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교육
1.1. 출생 및 가족 배경
토마스 마이어는 1957년 4월 서독의 포르츠하임에서 태어났다. 건축가 집안에서 성장한 그는 어린 시절 발도르프 학교를 다녔다.
1.2. 교육 및 훈련
발도르프 학교에서의 교육을 마친 후, 마이어는 파리로 건너가 샹브르 신디칼 드 라 오트 쿠튀르(Chambre Syndicale de la Haute Couture샹브르 신디칼 드 라 오트 쿠튀르프랑스어)에서 전문적인 패션 교육을 받았다.
2. 경력 (보테가 베네타 이전)
토마스 마이어는 보테가 베네타에 합류하기 전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의 여러 패션 및 럭셔리 브랜드에서 디자이너로서 폭넓은 경험을 쌓았다.
2.1. 초기 디자인 경력
그는 기 라로슈에서 경력을 시작한 후, 소니아 리키엘에서 8년 동안 남성복 디자인을 담당했다. 또한 레빌론에서는 4년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했으며, 에르메스에서는 9년 동안 여성 프레타포르테 디자인뿐만 아니라 가죽 제품과 액세서리 디자인도 맡았다. 1999년, 그는 모든 계약을 종료하고 플로리다로 이주했다.
3. 보테가 베네타에서의 활동 (2001-2018)
토마스 마이어는 보테가 베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브랜드의 재정비와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3.1.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임명 및 비전
2001년 6월, 보테가 베네타가 구찌 그룹(2008년 PPR과 합병 후 2013년 케어링으로 변경)에 인수되면서, 톰 포드에 의해 보테가 베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었다. 그는 합류 당시부터 브랜드 확장을 적극적으로 지휘하며 집중력, 독립적인 사고, 그리고 일에 대한 강한 열정을 보여주었다.
마이어는 보테가 베네타의 핵심 가치로 '최상의 품질과 소재', '뛰어난 장인 정신', '현대적인 기능성', 그리고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을 4가지 주춧돌로 삼았다. 그는 브랜드의 유명한 슬로건인 "자신의 이니셜만으로 충분할 때"("When your own initials are enough"웬 유어 온 이니셜스 아 이너프영어)를 다시 내세워, 로고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보테가 베네타의 오랜 전통을 부활시켰다. 그의 첫 컬렉션에서 선보인 까바백(Cabat까바이탈리아어)은 이러한 핵심 가치를 잘 표현한 대표적인 제품으로 자리매김했다.
3.2. 브랜드 확장 및 성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된 지 불과 몇 개월 만인 2001년 9월, 마이어는 액세서리 중심의 첫 컬렉션을 선보였다. 이후 2년 동안 보테가 베네타는 런던, 파리, 밀라노, 뉴욕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개설하며 글로벌 입지를 강화했다.
그는 또한 여성 및 남성 기성복 컬렉션을 시즌별로 소규모로 선보이기 시작했으며, 2005년 2월에는 여성 기성복 컬렉션의 첫 런웨이 쇼를, 2006년 6월에는 남성 기성복 컬렉션의 첫 런웨이 쇼를 개최했다. 현재 보테가 베네타는 남녀 프레타포르테 컬렉션 외에도 액세서리, 파인 주얼리, 가구, 의자, 테이블웨어, 데스크톱 액세서리, 러기지, 도자기, 안경, 향수, 시계 등 다양한 제품군을 선보이는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성장했다.
그는 보테가 베네타의 라이프스타일을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스위트룸을 세인트 레지스 호텔(로마, 피렌체)과 파크 하얏트 호텔(시카고)에 디자인하여 선보이기도 했다. 2014년에는 일본의 출판물인 Casa BRUTUS카사 브루투스일본어와 협력하여 경제적, 정치적 요인과 2020년 하계 올림픽 준비로 인해 파괴될 위기에 처한 일본의 근대 건축물 보존 인식을 높이는 캠페인을 벌였다.
3.3. 장인 정신 및 교육
마이어는 브랜드의 근간인 장인 정신과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2006년 비첸차에 장인 양성 학교인 La Scuola della Pelleteria라 스쿠올라 델라 펠레테리아이탈리아어를 설립하여 새로운 세대의 장인들을 양성하는 데 기여했다.
3.4. 주요 컬렉션 및 슬로건
마이어의 재임 기간 동안 보테가 베네타의 대표적인 아이템으로 자리 잡은 까바백은 그의 첫 컬렉션에서 소개되었으며, 브랜드의 핵심 가치를 담은 상징적인 제품이 되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이니셜만으로 충분할 때"라는 슬로건을 통해 로고에 의존하지 않는 보테가 베네타의 독특한 정체성을 강화했다.
3.5. 재정적 성과 및 퇴임
토마스 마이어의 리더십 아래 보테가 베네타는 2001년부터 2011년까지 매출이 800퍼센트 증가하는 등 눈부신 성장을 기록했다. 2012년에는 매출이 처음으로 10.00 억 USD를 넘어섰으나, 이후 몇 년간 매출이 변동을 보였다. 2017년에는 생 로랑이 케어링 그룹 내에서 보테가 베네타를 제치고 두 번째로 큰 수익원이 되었다. 결국 케어링은 2018년 6월 13일 토마스 마이어의 사임을 발표했다.
4. 개인 브랜드 '토마스 마이어'
토마스 마이어는 자신의 이름을 딴 패션 라벨을 설립하여 독자적인 활동을 펼쳤다.
4.1. 브랜드 설립 및 확장
토마스 마이어는 1997년에 자신의 수영복 라벨을 설립하고, 1998년에는 온라인 부티크를 론칭했다. 이후 팜비치, 발하버, 이스트 햄튼, 뉴욕 시에 다섯 개의 자신의 이름을 딴 매장을 열었다. 그의 컬렉션은 30개국 이상의 100개 이상의 매장에서 판매되며 국제적인 유통망을 구축했다.
4.2. 투자 및 협업
2013년 11월 19일, 케어링 그룹은 토마스 마이어의 개인 라벨에 투자하여 "더 많은 자사 소유 부티크 추가를 포함한 확장에 필요한 자본을 투입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13년 11월 기준, 이 개인 라벨은 수영복, 니트웨어, 저지 제품에서 연간 약 1000.00 만 USD의 수익을 창출했다. 2018년에는 일본의 캐주얼 의류 소매업체인 유니클로와 협력하여 단발성 리조트웨어 컬렉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4.3. 브랜드 종료
2018년, 개인 브랜드 '토마스 마이어'는 운영을 중단했으며, 이는 디자이너와 케어링 그룹 간의 협력이 완전히 종료되었음을 의미했다.
5. 수상 경력
- 2004년: GQ 독일 어워드 - 패션 인터내셔널 부문 올해의 남자
- 2006년: 미국 럭셔리 인스티튜트 어워드 - 보테가 베네타를 위한 가장 명망 있는 여성 럭셔리 패션 브랜드
- 2006년: 런던 월폴 어워드 - 보테가 베네타를 위한 최고의 국제 브랜드
- 2007년: 텍스틸 비르샤프트(TextilWirschaft)의 독일 포럼 프라이스 어워드 - 디자인 창의성 및 탁월성
- 2007년: FGI "룰 브레이커스" 어워드
- 2007년: 엘르 스타일 홍콩 어워드 - 최고의 국제 액세서리 디자이너
- 2007년: DNR 어워드 - 올해의 디자이너
- 2007년: 월페이퍼 어워드 - 보테가 베네타 도서관 테이블을 위한 최고의 도서관
- 2009년: ACE 어워드 - 올해의 디자이너
- 2012년: 아카데미아 델 프로푸모 - 보테가 베네타 향수를 위한 최고의 향기 브랜드 및 최고의 이탈리아 브랜드
6. 영향
토마스 마이어는 보테가 베네타를 세계적인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변모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품질, 장인 정신, 그리고 시대를 초월하는 디자인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통해 럭셔리 패션 산업의 방향성을 재정립하는 데 기여했다. 특히 로고 중심의 마케팅에서 벗어나 제품 자체의 가치와 장인 정신을 강조하는 그의 접근 방식은 패션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이는 오늘날에도 여러 브랜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의 디자인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선 지속 가능성과 개성을 추구하는 현대적인 럭셔리 개념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초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