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초기 및 배경
이가라시 료타는 홋카이도 루모이시에서 태어나 삿포로시에서 성장했으며, 초등학교 4학년 때 지바현으로 전학을 갔다. 그의 아버지는 유바리시 출신으로 홋카이도 유바리미나미 고등학교에서 알파인스키 국체 선수였다. 그의 어머니는 야쿠르트 OB이자 감독을 역임한 와카마쓰 츠토무와 루모이 시립 루모이 중학교 동창이었다.
1.1. 출생 및 유년기
이가라시는 지바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초등학교 때부터 연식 야구팀인 카시와이 재거스에서 야구를 시작했다. 이 시기부터 어깨가 좋다는 평가를 받아 잠시 포수를 경험하기도 했다.
1.2. 학창 시절 및 프로 입단 전 경력
지바시의 하나미가와 제1중학교에 진학한 후에는 지바 기타 리틀 시니어팀에 소속되어 중학교 시절까지는 주로 1루수로 활약했다. 본인 스스로는 시니어 시절에 대해 "못 치고, 못 달리고, 못 지키는 엉망진창이었다"고 회고하며, 당시 동료들 또한 그가 프로에 입단한 것에 대해 놀라움을 표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강한 어깨를 눈여겨본 감독의 권유로 투수로 전향하게 된다.
게이아이가쿠엔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투수로서의 재능을 꽃피웠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에는 이미 구속이 140km/h에 육박할 정도로 성장했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 지바현 대회에서는 5회전에서 아쉽게 패퇴했지만, 현내 최고 수준의 강속구 투수로 명성을 떨쳤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1997년 드래프트 회의에서 야쿠르트 스왈로즈로부터 2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하게 된다. 입단 당시 그의 등번호는 53번이었다.
2. 프로 야구 경력
이가라시 료타는 1998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여, 2009년까지 활약하며 팀의 핵심 불펜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며 뉴욕 메츠, 피츠버그 파이리츠, 토론토 블루제이스, 뉴욕 양키스에서 뛰었다. 2013년 일본으로 복귀하여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으며, 2019년에는 친정팀 야쿠르트로 돌아와 2020년 은퇴를 선언하기까지 그의 프로 경력은 23년간 이어졌다.
2.1. 일본프로야구 (NPB) - 야쿠르트 1기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의 첫 번째 활동 시기는 1998년부터 2009년까지로, 이 기간 동안 이가라시는 리그를 대표하는 강속구 투수이자 핵심 불펜 투수로 성장했다.
1998년 입단 첫 해에는 주로 2군에서 활동하며 10경기에 등판해 30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주목받았다. 특히 이즈시 야구장에서 열린 이스턴 리그 우승 결정전인 9월 26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와의 경기에서 비로 인해 6회 강우 콜드 게임이 선언되었지만, 6회 참고 기록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다. 또한 팜 일본 선수권 대회에서는 고졸 루키로는 사상 최초로 MVP를 수상했다.
1999년에는 4월 20일 주니치 드래건스전에서 12회초 동점 상황에 구원 등판하며 1군 첫 등판을 가졌으나, 제구 난조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 하지만 5월 27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전에서 7회초에 등판하여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이 역전승하며 프로 첫 승리를 기록했다. 시즌 중 2군으로 내려가기도 했으나 8월에 복귀하여 시즌 막판에는 최고 구속 154 km/h를 기록하는 등 접전 상황에서 등판 기회가 늘어났다. 최종적으로 6승을 거두며 맹활약했다.
2000년에는 첫 개막 1군에 진입했다. 팀은 초반 부진했지만, 4월 한 달간 3승 1패를 기록한 이가라시의 활약 덕분에 점차 회복세를 보였다. 한때 "이가라시가 던지면 이길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반기에만 구원 투수로서 11승을 기록하며 다승왕 경쟁 선두에 나섰고, 감독 추천으로 생애 첫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하지만 8월 8일 경기에서 손바닥에 물집이 생겨 2군으로 강등되었고, 복귀 후에는 승리를 추가하지 못하며 최다승 타이틀을 멜빈 번치에게 내주었다. 시즌 종료 후 후루타 아쓰야와 함께 최우수 배터리상을 수상했다. 이가라시와 후루타는 14세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상을 수상하며 당시로서는 사상 최대의 나이 차이 수상 기록을 세웠다. 재계약 시 구단으로부터 등번호 11번을 제안받았으나, 53번에 대한 애착으로 기존 번호를 유지하기도 했다.
2001년에는 스프링 캠프 중 근육 파열로 한 달 진단을 받았으나 3월에 복귀하며 개막 1군에 합류했다. 하지만 5월에는 다시 오른쪽 팔꿈치 통증으로 2군에 강등되었고, 7월 중순에야 복귀할 수 있었다. 팀이 리그 우승을 달성하는 가운데 큰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으나 41경기에 등판하여 개인 최고 평균자책점인 2.59를 기록하며 시즌 막판 팀의 불펜을 지켰다. 하지만 일본 시리즈 2차전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와의 경기에서 8회말 동점 상황에 등판하여 터피 로즈에게 3점 홈런을 허용하며 패전 투수가 되었고, 이후 시리즈에서는 등판하지 못했다.
2002년에는 팬 공모를 통해 동료 이시이 히로토시와 함께 '로켓 보이즈'라는 애칭을 얻었다. 시즌 내내 팀의 확고한 세트업 투수로 활약하며 팀 승리에 기여했고, 생애 처음으로 개막부터 시즌 종료까지 1군에서 뛰었다. 7월에는 감독 추천으로 두 번째 올스타전에 출전하여 강속구 대결로 화제를 모았다. 최종적으로 64경기에 등판하여 구원 투수만으로 8승을 기록했으며, 개인 최고 평균자책점인 2.08의 뛰어난 성적을 남겼다.
2003년에는 부상자가 많았던 투수진 상황에서도 전년에 이어 개막부터 1년간 1군에 머물렀다. 감독 추천으로 세 번째 올스타전에 출전했으며, 2년 연속 60경기 등판이라는 기록과 함께 리그 최다 등판인 66경기에 출전하며 팀의 '승리의 방정식' 핵심 멤버로 활약했다.
2004년에는 전년까지 마무리 투수를 맡았던 다카쓰 신고의 메이저리그 이적에 따라 마무리 투수 보직을 맡게 되었다. 6월 3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 이마오카 마코토를 상대로 당시 일본 프로 야구 역대 최고 구속 타이 기록인 158 km/h를 기록했다. NPB 사상 최초의 파업 해제 후 첫 경기였던 9월 20일 한신전에서도 야노 아키히로를 상대로 3구 연속을 포함해 총 4구의 158 km/h 강속구를 던지며 '속구왕'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이 기록은 2005년 마크 크룬이 159 km/h를 기록하며 경신되었지만, 이가라시는 2009년 시즌 종료 시점까지 이라부 히데키, 야마구치 가즈오 등과 함께 일본인 최고 구속 타이 기록을 보유했다. 또한 그는 올스타전 최고 구속 기록인 157 km/h를 보유하고 있다. 7월에는 팬 투표 1위로 선정되며 네 번째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최종적으로 5승 3패 37세이브를 기록하며 구단 최다 세이브 기록을 경신했고, 최우수 구원 투수 타이틀을 획득했다. 그는 리그에서 세이브와 등판 경기 수 모두 1위를 기록했다.
2005년에는 전년도에 이어 마무리 투수로 기대를 모았으나, 개막 전 허벅지 부상으로 부진했고 4월 중순에는 2001년 이후 처음으로 2군에 강등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2년 연속 올스타전 팬 투표 1위로 선정되며 다섯 번째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최종적으로 49경기에 등판했으나 4년 연속 60경기 등판에는 실패했다. 4월 6일에는 후지이 슈고, 이시이 히로토시와 함께 19개의 탈삼진을 합작하며 NPB 기록을 세웠다.
2006년에는 개막전에서 세이브를 기록하며 순조롭게 출발하는 듯했으나, 이후 성적이 불안정하여 6월 중순 2군으로 내려갔다. 8월에 1군에 복귀했으나 9월 18일 경기를 마지막으로 다시 말소되었다. 정밀 검사 결과 오른쪽 팔꿈치 인대 단열이 발견되어 시즌 종료 후 토미 존 수술을 받았다. 이 수술의 재활로 인해 2007년 시즌 출전이 불가능하다는 소식을 11월 12일 선수회 주최 행사에서 발표했다.
2007년에는 1년간 재활에만 전념하여 1군 실전 등판은 없었다. 하지만 10월 미야자키 피닉스 리그에서 복귀 등판을 가졌다.
2008년에는 스프링 캠프와 시범 경기를 순조롭게 소화하며 3월 28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개막전 9회초에 등판하여 154 km/h의 구속을 기록하며 1년 반 만의 공식전 등판을 무실점으로 마쳤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 3주 진단의 근육 파열을 당해 잠시 이탈했다. 4월 29일 재등록된 후로는 접전 및 승리 상황에서 기용이 늘었고, 9월 20일 요코하마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는 복귀 후 최고 구속인 157 km/h를 기록하며 약 2년 반 만에 세이브를 올렸다. 토미 존 수술을 받은 투수 중 구속이 저하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는 수술 전과 동등한 구속까지 회복했다. 또한 사사구가 현저히 줄어들면서 안정감 있는 투구를 선보였다. 8월 2일에는 FA 자격을 취득했다. 11년 만에 처음으로 FA 자격을 얻은 그는 "취득하게 되어 기쁘다. 시즌이 끝나고 천천히 생각하겠다"며 FA 행사 여부에 대한 언급을 유보했다.
2009년에는 전년과 마찬가지로 임창용에 이어 8회 세트업 투수로 개막을 맞이했다. 시즌 중 임창용이 세웠던 20경기 연속 무실점 구단 기록을 넘어 21경기 연속 무실점이라는 신기록을 달성했다. 8월 29일 주니치전에서 프로 통산 500경기 등판을 기록했으나, 번트 처리 중 허리 통증이 발생하여 다음 날 등록 말소되었다. 시즌 막판에는 피로로 인해 난조를 보이거나 볼넷을 내주는 경기가 많아졌다. 시즌 종료 후 아른 텔렘을 대리인으로 선임하고 FA 자격을 행사하여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다.
2.2.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MLB) 경력
이가라시는 2009년 시즌 후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하며 뉴욕 메츠에 입단했고, 이후 여러 팀을 거치며 짧지만 의미 있는 메이저리그 경력을 이어갔다.
2.2.1. 뉴욕 메츠
2009년 12월 16일, 이가라시는 뉴욕 메츠와 2년 총액 300.00 만 USD (약 27.00 억 JPY)에 계약하며 메이저리그에 입성했다. 그는 마무리 투수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의 세트업 투수 역할을 맡을 것으로 예상되었으며, 다카하시 히사노리와 함께 메츠에 합류했다.
2010년 4월 8일 플로리다 말린스와의 경기에서 존슨 니즈에 이어 7회에 구원 등판하며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첫 타자 캐머런 메이빈을 볼넷으로 내보냈지만, 핸리 라미레즈를 병살타로 유도하고 호르헤 칸투를 뜬공으로 처리하며 이닝을 마쳤다. 그의 뒤를 이어 일본인 신인 다카하시 히사노리가 8회에 등판했다. 데뷔 초 7경기에서 1실점만을 기록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으나, 4월 21일 햄스트링 부상으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5월 23일 복귀했지만 부진에 빠져 평균자책점 7.91을 기록하며 7월 초 마이너 리그로 강등되었다. 8월 하순에 다시 복귀하여 팀의 161번째 경기에서 1/3이닝을 던진 직후 팀이 역전승하며 메이저리그 첫 승리를 기록하는 행운을 누렸다. 최종적으로 31경기에 등판하여 1승 1패 평균자책점 7.12를 기록했다. 이 해 그는 주로 사용하던 직구와 포크볼 외에 커브를 거의 같은 비율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직구 계열 구종은 탈삼진의 70%를 차지하는 등 효과를 보았지만, 커브는 스트라이크율이 40% 미만으로 제구 난조를 겪었고, 포크볼 또한 피안타율 0.421로 난타당하며 변화구의 정확도 부족에 시달렸다.
2011년 1월 3일, 메츠가 크리스 카푸아노와 테일러 버크홀츠를 영입하면서 40인 로스터에서 제외되었다. 스프링 트레이닝에 초청 선수로 참가했으나, 트리플 A 버팔로 바이슨스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4월 10일 포터킷 레드삭스전에서 첫 세이브를 기록했고, 다음 날 메이저리그로 승격되었다. 하지만 5월 16일 다시 트리플 A로 강등되었다. 버팔로에서는 19경기에서 0승 1패 4세이브, 평균자책점 0.94, WHIP 0.80을 기록하는 호투를 펼쳐 7월 15일 재승격되었다. 총 45경기에 등판하여 4승 1패, 평균자책점 4.66, WHIP 1.84의 성적을 남겼다. 높은 직구의 헛스윙률이 30%를 넘는 등 2005년 이후 최고인 9.78의 높은 탈삼진율을 기록했으나, 볼넷율 6.52로 제구 난조에 시달렸다. 이 해 메이저리그에서 기록한 5승은 모두 1/3이닝을 던지고 얻은 승리였다. 10월 20일에는 재계약 협상이 결렬되어 FA가 되었다. 시즌 후 그는 도미니카 윈터 리그의 레오네스 델 에스코히도에서 뛰며 11경기 3세이브, 평균자책점 3.38을 기록했다.
2.2.2. 피츠버그 파이리츠
2011년 12월 14일, 이가라시는 피츠버그 파이리츠와 2012년 스프링 트레이닝 초청이 포함된 마이너리그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2012년 3월 29일, 파이리츠는 그에게 메이저리그 계약을 제안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그는 구단 재활 코디네이터를 통해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며 "지금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2.2.3. 토론토 블루제이스 및 뉴욕 양키스
2012년 3월 30일, 이가라시는 피츠버그 파이리츠에서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트레이드되었다. 그는 트리플 A 라스베이거스 51스에서 시즌을 시작했지만, 19경기에서 1승 1패 4세이브, 평균자책점 1.29, WHIP 0.62를 기록하며 호투했고 최고 구속 159 km/h (99 mph) (약 159 km/h)를 기록했다. 5월 25일 메이저리그로 승격되었으나, 2경기에 등판하여 4실점을 기록하며 평균자책점 36.00을 기록한 후 5월 27일 지명할당되었다.
2012년 5월 29일, 이가라시는 웨이버 공시를 통해 뉴욕 양키스로 이적했다. 그는 트리플 A 스크랜턴/윌크스배러 양키스에서 5경기에 등판한 후, 프레디 가르시아가 경조사 휴가 명단에 오르면서 6월 6일 메이저리그로 승격되었다. 1경기에 등판한 뒤 6월 10일 다시 트리플 A로 강등되었다. CC 사바시아와 앤디 페팃의 부상 이탈로 가르시아가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하면서 6월 28일 다시 메이저리그로 콜업되었으나, 등판 기회 없이 다음 날 다시 마이너리그로 내려갔다. 8월 12일 사바시아가 다시 부상자 명단에 오르면서 재승격되어 당일 경기에 등판했으나, 데릭 로의 영입으로 다음 날 다시 마이너리그로 강등되었고, 8월 16일에는 40인 로스터에서 제외되었다. 스크랜턴에서는 30경기에 등판하여 4승 3패 10세이브, 평균자책점 2.45, WHIP 1.31의 성적을 기록했다. 2012년 10월, 이가라시는 마이너리그 프리 에이전트를 선언했다.

2.3. 일본프로야구 (NPB) - 소프트뱅크 호크스
메이저리그에서의 도전을 마친 이가라시는 2012년 11월 17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3년 총액 약 6.00 억 JPY에 계약하며 4년 만에 일본 프로 야구로 복귀했다. 그의 등번호는 야쿠르트 시절과 같은 53번이었다.
2013년 일본 복귀 후 첫 등판은 3월 29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개막전이었다. 8회 5점 리드 상황에서 3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타자 3명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4월 7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전에서는 8회 2점 리드 상황에서 등판했으나, 선두 타자 양다이강의 내야 안타 후 1사 1, 2루에서 나카타 쇼에게 역전 3점 홈런을 허용하며 복귀 후 첫 블론 세이브를 기록했고 패전 투수가 되었다. 4월 11일 오릭스 버펄로스전에서는 연장 10회 동점 상황에서 등판하여 무실점을 기록했고, 11회에도 등판하여 실점 없이 팀의 끝내기 승리를 이끌며 복귀 후 첫 홀드를 기록했다. 4월 20일에는 2군 조정을 자청하며 1군 등록이 말소되었다. 5월 31일 교류전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 7회 7점 리드 상황에 등판하여 1이닝 3연속 탈삼진을 기록했다. 6월 22일부터 7월 3일까지 5경기 연속 홀드를 기록했으며, 7월 9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전에서는 9회 1점 리드 상황에 등판하여 복귀 후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7월 14일 오릭스전에서는 9회 1점 리드 상황에서 등판했으나, 볼넷과 안타로 1, 3루 위기를 맞았고, 이토이 요시오에게 희생 플라이를 허용하며 동점을 내주며 복귀 후 첫 세이브 실패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어진 공격에서 이마미야 겐타의 끝내기 안타로 팀이 승리하며 복귀 후 첫 승리를 기록했다. 이후 주로 마무리 투수로 기용되어 7월 25일부터 9월 16일까지 20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며 활약했다. 9월 30일 세이부전(후쿠오카 돔)에서는 1점차로 뒤진 9회에 등판하여 2이닝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이 10회 끝내기 승리를 거두며 NPB 역사상 최초로 구원 투수만으로 통산 50승을 달성했다.
2014년에는 데니스 사파테의 합류로 세트업 투수로 개막 1군에 합류했다. 4월 12일부터 7월 26일까지 33경기에서 1실점 (자책점 0)을 기록하며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7월 30일부터 9월 5일까지 16경기 또한 무실점을 기록했다. 7월 2일부터 9월 2일까지 2세이브를 포함하여 23경기 연속 홀드를 기록했다. 이 기간 동안 퍼시픽 리그 역사상 두 번째이자 개인 통산 두 번째 월간 MVP (7월)를 수상했다. 8월 3일 닛폰햄전(삿포로 돔)에서 NPB 통산 600경기 등판을 달성했으며, 8월 8일 세이부전(사이타마 현영 오미야 공원 야구장)에서는 후지타 소이치가 보유했던 600경기를 넘어 NPB 신기록인 601경기 연속 구원 등판을 달성했다. 8월 28일에는 역대 16번째로 통산 100홀드를 달성했다. 9월 5일에는 2010년 브라이언 팔켄보그의 39홀드를 넘어 구단 신기록인 40홀드를 달성했다. 9월 7일 세이부전에서는 8회 1점차 리드 상황에서 등판했으나 나카무라 다케야에게 역전 적시 2루타를 허용하는 등 3실점하며 시즌 첫 패를 기록했다. 9월 20일 세이부전에서는 연장 10회 동점 상황에서 등판하여 와키야 료타에게 적시타를 맞아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 9월 25일, 팀이 리그 선두인 상황에서 라쿠텐전 7회 2점 리드 상황에 등판했으나, 앤드류 존스에게 볼넷, 시마 모토히로와 마스다 신타로, 이와사키 다쓰로, 니시다 데쓰로에게 연속 밀어내기 볼넷을 허용하며 4실점하는 대난조를 보였다. 이는 1이닝 4밀어내기 볼넷으로 1954년 다카하시 유니온즈의 다무라 미쓰루 이후 60년 만에 역대 5번째 NPB 타이 기록이다. 9월에만 3패를 기록하며 팀은 3연패에 빠졌고, 자력 우승 가능성이 사라졌다. 10월 2일 오릭스와의 시즌 최종전에서 8회 동점 상황에서 등판하여 1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개인 최다이자 구단 신기록, 2014년 퍼시픽 리그 최다 기록인 시즌 44홀드를 달성했다. 팀은 연장 10회 마쓰다 노부히로의 끝내기 안타로 3년 만에 리그 우승을 확정했고, 구단 신기록인 정규 시즌 총 130홀드에도 기여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10월 15일 9회 1점차 뒤진 상황에서 등판하여 오타니 요이치를 뜬공으로 처리했고, 그 후 요시무라 유키의 끝내기 2루타로 팀이 승리하며 클라이맥스 시리즈 첫 승리를 기록했다. 일본 시리즈에서는 4경기 5이닝 무실점의 활약을 펼치며 팀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고, 본인 또한 생애 첫 일본 시리즈 승리 투수가 되었다.
2015년 스프링 캠프에서 오른쪽 종아리 통증으로 인해 조정이 늦어져 개막 1군에 합류하지 못했다. 하지만 4월 17일 1군에 등록되었고, 4월 21일 라쿠텐전에서 시즌 첫 등판을 가졌다. 1이닝 1피안타 2탈삼진으로 호투했으며, 6월 11일 교류전 한신전에서 2실점하기 전까지 19경기에서 1승 0패 13홀드, 무실점 무자책점을 기록하며 좋은 구원 투구를 펼쳤다. 8월 7일 지바 롯데 마린스전에서 2년 만에 홈런을 허용하며 역전 3점 홈런을 맞고 패전 투수가 되기도 했으나, 9월 13일 라쿠텐전에서 세이브를 기록하는 등 세트업 투수로서 안정적인 피칭을 선보이며 팀의 일본 시리즈 2연패에 기여했다. 이 해 그는 54경기에 등판하여 52이닝을 던졌고, 3승 1패 31홀드 2세이브, 개인 최고 평균자책점인 1.38을 기록했다. 시즌 오프인 12월 7일에는 3년 연속 50경기 이상 등판, 총 86홀드 등의 활약을 인정받아 2.00 억 JPY 인상된 2년 계약에 연봉 3.50 억 JPY (추정치)와 성과급으로 재계약했다.
2016년에도 개막 1군에 등록되었고, 개막 2번째 경기인 3월 26일 라쿠텐전에서 시즌 첫 등판을 가졌다. 4월 5일 롯데전에서는 제프 윌리엄스와 타이 기록인 역대 4위 통산 141홀드를 기록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으나, 4월 21일 치바 마린 스타디움에서 훈련 중 왼쪽 허벅지 뒤 근육 파열 진단을 받아 전력에서 이탈했다. 6월 23일 두 달 만에 1군에 합류했고, 6월 27일부터 롯데와의 3연전에서 복귀 등판을 가졌다. 6월 30일에는 7회초 2사 2루 위기에서 2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후속 타자를 막아냈다. 7월에는 9경기에 등판하여 2홀드를 기록하는 등 불펜 로테이션을 지켰으나, 7월 30일 닛폰햄전에서 동점인 9회에 등판하여 3사사구를 내주며 밀어내기로 끝내기 패배를 당하며 시즌 첫 패를 기록했다. 8월 이후에도 불펜 로테이션의 일각을 담당했고, 8월 28일 후쿠오카 돔에서 열린 롯데전에서는 역대 15번째로 통산 700경기 등판을 기록했다. 하지만 부상 이탈의 영향으로 이 시즌 성적은 33경기 등판, 27.1이닝 투구, 0승 1패 7홀드, 평균자책점 3.62로 일본 1군 등판에서 첫 무승을 기록했다. 시즌 오프에는 멕시칸 퍼시픽 리그에 자율적으로 참가하여 토마테로스 데 쿨리아칸에 소속되었다. 이 리그에서 GM과 감독이 2010년 뉴욕 메츠에서 함께 뛰었던 다카하시 히사노리로 착각하여 일미 통틀어 처음으로 선발 등판을 경험했다. 11월 10일 첫 선발 첫 승을 거두었고, 11월 16일에는 8이닝 1피안타 무실점 12탈삼진으로 3승째를 기록했다. 최종적으로 선발 5경기, 구원 2경기 총 7경기에 등판하여 37.1이닝을 던져 3승 2패, 평균자책점 1.93의 좋은 성적을 남겼다.
2017년 미야자키 스프링 캠프에서는 프로 20년 만에 체인지업 습득에 매진했다. 4월 2일 열린 개막 3차전 롯데전에서 2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첫 승리를 기록했다. 4월 21일 라쿠텐전(후쿠오카 돔)에서는 2승째를 올리며 일미 통산 800경기 등판을 달성했다. 6월 18일 히로시마전에서는 2005년 야쿠르트 시절 이후 12년 만에 타석에 들어섰다. 투구에서는 1.2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팀의 교류전 최고 승률 달성에 기여했다. 7월까지 불펜의 한 축을 담당하며 39경기에 등판하여 6승 0패 10홀드를 기록했으나, 7월 11일 라쿠텐전에서 왼쪽 허벅지 뒤를 다쳐 부상 교체되었다. 이후 '왼쪽 반건 반막양근 손상'으로 전치 2~3개월 진단을 받아 전력에서 이탈했다. 재활을 거쳐 9월 13일 오릭스전에서 두 달 만에 복귀 등판을 가졌다. 이 해 46경기에 등판하여 이적 후 최다인 6승을 기록했고 11홀드를 기록하며 팀의 2년 만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일본 시리즈 4차전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와의 경기에 등판하며 팀의 2년 만의 일본 최고 자리를 되찾는 데 기여했다. 12월 1일에는 1000.00 만 JPY 인상된 연봉 3.60 억 JPY (추정치)의 단년 계약에 사인했다.
2018년에는 추간판 탈출증으로 인해 시즌 초반 출전이 늦어졌고, 7월에 1군에 승격되었다. 그는 11월 4일 구단으로부터 전력 외 통보를 받았으며, 12월 2일 자유 계약 선수로 공시되었다.
2.4. 일본프로야구 (NPB) - 야쿠르트 2기 및 은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방출된 이가라시는 2018년 12월 26일 친정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로의 복귀가 결정되었다. 이는 2019년 1월 30일에 공식 발표되었으며, 그의 등번호는 다시 53번이 되었다. 복귀 당시 그의 추정 연봉은 3.40 억 JPY가 줄어든 2000.00 만 JPY였다.
2019년 개막 후 4번째 등판인 4월 5일 주니치전에서 야쿠르트 복귀 후 첫 승리를 기록했다. 4월 한 달간 구원 등판만으로 5승을 올리며 NPB 사상 최초로 40대 시즌에 월간 5승을 기록한 투수가 되었고, 3·4월 월간 MVP 후보에도 올랐다. 5월 28일에는 NPB 통산 800경기 등판을 달성하며 역대 7번째 기록이자, 가장 나이 많은 구원 투수로서 이정표를 세웠다. 또한 8월 8일에는 NPB와 MLB를 합산한 일미 통산 900경기 등판도 달성하며 역대 4번째 기록자가 되었다. 시즌 중 2군으로 재조정을 위해 등록 말소되기도 했지만, 1군에서 45경기에 등판하여 평균자책점 2.98, 5승 4홀드를 기록했다. 재계약에서 연봉이 두 배로 인상된 4000.00 만 JPY에 사인했으며, 일미 통산 1000경기 등판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2020년에는 개막 직전 컨디션 난조로 1군에서 이탈했으며, 이후 한 번도 1군에 합류하지 못했다. 8월에 이 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결심했다. 10월 15일 은퇴 기자회견을 가졌고, 10월 25일 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열린 주니치 드래건스전에서 8회초에 은퇴 등판을 가졌다. 선두 타자를 초구로 잡아내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공교롭게도 그의 마지막 상대 타자는 2012년 토론토 블루제이스 산하 트리플 A 라스베이거스 시절 팀 동료였던 모이세 시에라였다. 경기 후 은퇴식에서는 다카쓰 신고 감독과 가족들로부터 꽃다발을 받았고, 팀 동료들에게 헹가래를 받았다. 이후 그라운드 일주 중에는 과거 후루타 아쓰야 등이 선보였던 라이트 펜스 기어오르기 퍼포먼스를 재현했다. 23년간의 현역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으며, 1997년 드래프트 지명 선수 중에서는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선수였다.
3. 선수로서의 특징
이가라시 료타는 NPB, MLB, 마이너리그를 통틀어 1000경기 이상을 등판했으며, 멕시코 윈터 리그에서 5경기의 선발 등판을 경험한 것을 제외하고는 프로 데뷔 이후 모든 공식전 등판을 구원 투수로 소화했다.
3.1. 투구 스타일 및 구종
야쿠르트 시절에는 평균 구속 약 151 km/h, 당시 일본 기록 타이인 최고 구속 158 km/h를 기록한 직구를 주 무기로 삼아 센트럴 리그의 '속구왕'으로 불리며 큰 인기를 얻었다. 동료 이시이 히로토시와 함께 '로켓 보이즈'라는 애칭이 붙기도 했다. 구원 등판만으로 전반기 11승을 기록했던 2000년을 비롯하여 승운이 따르는 시즌이 많았으며, 야쿠르트 스왈로즈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그에게 "승리의 여신이 반한 남자"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붙이기도 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기록한 5승 모두가 1/3이닝 투구로 얻은 승리라는 행운을 얻었다.
그는 스리쿼터 투구 폼에서 평균 구속 약 150 km/h (93 mph) (약 150 km/h), 마이너리그에서 개인 최고 구속 159 km/h (99 mph) (약 159 km/h)의 압도적인 스피드를 자랑하는 직구 (포심 패스트볼, 투심 패스트볼)와 평균 구속 약 138 km/h (86 mph) (약 138 km/h)의 SFF성 포크볼을 주무기로 삼았으며, 일본에서의 통산 탈삼진율 9.95로 탈삼진이 많았다. 반면 한 시즌 동안 4구 연속 볼을 던지는 경우가 10회 이상 발생하는 등 제구 난조를 보이기도 했다.
2005년 이전에는 투구 비율의 70~80%가 직구였으나, 2006년에는 직구의 투구 비율이 줄어들었다. 부상에서 복귀한 2008년부터는 포크볼의 투구 비율이 약 40%에 달했다. 2010년에는 투구 비율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직구와 포크볼 외에 포크볼과 거의 같은 비율로 너클 커브를 섞어 던지기 시작했으며, 2011년에는 그립을 깊게 잡고 낙폭을 크게 한 포크볼과 슬라이더도 구사했다. 소프트뱅크 이적 후에는 직구의 평균 구속이 약 148 km/h를 기록했으며, 변화구는 포크볼의 비율이 줄어든 대신 양키스 시절 습득한 너클 커브나 컷볼을 사용하게 되었다.
3.2. 투구폼 및 기술적 변화
그는 어깨에 힘을 싣고 팔을 밀어내듯이 던지는 독특한 투구폼을 가지고 있었으며, 퀵 모션 또한 1.1초 초반으로 매우 빨랐다. 팔을 의도적으로 접은 채 최소한의 반경으로 팔을 휘두르는 것이 폭발적인 강속구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현역 시절 무로후시 고지로부터 몸 사용법을 배웠는데, 상반신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하반신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며, 투구 시 팔은 스스로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하반신에 의해 "휘둘러지는" 것임을 자각했다고 한다. 은퇴 후 본인은 일본 구단 시절 전담 포수였던 후루타 아쓰야가 제구력이 좋지 않았던 젊은 시절의 자신에게 일부러 제구 문제를 지적하지 않고 장점을 키워준 것이 강속구 투수로 대성한 요인이라고 밝혔다.
4. 개인 생활
이가라시 료타는 선수 생활 외에도 개인적인 삶과 팬들과의 소통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4.1. 가족 및 관계
그의 아내는 과거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의 마스코트 걸이었다.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그는 블로그나 인터뷰에서 종종 팀과 일본 야구에 대한 깊은 애착을 드러냈으며, 한때 메이저리그 이적 의사를 부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FA 자격을 취득했을 때는 미래의 메이저리그 이적도 선택지 중 하나라고 언급했다. 그는 넬슨즈의 광팬이기도 하다.
4.2. 스와로즈맨
2008년 시즌 오프에 '이가라시의 절친'을 자처하는 가면의 남자 '스와로즈맨'이 등장했다. 스와로즈맨은 이가라시의 훈련을 돕기 위해 홋카이도 루모이에서 왔다고 주장했다. 루차 리브레 선수 U.M.A에게 선물받은 스왈로즈 디자인의 마스크를 2007년 팬 감사 행사에 쓰고 등장한 것이 이 캐릭터의 탄생 계기였으며, 그의 정체는 이가라시 본인이었다. 스와로즈맨은 한때 블로그를 개설하여 활동하기도 했다. 2009년 이가라시가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하면서 스와로즈맨은 '멕시코 프로레슬링 도전'을 선언하며 활동을 중단했다.
5. 현역 은퇴 후 활동
이가라시 료타는 프로 선수 은퇴 후에도 야구 관련 활동을 이어가며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다.
2020년 일본 시리즈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1차전에서 닛폰 TV의 지상파 특별 게스트 해설로 해설가 데뷔를 했다.
2021년 이후로는 닛폰 TV, TV 아사히, TBS, 후지 TV/TV 도쿄 등 모든 도쿄 주요 방송국의 야구 해설을 맡았으며, TOKYO MX와 후쿠오카 지역 해설도 담당했다. ABEMA에서는 MLB 해설을 맡고 있다. 2023년에는 TV 아사히의 '2023 WORLD BASEBALL CLASSIC' 리포터로도 활동했다.
이후 일본인 메이저리거들의 활약과 더불어 그의 이론적이고 섬세하며 시대에 맞는 해설이 호평을 받으며 닛폰 TV의 ZIP!과 news every., TBS의 히루오비, TV 아사히 모닝쇼, 후지 TV 메자마시 TV 등 정보 프로그램 출연이 늘어났다. 닛폰 TV의 후지이 다카히코 아나운서로부터 "일본에서 가장 섭외가 많은 야구 해설가"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인기 있는 해설가가 되었다.
2024년 7월 15일 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열린 그의 고향 루모이시 (JA 루모이) 협찬 경기에서 은퇴 후 처음으로 시구식 마운드에 올라 약 130 km/h의 강속구를 선보였다. 이때 유니폼 등에 'JA RUMOI'라고 새겨져 있었는데, 그는 이를 "이가라시 료타가 아니라 신인 외국인 선수 '제로모이'다"라고 발언하여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되었다.
2024년 7월에는 유튜브에 개인 채널 '이가 채널 ~이가라시 료타의 인생은 여행이다~'를 개설했다. 현역 시절 바빠서 하지 못했던 일들에 도전하면서도, 전 메이저리거로서 MLB와 NPB 양 리그를 해설하는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6. 수상, 기록 및 영예
이가라시 료타는 그의 선수 생활 동안 다양한 타이틀과 개인 기록을 달성하며 일본 야구계에 깊은 족적을 남겼다.
6.1. 주요 타이틀 및 표창
- 최우수 구원 투수: 1회 (2004년)
- 월간 MVP: 2회 (투수 부문: 2004년 7월, 2014년 7월)
- 최우수 배터리상: 1회 (2000년, 포수: 후루타 아쓰야)
- 이가라시와 후루타는 당시 최우수 배터리상 수상자 중 사상 최대의 나이 차이(14세)를 기록했다.
- 팜 일본 선수권 대회 MVP: 1회 (1998년)
6.2. 개인 기록 달성
- NPB 첫 기록**
- 첫 등판: 1999년 4월 20일, 대 주니치 드래건스 4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12회초에 3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1/3이닝 3실점, 패전 투수
- 첫 탈삼진: 상동, 12회초에 야마사키 다케시로부터 헛스윙 삼진
- 첫 승리: 1999년 5월 27일, 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9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7회초에 3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1이닝 무실점
- 첫 세이브: 1999년 10월 3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25차전(히로시마 시민 구장), 8회말에 2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완료, 2이닝 무실점
- 첫 홀드: 2005년 5월 21일, 대 오릭스 버펄로스 2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7회초 2사에 4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1과 1/3이닝 무실점
- NPB 이정표 기록**
- 500경기 등판: 2009년 8월 29일, 대 주니치 드래건스 20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9회초에 2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1/3이닝 무실점 (역대 84번째)
- 600경기 등판: 2014년 8월 3일, 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14차전(삿포로 돔), 8회말에 4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1이닝 무실점 (역대 37번째)
- 100홀드: 2014년 8월 28일, 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20차전(후쿠오카 야후오쿠! 돔), 8회초에 3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1이닝 3탈삼진 무실점 (역대 16번째)
- 700경기 등판: 2016년 8월 28일, 대 지바 롯데 마린스 22차전(후쿠오카 야후오쿠! 돔), 8회초에 5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2/3이닝 1실점 (역대 15번째)
- 800경기 등판: 2019년 5월 28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9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5회초에 3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1이닝 무실점 (역대 7번째)
- NPB 기타 기록**
- 1구 승리 투수: 2006년 5월 2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4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9회초 2사에 아라이 다카히로를 1루수 파울 플라이 아웃 (역대 21번째, 센트럴 리그 12번째)
- 올스타전 출장: 6회 (2000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14년)
- 첫 등판 이후 연속 구원 등판: 823경기 (당시 NPB 기록, 2023년 미야니시 나오키가 경신)
- 1이닝 4밀어내기 볼넷: 2014년 9월 25일, 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3차전(후쿠오카 야후오쿠! 돔) 7회초에 시마 모토히로, 마스다 신타로, 이와사키 다쓰로, 니시다 데쓰로로부터 (역대 5번째, 60년 만에 NPB 타이 기록)
- NPB/MLB 통산 이정표 기록**
- 900경기 등판: 2019년 8월 8일, 대 한신 타이거스 17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9회초에 4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완료, 1이닝 2실점 (역대 4번째)
7. 상세 정보
이가라시 료타의 선수 경력에 대한 상세 통계 및 관련 정보는 다음과 같다.
7.1. 연도별 투수 성적
연도 | 팀 | 등판 | 선발 | 완투 | 완봉 | 무사사구 | 승리 | 패전 | 세이브 | 홀드 | 승률 | 타자 | 투구회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고의사구 | 사구 | 탈삼진 | 폭투 | 보크 | 실점 | 자책점 | 평균자책 | WHIP |
---|---|---|---|---|---|---|---|---|---|---|---|---|---|---|---|---|---|---|---|---|---|---|---|---|---|
1999 | 야쿠르트 | 36 | 0 | 0 | 0 | 0 | 6 | 4 | 1 | -- | .600 | 207 | 47.2이닝 | 34 | 4 | 29 | 0 | 1 | 59 | 3 | 1 | 27 | 26 | 4.91 | 1.32 |
2000 | 56 | 0 | 0 | 0 | 0 | 11 | 4 | 1 | -- | .733 | 301 | 75.1이닝 | 42 | 11 | 33 | 3 | 1 | 90 | 6 | 0 | 28 | 26 | 3.11 | 1.00 | |
2001 | 41 | 0 | 0 | 0 | 0 | 2 | 3 | 0 | -- | .400 | 180 | 41.2이닝 | 25 | 2 | 28 | 2 | 2 | 51 | 1 | 0 | 13 | 12 | 2.59 | 1.27 | |
2002 | 64 | 0 | 0 | 0 | 0 | 8 | 2 | 4 | -- | .800 | 300 | 78.0이닝 | 49 | 8 | 18 | 2 | 3 | 97 | 8 | 0 | 19 | 18 | 2.08 | 0.86 | |
2003 | 66 | 0 | 0 | 0 | 0 | 5 | 5 | 0 | -- | .500 | 310 | 74.0이닝 | 60 | 9 | 33 | 2 | 1 | 83 | 7 | 1 | 33 | 32 | 3.89 | 1.26 | |
2004 | 66 | 0 | 0 | 0 | 0 | 5 | 3 | 37 | -- | .625 | 313 | 74.1이닝 | 57 | 9 | 36 | 5 | 1 | 86 | 4 | 0 | 24 | 22 | 2.66 | 1.25 | |
2005 | 49 | 0 | 0 | 0 | 0 | 3 | 2 | 4 | 11 | .600 | 246 | 56.2이닝 | 52 | 6 | 27 | 2 | 1 | 60 | 6 | 0 | 24 | 22 | 3.49 | 1.39 | |
2006 | 29 | 0 | 0 | 0 | 0 | 1 | 2 | 1 | 1 | .333 | 119 | 25.0이닝 | 33 | 3 | 11 | 1 | 2 | 18 | 4 | 0 | 20 | 17 | 6.12 | 1.76 | |
2008 | 44 | 0 | 0 | 0 | 0 | 3 | 2 | 3 | 12 | .600 | 171 | 43.2이닝 | 35 | 3 | 6 | 0 | 2 | 42 | 3 | 0 | 13 | 12 | 2.47 | 0.94 | |
2009 | 56 | 0 | 0 | 0 | 0 | 3 | 2 | 3 | 29 | .600 | 221 | 53.2이닝 | 42 | 3 | 20 | 1 | 3 | 44 | 1 | 0 | 19 | 19 | 3.18 | 1.16 | |
2010 | NYM | 34 | 0 | 0 | 0 | 0 | 1 | 1 | 0 | 2 | .500 | 135 | 30.1이닝 | 29 | 4 | 18 | 1 | 0 | 25 | 3 | 0 | 24 | 24 | 7.12 | 1.55 |
2011 | 45 | 0 | 0 | 0 | 0 | 4 | 1 | 0 | 2 | .800 | 190 | 38.2이닝 | 43 | 2 | 28 | 2 | 4 | 42 | 3 | 0 | 20 | 20 | 4.66 | 1.84 | |
2012 | TOR | 2 | 0 | 0 | 0 | 0 | 0 | 0 | 0 | 0 | ---- | 10 | 1.0이닝 | 5 | 0 | 2 | 0 | 0 | 2 | 0 | 0 | 4 | 4 | 36.00 | 7.00 |
NYY | 2 | 0 | 0 | 0 | 0 | 0 | 0 | 0 | 0 | ---- | 16 | 3.0이닝 | 4 | 0 | 3 | 0 | 0 | 3 | 0 | 0 | 4 | 4 | 12.00 | 2.33 | |
'12 계 | 4 | 0 | 0 | 0 | 0 | 0 | 0 | 0 | 0 | ---- | 26 | 4.0이닝 | 9 | 0 | 5 | 0 | 0 | 5 | 0 | 0 | 8 | 8 | 18.00 | 3.50 | |
2013 | 소프트뱅크 | 51 | 0 | 0 | 0 | 0 | 3 | 3 | 12 | 11 | .500 | 214 | 53.1이닝 | 38 | 1 | 18 | 0 | 1 | 58 | 1 | 1 | 17 | 15 | 2.53 | 1.05 |
2014 | 63 | 0 | 0 | 0 | 0 | 1 | 3 | 2 | 44 | .250 | 226 | 59.1이닝 | 33 | 0 | 18 | 0 | 1 | 71 | 4 | 1 | 11 | 10 | 1.52 | 0.86 | |
2015 | 54 | 0 | 0 | 0 | 0 | 3 | 1 | 2 | 31 | .750 | 203 | 52.0이닝 | 31 | 1 | 15 | 1 | 4 | 59 | 3 | 0 | 8 | 8 | 1.38 | 0.88 | |
2016 | 33 | 0 | 0 | 0 | 0 | 0 | 1 | 0 | 7 | .000 | 123 | 27.1이닝 | 23 | 3 | 14 | 1 | 4 | 27 | 2 | 0 | 11 | 11 | 3.62 | 1.35 | |
2017 | 46 | 0 | 0 | 0 | 0 | 6 | 0 | 0 | 11 | 1.000 | 170 | 41.2이닝 | 20 | 2 | 21 | 0 | 3 | 28 | 2 | 0 | 8 | 8 | 1.73 | 0.98 | |
2018 | 23 | 0 | 0 | 0 | 0 | 0 | 1 | 0 | 2 | .000 | 94 | 20.0이닝 | 23 | 2 | 11 | 0 | 0 | 14 | 2 | 0 | 11 | 10 | 4.50 | 1.70 | |
2019 | 야쿠르트 | 45 | 0 | 0 | 0 | 0 | 5 | 1 | 0 | 4 | .833 | 193 | 42.1이닝 | 35 | 4 | 24 | 1 | 3 | 33 | 3 | 1 | 19 | 14 | 2.98 | 1.39 |
2020 | 1 | 0 | 0 | 0 | 0 | 0 | 0 | 0 | 0 | ---- | 1 | 0.1이닝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00 | 0.00 | |
NPB 통산 (18년) | 823 | 0 | 0 | 0 | 0 | 65 | 39 | 70 | 163 | .625 | 3592 | 866.1이닝 | 632 | 71 | 362 | 21 | 33 | 920 | 60 | 5 | 305 | 282 | 2.93 | 1.15 | |
MLB 통산 (3년) | 83 | 0 | 0 | 0 | 0 | 5 | 2 | 0 | 4 | .714 | 351 | 73.0이닝 | 81 | 6 | 51 | 3 | 4 | 72 | 6 | 0 | 52 | 52 | 6.41 | 1.81 |
- 각 연도의 굵은 글씨는 리그 최고 기록.
- 1998년, 2007년은 1군 출장 없음.
7.2. 연도별 윈터 리그 투수 성적
연도 | 팀 | 등판 | 선발 | 완투 | 완봉 | 무사사구 | 승리 | 패전 | 세이브 | 홀드 | 승률 | 타자 | 투구회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고의사구 | 사구 | 탈삼진 | 폭투 | 보크 | 실점 | 자책점 | 평균자책 | WHIP |
---|---|---|---|---|---|---|---|---|---|---|---|---|---|---|---|---|---|---|---|---|---|---|---|---|---|
2011-2012 | 히간테스 | 11 | 0 | 0 | 0 | 0 | 0 | 0 | 3 | -- | ---- | 48 | 10.2이닝 | 11 | 0 | 4 | 0 | 1 | 14 | 0 | 0 | 5 | 4 | 3.38 | 1.41 |
2016-2017 | 쿨리아칸 | 7 | 5 | 0 | 0 | 0 | 3 | 2 | 0 | -- | .600 | 142 | 37.1이닝 | 23 | 2 | 9 | 0 | 1 | 49 | 3 | 0 | 10 | 8 | 1.93 | 0.86 |
7.3. 연도별 수비 성적
연도 | 팀 | 경기 | 자살 | 보살 | 실책 | 병살 | 수비율 |
---|---|---|---|---|---|---|---|
1999 | 야쿠르트 | 36 | 1 | 5 | 0 | 0 | 1.000 |
2000 | 56 | 2 | 6 | 1 | 0 | .889 | |
2001 | 41 | 1 | 3 | 1 | 0 | .800 | |
2002 | 64 | 5 | 6 | 0 | 2 | 1.000 | |
2003 | 66 | 4 | 11 | 0 | 3 | 1.000 | |
2004 | 66 | 5 | 8 | 1 | 1 | .929 | |
2005 | 49 | 7 | 7 | 0 | 0 | 1.000 | |
2006 | 29 | 2 | 1 | 0 | 0 | 1.000 | |
2008 | 44 | 1 | 7 | 0 | 0 | 1.000 | |
2009 | 56 | 2 | 10 | 0 | 0 | 1.000 | |
2010 | NYM | 34 | 1 | 2 | 2 | 0 | .600 |
2011 | 45 | 1 | 9 | 0 | 0 | 1.000 | |
2012 | TOR | 2 | 0 | 0 | 0 | 0 | ---- |
NYY | 2 | 1 | 1 | 0 | 0 | 1.000 | |
'12 계 | 4 | 1 | 1 | 0 | 0 | 1.000 | |
2013 | 소프트뱅크 | 51 | 1 | 8 | 0 | 0 | 1.000 |
2014 | 63 | 1 | 15 | 0 | 0 | 1.000 | |
2015 | 54 | 3 | 9 | 2 | 0 | .857 | |
2016 | 33 | 3 | 6 | 0 | 0 | 1.000 | |
2017 | 46 | 0 | 5 | 0 | 0 | 1.000 | |
2018 | 23 | 1 | 4 | 0 | 0 | 1.000 | |
2019 | 야쿠르트 | 45 | 4 | 8 | 1 | 0 | .923 |
2020 | 1 | 0 | 0 | 0 | 0 | ---- | |
NPB 통산 | 823 | 43 | 119 | 7 | 6 | .959 | |
MLB 통산 | 83 | 3 | 12 | 2 | 0 | .882 |
7.4. 등번호 변천사
- 53 (야쿠르트 스왈로즈): 1998년 ~ 2009년
- 18 (뉴욕 메츠): 2010년 ~ 2011년
- 17 (피츠버그 파이리츠): 2012년 ( ~ 3월 30일)
- 56 (토론토 블루제이스): 2012년 (5월 25일 ~ 5월 27일)
- 43 (뉴욕 양키스): 2012년 (6월 7일 ~ 6월 10일)
- 41 (뉴욕 양키스): 2012년 (6월 28일 ~ 6월 29일)
- 53 (뉴욕 양키스): 2012년 (8월 12일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13년 ~ 2018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2019년 ~ 2020년
7.5. 등장곡
- 「희망의 바퀴」(希望の轍) - 사잔 올 스타즈 (2013년)
- 「Skull And Crossbones (해적의 인장)」 - 클라우스 바델트 (2013년 ~ 2016년, 2018년 ~ )
- 「Sandstorm」 - 달루드 (2017년 ~ )
- 「Feel Invincible」 - 스키렛 (2017년)
8. 관련 정보
이가라시 료타는 은퇴 후에도 다양한 미디어 활동과 저서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8.1. 미디어 출연
- TV**
- '추적 LIVE! Sports 워처' → '모두의 스포츠 Sports for All' (TV 도쿄): 2021년 ~ 2023년
- '히루오비' (TBS): 2022년 ~
- 'news every' (닛폰 TV): 2022년 ~
- 'S☆1' (TBS): 2022년
- '월드 스포츠 MLB / 11' (NHK BS1): 2022년 ~ (정규 출연)
- WBC 및 오타니 쇼헤이 관련 주제가 있을 때에는 위 프로그램 외의 다른 방송국 프로그램 (와이드쇼, 정보 프로그램 등)에도 출연한다.
- 텔레비전 드라마**
- '8월은 밤의 배팅센터에서.' 제4화 (TV 도쿄): 2021년 7월 29일, 본인 역으로 출연
- 라디오**
- 'REAL SPORTS' (InterFM897 → 재팬 FM 네트워크 FUTURES 금요일): 2021년 4월 3일 ~ 2022년 3월 26일 (InterFM897), 2022년 4월 1일 ~ (JFNC)
8.2. 관련 서적
- '바다를 건너다: 사무라이들의 구적'(海を渡る:サム라이たちの球跡) - 하세가와 쇼이치 저, 후소샤, 2024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