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린 시절 및 온두라스 클럽 경력
팔라시오스는 라세이바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축구와 함께 성장했다.
1.1. 어린 시절 및 가족 배경
윌슨 팔라시오스는 온두라스의 도시 라세이바에서 태어났다. 그에게는 밀턴, 제리, 조니, 에드윈이라는 네 명의 남동생이 있었으며, 이들 모두 축구 선수로 활동했다. 다섯 형제 모두 CD 빅토리아에서 축구 경력을 시작한 뒤, 이후 CD 올림피아로 이적하여 함께 뛰었다.
1.2. CD 올림피아
팔라시오스는 CD 올림피아에서 102경기에 출전하여 32골을 기록했다. 그는 팀의 우상 중 한 명이 되었고, 2002-03 아페르투라, 2003-04 클라우수라, 2004-05 클라우수라, 2005-06 아페르투라, 2005-06 클라우수라 등 다섯 번의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빠르게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2006년 마라톤과의 경기에서 하프라인 근처에서 골을 넣어 2005-06 클라우수라 우승을 확정 짓는 극적인 순간으로 기억된다.
온두라스에서 매우 성공적인 경력을 쌓은 팔라시오스는 유럽 리그 진출을 모색했다. 2007년 7월 14일, 그는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에서 몇 달간의 입단 테스트를 위해 세르비아로 떠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한 달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는 3년 계약에 대해 약 150.00 만 USD에 달하는 연봉 지급을 거부하여 팔라시오스는 이 클럽에 합류하지 않았다. 팔라시오스는 또한 칼리아리, AS 모나코, 그리고 아스널에서도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2. 잉글랜드 프로 경력
팔라시오스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여러 클럽을 거치며 자신의 기량을 선보였다.
2.1. 버밍엄 시티 (임대)
아스널의 아르센 벵거 감독의 추천에 따라 프리미어리그 클럽 버밍엄 시티는 팔라시오스에게 입단 테스트 기회를 주었고, 이는 성공적이었다. 그는 2007년 8월 31일 6개월 임대 계약을 체결하며 잉글랜드 무대에 진출했다. 9월 22일, 안필드에서 리버풀과의 무득점 무승부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10월에는 팔라시오스를 젊은 폴 인스에 비유했던 스티브 브루스 감독이 임대 계약을 영구 이적으로 전환할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브루스 감독이 위건 애슬레틱으로 떠나고, 팔라시오스의 동생이 납치되는 개인적인 사건으로 인해 그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면서, 새로운 감독인 알렉스 맥리시는 그를 영구적으로 영입할 만큼 충분한 기량을 확인하지 못했다.

2.2. 위건 애슬레틱
2008년 1월 11일, 팔라시오스는 위건 애슬레틱에서 스티브 브루스 감독과 재회하며 미공개 이적료로 완전 이적했다. 이적 다음 날인 1월 12일, 더비 카운티와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브루스 감독의 전술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고, 곧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버풀, 바이에른 뮌헨, 레알 마드리드와 같은 빅 클럽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2009년 1월 16일, 브루스 감독은 토트넘 홋스퍼와의 팔라시오스 이적 협상이 "사실상 합의됐다"고 밝히며, 팔라시오스를 잃는 것은 "자신의 오른팔을 잃는 것과 같다"고 표현하고 "국내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결국 이적은 5일 뒤 확정되었다. 한편, 브루스 감독은 팔라시오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조원희를 영입했다.
2.3. 토트넘 홋스퍼

잉글랜드 북서부에서 런던으로 이주하는 것에 대한 망설임에도 불구하고, 팔라시오스는 토트넘 홋스퍼와 2014년까지 유효한 5년 반 계약의 개인 조건을 합의했다. 2009년 1월 21일, 토트넘은 런던 증권거래소를 통해 팔라시오스 이적료 1200.00 만 GBP에 합의했으며, 선수가 메디컬 테스트를 통과했지만, 워크 퍼밋을 받아야만 이적이 완료될 수 있다고 발표했다.
그는 1월 31일 볼턴 원더러스와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는데, 이 경기에서 팀은 2-3으로 패했지만, 팔라시오스의 슛이 골키퍼에게 막히자 대런 벤트가 리바운드 골을 성공시키며 두 번째 골에 기여했다. 그의 두 번째 경기인 지역 라이벌 아스널과의 힘든 경기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쳐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되었다.
그는 2009년 풋볼 리그 컵 결승전에는 출전할 수 없었다. 2009년 8월 19일, 로비 킨의 스루 패스를 받아 헐 시티를 상대로 잉글랜드 무대에서의 첫 골을 기록했다. 득점 후 팔라시오스는 그 해 초에 시신이 발견된 살해된 동생 에드윈을 기리며 하늘을 가리켰다. 해리 레드냅 감독은 팔라시오스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며, 그가 토트넘을 상대하기 어려운 팀으로 만들었다고 언급하고, 25년 전 그레이엄 로버츠의 플레이 스타일과 효과에 비유했다.
2009-10 시즌 동안, 그는 토트넘에서 43경기를 뛰었으며, 클럽이 처음으로 UEFA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는 데 기여했다。 다음 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에서 16번의 선발 출전에 그쳤지만, 토트넘이 챔피언스리그 8강에 진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4. 스토크 시티
팔라시오스는 2011년 8월 31일 스토크 시티에 합류하여 4년 계약을 체결했으며, 이적료는 미공개였으나 약 600.00 만 GBP로 알려졌다. 그의 토트넘 팀 동료였던 피터 크라우치도 같은 날 스토크 시티로 이적했다. 두 선수 모두 9월 10일 리버풀을 상대로 한 1-0 승리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그러나 팔라시오스는 무릎 부상과 편도선염으로 인해 스토크 시티에서의 시작이 어려웠다.
그는 결국 12월 21일 맨체스터 시티 원정 경기에서 첫 리그 선발 출전을 했다. 팔라시오스는 그 시즌에 주전으로 꾸준히 뛰지는 못했지만, 팀의 유럽 대회 대부분의 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토니 풀리스 감독은 그의 체력 수준과 오래된 무릎 부상이 문제였으며, 완전한 프리시즌 훈련을 거치지 않으면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2012-13 시즌에는 선발 라인업에 들지 못했고, 리그 4경기에 모두 교체 선수로 출전하는 데 그쳤다.
마크 휴즈 감독은 2013-14 시즌 첫 경기인 리버풀 원정에 팔라시오스를 선발 출전시키려 했으나, 워밍업 중 몸이 좋지 않아 경기에서 빠졌고, 병원으로 이송되어 간단한 수술을 받았다. 팔라시오스는 2013-14 시즌에 휴즈 감독 아래에서 더 많은 출전 시간을 얻었으며, 21경기에 출전하며 스토크 시티가 프리미어리그 9위를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2014년 여름, 스토크 시티는 팔라시오스를 중동 클럽인 카타르 SC에 매각하려 했으나, 카타르 SC는 그가 메디컬 테스트에 실패했다고 보고했다. 2014-15 시즌에 휴즈 감독은 팔라시오스를 단 5번만 경기에 출전시켰고, 이 모든 경우 그는 사용되지 않은 교체 선수였다. 그는 4년간 53경기에 출전한 뒤 시즌이 끝나고 계약이 만료되어 팀을 떠났다. 스토크 시티의 피터 코츠 회장은 그의 영입을 옹호하며, "그는 위건과 토트넘에서 매우 훌륭한 선수였으며, 모드리치에게만 자리를 잃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에는 아주 좋은 선수를 영입했다고 생각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잘 풀리지 않았다. 과거에 그의 동생이 납치되고 살해당하는 개인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을 안다. 하지만 때로는 일이 왜 잘 풀리지 않는지 알 수 없다. 엄청난 돈을 낭비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선수의 경력도 발전하지 못했으니 선수에게도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모두 손해를 봤다"고 덧붙였다.
3. 후기 경력 및 은퇴
잉글랜드를 떠난 후 팔라시오스는 선수 생활을 계속하다가 결국 은퇴를 선언했다.
3.1. 마이애미 FC
스토크 시티에서 방출된 후 팔라시오스는 헐 시티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지만, 계약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2015년 12월 10일, 팔라시오스는 새로 창단된 북미 축구 리그(NASL) 클럽 마이애미 FC에 합류했다. 그는 2016 시즌 동안 18경기에 출전했으며, 2016년 11월에 팀에서 방출되었다.
3.2. 온두라스 복귀 및 은퇴
마이애미 FC에서 방출된 후, 팔라시오스는 온두라스로 돌아와 그의 전 소속팀인 CD 올림피아와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뛰었다. 2019년 12월, 그는 현역 은퇴를 발표하고 스포츠 에이전트가 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4. 국가대표 경력
팔라시오스는 온두라스 축구 국가대표팀의 핵심 선수로 오랜 기간 활약했다.

4.1. 성인 국가대표 데뷔 및 월드컵 예선
팔라시오스는 온두라스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등번호 8번을 달고 뛰었다. 그는 2003년 4월 파라과이와의 친선 경기에서 성인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2003년부터 2014년까지 이어진 국가대표 경력 동안 총 97경기에 출전하여 5골을 기록했다. 팔라시오스는 다비드 수아소와 함께 가장 잘 알려진 온두라스 국가대표 선수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그는 2010년 FIFA 월드컵 북아메리카 지역 예선에서 16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하며, 온두라스가 1982년 FIFA 월드컵 이후 28년 만에 사상 두 번째 FIFA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4.2. FIFA 월드컵 출전
팔라시오스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열린 2010년 FIFA 월드컵에 온두라스 대표팀으로 출전했다. 이 대회에서 온두라스는 제리 팔라시오스, 조니 팔라시오스, 그리고 윌슨 팔라시오스 등 세 형제를 모두 스쿼드에 포함시키는 역사적인 기록을 세웠는데, 이는 FIFA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한 국가를 대표하여 세 형제가 모두 출전한 사례였다. 팔라시오스는 조별 라운드 세 경기에 모두 출전했지만, 팀은 칠레에 0-1, 스페인에 0-2로 패하고 스위스와 0-0으로 비기며 무득점 탈락이라는 아쉬운 결과를 남겼다.
두 번째로 출전한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프랑스와의 조별 리그 첫 경기에서 두 차례의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하며 팀의 0-3 패배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온두라스는 이어서 에콰도르와 스위스에게도 연이어 패하며 3전 전패로 대회를 마감했다.
5. 개인 생활
프로 축구 선수로서의 경력 외에도, 팔라시오스의 삶에는 중요한 개인적인 사건들이 있었다.
5.1. 가족 관계
윌슨 팔라시오스는 밀턴, 제리, 조니, 에드윈의 형제이다. 형제들 중 밀턴은 2003년 CONCACAF 골드컵에 출전했으며, 조니는 2009년 CONCACAF 골드컵에 출전했다. 윌슨 자신은 2005년 CONCACAF 골드컵과 2007년 CONCACAF 골드컵에 출전한 경력이 있다.
5.2. 동생 납치 및 살해 사건
2007년 10월 30일, 그의 막내 동생인 에드윈(당시 14세)이 라세이바에 있는 가족 자택에서 다섯 명의 무장 괴한에게 납치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2007년 11월, 가족은 납치범들에게 약 12.50 만 GBP에 달하는 몸값을 지불했고, 에드윈이 풀려났다고 보도되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2009년 1월, 팔라시오스의 어머니는 TV를 통해 납치범들에게 가족과 소통해 달라고 호소하며 에드윈이 살아있는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는 팔라시오스의 토트넘 이적으로 인한 거액의 이적료가 납치범들의 요구를 더욱 강화할까 봐 우려했고, 영국 당국의 도움을 요청했다. 그녀는 토트넘이 이적료를 받았을 뿐 팔라시오스는 연봉만 받는다는 점을 강조하며, 가족의 상황이 그에게 큰 고통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2009년 5월 8일, 18번가 갱단 두 명의 리더의 자백에 따라 경찰은 엘 파라이소 지방에서 에드윈의 유해로 추정되는 시신을 발견했다. 팔라시오스는 다음 날 동정 휴가를 받아 온두라스로 돌아왔다. 5월 28일, 시신은 에드윈으로 확인되었고, 다음 날 라세이바에서 그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5월 30일, 개인적인 상실감에도 불구하고 윌슨 팔라시오스는 미국과 엘살바도르와의 월드컵 예선 경기를 준비하기 위해 국가대표팀에 합류했다.
5.3. 기타 개인적인 사건들
2011년 9월, 팔라시오스는 스태퍼드셔주 경찰에게 운전면허증을 제시하지 못해 약 20.00 만 GBP에 달하는 자신의 벤틀리 자동차를 압수당했다.
6. 수상 및 영예
윌슨 팔라시오스는 그의 경력 동안 여러 클럽 및 개인적인 영예를 얻었다.
6.1. 클럽 수상
- CD 올림피아**
- 온두라스 프로 축구 내셔널 리그: 2002-03 아페르투라, 2003-04 클라우수라, 2004-05 클라우수라, 2005-06 아페르투라, 2005-06 클라우수라
- 토트넘 홋스퍼**
- 바클레이스 아시아 트로피: 2009
6.2. 개인 수상
- 토트넘 홋스퍼 서포터스 클럽 선정 최고의 팀 선수: 2009-10
7. 경력 통계
7.1. 클럽 통계
클럽 | 시즌 | 리그 | 내셔널컵 | 리그컵 | 대륙 대회 | 합계 | ||||||
---|---|---|---|---|---|---|---|---|---|---|---|---|
디비전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
올림피아 | 2001-02 | 리가 나시오날 온두라스 | 9 | 0 | - | - | - | 9 | 0 | |||
2002-03 | 리가 나시오날 온두라스 | 12 | 2 | - | - | - | 12 | 2 | ||||
2003-04 | 리가 나시오날 온두라스 | 17 | 3 | - | - | - | 17 | 3 | ||||
2004-05 | 리가 나시오날 온두라스 | 24 | 3 | - | - | - | 24 | 3 | ||||
2005-06 | 리가 나시오날 온두라스 | 33 | 11 | - | - | - | 33 | 11 | ||||
2006-07 | 리가 나시오날 온두라스 | 37 | 13 | - | - | - | 37 | 13 | ||||
합계 | 132 | 32 | - | - | - | 132 | 32 | |||||
버밍엄 시티 (임대) | 2007-08 | 프리미어리그 | 7 | 0 | 0 | 0 | 0 | 0 | - | 7 | 0 | |
위건 애슬레틱 | 2007-08 | 프리미어리그 | 16 | 0 | 1 | 0 | 0 | 0 | - | 17 | 0 | |
2008-09 | 프리미어리그 | 21 | 0 | 1 | 0 | 2 | 0 | - | 24 | 0 | ||
합계 | 37 | 0 | 2 | 0 | 2 | 0 | 0 | 0 | 41 | 0 | ||
토트넘 홋스퍼 | 2008-09 | 프리미어리그 | 11 | 0 | 0 | 0 | 0 | 0 | 1 | 0 | 12 | 0 |
2009-10 | 프리미어리그 | 33 | 1 | 7 | 0 | 3 | 0 | - | 43 | 1 | ||
2010-11 | 프리미어리그 | 21 | 0 | 1 | 0 | 1 | 0 | 8 | 0 | 31 | 0 | |
합계 | 65 | 1 | 8 | 0 | 4 | 0 | 9 | 0 | 86 | 1 | ||
스토크 시티 | 2011-12 | 프리미어리그 | 18 | 0 | 1 | 0 | 1 | 0 | 8 | 0 | 28 | 0 |
2012-13 | 프리미어리그 | 4 | 0 | 0 | 0 | 0 | 0 | - | 4 | 0 | ||
2013-14 | 프리미어리그 | 16 | 0 | 1 | 0 | 4 | 0 | - | 21 | 0 | ||
2014-15 | 프리미어리그 | 0 | 0 | 0 | 0 | 0 | 0 | - | 0 | 0 | ||
합계 | 38 | 0 | 2 | 0 | 5 | 0 | 8 | 0 | 53 | 0 | ||
마이애미 FC | 2016 | 북미 축구 리그 | 18 | 0 | 0 | 0 | 0 | 0 | 0 | 0 | 18 | 0 |
올림피아 | 2017-18 | 리가 나시오날 온두라스 | 3 | 0 | 0 | 0 | 0 | 0 | 0 | 0 | 3 | 0 |
레알 소시에다드 | 2018-19 | 리가 나시오날 온두라스 | 9 | 0 | 0 | 0 | 0 | 0 | 0 | 0 | 9 | 0 |
커리어 합계 | 279 | 33 | 12 | 0 | 11 | 0 | 17 | 0 | 319 | 33 |
7.2. 국가대표 통계
국가대표팀 | 연도 | 출전 | 득점 |
---|---|---|---|
온두라스 | |||
2003 | 5 | 0 | |
2004 | 10 | 0 | |
2005 | 12 | 1 | |
2006 | 6 | 1 | |
2007 | 13 | 0 | |
2008 | 11 | 2 | |
2009 | 10 | 0 | |
2010 | 6 | 0 | |
2011 | 2 | 0 | |
2012 | 6 | 0 | |
2013 | 11 | 1 | |
2014 | 5 | 0 | |
합계 | 97 | 5 |
7.3. 국가대표 득점
:온두라스의 득점을 먼저 표시하며, 점수 열은 팔라시오스의 득점 후 점수를 나타낸다.
등번호 | 날짜 | 경기장 | 상대팀 | 점수 | 결과 | 대회 |
---|---|---|---|---|---|---|
1. | 2005년 2월 21일 | 마테오 플로레스 경기장, 과테말라시티, 과테말라 | 벨리즈 | 4-0 | 4-0 | 2005년 UNCAF 네이션스컵 |
2. | 2006년 9월 6일 | 티부르시오 카리아스 안디노 경기장, 테구시갈파, 온두라스 | 엘살바도르 | 2-0 | 2-0 | 친선 경기 |
3. | 2008년 6월 4일 | 올림피코 메트로폴리타노 경기장, 산페드로술라, 온두라스 | 푸에르토리코 | 2-0 | 4-0 | 2010년 FIFA 월드컵 지역 예선 |
4. | 2008년 6월 14일 | 후안 라몬 로브리엘 경기장, 바야몬, 푸에르토리코 | 푸에르토리코 | 2-2 | 2-2 | 2010년 FIFA 월드컵 지역 예선 |
5. | 2013년 9월 10일 | 티부르시오 카리아스 안디노 경기장, 테구시갈파, 온두라스 | 파나마 | 2-2 | 2-2 | 2014년 FIFA 월드컵 지역 예선 |
8. 유산 및 평가
윌슨 팔라시오스는 온두라스 축구계와 그가 활약했던 팀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8.1. 플레이 스타일 및 영향력
팔라시오스는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지치지 않는 체력과 쉽게 무너지지 않는 힘, 그리고 뛰어난 수비력을 겸비한 선수로 평가받았다. 그의 투쟁력은 팀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상대팀 입장에서는 그를 상대하기 어려웠다. 버밍엄 시티의 스티브 브루스 감독은 팔라시오스를 젊은 폴 인스에 비유했으며, 토트넘 홋스퍼의 해리 레드냅 감독은 그를 25년 전 그레이엄 로버츠와 비교하며 팔라시오스가 팀을 상대하기 어렵게 만드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8.2. 대중 및 언론의 평가
그의 경력 전반에 걸쳐 팔라시오스는 팬, 감독, 언론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스티브 브루스 감독은 그를 잃는 것을 "오른팔을 잃는 것과 같다"고 표현하며 "국내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이라고 극찬했다. 해리 레드냅 감독은 "팔라시오스는 그동안 토트넘 선수들이 갖지 못했던 강한 정신력을 가진 선수"라며 그가 팀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호평했다.
스토크 시티의 피터 코츠 회장은 팔라시오스의 영입 실패에 대해 옹호하며, "그는 위건과 토트넘에서 매우 훌륭한 선수였고, 모드리치에게만 자리를 잃었을 뿐"이라고 언급했다. 코츠 회장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잘 풀리지 않았다. 그의 동생이 납치되고 살해당하는 개인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때로는 일이 왜 잘 풀리지 않는지 알 수 없다. 엄청난 돈을 낭비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선수의 경력도 발전하지 못했으니 선수에게도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모두 손해를 봤다"고 말하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8.3. 은퇴 후 활동
2019년 12월 현역 은퇴를 발표하며, 윌슨 팔라시오스는 선수 생활을 마친 후 스포츠 에이전트가 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