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에밀 음펜자(Émile Mpenza)는 벨기에의 전 축구 선수로, 스트라이커 포지션에서 활약했다. 그는 1997년부터 2009년까지 벨기에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뛰었으며, 형인 음보 음펜자 또한 벨기에 국가대표팀에서 활동했다. 음펜자는 KV 코르트레이크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하여 RE 무스크롱, 스탕다르 리에주 등 벨기에 클럽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독일 분데스리가의 FC 샬케 04와 함부르거 SV에서 뛰었고, 잠시 카타르 스타스 리그의 알 라얀 SC로 이적하여 논란을 빚기도 했다. 잉글랜드의 맨체스터 시티 FC와 플리머스 아가일 FC를 거쳐 스위스 슈퍼리그의 FC 시옹에서 재기에 성공했으며, 아제르바이잔 프리미어리그의 네프치 바쿠에서 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선수 생활 말년에는 SC 에인트라흐트 알스트에서 뛰며 경력을 마무리했다. 그는 1998년 FIFA 월드컵과 UEFA 유로 2000에 참가하여 벨기에 대표팀의 주축 공격수로 활약했다. 그의 경력은 뛰어난 득점 능력과 기술을 보여주었지만, 잦은 부상과 일부 구단과의 갈등 등으로 인해 비판과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2. 생애 및 배경
에밀 음펜자의 생애와 배경에는 그의 유년기, 교육 과정, 그리고 가족 관계가 그의 축구 경력에 미친 영향이 포함된다.
2.1. 유년기 및 교육
에카 바쑹가 로콘다 "에밀" 음펜자(Eka Basunga Lokonda "Émile" Mpenza영어)는 1978년 7월 4일 벨기에 젤릭에서 태어났다. 그의 유년기는 축구와 함께 시작되었다. 1986년부터 1989년까지는 LC 메스빈스에서, 1989년부터 1995년까지는 KV 코르트레이크 유소년 팀에서 축구 선수로서의 기량을 닦았다. 이러한 초기 교육 과정은 그가 프로 선수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2.2. 가족 관계
음펜자는 어머니 로잘리와 약사였던 아버지 아르센 사이에서 태어난 다섯 형제 중 한 명이다. 그의 형인 음보 음펜자 역시 축구 선수로 활약했으며, 에밀 음펜자와 함께 벨기에 국가대표팀에서 뛰는 등 형제 모두 벨기에 축구계에 이름을 알렸다. 특히, 형 음보 음펜자와는 KV 코르트레이크, RE 무스크롱, 스탕다르 리에주 등 여러 클럽에서 함께 선수 생활을 하며 서로의 경력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아버지는 두 아들이 명문 클럽에서 뛰는 것을 꿈꾸었다고 전해진다.
3. 클럽 경력
에밀 음펜자는 벨기에를 시작으로 독일, 카타르, 잉글랜드, 스위스, 아제르바이잔 등 여러 국가의 클럽에서 활약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그의 클럽 경력은 성공과 좌절이 교차하는 과정이었다.
3.1. 벨기에 초기 활동
음펜자는 1995년 KV 코르트레이크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1년 후인 1996년에는 RE 무스크롱으로 이적하여 형 음보와 함께 조르주 레이컨스 감독의 지휘 아래 활약했다. 당시 무스크롱에서 보여준 인상적인 활약은 '무스크롱의 기적'으로 불리기도 했다. 1996-97 시즌을 마친 후, 그는 벨기에 프로페셔널 풋볼 어워드에서 '올해의 영 플레이어'로 선정되었고, 에보니 슈를 수상하며 벨기에 축구계의 유망주로 떠올랐다. 이후 1997년에는 형과 함께 스탕다르 리에주로 이적하여 1999년까지 뛰었다.
2003년에는 독일에서의 첫 번째 클럽 경력을 마치고 친정팀인 스탕다르 리에주로 이적하며 벨기에 리그로 복귀했다. 그는 도미니크 도노프리오(Dominique D'Onofrio영어) 감독의 지도 아래 아르만 모레이라(Armanien Moreira영어), 모하메드 알리유 다티(Mohammed Aliyu Datti영어) 등과 함께 공격을 이끌었다. 이 시즌(2003-04) 동안 28경기에 출전하여 21골을 기록하는 뛰어난 득점력을 과시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3.2. 독일 분데스리가
2000년 1월 2일, 음펜자는 동포인 미카엘 구센스(Michaël Goossens영어)와의 트레이드 형식으로 FC 샬케 04와 계약하며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했다. 당시 그의 이적료는 클럽 역사상 최고액인 1700.00 만 DEM에 달했다. 2월 5일 아르미니아 빌레펠트와의 경기에서 데뷔했으며, 베르더 브레멘과의 경기(3-1 승)에서 첫 골을 기록했다. 18일 후 VfB 슈투트가르트와의 경기(3-0 승)에서는 두 골을 넣는 등 9경기 6골을 기록하며 '마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0-01 시즌에는 에베 산드와 함께 강력한 공격 라인을 구축하며 팀의 리그 우승 경쟁을 이끌었고, 구단의 전설적인 공격수 클라우스 피셔로부터 '클럽 역사상 최고의 공격 조합'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팀은 아쉽게 승점 1점 차이로 우승을 놓쳤으며, 이후 음펜자는 잦은 부상과 당시 단장이었던 루디 아사우어(Rudi Assauer영어)와의 불화로 인해 힘든 시기를 보냈다. 결국 2003년 샬케를 떠나 스탕다르 리에주로 복귀했다.
스탕다르 리에주에서의 성공적인 복귀 후, 2004년 5월 18일 음펜자는 250.00 만 EUR의 이적료로 함부르거 SV와 4년 계약을 맺으며 다시 독일 분데스리가로 돌아왔다. 하지만 함부르거 SV에서는 36경기 5골에 그치며 이전과 같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결국 2006년 1월 카타르 리그의 알 라얀 SC로 이적하며 독일 생활을 마감했다.
3.3. 카타르 스타스 리그
2006년 1월 9일, 음펜자는 함부르거 SV를 떠나 알 라얀 SC로 이적하며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적료는 150.00 만 EUR였으며, 1년 반 계약을 맺었다. 당시 그의 카타르 리그 이적은 많은 비난을 받았는데, 이에 대해 음펜자는 벨기에 라디오 방송국 벨 RTL (Bel RTL벨 RTL영어)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끝난 것이 아니며, 맨체스터에서 이를 증명할 것이다. 카타르에서 뛰기로 한 나의 결정을 비판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복수하려는 의도이다"라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는 알 라얀에서 축구 선수로서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며 스스로 비난을 잠재우고자 노력했다.
3.4.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카타르 스타스 리그를 떠난 후 자유 계약 선수가 된 음펜자는 2007년 2월 14일, 맨체스터 시티 FC의 입단 테스트에 참가했다.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블랙풀 FC와의 연습 경기에서 두 골을 기록하며 능력을 인정받았고, 2007년 2월 16일 맨체스터 시티와 시즌 종료까지의 단기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다시 한번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맨체스터에서 이를 증명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2007년 3월 3일 위건 애슬레틱 FC와의 경기에서 게오르기오스 사마라스(Georgios Samaras영어)와 교체되어 후반에 출전하며 맨체스터 시티 데뷔전을 치렀다. 3월 17일 미들즈브러 FC와의 경기(2-0 승)에서 첫 골을 기록했으며, 3월 30일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와의 경기(1-0 승)에서는 결승골을 터뜨리며 팀의 승리에 기여했다. 2006-07 시즌 마지막 경기인 토트넘 홋스퍼 FC 원정 경기(1-2 패)에서도 골을 추가하며 총 3골을 기록했다. 그의 활약에 힘입어 2007년 5월 5일, 그는 2007-08 시즌 종료까지의 계약 연장에 성공했다.
2007-08 시즌 프리시즌 경기에서는 돈캐스터 로버스 FC를 상대로 골을 기록하며 좋은 출발을 보였다. 시즌 초반에는 풀럼 FC, 브리스톨 시티 FC, 뉴캐슬 유나이티드 FC를 상대로 득점하며 활약했다. 그러나 2007년 여름, 새로 부임한 스벤예란 에릭손 감독이 롤란도 비앙키(Rolando Bianchi영어), 발레리 보지노프(Valeri Bojinov영어), 제오바니 데이베우손 마우리시오(Geovanni Deiberson Maurício영어), 엘라누 블루메르(Elano Blumer영어) 등 여러 공격수들을 영입하면서 팀 내 경쟁이 심화되었다. 게다가 무릎과 햄스트링 부상까지 겹치며 9월 이후에는 득점을 올리지 못했고, 출전 기회도 크게 줄었다. 결국 2008년 7월, 음펜자는 맨체스터 시티에서 방출되었다.
맨체스터 시티를 떠난 음펜자는 2008년 9월 2일 챔피언십(잉글랜드 2부 리그) 소속의 플리머스 아가일 FC와 1년 계약을 체결했다. 9월 13일 노리치 시티 FC와의 경기(1-2 패)에서 교체 출전하며 데뷔했고, 찰턴 애슬레틱 FC와의 경기(2-2 무)에서 첫 골을, 카디프 시티 FC와의 경기(2-1 승)에서 두 번째 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플리머스 아가일에서도 잦은 부상에 시달렸고, 팀 내 최고 주급인 주당 1.00 만 GBP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선발 3경기를 포함해 총 9경기 2골에 그치는 저조한 활약을 보였다. 결국 재계약을 제안받지 못하고 팀을 떠났다.
3.5. 스위스 및 아제르바이잔 리그
2009년 6월 30일 플리머스 아가일과의 계약이 만료된 후, 음펜자는 2009년 7월 8일 FC 시옹과 1년 연장 옵션이 포함된 2년 계약을 맺으며 스위스 슈퍼리그에 진출했다. 시옹에서는 오랜 기간 그를 괴롭혔던 부상 문제 없이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부활에 성공했다. 그는 32경기에 출전하여 21골을 기록했고, 마지막 경기인 FC 장크트갈렌전(5-1 승)에서는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크리스티안 이아누(Cristian Ianu영어)와 마르코 슈트렐러와 함께 득점 순위 2위를 차지했다. 이 활약으로 아약스 암스테르담의 관심을 받기도 했으나, 이적은 성사되지 않았다.
시옹에서의 성공적인 시즌을 보낸 후, 음펜자는 2010년 8월 3일 아제르바이잔 프리미어리그 소속의 네프치 바쿠와 3년 반 계약을 체결했다. 네프치 바쿠 이적 후 첫 시즌에는 동계 훈련 중 무릎 부상으로 수술을 받아 최대 6개월간 결장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6골을 기록하며 팀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그러나 2011-12 시즌에는 바하디르 나시모프(Bahadir Nasimov영어)와 플라비우 알렉스 발렌시우(Flávio Alex Valêncio영어)의 활약으로 인해 보유카가 하지예프(Boyukagha Hajiyev영어) 신임 감독의 전력 외 선수로 분류되었다. 그는 8경기에 출전해 총 165분(경기당 평균 22분)밖에 뛰지 못하는 등 출전 기회가 크게 줄었고, 결국 2012년 1월 팀을 떠났다. 2015년 6월, FIFA는 네프치 바쿠에게 음펜자에게 미지급된 임금 100.00 만 EUR를 지급하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3.6. 벨기에 2부 리그 복귀
네프치 바쿠를 떠난 후, 음펜자는 1년 이상 무소속 상태로 지냈다. 그는 2012년 7월 와슬란드-베베런, 11월 KVC 웨스터로, 2013년 8월 호흐스트라턴 VV(Hoogstraten VV영어), 9월 로열 앤트워프 FC 등 여러 벨기에 클럽에서 훈련에 참여하며 재기를 모색했으나, 번번이 계약에는 실패했다. 결국 2013년 10월 1일, 그는 벨기에 2부 리그 소속의 SC 에인트라흐트 알스트와 시즌 종료까지의 1년 계약을 체결하며 고향 벨기에로 복귀했다. 그러나 에인트라흐트 알스트에서는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하고 득점 기록도 없이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4. 국가대표 경력
에밀 음펜자는 1997년부터 2009년까지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국제 대회에 참가했다.
4.1. 주요 국제 대회 참가
음펜자는 벨기에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며 1997년 북아일랜드전(0-3 패)에서 데뷔했다. 같은 해 산마리노전(6-0 승)에서는 두 골을 기록하며 국가대표팀 첫 득점을 올렸다. 그는 형 음보 음펜자와 함께 1998년 FIFA 월드컵과 UEFA 유로 2000에 참가했다.
1998년 월드컵에서는 조별 리그 3경기 모두 교체 출전했다. UEFA 유로 2000에서는 브란코 스트루파르(Branko Strupar영어), 뤽 닐리스(Luc Nilis영어) 등과 공격 조합을 이루며 조별 리그 3경기에 선발 출전했고, 스웨덴과의 개막전(2-1 승)에서 득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두 대회 모두 조별 리그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특히 2002년 FIFA 월드컵에는 사타구니 부상으로 인해 아쉽게도 참가하지 못했다.
4.2. 국가대표 은퇴 및 복귀
2004년 4월 튀르키예전 이전에 개인적인 이유로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으나, 같은 해 10월에 다시 복귀했다. 이후 2007년 6월 6일 핀란드와의 UEFA 유로 2008 예선을 마지막으로 클럽 경력에 집중하기 위해 다시 한번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프랑키 페르코테런(Frankie Vercauteren영어) 감독의 설득으로 2009년 8월 6일 다시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었고, 8월 12일 체코와의 친선 경기에서 복귀전을 치렀다. 같은 해 10월 10일 튀르키예와의 2010년 FIFA 월드컵 예선 경기에서는 두 골을 기록하며, 2005년 8월 17일 그리스전 이후 4년여 만에 국가대표팀 득점을 올렸다. 이 득점이 그의 국가대표 경력의 마지막 골이 되었다.
4.3. 국제 경기 기록
에밀 음펜자는 1997년부터 2009년까지 벨기에 국가대표팀에서 총 57경기에 출전하여 19골을 기록했다.
골 | 날짜 | 장소 | 상대 | 점수 | 결과 | 대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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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1997년 6월 7일 | 스타드 루아 보두앵, 브뤼셀 | 산마리노 | 6-0 | 승 | 1998 FIFA 월드컵 예선 |
2 | ||||||
3 | 1999년 2월 3일 | 치리온 경기장, 리마솔 | 키프로스 | 0-1 | 승 | 친선 경기 |
4 | 1999년 8월 18일 | 얀 브레이델 스타디온, 브뤼헤 | 핀란드 | 3-4 | 패 | 친선 경기 |
5 | 1999년 9월 4일 | 페이예노르트 경기장, 로테르담 | 네덜란드 | 5-5 | 무 | 친선 경기 |
6 | 1999년 9월 7일 | 스타드 모리스 뒤프라스네, 리에주 | 모로코 | 4-0 | 승 | 친선 경기 |
7 | 2000년 3월 29일 | 스타드 루아 보두앵, 브뤼셀 | 네덜란드 | 2-2 | 무 | 친선 경기 |
8 | 2000년 6월 10일 | 스타드 루아 보두앵, 브뤼셀 | 스웨덴 | 2-1 | 승 | UEFA 유로 2000 |
9 | 2000년 8월 16일 | 게오르기 아스파루호프 경기장, 소피아 | 불가리아 | 1-3 | 승 | 친선 경기 |
10 | 2001년 2월 28일 | 스타드 루아 보두앵, 브뤼셀 | 산마리노 | 10-1 | 승 | 2002 FIFA 월드컵 예선 |
11 | 2001년 4월 25일 | 레트나 경기장, 프라하 | 체코 | 1-1 | 무 | 친선 경기 |
12 | 2001년 6월 2일 | 스타드 루아 보두앵, 브뤼셀 | 라트비아 | 3-1 | 승 | 2002 FIFA 월드컵 예선 |
13 | 2003년 2월 12일 | 스타드 19 메이 1956, 안나바 | 알제리 | 1-3 | 승 | 친선 경기 |
14 | ||||||
15 | 2005년 3월 26일 | 스타드 루아 보두앵, 브뤼셀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4-1 | 승 | 2006 FIFA 월드컵 예선 |
16 | ||||||
17 | 2005년 8월 17일 | 스타드 루아 보두앵, 브뤼셀 | 그리스 | 2-0 | 승 | 친선 경기 |
18 | 2009년 10월 10일 | 스타드 루아 보두앵, 브뤼셀 | 튀르키예 | 2-0 | 승 | 2010 FIFA 월드컵 예선 |
19 |
5. 개인 생활
에밀 음펜자의 공개된 개인 생활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으나, 2002년에는 도미니크 스탕데르트(Dominique Standaert프랑스어) 감독의 코미디 영화 '홉'(Hop홉프랑스어)에 출연하며 배우로 데뷔한 이력이 있다.
6. 수상 및 업적
에밀 음펜자는 선수 생활 동안 다양한 클럽 및 개인 타이틀을 획득하며 그의 기량을 인정받았다.
6.1. 클럽 수상
- FC 샬케 04
- DFB-포칼: 2000-01, 2001-02
- 함부르거 SV
- UEFA 인터토토컵: 2005
- 네프치 바쿠
- 아제르바이잔 프리미어리그: 2010-11
6.2. 개인 수상
- 벨기에 프로페셔널 풋볼 어워드 올해의 영 플레이어: 1996-97
- 에보니 슈: 1997
- 해외 활동 벨기에 최고 축구 선수: 2000
- 키커 (스포츠 잡지) 독일 축구 랭킹 - 국제 클래스 선수: 2000-01
- 스탕다르 리에주 시즌의 선수: 2003-04
7. 평가 및 유산
에밀 음펜자는 뛰어난 기술과 득점 능력을 겸비한 공격수로 평가받지만, 선수 생활 전반에 걸쳐 다양한 논란과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7.1. 긍정적 평가
음펜자는 그의 별명 '마법'처럼 경기에 마법 같은 순간을 선사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FC 샬케 04 시절 에베 산드와 함께 구축한 공격진은 구단의 전설적인 공격수인 클라우스 피셔로부터 '클럽 역사상 최고의 조합'이라는 극찬을 받을 정도로 강력했다. 특히 2003-04 시즌 스탕다르 리에주 복귀 후 28경기 21골을 기록하며 부활을 알렸고, FC 시옹에서는 32경기에 출전하여 21골이라는 놀라운 득점력을 보여주며 재기에 성공했다. 이는 그의 뛰어난 득점 능력과 팀에 대한 기여도를 명확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여러 클럽에서 우승을 경험하며 팀의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7.2. 비판 및 논란
음펜자의 선수 생활은 잦은 부상으로 인해 빛이 바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FC 샬케 04와 맨체스터 시티 FC, 플리머스 아가일 FC 등 여러 클럽에서 중요한 시기에 부상으로 장기간 이탈하며 팀에 완전하게 기여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한, 샬케 재직 시절 루디 아사우어 단장과의 공개적인 불화는 그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006년 카타르 스타스 리그의 알 라얀 SC로 이적할 당시에는 '돈을 따라갔다'는 비난에 직면했으며, 이에 대해 그가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복수하겠다"고 발언한 것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 플리머스 아가일 FC에서는 팀 내 최고 주급인 주당 1.00 만 GBP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잦은 부상으로 인해 9경기 출전에 그치며 '고액 주급을 받는 먹튀'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이외에도 네프치 바쿠를 떠날 때 미지급된 임금 문제로 FIFA가 개입하여 구단에 100.00 만 EUR 지급을 명령하는 등 구단과의 금전적 분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그의 실력과는 별개로 선수 생활의 부정적인 측면으로 지적된다.