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엘메르 콘스탄틴 니클란데르의 생애는 그의 어린 시절과 초기 육상 경력, 핀란드 내전 참전으로 인한 개인적 시련, 그리고 그의 사망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다.
1.1. 어린 시절과 초기 생애
엘메르 콘스탄틴 니클란데르는 1890년 1월 18일 하우스얘르비의 루타얘르비 마을에서 아버지 콘스탄틴 니클란데르 (1848년~1903년)와 어머니 헨리이카 하르율라 (1858년~1942년)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남동생 시보 니클란데르 (1883년~1961년)도 육상 선수로 활동했으며, 1907년 포환던지기에서 두 개의 핀란드 국가 기록을 세웠다. 니클란데르는 12세에 훈련을 시작하여 17세에 경기에 출전하기 시작했다. 그는 주로 형의 농장에서 훈련했으며, 특히 양손 투척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2. 핀란드 내전 시기
핀란드 내전이 발발하기 전, 니클란데르는 하우스얘르비 백위대에 가입하여 1917년 11월 몸밀라 전투에 참전했다. 이로 인해 적위대는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내전이 시작되자 그는 몸을 숨겨야 했다.
1.3. 사망
니클란데르는 1942년 11월 12일 위암으로 사망했다.
2. 주요 육상 업적
엘메르 콘스탄틴 니클란데르는 여러 올림픽 대회와 국내 선수권 대회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두며 수많은 메달과 타이틀을 획득했으며, 여러 세계 및 국가 기록을 세웠다.
2.1. 올림픽 참가
엘메르 니클란데르는 1908년부터 1924년까지 총 네 차례의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인상적인 성과를 기록했다. 그의 경력은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잠시 중단되었으나, 이후 성공적으로 복귀하여 더욱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특히 1924년 파리 올림픽에서는 핀란드 선수단의 기수로 선정되어 개회식에서 국기를 들고 입장했다.
대회 | 종목 | 순위 | 기록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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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런던 올림픽 | 그리스식 원반던지기 | 9위 | 32.46 m | |
포환던지기 | 9위-25위 | 불명 | 기록이 공식적으로 측정되지 않았으며, 약 11 m으로 추정된다. 18세 179일의 나이로, 올림픽 남자 포환던지기 역사상 가장 어린 참가자 중 한 명이다. | |
원반던지기 | 12위-42위 | 불명 | 기록이 공식적으로 측정되지 않았으며, 약 36 m으로 추정된다. | |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 | 포환던지기 | 4위 | 13.65 m | |
원반던지기 | 4위 | 42.09 m | 1라운드에서 올림픽 기록을 갱신했으나, 2라운드에서 다시 깨졌다. | |
양손 포환던지기 | 3위 | 27.14 m | ||
양손 원반던지기 | 2위 | 77.96 m | ||
1920년 안트베르펜 올림픽 | 포환던지기 | 2위 | 14.155 m | |
원반던지기 | 1위 | 44.685 m | ||
56파운드 무게던지기 | 8위 | 8.865 m | ||
1924년 파리 올림픽 | 포환던지기 | 6위 | 14.265 m | 이 종목에서 네 번째로 출전하여, 올림픽 남자 포환던지기 최다 출전 기록과 동률을 이루었다. |
원반던지기 | 7위 | 42.09 m |
2.2. 국내 선수권 대회
니클란데르는 1909년부터 1924년까지 핀란드 육상 선수권 대회의 다양한 투척 종목에서 총 44개의 타이틀을 획득하며 국내 기록을 세웠다. 그는 또한 12개의 은메달과 1개의 동메달을 추가했다.
그의 국내 선수권 우승 기록은 다음과 같다.
- 양손 원반던지기: 11회 우승 (1909, 1910, 1911, 1912, 1913, 1914, 1915, 1916, 1917, 1918, 1920)
- 양손 포환던지기: 11회 우승 (1909, 1910, 1912, 1913, 1914, 1915, 1916, 1917, 1918, 1920, 1924)
- 포환던지기 (한 손): 7회 우승 (1914, 1915, 1916, 1917, 1918, 1920, 1924)
- 해머던지기: 6회 우승 (1911, 1914, 1915, 1916, 1917, 1918)
- 원반던지기 (한 손): 5회 우승 (1914, 1915, 1916, 1917, 1918)
- 그리스식 원반던지기: 2회 우승 (1912, 1913)
- 무게 던지기: 2회 우승 (1914, 1918)
2.3. 기록 및 개인 최고 기록
니클란데르는 선수 경력 동안 여러 중요한 기록들을 수립했다.
- 세계 기록
- 1913년 7월 20일, 양손 원반던지기에서 90.13 m의 세계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현재까지도 유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그는 또한 비공식적으로 두 개의 세계 기록을 갱신했으나, 국제 표준에 부합하지 않는 투척 원의 규격 때문에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 1909년, 양손 포환던지기 26.89 m
- 1910년, 양손 원반던지기 87.12 m
- 핀란드 국가 기록
- 1907년 10월 25일, 포환던지기 13.47 m
- 1909년 7월 4일, 포환던지기 14.68 m
- 1910년 6월 19일, 원반던지기 44.88 m
- 1910년 8월 15일, 해머던지기 40.04 m
- 1913년 7월 19일, 양손 포환던지기 27.75 m
- 1914년 6월 7일, 해머던지기 45.95 m
- 1914년, 무게 던지기 10.76 m
- 1915년 7월 4일, 해머던지기 47.18 m
- 1916년 6월 12일, 해머던지기 47.57 m
- 개인 최고 기록
- 포환던지기: 14.86 m (1913년 7월 19일)
- 양손 포환던지기: 27.75 m (1913년 7월 19일)
- 원반던지기: 47.18 m (1916년 7월 16일)
- 양손 원반던지기: 90.13 m (1913년 7월 20일)
- 해머던지기: 47.57 m (1916년 6월 12일)
- 창던지기: 54.19 m (1916년 6월 12일)
- 무게 던지기: 10.76 m (1914년)
3. 유산과 영향
엘메르 콘스탄틴 니클란데르는 그의 놀라운 업적과 오랜 선수 생활을 통해 핀란드 육상 스포츠에 지대한 유산과 영향을 남겼다. 그는 1908년부터 1924년까지 네 차례의 올림픽에 참가하고, 44개의 국내 선수권 타이틀을 획득하며 핀란드 육상 역사상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특히 그의 44개 국내 타이틀은 핀란드 기록으로 남아있다.
1913년 양손 원반던지기에서 세운 90.13 m의 세계 기록은 현재까지도 유효한 것으로 평가되며, 이는 그의 기술적 우수성과 시대를 초월한 기량을 증명한다. 제1차 세계 대전과 핀란드 내전이라는 격동기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훈련하고 최고 수준의 기량을 유지하며 올림픽 메달과 국내 타이틀을 획득한 그의 끈기는 많은 후배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그는 국내에서 '오이티의 대포' (Oitin kanuuna오이틴 카누나핀란드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이는 그가 투척 종목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실력과 영향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924년 파리 올림픽 핀란드 선수단의 기수로 활동한 것 역시 그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니클란데르의 업적은 핀란드 투척 종목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그의 이름은 핀란드 스포츠 역사에서 전설적인 선수 중 한 명으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