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arly Life and Amateur Career
번사이드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중앙부에서 야구 경력을 시작하며 유년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고, 프로 입문 전 국제 무대에서 오스트레일리아를 대표하는 선수로 활약했다.
1.1. Birth and Youth
에이드리언 마크 번사이드는 1977년 3월 15일 오스트레일리아 노던 준주 앨리스 스프링스에서 태어났다.
1.2. Junior and Amateur Baseball Career
1995년 번사이드는 매사추세츠주 케이프 코드에서 열린 세계 주니어 야구 선수권 대회에 오스트레일리아 국가대표 주니어팀으로 선발되어 출전했다. 이 대회에서 그는 3승을 기록하며 팀이 통산 다섯 번째 동메달을 획득하는 데 기여했다.
2. Professional Baseball Career
번사이드는 미국, 일본, 한국, 대만 등 여러 국가의 프로 야구 리그를 거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2.1. U.S. Minor League Career
번사이드는 1996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산하 루키 리그 팀인 그레이트 펄스와 계약을 맺으며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당시 좌완 투수 선발로 많은 기대를 받았으나, 첫 시즌에는 1승 3패, 평균자책점 6.80으로 부진했다.
1997년에는 싱글 A 마이너스급의 야키마로 승격되어 두 시즌 동안 4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1998년에는 싱글 A 플러스급의 샌 버나르디노로 승격되었으나, 7점대의 부진한 성적을 거뒀다. 그러나 2000년 더블 A 산 안토니오에서는 17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6승 5패, 2.9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2001년 잠시 더블 A 잭슨빌에서 뛰며 4승 3패, 2.6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2002년에는 피츠버그 파이리츠 산하 더블A 아이투나로 팀을 옮겨 6승 9패, 4.55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2003년 피츠버그에서 방출된 후 몸 만들기에 집중했다. 2004년 번사이드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마이너 계약으로 입단하여 산하 트리플A 톨레도에 합류했지만, 첫 시즌에 6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부진 끝에 퇴출되었다.
2005년에는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이적하여 트리플 A 시라쿠스에서 활약하며 2년 동안 주축 선발 투수로 뛰었다. 2007년 잠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산하 더블A 샌안토니오에서 활약한 후 바로 트리플 A 포틀랜드 비버스로 승격되었으나, 적응하지 못하고 샌디에이고에서도 방출되었다. 이후 번사이드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꿈을 접고 아시아 리그로 진출했다.
2.2. Japanese Professional Baseball (NPB) Career
2008 시즌, 번사이드는 일본 프로 야구의 명문 구단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입단 제의를 받아 일본 무대에 진출했다. 그러나 부상 등의 이유로 15경기 선발 등판에 그쳤고, 5승 3패, 3.48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요미우리의 강력한 선발진에 걸맞은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2008년 10월 11일이 그의 마지막 NPB 출전일이다. 2009년 시즌에는 1군에 오르지 못하고 2군에서 생활했으며, 2군에서도 좋은 성적을 기록하지 못했다. 결국 2년 만에 요미우리에서 방출되었다.
2.3. Korean Professional Baseball (KBO) Career
2009년 9월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방출된 번사이드는 선발 투수 보강이 절실했던 넥센 히어로즈 (현 키움 히어로즈)의 관심을 받았다. 당시 넥센 히어로즈는 장원삼과 이현승 (야구인) 등 뛰어난 좌완 선발 투수들의 이탈로 인해 2010 시즌에 어려움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넥센 히어로즈는 기존 외국인 선수였던 클리프 브룸바와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2009년 12월 번사이드와 계약을 체결했다.
2010년 시즌 번사이드는 넥센 히어로즈에서 10승 10패를 기록했다. 그러나 높은 피출루율과 기복 있는 불안정한 투구 내용으로 인해 시즌 종료 후 재계약에 실패했다. 2010년 9월 17일이 그의 마지막 KBO 출전일이다.
2.4. Chinese Professional Baseball League (CPBL) Career
2011년 2월, 번사이드는 대만 프로 야구 팀인 라미고 몽키스 (현 라쿠텐 몽키스)와 계약하며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나 같은 해 6월에 계약이 해지되어 팀을 떠났다. 라미고 몽키스 소속으로 그는 10경기에 모두 선발 투수로 나와 6승 3패, 3점대 방어율을 기록했다.
3. International Career
번사이드는 오스트레일리아 야구 국가대표팀의 주요 멤버로 활약하며 국제 대회에서 인상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3.1. 2004 Athens Olympics
번사이드는 2004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2004년 하계 올림픽 야구 대회에 오스트레일리아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이 대회에서 오스트레일리아는 야구 종목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루었으며, 번사이드는 이 역사적인 성과에 기여했다.
3.2. Other International Competitions
2006년 번사이드는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오스트레일리아 야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참가하며 다시 한번 국제 무대에서 활약했다. 그는 호주 대표팀의 57번 선수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4. Playing Style and Characteristics
에이드리언 번사이드는 좌완 투수로, 다양한 구종과 경기 운영 능력을 바탕으로 마운드에 올랐다. 그의 투구 스타일은 때로는 뛰어난 위력을 발휘했으나, 전반적인 경력을 통해 보여준 기복은 그의 특징 중 하나였다. 여러 리그를 옮겨 다니며 쌓은 경험은 그의 투구에 다양한 환경에 대한 적응력을 부여했지만, 안정적인 최고 수준의 기량을 꾸준히 유지하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5. Retirement and Post-playing Career
에이드리언 번사이드는 2011년 대만 프로 야구 팀 라미고 몽키스에서의 활동을 마지막으로 사실상 선수 생활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의 공식적인 활동이나 경력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는 현재 오스트레일리아의 전직 야구 선수로 분류된다.
6. Evaluation and Legacy
에이드리언 번사이드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투수로, 미국 마이너 리그에서 시작하여 일본, 한국, 대만 등 아시아 주요 프로 리그에서 폭넓게 활동하며 '저니맨'으로서의 길을 걸었다. 그의 경력은 비록 단일 리그에서 압도적인 지배력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여러 문화권의 야구에 적응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특히,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야구 국가대표팀에 기여하여 은메달을 획득한 것은 그의 선수 경력에서 가장 빛나는 성과로 평가받는다. 이는 오스트레일리아 야구 역사에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국제적 업적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