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배경
캄 닐리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코목스에서 태어나 메이플리지에서 성장했다. 그의 어린 시절은 아이스하키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으며, 이는 그의 선수 경력의 기반이 되었다.
1.1. 출생 및 어린 시절
닐리는 1965년 6월 6일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코목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메이플리지에서 자랐으며, 대부분의 마이너 경력을 리지 메도스 하키 협회에서 보냈다. 메이플리지 명예의 인물 목록에 그의 이름이 올라 있다.
1.2. 가족 및 개인적 배경
닐리의 부모님은 모두 암으로 사망했다. 1987년 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1993년에는 아버지가 암으로 사망했다. 이러한 개인적인 비극은 닐리가 자선 활동에 깊이 관여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는 1995년에 암 환자들을 돕기 위한 자선 재단인 캠 닐리 재단을 설립하여 부모님의 유산을 기리고 사회에 긍정적인 기여를 했다. 어린 시절 친구 중 한 명은 전 MLB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래리 워커이며, 워커는 한때 골키퍼로서 NHL 경력을 꿈꾸기도 했다. 닐리와 워커는 서로의 기량을 연마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며 함께 하키를 했다.
2. 선수 경력
캄 닐리는 아이스하키 선수로서 마이너 리그와 주니어 리그를 거쳐 NHL에서 밴쿠버 캐넉스와 보스턴 브루인스 소속으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특히 보스턴 브루인스 시절에는 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매김하며 "뱀-뱀 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1. 마이너 및 주니어 경력
닐리는 WHL의 포틀랜드 윈터 호크스 소속으로 팀을 메모리얼 컵 챔피언십으로 이끌었으며, 이는 미국을 기반으로 한 팀이 처음으로 메모리 컵을 차지한 사례이다. 포틀랜드 윈터 호크스는 2023년 3월 18일 그의 등번호 21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으며, 2023년 포틀랜드 윈터 호크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2. NHL 경력
닐리는 1983년 NHL 엔트리 드래프트에서 밴쿠버 캐넉스에 전체 9순위로 지명되며 NHL 경력을 시작했다.
2.2.1. 밴쿠버 캐넉스
닐리는 밴쿠버 캐넉스에서 세 시즌을 뛰었다. 당시 캐넉스의 헤드 코치였던 톰 와트는 닐리의 수비력에 깊은 인상을 받지 못했고, 이것이 그가 트레이드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닐리는 당시 상황에 대해 "스탠 스마일과 토니 탄티 뒤에서 뛰고 있었기 때문에 출전 시간이 많지 않았고, 특히 파워 플레이에서는 더욱 그랬다"고 회상했다.
2.2.2. 보스턴 브루인스
1986년 6월, 닐리의 21번째 생일에 그는 밴쿠버의 1987년 NHL 엔트리 드래프트 3순위 지명권(이후 글렌 웨슬리를 지명하는 데 사용됨)과 함께 보스턴 브루인스로 트레이드되었고, 그 대가로 배리 페더슨이 밴쿠버로 이적했다. 이 트레이드는 브루인스에게 훨씬 유리한 것으로 곧바로 드러났다. 닐리는 "트레이드에 놀랐다. 보스턴에 도착하면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전혀 몰랐고, 10년 동안 내 경력이 그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훈련 캠프 첫날부터 그저 뛸 기회를 얻고 싶었다. 코치들은 '그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자'고 말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감이 점점 더 생겼다. 50골을 넣는 선수가 될 것이라고는 정말 생각하지 못했지만, 신체적인 기여뿐만 아니라 공격적으로도 기여할 기회를 얻었다"고 말했다.
트레이드 이후 첫 풀 시즌에 닐리는 36골을 넣어 팀 내 최다 득점을 기록했고, 72포인트는 전년도 성적의 두 배 이상이었다. 같은 시즌에 그는 143분의 페널티 시간을 기록하기도 했다. 당시 마이크 밀버리는 닐리에게 "페널티 박스에 들어가는 행동에 대해 생각해 보라. 싸울 거라면 너의 방식으로 싸우고, 단지 누군가 도전한다고 해서 싸우지 마라"고 조언했다. 밀버리는 닐리가 누구와 페널티 박스에 들어가는지 이해시키려 했고, "글러브를 벗는 것을 막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단지 너의 반응이 상대 팀과 우리 팀 모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이러한 조언은 닐리가 자신의 역할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만들었고, 이후 그는 자신의 본능과 그 순간에 옳다고 느껴지는 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닐리의 성공은 주로 그의 강하고 정확한 슛, 빠른 릴리스, 그리고 경기의 신체적인 측면에 기꺼이 참여하려는 의지에서 비롯되었다. 185 cm의 키와 97.5 kg의 몸무게를 가진 닐리는 골 득점 능력만큼이나 강력한 보디 체크와 주먹으로 상대를 압도했다. 그는 파워 포워드의 전형이 되었고 "뱀-뱀 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2.3. 부상과 회복력
1991년 5월 5일, 1991년 프린스 오브 웨일스 콘퍼런스 결승전 3차전에서 닐리는 울프 사무엘손의 체크에 부상을 입었고, 6차전에서는 무릎에 다시 타격을 입었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것은 닐리가 부상 부위에 골화성 근염이 발생했다는 사실이었다. 이 부상으로 인해 그는 다음 두 시즌 동안 22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으며, 그 이후로 무릎 문제로 인해 남은 경력 동안 총 162경기만 NHL에서 뛰었다.
1993-94 NHL 시즌에 닐리는 44번째 경기에서 50번째 골을 기록했다. 웨인 그레츠키만이 더 적은 경기에서 50골을 기록했다. 이 기록은 비공식적인데, 50골은 시즌 시작부터 팀이 치른 첫 50경기 내에 기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알렉산더 모길니, 자리 쿠리, 보비 헐과 같은 다른 선수들도 "비공식적으로" 이 기록을 달성했다. 그는 아픈 무릎을 쉬게 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교대 경기에서 결장했지만, 1995-96 NHL 시즌 이후 31세의 나이에 퇴역을 강요한 것은 퇴행성 고관절 질환이었다.
1994년의 기억에 남는 사건 중 하나는 닐리의 오른손 새끼손가락 끝이 장갑을 통해 잘려나가 10~15바늘을 꿰매야 했던 일이다. 2피리어드 초반에 부상을 입은 닐리는 봉합 수술을 받은 후 같은 피리어드 후반에 경기에 복귀했다. 닐리는 어시스트를 기록했지만, 브루인스는 결국 데블스에게 2대1로 패했다.
닐리가 심각한 부상에서 거듭 재기하려는 강렬한 노력은 빌 마스터턴 기념 트로피를 수상하며 인정받았다. 그는 1993-94 시즌 이후 이 상을 받았다. 브루인스는 이후 그의 등번호 8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으며, 이는 팀에서 등번호가 영구 결번된 10번째 선수가 되었다. 짧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놀라운 득점 기록을 세웠다. 1993-94 NHL 시즌에 49경기에서 50골을 기록한 닐리보다 NHL 시즌 동안 더 나은 경기당 골 평균을 기록한 선수는 그레츠키, 마리오 르미외, 브렛 헐뿐이다. 또한, NHL 역사상 닐리보다 더 나은 경력 경기당 골 평균을 기록한 선수는 10명뿐이다. 그는 세 차례 50골을 기록했고, 다섯 차례 올스타전에 출전했으며, 1988년, 1990년, 1991년, 1994년에 라이트 윙 부문 리그 세컨드 팀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2024년 4월 27일 기준으로, 닐리는 보스턴 브루인스 역대 플레이오프 득점 순위에서 55골로 2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는 보스턴의 플레이오프 포인트 순위에서 87포인트로 10위를 차지하고 있다.
2.2.4. 플레이 스타일 및 주요 업적
닐리는 강하고 정확한 슛과 빠른 릴리스, 그리고 거친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플레이 스타일로 유명했다. 그는 파워 포워드의 전형으로 불리며, 득점력과 함께 강력한 피지컬 플레이를 겸비한 선수였다. 그의 이러한 특징은 "뱀-뱀 캠"이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세 차례 50골 시즌을 기록했으며, 다섯 차례 올스타전에 선정되는 등 NHL에서 뛰어난 공격력을 선보였다. 특히 부상으로 경력이 단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경기당 골 평균에서 역대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등 인상적인 득점력을 보여주었다.
3. 선수 경력 통계
캄 닐리의 정규 시즌 및 플레이오프 통계는 다음과 같다.
정규 시즌 | 플레이오프 | |||||||||||
---|---|---|---|---|---|---|---|---|---|---|---|---|
시즌 | 팀 | 리그 | GP | G | A | Pts | PIM | GP | G | A | Pts | PIM |
1981-82 | 리지 메도스 라이트닝 | 미젯 | 64 | 73 | 68 | 141 | 134 | - | - | - | - | - |
1982-83 | 포틀랜드 윈터 호크스 | WHL | 72 | 56 | 64 | 120 | 130 | 14 | 9 | 11 | 20 | 17 |
1983-84 | 포틀랜드 윈터 호크스 | WHL | 19 | 8 | 18 | 26 | 29 | - | - | - | - | - |
1983-84 | 밴쿠버 캐넉스 | NHL | 56 | 16 | 15 | 31 | 57 | 4 | 2 | 0 | 2 | 2 |
1984-85 | 밴쿠버 캐넉스 | NHL | 72 | 21 | 18 | 39 | 137 | - | - | - | - | - |
1985-86 | 밴쿠버 캐넉스 | NHL | 73 | 14 | 20 | 34 | 126 | 3 | 0 | 0 | 0 | 6 |
1986-87 | 보스턴 브루인스 | NHL | 75 | 36 | 36 | 72 | 143 | 4 | 5 | 1 | 6 | 8 |
1987-88 | 보스턴 브루인스 | NHL | 69 | 42 | 27 | 69 | 175 | 23 | 9 | 8 | 17 | 51 |
1988-89 | 보스턴 브루인스 | NHL | 74 | 37 | 38 | 75 | 190 | 10 | 7 | 2 | 9 | 8 |
1989-90 | 보스턴 브루인스 | NHL | 76 | 55 | 37 | 92 | 117 | 21 | 12 | 16 | 28 | 51 |
1990-91 | 보스턴 브루인스 | NHL | 69 | 51 | 40 | 91 | 98 | 19 | 16 | 4 | 20 | 36 |
1991-92 | 보스턴 브루인스 | NHL | 9 | 9 | 3 | 12 | 16 | - | - | - | - | - |
1992-93 | 보스턴 브루인스 | NHL | 13 | 11 | 7 | 18 | 25 | 4 | 4 | 1 | 5 | 4 |
1993-94 | 보스턴 브루인스 | NHL | 49 | 50 | 24 | 74 | 54 | - | - | - | - | - |
1994-95 | 보스턴 브루인스 | NHL | 42 | 27 | 14 | 41 | 72 | 5 | 2 | 0 | 2 | 2 |
1995-96 | 보스턴 브루인스 | NHL | 49 | 26 | 20 | 46 | 31 | - | - | - | - | - |
NHL 합계 | 726 | 395 | 299 | 694 | 1,241 | 93 | 57 | 32 | 89 | 168 |
4. 은퇴 후 경력
선수 은퇴 후 캄 닐리는 아이스하키계에서 중요한 행정직을 맡았으며, 하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영예를 안았다. 또한 비즈니스 분야에서도 활동하며 다방면에서 영향력을 발휘했다.
4.1. 하키 명예의 전당 헌액
닐리는 2005년 하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는 이에 대해 "솔직히 명예의 전당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선수 시절에도 기록에 신경 쓰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저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노력했을 뿐이다. 잘했는지 못했는지는 다른 이야기다"라고 덧붙였다.
4.2. 보스턴 브루인스 임원
2007년 9월 25일, 닐리는 보스턴 브루인스의 부사장으로 임명되었고, 2010년 6월 16일에는 팀의 사장으로 지명되었다. 2011년 6월 15일 수요일, 브루인스가 캐넉스를 상대로 구단 역사상 첫 스탠리 컵 결승전 7차전을 치르게 되면서 닐리는 브리티시컬럼비아로 돌아왔다. 이 경기에서 브루인스는 4대0으로 승리하며 1972년 이후 첫 스탠리 컵을 차지했고, 닐리는 선수 시절에는 들어 올리지 못했던 스탠리 컵을 임원으로서 들어 올리는 영광을 누렸다. 그는 또한 2016년 질레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6 윈터 클래식의 몬트리올 캐나디앵스 동문팀과의 동문 경기에도 참가했으며, 이 브루인스 동문팀에는 레이 부르크, 마크 레키, 테리 오라일리 등이 포함되었고, 마이크 밀버리, 린든 바이어스, 돈 체리 등이 코치를 맡았다.
4.3. 기타 활동
닐리는 2010년 11월 1일 인트라웨스트 코퍼레이션의 IPO로 설립된 휘슬러 블랙콤 홀딩스 이사회에 참여했다. 이 이사회에서 그는 기업 지배 구조 및 지명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5. 연기 경력
캄 닐리는 아이스하키 선수 및 임원 경력 외에도 여러 영화와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재능을 선보였다. 그는 주로 스포츠 관련 역할이나 코믹한 역할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 영화:
- 아웃사이더 (1983년): SOC #2 역
- 덤 앤 더머 (1994년): 씨 배스(Sea Bass) 역
- D2: 마이티 덕스 (1994년): 본인 역 (카메오)
- 미, 마이셀프 & 아이린 (2000년): 씨 배스(Sea Bass) 역
- 마음대로 훔쳐라 (2001년): 역할 불명
- 덤 앤 더머 투 (2014년): 씨 배스(Sea Bass) 역
- TV 프로그램:
- 치어스 (1989년): 바 손님 역 (시즌 8 첫 에피소드 "The Improbable Dream" 카메오)
- 레스큐 미 (2004년): 하키 선수 소방관 역
- 뮤직 비디오:
- 익스트림의 "Hole Hearted" 뮤직 비디오: 린든 바이어스와 함께 밴드와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으로 카메오 출연.
6. 개인 생활 및 자선 활동
캄 닐리는 개인적인 삶에서도 안정적인 가정을 꾸렸으며, 특히 암으로 인한 가족의 아픔을 계기로 활발한 자선 활동을 펼치며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6.1. 가족
닐리는 1996년부터 아내 폴리나 닐리와 결혼 생활을 이어오고 있으며, 두 자녀를 두고 있다. 아들 잭은 1998년에 태어났고, 딸 에이바는 2000년에 태어났다.
6.2. 자선 활동
닐리는 부모님이 모두 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1995년에 캠 닐리 재단을 설립하여 암 환자들을 돕기 위한 자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 재단은 터프츠 메디컬 센터와 협력하여 운영되며, 암 치료를 받는 환자들과 그 가족들이 "닐리 하우스"에서 숙박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닐리 하우스는 환자와 가족들이 치료 기간 동안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며, 이는 암 투병의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큰 위로와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또한 닐리는 1995년 데니스 리어리에게 보스턴 기반의 코미디 자선 공연을 기획하는 데 관심이 있는지 물었고, 이는 매년 열리는 "코믹스 컴 홈" 행사로 발전했다. 이 행사는 코미디 공연을 통해 기금을 모아 캠 닐리 재단의 활동을 지원하며, 지역 사회와 암 환자들에게 희망을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의 자선 활동은 개인적인 아픔을 사회적 기여로 승화시킨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6.3. 인간 관계
닐리는 어린 시절부터 MLB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래리 워커와 절친한 친구였다. 두 사람은 서로의 기량을 연마하기 위해 하키를 함께 하며 경쟁했고, 이러한 우정은 닐리의 성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 미쳤다.
7. 수상, 영예 및 업적
캄 닐리는 선수 시절과 은퇴 후 모두 아이스하키계에서 수많은 수상과 영예를 안았으며, 이는 그의 뛰어난 기량과 리더십을 증명한다.
7.1. 선수 시절 수상 및 영예
- CHL 메모리얼 컵 챔피언: 1983년 (포틀랜드 윈터 호크스 소속)
- 세븐스 플레이어 어워드 수상: 1987년, 1994년 (보스턴 브루인스)
- NHL 올스타전 참가: 1988년, 1989년, 1990년, 1991년, 1996년
- 브루인스 쓰리 스타즈 어워드 수상: 1988년, 1989년, 1990년, 1991년, 1994년, 1995년
- 엘리자베스 C. 뒤프렌 트로피 수상: 1988년, 1991년, 1995년
- NHL 세컨드 올스타 팀 선정 (라이트 윙): 1988년, 1990년, 1991년, 1994년
- 빌 마스터턴 기념 트로피 수상: 1994년
- 보스턴 브루인스 등번호 8번 영구 결번: 2004년 1월 12일
- 하키 명예의 전당 헌액: 2005년
- 레스터 패트릭 트로피 수상: 2010년
- 포틀랜드 윈터 호크스 명예의 전당 헌액: 2023년
- 포틀랜드 윈터 호크스 등번호 21번 영구 결번: 2023년 3월 18일
7.2. 임원으로서의 영예
- 스탠리 컵 챔피언: 2011년 (보스턴 브루인스 사장으로서)
8. 유산 및 평가
캄 닐리는 아이스하키 선수로서의 뛰어난 기량과 파워 포워드의 상징적인 존재로 기억될 뿐만 아니라, 부상을 극복한 회복력과 활발한 자선 활동을 통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인물로 평가받는다.
8.1. 아이스하키에 미친 영향
닐리는 NHL에서 파워 포워드의 전형을 제시한 선수로 평가받는다. 그의 강렬하고 신체적인 플레이 스타일은 많은 후배 선수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특히, 치명적인 부상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재기하려는 그의 의지와 노력은 스포츠계에 큰 귀감이 되었다. 빌 마스터턴 기념 트로피 수상은 이러한 그의 회복력과 헌신적인 노력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그는 짧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높은 경기당 득점률을 기록하며 뛰어난 공격력을 증명했으며, 이는 그가 얼마나 효율적이고 강력한 선수였는지를 보여준다.
8.2. 사회 공헌
닐리의 가장 중요한 유산 중 하나는 그의 자선 활동이다. 부모님의 암 투병과 사망이라는 개인적인 아픔을 계기로 설립된 캠 닐리 재단은 암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실질적인 도움과 희망을 제공하고 있다. "닐리 하우스"를 통한 숙박 지원과 "코믹스 컴 홈"과 같은 기금 모금 행사는 그의 사회적 책임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는 자신의 명성과 영향력을 활용하여 지역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는 그가 단순한 스포츠 스타를 넘어선 사회 공헌자로서 기억되게 한다. 그의 자선 활동은 특히 취약 계층에 대한 지원과 인간적인 연대를 강조하는 그의 가치관을 반영한다.
9. 관련 항목
- 하키 명예의 전당
- 파워 포워드 (아이스하키)
- 50골 50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