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크리스토퍼 라이언 영(Christopher Ryan Young크리스토퍼 라이언 영영어, 1979년 5월 25일 출생)은 미국의 전 야구 투수이자 현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의 단장 겸 야구 운영 부문 사장이다. 그는 2000년부터 2017년까지 메이저리그에서 텍사스 레인저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뉴욕 메츠, 시애틀 매리너스, 캔자스시티 로열스 소속으로 우완으로 활약했다. 영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소속으로 2007년 내셔널 리그 올스타에 선정되었으며,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일원으로 2015년 월드 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 선수 경력 은퇴 후에는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사무국에서 고위직을 역임했으며, 2020년부터 텍사스 레인저스의 단장으로 재직하며 2023년 팀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2. 어린 시절과 아마추어 경력
크리스 영은 학창 시절 농구와 야구에서 뛰어난 운동 능력을 선보이며 두각을 나타냈으며, 학업에서도 우수함을 보였다.
2.1. 고등학교
영은 텍사스주 유니버시티 파크에 위치한 하이랜드 파크 고등학교에 재학하며 농구와 야구 선수로 활약했다. 농구에서 3년간 대표팀 선수로 뛰며 통산 1,000점 이상, 500 리바운드, 200 블록을 기록했다. 야구에서는 2년간 대표팀 선수로 뛰며 14승 3패, 180 탈삼진을 기록했다. 고등학교 시절, 농구에서는 경기당 평균 16점, 12리바운드, 3블록을 기록했고, 야구에서는 8승 3패, 평균자책점 1.70, 80 이닝 동안 95탈삼진을 기록했다.
소포모어 시절이던 1995년 가을, 부상으로 인해 주니어 대표팀에서 성인 대표팀 농구팀으로 승격되었다. 주니어 시절에는 상대팀이 그를 상대하기 위해 코치가 빗자루를 들고 연습할 정도로 그의 존재감이 컸다. 그는 팀이 클래스 4A 지역 II 결승에 진출하는 데 기여했다. 주니어 시절이던 1997년 봄, 맥키니 고등학교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하지만 발의 피로 골절로 인해 6승 0패로 시즌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즌의 많은 부분을 결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미 최고의 프로 선수로 주목받았으며, 하이랜드 파크 선수 7명 중 한 명으로 올-디스트릭트 팀에 선정되었다. 1997년 여름에는 코니 맥 월드 시리즈(Connie Mack World Series)에서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댈러스 머스탱스에서 뛰었으며, 월드 시리즈 5위 결정전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영의 시니어 시즌인 1월에는 농구팀을 디스트릭트 내 23승 1패(디스트릭트 4승 0패)로 이끌며 더 댈러스 모닝 뉴스 클래스 4A 지역 여론조사와 텍사스 농구 코치 협회 주 여론조사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영은 섬세한 포스트 플레이어로 명성을 쌓았으며, 그 시즌에 팀을 UIL 주립 토너먼트 챔피언 결정전으로 이끌었다. 하이랜드 파크는 휴스턴의 월트립 고등학교에 패했지만, 영은 포트 워스 스타-텔레그램에 의해 토너먼트 최다인 18리바운드를 기록했다고 평가받았고, 더 댈러스 모닝 뉴스에서는 17점 14리바운드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영은 시니어 시즌을 텍사스 농구 코치 협회 퍼스트 팀 올-스테이트 선정 선수이자 디스트릭트 9-4A 최우수 선수로 마무리했다. 이후 여름에는 호프하인츠 파빌리온에서 열린 텍사스 고등학교 코치 협회 남서부 올스타 농구 경기에 출전할 선수로 뽑혔다.
영은 1998년 5월 프린스턴 대학교에 진학할 계획을 발표했다. 그는 보스턴 칼리지, 오클라호마 대학교,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밴더빌트 대학교, 예일 대학교 대신 프린스턴을 선택했다. 영의 결정은 농구 분야에서 프린스턴의 국가적 위상이 높아지고 있었고,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랜디 존슨과 함께 뛰었던 스콧 브래들리 야구 코치와 함께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1998년 5월 9일, 영은 모이세스 E. 몰리나 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 5회까지 투구한 후 마이크 매튜스로 교체되며 팀의 노히트 노런에 기여했다. 이 경기는 리전 II 베스트 오브 3 바이-디스트릭트 시리즈를 10점 차 콜드게임으로 확정 짓는 경기였다. 영은 시니어 시절 홈런 파워를 선보였고, 일부 경기에서는 지명타자로 출전하기도 했다. 그 달 말, 영은 카테지 고등학교를 상대로 10점 차 콜드게임 승리에서 또 다른 노히트 노런을 던졌다. 영은 UFCU 디스치-폴크 필드에서 열린 텍사스 주립 4A 챔피언 결정전에서 칼알렌 고등학교를 상대로 승리하며 선발 투수로 나섰고, 성공적인 견제구로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그는 텍사스 고등학교 야구 코치 협회 1998 올-스테이트 야구팀과 텍사스 스포츠 작가 협회 서드 팀 클래스 4A 올-스테이트 야구팀에 선정되었다.
2.2. 대학교 경력
프린스턴 대학교 신입생 시절, 영은 농구와 야구 두 종목에서 아이비 리그 신인왕으로 선정된 최초의 남자 선수였으며, 두 상 모두 만장일치로 선정되었다. 또한 농구에서 세컨드 팀 올-아이비에 선정되었고, 마지막 6주 동안 농구 주간 신인상 7주 전체를 수상했다. 그의 시즌은 아이비 리그 올해의 선수와 농구 위클리의 신입생 올-아메리카 명예로 절정을 이루었다. 통계적으로 영은 1998-99 프린스턴 타이거즈 남자 농구팀에서 경기당 평균 12.9점과 5.3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프린스턴 타이거즈 남자 농구 신입생 최다 득점(387점)과 리바운드(160개) 기록을 세웠다. 그는 또한 하와이 대학교가 주최한 레인보우 클래식 농구 토너먼트 세 경기에서 39점, 19리바운드, 15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전미 초청 토너먼트에서 노스캐롤라이나 주립 울프팩과의 경기에서 시즌 최다인 24점을 기록했다. 야구에서는 영이 2.38의 평균자책점으로 프린스턴과 아이비 리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150명의 타자를 상대하는 동안 단 하나의 홈런만 허용했으며, 두 차례 아이비 리그 주간 신인상에 선정되었다.
영은 1999-2000년 팀과 함께 모든 경기에 선발 출전하며 대학 농구 경력을 마쳤다. 그 시즌의 그의 업적 중에는 두 자릿수 득점 22경기, 자체 단일 시즌 최다 블록 슛 기록인 87개를 경신, 경기당 13.8점, 6.3리바운드, 87블록 슛, 40스틸로 팀을 이끌었다. 그는 또한 105어시스트로 팀에서 두 번째로 많았다. 영은 1978년 이후 프린스턴 선수 중 가장 높은 리바운드 평균을 기록했으며, 학교 역사상 100어시스트를 기록한 13번째 선수이기도 했다. 대학 농구 경력 동안 영은 통산 801점, 350리바운드, 142블록을 기록했다. 그의 최고의 경기 기록으로는 랭킹 11위 캔자스 제이호크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20점, 하버드 크림슨을 상대로 개인 최고 기록인 30점, 오하이오 밥캐츠를 상대로 학교 기록인 9블록 슛이 있다.
2000년 소포모어 야구 시즌 동안 영은 아이비 리그에서 전체 1.82의 평균자책점으로 선두를 달렸고, 컨퍼런스 경기에서는 1.05를 기록했다. 그는 8번의 등판에서 5승 0패의 완벽한 기록을 세웠으며, 49 1/3이닝 동안 52탈삼진을 기록했다. 영은 만장일치로 퍼스트 팀 올-아이비 리그 야구팀에 선정되었으며, 타이거즈를 1996년 이후 첫 아이비 리그 타이틀로 이끌었다. 영은 다트머스 빅 그린과의 챔피언십 시리즈 개막전 5-2 승리에서 완투하며 7탈삼진을 기록했다. 2000년에는 케이프 코드 야구 리그의 채텀 A's에서 대학 여름 야구를 했다.
영은 2000년 아마추어 드래프트 3라운드에서 피츠버그 파이리츠에 지명되었고, 학위를 마칠 수 있다는 확신을 얻기까지 기다린 후 9월 6일 피츠버그와 165.00 만 USD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2002년 6월 프린스턴에서 정치학 학위를 마친 후 풀타임 프로 선수로 전환하기 전까지 저레벨 마이너리그에서 잠시 경험을 쌓았다. 그는 주니어 시절 이후 클래스 A 마이너리그에서 뛰었다. 영은 이후 히커리 크로다즈 선수로 마이너리그 버스에서 통학하며 "재키 로빈슨과 야구 통합이 미국 인종 고정관념에 미친 영향: 뉴욕 타임스의 인종 관련 기사에 대한 양적 내용 분석"이라는 제목의 졸업 논문을 완성했다. 영은 또한 2002년 동문이자 새크라멘토 킹스 사장인 제프 페트리로부터 NBA 새크라멘토 킹스에서 농구를 할 2년 보장 계약을 제안받기도 했다.
3. 프로 선수 경력
크리스 영은 2004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이후 여러 팀에서 활약하며 부침을 겪었으나, 아메리칸 리그 컴백 플레이어상을 수상하는 등 역경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피츠버그 파이리츠는 2000년 MLB 드래프트 3라운드에서 영을 지명했다. 그는 9월 6일 계약을 체결했다. 몇 년간의 마이너리그 생활 후, 그는 몬트리올 엑스포스 구단으로 트레이드되었다. 엑스포스는 그를 텍사스 레인저스로 트레이드했고, 그는 결국 레인저스에서 메이저리그 데뷔를 했다. 레인저스에서 두 시즌도 채 되지 않아 그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트레이드되었다.
3.1. 마이너 리그
2001년, 영은 클래스 A 사우스 애틀랜틱 리그의 히커리 크로다즈에서 12번의 선발 등판에서 5승 3패, 4.12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으며, 두 번의 완투를 기록했다. 2002년, 영은 크로다즈가 리그 타이틀을 차지하는 데 기여하며 26번의 선발 등판에서 11승 9패, 3.11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영은 4월 16일부터 7월 4일까지 15번의 연속 선발 등판에서 승패를 기록했다. 그는 26번의 선발 등판 중 단 두 번만 3자책점 이상을 허용했다. 상대 타자들의 타율은 .234였다. 그는 매트 허지스 투수와 함께 몬트리올 엑스포스로 트레이드되었다. 영은 2003년 시즌을 부상자 명단에서 시작했으며, 4월 말 플로리다 스테이트 리그의 브레바드 카운티 매너티스에 합류했다. 그는 8번의 선발 등판에서 5승 2패, 1.62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으며, 상대 타자들의 타율을 .150으로 억제했다. 그의 시즌은 5월 11일 포트 마이어스 미라클을 상대로 8이닝 1피안타, 볼넷 없는 8탈삼진 투구로 절정을 이루었다. 이는 3승 0패, 0.47 평균자책점의 시즌 초반 성적을 기록했다.
2003년 6월, 영은 더블 A 이스트 리그의 해리스버그 세너터스로 승격되었다. 그는 15번의 선발 등판에서 4승 4패, 4.01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7월에는 3승 0패를 기록했으며, 5번의 선발 등판에서 3.03의 평균자책점으로 시즌을 마쳤다. 그의 시즌은 8월 30일 노리치 내비게이터스를 상대로 8탈삼진을 기록한 마지막 등판과 7월 27일 레딩 필리스를 상대로 7완봉 이닝을 던진 승리로 빛났다. 그는 2004년 4월 3일 에이나르 디아스와 저스틴 에콜스와의 프리시즌 트레이드로 몬트리올 엑스포스에서 텍사스 레인저스로 트레이드되었다. 그는 2004년 시즌을 텍사스 리그의 프리스코 러프라이더스에서 시작했으며, 18번의 선발 등판에서 6승 5패, 4.48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러프라이더스에서 마지막 12번의 선발 등판과 61이닝 동안 허용한 단 두 개의 홈런은 7월 3일 라운드 락과의 경기에서 발생했다. 그는 5월 9일 엘 파소를 상대로 시즌 최다인 8탈삼진을 기록했다.
영은 7월 말 트리플 A 퍼시픽 코스트 리그의 오클라호마 레드호크스로 승격되었고, 5번의 선발 등판에서 완벽한 3승 0패, 1.48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이 짧은 기간 동안 그는 34탈삼진을 기록하는 동안 단 9볼넷만 허용했으며, 상대 타자들의 타율을 .189로 억제했다. 그는 4번의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했고, 5번째 선발 등판에서는 단 2실점만 허용했다. 그의 PCL 선발 등판에서 팀은 4승 1패를 기록했다。 유일한 패배는 8월 7일 타코마 레이니어스와의 경기에서 영이 자책점을 허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9회 4-2 리드를 블론 세이브로 날린 때문이었다. 그는 8월 18일 멤피스 레드버즈를 상대로 마지막 선발 등판을 마친 후 8월 16일부터 22일까지 퍼시픽 코스트 리그 주간 최우수 투수로 선정되었다. 영은 8월 2일 새크라멘토 리버 캐츠를 상대로 한 두 번째 트리플 A 선발 등판에서 6회까지 노히트 노런을 이어갔다.
3.2. 텍사스 레인저스 (첫 번째 재임)
3.2.1. 2004년
영은 2004년 8월 24일 미네소타 트윈스를 상대로 레인저스에서 데뷔했다. 그는 5 2/3이닝을 던지며 4안타와 3자책점을 허용했고, 4탈삼진 3볼넷을 기록했다. 영은 3-0으로 뒤진 상황에서 강판되었으나, 끝내기 홈런으로 5-4 역전승을 거두며 구원받았다.
이 데뷔전으로 영은 1961년 8월 27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 4이닝 이상 동안 6자책점을 허용한 데이브 시슬러 이후 프린스턴 대학 야구 선수로는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경기에 선발 출전하게 되었다. 이 경기는 또한 밥 터프스가 1983년 5월 6일 캔자스시티 로열스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른 이후 프린스턴 대학 야구 선수가 메이저리그 경기에 출전한 첫 사례이기도 했다. 메이저리그에서 50이닝 이상 투구하거나 130타수 이상을 기록한 다른 프린스턴 대학 야구 선수들로는 모 버그, 호머 힐레브랜드, 킹 리어 (야구인), 더치 마이어, 더치 스테럿, 바비 본 (야구선수) 등이 있다. 영은 2007년 9월 11일 뉴욕 양키스에서 데뷔한 프린스턴 동문 로스 올렌도프와 함께 메이저리그에 합류했다. 또 다른 프린스턴 동문인 팀 라헤이는 2008년 3월 31일 필라델피아 필리스 개막전 로스터에 있었으나 2008년 4월 5일까지 출전하지 못했다.
알링턴의 레인저스 볼파크 인 알링턴에서 열린 홈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른 영은 인근 댈러스에서 자라 하이랜드 파크 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온 것과 같았다. 데뷔와 함께 영은 당시 메이저리그에서 존 라우치보다 단 1인치 작은 0.2 m (6 in)로 두 번째로 키 큰 선수였다. 다른 세 명의 현직 및 전직 투수들인 랜디 존슨, 앤드루 시스코, 에릭 힐먼 또한 0.2 m (6 in)이다. 그는 0.2 m (6 in) 우완 투수 마이크 스미스슨을 넘어 레인저스 역사상 가장 키 큰 투수가 되었다.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한 후, 그는 7번의 선발 등판에서 3승 2패, 4.71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영은 11월 19일 2007년까지의 3년 계약을 체결했다.
영의 첫 메이저리그 결정은 8월 29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에게 패한 두 번째 선발 등판에서 나왔다. 그의 첫 승리는 9월 4일 보스턴 레드삭스를 상대로 한 세 번째 선발 등판에서 나왔다. 그의 다섯 번째 선발 등판은 9월 19일 애너하임 에인절스를 상대로 1-0 승리에서 6이닝을 던진 경기였다. 이는 2000년 8월 25일 토론토 블루제이스를 상대로 한 이후 레인저스의 첫 1-0 승리였다. 이 경기까지 669경기 연속 1-0 승리가 없었다. 팀은 2004년 짧은 기간 동안 그의 선발 등판에서 5승 2패를 기록했다.
3.2.2. 2005년
영은 개막전 로스터에 포함된 세 명의 신인 중 한 명이었다. 그는 2005년 레인저스에서 31번의 선발 등판에서 12승 7패, 4.26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그의 12승은 케빈 브라운의 레인저스 신인 최다승 기록과 동률이었다. 그의 시즌은 처음 두 번의 선발 등판에서 7 1/3이닝 동안 7자책점(8.59 평균자책점)을 허용하며 느리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4월 17일부터 6월 13일까지 11번의 선발 등판 동안, 그는 70 1/3이닝 동안 6승 2패, 2.18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평균자책점을 시즌 최저인 2.78로 낮췄다. 여기에는 5월 한 달 동안 5번의 선발 등판에서 3승 0패, 1.42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것이 포함되었는데, 이는 그 달의 모든 메이저리그 자격 투수 중 세 번째로 좋은 기록이었다. 여기에는 5월 3일부터 9일까지 기록한 시즌 최고인 13 2/3이닝 연속 무실점이 포함되었다. 그는 이후 뜨겁고 차가운 시기를 겪었는데, 6월 20일부터 8월 2일까지 9번의 선발 등판에서 2승 4패, 9.07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이어서 마지막 9번의 선발 등판에서는 2.53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그는 개인 최고 기록인 마지막 4번의 승리를 거두며 시즌을 마쳤다.
5월 9일은 영이 8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완봉승에 1이닝 차이로 근접했던 두 번 중 한 번이었다. 다른 한 번은 8월 17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원정 경기였다. 영은 6월 2일 디트로이트와의 7이닝 무승부 경기에서 개인 최고 기록인 8탈삼진을 기록했다. 영이 노히트 노런에 가장 근접했던 경기는 6월 25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5 2/3이닝 동안 무안타 투구를 이어가다가 6회 크레이그 비지오에게 단타를 허용했을 때였다. 시즌 내내 영은 메이저리그에서 두 번째로 높은 득점 지원을 받았는데, 보스턴 레드삭스의 데이비드 웰스에 이어 두 번째였다. 그러나 그는 31번의 선발 등판 중 22번에서 3실점 이하를 허용했다. 2005년 시즌에는 주간 경기에서 11경기에서 5승 0패, 3.47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야간 경기에서 20경기에서 7승 7패, 4.71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으며, 통산 15번의 주간 경기에서 8승 1패, 3.31 평균자책점, 23번의 야간 경기에서 7승 8패, 5.05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신인 시즌에 영은 여러 통계 부문에서 메이저리그 신인 투수 중 상위 5위 안에 들었다. 탈삼진(2위, 137개), 승리(공동 3위, 12승), 평균자책점(4위, 4.26), 선발 등판(5위, 31회), 투구 이닝(5위, 164 2/3이닝)이다. 그는 또한 레인저스 구단 신인 기록인 승리(12승, 1986년 에드윈 코레아와 1989년 케빈 브라운)와 올스타 브레이크 전 승리(8승, 1999년 제프 짐머만과 1986년 호세 구스만)와 동률을 이루었다. 영은 모든 아메리칸 리그 투수 중 9이닝당 7.5탈삼진으로 5위에 올랐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는 애덤 이튼 선발 투수, 오쓰카 아키노리 중간 계투, 그리고 마이너리그 포수 빌리 킬리언을 얻기 위해 터멜 슬레지와 아드리안 곤잘레스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보낸 오프시즌 트레이드의 핵심 선수였다.
3.3.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3.3.1. 2006년

2006년은 영의 비약적인 시즌이었다. 그의 평균자책점은 31번의 선발 등판에서 3.46으로 하락하며 내셔널리그 6위를 기록했고, 개인 최고 기록인 169탈삼진을 기록했다. 그는 11승 5패로 시즌을 마쳤으며, 메이저리그 투수 중 가장 낮은 2.41의 원정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9이닝당 6.72개의 피안타율로 리그 1위, 피안타율은 .206이었다. 그는 2006년 MLB 선발 투수 중 가장 많은 15번의 노 디시전을 기록했다. 2006년 동안 그는 41개로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은 도루를 허용했다. 시즌 동안 영은 내셔널 리그 이달의 투수상을 수상했으며, 세 번이나 6이닝 이상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고, 무패 원정 경기 선발 등판 기록을 24경기로 늘렸다. 이 기록으로 영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소 23경기 연속 원정 경기에서 패배 없이 투구한 단 세 명의 투수 중 한 명이 되었다. 앨리 레이놀즈는 1948년과 1949년에 걸쳐 25경기 연속 원정 경기 무패 기록을 세웠고, 러스 마이어는 1953년과 1954년에 걸쳐 24경기 연속 원정 경기 무패 기록을 세우며 1경기 차로 기록에 미치지 못했다.
현충일 이후 첫 6번의 선발 등판에서, 그는 3승 3패, 4.32 평균자책점에서 7승 3패, 2.97 평균자책점으로 향상되었는데, 이는 38 2/3이닝 동안 단 4자책점만 허용했기 때문이다. 그는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최종 투표를 통해 최종 공식 선발 선수를 결정하는 내셔널 리그의 다섯 후보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으나,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노마 가르시아파라 1루수가 선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6월에 30 2/3이닝 동안 16피안타, 13볼넷을 허용하고 1.17 평균자책점을 유지하며 34탈삼진을 기록한 강력한 활약으로 내셔널 리그 이달의 투수상을 수상했다. 6월의 5번의 선발 등판은 6월 9일 플로리다 말린스를 상대로 한 개인 최고 기록인 12탈삼진 투구와 6월 21일 전 소속팀 텍사스 레인저스를 상대로 한 승리로 빛났다.
9월 22일, 영은 피츠버그 파이리츠와의 경기에서 8 1/3이닝 동안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다가 대타 조 랜다에게 2점 홈런을 허용했다. 이는 파드리스 구단 역사상 첫 노히트 노런이 될 수도 있었다. 파드리스 선수가 9회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것은 1997년 9월 5일 앤디 애쉬비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상대로 기록한 이후 처음이었다. 영은 5 2/3이닝 동안 퍼펙트 게임을 기록할 페이스였다. 영은 또한 6월 활약의 서막으로 5월 30일 콜로라도 로키스를 상대로 8회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그 경기에서 그는 2006년 시즌 동안 8회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최초의 투수였으며, 8회 첫 투구이자 경기 99번째 투구에서 1997년 코니 맥 월드 시리즈에서 팀 동료였던 브래드 호프에게 2루타를 허용했다. 영의 다음 선발 등판은 6월 4일 피츠버그와의 경기에서 첫 5 1/3이닝 동안 안타를 허용하지 않았으며, 이는 2000년 시즌 이후 스티브 트라크셀 (2002년 6월 20일-25일)에 이어 5이닝 이상 연속 무안타를 기록한 두 번째 투수가 되었다.
그는 시즌을 개인 첫 포스트시즌 선발 등판 승리로 마쳤다. 10월 7일, 그는 2006 내셔널 리그 디비전 시리즈 3차전에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상대로 3-1 승리를 거두었다. 그는 6 2/3이닝 동안 무실점 투구를 펼치며 9탈삼진, 2볼넷, 4피안타를 기록했다. 파드리스는 3승 1패로 시리즈에서 패했다. 2006년 영의 6승 0패 원정 경기 기록은 1903년 포스트시즌이 시작된 이래 최소 5승 이상을 기록한 투수 중 49번째 무패 원정 시즌 중 하나였다. 그러나 포스트시즌 원정 승리가 뒤따른 것은 처음이었다.
11월, 그는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재팬 올스타 시리즈에 참가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영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시범 경기에서 선발 투수로 나섰는데,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9회 3점차를 극복하며 무승부를 기록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 경기는 도쿄 돔에서 열린 3경기로 시작하여 오사카와 후쿠오카에서 이어진 5경기 시리즈의 서막이었다. 영은 시리즈의 4차전에 등판했다. 영은 또한 MLB.com을 대신하여 일본 여행 중 일상생활에 대한 블로그를 작성했다. 그는 주일본 미국 대사 Tom Schieffer톰 쉬퍼영어와의 만남, 하라주쿠에서의 시간, 초고속 열차 여행 등을 상세히 기술했다.
3.3.2. 2007년

4월 4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시즌 데뷔전에서 영은 배리 본즈에게 시즌 첫 홈런이자 통산 735번째 홈런을 허용하며 홈런을 허용한 435번째 투수가 되었다. 이 경기는 영의 25경기 연속 원정 경기 무패 기록의 시작이었다. 이 기록은 4월 15일 다저 스타디움에서 열린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의 9-3 패배 경기에서 끝났다. 20경기 연속 원정 경기 무패를 기록한 다른 9명의 투수 중 마지막은 그레그 매덕스로, 그는 1997년과 1998년 동안 22경기 연속 무패를 기록했다. 영의 기록은 2005년 6월 25일에 시작되었다.
4월 10일, 영은 파드리스와 2010년까지의 4년 연장 계약을 체결했는데, 보도에 따르면 2011년 구단 옵션 포함 1450.00 만 USD 가치였다.
6월 16일, 영은 시카고 컵스 올스타 1루수 데레크 리의 등 위쪽 팔에 몸에 맞는 공을 던졌다. 사건 전날, 알폰소 소리아노는 데이비드 웰스에게 홈런을 쳤고, 파드리스는 소리아노가 홈런을 과도하게 감상하고 축하하며 스포츠맨십이 부족했다고 생각했다. 영이 던진 공은 리의 수술한 손목 근처 왼쪽 손을 스쳤다. 키 0.2 m (6 in)의 리가 1루로 걸어가기 시작하자, 키 0.2 m (6 in)의 영과 리는 서로 말을 주고받았고, 양 팀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뛰쳐나와 싸움이 벌어졌다. 영과 리는 제이크 피비와 컵스 벤치 코치 제럴드 페리와 함께 경기에서 퇴장당했다. 6월 18일, 영과 리는 난투극에서의 역할로 각각 5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고, 페리는 3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 모든 출장 정지 선수들은 벌금을 부과받았으며, 피비와 브라이언 자일스도 마찬가지였다. 영과 리는 다음 날부터 시작될 출장 정지 처분에 대해 항소했다. 4회에 난투극이 벌어졌을 당시, 두 투수는 모두 노히트 노런을 기록 중이었다. 영은 경기에서 퇴장당했으며, 파드리스가 결국 1-0으로 승리한 경기에서 승패를 기록하지 못했다.
6월 24일, 제이크 피비가 5이닝 동안 3자책점을 허용하여 평균자책점이 1.98에서 2.14로 상승했다. 이로써 평균자책점 2.08을 기록한 영이 하루 동안 내셔널 리그 선두를 차지하게 되었다. 다음 날, 브래드 페니는 8이닝 동안 단 1자책점만 허용하며 2.04 평균자책점으로 근소한 차이(1.9968 대 1.9970)로 영을 제치고 메이저리그 선두를 차지했다.
7월 1일, 영은 톰 고르젤라니, 로이 오스왈트, 브랜든 웹, 카를로스 삼브라노와 경쟁하는 올스타 최종 투표 후보로 지명되었다. 7월 4일 마지막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동안 영은 플로리다 말린스를 상대로 1-0 승리에서 7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내셔널 리그 평균자책점 선두를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브래드 페니를 근소한 차이로 제치고 메이저리그 선두(1.9968 대 1.9970)를 차지했다. 7월 5일 투표가 마감되었고, 영은 4명의 상대 투수를 물리치고 개인 첫 올스타 게임에 선정되었다. 이 선정으로 영은 루 게릭, 레드 롤프, 론 달링, 브래드 아우스무스, 마이크 렘린저에 이어 올스타 팀에 선정된 6번째 아이비 리그 선수가 되었다.
영은 올스타 브레이크를 맞이하여 메이저리그 평균자책점과 피안타율에서 선두를 달렸으며, 5월 12일 카디널스에게 패한 이후 무패 기록을 이어갔다. 그의 선출 발표 이전에 영은 5경기 출장 정지 처분에 대한 항소를 철회했다. 영은 올스타 브레이크 전 마지막 4경기와 이후 첫 경기에서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지만, 샌프란시스코의 AT&T 파크에서 열린 올스타 게임에 출전이 허용되었다. 아메리칸 리그의 5-4 승리로 영이 패전 투수가 된 5회, 그는 이치로 스즈키에게 올스타 게임 역사상 최초의 인사이드-더-파크 홈런을 허용했다.
7월 24일 선발 등판 3회에 복사근 염좌를 겪은 후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8월 9일, 그는 예정된 선발 등판을 위해 부상자 명단에서 복귀했다. 그는 5월 12일 카디널스에게 패한 이후 12경기 연속(5승) 무패 기록을 이어갔으나, 부상자 명단에서 복귀한 첫 선발 등판에서 5-0 패배를 당하며 다시 카디널스에게 패했다。 영은 2007년 시즌을 메이저리그 피안타율과 9이닝당 피안타율에서 선두를 달렸지만, 도루 허용(44개)에서도 선두를 달렸다. 그는 시즌 후반 부상과 씨름했으며, 8월 30일 선발 등판에서 제이크 피비에게 평균자책점 선두를 내주었다.
3.3.3. 2008년

영은 시즌을 파드리스 로테이션의 두 번째 자리에서 에이스 피비와 매덕스 사이에 시작했다. 그는 로테이션의 두 번째 자리에서 첫 세 번의 등판을 했다. 4월 18일, 그는 등판 순서를 놓쳤고 매덕스가 로테이션의 두 번째 자리로 옮겨갔다. 영은 그 이후로 로테이션의 세 번째 자리에서 투구하고 있다. 로테이션의 세 번째 자리는 2008년 5월 12일부터 15일까지 파드리스가 리글리 필드를 방문하는 동안 선발 등판이 예정되지 않은 유일한 자리였다. 따라서 영은 2007년에 난투극을 벌였던 컵스를 상대로 선발 등판하지 않았다. 2008년 5월 21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경기에서 영은 알버트 푸홀스의 라인 드라이브 타구에 얼굴을 맞았다. 영은 몇 분 동안 그라운드에 앉아 있었지만, 비골 골절과 코에 열상만 입었기 때문에 스스로 경기장을 떠날 수 있었다. 같은 이닝 후반에 푸홀스는 홈 플레이트로 슬라이딩하는 동안 파드리스 포수 조시 바드의 발목을 삐게 했다. 영은 7월 29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상대로 5이닝 무실점 투구를 하며 마운드로 복귀했다. 영은 그 후 8월 10일부터 9월 1일까지 또 다른 부상자 명단 등재로 인해 투구하지 않았고, 로스앤젤레스 다저스가 된 그레그 매덕스가 통산 354번째 승리를 거두며 역대 8위인 로저 클레멘스와 동률을 이룬 경기에서 패전 투수로 복귀했다.
그 후, 9월 7일 밀워키 브루어스의 게이브 카플러가 8회 1사 홈런을 치면서 그는 퍼펙트 게임 달성에 4타자만을 남겨두게 되었다. 그는 2피안타를 허용했고, 볼넷 없이 5탈삼진을 기록했으며, 밀워키 밀러 파크에서 10-1 승리를 거두었다. 영은 첫 퍼펙트 게임이나 첫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114번째 선발 등판에서 개인 첫 완투를 기록했다. 두 경기 후 그는 메이저리그 타자로서 첫 홈런을 쳤다.
3.3.4. 2009년
시즌을 4승 2패로 시작한 후, 영은 마지막 4번의 선발 등판에서 패했으며, 시즌의 나머지 기간 동안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그의 마지막 선발 등판은 6월 14일이었다. 그는 처음에 6월 19일 15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올랐지만, 7월 31일 60일짜리 부상자 명단으로 옮겨졌다. 8월에는 관절경 수술을 받아 관절와순 부분 파열을 치료했다. 그는 어깨 염증으로 인해 부상자 명단에 올라 있었다. 2009년 시즌 동안 그는 4승 6패, 5.21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3.3.5. 2010년
영은 시즌 두 번째 경기에서 6이닝 무실점을 기록했지만, 우측 어깨 염좌로 인해 강판되었다. 그는 시즌 마지막 3번의 선발 등판을 제외하고 거의 전체 시즌을 결장했으며, 시즌을 2승 0패, 0.90 평균자책점으로 마쳤다. 11월, 파드리스는 2011년 옵션을 거절했다.
2010년, 그는 스포팅 뉴스가 선정한 스포츠에서 8번째로 똑똑한 선수로 선정되었다. 그는 시즌 후 FA가 되었다.
3.4. 뉴욕 메츠
3.4.1. 2011년
2011년 1월 17일, 영은 뉴욕 메츠와 110.00 만 USD에 계약했으며, 인센티브를 통해 최대 450.00 만 USD까지 받을 수 있었다. 2011년 4월 5일 메츠에서의 첫 선발 등판에서 영은 5 1/3이닝 동안 7탈삼진을 기록하며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상대로 7-1 메츠의 승리에서 승리를 기록했다. 그는 또한 필리스 선발 투수 콜 해멀스를 상대로 타석에서 3타수 3안타 2타점을 기록했다. 그 경기에서 영은 팀 역사상 한 이닝에 2안타를 기록한 최초의 메츠 투수가 되었다. 시즌 시작 직후, 영은 팔 부상을 입어 2011년 시즌의 나머지 기간 동안 부상자 명단에 오르게 되었다. 시즌 후 그는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
3.4.2. 2012년

2012년 3월 26일, 영은 메츠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최근 우측 어깨 전방 관절낭 파열 수술을 받았다. 그는 시즌 첫 33일을 트리플 A 버팔로 바이슨스의 부상자 명단에서 보낸 후 5월 10일 복귀했다. 영은 이후 5월 11일, 5월 16일, 25일 싱글 A 세인트 루시 메츠에서 세 번의 선발 등판을 한 후 5월 27일 버팔로로 다시 승격되었다. 그는 세 번의 선발 등판에서 17.0이닝 동안 1승 0패, 3.18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5월 31일, 그는 콜럼버스 클리퍼스를 상대로 버팔로에서 6이닝 무실점 투구를 펼쳤다. 메츠는 6월 4일 영을 6월 5일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콜업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12년 6월 5일, 영은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내셔널스 파크에서 메츠로 복귀하여 5이닝 동안 3실점(2자책점)을 허용했으며, 경기는 결국 12이닝 만에 결정되었다. 6월 6일 그의 아내가 출산하여 그는 출산 휴가에 들어갔으며, 이는 6월 10일 예정된 선발 등판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예정이었다. 이 조치는 메이저리그 야구 규정에 따라 영의 휴일 동안 로스터 한 자리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영은 6월 12일 탬파베이 레이스를 상대로 다음 선발 등판을 했으며, 1년여 만에 첫 승리를 거두었다. 그는 시즌 후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
3.5. 워싱턴 내셔널스
3.5.1. 2013년
2013년 2월 21일, 영은 워싱턴 내셔널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체결하고 훈련 캠프에 초대되었다. 2013년 3월 26일, 그는 계약을 옵트아웃한 후 내셔널스로부터 무조건적인 방출을 허가받았다. 2013년 4월 4일, 그는 내셔널스와 재계약했다. 그는 트리플 A 시러큐스 치프스로 배정되었다. 그는 4월 23일 로체스터를 상대로 시즌 데뷔전을 치렀고, 4.2이닝 동안 6실점을 허용했다. 그는 5월 28일 목 부상으로 부상자 명단에 오르기 전까지 6번의 추가 선발 등판을 했으며, 이틀 전 콜럼버스 전에서 1이닝 만에 강판되었다. 그는 시즌 마지막에 걸프 코스트 리그와 쇼트 시즌 오번에서 2번의 선발 등판을 했으며, 부상으로 얼룩진 시즌이 끝났다. 총 9번의 선발 등판에서 그는 1승 2패, 6.81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37이닝 동안 21탈삼진을 기록했다. 어깨와 목 통증을 겪은 후, 그는 흉곽 출구 증후군으로 진단받은 것을 치료하기 위해 수술을 받았다. 이 질환은 투수의 어깨에 압력을 가하는 신경 문제이다. 2013년 11월 19일, 영은 내셔널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으로 재계약했다. 그는 2014년 3월 25일 방출되었다.
3.6. 시애틀 매리너스
3.6.1. 2014년

2014년 3월 27일, 영은 시애틀 매리너스와 인센티브가 높은 1년 계약을 체결했다. 영은 4월 4일 매리너스의 선발 투수로 데뷔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오클랜드 콜리세움은 1998년 이후 첫 비로 인한 경기 취소를 겪었다. 그 결과, 159번의 메이저리그 선발 등판과 102번의 마이너리그 선발 등판 이후, 영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시리즈 후반인 4월 6일, 구원 투수로서 첫 등판(2007년 올스타전을 제외하고)을 했고, 2이닝 무실점 투구를 펼쳤다. 그는 2012년 9월 9일 이후 첫 메이저리그 선발 등판을 4월 13일 오클랜드를 상대로 했다. 그는 6이닝 동안 4피안타 3볼넷을 허용하며 무실점 투구를 펼쳤다. 6월 초까지 영은 MLB.com의 애덤 루이스에 따르면 5승 2패, 3.27 평균자책점으로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컴백 플레이어상 후보로 거론되었다. 부상과 비효율적인 5선발로 인해 어려움을 겪던 로테이션을 안정시키는 데 기여하며, 매리너스 로이드 맥클렌던 감독은 당시 오른손 투수를 "하늘이 내린 선물"이라고 아낌없이 칭찬했다. 영은 시즌을 12승 9패, 29번의 선발 등판에서 3.65 평균자책점으로 마쳤다. 그의 9이닝당 7.8피안타는 아메리칸 리그 6위였다. 시즌 후, 영은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컴백 플레이어상, 스포팅 뉴스 컴백 플레이어상, 플레이어스 초이스 어워드를 수상했다. 시즌이 끝난 후 영은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
3.7. 캔자스시티 로열스
3.7.1. 2015년

2015년 3월 7일, 영은 캔자스시티 로열스와 계약했다. 영은 로열스에서 롱 릴리버 역할을 맡으며 시즌을 시작했다. 그는 4월 12일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와의 로열스 6번째 경기에서 2이닝 무실점 투구를 하며 로열스가 6승 0패로 시즌을 시작하는 데 기여했다. 영은 5월 1일 로열스에서 첫 선발 등판을 했다. 그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상대로 5이닝 노히트 투구를 펼쳤다. 6월 16일, 영은 밀워키 브루어스를 상대로 7이닝 무실점 투구와 3타점을 기록하며 1972년 이후 처음으로 한 경기에서 3타점을 기록한 로열스 투수가 되었다. 7월 말까지 8승 6패, 3.25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후, 영은 5경기 동안 5.11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자 7월 31일 다시 불펜으로 복귀했다. 9월 27일(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날), 영은 7월 28일 이후 첫 선발 등판을 했고,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상대로 5이닝 노히트 투구를 펼쳤다. 10월 20일, 영은 2015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4차전에서 토론토 블루제이스를 상대로 4 2/3이닝을 던졌다. 이는 영의 2006년 내셔널 리그 디비전 시리즈 이후 첫 포스트시즌 선발 등판이었다. 그는 10월 27일 2015년 월드 시리즈 1차전에서 뉴욕 메츠를 상대로 마지막 3이닝 동안 1볼넷 무안타 4탈삼진으로 무실점 투구를 펼치며 14이닝 접전 끝에 로열스가 5-4로 승리하는 데 기여하며 승리 투수가 되었다.
3.7.2. 2016년
2015년 12월 7일, 로열스는 영과 2년 1175.00 만 USD 계약을 체결했으며, 상호 3년차 옵션이 포함되었다고 발표했다. 2016년 시즌을 7번의 선발 등판에서 1승 5패로 시작한 후, 영은 5월 12일부터 28일까지 우측 전완근 염좌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부상자 명단에서 복귀한 후, 영은 로열스에서 불펜 스윙맨으로 계속 활약하며 시즌을 34경기에 출전하여 13번 선발 등판했다. 그는 3승 9패를 기록했으며, 6.1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는데, 이는 그의 풀 시즌 경력 중 가장 높은 평균자책점이었다. 그는 또한 개인 최고 기록인 28개의 홈런을 허용했으며, 9이닝당 10.6개의 안타를 허용하며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
3.7.3. 2017년
영은 캔자스시티 로테이션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불펜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2017년 6월 23일, 영은 네프탈리 펠리스의 영입에 따라 로열스로부터 지명할당되었다. 그는 다음 날 즉시 방출되었다. 2017년 시즌 동안 그는 14경기에서 0승 0패, 7.50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3.8.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두 번째 재임)
2017년 12월 29일, 영은 파드리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2018년 3월 31일 방출되었다.
4. 선수 프로필
크리스 영은 독특한 투구 스타일과 타격에서 간혹 보여준 파워로 주목받았다.
4.1. 투구 스타일
영은 전통적인 파워 피처는 아니었다. 그는 0.2 m (6 in)의 파워 피처의 몸을 가졌지만 제구력이 뛰어난 투수였다. 그의 투구 스타일은 자신과 같은 키의 사이 영 상 5회 수상자인 랜디 존슨보다는 그레그 매덕스에 더 가까웠다. 영은 패스트볼 구속이 134 km/h (83 mph)에서 140 km/h (87 mph) 사이로 낮아 세 번이나 트레이드되었다. 영은 정확한 로케이션을 사용하여 패스트볼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는 또한 또 다른 제구력 투수인 짐 파머와 비교되기도 했는데, 이는 영이 높은 패스트볼에 속임수 같은 늦은 움직임으로 뜬공을 유도했기 때문이다. 그를 상대로 인플레이된 타구의 50% 이상이 뜬공이었다. 2007년 영을 상대로 나온 뜬공 중 3.8%가 홈런이었는데, 이는 평균 약 11%였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 단일 시즌 최고 비율은 2005년 돈트렐 윌리스의 6.2%였다.
2000년대 중반 영의 레퍼토리에는 패스트볼, 커브볼, 슬라이더, 체인지업이 포함되었다. 그의 커브볼은 느린 커브볼이었고, 137 km/h (85 mph) 패스트볼은 전 팀 동료이자 포수 마이크 피아자에 의해 "늦게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점프하는" 공으로 묘사되었다. 그의 커브볼은 타자들이 낮은 구속의 패스트볼에 적응하지 못하도록 균형을 무너뜨리는 데 사용되었다. 전 레인저스 투수 코치 오럴 허샤이저는 영이 모든 위치에 패스트볼을 효과적으로 던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허샤이저는 영의 투구가 "느린 듯 빠른" 공이라고 묘사했는데, 이는 그의 체계적인 투구 동작과 큰 키가 속임수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투구 동작은 또한 그가 세트 포지션에서 투구하는 데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이 걸려 도루에 취약하게 만들었다. 2012년에는 거의 모든 투구가 패스트볼이나 슬라이더였다.
4.2. 타격
영은 통산 타율 .150을 기록했으며, 31안타 중 8개가 장타였다(2루타 6개, 3루타 1개, 홈런 1개). 그는 도루를 기록한 적이 없다. 소수의 프린스턴 대학 출신 선수들만이 메이저리그 홈런을 쳤다. 영이 2008년에 홈런을 치기 전에는 모 버그가 마지막으로 홈런을 친 프린스턴 대학 동문이었다(1939년).
4.3. 연도별 투수 성적
연도 | 팀 | 등판 | 선발 | 완투 | 완봉 | 승 | 패 | 세이브 | 홀드 | 승률 | 상대 타자 | 투구 이닝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사구 | 폭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평균자책점 | WHIP | |||
---|---|---|---|---|---|---|---|---|---|---|---|---|---|---|---|---|---|---|---|---|---|---|---|---|---|
2004 | TEX | 7 | 7 | 0 | 0 | 0 | 3 | 2 | 0 | 0 | .600 | 158 | 36.1 | 36 | 7 | 10 | 0 | 2 | 27 | 1 | 0 | 21 | 19 | 4.71 | 1.27 |
2005 | TEX | 31 | 31 | 0 | 0 | 0 | 12 | 7 | 0 | 0 | .632 | 700 | 164.2 | 162 | 19 | 45 | 2 | 7 | 137 | 3 | 0 | 84 | 78 | 4.26 | 1.26 |
2006 | SD | 31 | 31 | 0 | 0 | 0 | 11 | 5 | 0 | 0 | .688 | 735 | 179.1 | 134 | 28 | 69 | 4 | 6 | 164 | 6 | 1 | 72 | 69 | 3.46 | 1.13 |
2007 | SD | 30 | 30 | 0 | 0 | 0 | 9 | 8 | 0 | 0 | .529 | 705 | 173.0 | 118 | 10 | 72 | 0 | 7 | 167 | 7 | 4 | 66 | 60 | 3.12 | 1.10 |
2008 | SD | 18 | 18 | 1 | 0 | 1 | 7 | 6 | 0 | 0 | .538 | 434 | 102.1 | 84 | 13 | 48 | 4 | 1 | 93 | 3 | 1 | 46 | 45 | 3.96 | 1.29 |
2009 | SD | 14 | 14 | 0 | 0 | 0 | 4 | 6 | 0 | 0 | .400 | 336 | 76.0 | 70 | 12 | 40 | 3 | 2 | 50 | 1 | 0 | 47 | 44 | 5.21 | 1.45 |
2010 | SD | 4 | 4 | 0 | 0 | 0 | 2 | 0 | 0 | 0 | 1.000 | 82 | 20.0 | 10 | 1 | 11 | 0 | 0 | 15 | 1 | 0 | 2 | 2 | 0.90 | 1.05 |
2011 | NYM | 4 | 4 | 0 | 0 | 0 | 1 | 0 | 0 | 0 | 1.000 | 95 | 24.0 | 12 | 3 | 11 | 0 | 1 | 22 | 0 | 0 | 5 | 5 | 1.88 | 0.96 |
2012 | NYM | 20 | 20 | 0 | 0 | 0 | 4 | 9 | 0 | 0 | .308 | 493 | 115.0 | 119 | 16 | 36 | 5 | 2 | 80 | 3 | 0 | 58 | 53 | 4.15 | 1.35 |
2013 | - | 0 | 0 | 0 | 0 | 0 | 0 | 0 | 0 | .--- | 0 | 0.0 | 0 | 0 | 0 | 0 | 0 | 0 | 0 | 0 | 0.00 | 0.00 | |||
2014 | SEA | 30 | 29 | 0 | 0 | 0 | 12 | 9 | 0 | 0 | .571 | 688 | 165.0 | 143 | 26 | 60 | 3 | 3 | 108 | 5 | 1 | 70 | 67 | 3.65 | 1.23 |
2015 | KC | 34 | 18 | 0 | 0 | 0 | 11 | 6 | 0 | 2 | .647 | 500 | 123.1 | 91 | 16 | 43 | 0 | 0 | 83 | 5 | 0 | 44 | 42 | 3.06 | 1.09 |
2016 | KC | 34 | 13 | 0 | 0 | 0 | 3 | 9 | 1 | 2 | .250 | 406 | 88.2 | 104 | 28 | 43 | 1 | 1 | 94 | 3 | 0 | 63 | 61 | 6.19 | 1.66 |
2017 | KC | 14 | 2 | 0 | 0 | 0 | 0 | 0 | 0 | 0 | .--- | 148 | 30.0 | 47 | 7 | 14 | 2 | 1 | 22 | 1 | 0 | 27 | 25 | 7.50 | 2.03 |
MLB 총계 (13년) | 271 | 221 | 1 | 0 | 1 | 79 | 67 | 1 | 4 | .541 | 5480 | 1297.2 | 1130 | 186 | 502 | 24 | 33 | 1062 | 39 | 7 | 605 | 570 | 3.95 | 1.26 |
5. 선수 은퇴 후 경력
선수 은퇴 후 크리스 영은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뒤, 텍사스 레인저스의 단장으로서 팀을 월드 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5.1.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운영
영은 2018년 5월 14일부터 조 토리 최고 야구 책임자 산하의 부사장, 온-필드 운영, 이니셔티브 및 전략 부문에서 행정직으로 활동하며 피터 우드포크 선임 부사장에게 직접 보고했다. 2018년 5월, 영은 온-필드 운영, 이니셔티브 및 전략 부문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MLB 경영진이 되었다. 2020년 2월, 영은 조 토리를 대신하여 MLB의 징계 조치(벌금 및 출장 정지 결정 등) 집행 책임자로서 선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또한 온-필드 운영 및 심판 부서를 감독했다.
5.2. 텍사스 레인저스 단장
2020년 12월 4일, 영은 존 대니얼스의 후임으로 텍사스 레인저스의 단장으로 임명되었다. 영의 단장 재임 기간 동안 레인저스는 천천히 챔피언십 경쟁자로 성장했으며, 2023년 레인저스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5경기 만에 물리치고 2023년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하는 것으로 절정에 달했다.
2024년 9월 13일, 영과 레인저스는 다년 계약 연장에 합의했다. 또한 영은 야구 운영 부문 사장이라는 추가 직책을 받았다.
6. 수상 및 영예
크리스 영은 선수 경력 동안 메이저리그 올스타로 선정되었고, 선수 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화려하게 재기하여 여러 컴백 플레이어상을 수상했으며, 단장으로서는 월드 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 MLB 올스타 선정: 1회 (2007년)
- 내셔널 리그 이달의 투수: 1회 (2006년 6월)
-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컴백 플레이어상: 1회 (2014년)
- 스포팅 뉴스 아메리칸 리그 컴백 플레이어상: 1회 (2014년)
- 플레이어스 초이스 컴백 플레이어상: 1회 (2014년)
- 월드 시리즈 우승: 1회 (2015년 캔자스시티 로열스, 2023년 텍사스 레인저스 단장)
7. 개인 생활
영의 아내인 엘리자베스 패트릭은 내셔널 하키 리그의 패트릭 디비전과 레스터 패트릭 트로피의 이름이 된 레스터 패트릭의 증손녀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워싱턴 캐피털스의 사장이자 소수 지분 소유주인 딕 패트릭이다. 그녀는 또한 프린스턴 대학교 2002년 졸업생이며, 워싱턴 D.C.에서 로스쿨에 다녔다. 이 부부는 슬하에 세 자녀를 두었다.
8. 외부 링크
- [https://www.mlb.com/player/chris-young-432934 MLB.com에서 크리스 영 통계]
- [https://www.espn.com/mlb/player/_/id/6073/chris-young ESPN.com에서 크리스 영 통계]
- [https://www.baseball-reference.com/players/y/youngch03.shtml Baseball-Reference.com에서 크리스 영 통계]
- [https://www.fangraphs.com/statss.aspx?playerid=3196 FanGraphs에서 크리스 영 통계]
- [https://www.thebaseballcube.com/players/profile.asp?ID=96 TheBaseballCube.com에서 크리스 영 통계]
9. 같이 보기
- 댈러스 출신 인물 목록
- 프린스턴 대학교 출신 인물 목록
- 월드 시리즈 선발 투수 목록
-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수상자 및 리그 선두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