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arly Life
저롬 이긴라는 1977년 7월 1일 앨버타주 에드먼턴에서 태어나 인접 도시인 세인트앨버트에서 성장했다. 그의 아버지 아데쿤레는 원래 나이지리아 출신의 변호사로, 캐나다에 도착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엘비스"로 바꿨다. 그의 성인 '이긴라'는 아버지의 모국어인 요루바어로 "큰 나무"를 의미한다. 이긴라의 어머니 수잔 슈카드는 오리건주 출신으로, 마사지 치료사이자 음악 교사로 일했다. 이긴라의 부모님은 그가 두 살 때 이혼했으며, 이후 그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으며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1.1. Childhood and Youth Sports
어린 시절 이긴라는 아이스하키 외에도 야구를 즐겨 했으며, 캐나다 주니어 야구 국가대표팀의 포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하키를 시작하기 전에는 야구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였으며, 서부 캐나다에서 열리는 아마추어 야구 토너먼트에 참석했던 것이 가장 오래된 스포츠 기억이라고 한다. 그는 약 17세까지 야구를 했으며, 나중에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와의 인터뷰에서 보 잭슨처럼 두 가지 프로 스포츠를 겸하는 선수가 되기를 희망했다고 밝혔다.
이긴라는 자신의 하키 경력이 할아버지 덕분이라고 말한다. 어머니가 일하고 아버지가 로스쿨에 다니던 상황에서, 할아버지의 지원이 없었다면 높은 수준의 스포츠를 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에드먼턴 오일러스의 골텐더였던 그랜트 푸어를 비롯한 다른 흑인 하키 선수들을 존경하며 자랐다. 푸어를 본받아 이긴라는 조직적인 하키 첫 두 시즌 동안 골텐더로 뛰었으나, 이후 라이트윙으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그는 마이너 하키 경력 전체를 세인트앨버트에서 보냈으며, 1992-93 시즌 15세의 나이로 세인트앨버트 미젯 레이더스 소속으로 87포인트를 기록하며 앨버타 미젯 하키 리그 득점 선두에 올랐다.
2. Playing Career
저롬 이긴라의 프로 아이스하키 선수 경력은 주니어 리그에서 시작하여 NHL의 여러 팀에서 빛나는 활약을 펼쳤으며, 특히 캘거리 플레임스에서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2.1. Junior Hockey
이긴라는 서부 하키 리그(WHL)의 캄루프스 블레이저스에서 3년간 뛰었다. 16세였던 1993-94 시즌에는 정규 시즌 48경기에서 6골 23어시스트로 29포인트를 기록했으며, 플레이오프 19경기에도 출전했다. 블레이저스는 이 시즌에 리그 우승과 캐나다 전국 주니어 챔피언십인 메모리얼 컵을 모두 차지했다. 당시 블레이저스의 압도적인 리그 지배력(5시즌 동안 세 번째 WHL 우승)에 대해 이긴라는 몬트리올 캐나디앵스처럼 성공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다고 언급했다.
1994-95 시즌에는 33골 38어시스트로 71포인트를 기록하며 첫 풀 시즌을 보냈다. 블레이저스는 리그 우승을 다시 차지하며 1995년 메모리얼 컵에 진출했다. 이긴라는 이 대회에서 5골을 기록하며 팀을 2년 연속 전국 챔피언십으로 이끌었다. 그는 대회에서 가장 뛰어난 스포츠맨십을 보여준 선수에게 수여되는 조지 파슨스 트로피를 받았다.
댈러스 스타스는 1995년 NHL 엔트리 드래프트에서 이긴라를 전체 11순위로 지명했다. 그러나 1995년 12월 20일, 댈러스는 이긴라를 코리 밀렌과 함께 캘거리 플레임스로 트레이드했으며, 이는 플레임스와 계약 분쟁 중이던 공격수 조 니우엔다이크에 대한 권리를 얻기 위함이었다.
캄루프스에서의 마지막 시즌인 1995-96년, 이긴라는 63경기에서 63골 73어시스트로 총 136포인트를 기록하며 리그 득점 4위에 올랐고, 리그 최우수 선수에게 수여되는 포 브론코스 메모리얼 트로피를 수상했다. 블레이저스는 서부 콘퍼런스 결승에서 스포캔 치프스에게 아쉽게 패했지만, 이긴라는 플레이오프 16경기에서 29포인트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 득점 4위를 차지했다. 이 시즌의 활약으로 그는 1996년 세계 주니어 아이스하키 선수권 대회에 캐나다 대표팀으로 초청받았고, 대회에서 12포인트를 기록하며 득점 선두에 올라 캐나다의 4년 연속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그는 대회 올스타로 선정되었고 최우수 공격수상을 받았다.
2.2. Calgary Flames (1996-2013)
이긴라는 1996년 플레이오프에서 NHL 데뷔를 했다. 주니어 시즌이 캄루프스에서 끝난 직후 계약을 맺고 캘거리로 날아온 그는 시카고 블랙호크스와의 시리즈에서 두 경기에 출전했다. 이로써 그는 1983년 댄 퀸 이후 캘거리 플레임스에서 뛴 최초의 18세 선수가 되었다. NHL 데뷔전에서 이긴라는 티오런 플뢰리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첫 포인트를 기록했고, 두 번째 경기에서 첫 골을 터뜨렸다. 그는 플레임스에 남아 1996-97 시즌에 첫 NHL 정규 시즌을 치렀다. 이 시즌에 그는 NHL 올-루키 팀에 선정되었고, 신인 선수 중 50포인트를 기록하며 득점 선두에 올라 칼더 메모리얼 트로피 신인상 투표에서 브라이언 베라드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세 번째 시즌인 1998-99 시즌에는 28골을 기록하며 플레임스 팀 내 최다 득점을 기록했다. 그의 성공은 시즌 후 새로운 계약 협상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긴라는 계약 교착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계약 없이 훈련 캠프에 참석하는 데 동의했고, 부상을 입어도 팀이 재정적으로 책임지지 않을 것을 대비하여 스스로 보험에 가입했다. 1999-2000 시즌 시작 시점에도 계약 없이 첫 세 경기를 불참한 후, 그는 보너스를 포함하여 490.00 만 USD에 3년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이 시즌에 29골 63포인트를 기록하며 개인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2000-01 시즌에는 31골 71포인트를 기록하며 다시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
시즌 전 캐나다 올림픽 여름 캠프에 참가한 후, 이긴라는 2001-02 시즌에 52골 44어시스트로 총 96포인트를 기록하며 다시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 이 시즌은 이긴라를 슈퍼스타 반열에 올랐다. 그는 NHL 득점왕과 포인트 선두에 각각 주어지는 아트 로스 트로피와 모리스 "로켓" 리샤르 트로피를 수상했다. 이는 1980년 이후 웨인 그레츠키, 마리오 르미외, 야로미르 야그르 중 한 명이 아닌 선수가 아트 로스 트로피를 수상한 첫 사례였다. 그는 또한 동료 선수들의 투표로 리그 최우수 선수에게 수여되는 레스터 B. 피어슨 어워드를 수상했으며, 하트 메모리얼 트로피와 킹 클랜시 메모리얼 트로피 후보에도 올랐다. 하트 트로피 투표는 논란이 되었다. 이긴라는 캐나디앵스의 골텐더 호세 테오도르와 총점에서 동점을 기록했지만, 테오도르보다 1위표를 적게 받았다. 특히 테오도르와 캐나디앵스의 연고지인 퀘벡 출신으로 추정되는 한 투표자가 이긴라를 투표 용지에서 inexplicably 제외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이 논란의 여파로 프로 하키 작가 협회는 재발 방지를 위해 투표 방식을 변경했다.
시즌 후 계약이 만료되면서 이긴라가 다시 이탈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그는 시즌 전에 1300.00 만 USD에 2년 계약을 체결하고 플레임스의 공격을 다시 이끌 것으로 기대되었다. 2002-03 시즌에는 부상(싸움으로 인한 손가락 탈골 등)의 영향으로 67포인트로 하락했지만, 35골은 여전히 플레임스 팀 내 최다 득점(5시즌 중 4번째)이었다. 그의 공격적인 기여에도 불구하고 플레임스는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2003-04 시즌 초, 이긴라는 플레임스 프랜차이즈 역사상 18번째 주장으로 임명되었으며, 1980년 애틀랜타에서 캘거리로 팀이 이전한 이래 14번째 주장이었다. 전임 주장인 크레이그 콘로이는 이긴라의 경험과 리더십을 들어 주장직을 포기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긴라는 NHL 역사상 최초의 흑인 주장으로 보도되었으나, 아프리카계 혈통의 전 블랙호크스 주장 더크 그레이엄 또한 이 명예를 누렸다고 알려져 있다. 이긴라는 주장 임명에 화답하듯 두 번째 모리스 "로켓" 리샤르 트로피를 수상했으며, 일리야 코발축과 릭 내쉬와 함께 41골로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 플레임스는 2004년 플레이오프에 서부 콘퍼런스 6위로 진출하며 8년 만에 플레이오프에 복귀했다. 이긴라는 플레이오프에서 13골을 기록하며 모든 플레이오프 선수 중 최다 득점을 기록했고, 플레임스를 15년 만에 첫 스탠리컵 결승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플레임스는 탬파베이 라이트닝에게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3-2로 앞서나가던 시리즈를 뒤집히며 패했다. 7차전 패배 후 침울해 있던 이긴라에게 아버지는 "자랑스럽다. 캐나다 전체가 너를 자랑스러워한다"고 말했다.
플레이오프에서의 활약으로 세계 최고의 선수라는 찬사를 받았음에도, 이긴라는 2004-05 NHL 록아웃 기간 동안 자신의 기량을 더욱 향상시키는 데 집중했다. 록아웃 이후 그는 새로 구성된 NHL 경쟁 위원회의 6명 선수 대표 중 한 명으로 임명되었으며, 경기를 개선하기 위한 권고안을 제안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는 2008년 초까지 이 직책을 유지했다.
2006년 12월 7일, 이긴라는 미네소타 와일드와의 경기에서 통산 300번째 골과 600번째 포인트를 기록하며 주요 기록들을 달성했다. 그는 2007년 NHL 올스타전에 출전할 예정이었으나 무릎 부상으로 결장했다. 이 부상으로 인해 2006-07 시즌 12경기에 결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55어시스트로 개인 최고 기록을 세우며 총 94포인트를 기록했다.
2007-08 시즌에는 통산 두 번째 50골 시즌을 기록했으며, 48어시스트를 추가하여 개인 최고 기록인 98포인트를 기록하며 리그 전체 3위에 올랐다. 그는 팀 동료 다이온 파뇌프와 함께 2008년 NHL 올스타전의 선발 라인업에 투표로 선정되었고, 서부 올스타팀의 주장으로 지명되었다. 2007년 11월 29일 애너하임 덕스와의 경기에서 통산 804번째 경기에 출전하며 플레임스 프랜차이즈 최다 출전 기록을 경신했다. 또한 2008년 3월 10일 세인트루이스 블루스와의 경기에서 통산 365번째 골을 기록하며 티오런 플뢰리의 프랜차이즈 최다 골 기록을 깼다. 이긴라는 세 번째로 리그 최우수 선수에게 수여되는 하트 트로피 후보에 올랐지만, 다시 수상에는 실패했다. 이 시즌 동안 그는 플레임스와 연봉 700.00 만 USD에 5년 연장 계약을 체결했다.
이긴라는 2008-09 시즌에도 플뢰리의 프랜차이즈 기록인 830포인트 추격을 이어갔다. 2008년 12월 19일 시카고 블랙호크스와의 경기에서 1피리어드 어시스트로 통산 800포인트를 기록했다. 2008년 마지막 날에는 에드먼턴 오일러스와의 경기에서 개인 최고 기록인 5포인트를 기록하며 14번째로 4포인트 경기를 치렀다. 1월에는 몬트리올에서 열린 2009년 NHL 올스타전에 다섯 번째로 선정되었다. 서부 콘퍼런스 대표로 출전한 이긴라는 12-11로 패한 슈팅 아웃 경기에서 자신의 첫 NHL 올스타전 골을 넣었다. 2009년 3월 1일, 탬파베이 라이트닝에게 8-6으로 패한 경기에서 5포인트를 기록하고 통산 400번째 골을 넣으며 플뢰리를 넘어 플레임스 역대 최다 득점 선두가 되었다. 그는 시즌을 35골 89포인트로 마쳤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시카고 블랙호크스에게 6경기 만에 1라운드에서 패배하면서 그가 부상으로 뛰고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이긴라는 소문을 즉시 부인했고, 자신이 기대했던 수준의 꾸준함을 보여주지 못했음을 인정하며 2009-10 시즌에는 경기력 향상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2010년 1월 30일, 이긴라는 에드먼턴 오일러스와의 경기에서 2골 2어시스트로 총 900포인트를 기록했다. 엿새 후, 그는 플로리다 팬서스와의 경기에서 통산 1,000번째 경기에 출전했다. 플레임스는 2009-10 시즌에 고전하며 2003년 이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고, 2010년 플레이오프 진출에 5포인트가 부족했다. 이긴라는 팀의 실패에 대해 책임을 인정하며, 시즌에 70포인트 안팎의 기록은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플레임스의 하락세와 이긴라의 시즌 기록은 그가 평생 NHL 경력을 보낸 팀에서 트레이드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켰다. 계약에 이동 금지 조항이 있어 팀이 트레이드를 시도할 경우 이긴라의 승인이 필요했지만, 그는 캘거리를 떠나고 싶지 않지만 플레임스가 원한다면 트레이드를 수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 플레임스 단장 크레이그 버튼은 이긴라 트레이드에 반대하며, 이긴라와 플레임스 모두의 실패를 보조 선수 부족 탓으로 돌렸다. 플레임스는 공개적으로 그를 트레이드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이긴라는 2010-11 시즌 초반 공격에서 고전했고, 플레임스가 최하위권으로 떨어지면서 캘거리에서의 그의 미래에 대한 추측이 다시 제기되었다. 팀 경영진은 그를 다른 팀으로 이적시키는 데 관심이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시즌이 진행되면서 경기력이 향상된 이긴라는 2011년 1월 11일 캐롤라이나 허리케인스에게 6-5로 패한 경기에서 제이 바우미스터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통산 500번째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또 다른 개인 기록을 세웠다. 같은 날 그는 여섯 번째 올스타전 출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일주일 반 후, 그는 병든 할머니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올스타전 출전을 거부했다고 발표했다. 3월 6일 내슈빌 프레데터스의 페카 린네를 상대로 페널티 샷으로 시즌 30번째 골을 넣었으며, 이로써 NHL 역사상 10시즌 연속으로 30골 이상을 기록한 10번째 선수가 되었다. 한 달 후, 그는 4월 1일 세인트루이스 블루스의 야로슬라프 할라크를 상대로 3-2 승리에서 결승골을 기록하며 통산 1,000포인트를 달성했다. 그는 82경기 전 경기에 출전하여 43골 43어시스트로 총 86포인트를 기록하며 시즌을 마쳤다. 플레임스는 전년도보다 향상된 모습을 보였지만,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3포인트 차이로 아쉽게 실패했다. 그의 43골은 팀 내 최다 득점이었고, 리그 전체에서는 탬파베이 라이트닝의 스티븐 스탐코스(45골)와 애너하임 덕스의 코리 페리(50골)에 이어 3위였다.
이긴라는 2012년 1월 7일 미네소타 와일드의 니클라스 백스트룀을 상대로 3-1 승리에서 통산 500번째 골을 넣었다. 그는 리그 역사상 이 기록을 달성한 42번째 선수였고, 한 팀에서 이 기록을 달성한 15번째 선수였다. 2011-12 시즌 중반, 이긴라는 자신의 경력에서 일곱 번째(실제 출전은 여섯 번째) 올스타로 선정되어 2012년 NHL 올스타전에서 플레임스를 대표했다. 2012년 3월 13일 산호세 샤크스의 골텐더 안티 니에미를 상대로 3-2 승리에서 2011-12 시즌의 30번째 골을 넣었다. 그는 리그 역사상 11시즌 연속으로 30골 이상을 기록한 7번째 선수이다.
2.3. Later NHL Career (2013-2017)
2012-13 시즌에 계약 마지막 해를 맞았고, 팀은 NHL 순위 하위권에 머물렀다. 2013년 4월 3일 트레이드 마감일이 다가오면서 이긴라의 캘거리에서의 미래에 대한 추측이 다시 제기되었다. 전국 언론 매체들은 이긴라가 플레임스가 자신의 허락 없이 그를 다른 팀으로 이적시키지 못하게 하는 조항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가 트레이드를 수락할 의향이 있는 네 팀(시카고 블랙호크스, 로스앤젤레스 킹스, 보스턴 브루인스, 피츠버그 펭귄스)의 명단을 구단에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이 네 팀은 지난 네 번의 챔피언십에서 우승했으며, 모두 그 시즌에 콘퍼런스 결승에 진출했다. 브루인스가 이긴라를 영입할 유력한 후보로 간주되었고, 2013년 3월 27일 콜로라도 애벌랜치와의 경기에서 그가 라인업에서 제외된 후, 두 팀 간의 트레이드가 완료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러나 이긴라의 캘거리에서의 16년 경력은 그가 피츠버그 펭귄스로 이적하면서 끝이 났다. 트레이드 대가로 피츠버그의 2013년 NHL 엔트리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과 대학 유망주 케니 아고스티노, 벤 하노프스키가 플레임스로 넘어왔다. 이긴라는 시드니 크로스비와 예브게니 말킨과 함께 뛰는 것이 펭귄스로 이적하는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브루인스와 펭귄스는 2013년 동부 콘퍼런스 결승에서 맞붙었다. 리그 최고의 득점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펭귄스는 단 한 경기도 이기지 못하고 시리즈에서 패배했다. 이긴라, 크로스비, 말킨, 제임스 닐, 크리스 르탕은 이 시리즈에서 총 0포인트를 기록했다. 이긴라는 2차전 6-1 패배 후 3라인으로 강등되었다. 브루인스 공격수 밀란 루치치는 시리즈 후 이긴라가 보스턴을 외면한 것이 스윕을 촉발했다고 말했다.

시즌 후 자유 계약 선수가 된 이긴라는 보스턴으로 가기로 결정하고 브루인스와 1년 600.00 만 USD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브루인스에서 첫 골을 넣기까지 9경기가 필요했지만, 산호세 샤크스와의 2-1 승리에서 첫 골을 기록한 후 밀란 루치치, 데이비드 크레이치와 함께 보스턴의 1라인에 자리 잡았다. 2013년 12월 10일 첫 캘거리 복귀 경기에서는 팬들이 경기 전 긴 기립 박수와 영상으로 그를 맞이했다. 2-1로 브루인스가 승리한 경기 후, 이긴라는 경기 3스타로 선정되었고, 더 큰 환호를 받으며 링크를 두 바퀴 돌았다. 2014년 2월 4일 밴쿠버 캐넉스와의 3-1 승리에서 밀란 루치치의 골에 어시스트하며 통산 600번째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NHL 샐러리캡 제약으로 인해 브루인스는 이긴라와 재계약할 수 없었다. 그 결과, 그는 자유 계약 선수로 팀을 떠나 콜로라도 애벌랜치와 3년 1600.00 만 USD 계약을 체결했다. 애벌랜치는 2014-15 시즌에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2월 중순에는 중앙 디비전 최하위에 머물렀지만, 이긴라 자신은 팀 내 주요 득점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팀 내 최다인 29골을 기록했지만, 애벌랜치는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2016년 1월 4일, 이긴라는 NHL 역사상 19번째로 통산 600골을 기록했다. 그의 기념비적인 골은 로스앤젤레스 킹스와의 4-1 승리에서 나왔다. 2016년 12월 10일, 이긴라는 몬트리올 캐나디앵스에게 10-1로 패한 경기에서 자신의 통산 1,500번째 NHL 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이 기록을 달성한 16번째 선수이다.
2017년 3월 1일, 이긴라는 조건부 2018년 NHL 엔트리 드래프트 4라운드 지명권과 함께 로스앤젤레스 킹스로 트레이드되었다. 그는 등번호 12번이 이미 마리안 가보리크가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88번을 선택했다. 10살 때 이긴라는 웨인 그레츠키가 킹스로 트레이드된 후 자신의 이름과 등번호 88번이 새겨진 킹스 유니폼을 구매했던 적이 있다. 킹스 단장 딘 롬바르디는 콜로라도에서 고전하는 팀에서 뛰었던 이긴라에게 새로운 시작이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2.4. Retirement
이긴라는 2017-18 시즌에 킹스와 재계약하지 않았다. 2017년 가을에 고관절 수술을 받았지만, 2018년 2월 프로비던스 브루인스 훈련에 참여했을 때 NHL 복귀를 희망한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2018년 7월 30일, 이긴라는 공식적으로 은퇴를 발표했다.
3. International Play
이긴라는 1994년 이반 흘린카 메모리얼 토너먼트에서 캐나다 대표로 처음 출전했다. 이 대회는 18세 이하 선수들을 위한 비공식 토너먼트였지만, 그는 5골 9포인트를 기록하며 캐나다의 득점 선두에 올라 금메달을 획득했다. 2년 후, 그는 1996년 세계 주니어 아이스하키 선수권 대회에서 국가 주니어 대표팀에 합류했다. 그는 대회에서 5골 12포인트를 기록하며 득점 선두에 올라 캐나다의 4년 연속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그는 올스타로 선정되었고 대회 최우수 공격수상을 받았다. 1년 후, 이긴라는 19세의 나이로 1997년 세계 아이스하키 선수권 대회에 성인 대표팀으로 참가했으며, 팀에서 가장 어린 선수였다. 그는 11경기에서 2골 3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캐나다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캐나다 대표팀 여름 캠프에 뒤늦게 초청된 것이 이긴라가 스타 플레이어로 부상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는 초청에 너무 놀라 처음에는 캘거리 플레임스 팀 동료 중 한 명이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는 결승전인 미국과의 5-2 승리 경기에서 2골을 기록하며 캐나다가 50년 만에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기여했다. 이 승리로 이긴라는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최초의 흑인 남성이 되었다. 이긴라는 2004년 월드컵 오브 하키에도 대체 주장으로 참가하여 조 새킥과 마리오 르미외와 함께 라인에서 뛰었다. 캐나다는 이 대회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긴라는 두 번째 올림픽인 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에도 대체 주장으로 참가했으며, 6경기에서 3포인트를 기록했다. 캐나다는 2002년 금메달을 지키지 못하고 8강에서 러시아에 패했다. 밴쿠버에서 열린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 다시 대체 주장으로 임명된 그는 노르웨이와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으로 대회를 시작했다. 그는 5골을 기록하며 대회 득점 선두에 올랐고, 시드니 크로스비의 결승골에 어시스트하며 미국을 상대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4. Playing Style and Leadership
전성기 시절 이긴라는 NHL에서 가장 뛰어난 파워 포워드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리그에 입문했을 때 그는 브렌던 섀너핸과 키스 트카척과 같은 선수들을 본받아 정교함과 피지컬을 겸비한 플레이를 추구했다. 그는 리그에서 가장 꾸준한 득점자 중 한 명으로, 1998년부터 2008년 사이에 야로미르 야그르만이 이긴라보다 더 많은 NHL 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스카우팅 보고서에서는 이긴라의 부족한 스피드가 상대방이 그를 고립시키고 그의 팀 동료들이 그에게 너무 의존할 경우 그의 움직임을 제한하기 쉽게 만든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NHL 경력 초반에 상대방으로부터 받았던 거친 대우는 이긴라의 코치들이 그의 피지컬 플레이를 개발하도록 만들었다. 싸움을 좋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긴라는 당시 헤드 코치 브라이언 서터의 주장을 받아들여 선수로서 발전하기 위해 더 공격적인 스타일을 채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긴라는 움직일 공간이 있을 때 가장 효과적이었고, 그 공간을 만들기 위해 상대방을 위협해야 했다. 크레이그 콘로이는 "그는 모든 것을 다 하는 파워 포워드다. 싸우고, 몸싸움하고, 골을 넣는다. 아마도 엔드 투 엔드 러시는 아니지만, 그는 경기를 이기고 일을 처리하는 모든 작은 일들을 해낸다"라고 평가했다. 상대 선수들 또한 그의 플레이를 존중했다. 롭 블레이크는 이긴라가 화려한 플레이로 유명하지는 않지만, "그는 당신을 덮쳐버릴 것이다. 혹은 누군가와 싸울 것이다. 그리고 골을 넣을 것이다. 그는 한 선수가 하기를 바라는 거의 모든 것을 해낸다"라고 말했다.
이긴라는 여러 차례 고디 하우 해트트릭(한 경기에서 싸움, 골, 어시스트를 모두 기록)을 기록했으며, 공식 통계는 아니지만 2012년 기준 그는 9회로 현역 선수 중 최다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2004년 스탠리컵 결승에서 탬파베이 라이트닝의 스타 뱅상 르카발리에와의 싸움을 포함한 그의 싸움은 그의 플레이와 팀 동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효과가 있었다. 이긴라는 2003년 댈러스 스타스의 빌 기어린과의 싸움에서 손이 부러지는 등 싸움으로 인해 부상을 입기도 했다. 이긴라의 투쟁적인 플레이 스타일은 하키 평론가 돈 체리의 지지를 얻었다. 2008년 트레버 린든의 마지막 NHL 경기에서 이긴라가 시작한 의례적인 악수 후, 린든은 이긴라가 당시 최고의 선수였다고 말했다.
그는 동료들의 존경을 받으며, 동료 선수를 옹호하기 위해 코치진에게 맞서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긴라가 보스턴 팀에 합류하기 전 브루인스 선수였던 전 팀 동료 앤드루 페런스는 이긴라를 따르는 것을 "친구를 따르는 것과 같다"고 묘사한 적이 있다.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을 선호하는 이긴라는 말이 많은 주장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는 선수들과 개별적으로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며 모든 팀 동료들이 편안함을 느끼도록 노력한다. 그는 2009년 마크 메시어 리더십 어워드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5. Personal Life and Philanthropy
이긴라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귄 여자친구인 카라와 결혼하여 슬하에 딸 제이드, 아들 타이, 조 세 자녀를 두었다. 그들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사귀었다. 딸 제이드 이긴라는 새터크세인트메리스와 켈로나의 링크 하키 아카데미에서 하키를 했으며, 현재는 브라운 대학교에 진학하여 브라운 베어스에서 NCAA 하키 선수로 뛰고 있다. 국제적으로 그녀는 캐나다 U-18 여자 대표팀으로 출전했다. 아들 타이 이긴라는 현재 켈로나 로키츠에서 뛰고 있으며, 2024년 NHL 엔트리 드래프트에서 전체 6순위로 유타 하키 클럽의 첫 번째 지명 선수가 되었다. 다른 아들 조 이긴라는 켈로나의 링크 하키 아카데미에서 뛰고 있으며, 그의 아버지 저롬이 헤드 코치를 맡고 있다. 조는 2023년 WHL 밴텀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에드먼턴 오일 킹스에게 지명되었다.
이긴라에게는 4명의 이복 형제자매가 있다. 두 명의 남동생(제이슨, 스티븐)과 두 명의 여동생(테레사, 엘리자베스)이다. 여동생 테레사는 2004년부터 2007년까지 3시즌 동안 서스캐처원 대학교 허스키스 여자 하키팀에서 뛰었다. 저롬은 열렬한 골프 팬이며, 캘거리 플레임스 셀러브리티 자선 골프 클래식에 정기적으로 참여한다.
이긴라는 기독교 신자이다. 그는 예수에 대한 자신의 신앙에 대해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고 믿고,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존재하시며 우리는 그분께 의지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렇게 합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긴라는 친절한 성격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전 플레임스 단장 크레이그 버튼은 이긴라가 겸손하다고 묘사했다. "그는 어떤 태도나 오만함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자신의 능력에 자신감이 있다. 그는 자신감이 있고, 진정성 있다. 그는 선수로서보다 더 나은 사람이며, 우리는 그가 어떤 선수인지 모두 안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 올림픽에 참가했을 때, 이긴라는 호텔 밖 자신의 차에서 자고 있는 캘거리 출신 네 명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대화를 중단하고 자신의 가족이 머무는 호텔에 그들을 위해 방을 예약해 주었다.
2002년부터 이긴라는 캘거리에서 저롬 이긴라 하키 학교를 비영리 단체로 운영하며, 수익금을 당뇨병 연구 협회에 기부하고 있다. 2004년에는 지역 사회 봉사를 인정받아 NHL 재단 선수상과 인도주의적 기여를 인정받아 킹 클랜시 메모리얼 트로피를 수상했다. 이긴라는 많은 자선 단체를 후원한다. 2000년에는 자신이 득점할 때마다 키드스포츠에 1000 USD를 기부하기 시작했으며, 2005년에는 이 금액을 2000 USD로 두 배 늘렸다. 2000년부터 2013년까지 이 이니셔티브를 통해 70.00 만 USD 이상을 기부했다.
이긴라는 주니어 하키 시절 뛰었던 서부 하키 리그의 캄루프스 블레이저스의 공동 구단주이다. 그는 2007년 10월 동료 NHL 선수인 셰인 돈, 마크 레키, 대릴 시도어와 함께 이 프랜차이즈의 소수 지분을 인수했다. 그는 또한 경제적으로 어려운 어린이들에게 하키를 할 기회를 제공하는 청소년 하키 단체를 지원하는 NHL 다이버시티 프로그램의 홍보대사이기도 하다. 2008년부터 그는 스코샤은행의 하키 대변인으로, 광고에 출연하고 풀뿌리 하키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행사에 참여했으며, 삼성캐나다의 대변인으로도 활동했다.
그는 EA 스포츠 비디오 게임 NHL 2003의 표지 모델이자 대변인이었다.
은퇴 후 이긴라는 매사추세츠주 체스트넛힐과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레이크 컨트리에 거주하고 있다.
6. Legacy and Reception
저롬 이긴라는 아이스하키계와 사회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그의 리더십, 득점 능력, 그리고 흑인 아이스하키 선수로서의 선구적인 역할은 그를 역사적인 인물로 만들었다.
6.1. Hockey Hall of Fame Induction
이긴라는 2020년 하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이는 그의 첫 번째 자격 연도에 이루어진 영예였다. 그는 그랜트 푸어, 여성 하키의 선구자인 앤젤라 제임스, 그리고 윌리 오리에 이어 하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네 번째 흑인 선수이다. 그의 헌액은 단순히 뛰어난 운동선수로서의 업적을 넘어, 하키계 내 다양성 증진과 미래 세대에게 영감을 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특히 흑인 선수가 전통적으로 백인 위주의 스포츠로 여겨지는 아이스하키에서 최고 수준에 도달하고 명예의 전당에까지 오르는 것은 그 자체로 중요한 유산이다.
6.2. Impact on Ice Hockey
이긴라는 파워 포워드 스타일의 표본이자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단순히 득점력이 뛰어난 것을 넘어, 강력한 피지컬과 함께 경기에 대한 투지, 그리고 리더십을 겸비하여 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후대 많은 선수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특히 몸싸움과 기술을 겸비한 올라운드 플레이어로서의 길을 제시했다. 또한, 그는 캘거리 플레임스의 주장으로서 오랜 기간 팀의 상징적인 존재로 활약하며 캐나다 스포츠 문화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경기장 안팎에서 보여준 그의 리더십과 겸손한 태도, 그리고 자선 활동은 팬들과 동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젊은 흑인 아이스하키 선수들에게 꿈과 가능성을 보여주며 다양성 증진에도 크게 기여했다. 그의 업적은 아이스하키 전술뿐만 아니라 사회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유산으로 남았다.
7. Career Statistics
7.1. Regular season and playoffs
정규 시즌 | 플레이오프 | |||||||||||
---|---|---|---|---|---|---|---|---|---|---|---|---|
시즌 | 팀 | 리그 | GP | G | A | Pts | PIM | GP | G | A | Pts | PIM |
1993-94 | 캄루프스 블레이저스 | WHL | 48 | 6 | 23 | 29 | 33 | 19 | 3 | 6 | 9 | 10 |
1994-95 | 캄루프스 블레이저스 | WHL | 72 | 33 | 38 | 71 | 111 | 21 | 7 | 11 | 18 | 34 |
1995-96 | 캄루프스 블레이저스 | WHL | 63 | 63 | 73 | 136 | 120 | 16 | 16 | 13 | 29 | 44 |
1995-96 | 캘거리 플레임스 | NHL | - | - | - | - | - | 2 | 1 | 1 | 2 | 0 |
1996-97 | 캘거리 플레임스 | NHL | 82 | 21 | 29 | 50 | 37 | - | - | - | - | - |
1997-98 | 캘거리 플레임스 | NHL | 70 | 13 | 19 | 32 | 29 | - | - | - | - | - |
1998-99 | 캘거리 플레임스 | NHL | 82 | 28 | 23 | 51 | 58 | - | - | - | - | - |
1999-00 | 캘거리 플레임스 | NHL | 77 | 29 | 34 | 63 | 26 | - | - | - | - | - |
2000-01 | 캘거리 플레임스 | NHL | 77 | 31 | 40 | 71 | 62 | - | - | - | - | - |
2001-02 | 캘거리 플레임스 | NHL | 82 | 52 | 44 | 96 | 77 | - | - | - | - | - |
2002-03 | 캘거리 플레임스 | NHL | 75 | 35 | 32 | 67 | 49 | - | - | - | - | - |
2003-04 | 캘거리 플레임스 | NHL | 81 | 41 | 32 | 73 | 84 | 26 | 13 | 9 | 22 | 45 |
2005-06 | 캘거리 플레임스 | NHL | 82 | 35 | 32 | 67 | 86 | 7 | 5 | 3 | 8 | 11 |
2006-07 | 캘거리 플레임스 | NHL | 70 | 39 | 55 | 94 | 40 | 6 | 2 | 2 | 4 | 12 |
2007-08 | 캘거리 플레임스 | NHL | 82 | 50 | 48 | 98 | 83 | 7 | 4 | 5 | 9 | 2 |
2008-09 | 캘거리 플레임스 | NHL | 82 | 35 | 54 | 89 | 37 | 6 | 3 | 1 | 4 | 0 |
2009-10 | 캘거리 플레임스 | NHL | 82 | 32 | 37 | 69 | 56 | - | - | - | - | - |
2010-11 | 캘거리 플레임스 | NHL | 82 | 43 | 43 | 86 | 40 | - | - | - | - | - |
2011-12 | 캘거리 플레임스 | NHL | 82 | 32 | 35 | 67 | 43 | - | - | - | - | - |
2012-13 | 캘거리 플레임스 | NHL | 31 | 9 | 13 | 22 | 22 | - | - | - | - | - |
2012-13 | 피츠버그 펭귄스 | NHL | 13 | 5 | 6 | 11 | 9 | 15 | 4 | 8 | 12 | 16 |
2013-14 | 보스턴 브루인스 | NHL | 78 | 30 | 31 | 61 | 47 | 12 | 5 | 2 | 7 | 12 |
2014-15 | 콜로라도 애벌랜치 | NHL | 82 | 29 | 30 | 59 | 42 | - | - | - | - | - |
2015-16 | 콜로라도 애벌랜치 | NHL | 82 | 22 | 25 | 47 | 41 | - | - | - | - | - |
2016-17 | 콜로라도 애벌랜치 | NHL | 61 | 8 | 10 | 18 | 54 | - | - | - | - | - |
2016-17 | 로스앤젤레스 킹스 | NHL | 19 | 6 | 3 | 9 | 16 | - | - | - | - | - |
NHL 합계 | 1,554 | 625 | 675 | 1,300 | 1,040 | 81 | 37 | 31 | 68 | 98 |
7.2. International
연도 | 팀 | 대회 | 결과 | GP | G | A | Pts | PIM |
---|---|---|---|---|---|---|---|---|
1996 | 캐나다 | WJC | 금 | 6 | 5 | 7 | 12 | 4 |
1997 | 캐나다 | WC | 금 | 11 | 2 | 3 | 5 | 2 |
2002 | 캐나다 | OG | 금 | 6 | 3 | 1 | 4 | 0 |
2004 | 캐나다 | WCH | 금 | 6 | 2 | 1 | 3 | 2 |
2006 | 캐나다 | OG | 7위 | 6 | 2 | 1 | 3 | 4 |
2010 | 캐나다 | OG | 금 | 7 | 5 | 2 | 7 | 0 |
주니어 합계 | 6 | 5 | 7 | 12 | 4 | |||
시니어 합계 | 36 | 14 | 8 | 22 | 8 |
8. Awards and Honours
저롬 이긴라는 그의 뛰어난 선수 경력 동안 다양한 개인 및 팀 상을 수상하며 아이스하키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수상 | 연도 |
---|---|
NHL 올-루키 팀 | 1997 |
퍼스트 팀 올스타 | 2002, 2008, 2009 |
NHL 올스타전 출전 | 2003, 2004, 2008, 2009, 2011, 2012 |
모리스 "로켓" 리샤르 트로피 (최다 득점자) | 2002, 2004 |
아트 로스 트로피 (최다 포인트 득점자) | 2002 |
레스터 B. 피어슨 어워드 (선수들이 뽑은 최우수 선수) | 2002 |
세컨드 팀 올스타 | 2004 |
킹 클랜시 메모리얼 트로피 (리더십 및 인도주의적 공헌) | 2004 |
NHL 재단 선수상 (지역 사회 공헌, 인내, 팀워크) | 2004 |
NHL 2000년대 올스타 퍼스트 팀 | 2009 |
마크 메시어 리더십 어워드 | 2009 |
하키 명예의 전당 헌액 | 2020 |
수상 | 연도 |
---|---|
세계 주니어 퍼스트 올스타팀 | 1996 |
세계 주니어 최우수 공격수 | 1996 |
수상 | 연도 |
---|---|
메모리얼 컵 우승 팀 | 1994, 1995 |
조지 파슨스 트로피 (메모리얼 컵 최우수 스포츠맨십 선수) | 1995 |
WHL 서부 퍼스트 올스타팀 | 1996 |
포 브론코스 메모리얼 트로피 (WHL 올해의 선수) | 1996 |
CHL 퍼스트 올스타팀 | 1996 |
수상 | 연도 |
---|---|
몰슨 컵 (캘거리 플레임스 - 최다 쓰리 스타 선정) | 2001, 2002, 2003, 2004, 2008, 2011 |
랄프 T. 스커필드 인도주의상 (캘거리 플레임스 - 인도주의적 공헌) | 2001, 2002 |
J. R. 맥케이 상 (캘거리 플레임스 - 존경, 예의, 연민) | 2008 |

9. 외부 링크
- [https://www.nhl.com/player/jarome-iginla-8462042 NHL.com]
- [https://www.hockeydb.com/ihdb/stats/pdisplay.php?pid%5B%5D=14470 HockeyDB]
- [https://www.eliteprospects.com/player/9036/jarome-iginla Elite Prospects]
- [https://www.legendsofhockey.net/LegendsOfHockey/jsp/SearchPlayer.jsp?player=10613 Legends of Hockey]
- [https://olympics.com/en/athletes/jarome-iginla Olympics.com]
- [https://www.olympedia.org/athletes/102196 Olympedia]
- [https://web.archive.org/web/20171101000000/http://www.sports-reference.com/olympics/athletes/ig/jarome-iginla-1.html Sports-Reference.com (아카이브)]
- [https://www.imdb.com/name/nm1189707/ IMDb]
- [https://www.hockeycanada.ca/en-ca/team-canada/men/national/past-rosters/player-profile?id=jarome-iginla Hockey Cana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