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애벌린 애슈퍼드는 개인적인 배경과 주요 생애 사건들을 통해 선수로서의 성장 과정을 보여주었다.
1.1. 어린 시절과 교육
애벌린 애슈퍼드는 1957년 4월 15일 미국 루이지애나주 쉬리브포트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로즈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영어, UCLA)에서 학업을 이어나갔다.
1.2. 초기 경력
19세의 나이로 애슈퍼드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100m 종목에서 5위를 차지하며 국제 무대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1979년 몬트리올에서 열린 육상 월드컵에서 100m와 200m 세계 기록 보유자들을 꺾으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그녀는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의 유력한 메달 후보로 떠올랐으나, 미국의 보이콧으로 인해 출전 기회를 놓쳤다. 또한 1980년에는 대퇴사두근 부상을 입어 그해 남은 시즌 동안 경기에 나설 수 없었다. 1977년에는 미국 최고의 여자 대학 육상 선수에게 수여되는 첫 번째 브로더릭 어워드(현 혼다 스포츠 어워드)를 수상했다.
2. 주요 활동 및 업적
애벌린 애슈퍼드는 선수 경력 동안 수많은 중요한 업적을 달성하며 세계 육상계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2.1. 세계 기록
애슈퍼드는 100m 종목에서 두 차례 세계 기록을 수립했다. 1983년 7월 3일 콜로라도주 콜로라도스프링스에서 열린 국립 스포츠 축제에서 100m를 10.79초에 달려 첫 세계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그녀를 1983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의 유력한 우승 후보로 만들었다. 이어서 1984년 8월 22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벨트클라세(Weltklasse벨트클라세독일어) 대회에서 자신의 100m 세계 기록을 10.76초로 단축하며 말리스 괴르(Marlies Göhr말리스 괴르독일어)를 꺾었다. 이 기록은 그녀의 개인 최고 기록이자 역대 13위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녀는 1983년 7월 3일부터 1988년 7월 16일까지 100m 세계 기록을 보유했다. 또한 애슈퍼드는 60야드 달리기에서 가장 오랫동안 깨지지 않은 육상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2.2. 올림픽 메달
애슈퍼드는 세 차례의 올림픽에 참가하여 총 4개의 금메달과 1개의 은메달을 획득했다.
-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애슈퍼드는 200m 예선에서 경미한 부상으로 기권해야 했지만, 100m 종목에 출전하여 10.97초의 새로운 올림픽 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어서 4x100m 릴레이 팀의 마지막 주자로 나서 두 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세계 챔피언이자 세계 기록 보유국이었던 동독의 불참으로 미국 팀은 역사상 가장 빠른 기록 중 하나를 세웠고, 올림픽 역사상 가장 큰 격차인 1.12초 차이로 우승했다.

- 1988년 서울 올림픽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식에서 미국 선수단의 기수였다. 100m에서는 그해 초 올림픽 선발전에서 자신의 세계 기록을 경신했던 플로렌스 그리피스 조이너에게 패배하여 은메달을 획득했다. 하지만 4x100m 릴레이에서는 다시 마지막 주자로 나서 세 번째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다. 그리피스 조이너와의 마지막 배턴 터치가 완벽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애슈퍼드는 놀라운 마지막 질주를 선보이며 괴르를 제치고 우승을 확정 지었다.
-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35세의 나이로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마지막 올림픽에 참가했다. 100m 준결승전에서는 0.01초 차이로 아쉽게 탈락했지만, 4x100m 릴레이에서는 첫 번째 주자로 나서 세 번째 올림픽 4x100m 릴레이 금메달이자 개인 통산 네 번째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로써 그녀는 올림픽 육상 역사상 4개의 금메달을 획득한 6명의 여성 선수 중 한 명이 되었다. 또한 35세의 나이로 단거리 및 허들 종목에서 당시 미국 대표팀 중 최연장자였다.
2.3. 주요 국제 대회
애슈퍼드는 올림픽 외에도 여러 주요 국제 대회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다.
- 팬아메리칸 게임
1979년 산후안에서 열린 팬아메리칸 게임에서 100m와 200m 모두 금메달을 획득하며 2관왕에 올랐다.
-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1983년 헬싱키에서 열린 첫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100m 결승에서 햄스트링 부상으로 넘어지며 기권했다. 1991년 도쿄에서 열린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100m에서는 5위를 기록했으며, 4x100m 릴레이에서는 완주하지 못했다.
- 기타 주요 대회
1981년 로마에서 열린 육상 월드컵에서 스프린트 더블(100m, 200m 우승)을 달성했다. 1986년 굿윌 게임에서는 100m 타이틀을 획득하며 다시 한번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다.
2.4. 주요 대회 성적
애벌린 애슈퍼드의 주요 국제 대회 성적은 다음과 같다.
연도 | 대회 | 장소 | 종목 | 결과 | 기록 |
---|---|---|---|---|---|
1983 |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 헬싱키 (핀란드) | 100m | 기권 (DNF) | - |
1984 | 올림픽 | 로스앤젤레스 (미국) | 100m | 금메달 | 10.97초 |
1984 | 올림픽 | 로스앤젤레스 (미국) | 4x100m 릴레이 | 금메달 | 41.65초 |
1988 | 올림픽 | 서울 (대한민국) | 100m | 은메달 | 10.83초 |
1988 | 올림픽 | 서울 (대한민국) | 4x100m 릴레이 | 금메달 | 41.98초 |
1991 |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 도쿄 (일본) | 100m | 5위 | 11.30초 |
1991 |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 도쿄 (일본) | 4x100m 릴레이 | 기권 (DNF) | - |
1992 | 올림픽 | 바르셀로나 (스페인) | 100m | 준결승 5위 | 11.29초 |
1992 | 올림픽 | 바르셀로나 (스페인) | 4x100m 릴레이 | 금메달 | 42.11초 |
2.5. 수상 경력
애슈퍼드는 선수 경력 동안 여러 권위 있는 상을 수상하며 그 업적을 인정받았다.
- 혼다 스포츠 어워드
1977년에는 전국 최고의 여자 대학 육상 선수에게 수여되는 첫 번째 브로더릭 어워드(현 혼다 스포츠 어워드)를 수상했다.
- 올해의 육상 선수
육상 전문지 '트랙 앤 필드 뉴스'(Track & Field News트랙 앤 필드 뉴스영어)에 의해 1981년과 1984년 두 차례 '올해의 육상 선수'로 선정되었다. 1979년과 1981년에는 100m 종목에서, 1981년에는 200m 종목에서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다.
- 플로 하이먼 기념상
1989년에는 플로 하이먼 기념상(Flo Hyman Memorial Award플로 하이먼 기념상영어)을 수상했다.
- ESPY 어워드
1993년에는 '최고의 여자 육상 선수 ESPY 어워드'(Best Female Track Athlete ESPY Award최고의 여자 육상 선수 ESPY 어워드영어)를 수상했다.
2.6. 부상 극복 및 재기
애슈퍼드는 선수 경력 동안 여러 차례 심각한 부상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이를 극복하고 정상급 기량을 회복하며 강인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 1980년 대퇴사두근 부상
1980년에 대퇴사두근 부상을 입어 시즌을 마감했으나, 1981년에 복귀하여 육상 월드컵에서 스프린트 더블을 달성하고 두 종목 모두 세계 랭킹 1위를 차지했다.
- 1983년 햄스트링 부상
1983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햄스트링 부상으로 결승에서 기권했으나, 이듬해인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2관왕에 오르며 화려하게 재기했다.
- 1987년 햄스트링 부상
1987년에도 햄스트링 부상으로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한 시즌 후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은메달과 세 번째 금메달을 추가하며 다시 한번 최고 수준의 기량을 입증했다.
이처럼 그녀는 시즌을 마감할 정도의 부상에서 세 차례나 회복하여 다음 해에 다시 스포츠의 정상에 오르는 놀라운 회복력을 보여주었다.
3. 개인 생활
1985년 5월 30일, 애벌린 애슈퍼드는 딸 레이나 애슐리 워싱턴(Raina Ashley Washington레이나 애슐리 워싱턴영어)을 출산했다. 1985년 팻 코놀리(Pat Connolly팻 코놀리영어) 코치와 헤어진 후에는 주로 자가 훈련을 통해 기량을 유지했다. 일본 소스에서는 조나단 패튼(Jonathan Patton조나단 패튼영어)이 그녀의 코치였다고 언급되기도 했다.
4. 평가 및 유산
애벌린 애슈퍼드의 경력과 업적은 스포츠계, 특히 여성 단거리 선수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녀는 동시대 및 후대 선수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4.1. 긍정적 평가
애슈퍼드는 "역대 가장 위대한 육상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그녀는 100m에서 11초 장벽을 30회 이상 돌파했으며, 올림픽에서 11초 아래로 달린 최초의 여성 선수이다. 또한 60야드 달리기에서 가장 오랫동안 깨지지 않은 육상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부상을 극복하고 꾸준히 최고 기량을 유지한 그녀의 회복력과 끈기는 높이 평가된다.
4.2. 영향력
애슈퍼드는 여성 단거리 선수로서 스포츠계에 선구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녀의 뛰어난 기록과 꾸준한 활약은 후대 선수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으며, 여성 육상 선수들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특히 35세의 나이에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보여준 스포츠 수명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4.3. 기념 및 추모
애벌린 애슈퍼드는 그녀의 업적을 기리는 여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990년에는 UCLA 육상 명예의 전당(UCLA Athletics Hall of FameUCLA 육상 명예의 전당영어)에, 1997년에는 미국 육상 명예의 전당(National Track and Field Hall of Fame미국 육상 명예의 전당영어)에 이름을 올렸다. 또한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식에서 미국 선수단의 기수로 활동하며 국가를 대표하는 영예를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