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Overview
이탈리아의 전직 축구 선수이자 감독인 잔카를로 데 시스티(Giancarlo De Sisti[dʒaŋˈkarlo de ˈsisti]이탈리아어, 1943년 3월 13일 ~ )는 현역 시절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며, 로마와 피오렌티나에서 성공적인 클럽 경력을 보냈다. 특히 피오렌티나에서는 1968-69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끌며 클럽의 전설로 남았다. 그는 '딱따구리'(Picchio피키오이탈리아어)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플레이메이커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국가대표팀에서는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일원으로 UEFA 유로 1968에서 우승하고 1970년 FIFA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굵직한 업적을 남겼다. 은퇴 후에는 감독으로 활동하며 친정팀 피오렌티나를 지휘했고, 이탈리아 축구선수 협회(AIC)의 창립에도 기여하는 등 축구계 전반에 걸쳐 큰 발자취를 남겼다.
2. Birth and childhood
잔카를로 데 시스티는 1943년 3월 13일, 이탈리아 라치오 주의 로마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의 유년기 환경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많지 않으나, 로마에서 축구 선수로서의 꿈을 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3. Playing career
잔카를로 데 시스티는 선수 시절 AS 로마와 ACF 피오렌티나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으며,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의 핵심 미드필더로 국제 무대에서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창의적이고 기술적인 플레이 스타일로 팀의 경기 운영에 큰 영향을 미쳤다.
3.1. Club career

잔카를로 데 시스티는 현역 시절 '딱따구리'(Picchio피키오이탈리아어)라는 별칭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었다. 그는 자신의 고향 클럽인 로마에서 두 차례에 걸쳐 활약했다. 첫 번째는 1960년부터 1965년까지였고, 두 번째는 1974년부터 1979년까지였다. 이 두 기간 사이인 1965년부터 1974년까지는 피오렌티나에서 뛰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는 이 두 클럽에서 여러 국내 및 국제 대회 타이틀을 획득했다.
데 시스티는 1961년 2월 12일, 세리에 A에서 로마 선수로서 데뷔전을 치렀다. 당시 우디네세와의 원정 경기에서 로마는 1-2로 패배했지만, 그는 이 경기에서 팀의 스타 선수이자 멘토였던 후안 알베르토 스키아피노를 보좌하며 경험을 쌓았다.
그의 클럽 경력에서 가장 성공적인 시기는 피오렌티나 시절이었다. 그는 1968-69 시즌에 피오렌티나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는데, 이는 구단 통산 두 번째 리그 우승이라는 역사적인 성과였다. 피오렌티나에서의 활약을 마치고 1974년에 로마로 복귀하여 은퇴할 때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데 시스티는 로마 소속으로 1964년에, 피오렌티나 소속으로 1966년에 각각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경험했다. 1972년 10월 5일, 피오렌티나 소속으로 베로나와의 경기에서 출장 정지 징계로 결장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잔카를로 안토뇨니가 대신 출전하여 세리에 A 데뷔전을 치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3.2. International career

잔카를로 데 시스티는 1967년부터 1972년까지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며 총 29경기에 출전해 4골을 기록했다. 그의 국가대표팀 데뷔전은 1967년 11월 1일, 5-0으로 승리한 키프로스와의 UEFA 유로 1968 예선전 안방 경기였다.
그는 이후 안방 이탈리아에서 열린 UEFA 유로 1968에서 우승을 차지한 팀의 일원이었다. 25세의 나이로 로마에서 열린 유고슬라비아와의 결승전 재경기에 출전하여 2-0 승리를 돕는 데 기여했다. 이 대회에서 그는 총 1경기에 출전했다.
또한 데 시스티는 멕시코에서 열린 1970년 FIFA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이탈리아 선수단의 주요 일원이었다. 이 대회에서 그는 이탈리아의 모든 경기에 출전했으며, 총 6경기를 뛰었다. 결승전에서는 브라질에게 1-4로 패하여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의 마지막 국가대표팀 경기는 1972년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예선 플레이오프 2차전 벨기에와의 경기였다.
3.3. Style of play
잔카를로 데 시스티는 창의적이고 기술적으로 뛰어난 후방 플레이메이커 미드필더로 평가받는다. 그는 이탈리아와 로마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플레이메이커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데 시스티는 단순하면서도 효율적인 플레이 스타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의 플레이는 끊임없이 공간을 찾아다니며 짧고 정확한 패스를 통해 공 소유권을 유지하고 실수를 줄이며 팀의 경기 템포를 조절하는 것을 특징으로 했다. 그는 압박 속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꾸준한 경기력을 보여주었으며, 공을 잘못 넘기거나 소유권을 잃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또한 뛰어난 시야와 정확한 롱 패스 능력을 겸비하여 득점 기회를 창출하고, 동료들에게 정확한 로빙 패스와 스루 패스를 공급하는 데 능했다. 이러한 특징들로 인해 그는 경기장 위에서 '지휘자'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며 팀의 공격과 수비 전환을 유기적으로 이끌었다.
4. Coaching career
선수 생활 은퇴 후, 잔카를로 데 시스티는 감독의 길을 걸었으며, 친정팀을 포함한 여러 팀을 지휘했다.
그는 1980년에 감독 자격증을 취득한 후 같은 해 말 자신의 전 소속 클럽인 피오렌티나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1981-82 시즌에는 숙적인 유벤투스와의 치열한 리그 우승 경쟁 끝에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1985년, 그는 뇌농양 진단을 받아 감독직을 어쩔 수 없이 내려놓게 되었다.
같은 해 말, 그는 우디네세의 감독으로 복귀하여 두 시즌을 지휘했다. 이후 이탈리아 축구 연맹에 합류하여 1988년부터 1990년까지 이탈리아 청소년 대표팀(Juniores유니오레스이탈리아어)을, 1990년부터 1991년까지 군 대표팀을 이끌었다. 특히 1991년에는 이탈리아 군 대표팀을 지휘하며 군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해 말, 그는 다시 클럽 축구로 돌아와 아스콜리의 감독을 맡았으나, 1992년 1월에 경질되었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활동이 없었던 데 시스티는 2003년 3월, 라치오의 유소년부 감독으로 축구계에 복귀했다. 그러나 불과 몇 달 후, 로베르토 만치니가 새로운 '백청 군단'(biancazzurri비안카주리이탈리아어)의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그는 라치오를 떠나게 되었다.
5. Other activities
잔카를로 데 시스티는 축구 선수 및 감독 경력 외에도 이탈리아 축구계 발전에 기여하고 미디어 분야에서도 활동했다.
1968년 7월 3일, 데 시스티는 밀라노에서 여러 동료 축구 선수들과 함께 이탈리아 축구선수 협회(AIC)를 공동 창립했다. 이들 중에는 자코모 불가렐리, 산드로 마촐라, 에르네스토 카스타노, 잔니 리베라, 자코모 로시 등 유명 선수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최근 은퇴한 변호사 세르조 캄파나가 협회 회장으로 선임되었다. 이 협회는 이탈리아 축구 선수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설립되었다.
또한 데 시스티는 은퇴 후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축구 평론가로 활동하며 대중들에게 축구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하기도 했다.
6. Career statistics
잔카를로 데 시스티의 선수 시절 공식 경기의 출장 및 득점 기록은 다음과 같다.
6.1. Club statistics
시즌 | 구단 | 리그 | 컵 | 대륙 | 기타 | 합계 | |||||||||
---|---|---|---|---|---|---|---|---|---|---|---|---|---|---|---|
대회 | 출장 | 골 | 대회 | 출장 | 골 | 대회 | 출장 | 골 | 대회 | 출장 | 골 | 출장 | 골 | ||
1960-61 | 로마 | 세리에 A | 2 | 0 | 코파 이탈리아 | 1 | 1 | 인터시티스 페어스컵 | 1 | 0 | - | - | - | 4 | 1 |
1961-62 | 세리에 A | 11 | 1 | 코파 이탈리아 | 1 | 0 | 인터시티스 페어스컵 | 1 | 0 | - | - | - | 13 | 1 | |
1962-63 | 세리에 A | 18 | 2 | 코파 이탈리아 | 0 | 0 | 인터시티스 페어스컵 | 5 | 1 | - | - | - | 23 | 3 | |
1963-64 | 세리에 A | 28 | 7 | 코파 이탈리아 | 4 | 0 | 인터시티스 페어스컵 | 4 | 2 | 코파 델레 알피 | 1 | 0 | 37 | 9 | |
1964-65 | 세리에 A | 28 | 3 | 코파 이탈리아 | 1 | 1 | 인터시티스 페어스컵 | 5 | 1 | - | - | - | 34 | 5 | |
1965-66 | 피오렌티나 | 세리에 A | 34 | 5 | 코파 이탈리아 | 6 | 0 | 인터시티스 페어스컵 | 3 | 1 | 코파 미트로파 | 2 | 0 | 45 | 6 |
1966-67 | 세리에 A | 30 | 6 | 코파 이탈리아 | 1 | 0 |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 2 | 1 | 코파 미트로파 | 4 | 0 | 37 | 7 | |
1967-68 | 세리에 A | 30 | 6 | 코파 이탈리아 | 2 | 0 | 인터시티스 페어스컵 | 4 | 1 | - | - | - | 36 | 7 | |
1968-69 | 세리에 A | 30 | 2 | 코파 이탈리아 | 3 | 0 | 인터시티스 페어스컵 | 6 | 0 | - | - | - | 39 | 2 | |
1969-70 | 세리에 A | 27 | 2 | 코파 이탈리아 | 6 | 1 | 유러피언컵 | 6 | 0 | - | - | - | 39 | 3 | |
1970-71 | 세리에 A | 29 | 3 | 코파 이탈리아 | 11 | 3 | 인터시티스 페어스컵 | 4 | 0 | - | - | - | 44 | 6 | |
1971-72 | 세리에 A | 29 | 1 | 코파 이탈리아 | 10 | 2 | - | - | - | 코파 미트로파 | 6 | 0 | 45 | 3 | |
1972-73 | 세리에 A | 27 | 1 | 코파 이탈리아 | 4 | 2 | UEFA컵 | 1 | 0 | 코파 안글로-이탈리아나 | 7 | 1 | 39 | 4 | |
1973-74 | 세리에 A | 19 | 2 | 코파 이탈리아 | 3 | 1 | UEFA컵 | 2 | 0 | - | - | - | 24 | 3 | |
피오렌티나 합계 | 256 | 28 | 46 | 9 | 22 | 3 | 19 | 1 | 348 | 41 | |||||
1974-75 | 로마 | 세리에 A | 29 | 5 | 코파 이탈리아 | 10 | 0 | - | - | - | - | - | - | 39 | 5 |
1975-76 | 세리에 A | 28 | 2 | 코파 이탈리아 | 4 | 0 | UEFA컵 | 6 | 0 | - | - | - | 38 | 2 | |
1976-77 | 세리에 A | 28 | 2 | 코파 이탈리아 | 4 | 1 | - | - | - | - | - | - | 32 | 3 | |
1977-78 | 세리에 A | 25 | 0 | 코파 이탈리아 | 4 | 0 | - | - | - | - | - | - | 29 | 0 | |
1978-79 | 세리에 A | 25 | 0 | 코파 이탈리아 | 4 | 0 | - | - | - | - | - | - | 29 | 0 | |
로마 합계 | 222 | 22 | 33 | 3 | 22 | 4 | 1 | 0 | 278 | 29 | |||||
경력 합계 | 478 | 50 | 79 | 12 | 44 | 7 | 20 | 1 | 626 | 70 |
7. Honours
잔카를로 데 시스티는 선수 및 감독 경력 동안 다음과 같은 주요 타이틀과 개인적인 영예를 획득했다.
7.1. Club honours
데 시스티가 클럽 소속으로 획득한 주요 타이틀은 다음과 같다.
;로마
- 인터시티스 페어스컵: 1960-61
- 코파 이탈리아: 1963-64
;피오렌티나
- 세리에 A: 1968-69
- 코파 이탈리아: 1965-66
- 미트로파컵: 1966
7.2. International honours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획득한 주요 국제 타이틀은 다음과 같다.
;이탈리아
- 유럽 선수권 대회: 1968
- 월드컵 준우승: 1970
7.3. Individual honours
잔카를로 데 시스티가 개인적으로 수상하거나 등재된 명예는 다음과 같다.
- 피오렌티나 명예의 전당: 2013년 헌액
- 로마 명예의 전당: 2016년 헌액
8. Legacy and reception
잔카를로 데 시스티는 이탈리아 축구계에 깊은 영향을 남긴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창의적이고 기술적인 후방 플레이메이커로서, 이탈리아와 로마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플레이메이커 중 한 명으로 꾸준히 언급된다. 특히 피오렌티나를 1968-69 시즌 세리에 A 우승으로 이끈 주역으로서 클럽 역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다. 그의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플레이 스타일은 후대 미드필더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었다. 또한 이탈리아 축구선수 협회(AIC)의 공동 창립자로서 선수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기틀을 마련하는 데 기여하며, 단순히 경기장 안팎을 넘어 축구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경기 운영 능력, 침착함, 그리고 정확한 패싱 능력은 오늘날까지도 높이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