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교육
치타 리베라는 워싱턴 D.C.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예술적 재능을 보이며 발레 교육을 받았다.
1.1. 어린 시절과 교육
돌로레스 콘치타 피게로아 델 리베로는 1933년 1월 23일 워싱턴 D.C.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 캐서린 리베라(결혼 전 성은 앤더슨)는 정부 공무원이었고, 아버지 페드로 훌리오 피게로아 델 리베로는 미국 해군 군악대의 클라리넷 및 색소폰 연주자였다. 아버지는 푸에르토리코 출신이었으며, 그의 가문은 갈리시아 혈통이었다. 어머니는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아프리카계 미국인 혈통을 가지고 있었다. 리베라는 다섯 자녀 중 한 명이었다. 그녀가 7살 때 아버지가 사망했고, 어머니는 펜타곤에서 일하게 되었다.
1944년, 리베라의 어머니는 그녀를 존스-헤이우드 발레 학교(현재 존스 헤이우드 댄스 학교)에 등록시켰다. 15세가 되던 해, 조지 발란신의 아메리칸 발레 학교 교사가 그녀의 스튜디오를 방문했고, 리베라는 뉴욕 시에서 오디션을 볼 두 명의 학생 중 한 명으로 선발되었다. 그녀는 존스-헤이우드 학교의 운영자 중 한 명인 도리스 존스와 함께 오디션에 참가했다. 리베라는 오디션에 성공하여 아메리칸 발레 학교에 합격하고 장학금을 받았다.
2. 경력
치타 리베라는 댄서로 브로드웨이에 데뷔한 이후 배우와 가수로 활동하며 무대, 영화, 텔레비전을 아우르는 폭넓은 경력을 쌓았다.
2.1. 초기 경력 및 브로드웨이 데뷔 (1950년대-1970년대)
1951년, 리베라는 친구를 따라 일레인 스트리치가 출연하는 《콜 미 마담》 순회공연 오디션에 갔다가 오히려 자신이 역할을 따냈다. 이어서 그녀는 《가이즈 앤 돌스》, 《캉캉》,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가 출연한 《미스터 원더풀》, 《세븐스 헤븐》 등 다른 브로드웨이 작품에 출연했으며, 1956년에는 《모리스 슈발리에 스페셜》에서 춤을 추었다.
1957년, 그녀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아니타 역에 캐스팅되었고, 이 역할은 그녀를 브로드웨이 스타로 만들었다. 1960년, 리베라는 《바이 바이 버디》에서 딕 반 다이크와 함께 로즈 역을 창조하며 토니상 후보에 올랐다. 그녀는 《에드 설리번 쇼》에 세 번 출연했으며, 브로드웨이와 런던에서 피터 마셜과 함께 공연하며 찬사를 받았으나, 영화 버전에서는 재닛 리가 로즈 역을 맡아 출연하지 못했다. 1963년, 리베라는 《주디 갈런드 쇼》에 게스트로 출연했고, 《젠다》에서 앨프리드 드레이크와 함께 캐스팅되었다. 이 브로드웨이 지향 뮤지컬은 순회공연 도중 막을 내렸지만, 1964년 리베라는 《바주르》로 브로드웨이에 복귀했으며, 텔레비전 시리즈 《아우터 리미츠》에도 출연했다.
1966년, 음악 프로듀서 노먼 페티는 그녀의 공연을 본 후 음반 녹음을 제안했다. 그녀의 첫 싱글은 1965년 도트 레코드 레이블에서 발매되었고, 두 번째 싱글은 1966년에 나왔다. 1966년 뉴멕시코주 클로비스에 있는 페티의 스튜디오를 방문하여 더 파이어볼스의 반주로 버디 홀리 커버곡들로 구성된 정규 앨범을 녹음했지만, 이 프로젝트는 발매되지 않았다.
수많은 전국 투어 중, 리베라는 밥 포스가 연출한 《스위트 채리티》에 출연하여 특히 주목받았다. 1969년에는 셜리 매클레인과 함께 영화 《스위트 채리티》의 영화 각색판에서 니키 역을 연기했다. 리베라는 《할리우드 팰리스》에 세 번, 《캐럴 버넷 쇼》에 두 번 출연했으며 (1971년 2월 22일 방영분 포함), 1973년부터 1974년까지 《뉴 딕 반 다이크 쇼》에서 코니 리처드슨 역을 맡았다. 1975년, 리베라는 밥 포스가 연출한 뮤지컬 《시카고》의 오리지널 캐스트에서 그웬 버든과 함께 벨마 켈리 역으로 출연하며 토니상 후보에 올랐다. 그녀는 발레 강사 외에도 레너드 번스타인과 《시카고》에서 함께 출연한 버든을 자신의 성공에 영향을 미친 인물로 꼽았다. 이후 그녀는 2002년 영화 《시카고》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1981년에는 뮤지컬 《피핀》의 텔레비전 영화 버전에서 패스트라다 역으로 출연했으며, 《브링 백 버디》(1981)로 토니상과 드라마 데스크 어워드 후보에, 브로드웨이 뮤지컬 《멀린》(1983)으로 토니상 후보에 올랐다.

2.2. 영화 및 텔레비전 활동
치타 리베라는 브로드웨이 무대 외에도 여러 영화와 텔레비전 작품에 출연하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선보였다. 그녀는 1969년 영화 《스위트 채리티》에서 니키 역으로 출연했으며, 1978년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 2002년 《시카고》, 2021년 《틱, 틱... 붐!》 등의 영화에 출연했다. 텔레비전에서는 1973년부터 1974년까지 CBS 시트콤 《뉴 딕 반 다이크 쇼》에서 코니 리처드슨 역을 맡았고, 1963년 《주디 갈런드 쇼》, 1971년 《캐럴 버넷 쇼》, 2005년 《윌 & 그레이스》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다음은 치타 리베라의 주요 영화 및 텔레비전 출연작 목록이다.
연도 | 제목 | 역할 | 비고 |
---|---|---|---|
1969 | 《스위트 채리티》 | 니키 | |
1978 |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 | 하트랜드의 손님 | |
1983 | 《그는 나를 춤추게 해》 | 본인 | 다큐멘터리 |
2002 | 《시카고》 | 니키 | 카메오 |
2003 | 《브로드웨이: 그곳에 있던 전설들에 의한 황금 시대》 | 본인 | 다큐멘터리 |
2006 | 《칼라마주?》 | 지아니나 | |
2010 | 《더 드론 투게더 무비: 더 무비!》 | 가수 | 목소리 |
2012 | 《캐럴 채닝: 삶보다 거대한》 | 본인 | 다큐멘터리 |
2012 | 《쇼 스토퍼: 가스 드라빈스키의 연극 인생》 | 본인 | 다큐멘터리 |
2018 | 《여전히 무대 뒤에서 기다리며》 | 브로드웨이 디바 | 다큐멘터리 |
2021 | 《틱, 틱... 붐!》 | "선데이" 전설 | |
2023 | 《스튜디오 원 포에버》 | 본인 | 다큐멘터리 |
연도 | 제목 | 역할 | 비고 |
---|---|---|---|
1956 | 《모리스 슈발리에 쇼》 | 본인 | 1회 출연 |
1960 | 《게리 무어 쇼》 | 본인 | 1회 출연 |
1960 | 《에드 설리번 쇼》 | 본인 | 《바이 바이 버디》의 "스패니시 로즈" 공연 |
1963 | 《주디 갈런드 쇼》 | 본인 | 17화 |
1964 | 《아우터 리미츠》 | 데인 부인 | "벨레로 실드" 에피소드 |
1965 | 《할리우드 팰리스》 | 본인 | 1회 출연 |
1971 | 《캐럴 버넷 쇼》 | 다양한 캐릭터 | 4.22화 |
1973 | 《마커스-넬슨 살인 사건》 | 조시 호퍼 | 텔레비전 영화 |
1973-1974 | 《뉴 딕 반 다이크 쇼》 | 코니 리처드슨 | 주연; 7개 에피소드 |
1977 | 《옛날 옛적에 그림 형제가 있었다》 | 진저브레드 레이디 | "헨젤과 그레텔" 에피소드 |
1981 | 《피핀: 그의 삶과 시대》 | 패스트라다 | 텔레비전 영화 |
1982 | 《스트로베리 아이스》 | 공연자 | 텔레비전 영화 |
1985-2004 | 《그레이트 퍼포먼스》 | 본인 | 4회 출연 |
1987 | 《메이플라워 마담》 | 리사 딕스타인 | 텔레비전 영화 |
1997 | 《행복하게 오래오래: 모든 아이들을 위한 동화》 | 케이티 | 목소리, "엄지 공주" 에피소드 |
2004, 2019 | 《도라 더 익스플로러》 | 마녀 | 목소리, 2개 에피소드 |
2005 | 《윌 & 그레이스》 | 레노어 포르티요 | "댄스 카드와 인사 카드" 에피소드 |
2008 | 《조니 앤 더 스프라이츠》 | 여왕 | "조니는 초대받지 않았다" 에피소드 |
2011 | 《서브미션스 온리》 | 글래디스 프랭클린 | "당신은 너무 나빠" 에피소드 |
2.3. 후기 경력 및 주요 작품 (1990년대 이후)
1984년, 리베라는 칸더 앤 엡의 뮤지컬 《더 링크》에서 라이자 미넬리와 함께 출연하여 애나 역으로 첫 토니상과 드라마 데스크 어워드를 수상했다. 1986년, 제리 허먼의 뮤지컬 《제리'스 걸스》에서 공연으로 토니상 후보에 올랐을 때, 그녀는 맨해튼 웨스트 86번가에서 택시와 충돌하는 심각한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그녀의 왼쪽 다리가 12군데 골절되어 18개의 나사와 두 개의 보조기가 필요했다. 재활 후에도 리베라는 무대에서 계속 공연했다. 회복 후 1988년, 그녀는 《캉캉》 전국 투어를 진행했으며, 소설가 대니얼 시몬과 협력하여 식당 사업에 뛰어들었다. 42번가의 9번가와 10번가 사이에 위치한 이 식당은 그녀의 이름을 따 "치타스(Chita's)"라고 명명되었다. 이 식당은 곧 공연 후 인파의 중요한 명소가 되었고 1994년까지 운영되었다.

1993년, 리베라는 칸더 앤 엡이 작곡한 뮤지컬 《거미 여인의 키스》에서 오로라와 거미 여인이라는 이중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하여 뮤지컬 부문 여우주연상으로 토니상과 드라마 데스크 어워드를 수상했다. 이후 리베라는 런던에서 공연된 칸더 앤 엡의 장기 공연 《시카고》 리바이벌에 참여했는데, 이번에는 록시 하트 역을 맡았다. 2001년, 리베라는 굿맨 극장에서 공연된 뮤지컬 《더 비지트》(역시 칸더 앤 엡 작품)에서 클레어 자카나시안 역으로 출연했다. 2002년, 그녀는 케네디 센터 명예상 수상자가 되었다. 2003년, 리베라는 《나인》의 2003년 리바이벌 공연에서 릴리안 라 플뢰르 역으로 브로드웨이에 복귀하여 8번째 토니상 후보(뮤지컬 부문 여우조연상)와 4번째 드라마 데스크 어워드 후보(뮤지컬 부문 뛰어난 여우조연상)에 올랐다. 그녀는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함께 출연했으며, 이후 리바이벌 캐스트 앨범에도 참여했다.
2005년 2월, 그녀는 미셸 리와 함께 《윌 & 그레이스》에 게스트로 출연했으며, 같은 해 12월에는 그녀의 경력을 회고하는 《치타 리베라: 댄서의 삶》이 브로드웨이에서 막을 올랐다. 그녀는 이 자전적 역할로 또 다른 토니상 후보에 올랐다. 2007년 가을 시그니처 극장에서 《더 비지트》에 다시 출연할 예정이었으나, 다음 시즌으로 연기되었다. 대신 그녀는 뉴욕의 페인스타인스 앳 더 리젠시 서퍼 클럽에서 2주간 공연했으며, 2008년에는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시그니처 극장에서 조지 헌과 공동 주연으로 《더 비지트》의 개정판에 출연했다. 리베라는 디즈니 채널의 《조니 앤 더 스프라이츠》에 모든 마법 생물의 여왕으로 게스트 출연했으며, 이 에피소드는 2008년 3월 15일에 첫 방영되었다.

2009년 8월,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리베라에게 대통령 자유 훈장을 수여했다. 1960년대에 리베라는 《치타 리베라: 겟 미 투 더 처치 온 타임》과 《앤 나우 아이 싱》 두 장의 앨범을 녹음했다. 이 초기 1960년대 앨범들은 2013년 2월 스테이지 도어 레코드에서 CD로 재발매되었다. 2008년 11월, 리베라는 세 번째 솔로 앨범 《앤 나우 아이 스윙》을 발매했다. 2011년 11월 30일, 리베라는 앰배서더 극장에서 《더 비지트》의 무대 콘서트 공연에 참여했다. 2012년, 리베라는 스튜디오 54에서 공연된 《에드윈 드루드의 미스터리》 브로드웨이 리바이벌에서 "프린세스 퍼퍼" 역을 맡았다. 2013년 6월 9일, 그녀는 뉴욕 시의 푸에르토리코인의 날 퍼레이드의 그랜드 마셜이었다. 그녀의 자서전 《치타: 회고록》은 2023년에 출판되었다.
리베라는 존 칸더, 프레드 엡, 테렌스 맥낼리가 쓴 마지막 뮤지컬인 《더 비지트》로 브로드웨이에 복귀했다. 이 뮤지컬은 2015년 3월 26일 라이시엄 극장에서 개막하여 2015년 6월 14일에 막을 내렸다. 로저 리스가 공동 주연을 맡았으며, 존 도일이 연출하고 그라시엘라 다니엘레가 안무를 맡았다. 리베라는 이 공연으로 찬사를 받았으며, 토니상 뮤지컬 부문 여우주연상과 드라마 데스크 어워드 후보에 올랐다. 2017년, 아스테어 어워드는 치타 리베라 댄스 및 안무상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2018년, 그녀는 토니상 평생 공로상을 수상했다. 2019년, 《타임 아웃 뉴욕》은 그녀를 "역대 최고의 브로드웨이 디바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리베라는 월트 디즈니 월드의 디즈니 캔들라이트 프로세셔널에 자주 게스트 내레이터로 참여했으며, 가장 최근에는 2021년과 2022년 시즌에 출연했다.
다음은 치타 리베라의 주요 무대 출연작 목록이다.
연도 | 제목 | 역할 | 장소 |
---|---|---|---|
1950 | 《가이즈 앤 돌스》 | 댄서 (대역) | 46번가 극장 |
1953 | 《캉캉》 | 댄서 | 슈버트 극장 (뉴욕 시) |
1955 | 《세븐스 헤븐》 | 피피 | 안타 플레이하우스 |
1956 | 《미스터 원더풀》 | 리타 로마노 | 브로드웨이 극장 (53번가) |
1957 | 《신본 앨리》 | 메히타벨 | |
1957 |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 아니타 | 윈터 가든 극장 |
1960 | 《바이 바이 버디》 | 로즈 알바레즈 | 마틴 벡 극장 |
1964 | 《바주르》 | 아냔카 | 슈버트 극장 (뉴욕 시) |
1975 | 《시카고》 | 벨마 켈리 | 46번가 극장 |
1981 | 《브링 백 버디》 | 로즈 알바레즈 | 마틴 벡 극장 |
1983 | 《멀린》 | 여왕 | 마크 헬링거 극장 |
1984 | 《더 링크》 | 애나 | 마틴 벡 극장 |
1985 | 《제리'스 걸스》 | 공연자 | 세인트 제임스 극장 |
1993 | 《거미 여인의 키스》 | 거미 여인/오로라 | 브로드허스트 극장 |
2003 | 《나인》 | 릴리안 라 플뢰르 | 유진 오닐 극장 |
2005 | 《치타 리베라: 댄서의 삶》 | 본인 | 제럴드 쇼엔펠드 극장 |
2012 | 《에드윈 드루드의 미스터리》 | 프린세스 퍼퍼 / 미스 앤젤라 프라이삭 | 스튜디오 54 |
2015 | 《더 비지트》 | 클레어 자카나시안 | 라이시엄 극장 |
3. 수상 및 영예
치타 리베라는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뛰어난 연기력을 인정받아 수많은 상과 영예를 얻었으며, 특히 그녀의 연기 경력과 평생의 업적을 기리는 특별상들이 많다.
3.1. 주요 연기상
리베라는 토니상에 10번 후보로 지명되었는데, 이는 줄리 해리스와 오드라 맥도널드와 함께 공연자로서 가장 많은 개인 토니상 후보 지명 기록이다. 그녀는 뮤지컬 부문 여우주연상으로 두 번 수상했다. 1984년 《더 링크》에서 애나 역으로 첫 토니상과 드라마 데스크 어워드를 수상했으며, 1993년 《거미 여인의 키스》에서 오로라와 거미 여인 역으로 두 번째 토니상과 드라마 데스크 어워드를 수상했다.
다음은 치타 리베라의 주요 연기상 후보 및 수상 내역이다.
연도 | 시상식 | 부문 | 후보작 | 결과 |
---|---|---|---|---|
1961 | 토니상 | 뮤지컬 부문 여우조연상 | 《바이 바이 버디》 | 후보 |
1976 | 뮤지컬 부문 여우주연상 | 《시카고 | 후보 | |
1981 | 《브링 백 버디》 | 후보 | ||
드라마 데스크 어워드 | 뮤지컬 부문 뛰어난 여우주연상 | 후보 | ||
1983 | 토니상 | 뮤지컬 부문 여우주연상 | 《멀린》 | 후보 |
1984 | 《더 링크》 | 수상 | ||
드라마 데스크 어워드 | 뮤지컬 부문 뛰어난 여우주연상 | 수상 | ||
1986 | 토니상 | 뮤지컬 부문 여우주연상 | 《제리'스 걸스》 | 후보 |
1993 | 《거미 여인의 키스》 | 수상 | ||
드라마 데스크 어워드 | 뮤지컬 부문 뛰어난 여우주연상 | 수상 | ||
2003 | 토니상 | 뮤지컬 부문 여우조연상 | 《나인》 | 후보 |
드라마 데스크 어워드 | 뮤지컬 부문 뛰어난 여우조연상 | 후보 | ||
2006 | 토니상 | 뮤지컬 부문 여우주연상 | 《치타 리베라: 댄서의 삶》 | 후보 |
2015 | 《더 비지트》 | 후보 | ||
드라마 데스크 어워드 | 뮤지컬 부문 뛰어난 여우주연상 | 후보 | ||
드라마 리그 어워드 | 뛰어난 연기상 | 후보 |
3.2. 특별상 및 평생 공로상
2002년, 리베라는 케네디 센터 명예상을 수상하며 이 상을 받은 최초의 라틴계 미국인이 되었다. 2009년 8월,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그녀에게 대통령 자유 훈장을 수여했다. 2015년에는 씨어터 월드 어워드에서 존 윌리스 상을 수상하며 극장 분야 평생 공로를 인정받았다. 2018년에는 플로리다 대학교에서 명예 미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같은 해 제72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토니상 평생 공로상을 수상하며 그녀의 빛나는 경력에 정점을 찍었다.
4. 개인사
1957년 12월 1일, 리베라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함께 춤을 춘 동료 댄서 토니 모덴테와 결혼했다. 그들은 1966년에 이혼했다. 리베라의 공연은 쇼의 성공에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런던에서 공연될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1958년 그녀가 딸 리사 모덴테를 낳을 때까지 연기되었다. 이혼에도 불구하고 리베라와 모덴테는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리베라는 로마 가톨릭 신자였다.
5. 사망
치타 리베라는 91번째 생일을 맞은 지 일주일 후인 2024년 1월 30일, 뉴욕에서 짧은 투병 끝에 사망했다. 그녀의 전 남편 토니 모덴테는 리베라가 사망한 지 5개월도 채 되지 않은 2024년 6월에 사망했다.
6. 유산 및 영향력
치타 리베라는 브로드웨이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공연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으며, 특히 라틴계 예술가로서 후대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그녀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아니타, 《시카고》의 벨마 켈리 등 혁신적인 역할을 창조하며 뮤지컬의 지평을 넓혔다. 그녀의 역동적인 춤과 강렬한 연기는 수많은 배우와 댄서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2017년, 아스테어 어워드는 그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치타 리베라 댄스 및 안무상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2019년, 《타임 아웃 뉴욕》은 그녀를 "역대 최고의 브로드웨이 디바 중 한 명"으로 선정하며 그녀의 독보적인 위상을 재확인했다. 리베라는 단순한 공연자를 넘어, 라틴계 커뮤니티의 자부심이자 미국 공연 예술계의 다양성을 상징하는 인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