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arly Life and Club Career
카를루스 마누엘은 1958년 1월 15일 세투발 현 무이타에서 태어났다. 그는 고향인 리스본 지역에서 축구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G.D. CUF에서 1군 선수로 데뷔하며 프로 축구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1978년에는 F.C. 바헤이렌스로 이적하여 선수로서의 경험을 쌓았다. 이 두 클럽에서의 활약은 그가 포르투갈 축구계의 최고 수준으로 도약하는 발판이 되었다.
1.1. Benfica and Major Club Achievements
바헤이렌스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카를루스 마누엘은 포르투갈 축구의 명문 클럽인 벤피카로 이적하며 프리메이라리가 무대에 입성했다. 벤피카에서 그는 8년 반 동안 318번의 공식 경기에 출전하여 58골을 기록하며 팀의 핵심 미드필더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1980년대 벤피카의 황금기를 이끌며 다음과 같은 수많은 우승을 경험했다.
- 프리메이라리가: 1980-81, 1982-83, 1983-84, 1986-87 시즌에서 총 4회 우승을 차지하며 벤피카의 리그 지배에 크게 기여했다.
- 타사 드 포르투갈: 1979-80, 1980-81, 1982-83, 1984-85, 1985-86, 1986-87 시즌에서 총 6회 우승을 차지하며 벤피카의 컵 대회 강세를 이끌었다.
- 수페르타사 칸디두 드 올리베이라: 1979년과 1984년에 우승을 차지했다.
- 타사 드 온라: 2회 우승을 기록했다.
- UEFA컵 준우승: 1982-83 시즌에는 팀을 UEFA컵 결승까지 이끌었으나, 안데를레흐트에 패해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카를루스 마누엘은 벤피카에서의 활약을 통해 포르투갈 축구계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1.2. Later Club Career
벤피카 구단 이사진과의 마찰로 인해 1988년 1월, 카를루스 마누엘은 스위스 클럽인 시옹으로 이적했다. 그러나 그는 5개월 만에 포르투갈 수도로 돌아와 스포르팅 리스본과 계약했다. 스포르팅에서 첫 시즌인 1988-89 시즌을 안정적으로 보냈지만, 이후 그의 경력은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스포르팅을 떠난 뒤 그는 보아비스타에서 2년간 활약했다. 보아비스타 소속으로 1991-92 시즌 타사 드 포르투갈 우승을 차지하며 다시 한번 주요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이후 1993-94 시즌에 이스토릴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하며 36세의 나이로 은퇴했다.
2. International Career
카를루스 마누엘은 포르투갈 국가대표팀에서 42경기에 출전하여 8골을 기록했다. 그의 국가대표팀 데뷔전은 1980년 3월 26일, 스코틀랜드와의 유로 1980 예선전 원정 경기로, 포르투갈은 이 경기에서 1-4로 패했다.
그의 8골 중 세 골은 포르투갈 축구 역사에 기억될 만한 중요한 득점이었다.
- 1983년 10월 28일, 브로츠와프에서 열린 폴란드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어 포르투갈의 유로 1984 본선 진출에 기여했다.
- 1985년 10월 16일, 서독과의 원정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어 1986년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 지었다. 이 경기는 포르투갈의 "슈투트가르트의 기적"으로 불리며 서독을 상대로 한 역사적인 승리로 기록되었다.
- 1986년 월드컵 본선 조별 리그 첫 경기인 잉글랜드전에서 유일한 골을 기록하며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다.
그러나 1986년 월드컵은 카를루스 마누엘에게 씁쓸한 기억을 남겼다. 포르투갈은 모로코에 패배하며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더불어 이 대회는 포르투갈 선수들이 연루된 살티요 파동이라는 팀 내 갈등으로 얼룩졌고, 이 사건 이후 카를루스 마누엘은 28세의 젊은 나이에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다.
선수 은퇴 후, 카를루스 마누엘은 감독직을 맡기도 했다. 2012년 6월, 그는 루이스 노르툰 드 마투스의 뒤를 이어 기니-비사우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그는 기니-비사우 감독으로서 단 1경기를 지휘했고, 카메룬과의 2013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예선전 원정 경기에서 0-1로 패배한 후 사임했다.
2.1. International Goals
카를루스 마누엘이 포르투갈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기록한 총 8골에 대한 상세 기록은 다음과 같다.
# | 날짜 | 경기장 | 상대 | 점수 | 결과 | 대회 |
---|---|---|---|---|---|---|
1 | 1980년 10월 7일 | 헤스텔루 경기장, 리스본, 포르투갈 | 미국 | 1-0 | 1-1 | 친선경기 |
2 | 1983년 9월 21일 | 조제 알발라드 경기장, 리스본, 포르투갈 | 핀란드 | 2-0 | 5-0 | 유로 1984 예선전 |
3 | 1983년 10월 28일 | 올림픽 경기장, 브로츠와프, 폴란드 | 폴란드 | 1-0 | 1-0 | 유로 1984 예선전 |
4 | 1984년 10월 14일 | 다스 안타스 경기장, 포르투, 포르투갈 | 체코슬로바키아 | 2-1 | 2-1 | 1986년 월드컵 예선전 |
5 | 1985년 1월 30일 | 조제 알발라드 경기장, 리스본, 포르투갈 | 루마니아 | 2-0 | 2-3 | 친선경기 |
6 | 1985년 2월 10일 | 타알리 국립경기장, 타알리, 몰타 | 몰타 | 1-0 | 3-1 | 1986년 월드컵 예선전 |
7 | 1985년 10월 16일 | 네카어슈타디온, 슈투트가르트, 서독 | 서독 | 1-0 | 1-0 | 1986년 월드컵 예선전 |
8 | 1986년 6월 3일 | 에스타디오 테크놀로히코, 몬테레이, 멕시코 | 잉글랜드 | 1-0 | 1-0 | 1986년 월드컵 |
3. Managerial Career
선수 생활을 마친 36세에 카를루스 마누엘은 감독으로 전향했다. 그는 주로 리스본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여러 클럽들을 지도했지만, 감독으로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가 감독을 맡았던 주요 클럽들은 다음과 같다.
- 살게이루스**: 1997-98 시즌 도중, 그는 살게이루스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스포르팅 리스본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 스포르팅 리스본**: 살게이루스에서 스포르팅으로 이적했으나, 팀은 리그 4위에 그쳤고, 그는 곧 해임되었다.
- 브라가**: 스포르팅에서 해임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브라가의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이곳에서도 오래 머물지 못하고 해임되는 운명을 맞았다.
클럽 외에도, 카를루스 마누엘은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잠시 수행하기도 했다. 2012년 6월, 그는 기니-비사우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임명되었으나, 단 한 경기만 지휘하고 물러났다.
4. Honours
카를루스 마누엘은 선수 경력 동안 다음과 같은 수많은 개인 및 단체 수상 기록을 획득했다.
4.1. Club Honours
- 벤피카
- 프리메이라리가: 1980-81, 1982-83, 1983-84, 1986-87
- 타사 드 포르투갈: 1979-80, 1980-81, 1982-83, 1984-85, 1985-86, 1986-87
- 수페르타사 칸디두 드 올리베이라: 1979, 1984
- 타사 드 온라: 2회 우승
- UEFA컵 준우승: 1982-83
- 보아비스타
- 타사 드 포르투갈: 1991-92
4.2. Individual Honours
- CNID 올해의 축구 선수: 1985년
5. Legacy and Reception
카를루스 마누엘은 1980년대 포르투갈 축구의 중요한 상징 중 한 명으로 기억된다. 그는 벤피카의 황금기를 이끌었으며, 국가대표팀에서는 1986년 월드컵 본선 진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등 중요한 순간에 인상적인 득점을 기록했다.
그의 공로를 인정받아 포르투갈 스포츠 신문인 헤코르드는 그를 '포르투갈을 빛낸 100명의 축구 선수' 목록에 포함시켰다. 비록 감독으로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선수로서 남긴 그의 업적과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은 포르투갈 축구 역사에 깊은 발자취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