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엘리한 토레(ئەلىخان تۆرە알리한 퇴레위구르어, 艾力汗·吐烈아이리한 툴례중국어; 1884년 3월 21일 ~ 1976년 2월 28일)는 우즈베크인 시인이자 종교가, 혁명가이며 동튀르키스탄 제2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군 지도자였다. 그는 키르기스스탄 토크모크에서 태어나 1920년 소련을 떠나 신장 카슈가르로 이주했다. 1944년 4월, 그는 압둘케림 압바스를 포함한 동지들과 함께 굴자에서 중국 국민당의 통치로부터 동튀르키스탄의 독립을 목표로 하는 해방 조직을 결성했다. 같은 해 11월 11일, 소련의 지원을 받아 이리 반란을 일으켰고, 이듬해 11월 12일 굴자에서 반란이 성공하자 동튀르키스탄 제2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1945년 4월 8일에는 이리 민족군의 원수로 임명되어 군사적 리더십을 발휘했다. 특히, 1945년 10월 이오시프 스탈린이 중국 국민당과의 협상을 시작하고 우루무치 공세를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렸을 때, 그는 동튀르키스탄 제2공화국 지도부 내에서 유일하게 이에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1946년 6월 16일, 그는 KGB에 의해 강제로 소련으로 송환되어 타슈켄트에서 가택연금 상태로 여생을 보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신장에 대한 중요한 저서인 『튀르키스탄 카기즈』(Türkistan kaygısı튀르키스탄 카기즈위구르어, '튀르키스탄 비극')를 집필하는 등 저술 활동을 이어갔다.
2. 생애 및 배경
엘리한 토레의 생애는 그의 출생부터 소련에서의 활동, 그리고 신장 지역으로의 이주 과정에 이르는 격동적인 시기를 포함한다.
2.1. 출생 및 초기 생애
엘리한 토레는 1884년 3월 21일 키르기스스탄의 토크모크에서 태어났다. 그의 출생지는 과거 발라사군으로도 알려졌던 곳으로, 당시에는 러시아 제국의 영토였다. 청년기에는 부하라에서 쿠란과 의학을 공부하며 학문을 익혔다.
2.2. 소련에서의 활동 및 신장 이주
1924년, 그는 비합법적인 이슬람교 단체를 조직했다는 혐의로 소련의 보안 당국에 체포되었다. 이후 1927년에 소련을 탈출하여 중화민국 신장의 카슈가르로 이주했다. 1937년에는 당시 신장의 실력자였던 성스차이에 의해 체포되었으나, 1941년에 석방되어 굴자시에서 이맘으로 활동을 재개했다.
3. 주요 활동 및 업적
엘리한 토레의 주요 활동과 업적은 동튀르키스탄 제2공화국 수립 과정에서의 리더십, 군 지도자로서의 역할, 그리고 중요한 정치적 결정들을 통해 나타났다.
3.1. 동튀르키스탄 제2공화국 수립
1944년 4월, 엘리한 토레는 압둘케림 압바스를 포함한 10명의 동지들과 함께 굴자시에서 신장 해방 전선을 조직했다. 이 조직의 목표는 중국 국민당의 통치로부터 동튀르키스탄을 해방시키고 독립적인 동튀르키스탄 국가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1944년 11월 11일, 그들은 소련의 지원을 받아 이리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은 성공적이었고, 다음 날인 11월 12일 해방 전선은 굴자를 장악하고 동튀르키스탄 제2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했다. 이때 토레는 동튀르키스탄 제2공화국의 초대 주석으로 취임했다.
3.2. 대통령 및 군 지도자
주석으로 취임한 엘리한 토레는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했다. 1945년 4월 8일, 그는 이리 민족군을 창설하고 스스로 원수의 칭호를 수여받으며 군사적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같은 해 9월, 토레가 지휘하는 이리 민족군은 우루무치로의 공세를 시작하여 국민혁명군을 패퇴시키는 등 연이은 승리를 거두었다.
3.3. 정치적 결정
1945년 10월, 이오시프 스탈린은 국민정부와 소련 정부 간의 평화 협상이 시작되자 토레에게 우루무치 공격을 중단하고 협상을 시작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동튀르키스탄 정부의 다른 간부들은 이 명령에 따랐으나, 엘리한 토레는 지도부 내에서 유일하게 스탈린의 명령에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의 이러한 반대는 독립적인 국가 수립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었으나, 결국 그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정치적 결정이 되었다.
4. 몰락 및 망명 생활
엘리한 토레의 정치적 몰락은 소련으로의 강제 송환과 가택연금으로 이어졌으나, 그는 망명 생활 중에도 저술 활동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이어갔다.
4.1. 소련으로의 강제 송환 및 연금
1946년 6월 12일, 우루무치에서 동튀르키스탄 공화국과 중국 국민당 대표들 사이에 평화 협정이 체결되었다. 이 협정은 1945년 10월 14일 소련의 중재 하에 시작된 8개월간의 어려운 협상을 마무리 짓는 것이었다. 협정 서명 6일 후인 1946년 6월 16일, 엘리한 토레는 KGB에 의해 강제로 소련으로 송환되었다. 그는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타슈켄트에 구금되었고, 이후 1976년 사망할 때까지 가택연금 상태로 여생을 보냈다.
4.2. 저술 활동
자유가 제한된 상황에서도 엘리한 토레는 저술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타슈켄트에서 신장에 대한 회고록인 『튀르키스탄 카기즈』(Türkistan kaygısı튀르키스탄 카기즈위구르어, '튀르키스탄 비극')를 집필했다. 이 책은 2003년 우즈베키스탄의 동방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그 외에도 『타리히 무함마디』(Tarihiy Muhammadiy타리히 무함마디위구르어)와 『드리프터 사구니』(Drifter Saghuniy드리프터 사구니위구르어) 등의 작품을 남겼다.
5. 사망
엘리한 토레는 1976년 2월 28일, 소련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타슈켄트에서 병으로 사망했다.
6. 평가 및 영향
엘리한 토레는 동튀르키스탄 독립 운동의 중요한 인물로서 역사적 평가를 받으며, 그의 사상과 저작은 후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이오시프 스탈린의 명령에 유일하게 반대했던 그의 정치적 결정은 독립과 자결에 대한 그의 확고한 신념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의 저서 『튀르키스탄 카기즈』는 신장 지역의 역사와 비극적인 상황을 기록한 중요한 문헌으로, 후대에까지 그의 사상과 경험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튀르키스탄 이슬람당은 잡지 『이슬람 튀르키스탄』 1호에서 엘리한 토레를 언급하며 그의 역사적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7. 저작
엘리한 토레는 망명 생활 중에도 활발한 저술 활동을 통해 여러 작품을 남겼다.
- 『튀르키스탄 카기즈』 (Türkistan kaygısı튀르키스탄 카기즈위구르어, '튀르키스탄 비극'): 신장 지역의 역사와 자신의 경험을 담은 회고록으로, 2003년 우즈베키스탄 동방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 『타리히 무함마디』 (Tarihiy Muhammadiy타리히 무함마디위구르어)
- 『드리프터 사구니』 (Drifter Saghuniy드리프터 사구니위구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