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Overview
엑토르 라울 쿠페르 (Héctor Raúl Cúper스페인어, 1955년 11월 16일 출생)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전 축구 선수이자 축구 감독으로, 최근 시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역임했다. 수비수로 활약한 그는 대부분의 선수 경력을 페로 카릴 오에스테에서 보냈으며, 463경기에 출전했다. 그의 별명은 "카베손" (Cabezón스페인어, "왕대갈")이었다.
감독으로서 쿠페르는 아르헨티나의 우라칸과 라누스에서 경력을 시작했으며, 라누스에서는 코파 CONMEBOL 우승을 차지했다. 스페인 마요르카 감독으로 부임하여 코파 델 레이 결승과 UEFA 컵위너스컵 결승에 팀을 진출시키고 구단 역사상 최고 리그 순위인 3위를 달성하는 등 뛰어난 성과를 냈다. 발렌시아에서는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2년 연속 진출하는 위업을 달성했지만, 아쉽게 모두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러한 꾸준한 결승 진출과 패배 기록은 그에게 '준우승 징크스'라는 오명을 안기기도 했다.
이탈리아 인테르 밀란 감독을 거쳐 베티스와 라싱 산탄데르, 파르마 등 스페인과 이탈리아 클럽들을 지휘했다. 2008년부터는 조지아를 시작으로 이집트, 우즈베키스탄, 콩고 민주 공화국, 시리아 등 다양한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수행하며 국제 무대에서 경험을 쌓았다. 특히 이집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시절에는 2017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하고 2018년 FIFA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어내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계약이 연장되지 못했다. 이후 시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 2023년 AFC 아시안컵에서 시리아의 첫 메이저 대회 토너먼트 진출을 이끌었지만, 월드컵 예선 탈락 후 사임했다.
2. Personal life
쿠페르는 1955년 11월 16일 아르헨티나 산타페주의 작은 마을인 차바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증조부는 영국인으로, 성은 쿠퍼(Cooper)였으며 아르헨티나 산타페주로 이주하여 원주민 여성과 결혼했다. 하지만 그의 유산의 대부분은 이탈리아계이다. 쿠페르의 어머니는 그의 남동생 출산 후 몇 달 뒤 20세의 나이에 사망했으며, 그는 할머니의 손에 자랐다.
3. Playing career
쿠페르는 1960년대 차바스의 다른 축구 선수 지망생들과 마찬가지로 축구 경력을 쌓기 위해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이주했다. 그는 수도에서 팀을 찾기 위해 은행 직장에서 휴가를 내고 결국 페로 카릴 오에스테에 입단했다.
3.1. Club career
1976년 페로 카릴 오에스테에 입단하여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1977년부터 1978년까지 인디펜디엔테 리바다비아에서 활동한 뒤, 1978년 친정팀 페로 카릴 오에스테로 복귀했다. 그는 페로 카릴 오에스테에서 10년 동안 424경기에 출전하여 24골을 기록하며, 1982년과 1984년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에 기여했다. 특히 1982년 메트로폴리타노 대회에서 3위를 차지했고, 1984년 메트로폴리타노 대회에서는 준우승을 기록했다.
1988년 우라칸으로 이적하여 4년 동안 132경기에 출전하여 8골을 기록했으며, 1989-90 시즌 프리메라 B 나시오날 우승에 이바지했다. 1992년 현역에서 은퇴할 때까지 프로 통산 567경기에 출전하여 34골을 기록했다.
3.2. International career
쿠페르는 1984년에 아르헨티나 A대표팀에 발탁되었으나, 국제 A매치에는 단 3경기 출전에 그쳤으며 득점은 기록하지 못했다.
4. Managerial career
엑토르 쿠페르의 감독 경력은 아르헨티나에서 시작하여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튀르키예, 아랍에미리트 등 다양한 국가의 클럽 팀과 여러 아시아 및 아프리카 국가대표팀을 지휘하며 폭넓은 경험을 쌓았다.
4.1. Early career
선수 은퇴 후 1년 반 만인 1993년, 그는 현역 시절 마지막 팀이었던 우라칸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1994 클라우수라 토너먼트에서 우라칸을 2위로 이끌었으나, 우승을 다투던 인데펜디엔테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패하며 우승을 놓쳤다. 1995년 라누스로 옮긴 후 1996년 코파 CONMEBOL에서 우승하며 감독으로서 첫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1997년 여름, 그는 스페인의 마요르카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부임 첫 시즌인 1997-98 시즌에 그는 재정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구단을 코파 델 레이 결승으로 이끌었으나, 바르셀로나에 패하여 준우승에 머물렀다. 하지만 같은 상대인 바르셀로나를 꺾고 1998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에서 우승하며 팀의 첫 트로피를 안겼다. 다음 시즌인 1998-99 시즌에는 UEFA 컵위너스컵 결승에 진출했으나, 빌라 파크에서 라치오에 패하며 다시 한번 준우승을 기록했다. 이 시즌에 마요르카는 라리가에서 구단 역사상 최고 기록인 3위를 차지하며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획득했다. 이 시기에 마요르카는 리그 최소 실점을 기록하는 견고한 수비를 선보였다.
4.2. Valencia
1999년 3월, 당시 발렌시아 감독이었던 클라우디오 라니에리는 시즌 종료 후 자신이 떠나면 쿠페르가 자신의 후임이 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쿠페르는 마요르카의 재계약 제안을 거절하고 6월에 발렌시아로 이적했다. 그는 발렌시아에서 또 다른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우승을 차지했다. 발렌시아를 지휘하며 굳건한 수비와 역동적인 측면 역습을 주 무기로 삼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2년 연속으로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러나 2000년에는 같은 스페인 팀인 레알 마드리드에, 2001년에는 바이에른 뮌헨에 승부차기 끝에 패하며 연이어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로써 마요르카 시절부터 이어지던 그의 '결승 징크스'는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
4.3. Internazionale
2001년 6월 22일, 쿠페르는 이탈리아 클럽 인테르 밀란의 신임 감독으로 부임하며 마르코 타르델리의 후임을 맡았다. 부임 첫 시즌인 2001-02 시즌에 인테르는 5월 5일 마지막 라운드를 선두로 맞이하며 1989년 이후 첫 스쿠데토를 차지할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라치오에 패하며 라이벌 유벤투스에게 우승을 내주고 3위로 시즌을 마쳤다.
2002-03 시즌에는 인테르가 세리에 A에서 2위를 차지했으며, 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서는 시티 라이벌 AC 밀란에 원정 다득점 원칙으로 패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두 팀 모두 산 시로에서 홈 경기를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결과였다. 그는 2003-04 시즌 6경기 만인 2003년 10월 19일, 팀이 8위에 머무르자 인테르 감독직에서 경질되었다. 그는 경기를 지휘하면서 경기장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기도 했다.
4.4. Mallorca return, Betis, Parma
인테르와의 계약 문제로 1년간 휴식을 취한 후, 2004년 11월 2일, 쿠페르는 베니토 플로로의 경질로 10경기 만에 19위로 추락한 마요르카로 다시 돌아왔다. 그는 마지막 라운드에서 팀을 강등에서 구원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여러 선수를 영입했음에도 불구하고, 2005-06 시즌 다시 강등권 경쟁에 휘말렸고, 9경기 무승 행진을 기록하자 2006년 2월 14일 사임했다.
2007년 7월 16일, 쿠페르는 레알 베티스의 신임 감독으로 1년 계약을 맺으며 발표되었다. 그러나 12월 2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홈 경기에서 패한 후 팀이 19위로 추락하자 경질되었다.

2008년 3월 11일, 그는 도메니코 디 카를로 감독의 후임으로 강등 위기에 처한 세리에 A 팀 파르마의 신임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두 달 만에 10경기에서 단 2승만을 거두며 시즌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경질되었다. 결국 파르마는 세리에 B로 강등되었다.
4.5. Diverse international and club roles (2008-2014)
2008년 8월, 쿠페르는 조지아 국가대표팀의 감독이 되었다. 그는 2010 FIFA 월드컵 예선에서 단 3점만 획득하고 승리 없이 끝나자, 계약 만료 전인 2009년 11월에 사임하기로 합의했다.
2009년 11월 3일, 쿠페르는 그리스 클럽 아리스 테살로니키와 2009-10 시즌 말까지 감독직을 수행하기로 합의했다. 12월 15일에는 2011년 6월까지 계약을 연장했다. 2010년 4월 24일, 쿠페르는 그리스 축구컵 결승에서 파나티나이코스에 패하며 또다시 결승에서 준우승을 기록했다.
2010-11 시즌에는 아리스를 이끌고 UEFA 유로파리그 32강에 처음으로 진출했다. 그는 전 시즌 챔피언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두 번이나 꺾는 이변을 연출하며 B조에서 10점으로 2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그리스 리그에서의 부진한 결과로 2011년 1월 18일 감독직에서 물러나기로 결정했다.
2011년 6월 29일, 쿠페르는 라싱 산탄데르와 1년 계약을 맺으며 다시 라리가로 돌아왔다. 하지만 5개월 만에 팀이 최하위로 떨어지자 구단과의 상호 합의 하에 팀을 떠났다.
쿠페르는 2011년 12월 19일 쉬페르리그 팀인 오르두스포르와 계약했으나, 2013년 4월 13일 상호 합의로 팀을 떠났다.
2013년 11월 14일, 쿠페르는 UAE 아라비안 걸프 리그의 알 와슬의 신임 감독으로 발표되었다. 그러나 부진한 결과로 인해 2014년 3월 4일 경질되었다.
4.6. Return to international football
4.6.1. Egypt national team

2015년 3월 2일, 이집트 축구 협회는 쿠페르를 이집트 국가대표팀의 신임 감독으로 임명했다. 그는 2017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으나, 결승전에서 카메룬에 1-2로 패하며 준우승을 기록했다.
쿠페르는 이집트를 2018 FIFA 월드컵 본선으로 이끌며 1990년 이후 28년 만에 월드컵 무대에 복귀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는 콩고를 2-1로 꺾은 뒤 확정되었다. 그의 계약은 대회 종료 시점에 만료될 예정이었고, 재협상은 대회가 끝난 후로 미뤄졌다. 하지만 이집트가 월드컵 조별리그 3경기에서 모두 패한 후, 쿠페르의 계약은 연장되지 않기로 발표되었다.
4.6.2. Uzbekistan national team
2018년 8월 1일, 쿠페르는 우즈베키스탄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부임했으며, 2022 FIFA 월드컵까지의 계약을 맺었다. 그는 2019년 AFC 아시안컵에서 팀의 16강 진출에 기여했지만, 16강에서 호주와의 승부차기 혈전 끝에 패하며 8강 진출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2022 FIFA 월드컵 예선 첫 경기인 팔레스타인과의 원정 경기에서 0-2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후, 2019년 9월 경질되었다.
4.6.3. DR Congo national team
2021년 5월 13일, 쿠페르는 콩고 민주 공화국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6월 5일 튀니지와의 친선 경기 데뷔전에서 0-1로 패배했다. 2022년 3월에는 모로코와의 월드컵 플레이오프에서 합계 2-5로 패하며 2022 FIFA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그는 2023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예선 첫 경기에서 가봉과 수단에 패한 후 2022년 6월 9일 경질되었다.
4.6.4. Syria national team
2023년 2월 2일, 쿠페르는 시리아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부임했으며, 계약 기간은 공개되지 않았다. 그는 카타르에서 열린 2023년 AFC 아시안컵을 앞두고 시리아계 아르헨티나 선수들인 에세키엘 함, 이브라힘 헤사르, 잘릴 엘리아스를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쿠페르의 지휘 아래 시리아는 인도를 1-0으로 꺾고 아시안컵 토너먼트 단계에 진출했다. 이는 시리아가 6번의 이전 대회에서 모두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후 처음으로 토너먼트에 진출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2024년 2월, 그는 국가대표팀과의 계약을 연장하며 2026 FIFA 월드컵 예선 기간 동안 계속 함께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2026년 월드컵 예선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0-1, 일본에 0-5로 원정 두 경기를 연달아 패하며 시리아의 월드컵 본선 진출이 좌절되었다. 이에 따라 쿠페르는 2024년 6월 11일 시리아 대표팀 감독직에서 사임했다.
5. Controversy
5.1. Match-fixing allegations
2012년 1월 20일, 쿠페르는 이탈리아 검찰의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아르헨티나와 스페인에서 감독으로 활동할 당시 각각 2경기씩 총 4경기의 승부 조작에 연루되어 20.00 만 EUR의 대가를 받았다고 시인한 사실이 드러났다. 구체적인 시기와 해당 클럽의 이름은 공개되지 않았다.
6. Managerial statistics
업데이트: 2024년 6월 11일 기준
팀 | 시작 | 종료 | 기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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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 승 | 무 | 패 | 승률 (%) | ||||
우라칸 | 1993년 7월 1일 | 1995년 6월 30일 | 21|19|23|33.3 | |||||
라누스 | 1995년 7월 1일 | 1997년 6월 30일 | 33|22|17|45.8 | |||||
마요르카 | 1997년 7월 10일 | 1999년 5월 31일 | 49|26|27|48.0 | |||||
발렌시아 | 1999년 7월 1일 | 2001년 6월 30일 | 59|32|29|49.2 | |||||
인테르나치오날레 | 2001년 6월 22일 | 2003년 10월 17일 | 57|31|22|51.8 | |||||
마요르카 | 2004년 11월 2일 | 2006년 2월 13일 | 13|14|27|24.1 | |||||
레알 베티스 | 2007년 7월 14일 | 2007년 12월 2일 | 2|5|7|14.3 | |||||
파르마 | 2008년 3월 11일 | 2008년 5월 12일 | 2|3|5|20.0 | |||||
조지아 | 2008년 8월 8일 | 2009년 10월 15일 | 1|4|11|6.3 | |||||
아리스 | 2009년 11월 8일 | 2011년 1월 18일 | 26|14|22|41.9 | |||||
라싱 산탄데르 | 2011년 7월 1일 | 2011년 11월 29일 | 1|6|6|7.7 | |||||
오르두스포르 | 2011년 12월 20일 | 2013년 4월 13일 | 14|18|18|28.0 | |||||
알 와슬 | 2013년 11월 12일 | 2014년 3월 4일 | 4|3|9|25.0 | |||||
이집트 | 2015년 3월 2일 | 2018년 6월 26일 | 19|7|12|50.0 | |||||
우즈베키스탄 | 2018년 8월 1일 | 2019년 9월 23일 | 7|4|6|41.2 | |||||
콩고 민주 공화국 | 2021년 5월 13일 | 2022년 6월 9일 | 3|4|7|21.4 | |||||
시리아 | 2023년 2월 2일 | 2024년 6월 11일 | 5|6|6|29.4 | |||||
합계 | 319|219|251|40.4 |
7. Honours
7.1. As a player
페로 카릴 오에스테
- 프리메라 디비시온: 1982년 나시오날, 1984년 나시오날
우라칸
- 프리메라 B 나시오날: 1989-90
7.2. As a manager
우라칸
- 프리메라 디비시온 준우승: 1994 클라우수라
라누스
- 코파 CONMEBOL: 1996
마요르카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1998
- 코파 델 레이 준우승: 1997-98
- UEFA 컵위너스컵 준우승: 1998-99
발렌시아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1999
-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1999-2000, 2000-01
아리스 테살로니키
- 그리스 컵 준우승: 2009-10
이집트
-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준우승: 2017
7.3. Individual awards
- 라리가 올해의 감독 - 돈 발롱 상: 1999
- UEFA 올해의 클럽 감독: 2000
- CAF 올해의 감독: 2017
- 글로브 사커 어워드 최고 아랍 국가대표팀 감독: 2017
8. Legacy and evaluation
엑토르 쿠페르는 감독으로서 일관되게 '준우승 징크스'를 겪은 인물로 평가된다. 특히 발렌시아 CF를 이끌고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두 번 연속 진출했지만 모두 준우승에 머물렀던 기록은 그의 경력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또한 RCD 마요르카 시절 코파 델 레이와 UEFA 컵위너스컵 결승에서, 아리스 FC 시절 그리스 축구컵 결승에서, 그리고 이집트 축구 국가대표팀 시절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결승에서 모두 준우승을 기록하며 그의 징크스는 더욱 공고해졌다. 이러한 결과들은 그가 팀을 최고 수준의 경쟁에 도달시키는 뛰어난 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한 걸음을 넘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다는 평가로 이어진다.
그의 팀들은 대체로 견고한 수비 조직력과 강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역습에 능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수비적인 안정성을 중시하는 그의 철학은 많은 팀을 위기에서 구하고 예상치 못한 성공을 안겨주기도 했다. 예를 들어, RCD 마요르카를 강등권에서 구하고 구단 역사상 최고 성적을 기록하게 했으며, 이집트 축구 국가대표팀을 2018 FIFA 월드컵에 진출시킨 것은 그의 지도력을 증명하는 사례로 평가된다.
하지만 그는 중요한 순간에 지나치게 보수적인 전술을 선택하거나, 강팀과의 경기에서 수비에 치중하며 공격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전술적 한계가 그의 '준우승 징크스'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르헨티나와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 다양한 대륙에서 수많은 클럽과 국가대표팀을 지휘하며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았고, 특히 약팀을 강하게 만드는 데 강점을 보였다는 점에서 그의 유산은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의 경력은 성공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복합적인 이미지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