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이영무는 1953년 7월 26일 경기도 고양시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이자 축구 지도자, 축구 행정가, 그리고 종교인이다. 선수 시절에는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포항제철 축구단, 상무 축구단, 할렐루야 축구단 등에서 뛰었다. 특히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85경기에 출전하여 27골을 기록하며 1978년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80년 AFC 아시안컵 준우승 등 주요 국제 대회에서 큰 기여를 했다.
선수 은퇴 후에는 지도자의 길을 걸어 이랜드 푸마 축구단과 할렐루야 축구단의 감독을 역임하며 여러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또한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을 지내는 등 축구 행정가로서도 활동했다. 그의 지도자 경력 중에는 고양 자이크로 FC 감독 재임 시절 종교적 신념과 관련된 논란이 발생하기도 했으나, 이후 무혐의 판정을 받고 복귀하여 이사장으로 승진하기도 했다. 이영무는 뛰어난 활동량과 공수 겸장의 플레이 스타일로 한국 축구사에 큰 족적을 남겼으며, 그의 신앙심은 선수 및 지도자 경력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쳤다.
2. 초기 생애 및 교육
이영무는 1953년 7월 26일 대한민국 경기도 고양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경희중학교와 경희고등학교를 거쳐 경희대학교에 진학하여 1973년부터 1976년까지 대학 축구 선수로 활약했다. 그의 키는 1.65 m였다.
3. 선수 경력
이영무는 뛰어난 활동량과 다재다능함으로 한국 축구계에 큰 발자취를 남긴 미드필더였다. 그의 선수 경력은 크게 클럽 경력과 국가대표팀 경력으로 나눌 수 있다.
3.1. 클럽 경력
이영무는 1977년 포항제철 축구단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포항제철에서 1977년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준우승을 기록했다. 1978년부터 1980년까지는 국군 소속의 상무 축구단에서 군 복무를 겸하며 선수로 뛰었다. 상무 소속으로 1979년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을 차지했으며, 1980년에는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춘계 대회에서 우승하고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준우승을 기록했다. 군 복무를 마친 후 1981년부터 1982년까지 할렐루야 축구단에서 활약하며 선수 경력을 이어갔다.
3.2. 국가대표팀 경력
이영무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국제 무대에서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1972년부터 1973년까지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어 AFC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 참가했다. 이후 1975년부터 1981년까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총 85경기에 출전하여 27골을 기록했다. 그는 1978년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기여했으며, 1980년 AFC 아시안컵에서는 팀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또한 FIFA 월드컵 예선과 올림픽 축구 예선 등 주요 국제 대회 예선에도 꾸준히 참가하여 팀의 공격과 수비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3.3. 플레이 스타일
이영무는 타고난 재능이나 뛰어난 신체 조건을 가진 선수는 아니었지만, 역대 한국 축구 선수 중 가장 활동량이 많은 선수로 평가받았다. 그는 주로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했지만, 엄청난 활동량 때문에 실제 역할은 특정 포지션으로 규정하기 어려웠다.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경기장 전역을 누비며 공격과 수비에 모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대한축구협회의 소개에 따르면, 그는 한 경기에서 비공식적으로 약 20 km를 움직였다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두 개의 심장을 가진 사나이'라는 별명을 얻게 했다.
4. 주요 대회 성적
이영무는 선수 시절 다양한 국제 축구 대회에 참가하여 팀의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
4.1. 아시안 게임
이영무는 1978년 방콕에서 열린 1978년 아시안 게임 축구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참가하여 팀의 금메달 획득에 크게 기여했다. 이는 한국 축구 역사상 중요한 성과 중 하나로 기록된다.
4.2. AFC 아시안컵
이영무는 1980년 쿠웨이트에서 개최된 1980년 AFC 아시안컵에 참가하여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이 대회에서 그는 팀의 핵심 미드필더로서 활약하며 결승 진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4.3. AFC 청소년 선수권 대회
이영무는 청소년 국가대표팀 시절에도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1972년 태국에서 열린 1972년 AFC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으며, 이듬해인 1973년 이란에서 열린 1973년 AFC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서는 3위를 기록하며 팀의 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5. 선수로서의 수상 및 영예
이영무는 선수 경력 동안 소속 팀과 국가대표팀에서 다수의 우승 및 준우승을 경험했으며, 개인적으로도 여러 상을 수상하며 그 기량을 인정받았다.
5.1. 팀 수상
- 포항제철 축구단
-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준우승: 1977
- 상무 축구단
-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춘계 리그 우승: 1980
-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1979
-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준우승: 1980
-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 AFC 청소년 선수권 대회 준우승: 1972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78
- AFC 아시안컵 준우승: 1980
5.2. 개인 수상
- 대한축구협회 베스트 11: 1975, 1976, 1977, 1978, 1979, 1980
-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최우수 선수: 1979
- AFC 아시안컵 베스트 팀: 1980
- 대한축구협회 최우수 선수: 1980
6. 지도자 경력
선수 은퇴 후 이영무는 지도자 및 축구 행정가로서 한국 축구 발전에 기여했다. 그의 지도자 경력은 여러 클럽을 거쳤으며, 특히 할렐루야 축구단과 고양 자이크로 FC에서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6.1. 초기 지도자 경력
이영무는 1983년부터 1992년까지 임마누엘 FC의 감독을 맡으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992년부터 1998년까지 이랜드 푸마 축구단의 감독을 역임하며 팀을 이끌었다. 이랜드 푸마 감독 시절에는 1994년과 1995년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1995년과 1996년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춘계 리그 우승, 1995년 전국실업축구선수권대회 우승, 1994년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우승 등 다수의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성공적인 지도자 경력을 쌓았다.
6.2. 고양 자이크로 FC / 할렐루야 축구단
이영무는 1999년부터 2005년까지 김포 할렐루야의 감독을 맡았으며, 2002년에는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준우승을 기록했다. 2009년에는 안산 할렐루야의 감독으로 취임하여 2011년까지 팀을 이끌었다. 이 기간 중 2011년부터 2012년까지는 태국의 TTM 피칫 FC의 감독직을 겸임하기도 했다.
2013년 할렐루야 축구단이 고양 Hi FC로 프로화되면서 이영무는 고양 Hi FC의 초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그러나 2014년 7월, 그가 기독교 신자로서 구단을 사유화하고 선수들의 종교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제보가 문화체육관광부 신고센터에 접수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이로 인해 조사가 시작되자 그는 감독직에서 사임했으나, 2014년 잔여 시즌 동안 구단의 기술위원장으로서 영향력을 계속 행사했다. 2015년 무혐의 판정을 받자 이영무는 고양 Hi FC의 감독직으로 복귀했다. 이후 2016 시즌을 앞두고 고양 Hi FC의 이사장으로 승진하며 구단 운영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했다.
6.3. 대한축구협회 활동
이영무는 선수 및 지도자 경력 외에도 대한축구협회의 주요 직책을 역임하며 축구 행정가로서도 활동했다. 그는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을 지내며 한국 축구의 기술 발전과 정책 수립에 기여했다. 특히 고양 Hi FC 감독직 사임 후에도 기술위원장으로서 구단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행정가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7. 지도자로서의 수상 및 영예
이영무는 지도자 경력 동안 소속 팀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여러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개인적으로도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뛰어난 리더십을 인정받았다.
7.1. 팀 수상
- 이랜드 푸마 축구단
-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춘계 리그 우승: 1995, 1996
-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1994, 1995
- 전국실업축구선수권대회 우승: 1995
-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우승: 1994
- 할렐루야 축구단 (1999)
-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준우승: 2002
7.2. 개인 수상
-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최우수 감독: 1994
8. 신앙 및 개인사
이영무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종교적 신념은 그의 삶과 축구 경력 전반에 걸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선수 시절에는 골을 넣을 때마다 기도 세리머니를 펼치곤 했다. 그의 종교적 믿음은 그에게 뛰어난 체력과 성실함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평가된다. 그는 축구인으로서의 삶 외에도 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중요하게 여겼다.
9. 평가 및 영향력
이영무는 선수와 지도자, 그리고 행정가로서 한국 축구계에 다방면으로 기여했으며, 그의 경력은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일부 논란을 동반하기도 했다.
9.1. 긍정적 평가
선수 이영무는 뛰어난 활동량과 공수 조율 능력으로 1970년대 한국 축구의 황금기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가대표팀의 핵심 미드필더로서 1978년 아시안 게임 금메달과 1980년 AFC 아시안컵 준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한국 축구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지도자로서도 이랜드 푸마와 할렐루야 축구단을 이끌며 다수의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특히 실업 축구와 프로 축구 전환기에서 팀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며 지도력을 입증했다. 그의 신앙심은 선수와 지도자로서의 성실함과 헌신적인 태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시각도 있다.
9.2. 논란 및 비판
이영무는 고양 자이크로 FC 감독 재임 시절인 2014년 7월, 구단을 사유화하고 선수들의 종교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문화체육관광부에 접수된 제보에 따르면, 그가 특정 종교적 신념을 강요하고 구단 운영에 사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 논란으로 인해 그는 감독직에서 사임했으나, 이후 기술위원장으로 활동하며 구단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비록 2015년 해당 의혹에 대해 무혐의 판정을 받았지만, 이 사건은 스포츠 구단 운영에 있어 종교적 중립성과 공공성의 중요성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사건은 이영무의 경력에 있어 비판적인 시각을 동반하는 부분으로 남아 있다.
9.3. 한국 축구에 미친 영향
이영무는 선수로서 1970년대 한국 축구의 중흥기를 이끌며 국가대표팀의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 그의 지칠 줄 모르는 활동량과 뛰어난 경기 조율 능력은 후대 미드필더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지도자로서도 실업 축구와 프로 축구의 가교 역할을 했던 팀들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한국 축구의 프로화 과정에 기여했다. 또한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으로서 행정 분야에서도 활동하며 한국 축구의 전반적인 발전에 이바지했다. 그의 경력은 한국 축구의 성장과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 중 하나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