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조르즈 지 아모링 캄푸스(Jorge de Amorim Campos조르즈 지 아모링 캄푸스포르투갈어, 1964년 8월 17일 ~ )는 흔히 조르지뉴(Jorginho조르지뉴포르투갈어)로 알려진 브라질의 전 축구 선수이자 현 축구 감독이다. 그는 빠르고 기술적이며 성실한 라이트백으로, 당대 최고의 풀백 중 한 명이자 브라질 역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조르지뉴는 브라질에서 다섯 개 클럽, 독일에서 바이어 04 레버쿠젠과 FC 바이에른 뮌헨에서 6년, 일본 가시마 앤틀러스에서 3년을 뛰었다. 국가대표팀에서는 1994년 FIFA 월드컵에서 브라질의 우승을 이끌었다.
2002년 선수 생활 은퇴 후 잠시 감독직을 맡았으며, 4년간 둥가 감독의 브라질 국가대표팀 수석 코치로 활동했다. 이후 그는 브라질의 여러 클럽과 일본의 전 소속팀 가시마 앤틀러스, 아랍에미리트의 알 와슬에서 감독직을 수행하며 지도자 경력을 이어갔다. 특히 그는 빈곤한 어린이를 위한 사회 공헌 프로젝트인 '볼라 프라 프렌치'를 설립하여 축구라는 영역을 넘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 어린 시절 및 배경
조르지뉴는 1964년 8월 17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사고로 잃고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 13세에 고향 리우데자네이루의 아메리카 FC에 입단하며 축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센터백 테스트를 받았으나, 신장 문제로 인해 풀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그는 민첩성과 뛰어난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두각을 나타냈고, 17세에 에두 감독의 눈에 띄어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3. 선수 경력
조르지뉴는 브라질, 독일, 일본 등 여러 리그에서 인상적인 선수 경력을 쌓았다.
3.1. 클럽 경력
조르지뉴는 고향 리우데자네이루의 아메리카 FC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했으며, 한 시즌 만에 플라멩구로 이적했다. 플라멩구에서는 지쿠 등과 함께 활약하며 1986년 캄페오나투 카리오카와 1987년 코파 우니앙 우승에 기여했다. 1988년에는 기린컵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1989년에는 해외로 진출하여 독일 분데스리가의 바이어 04 레버쿠젠에 입단했다. 당시 독일 팀들이 대부분 5-3-2 또는 3-5-2 포메이션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의 뛰어난 공격 능력이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1991-92 시즌에는 주장을 맡았고, 리그에서 우베 바인의 16개에 이어 2위인 14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으며, 이 시즌 동안 5골을 넣었다.
독일에 머물면서 1992-93 시즌에는 리그 거함인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다. 그는 주로 볼란치로 뛰며 팀에 빠르게 적응했고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 시즌에도 10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1993-94 시즌에는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과 치열한 우승 경쟁을 벌였는데, 34라운드 샬케 04와의 경기에서 피로로 인해 벤치에서 시작했지만, 전반 20분부터 출전하여 결승골을 넣어 팀의 승리에 기여했다. 그 결과 바이에른 뮌헨은 카이저슬라우테른을 승점 1점 차로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조르지뉴는 마지뉴와 함께 마이스터샬레를 들어 올린 최초의 브라질 선수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는 바이에른에서 주장 완장을 차기도 했다. 분데스리가 통산 154경기에서 15골 39도움을 기록했다.
1994-95 시즌 중반까지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었으나, 팀이 장피에르 파팽, 알랭 주터 등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면서 외국인 선수 제한 규정으로 인해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다. 시즌 도중 바이에른이 그를 다른 유럽 클럽으로 이적시키려 했으나, 지쿠의 형이자 당시 가시마 앤틀러스의 감독이었던 에두의 제안을 받아 1995년 가시마 앤틀러스로 이적했다.
가시마에서는 주로 라이트백이나 볼란치로 뛰었다. 1995년 J리그 퍼스트 스테이지 개막전인 3월 18일 요코하마 F. 마리노스전에서 데뷔했으며, J리그 첫 골은 3월 25일 산프레체 히로시마전에서 기록했다. 1996년 J리그에서는 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며, 한 해 동안 많은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활약하여 J리그 최우수 선수상과 J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1997년 J리그컵 준결승 나고야 그램퍼스와의 1차전에서 결승골을 넣었고, 결승전 주빌로 이와타와의 1차전에서도 결승골을 넣어 팀의 승리에 기여했다. 가시마는 2차전에서도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 시즌 리그컵에서 7골을 기록하며 팀 우승에 크게 공헌했다. 같은 해 천황배 준결승 도쿄 가스 SC와의 경기에서 1골을 넣어 결승에 진출했고, 새해 첫날 열린 결승전에서 요코하마 플뤼겔스를 꺾고 우승했다. 1998년 J리그에서는 주빌로 이와타를 꺾고 J리그 연간 우승을 차지했다. J리그 통산 108경기에서 17골을 기록했다.
1999년 브라질로 돌아와 상파울루에 입단했으며, 2000년부터 2001년까지 바스쿠 다 가마에서 뛰었다. 바스쿠 다 가마 시절에는 제1회 FIFA 클럽 월드컵에 출전하여 코린치앙스에게 패해 준우승을 차지했다. 2001년 바스쿠에서 호마리우 및 베베투와 한 팀에서 뛰었으나, 그들과 잘 지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002년 플루미넨시를 마지막으로 2003년 39세의 나이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3.2. 국가대표 경력
조르지뉴는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64경기에 출전하여 3골을 기록했다. 1987년 6월 에콰도르전에서 브라질 성인 대표팀에 데뷔하여 첫 골을 기록했다.
그는 1988년 서울 올림픽에 브라질 올림픽 대표팀으로 참가하여 은메달을 획득했다. 1990년 FIFA 월드컵과 1994년 FIFA 월드컵에서 주전 선수로 활약했다.
1990년 월드컵에서는 3-5-2 시스템의 윙백으로 뛰며 견고한 수비, 전방 연결, 정확한 크로스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쳐 서독의 안드레아스 브레메에 비견될 정도의 좋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후 약 2년간은 대표팀에서 멀어졌다.
1994년 FIFA 월드컵에서는 전 경기에 선발 출전하며 조국의 우승에 기여했다. 조별 리그 2차전 카메룬전에서 마르시우 산투스의 골을 어시스트했고, 준결승 스웨덴전에서는 크로스로 호마리우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하여 결승 진출에 공헌했다. 미국과의 16강전에서는 경고를 받았으나, 며칠 후 FIFA 월드컵 올스타팀에 이름을 올렸다. 이탈리아와의 결승전에서도 견고한 플레이를 펼쳤고, 더블 팀을 벗겨내는 플레이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경기 시작 20분 만에 부상으로 카푸와 교체되었다. 브라질은 승부차기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대회 기간 동안 공격 시에는 윙어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수비에서도 거의 완벽한 플레이로 팀에 기여했으며, FIFA가 선정한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이름을 올렸다.
가시마 앤틀러스 소속이던 1995년 코파 아메리카 1995에 출전했으나, 코파 아메리카 이후 마리우 자갈루 대표팀 감독의 연령 고려 선수 선발 방침에 따라 1995년 8월 9일 일본에서 열린 일본과의 경기가 그의 마지막 국가대표 경기가 되었다.
4. 감독 경력
조르지뉴는 선수 은퇴 후 감독 경력을 시작했다.
4.1. 보조 코치
2006년에는 그의 첫 소속팀인 아메리카 FC의 감독으로 현장에 복귀했다. 같은 해 여름부터 2010년까지 둥가 감독 아래 브라질 국가대표팀의 수석 코치로 일했다. 2007년 11월 둥가가 브라질 축구 협회로부터 징계를 받아 경기에 나올 수 없게 되자, 2008년 두 차례의 친선 경기에서 감독 대행으로 팀을 이끌었다. 그는 아일랜드와 스웨덴을 상대로 모두 1-0 승리를 거두었다. 두 사람은 2010년 FIFA 월드컵 8강전에서 네덜란드에게 패배한 후 국가대표팀을 떠났다.
4.2. 클럽 감독
2010년 월드컵 남미 대회 종료 후 2010년 고이아스 감독을 맡았으나, 11월 8일 해임되었다. 2011년 3월 1일에는 피게이렌시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재정적으로 여유롭지 않고 인지도 있는 선수를 영입하지 못했던 피게이렌시를 시즌 막판까지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출전권을 다투는 팀으로 만들며 최종 20팀 중 7위를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조르지뉴는 그해 리그 최우수 감독 후보 3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2011년 12월 21일 피게이렌시를 떠나 선수 시절 몸담았던 가시마 앤틀러스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2012년 J리그컵과 수루가 뱅크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했지만, 한 시즌 만에 팀을 떠났다.
2013년 3월 17일, 그는 친정팀 플라멩구의 감독으로 부임했지만, 6월 6일 해고되었다. 이후 폰치 프레타와 알 와슬을 거쳐 2015년 8월 16일 다시 친정팀 바스쿠 다 가마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2015년 강등을 피하지 못했지만 팀에 유임되었고, 2016년 캄페오나투 카리오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즉시 승격을 달성한 후 2016년 11월 28일 사임했다.
2017년 6월 1일 바이아의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나,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해임되었다. 2018년 5월 21일에는 해임된 마르셀루 샤무스카의 뒤를 이어 세아라의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6월 4일 "개인적인 사정"을 이유로 사임했다. 사임 다음 날, 그는 다시 바스쿠 다 가마로 돌아왔다고 발표되었다.
바스쿠 다 가마에서 10경기 만에 2018년 8월 13일 해고되었다. 2019 시즌 동안에는 2부 리그 팀인 폰치 프레타와 코리치바를 감독하며 코리치바를 1부 리그로 승격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새로운 계약 조건에 합의하지 못해 12월 11일 팀을 떠났다. 2020년 8월 21일에는 해고된 에두아르두 바로카의 후임으로 코리치바 감독으로 세 번째 부임했으나, 팀이 강등권에 머물자 10월 25일 해임되었다.
2021년 4월 5일, 그는 1부 리그의 아틀레치쿠 고이아니엔시 감독으로 임명되었으나, 13경기 만에 5월 15일 사임했다. 2021년 7월 3일에는 1부 리그 신생팀인 쿠이아바의 감독직을 맡았다. 그는 팀을 1부 리그에 잔류시키는 데 성공했으나, 계약 만료 후 새로운 조건에 합의하지 못해 팀을 떠났다.
2022년 5월 16일, 그는 해고된 움베르투 라우제르를 대신하여 아틀레치쿠 고이아니엔시로 돌아왔으나, 8월 27일 해임되었다. 9월 5일에는 2부 리그의 바스쿠 다 가마로 다시 돌아왔고, 승격을 달성한 후 11월 10일 팀을 떠났다.
2024년 3월 25일, 태국의 부리람 유나이티드로부터 태국 리그 우승과 AFC 챔피언스리그 성공을 목표로 하는 제안을 수락하며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짧은 기간 후 7월 27일 코리치바로 세 번째로 돌아왔으나, 11월 11일 상호 합의 하에 팀을 떠났다.
5. 개인 삶 및 사회 활동
조르지뉴는 거듭난 기독교인이다. 그는 동료 축구 선수인 클라우지우 타파레우와 비스마르크와 함께 1998년 월드컵 기간 동안 제작 및 배포된 영화 '예수'의 특별판에서 자신의 신앙을 나누는 모습이 담기기도 했다.
또한 그는 리우데자네이루 과달루페의 슬럼 지역에 '볼라 프라 프렌치'(Bola Pra Frente)라는 클럽을 설립했다. 이 시설은 빈곤한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현재 약 900명의 6세부터 17세까지의 남녀 청소년들이 연령에 맞춰 학업, 스포츠, 직업 훈련 등을 배우고 있다.
6. 통계
6.1. 선수 통계
클럽 | 리그 | 출전 | 득점 |
---|---|---|---|
아메리카-RJ | 브라질 | 20 | 0 |
플라멩구 | 브라질 | 188 | 7 |
바이어 레버쿠젠 | 독일 분데스리가 | 87 | 9 |
바이에른 뮌헨 | 독일 분데스리가 | 67 | 6 |
가시마 앤틀러스 | J리그 | 103 | 17 |
상파울루 | 브라질 | 13 | 1 |
바스쿠 다 가마 | 브라질 | 28 | 2 |
플루미넨시 | 브라질 | 4 | 0 |
총계 (클럽) | 510 | 42 |
연도 | 출전 | 득점 |
---|---|---|
1987 | 1 | 1 |
1988 | 7 | 1 |
1989 | 10 | 0 |
1990 | 7 | 0 |
1991 | 1 | 0 |
1992 | 2 | 1 |
1993 | 13 | 0 |
1994 | 12 | 0 |
1995 | 11 | 0 |
총계 (국가대표) | 64 | 3 |
6.2. 감독 통계
팀 | 국적 | 시작 | 종료 | 기록 | ||||
---|---|---|---|---|---|---|---|---|
경기 | 승 | 무 | 패 | 승률 (%) | ||||
아메리카-RJ | BRA | 2005년 12월 | 2006년 4월 | 14 | 6 | 3 | 5 | 42.86 |
고이아스 | BRA | 2010년 8월 29일 | 2010년 11월 8일 | 20 | 6 | 4 | 10 | 30.00 |
피게이렌시 | BRA | 2011년 3월 1일 | 2011년 12월 4일 | 47 | 21 | 14 | 12 | 44.68 |
가시마 앤틀러스 | JPN | 2011년 12월 21일 | 2012년 | 34 | 12 | 10 | 12 | 35.29 |
플라멩구 | BRA | 2013년 3월 17일 | 2013년 6월 6일 | 14 | 7 | 4 | 3 | 50.00 |
폰치 프레타 | BRA | 2013년 8월 25일 | 2013년 12월 13일 | 32 | 8 | 11 | 13 | 25.00 |
바스쿠 다 가마 | BRA | 2015년 8월 16일 | 2016년 11월 28일 | 87 | 44 | 24 | 19 | 50.57 |
바이아 | BRA | 2017년 6월 2일 | 2017년 7월 31일 | 14 | 4 | 6 | 4 | 28.57 |
세아라 | BRA | 2018년 5월 21일 | 2018년 6월 4일 | 3 | 0 | 0 | 3 | 0.00 |
바스쿠 다 가마 | BRA | 2018년 6월 5일 | 2018년 8월 13일 | 10 | 4 | 1 | 5 | 40.00 |
폰치 프레타 | BRA | 2019년 2월 8일 | 2019년 8월 25일 | 31 | 13 | 11 | 7 | 41.94 |
코리치바 | BRA | 2019년 9월 23일 | 2019년 12월 11일 | 15 | 9 | 5 | 1 | 60.00 |
코리치바 | BRA | 2020년 8월 21일 | 2020년 10월 25일 | 13 | 3 | 4 | 6 | 23.08 |
아틀레치쿠 고이아니엔시 | BRA | 2021년 4월 5일 | 2021년 5월 15일 | 13 | 8 | 4 | 1 | 61.54 |
쿠이아바 | BRA | 2021년 7월 5일 | 2021년 12월 16일 | 32 | 10 | 14 | 8 | 31.25 |
아틀레치쿠 고이아니엔시 | BRA | 2022년 5월 16일 | 2022년 8월 27일 | 27 | 10 | 6 | 11 | 37.04 |
바스쿠 다 가마 | BRA | 2022년 9월 5일 | 2022년 11월 10일 | 10 | 5 | 2 | 3 | 50.00 |
부리람 유나이티드 | THA | 2024년 3월 25일 | 2024년 5월 21일 | 9 | 7 | 2 | 0 | 77.78 |
코리치바 | BRA | 2024년 7월 27일 | 2024년 11월 11일 | 18 | 8 | 3 | 7 | 44.44 |
총계 | 445 | 185 | 130 | 130 | 41.57 |
7. 수상 내역
7.1. 선수
플라멩구
- 코파 우니앙: 1987
-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1986
- 타사 과나바라: 1984, 1988
- 기린컵: 1988
바이에른 뮌헨
- 분데스리가: 1993-94
가시마 앤틀러스
- J리그: 1996, 1998
- J리그컵: 1997
- 천황배: 1997
- FUJI XEROX SUPER CUP: 1997, 1998
바스쿠 다 가마
-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이 A: 2000
- 코파 메르코수르: 2000
- 타사 과나바라: 2000
플루미넨시
-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2002
브라질 국가대표팀
- FIFA 월드컵: 1994
- FIFA U-20 월드컵: 1983
- 하계 올림픽 은메달: 1988
- 팬아메리칸 게임 은메달: 1983
- 루스컵: 1987
7.2. 감독
가시마 앤틀러스
- J리그컵: 2012
- 수루가 뱅크 챔피언십: 2012
바스쿠 다 가마
-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2016
부리람 유나이티드
- 타이 리그 1: 2023-24
7.3. 개인
- FIFA 페어플레이상: 1991
- FIFA XI: 1991
- FIFA 월드컵 올스타팀: 1994
- J리그 최우수 선수상: 1996
- J리그 베스트 일레븐: 1996
- J리그컵 MVP: 1997
- 앤틀러스 공로상: 2009
8. 유산 및 평가
조르지뉴는 선수 시절 '세계 최고의 라이트백'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스카이 스포츠는 그를 브라질 역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특히 J리그에서는 그가 뛰었던 외국인 수비수 중 2위로 평가받을 만큼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감독으로서도 그는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피게이렌시를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출전권 경쟁권으로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았고, 최우수 감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조르지뉴는 단순한 축구 선수를 넘어 사회 공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긍정적인 유산을 남겼다. 그가 설립한 '볼라 프라 프렌치' 프로젝트는 리우데자네이루의 빈민가에서 어린아이들에게 교육과 스포츠, 직업 훈련의 기회를 제공하며 약 900명의 청소년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그가 축구계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존경받는 인물로 기억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