 직무를 수행했다. 집정관은 로마 공화정 시대부터 이어져 온 최고위 공직 중 하나로, 국가의 행정과 군사를 총괄하는 막중한 책임을 가졌다. 그의 집정관 재임은 당시 로마 제국을 통치하던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시기에 이루어졌다.
4. 역사적 평가
티투스 아우렐리우스 풀부스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주로 고대 로마 제국의 역사서이자 황제들의 삶과 업적을 다루는 전기 모음집인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Historia Augusta라틴어)에 기록된 내용에 기반한다. 이 사료에서 그는 "엄격하고 곧은 자(stern and upright man영어)"로 묘사되었다. 이러한 묘사는 그가 공직 생활과 개인적인 삶에서 청렴하고 강직한 인물이었음을 시사한다.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는 때때로 전설적인 요소나 과장이 포함될 수 있으므로, 해당 기록을 해석할 때는 비판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묘사는 티투스 아우렐리우스 풀부스가 당시 로마 사회에서 어떠한 인물로 인식되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