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린 시절과 배경
이반 구델은 스플리트-달마티아 주 이모트스키에서 태어나 인근 즈미야브치 마을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이러한 배경은 그의 초기 삶과 축구 경력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1.1. 유년 시절과 초기 영향
어린 시절, 구델은 잠시 가톨릭 성직자가 되는 것을 진로로 고려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어린 시절 TV 자그레브에서 1972년에 제작된 유고슬라비아 TV 시리즈인 Prosjaci i sinovi프로샤치 이 시노비크로아티아어에 보조 출연한 경험이 있다. 이 드라마는 이반 라오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구델의 고향 마을인 즈미야브치에서 촬영되었다. 극 중 도주 장면에서 어린 구델은 다른 아이들보다 월등히 빨라 제작진의 눈에 띄었다고 전해진다.
그의 축구 경력은 이웃 마을인 루노비치의 NK 므라차이에서 시작되었다. 이곳에서 그는 미래의 축구 스타 즈보니미르 보반의 아버지인 마린코 보반의 지도를 받으며 기본적인 축구 기술과 전술을 익혔다.
2. 선수 경력
이반 구델은 유고슬라비아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평가받으며 짧지만 강렬한 선수 경력을 남겼다. 그는 클럽과 국가대표팀에서 모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2.1. 클럽 경력
즈미야브치에서 태어난 구델은 고향 인근의 NK 므라차이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이 팀에서 마린코 보반의 지도를 받으며 기량을 갈고닦았다. 몇 년 후, 구델은 하이두크 스플리트로 이적하여 1976년부터 1986년까지 총 362경기에 출전해 93골을 기록하며 클럽의 핵심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빠르게 믿음직하고 우아한 수비형 미드필더로 명성을 얻었으며, 유고슬라비아 언론으로부터 "즈미야브치의 프란츠 베켄바워"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새롭게 떠오르는 유럽 축구계의 신성이었던 그의 경력은 갑작스럽게 막을 내렸다. 구델은 B형 간염 진단을 받으면서 건강 문제로 인해 선수 생활을 강제로 중단해야만 했다. 당시 26세였던 그는 1986년 9월 23일, 스플리트에서 츠르베나 즈베즈다와의 1986-87 시즌 리그 경기가 그의 마지막 공식 경기가 되었다. 이로 인해 지롱댕 드 보르도와의 사전 계약은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2.2. 국가대표팀 경력
이반 구델은 유고슬라비아 국가대표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조국의 축구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청소년 대표팀에서부터 성인 대표팀에 이르기까지, 그는 중요한 국제 대회에 참가하며 자신의 재능을 입증했다.
2.2.1. 청소년 국가대표팀
1979년, 18세의 구델은 매우 바쁜 여름을 보냈다. 첫째, 1979년 6월에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UEFA 유럽 U-18 축구 선수권 대회에 유고슬라비아 대표로 참가하여 결승전에서 불가리아를 꺾고 조국의 우승을 이끌었다. 구델은 이 대회에서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그 해 여름 후반인 1979년 8월, 구델은 일본에서 개최된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 유고슬라비아 대표팀 일원으로 참가했다. 이 대회에서 유고슬라비아는 18세의 디에고 마라도나가 이끄는 아르헨티나를 포함한 강력한 조에 편성되어 다음 라운드 진출에 실패했다.
2.2.2. 성인 국가대표팀
구델의 청소년 국가대표팀에서의 뛰어난 활약은 당시 성인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밀랸 밀랴니치의 주목을 받았고, 밀랴니치 감독은 이듬해 구델을 성인 국가대표팀에 처음으로 차출했다.
그는 1980년 9월, 룩셈부르크와의 1982년 월드컵 예선전 원정 경기에서 후반 85분에 조란 부요비치와 교체되어 들어가며 유고슬라비아 국가대표팀에 데뷔했다. 이후 구델은 빠르게 밀랴니치 감독의 총애를 받는 선수가 되었고, 21세의 어린 나이에 국가대표팀 주장 완장을 차는 등 팀의 핵심으로 성장했다. 그는 총 33번의 국가대표팀 경기에 출전하여 3골을 기록했다. 구델은 1982년 FIFA 월드컵과 UEFA 유로 1984에 참가하여 조국의 주요 국제 대회에 기여했다. 특히 1982년 월드컵에서의 훌륭한 경기력 덕분에, 프랑스의 권위 있는 스포츠 잡지인 레키프는 그를 1982년 월드컵 이상적인 팀 명단에 올리기도 했다. 그의 마지막 국가대표팀 경기는 1986년 5월 벨기에와의 친선경기였다. 또한 그는 1982년에 유고슬라비아 올해의 축구 선수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3. 감독 경력
이반 구델은 1990년부터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하여 다양한 팀에서 감독직을 수행하며 경험을 쌓았다.
그는 감독으로서 크로아티아 성직자 국가대표팀과 크로아티아 생도 국가대표팀을 지도했다. 특히 생도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2001년 잉글랜드에서 열린 유로챔스 대회에서 니코 크란차르가 포함된 세대를 이끌며 동메달을 획득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후, 그는 여러 클럽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스토브레츠의 프리모라츠를 이끌고 크로아티아 1부 리그 승격을 이룩했으며, 클리스의 우스코크, 자다르, 두브로브니크 등의 팀을 감독했다. 또한 오스트리아 클럽인 포르베르츠 슈타이어에서도 지도자 생활을 했다. 2005년에는 과거 선수로 활약했던 하이두크 스플리트의 감독으로 취임하여 미로슬라브 블라제비치의 후임을 맡기도 했다. 하이두크를 맡기 전, 구델은 크로아티아 U-17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역임했으며, 이탈리아에서 열린 2005년 UEFA 유럽 U-17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팀을 4위로 이끄는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냈다.
4. 수상
이반 구델은 선수 시절 뛰어난 재능으로 여러 우승 기록과 개인 수상을 달성했다.
- Hajduk Split
- 유고슬라비아컵: 1983-84
- 국가대표팀
- UEFA 유럽 U-18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 1979
- 개인
- UEFA 유럽 U-18 축구 선수권 대회 최우수 선수: 1979
- 유고슬라비아 올해의 축구 선수: 1982
- 레키프 1982년 FIFA 월드컵 이상적인 팀 선정
5. 유산과 평가
이반 구델은 짧고 아쉬운 선수 생활에도 불구하고 유고슬라비아 축구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그는 '즈미야브치의 베켄바워'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뛰어난 재능과 우아한 플레이 스타일로 당대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다. 21세의 어린 나이에 국가대표팀 주장 완장을 찼다는 사실과 1982년 월드컵에서 보여준 활약으로 프랑스 유력 잡지인 '레키프'의 '이상적인 팀'에 선정된 것은 그의 천부적인 재능을 증명한다.
비록 B형 간염이라는 예상치 못한 질병으로 25세에 선수 생활을 강제로 마감해야 했지만, 그의 잠재력은 축구팬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회자되었다. 그의 경력은 축구계에 큰 아쉬움을 남겼지만, 선수로서의 업적과 이후 지도자로서 보여준 헌신은 그의 유산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 구델은 단순한 선수가 아닌, 축구에 대한 열정과 재능으로 역경을 극복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