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코야마 아키코(小山 明子Koyama Akiko일본어, 1935년 1월 27일 ~ )는 일본의 저명한 배우이자 작가, 강연자이다. 1955년 쇼치쿠 영화사에서 데뷔한 이래 80편이 넘는 영화와 다수의 텔레비전 드라마, 연극에 출연하며 폭넓은 연기 활동을 펼쳤다. 특히 영화 감독 오시마 나기사의 배우자로서 그의 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예술적 동반자 관계를 이어갔다. 1996년 남편 오시마 나기사가 뇌출혈로 쓰러진 후에는 간병에 전념하며 연기 활동을 일시 중단했으나, 간병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진솔한 저술 및 강연 활동을 통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녀는 간병으로 인한 우울증을 극복하고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며 많은 이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2. 초기 생애 및 배경
코야마 아키코는 일본 지바현 이치카와시에서 여섯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은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쓰루미구에서 보냈다.
2.1. 어린 시절과 교육
1953년 가나가와현립 쓰루미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양재 학교에 입학했다. 학창 시절부터 패션쇼에 출연하는 등 예술적 재능을 보였다.
2.2. 초기 경력
양재 학교 재학 중 '가정 요미우리' 잡지의 표지 모델로 발탁된 것을 계기로 쇼치쿠 영화사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1955년 쇼치쿠 영화 『엄마 옆을 봐줘』로 스크린에 데뷔하며 배우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데뷔 초인 1959년 3월에는 일본 영화계의 대표 여배우 중 한 명으로 독일에서 열린 국제 영화 행사에 참석했다. 3월 2일부터 6일까지 개최된 '베를린 일본 영화 예술의 날'과 3월 6일부터 11일까지 개최된 '뮌헨 일본 영화 견본시'에 쇼치쿠 대표 여배우로 참여했다. 3월 1일 베를린에 도착하여 힐튼 베를린 호텔에 묵었으며, 3일에는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4일에는 CCC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5일 베를린을 떠나 뮌헨에 도착하여 켐핀스키 호텔 피어 야레스차이텐에 묵었다. 7일 기자회견, 9일에는 여배우 사인회가 열렸으며, 10일에는 바바리아 스튜디오를 견학했다. 11일 견본시 종료 후 런던, 파리, 제네바, 취리히, 로마, 홍콩 등을 방문한 뒤, 약 한 달 만인 3월 26일 일본 항공편으로 귀국했다. 당시 그녀는 모자와 장갑을 착용한 모습으로 귀국하는 사진이 남아있다. 현지에서 상영된 일본 영화로는 『무법송의 일생』, 『나라야마 부시코』(키노시타 케이스케 감독판), 애니메이션 영화 『백사전』 등이 있었다.
3. 주요 활동 및 업적
코야마 아키코는 1950년대 중반 데뷔 이후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 연극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일본 대중문화에 기여했다. 특히 남편 오시마 나기사 감독과의 협업은 그녀의 배우 경력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3.1. 영화 출연

코야마 아키코는 1955년 쇼치쿠 영화 『엄마 옆을 봐줘』로 데뷔한 이래 8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다. 초기 쇼치쿠 재직 시절에는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하며 연기력을 다졌다. 주요 쇼치쿠 출연작으로는 『동경』(1955), 『신혼백서』(1955), 『태양은 나날이 새롭다』(1955), 『꽃 다시』(1956), 『철부지 사장』(1956), 『너는 꽃과 같이』(1956), 『여기에 행복 있으니』(1956), 『푸른 하늘 검법 벤텐 야차』(1956), 『각모 삼인방』(1956), 『쓰루하치 쓰루지로』(1956), 『소년 미야모토 무사시』(1956), 『마리아 관음 전·후편』(1956), 『교토 5인 남자』(1956), 『여기는 조용하니』(1956), 『맑은 날에』(1956), 『도망친 약혼』(1957), 『총출동 핑크 저택』(1957), 『백자 사람』(1957), 『딸 삼인방』(1957), 『붉은 꽃에』(1957), 『악마의 얼굴』(1957), 『푸른 꽃의 흐름』(1957), 『정치 속의 처녀 천사의 시간』(1957), 『여자만의 거리』(1957), 『꽃은 한탄하지 않는다』(1957), 『가정교사와 여학생』(1957), 『분수』(1958), 『세상 인심은 귀신 같으니』(1958), 『검은 꽃가루』(1958), 『그 손에 넘어가지 마라』(1958), 『신부의 저항』(1958), 『꽃의 소용돌이』(1958), 『여성에 대한 103장』(1958), 『진흙탕 천국』(1958), 『붉은 박쥐』(1958), 『대원성취』(1959), 『삼인방 삼대기』(1959), 『속속 금남의 모래 붉은 팬티』(1959), 『꽃가루』(1959), 『여기에 남자 있으니』(1959), 『부부 합창』(1959), 『굿나잇』(1959), 『사랑을 맹세한 그대라면』(1959), 『행복한 가족』(1959), 『금남의 모래 한여름의 정사』(1960), 『붉은 꽃가루』(1960), 『하얀 파도』(1960), 『통쾌한 신랑』(1960), 『단애에 선 여자』(1960), 『사자와의 결혼』(1960), 『그녀만이 알고 있다』(1960) 등이 있다.
1960년 오시마 나기사 감독과 결혼한 후 쇼치쿠를 퇴사하고, 오시마와 함께 독립 영화사 소조샤(創造社)를 공동 설립했다. 이후 그녀는 오시마 감독의 후속 영화들에 정기적으로 출연하며 그의 작품 세계에 깊이 관여했다. 오시마 감독의 대표작이자 코야마 아키코의 주요 출연작으로는 『일본의 밤과 안개』(1960), 『사육』(1961), 『백주의 살인마』(1966), 『교사형』(1968), 『소년』(1969), 『의식』(1971), 『사랑의 코리다』(1976), 『사랑의 망령』(1978) 등이 있다. 이 작품들은 일본 뉴웨이브 영화의 중요한 흐름을 형성하며 국제적으로도 큰 주목을 받았다.
프리랜서 활동 시기에는 다른 감독들의 작품에도 활발히 참여했다. 『삼대의 잔』(1962, 다이에이), 『작은 모험 여행』(1963, 닛세이 극장 영화부), 『간토 방랑자』(1965, 도에이), 『속 병대 야쿠자』(1965, 다이에이), 『젊은 두목 싸움장』(1966, 다이에이), 『천 삼백 명의 용의자』(1966, 도에이), 『여정』(1967, 도에이), 『속 낭곡 자장가』(1967, 도에이), 『꽃과 과실』(1967, 닛카쓰), 『닌자 무예장』(1967, ATG), 『일본 춘가고』(1967, 쇼치쿠), 『육군 나카노 학교 개전 전야』(1968, 다이에이), 『전후 최대의 도박장』(1969, 도에이), 『속 여자의 경찰』(1969, 닛카쓰), 『쇼와 잔협전 시리즈 칼잡이 당사자』(1969, 도에이), 『여자 극악첩』(1970, 다이에이), 『희극 경사스러운 녀석』(1971, 도호), 『여자 반장 블루스 암벌의 도전』(1972, 도에이), 『은나비 방랑자』(1972, 도에이), 『여름의 여동생』(1972, ATG), 『자식 딸린 살인권』(1976, 도에이), 『사야마 재판』(1976, 도에이), 『이누가미의 악령』(1977, 도에이), 『안개의 깃발』(1977, 도호), 『만자』(1983, 도에이), 『붉은 녹슨 하늘』(1983), 『플루메리아의 전설 천국의 키스』(1983, 도호), 『세토우치 소년 야구단 청춘편 최후의 낙원』(1987, 일본 헤럴드 영화) 등이 있다.
2013년에는 히구치 나오후미 감독의 영화 『인터미션』에 아키코 역으로 출연하며 약 25년 만에 영화계에 복귀하기도 했다.
3.2. 텔레비전 드라마 및 연극

1980년대 이후 코야마 아키코는 영화 활동 외에 텔레비전 드라마와 연극 무대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그녀는 하나토 코바코의 텔레비전 드라마 『도톤보리』(1968)에서 오사카 여성의 정서를 표현했으며, 1976년 방영된 『아칸타레』와 1978년 속편 『속 아칸타레』에서는 메이지·다이쇼 시대 오사카 센바의 엄격한 나리타야 안주인 오히사 역을 맡아 호평을 받았다.
주요 텔레비전 드라마 출연작으로는 TBS의 『산요 텔레비전 극장』 시리즈(1960~1961), 『그린 극장』(1960), NTV의 『사랑의 극장』(1960), NET의 『NEC 선데이 극장』(1961), 『월요 극장』(1961), KR의 『잡초의 노래』(1961), NTV의 『명승부 이야기』(1961), 『야시카 골든 극장』(1961), CX의 『미야모토 무사시 이치조지 결투』(1961), 『검사』(1961), TBS의 『겐지 게이타 시리즈』(1961), 『야마모토 슈고로 아워』(1961), NHK의 『문예 극장』(1961), TBS의 『긴테쓰 금요 극장』(1961~1963), 『도시바 일요 극장』(1962~1967), 『히타치 패밀리 스테이지』(1962), NTV의 『언덕은 꽃 만발』(1962), NHK의 『마쓰모토 세이초 시리즈』(1962), 『아득한 노래, 아득한 마을』(1962), 『달과 장갑』(1962), TBS의 『유도 일대』(1962), 『어머니 2』(1963~1966), NET의 『일본 영화 명작 드라마』(1963), TBS의 『일곱 명의 형사』(1963), YTV의 『악전』(1963), NHK의 『문예 극장』(1963), CX의 『세 명의 사무라이』(1964, 1967), NTV의 『딸의 결혼』(1964), 12ch의 『여의사』(1964), TBS의 『부자매』(1964), KTV의 『구름을 잡는 남자』(1964), NHK의 『여의사기』(1964), TBS의 『미토 고몬』(1964), 『아시아의 새벽』(1964), CX의 『하얀 마어』(1965), NHK의 『장어 번성기』(1965), NTV의 『벤케이』(1965~1966), TBS의 『단게 사젠 1』(1965~1966), MBS의 『겐지 이야기』(1965), TBS의 『아쓰미 기요시의 울어서 될까』(1966~1967), NHK의 『일요일』(1966), NTV의 『그랑프리 극장』(1966~1967), TBS의 『신고 십번 승부』(1966), NHK의 『뒷모습』(1966), MBS의 『여자이다』(1967), NET의 『여름밤 열시 시리즈』(1967), NET의 『내셔널 골든 극장』(1968), KTV의 『오오쿠』(1968), NTV의 『37층의 남자』(1968), NET의 『돌아온 경호원』(1968), TBS의 『더 가드맨』(1970), NHK의 『은하 드라마』(1970), KTV의 『심판의 집』(1970), TBS의 『카오 애정 극장』(1971), NET의 『대충신장』(1971), ABC의 『좋아! 좋아!! 마녀선생』(1971), NHK의 『만가』(1971), NHK의 『신 헤이케 이야기』(1972), NET의 『세상 고치는 봉행』(1972), CX의 『고가라시 몬지로』(1972), TBS의 『신 제국 이야기 피리 부는 아이』(1972), KTV의 『오쿠보 히코자에몬』(1973), ABC/쇼치쿠의 『필살 조력인』(1973~1974), 『필살 시업인』(1976), 『날아라! 필살 우라고로시』(1978), CBC의 『도쿄 시대』(1974), TBS의 『붉은 미로』(1974), NTV의 『덴시치 체포장』(1974~1975), MBS의 『세 할머니』(1974), NHK의 『돌아보지 마라 쓰루키치』(1975), ABC의 『베어내다』(1975), NET의 『비정의 라이선스』(1975), 도카이 텔레비전 방송의 『아칸타레』(1976~1977), NHK의 『마쓰모토 세이초 시리즈』(1977), MBS의 『요코미조 세이시 시리즈』(1977), 도카이 텔레비전 방송의 『속 아칸타레』(1978), TBS의 『코메트상』(1978~1979), ANB의 『특수최전선』(1978), 도카이 텔레비전 방송의 『조파리』(1979), CX의 『라이온 부인 극장』(1980), NTV의 『화요 서스펜스 극장』(1982), MBS의 『그때가 왔다』(1982), TBS의 『여경은 마녀』(1983), KTV의 『오오쿠』(1983), TBS의 『가슴 설레는 딸기들』(1983), ANB의 『토요 와이드 극장』(1984), 『신춘 드라마 스페셜 덴쇼인 아쓰히메』(1985), ABC의 『부장 형사』(1985), NHK의 『사나다 태평기』(1985~1986), YTV의 『교 이치린』(1989), 『주옥의 여자』(1992), TX의 『오다 노부나가』(1994), NHK의 『해협』(2007) 등이 있다.
4. 결혼과 가족
코야마 아키코는 1960년 쇼치쿠의 조감독이었던 오시마 나기사와 결혼했다. 오시마는 그녀에게 "백화점의 무엇이든 사줄게"라고 프러포즈했다고 알려져 있다. 결혼 이듬해인 1961년, 그녀는 남편과 함께 쇼치쿠를 퇴사하고 독립 영화사 소조샤(創造社)를 공동 설립했다. 소조샤는 오시마 감독의 이후 영화들을 제작했으며, 코야마 아키코는 이 영화들에 정기적으로 출연하며 예술적 동반자로서 활약했다.
코야마 아키코와 오시마 나기사 사이에는 두 아들이 있다. 장남은 1963년에 태어난 경영학자 오시마 다케시로, 현재 도쿄 공예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차남은 1969년에 태어난 영화 감독 오시마 신으로, 과거 후지 텔레비전의 디렉터로도 활동했다. 또한 그녀의 삼촌은 사회운동사 연구자인 고야마 히로타케이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2013년 1월 15일 폐렴으로 80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코야마 아키코는 남편의 장례식에서 상주를 맡아 많은 조문객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5. 후기 활동 및 저술
1996년 남편 오시마 나기사 감독이 뇌출혈로 쓰러진 후, 코야마 아키코는 장시간 촬영이 필요한 배우 활동을 잠정 중단하고 남편의 간병에 전념했다. 간병으로 인한 피로와 오시마 프로덕션 직원들의 간병 관련 폭언으로 인해 한때 우울증을 앓기도 했으나, 이를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했다.
2001년에는 개인 사무소인 '코야마 아키코 사무소'를 설립하고, 간병을 주제로 한 강연회 강사 및 코멘테이터, 그리고 작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시작했다. 특히 그녀의 저서들은 간병 경험과 정신 건강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로 많은 사회적 공감을 얻었다. 2005년에 출간된 『아빠는 마이너스 50점 간병 우울증을 넘어 남편 오시마 나기사를 지탱한 10년』은 2008년 제25회 일본 문예대상 에세이상을 수상하며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2010년에는 『코야마 아키코의 행복한 날들』을 출판하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2013년 오시마 나기사 감독이 사망한 다음 날에도 코야마 아키코는 강인한 모습으로 연극 무대의 주연을 맡아 공연을 이어갔다. 공연 후 인터뷰에서는 때때로 눈물로 목이 메이면서도 고인이 된 남편에게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아무런 후회도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그녀의 단독 저서로는 1988년 11월에 출간된 『기품, 배려, 재치』(気だて気くばり気ばたらき일본어)가 있으며, 2000년 12월에는 『생명, 빛나다! 다시 메가폰을 오시마 나기사를 지탱한 간병의 나날』(いのち、輝く! もう一度メガホンを 大島渚を支えた介護の日々일본어)을 출판했다. 2005년 9월에는 『아빠는 마이너스 50점 간병 우울증을 넘어 남편 오시마 나기사를 지탱한 10년』(パパはマイナス50点 介護うつを越えて夫、大島渚を支えた10年일본어)을, 2010년 10월에는 『코야마 아키코의 행복한 날들』(小山明子のしあわせ日和일본어)을 출간했다.
또한 남편 오시마 나기사와 공동으로 저술한 책도 두 권 있다. 1987년 2월에 출간된 『친한 것은 폐가 될까 우리의 인생 작법』(仲よきことは、メイワクか 私たちの人生作法일본어)과 1991년 5월에 출간된 『남녀의 조금 신경 쓰이는 이야기』(男と女のちょっと気になる話일본어)이다.
6. 수상 경력
코야마 아키코는 배우로서의 연기력과 사회적 기여를 인정받아 여러 상을 수상했다.
- 1969년: 『소년』으로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 여우조연상 수상.
- 2021년: 제44회 일본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회장 공로상 수상. 이 상은 2020년 활동을 기려 수여되었다.
7. 평가 및 영향
코야마 아키코는 배우로서 꾸준히 활동하며 일본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의 발전에 기여했다. 특히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페르소나로서 그의 독특한 예술 세계를 구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7.1. 긍정적 평가
그녀의 활동은 단순한 연기 활동을 넘어 사회적으로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남편 오시마 나기사의 간병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저술 및 강연 활동은 간병인의 삶과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간병으로 인한 우울증을 극복한 그녀의 이야기는 많은 간병인과 가족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었으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녀의 진솔한 경험 공유는 간병이라는 개인적인 문제를 공론화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지원의 필요성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7.2. 비판 및 논란
코야마 아키코의 개인적인 삶이나 활동과 관련하여 대중적으로 알려진 비판적 시각이나 논란은 특별히 없다.
8. 관련 항목
- 오시마 나기사
- 오시마 신
-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
- 일본 아카데미상
- 일본의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