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배경
오제키 다쓰야는 1976년 7월 24일 도치기현 사노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가는 사노 시내에 위치한 유명한 사노 라멘 가게인 '반리'이다.
1.1. 유년기 및 교육
오제키는 어린 시절부터 야구에 재능을 보였다. 고쿠가쿠인 도치기 고등학교에서 그는 팀의 에이스 투수이자 주장, 그리고 4번 타자를 겸임하며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했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 현 대회에서는 3회전에서 선발 완투하며 연장 12회 동안 14개의 탈삼진을 잡아내는 역투를 펼쳤으나, 아쉽게 패배했다. 당시 그의 팀에는 훗날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활약하게 되는 와타나베 슌스케가 백업 투수로 함께 있었다.
1.2. 프로 입단 전
고등학교 졸업 후 오제키는 게이오기주쿠대학의 추천 입학 시험에 응시했으나 불합격했다. 이후 1994년 일본 프로 야구 드래프트에서 세이부 라이온스로부터 2순위 지명을 받아 투수로서 입단했다. 그러나 입단 후 그는 타자로 전향하며 새로운 야구 인생을 시작했다.
2. 선수 경력
오제키 다쓰야는 프로 야구 선수로서 세이부 라이온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요코하마 베이스타스를 거치며 총 13년간 활약했다.
2.1. 세이부 라이온스 시절
1994년 세이부 라이온스에 투수로 입단한 오제키는 곧바로 타자로 전향했다.
- 1996년**: 10월 4일 긴테쓰 버펄로스와의 경기에서 도마시노 세이지의 대타로 출전하며 1군에 첫 선을 보였으나, 이 해에는 단 1경기 출전에 그쳤다.
- 1997년**: 역시 1경기 출전에 머물렀다.
- 1998년**: 104경기에 출전하며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그 해 퍼시픽 리그 신인왕에 선정되었는데, 이는 퍼시픽 리그에서 입단 4년차 선수가 신인왕을 수상한 최초의 사례이자 2021년 현재까지 유일한 기록이다. 또한 고졸 야수로서 퍼시픽 리그 신인왕을 수상한 마지막 선수이기도 했다(이후 겐다 소스케가 등장하기까지 19년간 오제키가 유일한 퍼시픽 리그 야수 신인왕이었다).
- 1999년**: 123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68, 1홈런, 34타점, 16도루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규정 타석에 도달했다. 이 해 6월 25일 후쿠오카 다이에이 호크스전에서는 3루 베이스를 밟지 않아 아웃되는 실책을 저지르기도 했다.
- 2000년**: 125경기에 출전하며 주전 외야수로 자리매김했다.
- 2001년**: 133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80을 기록했다.
- 2002년**: 개인 최고 타율인 .314를 기록하며 마쓰이 가즈오와 함께 팀의 1번-2번 타순을 이끄는 핵심 선수로 활약했다. 리그 최다인 43개의 희생번트를 기록했으며, 생애 첫 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그러나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2002년 일본 시리즈 2차전(10월 27일, 도쿄 돔)에서 1회초 2사 만루 상황에서 3루 주자였던 오제키가 구와타 마스미의 2루 견제구를 틈타 홈을 노렸으나, 송구가 빨라 아웃되면서 찬스를 놓쳤고, 세이부는 이 경기에서 대패하며 결국 4전 전패로 일본 시리즈 우승을 놓쳤다.
- 2003년**: 타율 3할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리그 최다인 5개의 3루타와 32개의 희생번트를 기록했다.
- 2004년**: 아카다 쇼고와 사토 도모아키 등 젊은 선수들이 성장하면서 주전 출장이 줄어 90경기에 그쳤다. 하지만 리그 우승을 결정지은 2004년 퍼시픽 리그 플레이오프 2차전 5차전에서는 10회초 선두 타자로 나서 미세 고지로부터 결승 득점의 발판이 되는 2루타를 터뜨렸다.
- 2005년**: 선수회장에 취임하며 활약이 기대되었으나, 전년도에 성장한 아카다 쇼고와 사토 도모아키에게 개막 선발 자리를 내주었다. 4월 2일 사토가 부상으로 장기 이탈했지만, 오제키는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47경기 출전에 타율 .198로 부진했다. 시즌 종료 후 대폭 삭감된 연봉을 제시받자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했고, 세이부 구단은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자유계약으로 풀어주었다.
2.2. 메이저리그 도전 및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2006년 2월 8일, 오제키는 뛰어난 수비력과 송구 능력을 인정받아 밀워키 브루어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메이저리그 승격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4월 13일 구단의 마이너리그 외국인 선수 쿼터가 이미 채워져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이후의 협상도 결렬되면서 잔류가 어렵게 되었다. 결국 이틀 뒤인 4월 15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입단 테스트를 통과하며 일본 프로 야구로 복귀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인 2006년에는 일본 프로 야구 역사상 전례 없는 '유령 홈런' 사건의 당사자가 되었다. 6월 11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인터리그 경기(지바 마린 스타디움) 3회초 2사 1루 상황에서 이승엽이 와타나베 슌스케로부터 우익수 방면 외야 스탠드로 직접 넘어가는 타구를 날렸다. 그러나 플레이 재개 후 롯데의 이마에 도시히사가 1루 주자였던 오제키의 3루 베이스 공과(空過)를 어필했고, 3루심 니시모토 긴지가 이를 받아들여 오제키는 아웃 처리되었다. 이미 2사였기 때문에 이승엽의 득점은 인정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홈런도 취소되어 단타로 기록되었다.
이 사건에 대해 오제키는 2009년 5월 26일 분카 방송의 라디오 프로그램 《사이토 가즈미 우루와시노 요루》에 출연하여 "밟지 않았을 리 없다. 밟지 않았다면 이상한 느낌이 들었을 것", "후지 TV에는 베이스를 밟은 영상이 남아있다"고 주장하며 당시 심판에 대해 "지금도 용서할 수 없다. 죽을 때까지 용서할 수 없다", "지금은 인터넷이 있어서 영원히 남아버린다"고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또한 기요타케 히데토시 구단 대표가 "오제키는 밟았다"고 어필해준 것에 대해 기뻤다고 언급했다. 이 해 요미우리는 부상자가 속출했고, 오제키도 입단 후 출전 기회를 얻었으나 타율 .258, 0홈런에 그치며 팀의 구세주가 되지는 못했다. 참고로 오제키는 세이부 시절인 1999년 6월 25일 후쿠오카 다이에이 호크스전에서도 3루를 공과하여 아웃된 경험이 있다.
2007년에는 젊은 선수들이 성장하면서 2군에서도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고, 결국 전력외 통고를 받았다. 같은 해 12구단 합동 트라이아웃에서 2개의 홈런을 터뜨리는 활약을 펼쳤고, 이를 계기로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입단이 결정되었다. 이시이 다쿠로는 구단의 공식 발표 전에 오제키로부터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고 자신의 블로그에 밝혔다. 이시이와 오제키는 같은 도치기현 출신으로, 함께 개인 훈련을 하는 등 친분이 있었다.
2.3.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시절
2008년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에 입단한 오제키는 개막전에 선발 출장하여 개막 후 4경기 연속 멀티히트 (그 중 1경기는 맹타상)를 기록하는 등 절정의 컨디션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5월에 들어서면서 부진에 빠졌고, 이후 주로 좌타 대타로 기용되었다. 8월 중순에 1군 등록이 말소된 후에는 더 이상 1군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10월 1일 다시 전력외 통고를 받았다. 수비에서는 무실책을 기록하며 그의 강점을 여전히 발휘했다.
요코하마 퇴단 후인 2009년, 오제키는 두 번째 메이저리그 도전을 목표로 3월에 콜로라도 로키스의 트라이아웃에 참가했으나 불합격했다. 결국 4월 14일 현역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2.4. 선수로서의 특징
오제키는 세이부 라이온스 시절 주루, 타격, 수비 삼박자를 갖춘 선수로 평가받으며 세 차례의 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주전 우익수였던 그는 매우 넓은 수비 범위가 특징이었으며, 우익수임에도 불구하고 중견수보다 더 많은 타구를 처리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실책은 극히 적었다. 이를 보여주는 데이터로, 2013년 5월 25일 히지리사와 료스케에 의해 기록이 깨지기 전까지 퍼시픽 리그 외야수 연속 무실책 기록(658회, 프로 입단부터 2000년 9월 6일 롯데전까지)을 보유하고 있었다.
도루를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경우가 많아 두 자릿수 도루를 기록한 해도 많았으나, 도루 성공률에는 과제가 있어 도루 실패도 많았다. 특히 2002년에는 28번의 도루를 시도하여 15번 성공하고 12번 실패를 기록하며 그 해 리그 최다 도루 실패를 기록했다.
2.4.1. 등장 음악
세이부 라이온스 구장이 돔 구장인 세이부 돔으로 바뀌면서 각 선수들이 타석에 들어설 때나 이닝 교대 시 투구 연습 중에 틀 테마곡을 정하게 되었다. 오제키는 TBS의 프로그램 《레츠 고! 라이온스》를 통해 팬들로부터 테마곡 아이디어를 공모했고, 그 결과 TV 드라마 《태양에 짖어라!》에서 극 중 삽입곡으로 사용된 '지프 형사의 테마'(청춘의 테마)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어느 시점부터 일부 세이부 팬들이 오제키가 타석에 들어설 때 경기장 내에서 흘러나오는 이 곡의 리듬에 맞춰 '오제키 콜'을 외치기 시작했고, 이는 나중에 홈 경기뿐만 아니라 원정 경기에서도 응원단이 트럼펫으로 연주할 정도로 퍼져나갔다.
오제키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한 후에도 이 곡을 테마곡으로 선택했다. 팬들과 응원단의 오제키 콜 역시 세이부 시절과 마찬가지로 이어졌다. 그러나 요미우리에 재적했던 2년 동안 출전 기회가 많지 않아, 특히 2007년 시즌에는 단 5경기 출전에 그쳤고, 도쿄 돔에서 이 곡이 흘러나온 것은 단 2번뿐이었다.
12구단 합동 트라이아웃을 거쳐 요코하마 베이스타스로 이적한 후에도 오제키는 "내 테마곡으로 자리 잡았고, 그 곡으로 요코하마를 뜨겁게 달구고 싶다"며 다시 이 곡을 테마곡으로 선택했다. 2009년에는 세이부의 호시 히데카즈가 오제키 본인에게 직접 허락을 받아 이 곡을 사용하기도 했다.
2.4.2. 등번호 및 등록명 변천사
오제키는 프로 경력 동안 여러 등번호를 사용했다.
- 51 (1995년 - 1999년)
- 31 (2000년 - 2005년, 2007년)
- 49 (2006년)
- 0 (2008년)
- 74 (2011년 - 2017년)
- 84 (2018년)
- 79 (2020년 - )
세이부 시절, 등번호와 수비 위치가 같았던 이치로와 비교되는 것을 싫어하여 등번호를 51번에서 31번으로 변경했다. 오제키 본인이 과거 31번을 달았던 가케후 마사유키와 마에다 도모노리를 좋아하는 선수로 꼽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이다. (참고로 오제키 은퇴 후 이치로 또한 뉴욕 양키스에서 31번을 달았다.) 요미우리로 이적한 2006년에는 49번을 달았으나, 2007년에는 다시 애착이 있는 31번으로 변경했다.
등록명은 다음과 같이 변경되었다.
- 오제키 다쓰야(小関 竜也오제키 다쓰야일본어): 1995년 - 2003년 8월 13일, 2005년 -
- 오제키 다쓰야(小関 竜弥오제키 다쓰야일본어): 2003년 8월 14일 - 2004년
3. 코치 및 은퇴 후 활동
선수 은퇴 후 오제키 다쓰야는 야구 해설가와 코치로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은퇴 직후에는 야구 평론가로서 J SPORTS에서 해설을 맡았으며, 첫 해설 활동은 'NACK5 SUNDAY LIONS'의 게스트 해설이었다. 그는 J SPORTS STADIUM, 메이저리그 중계 (J SPORTS), 인터넷 라디오 '가마스타 라디오'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또한 드라마 《드림 어게인》에 출연하여 주인공인 오기 슌스케의 대타로 등장하는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 요미우리 자이언츠 코치 시절**:
- 2011년 - 2016년: 친정팀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2군 외야 수비 주루 코치를 역임했다.
- 2017년: 2군 타격 코치로 보직을 변경했다.
- 2018년: 시즌을 끝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퇴단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코치 시절의 오제키 다쓰야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코치 시절**:
- 2019년: 세이부 OB 자격으로 후지 TV TWO와 TV 사이타마의 야구 해설자로 복귀했다.
- 2020년: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의 1군 외야 수비 주루 코치로 부임하며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다.
- 2022년: 팜팀 야수 종합 겸 타격 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같은 해 7월 14일부터 25일까지 팜팀 감독인 니시구치 후미야가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으면서 감독 대행을 맡기도 했다.
- 2024년: 팜팀 야수 종합 코치로 직책이 변경되었다. 직책은 종합 코치이지만, 2023년부터 3군 대외 경기가 있을 때는 오제키가 감독 자격으로 벤치에 들어서고 있다.
- 2025년 1월 1일: 팜팀 야수 종합 코치에서 팜팀 감독으로 승격될 예정이다.
이 외에도 오제키는 친정팀인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의 사회 공헌 활동 및 강연 활동에 협력하여 사이타마현 내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4. 수상 및 기록
오제키 다쓰야는 선수 경력 동안 다음과 같은 주요 수상과 기록을 달성했다.
4.1. 표창
- 신인왕: 1회 (퍼시픽 리그, 1998년)
- 베스트나인: 1회 (외야수 부문, 2002년)
- 골든글러브상: 1회 (외야수 부문, 2002년)
4.2. 첫 기록
- 첫 출장: 1996년 10월 4일, 대 긴테쓰 버펄로스 25차전 (세이부 라이온스 구장), 8회말 도마시노 세이지의 대타로 출장
- 첫 타석: 상동, 8회말 사노 시게키로부터 삼진
- 첫 안타: 1998년 4월 8일, 대 후쿠오카 다이에이 호크스 2차전 (후쿠오카 돔), 2회초 야마자키 신타로로부터 좌전 안타
- 첫 타점: 1998년 4월 19일, 대 후쿠오카 다이에이 호크스 4차전 (세이부 돔), 6회말 요시타케 신타로로부터 좌월 적시 2루타
- 첫 도루: 1998년 4월 21일, 대 오릭스 블루웨이브 1차전 (가고시마 현립 가모이케 야구장), 5회초 2루 도루 (투수: 이토 다카히데, 포수: 히다카 쓰요시)
- 첫 희생번트: 1998년 4월 22일, 대 오릭스 블루웨이브 2차전 (가고시마 현립 가모이케 야구장), 2회초 호시노 노부유키로부터 1루 앞 희생번트
- 첫 홈런: 상동, 8회초 에비스 노부유키로부터 우월 2점 홈런
4.3. 이정표 기록
- 200 희생번트: 2004년 8월 28일, 대 후쿠오카 다이에이 호크스 23차전 (세이부 돔), 1회말 아라카키 나기사로부터 포수 앞 희생번트 ※역대 26번째
4.4. 연도별 타격 성적
연도 | 구단 | 경기 | 타석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루타 | 타점 | 도루 | 도루사 | 희생번트 | 희생플라이 | 볼넷 | 사구 | 삼진 | 병살타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
---|---|---|---|---|---|---|---|---|---|---|---|---|---|---|---|---|---|---|---|---|---|---|---|---|
1996 | 세이부 | 1 | 1 | 1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1 | 0 | .000 | .000 | .000 | .000 |
1997 | 1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 | ---- | ---- | ---- | |
1998 | 104 | 387 | 322 | 44 | 91 | 11 | 4 | 3 | 119 | 24 | 15 | 10 | 27 | 0 | 33 | 1 | 5 | 37 | 2 | .283 | .358 | .370 | .728 | |
1999 | 123 | 464 | 373 | 46 | 100 | 9 | 4 | 1 | 120 | 34 | 16 | 8 | 32 | 2 | 46 | 0 | 11 | 53 | 6 | .268 | .368 | .322 | .690 | |
2000 | 125 | 417 | 340 | 50 | 89 | 11 | 4 | 1 | 111 | 32 | 7 | 5 | 23 | 4 | 43 | 1 | 7 | 54 | 1 | .262 | .353 | .326 | .679 | |
2001 | 133 | 495 | 407 | 40 | 114 | 17 | 4 | 3 | 148 | 38 | 17 | 6 | 32 | 2 | 46 | 1 | 8 | 37 | 2 | .280 | .363 | .364 | .726 | |
2002 | 135 | 569 | 487 | 59 | 153 | 35 | 1 | 4 | 202 | 50 | 15 | 12 | 43 | 4 | 25 | 0 | 10 | 59 | 1 | .314 | .357 | .415 | .772 | |
2003 | 113 | 457 | 397 | 48 | 111 | 12 | 5 | 1 | 136 | 33 | 9 | 3 | 32 | 3 | 21 | 0 | 4 | 38 | 7 | .280 | .320 | .343 | .663 | |
2004 | 90 | 328 | 286 | 43 | 77 | 13 | 2 | 3 | 103 | 32 | 1 | 3 | 11 | 2 | 24 | 0 | 5 | 29 | 5 | .269 | .334 | .360 | .695 | |
2005 | 47 | 104 | 86 | 10 | 17 | 3 | 1 | 0 | 22 | 1 | 0 | 0 | 6 | 0 | 8 | 0 | 4 | 16 | 1 | .198 | .296 | .256 | .552 | |
2006 | 요미우리 | 56 | 137 | 128 | 8 | 33 | 4 | 2 | 0 | 41 | 10 | 3 | 0 | 4 | 0 | 4 | 0 | 1 | 15 | 1 | .258 | .286 | .320 | .606 |
2007 | 5 | 4 | 4 | 2 | 1 | 0 | 0 | 1 | 4 | 2 | 0 | 0 | 0 | 0 | 0 | 0 | 0 | 1 | 0 | .250 | .250 | 1.000 | 1.250 | |
2008 | 요코하마 | 49 | 103 | 93 | 9 | 20 | 1 | 0 | 1 | 24 | 3 | 0 | 1 | 1 | 0 | 8 | 2 | 1 | 11 | 1 | .215 | .284 | .258 | .542 |
통산: 13년 | 982 | 3466 | 2924 | 359 | 806 | 116 | 27 | 18 | 1030 | 259 | 83 | 48 | 211 | 17 | 258 | 5 | 56 | 351 | 27 | .276 | .344 | .352 | .696 |
- 각 연도의 굵은 글씨는 리그 최고 기록을 의미함
4.5. 연도별 수비 성적
연도 | 구단 | 외야 | |||||
---|---|---|---|---|---|---|---|
경기 | 자살 | 보살 | 실책 | 병살 | 수비율 | ||
1997 | 세이부 | 1 | 0 | 0 | 0 | 0 | ---- |
1998 | 103 | 213 | 7 | 0 | 3 | 1.000 | |
1999 | 122 | 250 | 4 | 0 | 0 | 1.000 | |
2000 | 116 | 224 | 3 | 1 | 0 | .994 | |
2001 | 130 | 204 | 3 | 1 | 1 | .995 | |
2002 | 135 | 270 | 2 | 1 | 0 | .996 | |
2003 | 109 | 215 | 4 | 3 | 0 | .986 | |
2004 | 79 | 115 | 2 | 1 | 0 | .992 | |
2005 | 32 | 36 | 0 | 1 | 0 | .973 | |
2006 | 요미우리 | 40 | 44 | 0 | 1 | 0 | .978 |
2007 | 3 | 0 | 0 | 0 | 0 | ---- | |
2008 | 요코하마 | 29 | 37 | 0 | 0 | 0 | 1.000 |
통산 | 899 | 1608 | 25 | 9 | 4 | .995 |
- 굵은 글씨 연도는 골든글러브상 수상 연도를 의미함
5. 개인사
오제키 다쓰야는 1976년 7월 24일 도치기현 사노시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본가는 사노 시내에 위치한 유명한 사노 라멘 가게인 '반리'이다. 그의 딸인 오제키 마이 또한 과거 일본의 아이돌 그룹 컨트리 걸즈의 멤버로 활동하며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6. 영향 및 평가
오제키 다쓰야는 선수로서 세이부 라이온스의 황금기를 함께하며 세 차례의 리그 우승을 경험한 핵심 선수였다. 특히 1998년 신인왕 수상과 2002년 베스트나인, 골든글러브상 동시 수상은 그의 뛰어난 기량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그는 넓은 수비 범위와 안정적인 수비력으로 팀의 외야를 든든하게 지켰으며, 적극적인 주루 플레이와 희생번트 능력으로 팀 공격에 기여했다. 비록 도루 성공률에는 아쉬움이 있었으나, 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그를 상징하는 등장 음악 '청춘의 테마'와 팬들의 '오제키 콜'은 단순한 응원을 넘어 선수와 팬이 교감하는 독특한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의 '유령 홈런' 사건은 그에게는 아픈 기억일 수 있으나, 일본 야구사에 길이 남을 특이한 에피소드로 회자되며 그의 경력에 또 다른 주목할 만한 지점을 만들었다.
선수 은퇴 후에는 야구 해설가로서 날카로운 분석을 선보였으며,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에서 코치로서 젊은 선수들을 지도하며 후배 양성에도 힘썼다. 특히 팜팀 감독으로 승진하며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인정받고 있다. 오제키는 선수와 코치, 해설가로서 일본 야구계에 다방면으로 기여하며 깊은 발자취를 남긴 인물로 평가된다.
7. 외부 링크
- [https://www.seibulions.jp/team/player/detail/2023_00001663.html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선수 명감: 오제키 다쓰야]
- [https://ameblo.jp/sgi-sitei/ 오제키 다쓰야 블로그 NEVER BE DEFEATED]
- [https://www.baseball-reference.com/register/player.fcgi?id=ozeki-001tat 베이스볼 레퍼런스: 오제키 다쓰야]
- [https://npb.jp/bis/players/61163880.html 일본 프로 야구 공식 기록: 오제키 다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